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11, 2019

S O S! 구해 주세요!


            S O S! (구해 주세요!)

배가 바다에 항해하다가 조난을 당하면 보내는 신호가 SOS!(Save Our Ship!)이다. 바다 같은 미시간 호수에서 많은 조난이 일어나 SOS를 보냈지만 그래도 수 많은 배와 화물, 인명 손실이 있었다. 인생 바다에 일엽편주 인생이 감당못할 풍랑을 만나며 SOS! (Save our Soul!) 살려 주세요! 외친다. 온 세계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누군가 구조하는 자가 있다. 한국이 일본 식민지, 북한의 남침에서 나라가 실종될 위기에 처한 때 미국과 유엔이 구조하는 일을 하였다. 인천 상륙의 맥아더를 환영하며 기뻐하였고 미국의 계속적 도움을 감사한다. 미국인은 지금도 세계의 재난이 있는 곳에 제일 먼저 뛰어간다.
미국이라는 바다가 순탄해서가 아니다. 여기도 풍랑이 쉬지 않기에 SOS 부르짖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가난과 빚, 암 고혈압 당뇨 치매 등 질병과 치료비, 폭력과 살상, 고독과 절망, 중독과 우울, 자연재해와 사고 등이 덮여 있다. 잠간이나 벗어나고 싶어 약물을 과용함으로 일년에 죽는 자가 7만명, 한국 전쟁 3년에 죽은 미군 병사의 배가 되는 숫자다. 폭풍과 어둠 속의 삶을 무엇으로 어떻게 돕나? 돈, 의약과 기술, 국가 정책, 교회, 자선 단체가 큰 일을 한다. 그러나 죽음, 영원한 죽음 앞에는 속수무책이다. SOS! 내 생명을 구해 주세요!

조난 당한 인간을 구하려고 찾아온 분이 예수시다. 그가 가는 곳에는 구원과 자유, 치유와 생명이 있다. 가난과 질병에 눌린 자가 치유되고, 제도와 권력에 억압되고 소외된 자가 환영되고 나병 중풍 전신장애자, 눈 귀 혀가 막힌 자가 새로운 삶을 찾고 귀신에 잡힌 자가 자유를 얻었다. 심지어 죽은지 4일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던 자도 살아난다. 이때까지 보지 못하던 일, 없던 일이 일어난다. 인생 모든 문제를 풀고 세상을 구원할 자로 인정 된다. 이제 그가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에 들어간다.  군인의 말이 아니라 짐을 싣는 나귀를 탔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는 모습이다. 예배하는 성전이 있는 그 곳에도 꼭 같은 인생 문제가 있다. 종교 제도와 전통, 의식이 사람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사람들이 환영하며 SOS! 외친다. 호산나 호산나, 우리를 구하소서 하는 말이다. 그는 그들의 형편이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고 그가 하던 일을 하신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 그는 해방과 자유, 치유와 회복, 기쁨과 평안, 생명과 영생을 주신다. 그는 오늘 미국에 오신다. 시카고에 오신다. 우리 교회와 가정에 오신다. 우리가 SOS! 우리를 구해 주세요! 그를 환영하며 외칠 수 있을까?

Monday, April 8, 2019

천사의 얼굴 The Face of an Angel


사도행전 6:8-15 천사의 얼굴과 같이 Like the Face of an Angel (4/7/19 주일)
사람을 만날 때 무엇을 제일 먼저 보나? 손, 가슴, 옷, 얼굴? 얼굴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나? 미국 사람은 우리 한국 사람을 보면 왜 그리 심각하고 화난 표정인가 하고 묻는다. 보통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얼굴이란 어원이 확실하지 않으나 순수한 우리 말로 얼과 굴, 골이 합쳐진 것으로 얼이 나타난 모양, 얼이 드나드는 굴이라는 것이다. 얼은 얼빠졌다고 할 때 정신, 속 사람을 말한다. 우린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오늘 본문 15절에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다고 한다. 어떤 형편에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나?

1 본문의 배경: 6장 처음에 초대교회에 구제하는 일을 잘 하고자 7집사를 선택하여 이 일을 하게 할 때 스데반의 이름이 먼저 나온다. 그들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 앞장서고 사도들은 말씀 전하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니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여 예루살렘 많은 사람이 주를 믿게 되고 허다한 제사장도 복음을 받았다. 이 때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였다. 스데반은 구제를 위하여 선택되어 그 일을 하였다. 음식과 물건, 돈을 필요한대로 나누는 구제에 기본적인 것은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은혜다. 사람이 그 사랑을 느끼니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 기적이 나타난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반응이 있다. 리버디노 회당에 속한 구레네 알렉산드리아 길리기아 아시아에서 온 사람, 모두 헬라파 유대인이 스데반과 논쟁을 한다. 길리기아 다소에서 온 사울도 여기 있다. 리버디노는 자유를 얻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들이 당시 노예에서 해방된 것이거나 빚에서 자유가 되었거나 아니면 디아스포라로 살던 곳에서 자유를 얻어 고국에 돌아온 것을 말하는지 이들은 자유로운 자라 한다. 이들이 볼 때 스데반의 사역이 헬라의 지혜나 히브리의 종교 전통에 맞지 않기에 논쟁을 하게 된다. 그동안 성전에서 주로 논쟁이 되었는데 이제 회당이 논쟁 장소가 되다. 스데반은 지혜만 아니라 성령으로 말하니 그들이 당해내지 못하자 그를 공회에 회부하고 장로와 서기관은 그를 체포하여 공회 앞에 세웠다. 그리고 거짓 증인을 매수하여 스데반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나사렛 예수가 성전을 헐고 모세의 율법을 바꾼다고 고발을 한다. 이런 일은 주 예수에게 일어나고 베드로에게도 일어났다. 위협을 당하다가 감옥에 들어가고 하나님 모독으로 죽임을 당하게 될 급박한 형편에 처하였다. 이런 형편에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 다른 얼굴이 있다. 거짓 증인들의 얼굴이 있다. 돈을 받든지 아니면 호의를 받고는 시키는대로 거짓말을 한다. 이들은 자기 주견이 없다. 별로 감각 없이 바람이 부는대로 따라간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호산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던 자들이 며칠 후에는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하는 자들이다. 스데반을 고발하는 지도자 엘리트들의 얼굴이 있다. 자유인 고발자들과 그를 체포한 공회원들은 그들의 지혜와 전통을 지키고 그들이 가진 가치관이 최고라 생각하여 그것을 강요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얼굴은 오만, 증오에 살기(9:1)까지 있다. 그런 얼굴로 스데반을 주목하여 본다. 주목함은 눈과 눈의 기싸움이 된다. 뚫어지게 보면 한 쪽이 수그러들게 된다. 말로 되지 않아 눈으로 싸움을 하는데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다. 밝고 빛나지만 또 누가 어떻게 하지 못할 큰 위엄이 있다. 놀라운 일이다.

2  어떻게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나?
1) 그의 신앙 인격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다. 그는 지혜와 성령이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이다. 그는 집사로 구제하며 은혜와 권능이 충만함을 나타내다. 스데반 이야기가 오직 행6,7 두 장에 기록되어 있지만 그의 결점이나 부족한 점이 없다. 그는 주님을 마음 깊이 모시고 살며 사역하기에 그의 얼굴에는 자기 속에 있는 주님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얼굴의 얼은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을 히브리어는 엘, 회교도는 알이라 하는데 우리 말은 얼이 되었다 한다. 속에 있는 하나님이 겉으로 나타난다. 목사가 얼마나 말과 설교를 잘하나? 얼마나 일을 잘하고 행정 능력이 있나도 중요하지만 신앙 인격은 더 중요한 것이다. 스데반은 자기 안에 모시고 있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그대로 나타난다. 그가 구제할 때 자기를 내 세우거나 교만하지 않고 오직 은혜로 행하여 그들을  사랑하고 품어주는 주님의 마음을 보였다. 7장 마지막에 그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원한 복수심이 없이 무릎을 꿇고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7:60). 주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과 같은 것이다. 이 신앙 인격은 순간에 되어진 것이 아니다. 주님과의 인격관계에서 매일 삶을 통하여 형성되고 나타난다. 향나무는 그를 찍는 도끼에 향을 선사하듯 그의 인격대로 나타난다.
2) 그가 발견한 진리가 너무 크고 귀하기에 기쁨이 얼굴에 나타난다. 어떤 문제가 풀릴 때 새로운 것을 발견한 때 우리가 가지는 기쁨이 크다. Eureka! 발견했다. 주전 3세기 희랍 수학자 알키메데스, 그가 목욕탕에 들어가자 물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물에 잠기는 자기 몸의 부피와 같은 양의 위로 물이 올라오는 것을 알고는 유리카 나는 찾았다고 외치며 벗은 몸으로 길거리를 뛰어 다녔다. 새로운 진리 발견의 기쁨이다.  스데반이 유대인으로 성경을 알고 있었지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고 3일만에 부활한 사실을 새롭게 알고 그 이름 외에는 구원 얻을 이름이 없다는 것을 발견할 때 그는 아르키메데스 이상으로 기쁨을 가슴에 가지니 얼굴이 밝고 빛나게 되었다. 성경을 읽고 내게 해당하는 진리를 발견할 때 가지는 기쁨이 얼마나 큰가! 어떤 사람이 사경을 해매며 남쪽 바닷가 병원에 외롭게 혼자 가서 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버렸나 하는 심정을 가지다. 시139에서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시나이다. 내가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 계시고.. 내가 새벽 날개를 치고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이 말씀을 받을 때 속에 기쁨과 감격이 일어나고 살 힘이 생겨 고침을 받았다.
3) 사람은 인정을 받고 힘 있는 자와 함께 있으면 얼굴이 밝아진다. 가족이나 동료의 인정을 받으면 얼굴이 자랑스런 모습이 된다. 더욱 왕 앞에서 왕의 인정을 받는다면 얼마나 감격 기쁨이 있겠나!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서니 하나님이 친구처럼 그를 만나 말씀하고 율법을 주시며 백성에게 가르치라 한다. 큰 특권과 사명을 받고 그가 산에서 내려올 때 그 얼굴에 광채가 났다. 사람들이 그를 바라 볼 수가 없어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었다. 하나님을 뵙고 그의 인정을 받은 결과다. 동방정교는 성인의 얼굴 둘레에 후광이 빛나게 한다. 하나님과 함께 하고 그의 인정을 받는다는 말이다. 스데반이 사람들의 고발을 받고 정죄를 당할 때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보며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본다(7:55)고 외친다. 예수께서 보통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다고 하는데 여기는 서 계신다. 그를 격려하며 응원하는 모습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힘을 내어라. 그러니 그의 얼굴이 빛나게 된다. 어떤 아이가 아빠와 같이 저녁 산책을 나간다. 갑자기 사나운 개가 앞에 나타나 입을 벌리고 가까이 다가온다. 너무 놀란다. 바로 아빠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붙잡으니 자신감이 생기고 얼굴이 밝아지며 개를 향하여 발질하며 저리 가라 하는 것과 같다.
4) 큰 꿈과 소망, 영광이 보이면 얼굴이 빛난다. 이민은 팔자를 바꾸는 것이다. 하지 않던 힘든 일을 한다. 밤낮 열심히 일하고 고생 한다. 그래도 속에 기쁨을 가진다. 얼마 후에는 자녀 교육, 주택 구입 등 어떤 목표를 달성할 것을 바라본다. 고생이 고생으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기쁨이다. 롬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환난 가운데 영광을 보기에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한다 (약1:2). 바울은 주를 만나고 난 뒤에 많은 고난을 겪었다. 관제와 같이 부어 쏟아진 형편이 되었으나 그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준비된 것을 알고 있기에 감사하고 기뻐하였다.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 가 기도할 때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서는 감격으로 그럴 수 있지만 눅9:31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에서 종교지도자들이 그를 받아드리지 않고 고발하고 정죄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는 고통을 내다보는데 주의 용모가 빛나게 변화되었다. 그는 죽지만 그로 인하여 사람의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될 뿐 아니라 그가 죽은지 3일만에 부활하여 다시 죽지 않은 생명이 될 것을 내다 보면 얼마나 감격인가! 2세기 로마의 기독교 박해가 심하였다. 로마는 신상이 많은데 기독교는 아무런 신상이 없는 무신자라 로마의 신들이 화를 내린다며 박해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황제를 경배하라 하나 듣지 않은 자들을 원형 경기장에서 짐승에게 찢겨 죽게 하고 화형으로 태워죽였다. 요한의 제자이던 폴리갑이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 된 때 많은 순교자가 나왔다. 폴리갑이 고문을 당한다. 그 나이에 어찌 불에 타 죽으려 하나? 예수를 모른다고 하고 편히 말년을 살라고 하자 내 86년동안 한 번도 나를 모른다고 하지 않은 예수님을 지금 내가 모른다고 하랴! 불에 태우는 화형을 하겠다고 하자 잠시 후에는 타 없어질 불을 두려워하며 영원히 타는 심판의 불은 두려워하지 않나, 나를 어서 주님 앞에 가게 하라고 담대하게 말하고 화형을 당하였다.
스데반은 그 뜻이 승리자의 면류관이다. 지금 박해를 당하고 잠시 후 최초의 순교자가 될 것이지만 예수께서 그를 받아주시고 승리자의 면류관을 씌어 주실 것을 생각하면 얼른 주 앞에 가고 싶은 마음이라 그 얼굴이 천사 얼굴 같이 된 것이다. 10년 전 본 교회를 시작할 때 참여한 사람들은 얼굴에 기쁨 감격이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신앙 생활을 잘 할 것이며 전하는 교회로서 사명을 다하여 지역 사회만 아니라 온 세계로 주의 사랑을 전한다는 꿈을 가지기에 웃고 격려하며 기뻐했을 것이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급진적인 이슬람 단체가 이라크의 기독교 도시 쿠라 고쉬를 점령하자 기독교 선교사와 기독교인 229명이 사형선고를 받아 죽게 되었으니 기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슬람만 아니다. 미국 사회가 기독교에 기반을 두었지만 기독교인이 소외와 불이익을 당한다. 대학 교수의 증언은 교수나 학생들 사이에서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그 때부터 소외를 당한다 한다. 교회 안에서도 믿음을 바르게 지키는 것으로 외면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사소한 의견 차이로 논쟁이 되고 심한 대립이 되어 공격하고 공격 받을 때가 있다. 때로는 편을 가르고 어느 편에 가담하기를 요청 받을 때도 있다. 어떤 얼굴 모습이 되나? 회당의 자유인, 공회원처럼 자기만 옳다는 오만하고 살기에 찬 얼굴을 할가? 아니면 형편대로 따라가는 거짓 증인의 무감각한 표정을 지을가? 아니면 스데반처럼 우리 속에 살아계신 주님을 모시고 성령에 이끌리어 신앙 인격을 형성하여 내 속에 있는 주께서 내 얼굴에 나타나게 할 것인가? 내 얼굴에 내 생각이 아니라 주의 영이 외부에 나타날 수 있을까? 예수께서 나의 구주요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진리를 발견한 기쁨을 계속할 수 있을까? 주께서 역사를 주관하며 매일 나의 손을 붙잡고 나를 인도하시는 것을 알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 수 있을까? 주를 믿는 것으로 오늘은 고난을 겪는다 해도 내 앞에 오는 영광스런 날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 10년을 맞은 우리 교회 모든 성도가 주님을 닮은 신앙 인격 가지고 주님이 가장 귀한 보배임을 알고 주와 함께 매일을 사는 즐거움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며 오늘의 어려움에도 주께서 주시는 승리를 보며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며 하나가 되어 천사의 얼굴이 나타나면 교회로서의 빛나는 사명을 감당할 것이라 확신한다.

Thursday, April 4, 2019

배 탈 Stomach Annoyances


배 탈 Stomach annoyances (4/4/19)
무엇을 먹든지 배탈이 나지 않고 소화를 잘 시킨다는 것은 큰 복이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음식을 먹으면 배에 통증이 오고 설사를 하며 토하는 일이 오랜 세월 너무 자주 있었다. 전문의를 여러 번 만나 조사를 해도 위장이나 몸에는 아무런 이상을 찾지 못하여 내린 결론은 신경성 약을 주며 등산을 자주하라는 것이다. 그래도 도움이 되지 않다가 1974년 유학으로 미국에 오자 배탈이 그치고 문제가 풀렸다. 말과 문화가 달라 적응하며 공부가 벅차고 또 가족 초청과 부양을 위해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에 신경 쓸 일이 많은데도 배탈이 나지 않고 40여년을 지났다. 몇 년 전 교회 집회 강사와 같이 식당에 가서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켰더니 너무 맵고 짰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는데 배가 아프더니 설사와 구토가 났다. 약방에 갔더니 약을 고르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종류가 많아 배탈 나는 사람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약이 듣지 않아 의사를 보고 약을 받았으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 달 동안 토사를 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체중 미달이라 할 정도인데 10파운드 이상이 빠지다가 겨우 회복이 되었다.
사람은 음식을 먹고 소화를 잘 시키므로 힘이 생겨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배탈로 음식을 먹어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통증과 함께 토하거나 설사를 하면 본인만 아니라 주변을 어지럽히고 여러 사람에게 어려움을 끼친다. 오래 가면 힘이 빠지게 되어 맡은 일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때 엄마나 아내가 옆에서 아무런 짜증이나 불평 없이 그대로 받아주고 치워주고 돌보아 주어 회복이 되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또 다른 배탈의 속병과 속쓰림이 있다. 대인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매일의 환경과 접촉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며 속으로 받아드린다. 어떤 일이 있든지 누가 무슨 말, 행동을 하든지 그대로 보고 들으며 잘 소화시키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러지 못하여 속이 상하고 아파할 때가 있다. 즉시 내 뱉든지 아니면 쌓이고 병이 되어 견디지 못함으로 토사하듯 말과 표현, 행동으로 속의 것을 토해내게 된다. 원망과 불평, 분노와 원한이 쏟아진다. 상대방을 상하게 하고 추한 모습으로 관계가 깨어지고 그 때 후회하여도 이미 늦어진 것을 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속병을 해소할 수 있을까? 큰 그림을 보면 도움이 된다.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받아 도망할 때 다윗을 원수로 여기다가 죽은 사울 왕의 종족 시므이가 따라오며 피 흘린자여! 네가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며 욕하고 저주한다. 한 신하가 그를 죽여 버리겠다고 하자 다윗은 말한다. 내 몸의 자식도 나를 해하려 하는데 저가 나를 욕하는 것은 하나님이 시킨 것이니 버려두어라. 이 저주 때문에 하나님이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한다. 하나님의 틀 안에서 감당하게 되고 시므이가 토해내는 독설을 그대로 받으며 이겨낸다. 우리는 상처난 심령으로 사람과 여러 일에 대하여 시므이처럼 많은 불평을 쏟아내곤 한다. 여기에 다윗의 신하처럼 응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용납할 뿐 아니라 우리가 토해낸 모든 더러운 것을 닦아주고 씻어 주시며 우리의 아픈 심령을 만지고 싸매어 주신다. 내가 씻어주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며 제자의 더러운 발을 손수 씻어 주신다. 다윗은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그는 우리 피난처시다 한다 (시62:8). 그에게 우리 피곤한 발을 내밀고 그에게 우리 상한 심령을 토하여 낼 수 있다면 복이다. 주님 고난을 기억하는 계절에 나를 받아주시는 주의 사랑에 감사하며 나아가 내가 이런 주님의 마음을 품고 이웃이 배탈로 쏟아내는 모든 것을 받아주고 닦아줄 수 있다면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복이 되겠나!!

Monday, April 1, 2019

내 탓입니다 It is my Fault


사도행전 6:1-7 내 탓입니다 It is my fault (3/31/19 주일)
처음 미국으로 이민 왔을 때 무엇이 많이 다른 것을 발견했나? 말과 행동, 관습이 다른 것으로 혼란을 겪지는 않았나? 무엇이 힘들었나? 오기는 왔으나 이웃 사람들이 받아주지 않은 것이 고통이다. 나는 뉴욕에서 목회할 때 주택가의 미국교회를 빌려 모이면서 어른 아이들이 많아지고 복잡하니 동리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며 짜증을 내다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는 말을 듣기도 하다. 문화가 다른데서 오는 고난이다. 일세 이세 사이에도 말이 잘 통하지 않는데다 자녀가 부모 말을 듣지 않고 부모를 무시하는 경우에 너는 내 자식 아니라며 야단을 치는 경우도 있다. 피차 받아주지 못하고 마음이 상한다. 얼마나 힘든 일인가? 다른 문화, 가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어울려 살 수 있나? 어떻게 적응하며 화합하며 살 수 있나?
오늘 성경에 이 때에 제자들이 더욱 많아졌다. 많은 다른 사람이 모인다.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한 때 12명 제자들이 성령 강림을 기다리며 기도할 때 120명, 성령이 충만한 베드로가 설교하자 주를 믿고 세례 받은 자가15나라에서 온 다양한 배경을 유대인 3천명으로 늘어나며  큰 기적이 일어난다. 나면서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고 주를 찬양한다. 많은 질병이 나음을 받는다. 교인들은 자기가 가진 것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함께 나눈다. 더욱 사람들이 많아져 5천명이 된다.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잡아 감옥에 넣고 다시는 예수 이름을 전하지 말라고 위협하는데도 그들은 사람말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하며 고난 당하는 것을 오히려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그들은 집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쉬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봉헌하여 함께 나누며 구제하고 봉사하기에 핍절한 사람이 없게 되었다.
1  교회 내의 문제: 이렇게 활발하게 뻗어가는 교회에 문제가 들어온다. 5장에서 아나니아 삽비라가 밭을 팔아 바친다고 하면서 일부를 숨기고 위선과 거짓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생명체에 닥친 비극이다. 6장에는 교회 안에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였다. 교회 안에 헬라파와 히브리파의 갈등이 있다. 헬라파는 유대인이지만 본국을 떠나 외국에 가서 살던 사람들로 이들은 헬라말을 사용하고 자기 본국 말은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히브리파는 국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헬라말 사용을 잘 하지 못한다. 이들은 말만 아니라 문화가 서로 다르다. 고전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 헬라는 희랍으로 철학이 발달하다. 철학이라는 말 자체가 지혜 사랑이다. 이들은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확실하고 분명한 것을 찾는다. 그들은 날마다 새로운 것을 말하며 배우기를 좋아한다. 개인을 존중하고 사람을 영과 육으로 구분한다. 반면 히브리파는 유대인들로 인간 지혜보다 하나님의 계시와 표적을 소중하게 여기며 인간 생명은 시작부터 육과 영을 나눌 수 없는 복합체요 할례는 하나님 언약 백성의 표시다. 헬라인은 다른 민족을 야만이라 하고 히브리인은 다른 민족을 이방인이라 하며 받지 않는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기에 사회에서 같이 살면서 많은 갈등이 있는데 그것이 교회로 들어오다. 교회의 구제 대상에서 과부는 중요하다. 하나님은 과부와 나그네를 사랑하기에 그들을 돌보라고 하신다. 추수할 때 다 거두지 말고 이들을 위하여 조금 남겨두라고 하다. 모압 여인 룻이 시모를 따라 베들레헴에 와서 이삭을 주우러 밭에 나간 때 주인 보아스가 일하는 사람들에게 룻을 위하여 이삭을 남겨주라고 하였다. 정부나 다른 자선 단체가 없기에 하나님은 주의 백성에게 그들을 돌보라고 하신다. 초대교회에도 과부가 많아 그들을 구제한다. 그런데 헬라파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원망이 나오다. 히브리파 사람들이 헬라파 과부들을 일부러 구제에서 누락시켰는지는 모르나 아뭏든 그들이 구제에 빠진 것으로 원망이 들어왔다. 이 원망은 히브리파를 향한 것이지만 결국 사도들을 향한 것이다. 사도를 향해 그런 원망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일 뿐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몹시도 상한 것이라 본다. 이 때의 사도들은 권위와 능력이 누가 흉내내거나 항거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하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예수 이름으로 일으키는 능력을 발휘하고 그 외의 많은 병자를 치유하되 베드로의 그림자만 지나가도 병이 고침 받는다고 할 정도다. 또 베드로의 말 한마디에 아나니아 삽비라가 죽어 나가자 모든 사람들께 두려움이 닥쳤다. 유대 최고기관인 공회도 이들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석방시킬 정도로 이들은 당당하고 권위가 있었다. 그런데 이들을 향한 원망이 일어났다. 사리가 분명한 헬라파로서는 사도들의 권위를 인정하지만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으로 보고 말하는 것이다. 공정하지 못한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식탁을 나누고 구제를 하는데 소외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도 만일 소외를 당하면 그런 반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  사도들의 반응과 해결책: 이런 불평과 원망이 일어날 때 사도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누가 감히 우리를 원망하나 하며 원망하는 자들을 축출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일은 의례 있는 것이니 못들은 척하고 지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원망이 처음 시작하는 교회에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알았다. 교회가 안에서 헬라파 히브리파로 분리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잘못하면 교회가 분쟁 속에서 분리되고 교회의 생존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 교회 내에는 외국에서 돌아온 헬라파 유대인이 매우 많기에 이들이 모두 떠날 수도 있다. 또 중요한 것은 교회의 사명이다. 주께서 주신 마지막 사명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것인데 예루살렘 교회 안의 두 파가 하나 되지 못하고 분리된다면 어떻게 인종 언어를 넘어서서 온 세계로 복음을 증거하며 하나의 교회로 뻗아나갈 수 있겠나? 시간을 끌 문제가 아니다. 헬라파든 히브리파든 과부들이 당장에 살도록 도와야 하지만 교회의 생명과 사명을 위하여 당장 그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을 알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그들에게 말한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자들 앞에서 말한다. 그들을 피하지 않고 그들 앞에 서서 말한다. 이 문제가 일어난 것은 우리 탓이다. 우리가 잘못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고 밥상 차리며 봉사하는 일을 한 것이 잘못한 것이다. 사도들이 하는 일은 말씀과 기도 사역인데 구제와 봉사 사역한 것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을 인정하였다. 자기들의 권위 위신을 접었다. 구제에 빠진 사람들과 불평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자기 위치와 위신을 그대로 지키고자 하면 잘못하였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자신을 벗고 내리고 잘못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대책을 제안한다. 우리가 잘못하였으니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하리라. 사도들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스스로 사람을 선택하여 임명하지 않고 그들에게 선택하라 하다. 사람 선택의 헬라 방식을 존중하는 것이다. 원망하는 자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대표자 선택을 위임하며 그들의 자격을 말한다. 구제 봉사하며 사람들을 섬기는 일이기에 칭찬 듣는 사람, 곧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성령이 충만하여 자기 뜻을 따름이 아니라 주의 뜻을 따라 주께서 하시던 일을 주의 사랑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혜가 충만하여 분별력과 판단력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 온 무리가 그 말을 기뻐하고 만족하였다. 선출 방식은 말하지 않지만 이들이 사도들이 말한 자격에 합한 자로 스데반 빌립 등 일곱명을 선택하였다. 놀라운 일은 일곱명의 이름이 모두 헬라파 사람이다. 마지막 사람 니골라는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이방인으로 유대교를 믿다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히브리파는 한 사람도 없다.
사도들은 그들이 뽑은 일곱 사람에 대하여 아무 이의가 없다. 사도들이 제시한 자격 기준에 맞는다고 보았기에 그들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드린다. 그들은 사도의 권위를 인정하고 이 일곱을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이들은 봉사하고 구제 사역을 할 사람들로 처음 집사 안수를 받은 것이다. 사도들이 주님을 대신하여 안수하였다. 안수하는 것은 구약에서 내려오던 전통이다. 하나님이 내 사람이라 인정하고 세움이다. 이스라엘은 할례로 하나님 백성이라 하지만 안수로 특별한 사역을 위하여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안수는 사도의 손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주시는 것이다. 사도들이 행하는 영적 능력을 이들에게도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젠 주의 사람으로 내어 보내며 주의 일을 하도록 위임하는 것이다. 사도와 헬라파의 합동 으로 구제와 봉사의 일을 위하여 일곱 사람이 세움을 받았다. 헬라파만 아니라 온 교회가 사도들의 권위와 서로의 권위를 인정하고 받아 드린다.

3  결과: 온 교회가 기뻐하며 하나가 되었다. 주께서 마지막 기도에서 주의 백성이 하나 되게 기도하였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으로 믿게 하옵소서(요17:21)
교회 내의 갈등과 원망이 내 탓이라고 하는 사도들의 말을 받아 그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을 시행하니 문제가 풀어지고 평화로 하나가 되었다.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고 일곱 집사는 구제와 봉사의 일을 하도록 교회 조직과 사역을 분담하게 되니 더욱 체계적으로 일이 된다.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게 되니 하나님 말씀이 왕성하게 뻗어 예루살렘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다. 제사장이 전에는 사도들의 복음 증거에 반대하고 고발하였으나 이제 말씀을 받아드린다. 사실 사람이 믿고 구원받는 것은 구제를 통하여서가 아니라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다. 홈레스들이 10년동안 밥과 옷, 잠자리를 받았으나 속사람의 변화가 없었는데 말씀과 기도, 찬양과 예배를 통하여 삶이 새로워지고 직장 훈련을 받아 직장을 얻고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을 보았다. 말씀의 능력이다.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에 성령이 역사하니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나아가 예루살렘에서 하나가 된 교회는 밖으로 뻗어간다. 집사 스데반이 말씀을 증거하게 된다. 아프리카의 구레네 알렉산드리아 아시아의 길리기아와 다른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외국에 살아 본 헬라파 사람이 헬라 문화에 속한 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이 용이한 일이다. 빌립은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또 에티오피아 여왕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여 세례를 베푼다. 히브리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헬라 세계로 뻗어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길이 열린다. 교회 안에서 소외와 불공평한 처사에 대한 원망이 일어날 때 사도들이 내 탓이라 고백하며 불편한 그 사실을 받아드리고 해결책을 내어 시행할 때 일어난 일이다.

뉴욕에서 내게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던 동리 사람들이 미국 교회 목사에게 회의를 요청하고 수 십명이 교회에 모여 나를 불렀다. 나는 그들에게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내게 말을 하라고 한다. 기대하지 않던 일이었기에 머리 숙여 주님께 기도하고 그들에게 먼저 불편을 드려 미안하다고 하며 잘못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내 말을 들어보라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교육 받은 자들로 미국 정부로부터 영주허락을 받고 와서 열심히 일하고 세금내며 좋은 시민으로 살고 있지만 이민 일세가 함께 모여 언어 문화의 차이점을 극복하는 힘을 기른다고 하다. 그 동리 사람들이 오래전 유럽에서 온 사람들인 것을 내가 알기에 묻다. 여러분은 언제 미국으로 왔나? 여러분의 이민1세 조상도 우리와 같은 길을 걷지 않았나? 정부에서 우리에게 이곳에 와서 살도록 허락하였으니 우리 같이 협력하며 함께 살자고 호소하였다. 듣던 사람들이 하나 하나 자리를 떠나고 몇 사람만 남았다. 그들과 악수하고 좋은 관계가 되고 친구처럼 되었다.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히브리사람은 하나님이 선택한 그의 백성이기에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그들을 애굽의 종생활에서 해방시켜 약속의 땅으로 안내하다. 그들이 너무나 하나님을 거역하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모세를 통해 새로운 민족을 세우겠다고 하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중재한다. 내탓입니다. 내가 잘못 인도하여 이들이 이렇게 되었으니 차라리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더라도 이들을 용서하소서. 하나님이 감동되었다. 사순절을 지나며 우리는 주님의 고난을 묵상한다. 나의 죄와 허물을 위하여 주께서 대신 죽으신 것을 알지만 지금도 나는 계속하여 잘못을 저지른다. 그 때마다 주님은 아버지 앞에서 나를 위하여 중보하신다. 내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보시고 저를 용서하소서. 이런 기도가 있기에 오늘 내가 살고 있음을 감사한다.
어느 교회나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에도 많은 문제와 갈등, 불평과 원망, 소외와 분파가 있을 수 있다. 마음 아파하는 자가 있다. 이들의 신음과 고통이 있을 때 그들을 품으며 이것이 내 탓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지도자에서 시작할 것이다. 목사는 목사 대로 집사는 집사 대로 각자가 나름대로 내 탓이라, 내 잘못이라고 할 때 일이 풀리고 평화 가운데 기쁨으로 하나가 되고 새로운 생명과 능력으로 교회에 주어진 사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