Tuesday, April 10, 2018

그물을 오른 편에 Cast your net on the right side




요한복음 21:2-7 그물을 오른 편에 Cast your net on the right side (4/8/18 주일)
부활 주일 후 1주일을 지났다. 부활한 주님을 만난 후 어떤 변화가 삶에 일어났나? 부활하신 주님은 어떻게 계시나?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큰 변화가 있었다. 그들은 보통 사람이었다. 주의 부르심을 받고 따르면서 감격과 기쁨이 많았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하던 말씀을 듣다. 이야기가 감동 스럽다. 많은 기적을 보면서 예수께서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새로운 나라를 건립할 꿈을 가진다. 누가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서로 다투기까지 한다. 야고보 요한 형제는 주님의 오른 쪽 왼 쪽 자리를 요구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고 말씀하시던 대로 종교인들에게 고발당하고 로마 총독의 심문을 받고 십자가 사형 언도를 받고 끌려 간다. 전혀 자기 정당화나 피할 생각을 않고 더욱이 기적도 행하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는다. 무덤에 장사된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꿈과 내일이 죽어 무덤에 묻히는 것이었다. 슬픔과 좌절만 아니라 제자들은 두려움에 잡히다. 주님을 고발하고 처형한 자들이 또한 그들을 잡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많아 숨고 피하였다. 그런 제자들에게 부활한 주님이 나타나시다. 제자들이 그를 확인하자 주님은 떠나시다.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기에 믿지 못하자 도마가 있을 때 다시 찾아오시어 확인 시키고는 또 떠나시다. 제자들이 부활한 주님을 보기는 보았지만 주님이 사라지고 하니 그들의 앞 날에 대한 아무 확신이 없다. 베드로를 위시하여 제자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라 예루살렘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다. 살 길을 찾아 돌아간 것이지만 다른 면으로는 주께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으니 거기서 주를 다시 만날 기대도 있었다고 본다. 아뭏든 금의 환향이 아니라 실망과 좌절 상태의 빈손으로 돌아오다. 베드로까지 일곱 명이 함께 있다. 주님이 함께 계실 때는 무엇을 어떻게 할지 무엇을 먹고 살지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이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간다. 할 수 있는 일이란 이전에 하던 일이다. 같이 있던 그들도 함께 가겠다고 한다. 주님과 더불어 배로 이 바다를 여러 번 건너기는 하였지만 이들 스스로 고기를 잡은 것은 부름 받기 전의 일이었다. 베드로 형제와 야고보 형제는 여기 디베랴 갈릴리 바다에서 뼈가 굵었다. 다른 제자들도 갈릴리 사람들이라 여기에서 주로 고기를 잡았다고 본다. 이들은 고기 잡이에는 전문가들 이었다. 고기 잡으러 간 것은 먹고 살아야 하는 것도 있고 또 주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밤 새껏 그물을 내리고 올리고 했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날이 새어온다. 일곱 명이 합작을 하였는데도 아무 것도 잡지 못하니 실망이 얼마나 크겠나? 날이 새어가는데 예수께서 바다가에 서셨다. 제자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안개가 끼어서인지 또는 아직 날이 채 밝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처럼 보고도 모르는지 모를 일이다. 예수께서 물으신다. 이 사람들아 고기가 있는가? 없나이다.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이 잡혀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 때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이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다 하니 베드로가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었다. 그물을 올리고 보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153마리나 되었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정말 대박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

1 실패의 때는 주님을 만나는 좋은 기회임을 본다. 그들이 고기를 많이 잡았다고 하면 이런 만남의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잡은 것이 없다. 잡지 못한 것을 인정한다. 그들이 전문 어부 출신으로 고기를 과거에도 못 잡은 적이 있지만 전문가로서 못 잡았다고 말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고기를 잡지 못했다고 시인한다. 빈 그물이다. 그들은 지난 3년 동안 정말 주님을 잘 만났다고 생각하고 큰 꿈을 가지고 따랐는데 주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남은 것은 인생의 빈 그물 뿐이라고 느껴진다. 우리 인생이 그럴 때가 있다. 열심히 일을 한다. 그러나 얻은 것이 없다. 사업에 최선을 다 하였는데도 경쟁에 뒤처지는 것을 느낀다. 직장에서 일을 잘 하고 있는데도 임금이나 승진에서 빠진다. 학교에서 강의를 잘 듣고 책을 읽으며 페이퍼도 썼는데 시험에서 좋은 성적이 나지 않은다. 주님을 잘 믿으며 봉사도 잘 한다고 하는데도 기도 응답이 없고 일이 풀리지 않는다. 실망이 된다. 내 부족과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부끄러울 수 있으나 그대로 인정한다. 주 앞에 겸손한 심정이 필요하다. 가진 것이 없나이다.

2  그물을 배 오른 편으로 던지라 하는 말씀이 온다. 이 말은 그들이 그물을 왼쪽으로 내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어부는 왼쪽으로 그물을 내렸다고 한다. 오른 쪽에는 노를 젖는 노걸이가 있어 그것을 피하여 왼쪽으로 그물을 내린다. 이것이 지끔껏 그들의 방식이요 전통이요 지혜다. 그것이 쉬운 일이다. 습관따라 그렇게 한다. 그런데 오른 쪽으로 그물을 내려라. 하지 않던 방향 이다. 내 방식이 아니라 주님의 방식이다. 새로운 방식이다. 그들은 말할 수 있으리라 우리가 지금까지 배우고 행하던 것이 좋다. 우리가 전문가다 하고 무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오른 편으로 그물을 내렸다. 예수님인 것을 몰랐지만 그물을 내렸다. 잡지 못하여도 한 번 해 보자는 생각일 수도 있다. 조금 더 수고를 하자는 마음일 것이다. 말씀대로 순종하였더니 그물 가득히 고기가 잡힌 것이다. 베드로가 이 바다에서 3년 전 처음 주님을 만날 때도 같은 일이 있었다. 밤새껏 고기를 잡았으나 잡은 것이 없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한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베드로는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잡은 것이 없지만 말씀대로 해 보겠다고 하며 그물을 깊은 곳에 내리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혔다. 주의 말씀은 전문 경험에 맞는 것이 아니다.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말씀에 순종하자 결과가 크게 나타난다. 배가 얼마나 크기에 왼쪽에 없는 고기가 오른 쪽에만 몰려 있겠나? 주의 말씀에 순종할 때 주께서 허락하시는 기적인 것을 그들은 바로 알다.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이 바다의 고기와 산천의 짐승을 모두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분이다.
아람의 나아만 장군은 왕 앞에 존귀한 사람이나 나병이 들려 있다. 아무리 왕의 신임을 받는 장군이라 해도 나병 환자라면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사마리아에서 잡혀온 여아가 장군께서 사마리아 선지자 앞에 가면 그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 하다. 왕의 친필 편지를 들고 이스라엘 왕을 찾아가다. 내 신하의 병을 고쳐주오! 이스라엘 왕이 무슨 재주로 나병을 고쳐주겠나? 엘리사가 이를 듣고 그를 보내라고 한다. 장군이 자기 신하들과 함께 엘리사 집을 찾아가다. 엘리사는 나와보지도 않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 깨끗하게 되리라 한다. 장군이 화가 나다. 내가 누구인데 나와 보지도 않고 이런 대접이 어디 있나? 분을 내어 돌아가려고 하자 한 신하가 말을 한다. 그가 더 큰 것을 하라고 하면 하지 않겠나? 씻어 깨끗함을 받으라는데 못할 것이 무엇인가? 그대로 하였더니 몸이 깨끗해졌다. 말씀의 능력이다. 우리가 실패하고 좌절하고 있을 때 내게 주시는 주의 말씀이 무엇인지 듣고 순종하면 주께서 큰 것을 채워주시는 것을 안다. 내가 내 방식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듣고 따르고 있나?

3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하는 것은 그동안 그물을 배 왼편에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배에 서서 그물을 던질 때 몸의 자세를 생각한다. 배 왼편에 던질 때에 방향을 생각하면 뒤를 보고 서서 던지게 된다. 왼편에 그물을 던짐은 뒤를 돌아보는 자세다. 그러나 오른 편으로 그물을 던짐은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앞을 바라보는 자세가 된다. 뒤를 돌아보니 그들은 주님과의 감격스런 시간을 모두 잊어버리고 이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인생의 빈 그물을 보며 실망스런 삶이다. 과거에 매여 있다. 이들은 예수의 십자가와 무덤의 과거에 매여 있다. 예수께서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제자들에게 오른 쪽으로 던지라는 말씀은 앞을 내다 보아라는 것이다. 처음 주님을 따르며 앞 날을 바라보던 그 꿈 그대로 주께서 인도하시는 앞날을 바라보라는 말씀이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함께 가자는 것이다. 십자가 죽음과 무덤을 넘어 부활하신 생명의 세계와 그가 인도하시는 앞날을 보라는 말씀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무덤이 너무 큰 충격이나 그것을 벗어나 부활로 오는 소망의 앞날을 보라는 것이다. 무덤이 열렸다. 죽음이 정복되었다. 새로운 날이 오고 있다. 영광의 앞날이 기다리고 있음을 보며 앞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과거에 집착하여 십자가와 무덤에 머물러 있으면 빈 그물을 보게 된다. 십자가는 있으나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소망이 없다. 그러나 부활의 새생명으로 열리는 새날의 감격을 가질 때 그물이 채워진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꿈꾸는 자로서 형들의 미움을 받았다. 형들이 묶은 곡식단이 자기 곡식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더라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을 하더라는 꿈이다. 이 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형들이 그를 미워하여 애굽으로 가는 대상에게 팔아넘기다. 사랑 받던 아들이 남의 나라에 종으로 팔려가 고생을 하고 모함을 받아 감옥에 들어간다. 그러나 요셉은 한 번도 실망하거나 원망하는 일이 없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을 알고 그의 뜻과 꿈을 따라 앞을 내다 보니 주께서 그를 애굽의 총리가 되도록 하였다. 가족 모두 이민을 오고 결국 200만 이상의 민족이 되었으니 그보다 더 큰 그물이 어디 있겠나! 부활 생명의 주님과 함께 오늘을 살며 내일을 보라볼 때 주께서는 넘치는 주의 생명으로 채워주신다.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흐르게 하신다. 오른 쪽으로 그물을 내리며 앞을 바라보니 그물 가득히 고기가 잡히다.

 4  예수께서 바닷가에 찾아오시다. 그들을 버려 두지 않고 찾아오시다. 특히 실패와 좌절에 있는 그들이다. 주님이 오시어 서 계셨으나 그들이 왼쪽으로 그물을 던지며 뒤를 돌아보고 있는 동안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들이 알아보지 못해도 그들이 고생하며 실패를 하고 있을 때 주님이 찾아오시다. 부활의 주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들이 그물을 오른 쪽으로 내리며 앞을 보며 고기를 잡자 그 때 알아보게 되다.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이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다 하자 베드로가 옷을 벗고 있다가 겉옷을 입고 물에 뛰어 내리다. 그가 헤엄쳐 가려면 벗은 몸으로 갈 텐데 이제 주님을 바라 보고 물위로 걸어 가려는 것이다. 이전에는 주님을 보지 않고 물결을 보다가 물에 빠졌다. 이젠 물결도 보지 않고 잡힌 고기도 보지 않고 오직 주님에게 시선을 두고 앞을 향하여 가는 것이다. 주님과 함께 가기로 한 것이다. 베드로가 육지에 올라 그물을 올리고 보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153마리였다. 그들이 일일이 헤아린 것이다. 153은 무엇인가? 제롬은 그것이 당시 알려진 모든 고기의 종류라고 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고기가 그곳에 들어온 것을 보여준다. 온 세계가 그물 안에 모인 것이다. 그물은 바로 주의 교회다. 제자들을 통하여 온 세상 모두가 주의 교회에 모여들 것을 보게 된 것이다. 베드로는 실패자였다.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 하였다. 밤새도록 애를 썻으나 고기를 잡지 못하였다. 이제 주의 말씀을 따라 주의 방식으로 그리고 과거를 보던 생활에서 주님과 함께 내일을 보며 주의 주님과 동행하고 달려가니 주의 나라 교회에 온 세상이 들어오는 것을 본다. 주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자 베드로는 한 번 설교로 3천명을 주께로 인도하다. 온 세상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귀한 사역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내 스스로의 삶에 만족한가? 아니면 부족과 실패를 느끼며 좌절이 있나?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우리 가까이 오시어 우리를 보고 계신다. 고기를 잡았나? 알고도 물으신다. 솔직히 자신을 살피자. 없다고 할 수 있나? 그 때 주께서 채우신다. 내 손에 차 있으면 채울 자리가 없다. 주님의 것으로 채우기를 원하나? 내 방식 내 뜻을 내리고 주님의 뜻을 따를 수가 있나? 말씀대로 하겠다는 마음인가? 뒤를 돌아보고 과거에 집착한다. 십자가와 죽음만을 본다. 십자가와 무덤 넘어 부활의 새로운 생명을 보며 누릴 수 있을까? 앞을 볼 수 있을까? 승리의 주님과 함께 걸어가며 온 세계를 주 앞으로 인도할 꿈을 가질 수 있을까? 그물을 오른 쪽에 내릴 때 일어나는 축복을 나의 것으로 삼도록 하자.

 동영상은 www.kpcm.org

Tuesday, April 3, 2018

예수께서 왜 부활하셨나? Why was Jesus Resurrected?

고전15:14-19 예수께서 왜 부활하셨나? Why was Jesus resurrected? (4/1/18 부활주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교회력으로 예수께서 오늘 아침 부활하셨다. 금요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삼일만에 무덤을 깨치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에게 천사는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하다.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을 찾아가 내가 주를 보았다고 증언하였다. 그러나 부활은 믿기 어려운 것이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고 하였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죽음과 부활을 부인한다. 마귀는 하와에게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죽음을 부인하였다. 믿기 어려워도 주께서 부활하신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주께서 왜 부활하셨나? 왜 무덤을 깨뜨리고 살아나셨나?

1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진리요 그가 하나님이요 생명임을 밝히기 위함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가 죽임을 당하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거듭 거듭 말씀하셨다. 제자 들이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그것을 말씀하고 예언하시다. 그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시다 (요11:25). 그가 말한 것으로 끝이나고 다시 살지 못하였으면 그는 거짓말을 한 것이고 우리와 다를 것이 없는 범인에 불과하게 된다. 그가 부활함으로 그의 말씀이 진리임을 나타내었다. 그가 부활함으로 그가 생명이심을 밝히다. 하나님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모두 이루어진다. 내 말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진다고 말씀한 대로 되었다. 하나님 말씀과 그의 말씀이 같은 권위 가진다. 예수께서 부활함으로 그는 생명이라 무덤에 갇히어 있을 수 없는 것을 밝히고 그가 바로 생명의 주 하나님인 것을 또한 밝혔다. 그는 생명이신 하나님이다.

2  예수께서 부활하심은 우리 죄를 용서하고 죽음을 정복하심이다. 인간을 묶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죄와 죽음이다. 죽음은 죄의 값이다. 죄의 삯이 죽음이기에 죽지 않으려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죄의 값을 치르려면 누군가 죽어야 하기에 흠 없는 양을 잡아 피를 흘리고 죽게 하였다. 매년 양을 잡아 죽인다. 그래도 죄는 남아 있다. 양이 인간의 죄를 대신할 수가 없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 온전한 사람으로 우리 자리에 서고 온전한 하나님으로 죄가 없으시기에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음으로 죄의 값을 치른 것이다. 만일 그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다면 그는 짐승이 대신 죽은 것과 다를 것이 없고 여전히 죄의 댓가로 온 죽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어떤 이가 내가 당신의 죄를 대신 하여 죽는다고 말한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죄의 댓가인 죽음이 해결되야 한다. 주께서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셨다. 죄 없으신 주께서 죽음으로 죄가 용서되고 그의 부활로 죽음 문제가 해결되다. 죽음이 정복당하였다. 죽음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나?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나?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고전 15:55). 예수의 부활로 죄와 죽음의 사슬을 끊었다.
구약에서 죽었다가 살아난 자가 있다. 엘리야가 사렙다의 과부 아들을 살렸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렸다. 신약에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12살 된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 무덤에서 썩은 냄새가 나고 있던 나사로가 살아났다. 그러나 이들은 다 다시 죽었다. 여전히 죄와 죽음의 지배아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할 때 다시 죽지 않은 생명으로 부활하여 죽음을 영원히 정복하다. 생명은 무덤 속에 묻혀 있을 수가 없다. 겨울이 길고 혹독하여도 생명은 살아난다. 그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심판 받고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여 죽으셨으나 부활함으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하였다. 주께서 부활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여전히 죄에 노예가 되고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주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죄 용서와 영원한 생명을 확실히 하셨다.

3  주께서 부활하심은 사탄에게 승리하여 그를 정복한 것이다. 사탄은 거짓말로 사람을 속인다.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죽지 않고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다. 하나님 말씀과는 반대되는 말이다. 사람은 거짓말에 상관 없이 자기에게 좋게 들리는 말을 따라 금지된 선악과를 먹는다. 사탄의 말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담과 하와는 죽음을 당할 뿐 아니라 그 죽음을 모든 사람에게 남겼다. 사람은 사탄의 말을 듣고 사탄의 종이 되었다. 그 이후 사탄은 모든 사람을 속이고 자기 마음대로 부린다. 사탄은 거짓으로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진리를 알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알지 못하게 하여 그를 고발 하고 그를 죽음에로 몰고 간다. 사탄은 제자 가룟 유다에게 들어가 스승을 배반하게 하다. 사탄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외치다. 예수께서 로마인의 손으로 십자가에 못이 박혔다. 사탄이 승리하였다고 소리치며 그를 무덤에 장사하고 돌을 굴려 막고 로마 황제의 도장을 친 딱지를 붙여 아무도 그것을 옮기지 못하게 하다. 거짓의 아비 사탄이 진리인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인 예수님을 거짓말로 사람을 미혹 하는 자라며 없애야 한다고 하다. 사탄이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님은 무덤의 문을 열고 로마 황제의 인봉을 깨뜨리고 부활함으로 사탄이 거짓임을 밝히다. 어떤 세력이 주님을 무덤에 가두어 둘 수가 없다. 주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람을 죽이고자 속이고 죄를 짓게 하는 사탄, 그리고는 죄인이라 고발하는 원수요 동시에 죽음의 세력을 잡은 사탄을 정복하신 것이다. 사탄은 패배자가 되었다. 주 앞에 힘을 쓰지 못한다. 예수께서 부활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사탄이 인간을 괴롭히고 죄로 고발하고 죽음으로 위협하겠지만 주께서 부활하심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이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 하였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죽음, 사탄에서 자유를 가진다.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사탄을 대적하면 그는 물러간다. 귀신이 항복한다. 사탄이 번개같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이 주의 이름을 전하는 제자들을 통하여 나타난다 (눅10:17,18).

4  예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과 영생을 확실케한다. 우리가 주를 믿어도 몸으로 살기에 언젠가 죽는다. 몸은 땅에 묻히지만 우리 영혼은 주께로 가 그와 함께 있게 된다.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 무덤 속에 있던 우리 몸은 부활의 첫 열매인 주님을 따라 부활하여 일어난다. 부활하여 주 앞에 있는 영과 다시 합쳐진 새 몸을 입고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된다. 주의 나라를 상속하고 영원을 누리는 소망과 믿음을 가진다. 만일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세상에 살다가 죽음으로 끝이 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주를 믿는 우리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러나 주의 부활로 우리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주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무덤에서 잠자며 쉬고 있다가 주님 재림 소식에 부활하여 주를 만나는 놀라운 축복을 가진다.  이것이 우리 믿음이요 소망이다.

5  만일 부활이 없으면 바울의 말과 같이 우리의 믿음이 헛되고 부활을 말하면 거짓말 하는 자요 우리는 소망이 없는 자로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부활이 있기에 우리의 믿음 소망이 확실하다.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부활의 주님이 나의 참 생명이요 구주임을 믿음으로 그에게 나의 죄를 고백하고 그의 용서를 확인하며 주 안에서 매일 구원과 부활 생명을 가지고 기쁨과 감격으로 주님과 함께 힘 있게 살 것이다.
우리는 또한 기회가 있는대로 주님 부활 소식을 알려야 할 것이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그의 제자들은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에게 예수의 부활을 전하였다. 인류 최대 원수인 죽음과 사탄이 정복된 것을 알리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복음을 믿고 사탄과 죽음의 세력에서 해방되어 생명 얻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이웃에 알리고 나아가 외지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이 부활의 생명을 전하도록 후원하며 기도할 것이다.
우리 생명이 끝날 때까지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봉사할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한 형제자매로 주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함께 살 것이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섬길 것이다. 교회는 주께서 부활하여 세상에 남긴 그의 몸이다. 그 몸과 몸의 지체로 주께서 하신 일을 행하고 주께서 맡기신 그 일을 함께 수행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살 것이다. 부활 생명과 사명으로 날마다 새로워 지기를 축원한다.

 동영상은 www.kpcm.org

예수의 부활을 어떻게 아나? How do you know that Jesus is Risen?

요한복음 20:11-18 예수의 부활을 어떻게 아나? How do we know that Jesus was raised? 
(4/1/18 부활주일 새벽 미네소타 지역 연합 예배)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부활하셨기에 살아 계신다.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나나? 완전히 죽지 않고 기절 상태에 있다가 시원한 무덤에서 깨어났다고 하는 자가 있다. 법과 권력의 로마에서 장례를 위해 시체를 내어주기 전 죽음을 확인하였기에 기절하였다는 생각은 부질 없는 일이다. 제자들이 훔쳐갔다고 하는 자들이 있다. 로마 황제의 도장을 찍은 딱지로 무덤 문을 봉하고 로마 군인들을 세워 파수하도록 하였는데 누가 훔칠 생각을 할 수 있겠나? 예수께서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였다. 어떻게 그것을 아나?

1  빈무덤이 증명한다. 시체가 없어지다. 역사적 사실로 확실한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 새벽 일찍 무덤을 찾아가다. 향유를 바를 생각이었다. 무덤을 막은 돌이 옮겨지고 무덤은 비어 있었다. 누군가 예수의 시체를 옮긴 줄로 알다. 여인들에게 큰 충격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알리기 위해 달려 가다.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 가다. 베드로가 무덤에 들어가 보니 수의로 사용한 세마포가 나비가 빠져나온 고치처럼 그대로 놓여 있고 머리를 싼 수건도 옆에 있으나 시체는 없다. 요한도 들어가 확인하였다.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은 알지만 시체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부활하였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돌아가다. 두 제자도 마리아도 빈 무덤은 보았지만 예수께서 부활하였다는 것은 알지도 믿지도 못하였다.

2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의 말을 듣고 알 수가 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여 주의 부활을 알고 믿는다. 그러나 듣고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마리아는 천사들의 증언을 듣다.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고 하나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여인들이 제자들을 찾아가 천사가 한 말 곧 예수께서 살아났다고 전하니 그들은 여인들이 허탄한 말을 한다고 생각하여 믿지 않았다(눅24:11). 예수의 제자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 주님이 찾아 오시었다. 그 자리에 도마는 없었다. 10제자가 도마에게 부활한 주님을 보았다고 하였지만 그는 믿지 못한다.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나? 내 눈으로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다 (요20:25)고 하다. 이해가 간다. 들어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부활은 엄청난 사실이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부활의 증인을 거짓말로 민심을 혼란하게 한다고 하여 박해를 하고 감옥에 넣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다. 유대인이 그렇게 하고 사울이라는 청년도 그렇게 하여 스데반을 죽이기까지 하였다. 믿음이 들음에서 난다고 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은 것은 들어도 믿어지지 않는다.

3  부활한 주님을 만나면 믿을 수 있다. 내 눈으로 보면 믿겠다고 한다.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보아도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본문의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누가 예수의 시체를 가지고 갔다며 울고 있는데 주님이 앞에 서 계신 것을 보다. 여인이여 어찌하여 울고 있나? 무엇을 찾고 있나? 마라아가 그렇게 사랑하는 주님인데도 그를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시체를 옮겨갔으면 알려달라고 한다. 이야기를 주고 받아도 그를 알지 못하다.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고 있는데 주께서 그들을 만나다. 그들은 걱정 빛이 많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일을 말한다. 주께서 성경을 통하여 그가 고난을 받고 살아나야 할 것을 설명하여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부활한 예수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직접 만나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4  부활사실을 확실하게 아는 때가 있다. 빈무덤을 보아도 믿지 못하던 자가 믿을 때가 온다. 부활 소식을 들어도 믿지 못하던 자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때가 있다. 무덤 가에서 주님을 동산지기로 알던 마리아가 부활의 주님을 확실히 아는 순간이 오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며 그의 이름을 부르시는 것이다. 순간 마리아는 그가 예수님인 것을 알고 랍오니여 하며 엎드려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다. 마리아는 부활한 주님의 첫 목격자가 되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인격적인 친밀 관계다. 목자는 양의 이름을 부른다. 친근한 음성이요 인격적인 관계다. 주님과의 관계는 친밀함에서 확인되고 알 수 있다. 엠마오로 가며 주님을 만난 두 제자는 저물 때에 함께 머물기를 제안하자 주께서 받아 드리다. 식사하며 주께서 떡을 떼어 그들에게 주시자 그들의 눈이 열려 주님인 것을 알게 되다. 같이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바로 친밀한 인격 관계를 말한다. 그 때 확실히 알 수가 있다. 마리아도 두 사람도 제자들에게 돌아가 그 사실을 말하다. 예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오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들은 놀라고 무서워 하며 그들이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였다. 왜 두려워하며 의심하는가? 내 손과 발을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있다. 여기 먹을 것이 있나?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그 앞에서 잡수시다. 그 때야 확실하게 알게 되다. 너희가 내 증인이다 하시다. 인격적으로 만남이 확인에 중요하다.

5 변화된 사람들의 삶이 중요한 증거가 된다. 두려워하여 숨고 도망하던 제자들이 변화하여 부활을 전하며 박해를 받아 감옥에 가고 죽기까지 하여도 부활을 전하다. 많은 사람이 주님의 부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초대 교회가 일어나고 발전한 역사적 사실이 확실하게 주님이 부활하여 살아계심을 말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삶은 옛날로 돌아가고 교회는 생명체가 되기보다는 하나의 조직체로 변한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기도 한다. 
내가 에티오피아 선교사로 일을 할 때 만나 함께 일을 한 의사가 있다. 카나다 출신 소아 외과의사로서 무신론자가 되어 기독교에 대한 회의와 증오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삶이 위선, 교회는 위선자들의 모임이라 보다. 하나님이 계시면 저럴 수가 없는데 버려 두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니 무엇이나 마음대로 하다. 인생을 즐기자고 술과 마약 도박을 하고 여자를 섭렵하며 쾌락을 찾다. 끝이 없는 일이다.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다. 의미 없는 인생 같아 보여 의미와 보람 있는 일을 위하여 아프리카에 가서 일을 하고픈 마음이 나다. 의사 모집 광고가 나다. 콩고 병원에서 의사를 필요로 한다. 기독교 선교 병원으로 신앙 고백서와 함께 목사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그에게 생소한 것이라 웹사이트에 들어가 신앙 고백서 샘플을 찾아 고르고 추천서 쓸 목사를 아는 사람이 없기에 의과대학 병원 목사를 찾아 추천서를 받다. 콩고에서 오라는 연락이 오다. 기쁜 마음으로 갔지만 도착하자 실망을 하다. 병원이 있는 곳은 교외 지방으로 그곳에는 놀 거리가 없다. 술집도 없고 도박이나 여자를 즐길 것이 없다.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간호사 직원들은 모두 기독교인인데 자기 하나만 무신론자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거기 있는 기독교인들은 카나다의 기독교인과 다른 것이다. 신실하고 친절하며 부지런히 일을 하며 서로 위하고 사랑으로 뭉쳐 있는 것이다. 이런 기독교인들도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다. 병원에서 일을 하나 저녁은 자유로운 시간이 많다. 어떤 의사가 그에게 읽어보라며 요한 복음을 표시하여 준다. 할 일이 없으니 저녁 시간에 읽기를 시작한다. 처음부터 황당한 신화 같은 이야기들이다. 지어낸 이야기, 거짓말이라 하며 읽어내려 간다. 예수께서 고발당하고 십자가 처형을 받는다. 당연한 결과라 생각하다. 그런데 그 후에 부활하였다고 한다. 지어낸 이야기지, 제자들이 훔쳐 갔지, 생각을 하다. 지어낸 이야기라면 어떻게 그가 죽임 당한 그 곳에서 그가 살아났다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는데 반박하지 못하나? 시체를 보여 주지 못하나? 거짓말이라고 하면  많은 제자들이 예수께서 부활하였다고 말하는 일로 죽임을 당했는데 지어낸 거짓말로 인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것이 있을 수 있나? 누가 훔쳐 갔나? 로마 황제의 인봉이 있고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데 누가 감히 훔칠까? 두려움으로 도망한 제자들이 훔쳐가고 부활하였다고 거짓말을 할까? 유대인들이 훔쳐 갔나? 로마 사람들이 훔칠 리가 있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자기 뒤에 누군가가 나타나다. 부활하신 예수님이라고 바로 감지하다. 그 순간 가슴이 터지는듯 눈물이 나며 바닥에 꺼꾸러지게 되다. 자기의 지금까지의 모든 행동과 생활이 더러운 죄로 나타난다. 그의 잘못을 인정하며 울며 가슴을 찢는듯한 아픔으로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다. 그러자 그 마음이 이전과 달리 시원해지고 새로운 소망과 함께 기쁨과 믿음이 생긴다. 예수 부활은 거짓이 아니라 정말 일어난 일이다. 예수는 죽고 끝난 것이 아니라 살아서 지금도 일을 하며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믿음이 들어오니 그에게 항복할 수 밖에 없다. 무신론자가 하루 저녁에 주의 사람으로 변신이 되었다. 부활하여 살아계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의 삶은 확실하게 달라지고 주께 헌신하게 되다. 켄냐에 가서 10년 동안 아동병원을 세워 일을 하고 그 일이 안정되자 이티오피아에 와서 병원 아동부를 일으키고 많은 일을 하며 나와 함께 의과대학 학생들을 믿음으로 지도하였다.
믿음의 사도 바울이 처음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 섰다. 죄인으로 십자가에 죽은 자를 살아났다고 하고 그를 구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모독이요 부끄러운 일이라 하여 박해하였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하여도 예수의 부활은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주께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만나시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순간 주의 손에 붙들리게 되고 주의 사람이 되다. 그가 박해하던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었다. 인격적인 만남이 결정적이다.
우리 부부에게는 금년 부활주일이 특별하다. 목회는 염두에 없이 교수하려고 공부하던 나를 주께서 불러 목회 길로 넣었다. 40년전 부활주일을 앞두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간을 가지면서 성금요일 가장 어두운 영혼의 밤을 겪고 있었다. 부활주일은 다가오는데 어둠 속에서 어떻게 생명의 아침을 맞을 것인가? 3월 25일 토요일 오전 11시 교회 본당 에서 부활의 주님이 나를 만나 주시다. 사모에게는 12시간 후 부활의 주님이 오시다. 두 사람이 달라지다. 생명과 기쁨, 빛과 사랑으로 채움을 받아 가장 감명 깊은 생명의 부활 주일을 맞고 우리 삶의 방향이 새로워져 오늘에 이르다.
예수의 부활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역사적인 사실인 빈무덤을 보고 믿을 수 있다. 보아도 알지 못하던 베드로는 주님을 만나자 그의 부활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의 말을 듣고도 믿지 못하던 도마는 주님을 실제로 만나자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다. 주께서 살아 계시기에 어느 개인을 만나 주심으로 더욱 알고 믿을 수 있다. 더욱 이름 부르거나 함께 식사하는 등 친밀한 인격 관계는 가장 확실하게 부활한 주님을 알고 믿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오늘 부활주일 새벽에 모인 여러분은 예수께서 부활하여 살아계심을 확실하게 알고 믿나? 빈무덤에 가보지도 않았다. 첫 부활증인을 만나지도 못하였다. 부활하였다고 하는 성경의 말씀이 사실인 것을 받아드린다. 주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욱 복되다고 하신다. 그래도 확신이 오지 않으면 살아계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바란다. 주님은 사모하는 자를 만나 주신다. 그는 사랑하는 자에게 자기를 나타내신다. 확실하게 주의 부활을 믿고 그의 부활 생명을 누리는 복을 누리기 바란다. 또 나만 아니라 그 부활 복음을 전하여 다른 사람도 부활 생명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 그 생명이 퍼져가는 일에 함께 하여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는 축복을 누리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