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29, 2021

친구 참 친구 Friend Real Friend

 친구 참 친구 Friend Real Friend

소꿉 친구는 어릴 때 같이 놀고 자라며 좋고 험한 모든 것을 함께 나누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영향을 미치며 형제보다 더 가까운 관계다. 도시화 아파트 문화로 바뀌며 소꿉 친구라는 말이 생소하게 되고 더욱 이민으로 친근하던 것을 뒤로하고 생소한 곳으로 오면서 친구도 달라지게 되었다. 열심히 일하며 정착에 분주한 꿈과 혼란의 삶을 살며 교회와 직장 사업 학교 행사 모임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알아가며 친구를 만들다가 은퇴에 이른다. 대학에서 50년을 가르치는 어느 교수는 친구가 없다고 한탄하는데 평생을 목회에 전념하고 은퇴한 목사도 같은 외로움을 가진다. 친구가 필요하기에 페이스북, 카카오 톡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하여 서로 연결하고 친구를 만들고 정보를 교환하지만 그들이 진정한 친구인가? 

친구로 생각하던 자들이 언제부터인가 연락이 없고 연락을 해도 응답이 없을 뿐 아니라 등을 지고 험담하는 경우에는 버림 받고 배반 당한 기분으로 마음이 상하고 고통을 겪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나? 친구라도 대개는 그 관계를 통하여 어떤 유익을 얻고자 하는 자기 중심이다가 그것에 맞지 않다거나 다른 의견이나 정직한 충고를 용납하지 못하고 갈라 서는 현실이다. 내가 친구라 생각하는 그 사람이 나를 또한 친구라 생각하는가 하는 연구에 의하면 절반 정도가 그렇다고 한다. 서로의 친밀감이 다르게 나타난다.

참 친구는 어떠한가? 떠나 있으면 생각이 나고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힘을 얻고 삶에 생기가 생긴다. 무거운 짐을 함께 짊어지고 실수가 용납되고 약점 수치도 부담 없이 들어내고 필요한 때는 항상 거기 있다. 이런 친구가 있는가?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는 누군가 자기를 찾아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소외된 사람들을 찾고 택하여 친구가 되어 제자로 훈련한다. 그는 멸시 받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 가난하고 병든 자, 귀신들린 자의 짐을 풀어 주신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산다.

친구는 말을 듣고 행한다. 로마 백부장이 예수를 찾아와 자기 하인이 병든 것을 고쳐 달라고 하자 즉시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하신다. 맹인이 멀리서 나사렛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자 그를 불러오게 하고 무엇을 원하는가 물으니 보기를 원한다고 하자 바로 보게 하여 주신다. 주께서 우리 기도와 요구에 친구로서 응하신다. 우리는 주의 말씀과 요구를 듣고 따르는가?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의 친구가 된다. 

친구는 어려움과 배반에도 친구다. 제자 가룟 유다가 예수를 배반하여 폭도를 이끌고 그를 잡으러 온 때에 주님은 그를 친구라 부르며 할 일을 하라고 하신다. 주님이 우리의 친구이면 그는 언제나 친구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큰 사랑이 없다고 하시면서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 의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가끔 있지만 주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살리고자 대신하여 죽으시고 생명의 길을 주셨다.  

친구는 항상 같이 한다. 주께서 우리 위한 거처를 준비하시고 우리로 영원토록 그와 함께 살게 하신다. 예수께서 우리를 친구 삼고자 찾아오셨으니 우리가 그를 믿고 친구 삼으면 영원토록 그와 함께 사는 것이 참 친구로서 우리의 즐거운 바람이 아니겠나!












Tuesday, November 23, 2021

낙엽의 감사 Thanksgiving of Fallen Leaves

 낙엽의 감사 Thanksgiving of Fallen Leaves

나는 가까이 있는 숲길을 자주 걷는다. 봄이 되어 새싹이 돋아나는 생의 신비를 즐기는데 신록과 녹음이 덮이더니 어느새 오색 찬란한 아름다움을 주던 나무 잎이 한 잎 두 일 떨어지며 나풀나풀 춤을 추듯 내려 온다. 무엇이 좋아 그렇게 나풀거리며 춤을 추는가 물으니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이 감사하다고 말한다. 무엇이 그렇게 감사한가 하니 낙엽이 말하는 감사 제목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무성한 잎으로 왕성하게 햇빛을 받으며 깊은 호흡으로 나무에 영양을 충분하게 저장하여 나무가 긴 겨울을 나도록 준비가 되었으니 다가오는 추위에 넓은 잎으로 나무가 떨며 얼지 않도록 보호하고자 자기 자리를 비우고 떠나면 나무가 살고 봄이 되면 자기는 새 싹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기에 감사하다 한다. 

잎이 나무에 붙어있을 때는 물과 영양의 공급원인 땅에 고마움을 가지면서도 친밀하게 가까이 못하고 멀리 있었다. 이제는 땅을 만나 껴안고 사랑을 나누게 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 잎 두 잎 쌓인 이불로 땅을 덮어 따뜻하게 감싸주며 깊은 정을 나누고 함께 쉬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또한 푹신한 카펫이 되어 길을 걷는 행인의 발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무에서 떨어지며 낙엽이 되자 바람이 부는 대로 여기 저기 날아 여행하며 마음껏 세상을 즐기는 자유를 누린다. 원하는 곳 원하지 않은 곳, 넓은 세상, 구석진 곳, 복잡한 인생 살이, 어깨에 앉고 창가에 앉아 안을 들여다 보고 문간에 앉아 드나드는 모든 것을 바라본다. 웃음과 울음, 잔치와 고독, 사랑과 미움, 동정과 분노, 빈부와 욕정, 칭찬과 원망, 건강과 질고, 삶과 죽음이 얽혀 있는 인간의 깊은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놀랍다. 

낙엽은 불에 타서 재가 되든 썩어서 거름이 되든 생명을 키우는 영양분이 되어 삶을 풍성하게 한다. 풀과 꽃과 나무로 정원과 숲을 이루고 맑은 공기 잎과 열매로 동물과 사람에게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니 이 어찌 감사하고 기쁜 일이 아닌가 한다. 

추수와 감사의 계절에 떨어지고 쌓이며 바람에 불려가는 낙엽이 말하는 감사를 들으며 교회는 대림절 곧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절기를 맞는다. 이때 나는 낙엽의 감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적용되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한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과 하나며 하나님 자신이시다. 하나님은 생명과 사랑이시나 누가 그것을 알며 그것이 세상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시고 사람은 여기 땅 위에 있어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남남으로 생각되었다.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이 경험되고 인식되는 것은 하늘 자리를 지킴이 아니라 그 자리를 비우고 떠나 사람 사이에 들어옴으로 된다. 사랑은 이론이 아니라 함께 하며 실천할 때 사랑이 되고 인식된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를 비우고 떠나 자기를 낮추어 사람과 같이 되어 사람에게 오셨다. 그는 성령 바람을 따라 어디서나 사랑과 섬김으로 품고 감싸며 생명을 일으키고 회복하셨다. 병들고 소외되고 죽은 자에게 사랑과 생명을 주고 자기를 희생하여 영생을 허락하셨다. 누구나 그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나아가 그를 닮아 하나의 낙엽처럼 감사하며 살게 되니 이 어찌 참 감사가 아니겠는가! 












Monday, November 15, 2021

차이와 인정 Difference and Recognition

차이와 인정 Difference and Recognition

쌍둥이도 세대차가 있다는데 형제, 부모 자녀가 외모 생각 성향이 다르다면 부부를 위시하여 남남의 경우는 어떠할까? 지식과 소유 가문 지역은 그 차이를 더할 것이다. 세계가 연결되고 열리면서 난민과 이민의 요구와 유입이 많아지고 사회는 서로 다른 인종 종교 문화가 함께 하여 다양함을 가진다. 이런 차이를 어떻게 하나? 무시 수용 갈등 차별 소외 또는 제거를 하나?  차이가 상대에게 불편 손해 위협이 된다면 관계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차이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가인과 아벨 형제는 차이로 살인을 일으키고 쌍둥이 에서와 야곱은 태에서부터 평생 가지던 갈등 투쟁을 후손들도 계속한 것이 역사의 현실이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와 회개를 선포하고 생명의 길과 진리를 보여주며 많은 기적을 행하자 종교지도자들은 위협을 느끼고 그를 제거하는 길을 선택하였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이 하는 일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 일이 종교개혁에 일어났다. 로마카톨릭이 성경이나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는 달리 행함과 의식에 치중하던 가운데 ‘오직 성경, 오직 믿음’으로 개혁운동이 일어났다. 로마카톨릭은 권위와 세력으로 회유 위협 파문 출교 사형으로 응하였지만 유럽의 많은 나라와 사람들은 자기 말로 성경을 읽으면서 진리에 눈이 열리고 맹목적 신앙(fides implicita)에서 성경적인 신앙을 택하게 되어 개신교는 확장되었다. 로마카톨릭은 개신교를 진압할 수 없게 되자 각 나라는 통치자가 로마카톨릭이든 개신교든 정하는 것을 인정하기로 합의하였다(1555).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드 2세가 즉위하며 종교 단일화를 위하여 로마카톨릭을 강요하자 개신교도 국가들이 반발하여 전쟁이 일어나 30년간 지속되며 정치전쟁으로 발전하였다. 독일을 비롯한 구라파 많은 땅은 초토가 되고 사람들은 초근목피로 동물적인 삶을 연명하며 800만명이 생명을 잃고 신성로마제국은 와해되고 있었다. 이에 웨스트팔리아 평화조약이 체결되고(1648) 1555년 조약을 확인하여 로마카톨릭과 개신교가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를 가지도록 하였다. 차이가 해결된 것이 아니지만 서로를 인정한 것이다. 더 이상 피해를 일으키지 말자는 것이다. 동시에 많은 나라도 신성로마제국에서 독립하여 자유국가가 되었다. 개신교는 루터교 개혁교 침례교 영국교 등으로 더욱 분파 발전되고 서로를 인정하게 되었다. 같은 성경을 가지고 교파마다 차이가 있으나 성경 전체의 진리를 한 교파가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루터교와 개혁교는 성찬에서 떡과 잔을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해석에 차이가 있다. 침례교와 개혁교는 세례가 개인의 믿음이냐 가족공동체의 신앙인가 하는 것이다. 개혁교와 나중의 감리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인가 인간의 자유의지인가 하는 차이지만 서로를 보충하고 인정하며 함께 발전하되 모두가 성경에 기반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예수께서 선택한 12제자는 배경 생각이나 인성이 모두 달랐다. 그들은 이전에 소외되고 인정받지 못하던 형편이었지만 주님의 선택 교훈과 사랑을 받으며 그와 함께 사역하는 가운데 서로 자기를 주장하고 높이려고 하였다. 주님은 그들을 용납하고 조화시켜 주의 큰 일을 맡기고 성령을 부어주시어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되 각자 다른 모습으로 특별하게 하도록 하였다. 

인종 문화 종교의 차이로 인하여 사회에 많은 갈등 투쟁이 있지만 다양한 꽃이 있어 더 아름답고 몸의 많은 지체가 조화를 이루어 건강한 기능을 하듯이 각자 재능을 인정받아 모자익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름답지 않겠나! 










 


 

Thursday, November 11, 2021

개혁과 변화 Reformation and Transformation

개혁과 변화 Reformation and Transformation 

인류의 삶과 문화 사회구조는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였다. 산업에서 증기기관 발명으로 이루어진 방직과 대량생산은 농사와 수공업에서 벗어나며 도시화를 이루고 강철업 석유산업 발전으로 신속한 수송과 이동을 이루고 컴퓨터로 지식 정보와 서비스 산업이 활성화되고 오늘은 인공지능 빅데어타 드론 등으로 편리와 함께 온 우주를 즐기고 있다. 개혁 혁명으로 일어난 삶의 변화다.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의 정당성을 성경에 비추어 토의하자는 95개조로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강조함으로 시작된 종교개혁은 기독교만 아니라 유럽의 사회 경제 문화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교회와 전통이 최상의 권위인 때 성경이 교회의 전통과 권위 위에 있음을 확인하다. 루터가 보름즈 의회에 소환되어 그의 모든 이론을 철회하도록 요청받자 “내 양심은 하나님 말씀에 매여 있다. 내가 잘못된 것을 성경으로 증명하여 달라”며 당당하게 교회와 국가의 권위에 도전하였다. 성경은 당시 라틴어로 번역된 것으로 일부 사제들의 전유물이 되어 있어 일반인은 접촉할 길이 없고 읽을 수도 없었다.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그것이 구텐베르그의 인쇄물로 전파됨으로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가 있고 이로서 자유롭게 질문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루터 이전 영국에서 위클리프는 교회의 부패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성경이라고 생각하고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였다. 글과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교육이 발전되고 스위스에서 칼빈은 모든 아이들을 위한 공교육 제도를 시작하였다. 한국 초기 선교사들도 교육을 우선적으로 진행하고 계몽하였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왕 귀족 교황 감독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존귀함을 인정받아야 하고 계급 학대 노예 제도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루터 자신은 민주주의를 생각하지는 못했으나 결국 백성의 소리가 들리고 인정 받게 되었다. 정부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권선징악으로 백성의 안녕을 도모하되 그들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으며 백성은 정부에 저항하고 제거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  

모든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제사장으로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남을 위하여 중보할 수 있기에 사제 앞에서의 고해와 보속을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고 믿음으로 은혜로 용서받고 구원받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성속을 구분하여 사제직이 최고라고 인정되었으나 이제는 합법적이고 윤리적인 모든 일은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고 선하다고 함으로 농부 광부 상인 기술자의 일도 신성하게 되고 노동자가 정직 근면하게 일하여 이익을 남기고 모으는 일이 인정되며 재생산에 투자하거나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게 하여 새로운 중산층이 생기고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의 길이 열리었고 막스 웨버는 개신교의 노동윤리가 자본주의의 근간이라 하였다. 한국경제가 1962-89년 사이 27억에서 2300억불로 성장한 시기는 개신교가 2.5%에서 27%가 되는 시기와 맞물렸다. 

성경이 보급되며 성경적 세계관이 이루어지고 여기서 근대과학이 자라났다고 옥스포드의 죤 브루커 교수가 말하듯이 많은 과학 기술이 발전되었다.

중세시대에는 교회가 국가를 지배하며 권위와 부를 누리고 타락함으로 권력투쟁이 많고 백성이 피해를 보았지만 종교개혁으로 교회와 국가는 분리되었다. 개신교는 작은 차이들로 많은 교파가 생기고 절대권을 가졌던 캐톨릭도 하나의 교파가 되고 자체 개혁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개혁과 변화는 성경에서 온 것이라 우리도 성경을 읽고 따름으로 우리 삶을 날마다 새롭게 하여야 하지 않겠나! 










 

Wednesday, November 3, 2021

면죄부 (Indulgence)

 면죄부 (Indulgence)

죄에는 형벌이 있기에 누구나 죄의 용서와 사면을 바란다. 법을 어기는 범죄는 형벌로 추방, 투옥 또는 사형으로 다스린다. 죄는 형벌을 다 받아야 석방되고 자유를 가진다. 때로는 집행 유예, 노동이나 봉사활동, 또는 벌금으로 자유를 누리고 때로는 통치자가 사면권으로 특정인 또는 어떤 범죄자 전체를 풀어주기도 한다. 안전과 자유를 위해 누구나 법을 지키게 되어 있지만 알게 모르게 법을 어기는 것이 사람이다. 

세상에 살다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 천국과 지옥이 있기에 누구나 죽음과 심판을 두려워 한다.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 살도록 되어 있던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떠나는 죄를 지음으로 그 후손은 모두 그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 하나님 없이 자기 좋은 대로 살다가 결국은 죄의 형벌로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천국으로 회복시키고자 그 아들 예수로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고 하나님께 버림받아 지옥을 경험하고 부활함으로 죄의 용서와 구원을 이루셨기에 누구나 그를 믿으면 구원과 영생을 얻는 것이 복음이요 교회의 가르침이다. 

로마 카톨릭교회에서는 사람이 세례로 타고난 죄는 용서받으며 그 후에 죄를 짓는 것은 고해성사와 선행의 보속으로 죄의 대가를 치러야 용서받는다고 가르쳤다. 지옥에 해당하는 죄가 아니면 살아서 보속을 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연옥에서 고난으로 보속을 완수해야 천국으로 옮겨진다고 하였다. 

죄의 형벌을 제거하기에 선행의 공덕이 충분해야 보속이 되나 보통은 그러하지 못하다. 성모 마리아는 무흠하기에 그의 기도와 선행은 자기 구원에 필요한 것이 아니므로 모두가 공덕으로 쌓이고 성자나 순교자들의 공덕은 자신을 구원하고 남기에 그것도 쌓이며 이런 저장된 공덕은 교황이 맡고 있어 필요한 자에게 나누어 줄 수 있고 교인은 그것을 살 수도 있었다. 감독과 사제는 교인의 고해성사와 보속을 부과하고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교황으로부터 위임받았다.

11세기 성지 예루살렘이 모슬렘에게 점령되자 교황 우르반 2세는 성지를 회복하고자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고 참전자에게 죄의 형벌 면제를 선언하고 참전하지 않아도 전쟁 비용 부담에 참가하는 자에게도 면죄부를 제공하였다. 1510년 교황 율리오 2세가 로마에 베드로 성당 건축 기금을 마련하고자 면죄부를 부활시키고 독일 교구에도 부과하여 판매액의 절반을 교황에게 납부하게 하였다. 요한 테첼이 면죄부 판매의 책임을 맡아 윗텐베르그 근방에서 선전하며 면죄부는 산 자만 아니라 죽은 자, 연옥에 있는 자의 죄도 사한다고 청중의 부모나 친구가 연옥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실감나게 소리를 내고는 면죄부를 사는 동전이 궤속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영혼이 연옥에서 벗어나 낙원으로 옮겨진다고 하였다. 

이에 윗텐베르그 대학 교수 마르틴 루터는 성경 말씀에 비추어 면죄부의 타당성을 토의하자고 95개조를 써서 1517년 10월31일 교회 정문에 붙였다. 처음 둘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기를 바라며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된다고 하고 나머지는 이 둘을 설명하고 면죄부를 비판하였다. 교황이 아니라 오직 성경이 권위를 가지며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 하였다. 11월1일 만성절에 교회로 모이는 많은 사람이 게시물을 보며 그 내용이 퍼지고 또 구텐베르그 인쇄물로 반포되며 개혁의 물결이 전파되게 되었다. 면죄부가 아니라 오직 대속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은혜로 구원 받는 것이 확실하게 되었다.











Monday, October 25, 2021

한 생명 One Life

한 생명  One Life 

한 생명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삶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꽃과 같이 지나간다. 지나간 생명은 구입한 물건처럼 돌릴 수가 없다. ‘인생은 한번 뿐’ (You Only Live Once YOLO)이 영화 노래 글로 유행하며 YOLO가 한 때 인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오직 한번 살기에 자기 좋은 대로 즐기며 마음대로 살며 남에게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를 펴고 살자는 것이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원하는 지식을 쌓고 영화로운 건축에 최고의 향락을 누리며 1천 부인을 가졌으나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부르짖었다. 어떤 부자가 풍작으로 창고를 크게 짓고 “여러 해 쓸 것을 쌓았으니 이제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는데 들려오는 음성은 “오늘 밤 네 생명을 도로 찾으리라” 한다. 나는 2018년 선교지에서 강의하다가 숨이 차서 중단해야겠다 말한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몰랐지만 아내가 보는 앞에서 뒤로 쓰러지며 죽었던 것이다. 삶의 마지막은 순식간에 다가온다.    

생명은 삶의 명령, 사명이라 살아 있는 동안 일이 있다. 노인들이 인생을 살며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102세의 엘레노어는 걱정이 오면 자기를 생각하여 하루를 즐기며 한번에 하루를 살았다. 인간관계에서 해를 끼치는 많은 사람에게 반응하지 않음으로 자기 생명을 지키는 것이었다. 이집트 왕은 자기 나라 히브리 사람의 번창을 막고자 산파에게 아들이면 죽이라 하여도 되지 않자 남자가 나면 강에 던지라고 명령하였다. 버려진 한 생명이 건짐을 받고 모세가 되어 나중 자기 백성을 해방시켰으니 한 생명이 얼마나 귀한가! 낙태 실패로 태어난 생명이 귀한 사명 이루는 자가 많이 있다. 인생이 전쟁이요 험악하여도 생명은 존귀하고 할 일이 있다.

어느 구두가게 수선공이 돈을 모아 구두방을 내고 부자가 되었지만 그는 한번도 부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주어진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했을 뿐이었다. 카터 전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자 고향 조지아 플레인 자기가 살던 농가집으로 돌아갔다. 백악관 경험을 경제적으로 이용하지 않으려 손에 망치를 들고 온 세계 저소득층을 위한 집짓기 운동 (Habitat)에 헌신하고 고향에서는 교회 주일학교에서 코비드 판데믹 이전까지 가르치는 일을 하며 청렴하게 섬기는 일을 하여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이라 불리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운동선수로 유복한 생활을 하던 CT Studd이 무디 집회에서 도전을 받고 중국 선교사로 헌신하였다가 질병으로 돌아와 치료받고 인도로 갔으나 다시 병으로 철수하며 그는 ‘질병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였지만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아프리카 콩고에 헌신하다가 세계 미전도 종족 복음화를 위하여 국제 기독복음선교회 (WEC)를 창설하였다. 그는 ‘하나 뿐인 생명’ 시에서 “하나 뿐인 인생은 지나가지만 그리스도를 위하여 한 것만이 지속된다”며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이신 생명의 주인 하나님 안에서 세월을 허비하지 않고 영원을 살았다. 솔로몬이 마지막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 한 말을 확실하게 실천하였다.   

야곱이 자기 삶을 ‘나그네 길’이라고 하였지만 나그네는 쉴 곳, 정착할 곳을 찾는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떠나기 전에 그들을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서 준비하면 그들을 자기 있는 곳으로 영접하여 영원히 같이 살겠다고 한 그곳을 바라보며 오늘 나는 한 생명을 살리라.









 

복이 되리라 You will be a blessing

창12:1-4 복이 되리라 You will be a blessing (10/24/2021 Northfield PC)

예수 믿고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아멘 하자! 오늘 본문은 많이 듣고 읽은 구절이나 오늘 특히 선교사를 파송하는 주일, 선교사와 교회를 향하여 너는 복이 되리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심을 듣는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말씀은 크게 셋이다.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이 창대하게 되는 복을 주리라. 그와의 관계에서 땅의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하는 복이 되리라 하심이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말씀: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이기에 여호와가 그만 아니라 온 세계에 관한 계획을 말씀하시나? 고향에서 우상을 섬겼고 결혼 했지만 자식이 없어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그를 택하였다. 다윗은 8형제 막내로 아버지 눈에도 차지 않았고 예수께서 택한 제자들도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나의 세상 자격이나 가진 것, 자랑이 선택 조건인가? 아니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실 때 기대하는 것은 서로를 인격자로 받고 친구가 되어 마음을 나누되 서로 말을 듣고 행함으로 일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온 세상이 복을 받는 것이다. 복이란?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처음 말씀이 복 받으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곧 하나님의 생명으로 건강하고 풍성하라는 말이다. 이것이 사람이 원하는 복이다. 이 복은 여호와 곧 창조주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을 때 그로부터 임하는 것이다. 복으로 가득한 에덴에서 첫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서 포기하고 잃어버린 복과 생명을 회복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그 후손 예수님, 그리고 우리 교회와 개인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하신다. 

떠나...가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하심이다. 많은 것이 갖추어지고 안전하고 보호 받고 모두를 잘 아는 그곳을 떠나 아는 사람이 없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안전보장이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떠나서 자기 좋은 길로 갈 수도 있지만 여호와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고 한다. 큰 모험이다. 아브라함 자신이 그동안 믿던 신도 있는데 여호와가 누구라고 그 말을 들을 수 있겠나? 여호와는 스스로 계시는 분으로 살아 있어 활동하시며 천지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분임을 알고 받아드린 것이다.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떠났다. 여호와를 믿은 것이다. 이제부터 그 삶은 하나님이 인도하고 다스리게 된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된다. 있던 곳을 떠나지 않으면 옛모습 그대로이지만 이제는 주의 손에 이끌리어 주의 사람이 된 것이다. 믿음의 결단이다. 믿으면 따르고 순종한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도 순종하였다. 하나님이 그 믿음을 의롭게 생각하고 그를 믿을만한 친구로 받아들여 마음껏 복을 부어주신다. 예수께서 외친 첫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회개는 돌아서라 곧 지금까지 살던 삶에서 떠나라 그래야 천국을 맞을 수 있다. 주님은 개인에게는 나를 따르라 하신다. 베드로는 배와 그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 삶이 새롭게 시작한다. 그것이 믿음이다. 교회는 부름 받은 자의 모임이다. 있던 곳을 떠나 주께로 모이고 연합한 사람들이다. 지난 날 좋아하고 즐기고 익숙하던 모든 것을 뒤로 한다. 내가 좋아하던 우상을 모두 불 사르거나 땅에 묻어 버리고 빈 손으로 주를 따르고 바라본다. 믿음이다. 이젠 주님 밖에 없다. 주께서 책임지고 인도하신다. 

복을 주리라: 하나님이 책임지고 채우신다. 복을 주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모든 일에 함께 하여 그를 풍성하게 하셨다. 고난이 없는 것 아니다. 고난 통하여 더욱 풍성하게 하신다. 말씀하신대로 400년간 객지에서 고난을 겪었지만 그의 후손이 장정만 60만 모두를 합치면 200만 이상의 민족으로 창대하여지고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었다. 2천년간 그 나라는 사라지고 백성은 많은 증오와 학살을 당하였지만 이스라엘 이름과 땅이 회복된 것은 기적 중에 기적이 아닌가! 하나님 백성이라는 증거라 본다. 그들 중에 뛰어난 자가 많아 노벨상 수상자 3분의 1을 차지한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미국의 경제 언론 등을 움직일 정도로 이름 있는 자가 된 것이 복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소위 일류 국가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받아드리기 전에는 모두 야만이요 해적들이었지만 예수 믿음으로 변화가 되었다. 복음이 들어오기 전 한국도 가난과 무지 외세에 시달리며 고난의 연속이었다. 한국이 세계 역사에 기록적인 발전을 하여 경제 대국이 된 기적은 복음의 역할이라 본다. 복음이 사람을 새롭게 하여 나라를 일으킨 것이다. 이민 일세 우리가 조국을 떠날 때 가지고 온 것이 별로 없어도 미국에 와서 교회에서 믿음을 기르고 주의 은혜로 발전하고 복을 받은 것을 인정한다. 우리는 복 받은 사람이다. 영생과 함께 자녀가 뻗어가고 삶에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 

복이 되어라: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은 복을 홀로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복을 받도록 모든 사람에게 복이 되어라 하신다. 아브라함만 아니라 자손들이 그러하였다. 어떻게 복이 되나? 

삶을 통하여 보여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대사로 나타나고 이삭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여 복 주는 것을 보여주었다. 야곱이 라반의 양을 칠 때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고, 요셉이 종으로 팔려 애굽 왕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종이 된 때 그 집에 복이 임하였다. 요셉이 애굽의 위기를 극복하는 복이었고 그를 종으로 판 형제들을 용서하고 사랑함으로 그들에게 복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산다. 주를 믿고 변화된 삶이 로마인에게 한국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호기심을 일으켰다. 

행함과 섬김을 통하여 복이 된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그는 가는 곳마다 풍성한 생명을 일으키고 그 생명이 뻗어가게 하였다. 주린 자를 먹이고 병든 자를 고치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였다. 주를 믿는 자가 그런 삶을 산다. 이웃이나 공동체의 어려운 문제를 보면 나서서 섬긴다. 다른 나라에 어떤 재난이 닥칠 때 제일 먼저 달려가는 자가 미국인 그것도 그리스도인들이다. 한국 전쟁 때 미국과 심지어 에티오피아 사람들도 참전하여 생명을 바치기까지 하였다. 

복된 소식 복음을 전파하여 나누는 것이다. 주를 믿으면 생수가 그 배에서 넘쳐나온다고 하신다. 물은 흘러야 생명을 더한다. 우물 가의 사마리아 여인이 주를 믿게 되자 물동이도 버려두고 동리에 들어가 주를 증거하자 동리 사람들이 주께로 몰려 왔다. 이 세 가지는 복 받은 자가 주변에 복이 되는 삶의 모습이다. 예수의 복음을 반대하던 사울도 주를 만나자 자기 옛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의 사람이 되어 바로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자기를 바쳐 아시아 유럽에 복음을 처음으로 전하여 많은 나라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였다. 복음을 받은 나라들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교사와 봉사자로 온 세계로 뻗어가며 복이 되었다.

영국 Charles Thomas Studd는 유복한 가정 출신으로 케임브리지 대학 크리켓 선수로 높이 인정받는 가운데 무디 집회에서 새로운 은혜를 깨달으며 모든 영예 부귀를 떠나 중국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많은 사람이 그를 미쳤다고 하며 만류하였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요 나를 위해 죽은 것이라면 그를 위한 어떤 것도 결코 큰 것이 아니다” “한 번 뿐인 인생은 곧 지나간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한 것만이 남는다” 헌신한 것이다. 그는 몸이 약하여 중국에서 철수하고 인도로 가고 몸에 이런 저런 병이 많아 질병 박물관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였지만 그는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아프리카 콩고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콩고만 아니라 온 세계 미전도 국가에 복음 전할 사명으로 1913년 WEC (World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 세계 복음 선교회를 조직하여 1931년 71세에 주님 품에 가기까지 그가 믿는 그리스도, 생명의 주와 복을 나누었다. 그가 시작한 WEC은 지금 세계80여 나라에서 1800이상의 선교사가 주의 복음을 전하며 복이 되고 있다. 한 사람의 헌신에서 시작된 것이다. 

생수는 흐르지 않으면 고인 물로 죽게 된다. 1992년 LA폭동을 기억한다. 로드니 킹 사건으로 시작하였으나 한인 상가가 표적이 되었다. 그 때 지역대표 국회의원 변호사 등이 연석 회동 면담하는 것을 보았다. 한인들이 흑인 지역에 들어가 사업을 하여 돈을 벌고 좋은 차 좋은 집을 구입하여 잘 살고 있으면서 사업의 고객인 현지인과 지역을 무시하고 하대한다는 것이다. 만일 한인 지역에 다른 인종 사람이 들어가 사업하여 돈을 벌고 잘 살면서 그 지역민을 외면하고 무시하면 어떻겠는가 한다. 할 말이 없었다. 복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 복을 이웃 사람과 나누고 그들에게 복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이것이 복음이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하시는데 하나님의 복을 받고 나만 누리면 하나님께서 외면을 느끼고 폭동을 일으키신다. 요나가 바다에 던짐 받고 고래에게 삼킨 바 되는 것과 같다. 

한국장로교회는 1907년 조직될 때부터 선교사를 파송하고 그 후 선교사 파송은 교회의 사명이 되었다.  교회가 성장하고 나라가 잘 살게 되면서 한국교회는170 나라 3만명 정도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숫자로 미국 다음으로 선교를 하고 있다. 선교에 헌신하면 다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계속 은혜와 복을 주신다. 

김성중 목사님은 목사 되기 전 심장 전문 연구 학자로 많은 논문을 내고 연구소를 책임지고 일을 하다가 주의 은혜를 체험하고는 학생 선교에 힘을 쏟다가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로 갔다가 이제 다시 보냄 받으니 그는 그곳에서 복이 될 것이고 이 교회에도 복이 될 것이다. 노스필드 교회가 받은 복과 은혜를 감사하여 나누고자 처음 선교사를 파송함으로 교회는 선교사와 현지에 복이 될 것이다. 김목사는 보냄 받고 가는 선교사이지만 교회는 보내는 선교사로 기도와 물질로 그와 함께 하며 하나님의 복을 나누게 된다. 편안하게 안주할 수 있는 미국 삶을 떠나 주께서 지시하는 곳으로 가기에 김선교사님 내외분은 주의 손을 힘 있게 붙잡고 주와 함께 걷고 일하며 주의 기뻐하시는 복이 선교사와 이 교회 그리고 선교지에 더욱 풍성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