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October 17, 2022

나의 사는 거처 My Dwelling Place

나의 사는 거처 My Dwelling Place
생명은 삶의 거처가 필요하다. 누구나 안전하고 편안한 곳을 찾는다. 우리 집 처마 밑 나무에는 비둘기와 라빈이 보금자리를 만들고 새끼를 기른다. 연어도 바다를 마음껏 다니다가 산란기에는 조용하고 안전한 강을 따라 올라온다. 우린 엄마 태와 품속에 살 때가 참으로 좋았지만 세상으로 나가 스스로 살아야 할 때가 온다. 전쟁과 기근, 태풍으로 삶의 바탕이 무너지고 살 곳을 찾아 떠나기에 도시마다 국경마다 붐비게 된다. 아니면 길거리 다리 밑이나 건물 곁을 거처로 삼기도 한다. 정부나 교회, 자선기관에서 거처를 제공하나 일시적이다. 어디가 참으로 살 곳인가?
스스로 일을 하고 월세나 전세를 내며 살 거처를 마련하다가 집을 마련하고 입주할 때 거처가 안정되었다고 얼마나 기뻐하나? 나는 지금 사는 거처에 근 30년 살고 있으면서 집에 들어올 때마다 주께서 주신 보금자리라 감사를 드린다. 학군이 좋고 편리한 곳으로 옮기고 은퇴를 하면 따뜻한 남쪽으로 옮기든지 스노우 버드로 추운 겨울을 남쪽에 가서 지나는 자가 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어 여기 안주하고 있다. 과거 다달이 세를 내고 살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 얼마나 안정되고 편안한지! 선교지나 외지에서 일년 이년 살다가 돌아와도 나의 거처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정을 준다. 
세 아이들이 어린 때 우린 가족 여행을 자주 하며 친구들을 방문하고 명소들을 찾았다. 호텔에 들어갈 형편도 아니지만 천막을 선호하였다. 저녁 도착하는 곳에서 천막을 치고 음식을 만들어 즐기고 천막에서 피곤을 풀며 가족이 단 잠을 자는 것이 기쁨이요 행복이었다. 때로는 밤에 폭풍으로 천막은 무너지고 물로 덮일 때도 있었지만 이웃에 트레일러를 가진 인심 좋은 밴 주인이 자리를 나누어 주는 사랑도 받았다. 천막의 삶에는 소망과 믿음, 기쁨과 사랑의 협력이 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노예지만 안정된 삶을 살다가 탈출하여 자유민으로 하나님 약속의 땅으로 가는 40년 동안 천막에 살았다. 천막을 걷고 치는 일이 계속되며 불평과 원망도 있었지만 그래도 앞을 향한 소망과 믿음이 그들을 붙들었다. 천막이든 돌집이든 어떠한 형태라도 일시적이다. 낡아지고 무너지는 날이 온다.
우리 삶이 그러하다. 생명이란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할 때 가능하다. 영혼이 우리 몸을 집으로 삼을 때 생명을 누리지만 몸이 쓰러지거나 영혼이 떠나면 죽음이다. 죽음 후에도 삶이 연속된다는 생각으로 이집트의 파라오는 자기를 위하여 피라밋을 수십년간 건설하고 삶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종들과 함께 부장한다. 무덤에 묻어도 다시 일어날 날을 기대하며 그때까지 편안히 쉬라 Rest in Peace 한다. 비바람이 불어도 안전한 거처일 수 있다.
천막이나 토굴, 월세나 궁궐에 살아도 기쁨과 행복, 자유와 평안을 가짐이 삶의 복이 아닐까? 그런 거처가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은 세상에서 얻는 것과는 다르다. 속에서 올라오는 하늘의 평안과 기쁨이다. 예수께서는 그를 믿는 자를 위하여 거처를 준비하러 가서 준비하면 그들을 영접하여 함께 살 것이라 하신다. 기쁨과 평안, 자유와 찬양의 거처다. 그 날을 기다리며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거처로 삼아 오늘 기쁨을 누리는 자가 참으로 복된 자가 아닐까!




Sunday, October 16, 2022

아침마다 새롭게 Fresh New Every Morning

애가 3:19-24 아침마다 새롭게 Fresh New Every Morning (은목교회 10/16/2022)
좋은 시절 매일 새로운 풍경과 색깔을 만난다. 어제와 다른 오늘 다양한 색채는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하고 그걸 따라서 걷고 싶다. 예쁜 나무는 항상 이런 것은 아니다. 고통의 겨울 차가운 바람과 눈비로 어려움을 당할 때가 많고 가뭄으로 마실 물이 없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이런 아름다운 때가 있기에 기다리며 이겨낸다. 
낙담 형편 
예레미아는 슬픔의 노래 애가에서 탄식하고 아파한다. 나라는 바벨론에 넘어가 성전은 파괴되고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 우리가 625로 경험하고 오늘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예레미야는 안정되고 평화의 삶을 위하여 바벨론을 받아드리라고 하였으나 반역자로 몰리어 매를 맞고 조소 당하고 감옥에 갇히어야 하였다. 개인과 나라가 당하는 일은 정말 쑥과 같이 담즘과 같이 쓴 고통이다. 그 고통을 겪으면서 그는 낙심이 되고 절망을 가슴에 안는다. 
우리는 어떠한가? 식민지의 눌림과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나라 전체가 가난에 허덕일 때가 얼마나 힘들었나? 주의 부르심을 받아 주의 종이 되고 잘 살겠다고 미국에 와서 목회하며 좋은 일도 많았지만 고통스런 일,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친구가 원수로 변하는 일을 얼마나 많이 보았나? 그러다 밀려나듯 은퇴를 하고 나니 친구도 많지 않고 경제도 넉넉하지 못하고 출석할 교회마저 적당하지 않더니 이제는 건강도 약화되어 많은 면에 제한이 되고 있으니 답답하고 외로운 삶을 살면서 부르짖을 때가 많아 산다는 것 자체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여기 생각의 전환을 한다. 낙심이 되는데서 돌아서기 위함이다. 우리 마음과 생각이 참 중요하다. 

생각의 전환: 이것을 내 마음에 담아
예레미야는 고통 얽매여 있을 수가 없었다. 이것을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다고 한다. 생각 마음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 생각의 전환이다. 어려움 중에 이것을 마음에 떠올린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다. 주의 강하고 크신 팔, 그가 자기 백성을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생각한다. 이집트에서 종생활하고 있을 때 강한 왕을 이기고 자기 백성을 해방시킨 일, 홍해를 건너고 광야 험한 길을 지나며 만나와 매추라기를 공급하고 아말렉 원수를 물리치고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을 본다. 그의 인자하심과 긍휼이 참으로 크기에 그 백성이 진멸되지 아니하였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지만 없어지지 않고 70년 후에는 고토로 돌아갈 것이다. 나라가 로마에 망하고 없어진 것 같으나 1900년이 지나면서 나라가 회복되다. 그간 고난은 많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않고 계신다.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지킨다. 유월절을 지킬 때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것을 믿기에 그들은 강한 민족으로 일어난다. 일년에 한번이 아니라 아침마다 새롭게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하시는 일을 마음에 생각하면 힘이 일어나지 않겠나!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롭다.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은 아침마다 새롭게 다가온다. 매일 새롭게 하나님이 일하신다. 자기 백성을 위하신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시련과 환난이 많고 제한이 많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가 크고 함께 하심을 마음에 두고 생각한다. 주의 인자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우리가 그것을 알고 마음을 열고 받아드리는 것이다. 아침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펴며 깊은 숨을 호흡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인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걸음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한 일인가 아미면 하나님의 은혜인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함을 기억하면 그의 성실하심을 인정하게 된다. 하나님은 한결 같으시다. 그러면 마음이 기쁘고 감사하지 않겠나?
주께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지시고 영생을 주셨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가 죄인인 때 죄 없으신 주께서 자기 생명을 대신 주신다며 만찬 중 떡을 들고는 축사하고 이는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잔을 주시며 이는 너희 죄를 사하려고 흘리는 나의 피다. 너희가 이를 행할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 하신다. 우리가 행하는 성찬식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아들의 몸과 피를 주시고 우리에게 참생명을 얻게 하신 것을 기억한다. 주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 일년에 몇번 행하는 성찬식이 아니라 매일 아침 기억한다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까? 감사하며 찬양하지 않겠나? 나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주시기 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아침마다 생각한다면 그날이 얼마나 복될까?
주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자기 말씀 성경으로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신다. 아침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받아드리며 주께서 오늘도 살아 활동하며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기억한다면 얼마나 힘이 있을까? 10월은 종교개혁주일이 있는 달이다
종교개혁의 모토가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다. 그러면서 개혁은 한 차례가 아니라 매일 새롭게 개혁이 되어야 한다 Reformata semper reformanda reformed and reforming 우리 스스로 새롭게 될 수가 없다. 말씀이 들어와 역사하여 우리 삶을 새롭게 변화시킨다. 오늘 아침도 주의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 나를 새롭게 하신다. 그것이 나의 힘이요 소망이 된다. 성경을 읽으면서 오늘 내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인자와 긍휼이라는 것이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가? 내게는 4P로 나타난다. His presence, provision, protection and prevail이다.
그는 항상 우리와 같이 하신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를 버리지 않고 항상 같이 한다. 오늘도 내 혼자가 아니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을 확인한다.
주의  Provision주께서 필요를 공급하여 주신다. 나의 삶을 위하여 공기와 햇빛을 주시고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을 주신다. 나의 건강과 생명을 오늘도 주시어 살게 하신다. 내게 필요한 것을 아침마다 새롭게 공급하여 주시는 여호와 이레를 믿는다.
주의 Protection보호하심이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갈 때 보호하셨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20년 일을 하다가 독립하여 떠날 때에도 지켜 주셨다. 악에서 건지시지만 위험과 환난에서 지키고 도우신다. 어제도 지켜 주시고 오늘도 지켜 주신다. 코비드가 성하여도 지켜주시고 코비드에 감염 되었다 하여도 주께서 또한 지키시는 것을 믿는다. 
주의 Prevail 곧 승리를 주신다. 고통을 겪고 환난을 당하지만 진멸되지 않았다. 결국 승리하여 주의 이름을 나타낸다. 아침마다 여호와 닛시로 오늘도 승리하는 하루라고 외칠 것이다.
주께서 신실하시어 아침마다 새롭게 인자와 긍휼을 베푸시는데 나는 어떻게 응할까?  
1) 나도 아침마다 주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며 주를 높여 드릴 것이다. 주의 하시는 일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라는 것을 생각하며 그를 찬양하며 감사한다. 
2)  기회 있는대로 사람들에게 주의 은혜와 사랑을 말한다. 주께서는 온 천하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 하셨다. 오늘 우리가 있는 곳에서 주의 이름과 그의 사랑을 나누고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되기를 바란다.
3)  예레미야는 주의 신실하신 인자와 긍휼을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주를 바라본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한다. 우리가 가진 것이 얼마나 되나?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갈 것이 얼마나 되나? 아무 것도 없다. 주께서 우리의 기업이시라 주의 나라를 상속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일이다. 내게는 큰 기업 하늘 나라 전체가 나의 기업인 것을 아침마다 새롭게 확인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하루를 시작한다면 우리 삶이 어떠할까?
몸이 아프고 어려운 일이 많다 하여도 그것에 눌리지 않고 우리 마음을 열어 하나님의 성품과 그가 하신 일을 생각하며 아침마다 감사와 찬양을 하고 주님을 자랑한다고 하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힘이 넘치겠나? 주의 은총 가운데 날마다 힘찬 삶이 되기를 바란다. 





Wednesday, October 12, 2022

시 험 Test/Temptation

시 험 Test/Temptation
어느 교단에서나 목사가 되려면 소정의 교육과 훈련을 받고 시험을 거치게 된다. 시험에 합격하면 안수 받고 목사가 될 수 있다. 시험은 목사가 되는 자격이 갖추어져 있는가를 확인하는 기회이기에 응시자는 모든 자료, 최선, 신경, 주의를 다하여 시험에 응한다. 나는 최근 목사고시 채점위원으로 위탁을 받고 열심히 준비하고 조심스럽게 임하였다. 시험은 어렵고 힘든 것이라 피하고 싶지만 그것은 인생 성장의 한 과정이다.
풍요의 동산에 살던 첫 사람에게 시험이 있다. 모든 나무의 열매는 먹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먹으면 죽는다는 한 가지 생명의 법이다. 뱀이 친근하게 접근하더니 하나님이 정말 모든 나무의 과일을 먹지 말라고 하던가 한다. 아니야 다 먹을 수 있지만 선악과는 먹거나 만지면 죽을 수 있어. 절대 안 죽어! 그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되는거야. 이제 선악과는 먹음직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 보인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 생명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뱀의 말을 따라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시험이다. 자기가 하나님이 된다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뱀의 말은 인간 내면의 소리로 하나님을 배제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고 싶은 육체적 욕망의 표현이다. 결국 그는 하나님과을 떠나 하나님 없이 살고자 하는 욕정을 따름으로 시험에 시험을 거듭하는 삶을 남겼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나면서 많은 시험을 만나다. 고향 친척 부모 집을 떠나 가라. 친숙한 곳을 뒤로 하고 낯선 땅 나그네가 되라는 말씀을 따라 떠나면서 연속적인 고난과 어려움의 시험에 합격과 실패를 반복하였다. 자손을 번성하게 한다고 했으나 25년이 되어도 아이가 나지 않는데도 하나님을 믿어야 할까? 하나님은 100세에 낳은 약속의 아들, 사랑하는 독자를 3일길 모리아산으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누가 그런 하나님을 믿고 따를 수 있을까? 아브라함은 순종하였다. 하나님이 그의 믿음, 충성심, 진실함을 확실히 인정하고 그를 친구라 부르며 약속한 모든 것을 이루고 그를 오늘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게 하였다.
시험에는 예외가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시험을 겪는다. 예수께서 세례 받은 때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렸지만 성령은 바로 그를 광야로 인도하여 사탄에게 시험 받게 하였다. 40일간 금식하자 사탄이 나타나더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왜 굶고 있나? 돌들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할 수 있는 일이다.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의 영광을 보이며 그에게 절하면 그 모든 것을 주겠다 한다. 눈으로 보는 영광을 누리고 싶지 않는 사람이 있겠나? 성전 꼭대기에 세우더니 뛰어내리라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붙잡으리라 한다. 사람들의 인정과 추앙을 받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탄의 말을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작정하고 기록되었으되 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응하며 기도와 성령의 도움으로 승리하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임을 확인하고 사역하였다. 
성도가 세상에 살면서 육신에 이끌리어 많은 시험을 받지만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붙잡고 성령과 기도로 믿음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인정 받는 주의 사람이 될 것을 기대한다. 







Friday, September 30, 2022

세계성찬주일 World Communion Sunday

세계성찬주일 World Communion Sunday
매년 10월 첫 주일은 세계의 대부분 개신교회가 세계성찬주일로 지키는 날이다. 성찬은 세례와 함께 교회가 행하는 성례전으로 예수께서 제정하셨다. 예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음의 진리를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매체다. 
예수께서 세상에서 제자들과 함께한 마지막 유월절 식사가 최후의 만찬인 것을 아시고 식사 중 그는 떡을 들고 이 떡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 잔을 들고 이 잔은 너희 죄를 사하려고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 하시며 받아 먹고 마시라 이를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하셨기에 이를 성찬이라 부르며 교회마다 시행하고 있다.
세계성찬주일은 피츠버그 셰디사이드 장로교회 담임목사 휴 톰손 커어에게서 시작되었다. 1930년 그가 총회장인 장로교단만 아니라 세계 교회가 성찬을 통하여 하나되는 것을 바라며 제안하고 1936년 총회가 채택하고 다른 교단 대표자들을 총회 성찬에 초대하였다. 2차대전이 일어나며 세계가 나누어지고 분쟁에 휩싸인 때 미국교회협의회 세계전도부가 성찬을 통하여 교회의 일치를 염원하여(Communion and Union) 1940년 세계로 확장하고 평화, 구제, 장학금을 위해 헌금하게 하였다. 
유월절은 유대인의 해방 절기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400년 이상 종으로 신음할 때 하나님이 그들을 해방시키고자 모세를 통하여 여러 재앙을 내리다가 마지막 유대인들은 흠 없는 어린양을 잡아 피를 문에 바르고 가족이 함께 모여 고기를 먹는 밤에 하나님이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자 유대인은 쫓겨나듯 해방을 맞은 것이 처음 유월절로 그들이 매년 지키는 가장 큰 축제다.
예수께서는 자기 피를 흘리고 몸을 주며 그 피를 마시고 고기를 먹는 자에게는 죄에서 해방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유월절 어린양으로 자기가 죄를 대신하여 피 흘리고 죽임 당할 것을 말씀한다. 
식사 잔치에 참여하는 자는 모두 하나가 되고 친근한 가족이 된다. 유월절을 지킬 때마다 유대인은 더욱 하나로 결속되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로 해방된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기억 확인하며 먹고 마신 고기와 피로 힘을 얻어 역사상 많은 고통과 박해 죽음이라도 이겨내는 강한 민족이 되었다. 성도는 성찬을 통하여 꼭 같은 것을 체험한다. 
떡을 먹고 잔을 마시면 그것은 몸에 들어가 녹아서 그와 하나가 된다. 성찬의 내용물은 바로 주님의 몸과 피이기에 참여한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와 하나가 되고 주님 자신과 하나가 되며 주님의 생명과 힘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몸이 된다. 심장에서 그리스도의 피가 고동치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몸은 많은 지체로 되어 있으나 하나다. 손과 발, 눈과 코 모든 부분이 하나로 연결되어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서로 존중하고 하나가 될 때 살아 있는 몸으로 활동한다.  
교회의 사역은 바로 주께서 하시던 일로 예배와 훈련으로 제자를 양육하고 전도와 봉사로 세상으로 뻗어간다. 몸으로 또는 물질로 헌신하고 복음 전파와 생명구원, 평화와 질서, 섬김과 구제에 하나가 된다. 주님은 이제 머리를 두실 자기 몸을 찾고 기뻐하신다.
교회는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세상은 교회를 보면서 그리스도를 알게 된다. 세계성찬주일 성도와 교회는 성찬을 통하여 세상에서 살아 활동하는 그리스도임을 더욱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Thursday, September 22, 2022

애플 피킹 Apple Picking

애플 피킹 Apple Picking
지난 주간 시카고 은퇴목사회 주관으로 애플 피킹을 하는데 5가정이 참여하고 현직 목회자 두 분이 버스와 음식으로 섬기겠다고 자원하여 너무 감격이었다. 출발 장소에서 미시간에 있는 과수원까지는 두 시간 거리라니 멀지도 않게 위치하고 있다. 시카고에서 30년가까이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다. 목회할 때는 교회 밖의 일에 신경 쓸 틈이 없었지만 은퇴한 후에는 다른 여러 곳으로 부름 받아 다니면서 이런 여유를 가지지 못하였다. 아내는 과수원집 딸이라 치아를 망가뜨릴 정도로 사과를 너무 좋아하였지만 하루 사과 하나를 먹으면 의사를 볼 일이 없다는 말을 따라 나도 가능하면 매일 아침 사과를 먹는 것을 식생활이 되게 하였기에 이 날을 무척 기다리고 있었다. 팬데믹 기간 여행을 자제하고 있다가 12명 친밀한 얼굴들이 함께하는 버스여행이 참 오랜만이라 새로운 날이 온 것 같다. 
복잡한 시카고를 벗어나 하늘은 맑고 지나가는 풍경은 옛정을 일깨워주는데 중간 맥도날드에서 조반을 대접받는다. 베풀고 받는 사랑과 친절, 서로가 나누는 따뜻한 말과 마음은 모두에게 즐거움이다. 미시간 지방 길에 들어서서 과수원으로 가는 길은 정말 과수 숲이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끝이 보이지 않는 과수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고 우리는 바구니를 하나씩 집고 달구지 같은 차를 타고 사과밭으로 가다. 여기는Lemon Creek Winery로 1850년대 포도원과 포도주 생산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포도만 아니라 사과 배 복숭아 매실 등 각종 과일을 재배하고 일정 기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과일을 마음껏 따게 한다. 
줄줄이 들어선 사과나무들, 땅에 떨어진 사과, 나무에 달린 사과, 전체가 사과다. 에덴의 풍경이 눈 앞에 현실로 나타났다. 사과 종류가 다양하다. 골든 딜리셔스, 레드 딜리셔스, 몰리 딜리셔스, 갤라, 제스타, 골든 수프림, 조나골드, 엠파이어, 조나단 등 여러가지 중에서 누구나 자기가 선호하는 것을 택한다. 먼저 나무에 달린 과일을 따서 맛을 보니 일반 가게에 있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신선하고 부드럽고 즙이 많고 향기로와 입만 아니라 뇌와 마음, 눈과 몸 전체를 감동시킨다. 일행은 모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땄기에 만족스런 모습이다. 다시 찾아온 달구지를 타고 본부에 가니 종류와는 상관 없이 모두 같은 값으로 무게에 따라 계산을 한다. 모두가 흡족한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시카고로 돌아오는 길에 골든 코랄 식당에 들려 저녁 대접 받고 나니 이미 시카고는 러시 아워가 되었다. 시카고 레이크쇼 길로 들어가 세계 최고의 건축 마천루 야경을 바라보며 운전하는 목사님의 능란한 시카고 다운타운 일등 관광 안내는 기대 밖의 소득이었다. 
이번 애플 피킹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 세상을 보았다. 세계는 70억 인구로 끝없이 펼쳐진 사과밭과 같다. 종류별로 모양도 색깔도 맛도 질감도 각각이 독특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자에게는 최고의 것이라도 그것을 원하지 않는 이에게는 잊혀진 존재가 된다. 인종과 종족의 각각은 나름대로 최고의 맛과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인정 받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하나 값은 싸고 비싼 것이 없이 모두가 동일하다. 창조주 앞에서는 무슨 일을 했는가 무게는 달라도 존재로서는 누구나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것임을 더욱 깨닫고 돌아온 것이 감사하다.  





노동 기피? Shunning the Labor?

노동 기피?  Shunning the Labor?
학교가 개학을 하는데 교사가 부족하고 스쿨버스 운전할 사람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는다. 식당도 항공사도 일할 사람이 필요한 실정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집에서 일을 하거나 쉬면서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것이 일을 하여 얻는 것보다 못지 않으니 일을 기피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또 일을 잘 하던 사람들도 조용하게 사직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죽지 못하여 일을 한다는 이가 있지만 사람은 근본적으로 일을 기피하는 것 같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소위 3D (Dirty Difficult and Dangerous) 일은 더욱 더하다. 소련이 해체되고 모스크바에 갔을 때 대개의 남자들은 술병을 들고 배회하고 있었고 북한에서는 집단으로 사람들을 철로 변에 모아 두었으나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두 사람이 일을 하여도 감독자를 세워야 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한인에게 그만큼 살면서도 왜 그렇게 일을 하는가 묻기도 하였다. 
많은 사람은 일하는 것을 형벌이나 종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죄를 지은 댓가로 노동의 수고와 어려움이 주어졌다. 땅이 저주를 받아 땀을 흘리는 수고를 하게 되었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을 받았지만 임신의 고통으로 수고하여 자식을 낳는 분만을 노동 (labor)으로 표현하며 산고와 함께 양육이 힘들어 생산을 포기하는 자가 늘고 있다. 오래 전 한국에서 선교사들이 땀 흘리며 정구치는 것을 구경하던 양반이 왜 그리 땀 흘리며 일을 하는가 우리 집 하인에게 시키라 했다 한다. 한 때 미국에서도 일손이 모자라 힘든 일은 노예들이 하였지만 그들의 일을 통하여 많은 것을 이루었다.
범죄하기 전 노동은 힘든 것이 아니라 즐거움인 것으로 안다. 바하마나 켄냐에서 나무 아래에서 즐기던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 야자나 코코넛을 따서 자신과 가족의 먹을 거리를 제공하며 기쁨으로 나무를 돌보지만 노동은 하나님에게서 온 신성한 선물이다. 하나님은 천지와 모든 것을 창조하고 하나 하나 일을 끝내며 보기에 좋다고 만족해 하고 지금도 그 창조물을 관리하고 다스리신다. 하나님께서 일을 놓으면 우주와 인간 세상은 어떻게 될까? 인체는 머리만 아니라 눈코, 팔다리, 내장 등 많은 지체가 있다. 심장이나 뇌는 쉬지 않고 일하지만 심장이 5분만 쉰다면 어떻게 될까? 심장은 내가 시키거나 저절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일 하시는 것을 보여 준다. 열심히 일을 하여 몸이란 공동체와 사회가 살아 돌아가게 되고 많은 산물과 산업 발전을 일으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며 식사할 겨를도 없이 많은 일을 하셨는데 그의 일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사람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었다. 이제 그 일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맡겨졌다. 
빛이 있는 동안 일을 하지만 밤이 오면 쉬게 된다. 하나님은 밤과 안식일을 주시어 쉬게 하시고 사람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배하며 새로운 삶과 일의 힘을 얻는다. 노동절에 많은 일하던 사람들이 공원에 함께 모여 쉬며 기쁨을 나누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오늘 한국이나 미국, 세계는 많은 사람의 육체 정신 영적 노동 위에 세워져 있음을 알기에 나의 일을 통하여 보다 나은 세상을 형성한다는 감격을 가진다. 

Tuesday, September 6, 2022

축복의 특권 The Privilege of Blessing

축복의 특권 The Privilege of Blessing (9/3/2022)
어느 고등학생이 대학진학과 진로를 생각하는데 그를 아끼는 교사들과 부모는 그에게 법대를 권하였다.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법대에 가면 무엇하는가?” 하는 음성을 듣고  “변호사 판사가 되는 거지요” 하였다. 다시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지?”질문에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것이지요” 하니 세번 째 말씀이 들린다. “너도 잘못이 많은데 남을 판단하겠다고? 그 일은 내게 맡기고 너는 축복하는 일을 하면 어떻겠나?” 며 10여년 전 초등학교 어린시절 일을 기억나게 하신다. 동리 아이들이 함께 장난치며 한 시간을 걸어 학교에 가는데 그 중 두 아이가 그를 많이 괴롭혔다. 놀리고 욕하고 발길질하고 자주 무거운 도시락 책보따리를 그에게 지우고 자기는 마음대로 한다. 그는 마음과 몸이 너무 힘들어 한 번은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하나님 저들이 없으면 내가 편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겠어요” 하였다. 그 후 한 아이는 장질부사로 다른 아이는 형의 사냥총 사고로 죽었다. 그런가 하였는데 하나님은 그것이 기도응답이라 하시는 것 같아 너무 놀랍고 무서운 충격이었다. 잘못 말한 것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말을 하고 그를 미워하는 자의 집을 향해서도 저주하지 않겠다고 응답하였다. 그는 사람을 축복하는 길이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목사가 되는 길을 택하였다고 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며 내가 너를 복 주고 너는 복이 되어 많은 사람을 복 받게 하리라.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리라 하시며 그에게 축복하는 사명을 맡기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고 감사의 제물을 드렸다. 이는 제사장의 일이다. 제사장은 자신과 타인의 잘못과 허물을 짊어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짐승의 피를 드리며 용서를 구하고 그에게 용서와 축복을 선포하고 진리와 생명의 길을 제시한다. 사람은 잘못하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그 잘못을 형벌하기보다는 용서하고 생명 누리는 길을 제공하셨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그 일을 위함이다.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길을 제시하며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다가 마지막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생명을 내어주며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다 이루었다” 하시며 운명하셨다.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생명길을 여는 사명을 수행하신 것이다. 그는 평화를 빌며 축복할 때 그 축복을 받을 사람이 아니면 그것이 그에게 돌아온다며 축복하라 하신다. 용서와 축복은 주를 따르는 사도만 아니라 목사에게 맡기셨다. 오늘 모든 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 한다. 모든 성도가 다른 이를 용서하고 축복하는 특권을 가진다. 
오늘 소시얼 미디어에 무서운 비판 악담 저주가 많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은 자기 사람을 지키며 그를 복이 되게 하여 많은 사람에게 복을 나누게 하신다. 상대가 복 받을 사람이 아니면 그 복이 돌아온다. 남을 욕하고 험담하고 저주를 한다면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이다. 페르시아의 하만이 모르드개와 그 민족을 멸하려 하다가 자기와 자녀들이 죽임을 당하였고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는 기독교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 역사의 사실이다. 
예수님의 피로 용서와 생명을 누리는 주의 사람들이 제사장으로 언제나 축복하는 말을 하며 서로 복을 나누는 개인, 공동체를 만든다면 얼마나 큰 특권이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