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22, 2022

고난의 아름다움 Beauty of Suffering

 고난의 아름다움 Beauty of Suffering

고난을 원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고난이 없는 사람은 없기에 누구나 고난을 피하고자 한다. 고생을 피하여 꿈을 가지고 미국에 왔지만 삶은 여전히 고난이다. 하나님께 죄가 없는 아들은 있어도 고난 없는 아들은 없다(어거스틴). 고난은 육체만 아니라 정신과 정서, 관계의 모든 면에 미치고 고난과 아픔을 없애고자 학문과 산업이 발달하였다. 예수 믿으면 고난이 없고 모든 것이 잘 되고 복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주께서는 고난 없는 삶을 약속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한다고 하시다. 사실 하나님을 믿고 주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겪었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 인정되던 욥이나 요셉, 다니엘, 사도 바울만 보아도 그렇다. 고난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당하는 고난을 어떻게 대하고 살 것인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선하신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시면 고난에는 그의 좋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고난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고난이나 고통은 어떤 문제가 있다는 신호가 된다. 고통을 버려두면 죽음을 맞을 수도 있기에 일찍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지혜다. 욥이 고난을 당할 때 찾아온 친구들은 그의 죄를 지적한다. 나면서부터 맹인인 자를 보던 예수의 제자들은 그것이 자기 죄인가 부모의 죄인가 묻는다. 죄로 인한 고난이라면 죄를 알아 회개하고 용서 받게 되니 고난은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고난이 아니면 죄를 모르고 죽음으로 나갈 것이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따라 살게 되기에 고난이 유익이라 고백한다.

고난은 도움을 구하는 기회가 된다.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사람이라도 스스로 어쩔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면 약이나 의사, 상담자, 또는 누구를 찾아 도움을 받는다. 나 혼자의 섬이 아니라 도움을 받고 주며 어울려 산다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다. 가장 귀한 것은 고난 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내가 처음 목회할 때 사순절에 금식하며 주를 기억하고 가까이 하는데 아내의 비판적인 말 한마디에 영혼이 깊은 실망과 어둠에 빠지게 되어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부활주일을 맞을 수 없어 토요일 아침 성전에 앉아 도움을 구하는데 부활하신 주께서 강단에 나타나셨다. 순간 모든 어둠 고난이 걷히고 마음에 기쁨과 소망이 솟아올라 넘쳐났다. 어둠이 아니면 얻지못할 경험이다.

고난은 훈련으로 인내와 믿음을 기른다. 성경에 고난 당하는 자는 모두 인내하며 주의 사람으로 더욱 확실하게 훈련된다. 욥은 그가 나를 죽이시더라도 나는 그를 바란다고 한다. 백세에 얻은 외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산으로 가는 아브라함의 고통이 어떠할까? 그러나 그는 시험에 합격하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상속자는 고난으로 훈련된 후에야 된다. 

남을 위한 고난이 있다. 강도 맞아 쓰러져 있는 사람을 돌보아준 사마리아 사람같이 코비드로 쓰러지는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하는 의료인,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전쟁에서 희생하는 군인이 있기에 생명과 평화가 주어진다. 아무런 죄가 없이도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고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니 성도는 그의 고난을 사순절만 아니라 항상 기억하고 자기도 그렇게 살고자 하지 않는가!  









Sunday, March 13, 2022

일광 절약 시간 Daylight Saving Time

일광 절약 시간 Daylight Saving Time
금년도 일광절약시간 소위 서머타임이 3월13일에 시작하여 시계의 한 시간을 앞당겼다가(1 hour Spring forward) 11월6일에 한 시간을 뒤로 돌려(1hour Fall back) 원래의 시간으로 회복한다. 시계 없이 일광을 따라 농사짓는 때가 있지만 오늘 산업사회는 매일 시계로 9-5시 일을 하는 구조에서 햇빛이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의도에서 100년 이상 실시하고 있다.
일광절약시간의 아이디어는 오래되었다. 미국 건국자의 하나요 과학 발명가, 철학자, 정치가로 펜실베니아 대학교를 설립한 벤자민 프랭클린이 1784년 파리 신문 편집자에게 촛불을 아끼기 위하여 일광에 맞추어 기상 시간을 정하도록 제안하였다. 남반부에 있는 뉴질랜드의 곤충학자 Vernon Hudson은 1895년 제출한 논문에서 곤충 채집과 조사를 위하여 10월에 2시간을 앞으로 3월에 두 시간을 뒤로 돌리자 하였고 1905년 영국 건축가 William Willett은 전기 절약을 위하여 4월 매주일 20분씩 앞으로 당기고 9월에 매주 원상으로 복귀하게 제안하였다.  
실시는 캐나다 온타리오 Fort Arthur에서 1908년 7월1일에 한 시간 앞으로 당겨 처음으로 서머타임을 시작하였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1차 대전이 진행 중 에너지 절약을 위하여 1916년 4월30일 한 시간 앞으로 당겼다. 영국은 1908년 의회에서 Willett안을 제안하고 다음 해 법령 초안을 하였으나 농부들의 반대로 좌절하였다가 1916년 독일을 뒤이어 영국 프랑스 등이 실시하다가 전쟁이 끝나며 중단하였다. 미국은 1918년에 시작하고 오늘 세계 10억 인구가 70여 나라에서 시작과 끝은 다르지만 실시하고 있으나 아시아, 아프리카와 적도 지방에서는 원래의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일광절약시간의 유익은 직장인이 퇴근 후 가족 또는 친구들과 함께 밝은 시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즐기고 운동이나 낚시를 하는 여유를 가지고 여행자는 저녁 시간 쇼핑이나 다른 활동을 한다. 밝으면 안전하다는 말대로 아침 저녁 사고가 13% 줄고 강도는 7% 감소하고 또 에너지를 절약한다. 그러나 문제도 있다. 전기절약은 0.3%나 자동차 가스는 더 사용한다. 시간 변경 때는 몸시계가 적응하지 못하여 잠의 부족으로 사고가 나고 우울증이나 심장마비도 일어나고 공장의 생산 감소, 농사의 수확과 우유 채취에 차질이 있지만 그러나 일광 시간 활용의 유익이 더 크다고 본다.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다 (엡5:16) 한다. 때가 악하기에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라고 영어는 말하나 원 의미는 매일의 시간 (크로노스)는 어둠의 악한 세력에 있기에 하나님의 계획된 시간 (카이로스)를 값을 내고 사듯이 회복하라는 것이다. 내 시간에 주어진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 활용하지 못하고 낭비하여 잃어버리는 때가 많다는 것이다.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내 생각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은 어둠이요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기에 때가 낮이라 육신의 정욕을 따르는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고 단정히 행하라고 권한다. 
예수께서는 밤에는 일을 할 수 없다며 “때가 낮이라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하여야 하리라. 내가 세상의 빛이라. 나를 믿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고 빛의 아들이 되리라” 하시며 맹인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려 생명을 회복하신다. 예수를 믿는 자는 밝은 빛 안에서 스스로 생명을 즐기고 생명을 일으키며 빛의 시간을 활용하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Sunday, March 6, 2022

전쟁과 하나님 War and God

전쟁과 하나님 War and God
지난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전쟁으로 수많은 사상자와 건물 파괴에 백만명 이상 피난민이 생기고 큰 손실과 아픔을 겪고 있다. 전쟁을 경험한 우리 세대는 우크라이나가 당하는 어려움을 알기에 전쟁이 속히 평화롭게 끝나기를 기도한다. 이 전쟁은 민주주의의 갈등과 분열이 있는 가운데 푸틴이 러시아 연방을 회복할 의욕으로 이웃 나라를 침공하였지만 또한 그가 나토와 미국을 향하여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캐나다 육군 저널은 기원전 3600년에서 지금까지 전쟁이 없던 시기는 단지 292년으로 14531 전쟁에 36억 4천만이 생명을 잃었다고 하니 고통의 전쟁이 역사를 형성한다고 본다. 왜 이렇게 많은 전쟁이 일어나나? 이념 또는 국경 경제 민족 종교 등이 이유가 되지만 사실은 사람의 내적 문제다. 
한 아이가 아버지께 일차 대전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물으니 독일이 벨기에를 침략하여 시작되었다고 대답하자 옆에 있던 아내가 바른 대답을 해야지 하면서 한 사람을 살인한 것이 이유라고 하니 남편은 화가 난 음성으로 “누가 대답해요? 당신이요, 나요?” 아내는 화를 내며 부엌으로 간다. 이를 본 아들은 “되었어요 이유를 알겠어요”한다. 부부나 개인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국가 간에도 전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성경은 싸움이 속에 있는 정욕에서 온다고 한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이나 두 살배기 어린아이들이 함께 놀다 싸우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한 이기적 욕심이다. 구약은 다툼과 전쟁으로 가득하다.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는 죄로 관계가 깨어지자 그후 개인, 단체, 국가 사이에 갈등과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이런 형편에 하나님은 어디 계시나? 하나님은 많은 희생과 고통이 따르는 갈등과 전쟁을 왜 허용하시나? 하나님은 사람에게 주신 자유를 존중하여 그들이 하는 일을 막지 않으신다. 오히려 거룩하고 의로운 전쟁을 주도하여 죄와 악을 물리치고 의를 세우고자 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아직 그곳에 죄가 차지 않았다며 4대를 기다리게 하다가 그들의 죄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을 때 여호수아의 전쟁으로 그들을 정복하였다. 하나님은 악을 형벌하고 일반인을 보호하여 안전하게 살게 하기 위하여 이 일을 국가 지도자에게 위임하고 수행하게 하신다.
전쟁은 심판의 도구가 된다. 사사기와 구약역사에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기 백성이 죄악에 빠지고 하나님과 원수가 된 때 선지자를 보내어 경고하여도 되지 않으면 침략 받는 전쟁의 고통을 주신다. 그들을 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의 백성으로 돌이키고 훈련하는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예수께서 오신 때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아래 있었다. 많은 사람은 정치적인 해방을 원하였지만 예수께서는 오히려 세금을 내는 충실한 시민이 되라 하신다. 그의 전쟁은 영적이었다. 제어할 수 없는 군대 귀신이 들린 사람을 풀어 해방시키고 중풍병자에게 죄의 용서를 선포하고 그를 건강하게 하신 것은 전쟁에서의 승리이지만 간단한 것이 아니다. 기도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기에 고통이요 마지막은 십자가로 죄를 대속함이다. 교회는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사순절을 지킨다. 죄를 회개하고 기도하되 특히 전쟁의 종식과 고통 당하는 자들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의 능력으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매일을 살 것이다.   










Monday, February 28, 2022

땅은 살아 있다 The Earth is Alive

땅은 살아 있다 The Earth is Alive
입춘에 그라운드 호그가 올라오고 우수의 봄비가 얼어붙은 땅을 감싸고 쓰다듬는다. 천둥소리가 땅을 흔들며 눈 이불을 재치고 일어나라며 긴 겨울의 죽음 같은 땅을 깨우니 생명이 기지개하며 꿈틀거린다. 일어나 일할 때가 왔다. 땅은 생명을 일으키고 자라 번성하게 한다. 유학시절 학교 아파트 옆의 작은 땅을 얻어 무 배추 파 등을 심었더니 넘치도록 많은 것을 풍성하게 수확하였다. 겨울에 땅이 황량하고 죽은 것 같더니 죽은 것이 아니라 잠을 자며 쉬고 있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생명을 키우고 결실을 하며 많은 일을 하다가 겨울에는 필요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6년동안 땅을 경작하고 농사하지만 제 7년에는 안식하게 하라 하신다. 땅의 쌓인 피로를 풀고 새로운 생명력으로 회복되는데 겨울만으로는 부족해서인지 1년을 쉬게 하라는 것이다. 
사람은 땅의 흙에서 왔다. 어린 시절 손에 상처가 난 때 “흙이 네 아비다” 하며 흙을 약처럼 뿌리던 것을 기억한다. 그후에 하나님이 흙으로 형체를 만들고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이 되게 한 것을 알았다. ‘사람’이란 살아있는 존재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살라고 명령하시고 할 일을 주셨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시고 그가 창조하신 모든 것을 그를 대신하여 그의 뜻을 따라 다스리며 땅을 경작하고 지키도록 하셨다. 생육을 위하여 여인에게는 임신하고 해산하는 고통이 있고 생명이 살도록 남자에게는 땅을 경작하고 지키고자 땀 흘리며 수고하게 하였다. 사람은 생산하고 열심히 일한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다 쉬지 못하면 피곤에 쌓이고 건강을 잃기도 한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일하시기에 아들 예수께서도 그렇게 한다며 종일 사람들을 가르치고 병자를 고치면서 길과 일로 피곤하여 우물가에 앉아 쉬기도 하고 풍랑이는 바다의 일엽편주에서 곤한 잠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는 우리처럼 몸을 가졌기에 육체의 한계를 알고 휴식을 취하고 주무셨다. 피곤하고 약할 때 잠은 최고의 휴식이요 ‘최상의 약’이다. 잠을 자고 쉬는 동안 몸이 회복되고 면역체계가 강화되고 새로운 건강과 활력으로 소생하고 일한다. 밤이 되면 멜라토닌이 생성되어 잠을 자게 되고 날이 밝아오면 콜티졸이 분비되어 에너지와 각성이 일어나게 한다. 충분한 피로 회복과 삶의 활기에는 밤의 잠으로 부족하기에 일주일에 하루는 쉬면서 생명의 주인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를 예배하며 즐기도록 하였다. 
육체와 삶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질병과 죽음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지만 죽음은 두려움이라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 좋은 음식 약을 먹지만 ‘불사약’이란 없다. 죽음으로 삶과 활동을 끝내면 남은 사람에게는 슬픔이다. 나사로가 죽자 누이들은 슬픔에 빠지고 친구 예수님은 멀리 있었다. 회당장의 딸이 병으로 신음할 때 주를 청하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데 아이는 죽고 사람들은 애곡하였다. 주께서는 이에 대하여 그들이 죽지 않고 자고 있다고 하시더니 “일어나라”로 깨우며 일으켰다. 죽음을 잠이라는 것은 깨어 일어난다는 말이다. 죽은 사람을 흙에 묻으며 “편히 쉬라”하는 것은 이불을 덮어주며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 만나자는 말이겠다. 마지막 주께서 호령으로 땅을 흔들며 임하실 때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 주를 만날 것을 감격으로 기대한다. 










Saturday, February 19, 2022

아름다운 이름 A Good Name

아름다운 이름 A Good Name
이름 값을 한다는 말이 있다. 어릴 적 한국이 일본의 억압 식민지로 말과 이름, 인권과 재산 모든 것을 빼앗기고 공출하다가 생각지도 않는 가운데 해방을 맞으면서 그 뒤에 미국이 있음을 나는 알았다. 그 때부터 미국이란 이름이 한국에 알려지고 그 영향으로 오늘의 한국이 되었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영향아래 70년을 지나며 아직도 세계의 가장 심한 인권탄압과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미국을 만나기 전에 미제 물건이 뛰어나게 좋다는 것을 알면서 미국이란 이름은 믿을만한 좋은 것임을 깨달았다. 결국 미국을 제2의 나라로 정하고 지금 사는 집이 30년이 넘었지만 건축 당시 사용한 전기 제품들이 지금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으니 과연 이름 값을 하는 것을 본다. 
이름이란 그것의 특성 희망을 보이면서 또한 다른 것과 구분을 한다. 첫 사람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은 것이 그러하다. 이삭이 낳은 쌍둥이 동생 야곱은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기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그 의미는 빼앗는 자, 속이는 자로 그의 삶은 항상 투쟁과 불안으로 이름값을 하다가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면서 받은 이름,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의 이스라엘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가 담겨지고 그의 후손과 이스라엘 나라를 통하여 성취되며 그것은 아름다운 이름이 되었다. 
이름을 받으면 그 이름에 맞도록 사는 것이 기대된다. 유다는 찬양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하나였다. 주의 가르침을 받고 많은 이적과 변화를 보면서 찬양에 찬양을 할 수 있는데 그는 육체적 생각과 욕심에 사로잡혔다. 그는 예수 공동체의 재정담당자로 돈을 훔쳤고 죄인으로 알려진 마리아가 값진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는 것을 보며 그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여야지 왜 허비하는가 분노하다가 결국 돈을 받고 스승을 배반하고는 자결로 삶을 끝내었다. 아름다운 이름 유다는 기피할 이름으로 바뀌었고 소외되던 마리아는 그 후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아름다운 이름으로 알려졌다. 
구원자라는 의미의 예수는 이름대로 살며 활동하다가 신성모독, 국가모반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되었지만 부활하심으로 구원자임이 확인되고 그의 복음은 전파되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이단으로 규정되고 그를 믿는 자는 박해와 체포, 사형을 당하였으나 그 이름은 ‘염병’처럼 확산되었다. 사울이 예수 박해를 수행하던 중 햇빛보다 더 밝은 빛 가운데 들리는 음성으로 예수를 만나면서 변화를 받고 그가 이단으로 척결하려던 그 이름을 증거하는 사도와 선교사가 되며 자기 이름을 작은 자라는 바울로 바꾸었다. 그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예수를 섬기며 자기 생명을 조금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전도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른 것은 비하하고 조롱하는 ‘예수쟁이’라는 의미였지만 이는 그리스도께 속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되었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는데 우리는 어떤 이름을 남길 것인가? 예수를 믿음으로 이마와 가슴에 그리스도인이라 도장을 받은 사람은 죽지만 다시 살림 받아 영원토록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나라에서 영광을 누릴 축복을 얻을 것이기에 나와 내 집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그리스도인이 되리라는 작정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Monday, February 14, 2022

도움의 손길 Helping Hands

도움의 손길 Helping Hands
선교지에 가서 일을 할 때 현지인을 돕는다고 하지 않고 섬긴다고 한다. 돕는다고 하면 현지인이 도움 받는 약자와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지만 섬긴다고 하면 그들을 주인으로 대우하는 격이다. 많은 사람은 도움 받는 것을 싫어하며 자기가 강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스스로 하지 못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 컴퓨터나 셀 폰은 오늘 삶의 필수품이지만 그 사용법을 모른다면 무용지물이기에 설명서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배우게 된다. 나이든 사람이 과거에 어떤 일을 하였다는 자부심과는 상관없이 시대를 따라가려면 여러가지 도움을 받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병이 들게 되고 그때는 자기 건강이라도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도움을 구한다. 수술을 하게 될 경우에는 더하다. 아내의 무릎 통증이 심하여 무릎을 꿇을 수도 없고 걷기도 어려워 약을 먹고 자가 요법으로 시간은 끌면서도 해결은 되지 않는다. 의사를 찾아가 주사를 맞고 도움을 받았지만 그것도 한시적이다. 결국은 수술하라는 권고를 따르기로 하였다. 많고 복잡한 수술 준비와 도움을 받는다. 여러 의사를 보고 검사를 받으며 수술 적격 확정을 받고 특정 음식 약물 운동의 지시를 따른다. 전화로 수 차례 수술 준비를 확인한다. 수술 당일 이른 새벽 다시 특별 세제로 몸을 씻고 지시 받은 음료를 마시고 병원으로 가니 새벽 5시에 이미 병원 문에서 코비드 증상 체온 검사자, 접수 창구 안내자, 접수 후 안내 받은 대기실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보호자와 함께 대기중이다. 이름 불러 들어가면 병원 옷으로 갈아 입히고 의사 만날 준비를 하고 간호사, 의사, 마취사의 설명, 원목이 와서 기도하고 수술실로 실려간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의사가 수술을 한 후 기다리고 있는 내게 와서 “수술이 완전하게 되었다 회복실에서 3시간 지나면 병실로 갈 것”이라 한다. 병실에는 간호사와 보조원만 아니라 물리치료사 청소원, 식당 직원 등 많은 사람이 협력하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많은 도움의 손길들이 한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다. 코비드 팬데믹 기간 병실이 없을 정도로 환자가 많지만 의료팀은 환자보다 더 많아 보인다. 남을 돕기 위하여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은 ‘영웅들’이라 이들에게 치료를 맡긴다. 
의료진만 아니다. 퇴원하자 간호사 물리치료사가 찾아오고 여러 사람이 입맛을 돋구는 음식을 날라준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전체 과정에서 기도의 손길을 더한다. 이 모든 도움의 손길을 감사하며 축복한다.
어느 외과의사는 수술은 자기가 하지만 치료는 하나님이 하신다며 환자를 위하여 기도하며 자기의 한계를 알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였다. 몸만 아니라 정신과 정서 영혼의 전인적 치유가 하나님에게서 온다. 중요한 것은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로마 정치세력의 백부장, 종교 권위 회당장, 접근금지 이방인도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자 병과 죽음, 귀신의 세력에서 자유를 얻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주께서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겸손히 주께 도움을 구하여 도움을 받고 나아가 나도 남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다면 이 어찌 복이 아니겠는가!









Monday, February 7, 2022

나를 위해 주님이 기도하셔요! Lord Jesus Prays for Me!

 나를 위해 주님이 기도하셔요!  Lord Jesus Prays for Me!

아내의 무릎 수술을 앞두고 친구들에게 기도 요청을 하였더니 기도하겠다는 많은 응답이 있어 큰 힘과 격려가 되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나의 삶에 도움을 준다. 성도의 하나님과의 관계는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내가 하나님께 말씀드림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잘되면 좋은 관계가 된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체험하기에 기도제목을 나누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고 격려하지만 목사나 영적 지도자가 나를 위하여 기도한다면 더욱 응답을 확신한다. 

It is very encouraging to know someone prays for me. How about Jesus prays as the great high priest for my protection, joy, holiness, unity, and evangelism! How blessed I am if I hear him pray for me and try to match my life to his prayer!

그런데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기도하신다면 어떠한가! 예수께서 세례 받고 기도할 때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듣고 자기를 확인하며 기도가 그의 삶의 중심이 되었다. 새벽 미명 한적한 곳에 나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제자 선택 위하여 밤새워 기도하고 선택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죽은 나사로를 기도로 살리며 초월적인 능력을 나타내셨다. 주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고 몇 시간 후면 잡히고 고발당하여 십자가 처형을 받게 되는 절박한 때에도 기도하셨다 (요17장). 얼굴에 흐르는 땀이 핏방울이 되듯 심혈을 기울인 기도에는 자신을 위한 것, 제자들을 위한 것 그리고 그를 믿을 신도들을 위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주님의 기도에 들어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내가 그만큼 소중하기에 나를 사랑하여 가슴에 품고있다는 의미다. 나를 위하여 죽고 자기 생명을 주었으니 내가 그에게 얼마나 귀할 것인가! 주님은 하나님의 어린양 나를 위한 대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에서 나를 위하여 지금도 기도하신다. 어느 신학 교수가 이 사실을 알면서 하늘의 기쁨이 그를 덮었다고 간증하였다.

주님은 나를 위하여 무엇을 기도하실까? 성경에서 몇 가지를 알 수 있다. 먼저 내가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전하고 지키시는 것이다. 주께서 베드로와 제자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다. 내가 잘못하고 죄를 범할 때에도 주께서 나를 위하여 대언하며 간구하시니 누가 나를 고발하며 정죄하겠는가? 아무도 나를 주의 손에서 빼앗을 수가 없다. 그는 나에게 주의 기쁨이 충만하도록 기도하신다. 기쁨은 삶과 활동의 동력이라 이를 위하여 하나님 말씀이 주어졌다. 주님은 내가 거룩하게 되도록 기도하신다. 거룩함은 주를 닮아 세상에서 구별되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살지만 진리이신 주의 말씀을 붙잡고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는 내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우리 서로가 하나되도록 기도하신다. 주의 제자들은 서로가 다르고 자기를 높이는 경향이 있었지만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나도 교회도 하나되게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할 것이다. 주께서는 나를 데려 가시지 않고 세상에 머물게 하여 주를 나타내고 전하여 다른 사람들이 주를 알고 믿기를 기도하신다. 온 천하 어디서나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주님의 소원을 내가 실천하도록 주님은 지금도 기도하신다. 주님은 그를 믿는 사람들이 마지막에 주의 나라에서 주의 영광을 함께 누리도록 기도하시기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 나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 그의 기도가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그에 맞도록 사는 것이 내게 복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