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ly 31, 2023

살아 있다는 것 What is to be alive

살아 있다는 것   What is to be alive (7/22/2023)
인생을 3,40마일로 달리는 젊은이와는 달리 8,90마일을 달리는 노년에게는 하루를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저녁 잠자리에서 죽음 같은 잠을 청할 때 아침에 일어난다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겠나? 새 아침을 맞아 숨을 쉬고 살아 있다는 것을 알 때 감사하지 않겠나?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단지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이상이다. 어떤 지인은 15년간 특별시설에서 의식 없이 숨을 쉬고 있다. 인공적인 영양공급을 받으며 살아있다고 하지만 과연 살아 있는 것일까?
살아 있으면 움직이고 활동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같다. 노년에 고관절 골절이 되어 병상에 누우면 매일 근육이 빠지다가 대개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고 한다. 매일 걷고 간단한 운동을 하며 삶에 힘을 기르고 활동을 한다. 친구를 만나고 맛나는 음식과 마음을 나누고 웃음을 펴는 즐거움은 삶의 힘을 더하여 준다.
살아 있다는 것은 사명이요 일이다. 하루의 순간에도 시인은 시 구절이 떠오르고 음악인은 음악을 흥얼거리고 목회자라면 교회와 교인들이 머리와 가슴에서 떠나지 않겠지만 은퇴목사는 지금까지 인도하신 신실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게 되리라.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라고 다짐한 시인처럼 살아 있는 동안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께서 어떤 분인지 그가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으리라.
살아 있다는 것은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인 것을 실감하게 한다. 어떤 자는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던 중 갑자기 떠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죽음의 골짜기에서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는데 일어나 새로운 삶을 살기도 한다. 살아 있다고 하여도 내가 내 건강이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 생명을 다스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매일 알게 된다. 
살아 있다는 것은 육신만 아니라 속 사람이 살아 있음을 말한다. 생명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그가 생명이라 하시며 누구든지 그 안에 있으면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하신다. 영원한 삶은 고뇌로 덮인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낙원에서 누리는 영화로운 삶이다. 지금이라는 주어진 시간에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예수님을 모시고 그 안에 살며 그가 다스리는 천국의 맛을 보다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영원히 주와 함께 살아 있을 것을 내다보며 날마다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살기를 바란다. 





Monday, July 17, 2023

법을 지키는가? Obeying the Law

법을 지키는가? Obeying the Law (7/15/2023)
얼마 전 시카고 시에서 보내온 편지는 학교안전 지역에서 속도를 위반하였다며 벌금을 내라는 통지서였다. 내 자동차 사진과 함께 적힌 날짜와 시간은  모임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속도가 얼마라는 말은 없이 내가 6-10마일을 초과하였다고 하며 항의를 하든지 아니면 벌금을 지불하라고 한다. 놀라운 일이었으나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길에 학생이 없었지만 학교안전 지역이라는 법은 집행이 되는 것이다. 법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마음이 원하고 눈으로 보는 대로 행하며 약육강식의 혼란한 세상은 불안과 공포로 가득할 것이다. 법은 우리 삶을 제한하는 것 같으나 모두가 안전하게 생명과 자유를 누리도록 하며 우리 매일의 삶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법은 사람이 생겨나며 처음부터 있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때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과 하늘의 모든 동물을 다스리고 땅에서 나는 것을 먹으라 하시며 에덴 동산의 각종 나무의 과일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는 먹지 말라. 그것을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다. 이 법은  사람이 죽지 않고 복을 받아 생육하고 번성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의 표현이다. 
먹을 열매가 많은데도 사람이 금지된 열매를 보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 같은 탐심이 발동하여 따서 먹었다. 그러자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며 하나님이 두려워 숲 속에 숨었다. 그와 하나님과의 친근한 관계는 깨어지고 한 몸인 부부관계도 원망과 책임전가로 변하였다. 두 사람은 스스로 삶의 길을 개척해야 했고 태어난 두 아들 사이에는 살상이 일어나고 죽인 자는 그것을 부인하고 핑계를 하였지만 형벌이 따라왔다. 이에 하나님은 법에 법을 첨가하고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과 함께 많은 규정을 주셨다. 12세기 Maimonides는 이 규정들을 613가지로 정리하고 248 하라, 365 하지 말라로 구분하였다. 일반 사회에서도 수만가지 법을 만들어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규정한다. 예수께서는 많은 계명과 규정을 두 가지 곧 사람이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가장 큰 계명으로 나누었다. 
법과 규정은 하나님과의 관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것을 지키면 이로서 삶을 누릴 것이지만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관계는 깨어지고 죄책과 형벌의 두려움에 빠지기에 법을 어기고도 그것을 부인하며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중의 잘못을 저지르곤 한다. 천체의 운행이나 자연계의 만물이 법칙을 따르고 인간사회에도 규정과 도덕이 지켜질 때 아름다움과 생명을 누리지만 규정이 깨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한 가지 법을 지키지 못하는데 만 가지 법을 지킬 수 있을까? 많은 법 가운데 하나를 어기어도 죄가 되고 해당하는 형벌을 받아야 하며 행동과 마음으로 법을 어기는 사람은 누구나 형벌과 저주의 대상이기에  사랑의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나 죄는 없는 분이라 그가 우리와 함께 살며 우리 죄의 형벌을 대신 받고 죽어 죄의 값을 치르고 부활함으로 법의 정신을 완성하시었다. 오늘도 법은 우리의 죄성과 무력함을 고발하며 오직 하나의 해결인 예수를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고백하기만 하면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고 의롭게 하시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하신다.










Friday, July 14, 2023

최종적 결정 Final Decision

최종적 결정 Final Decision (7/8/2023)
식당에 가면 다양한 음식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까? 그것을 어떻게 요리하고 무엇을 첨가할 것인가 복잡한 질문에 대답하며 스스로 결정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것이 최고의 음식이거나 내게 가장 맞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어 다음에는 다른 것을 시킬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때와 형편에 따라 선택과 결정은 달라질 수 있다.
최근 한국인은 누구나 한 두 살 젊아졌다는 뉴스가 화두가 되었다. 사람마다 음력 양력으로 두 세개의 나이가 있어 혼동을 겪다가 만 나이로 통일한다고 결정하였다. 나이는 내가 얼마를 살았다는 것을 말한다. 태어날 때 한 살이라는 것은 태 속에 있는 기간을 내가 그만큼 살았다는 것을 인정함이다. 만 나이는 태 속에 있던 나의 생명이나 활동이 아니라 세상에 나온 이후를 고려하는 것이라 본다. 내가 에티오피아 의과대학에 있을 때 한 유대인 생리학 초빙교수는 태아가 태어나 8일에 할례를 받고 이름을 지을 때부터 사람이라 하여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태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많은 사람의 생각이라 이는 낙태와 그대로 연결이 된다. 
여인이 임신하면 입덧만 아니라 삶의 많은 부담이 있고 활동의 자유가 제한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건강과 경제, 가족계획 등을 고려하여 피임 또는 낙태가 많이 이루어진다 결국 1973년 소위 Roe v Wade (낙태 자유와 반대) 판결로 연방대법원은 낙태를 인정하였다. 50년 동안 많은 태아가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졌다. 누가 낙태를 하나? 2022년 통계는 20대가 전체의 절반 이상인 53%, 30대 30%, 40대 4%, 틴에이저 9%였고 인종적으로는 흑인 39%, 백인 33%, 히스패닉 21% 기타 7%였고 방식은 약물 또는 시술로 천문학적 비용이 수반되는 의료사업이다. 
낙태 논란은 처음부터 있었다. 태아도 생명이라는 생각이다. 태아의 심장 박동이 시작되는 임신 6주에는 낙태 금지, 대개는 14주 이후 또는 태아가 외부에 나와 스스로 살 수 있는 24 주에는 낙태불가 등으로 낙태를 반대하는 주가 점점 많아지는 가운데 소송이 있고 결국 연방대법원은2022년 6월24일 낙태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연방대법원이 통과시킨 낙태허용법을 같은 법원이 폐기하는 것은 ‘법은 법이다’라는 정신에 맞지 않는 것이지만 법원도 잘못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 연방 대법원 제도가 있게 된다. 낙태금지법 중심 판사는 암살의 위협을 받아 탱크로 다니고 유례 없이 청사를 철망으로 보호할 정도로 반발이 심하였다. 그래도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국가에서 최종적인 결정이 되고 모든 주와 국민은 그것을 존중하고 따르게 된다.
미국은 민권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대 직장과 대학에서 다양성을 가지고자 흑인과 여인에게 특혜를 주는 Affirmative Action제도가 생겼으나 이로서 능력 있는 자가 피부색갈 때문에 도리어 차별을 받게 되고 또한 부족한 자격자가 입학은 하였지만 졸업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은 것이 법적인 문제가 되다가 최근 연방대법원이 그 법을 폐지하고 누구나 실력으로 겨룰 수 있게 하였다. 그 밖에도 여러 다른 판결이 있었다.
세상에서 많은 결정과 판결이 있지만 마지막에 생명의 창조주로 임신전부터 나를 알고 독특하게 세상에 보내고 다스리는 하나님은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하실까 생각하게 된다. 







Tuesday, July 4, 2023

누군가의 희생으로 With Someone’s Sacrifice

누군가의 희생으로 With Someone’s Sacrifice (7/1/2023)
빌 크로더가 모스코바를 방문 중 어느 주일 크렘린 궁전 옆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였다. 신혼 부부들이 예식을 올린 후 줄을 지어 무명용사의 묘지에서 사진을 찍고 들고 있던 화환을 묘지에 바치는 것이었다. 그들이 행복한 결혼식을 하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이들 이름을 모르는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매일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음을 기억하고 감사하면 더욱 풍성함을 누리게 된다.
금년은 625전쟁 73주년이다.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한국의 존폐 위기였다.  3일만에 서울은 함락되고 조만간 남한 전체가 넘어갈 형편이었다. 급하게 유엔은 파병을 결의하고 미군이 앞장 서서 내한하였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으로 서울을 탈환하며 북으로 진격하였다. 3년 후 휴전이 되고 많은 인명피해 중에 미군 3만7천 전사, 10만 부상이었다. 한미동맹이 체결되고 한미 연대로 전쟁재발에 대비하고 있다. 잿더미에서 허덕이는 국민은 미국 및 여러 나라와 많은 자선 단체의 구호, 기술 지원으로 국가 재건에 힘을 모았다. 인재 양성을 위하여 미국 대학은 한국학생을 길렀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고 다짐하며 국민이 열심히 일하여 오늘 세계 경제 7대국에 속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나? 미지의 가난하고 조그만 나라를 전쟁에서 구하여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하겠다는 미국의 정신과 군인들의 희생에 기인한다.
시카고 근교 데스플레인스는 레이크 파크에 순회 한국 전쟁 기념관을 설치하고 참전 희생자를 추모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6.25를 전후하여 가졌다. 이곳 전쟁 기념관에는 각 전쟁에서 전사한 주민들의 이름을 새기고 이들을 기억하며 존중하고 모든 참전자에게도 같은 마음을 가진다. 이것이 미국의 힘이다. 산위에 세워진 동리라는 국가 정체성을 인식하며 미국과 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위하여 지금도 헌신과 희생을 하고 있다. 
미국의 이런 정신은 어디서 왔을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시어 가난하고 병든 자 눌리고 포로된 자에게 복음과 자유를 선포하고 결국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희생하였다. 잡히어 죽임을 당하기 전 날 마지막 만찬에서 그는 떡을 들고 감사기도를 하고 나누어 주며 ‘이 떡은 너희를 위하여 찢기는 내 몸이다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그리고 잔을 들고 감사한 후 ‘이 잔은 너희 죄를 사하고자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다. 희생하는 자기 몸과 피를 들고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사람들이 생명 얻는 것을 보기에 가능하리라. 이런 예수님 정신이 미국인의 심령에 심어지고 삶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도 세계 어디서나 재난 기근 역병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달려가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이 미국인이다. 가난하고 뒤쳐진 나라에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생명의 복음 전파를 위한 교회를 일으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희생을 실천하고 있다. 희생하면서도 감사하는 자를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으로 오늘의 한국과 내가 있는 것을 기억하고 특히 미국에 사는 우리도 감사하며 남을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을까! 










Tuesday, June 27, 2023

자유를 누리는가? Enjoy Freedom

자유를 누리는가? Enjoy Freedom (6/24/2023)
6월19일은 노예해방을 기념하는 쥰틴스 (Juneteenth)라는 미국 국경일이다. 노예문제로 남북전쟁이 일어나고 전쟁 중 1863년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령에 서명 발표하였으나 전쟁은 계속되다가 1865년 6월19일 남군이 항복함으로 전쟁은 끝이 나다. 그날 북군의 장군이 텍사스에서 노예해방을 모르고 아직도 종으로 살고 있는 이들에게 이미 2년 전에 노예해방이 선포되었다고 하자 이들은 기뻐하며 춤을 추고 그 후 텍사스는 이날을 기억하다가 1980년 공휴일로 정하자 다른 28개주와 디씨가 이에 합류하였다. 몇 년 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쥰틴스를 미국 국경일로 선포하였다. 그러나 법으로 주어진 자유와 실제로 누리는 자유는 다르다. 내게 주어진 자유를 누리면서 또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는가?
이민 초기에는 모두가 살기 위하여 많은 고생을 하였다. 부부가 함께 일을 하는 경우 퇴근하여도 부인에게는 끝나지 않는 집안 일이 많다. 잠잘 시간이 부족하나 꿈의 힘으로 버티면서도 특히 부인이 한국에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어떤 교인이 웨스팅 하우스에서 박사연구원으로 일을 하고 있던 80년대 조국에 많은 기회가 있는 것을 알고 나는 그에게 여기서는 일을 잘 하여도 진급이 어려운데 당신 같은 실력자가 한국에 돌아가면 좋지 않겠나! 하니 정색을 하며 응한다. 여기서 인종차별 받는 것이 한국에서 동족 간에 멸시 받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한다. 최근에 교수 연구원으로 은퇴한 후 미국에 온 이에게 들으니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운 여기서 살고 싶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어디나 살고 무슨 일, 말이나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데 어찌하여 ‘헬조선’이라며 떠나고 싶은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한국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내세워 이슬람 사원을 여기 저기 세우고 있는데 뜻 있는 주민들이 반대하며 진정서를 내고 있다. 나의 자유가 이웃한 다른 사람의 삶을 방해하며 불편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래 전에 이미 교회의 종소리가 사라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집트에서 해방된 히브리인들은 자유를 가지고 광야의 고난을 겪으며 자유롭게 불평과 원망을 하며 종생활의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하듯이 자유가 주어져 있으나 스스로 굴레를 쓰고 얽매이곤 한다. 열심히 일하여 경제적인 안정을 가지며 가진 것으로 만족하고 자유롭지 않은가? 병상에 눕지 않고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으로 마음에 감사를 가질 수 있는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에게 자유함을 가질 수 있는가? 남의 말이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나의 존재나 소유/업적을 다른 이와 비교하며 자유를 잃는다면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되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한다. 그리스도는 죄와 죽음에서의 해방과 자유를 주셨다. 하나님의 아들로 죄가 없으신 그가 우리 죄의 형벌을 대신 받아 죽어 묻히고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죄와 죽음을 벗어난 영생의 자유, 이를 지키는 것은 나의 몫이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죄와 죽음의 두려움에 시달리는 것은 종의 멍에로 돌아간 것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부하든 가난하든 평화이든 전쟁이든 진리인 예수를 알고 믿음으로 오는 참 자유를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을까! 






Monday, June 19, 2023

정원에서 식탁으로 Garden to Table

정원에서 식탁으로 Garden to Table (6/17/2023)
미국에서는6월 보름달을 딸기 달(Strawberry Moon)이라 한다. 원주민들이 6월 보름이 되면 딸기를 수확할 때라 그렇게 불렀다. 심고 가꾼 것을 거둘 때라 기쁨으로 수확하고 즐기게 된다. 일을 하고 그 결과를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보람되고 만족스런 일이다.
학위공부를 하던 시절 아파트 입주자에게 학교는 조그만 땅을 나누어 주고 농사를 하게 하였다. 우리가 받은 땅은 감당할 만한 15 자 5자 정도였다. 그 땅에 배추 무 파 등 필요한 것들을 심었다. 나는 공부에 열중하고 아내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돌보았더니 수확할 때에 땅에서 나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실감하였다. 그 땅에서 난 것으로 김장을 하여 겨우내내 먹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훨씬 지나 에티오피아에 선교사로 갔을 때 집 앞 좁은 공간을 개발하여 정원을 만들어 꽃도 심고 채소도 심었다. 일년 내내 더운 곳이라 언제든지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면 자라나 정직하게 잎과 열매를 내었다. 아침마다 ‘정원에서 식탁으로’를 싱싱하게 즐겼다. 
미국으로 돌아와 집에 텃밭을 만들고 땅을 파고 케일 상추 토마토 호박 오이 등 여러가지 채소를 심는다. 이른 봄 씨를 뿌린 화분을 방안에 두고 싹이 나오면 낮에는 햇빛에 내고 밤이면 방에 들려 추위에서 지키다가 때가 되어 밭에 옮겨 심는 정성을 드린다. 물을 주고 기다리면 어느 사이 자라나 케일 상추가 식탁에 오르고 고추 호박 오이도 잘 자라고 있으니 얼마 후면 또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유기농 청정채소를 기르고 먹는 즐거움이 크지만 비싼 채소를 사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심지 않고 기르지 않으면 기대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겨울 지난 땅을 뒤집어 고르게 하고 씨나 모종을 심어 자라게 하는데 자라는 채소를 해치는 것도 있다. 나비가 알을 낳고 해충이 침범하지만 잘 자라는 싹을 토끼가 먼저 시식을 하며 전체를 먹어 치우기도 한다. 이를 막고자 올빼미를 두어 지키기도 하지만 우리는 울타리를 두르기는 하나 어릴 때 풀을 주며 기르던 토끼를 생각하며 나누어 먹기도 한다. 자기는 수고하지 않고 남의 수고한 열매를 얻어 먹거나 훔쳐 가는 자도 있다. 
아담과 하와는 동산에 살며 그것을 지키고 경작하고 가꾸는 즐거움을 가졌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벗어나자 그 일이 땀 흘리는 수고가 되고 그 후에야 먹을 것을 얻었다. 힘들다고 일하지 않으면 먹을 것을 얻지 못한다. 
학교에서 졸업하는 계절에 열심히 공부한 학생과 그러지 않은 자의 차이를 본다. 졸업을 하는가 못하는가 이다. 열심히 연구 개발하고 과학과 산업을 발전시키고 일을 함으로 이름도 내고 좋은 일도 많이 하지만 먹는 것이 없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지혜자는 묻는다. 먹을 때의 즐거움은 일할 때의 수고를 잊어버리게도 한다. 성경은 자기 손으로 열심히 일하여 먹으라,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함께 각각 다른 재능을 주시고 때가 되어 그 재능으로 얼마나 일을 하고 수확하였는지 보고 상벌을 내리신다. 열심히 일하는 자체가 즐거움이지만 또한 인생졸업시에 하나님의 잔치상에 초대받으면 그보다 더 기쁨이 있을까!






Monday, June 12, 2023

졸 업 Graduation/Commencement

졸  업  Graduation/Commencement (6/19/2023)
6월이면 각급학교 졸업식이 있다. 초등학교나 고등학교보다는 대학 졸업이 성대하고 많은 사람이 모인다. 내게는 첫 외손녀가 토요일 대학 학위수여식, 월요일 전체 대학교 졸업식을 하기에 친가 외가의 모든 가족이 다 모인다. 그가 4년간 열심히 공부하여 졸업하는 것을 축하하지만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기회가 되어 좋다. 
졸업은 영어로 Graduation이지만 또한 시작이라는 의미의 Commencement 라 한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졸업에 요구되는 모든 과목을 이수하고 논문을 제출하고 통과되어 자격이 갖추어지면 Commencement라는 졸업식에서 가운을 입고 캡을 쓰고 단상에 올라가  총장으로부터 증서를 받는다. 그 중에서 인턴이나 연구. 학비 완불 등의 책임을 완수한 사람들이 Graduation Ceremony를 하지만 대개 이 둘을 하나로 묶어 하기도 한다. 그런데 모든 과정과 요구사항을 마치고 졸업하는 것을 어떻게 시작이라고 부르게 되었나?
중세 시대 유럽 대학에서 졸업을 위하여 논문을 쓰고 전문교수 앞에서 발표하고 질문에 잘 응답하여 통과가 되면 학회에 회원이 되는 자격이 부여되어 commencement라 하다가 후에는 논문통과에서 학위수여로 생각이 전환되어 졸업의 의미가 되었다. 이것이 미국에 적용되고 19세기에 졸업식은 학적 요구를 충족한 것을 인정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로 나아가 새로운 삶의 여정을 시작하는 의미를 포함하게 되었다. 곧 졸업은 마침이요 시작이라는 이중 의미가 된다. 이것이 이민의 현실로서 조국을 떠나며 그곳 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졸업과 같다고 할까? 각급학교 졸업이 있듯이 삶에도 이것이 반복된다. 모세는 이집트 노예 히브리인 아들로 태어났다. 히브리인의 번성을 두려워한 왕명으로 그는 3개월 후 나일강에 던짐 받는다. 히브리인 아들의 생명은 끝이 난 것이지만 왕의 공주가 강에서 아이를 발견하고 양자로 삼아 왕궁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으며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나이 40에 동족을 학대하는 이집트인을 죽인 것이 탄로되어 도망하여 낯선 땅으로 가 목자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았다. 40년 지나 산에서 양을 치다가 여호와를 만나고 히브리인을 탈출시키는 새로운 일을 위하여 목자의 삶을 끝낸다. 히브리인은 노예 삶에서 탈출하여 약속의 땅을 향해 광야를 행진하는 동안 모세가 중심에 있다. 40년 광야생활을 지나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산에서 하나님은 모세의 삶을 끝내고 아무도 그의 무덤을 알지 못하였으나 오랜 후에 변화산에서 엘리야와 함께 예수를 만나 탈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세는 죽었으나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전 한국에서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옷과 신을 시신이 있는 지붕으로 던지며 이 옷 입고 이 신 신고 잘 가시오! 하직인사를 했다. 죽어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고 믿었다. 우리 족보에는 죽음을 졸업의 졸로 표시하며 인생과업을 마쳤다는 것이나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는 표시다. 이생을 졸업하면 확실한 삶이 열리는 것을 주님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길과 진리, 생명이라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간다고 한다. 두 사람이 죽어 한 사람은 유황불이 타는 음부로 가고 다른 이는 천국의 아브라함 품에 간 것을 보여주신다. 이생의 삶을 졸업하면 그것이 끝이 아니다. 어떤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