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22, 2021

사순절 Lent

 

사 순 절 (Lent) (2-18-21) 
며칠 전 우리의 큰 명절 설을 지났지만 우리에게는 전통적으로 다달이 명절이 있고 근래에 와서 3.1절, 8.15 등이 첨가되었다. 이런 명절은 내려오는 문화를 지키고 함께 모여 잔치하고 그러면서 기억과 다짐을 한다. 추석은 수확을 기뻐하고 또한 새해의 풍년을 기원한다.  3.1절은 나라와 자아를 빼앗긴 식민지로부터 회복을 염원하는 민족운동을 기억하고 소중한 자유를 지키고자 한다. 
어느 민족에나 명절이 있지만 유대인의 유월절은 그들이 에집트의 종살이로 고생 신음하면서도 해방의 길이 없을 때 하나님의 개입으로 자유를 얻고 새로운 민족으로 탄생된 것을 기억하면서 능력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들은 어떤 역경도 이기는 힘을 얻는다. 유월절을 지나고 나면 그들은 더욱 강한 민족이 되고 강화된 생존 근육은 그들의 역사를 이끄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명절은 지난 날의 기억을 넘어 민족 집단을 강하게 결속하여 오늘과 내일로 뻗어가게 한다.  
기독교의 큰 명절인 성탄절과 부활절은 대림절 사순절이라는 준비 기간이 있다. 금년은 4월4일이 부활절이라 그 이전40일을 준비기간으로 가진다. 40이 사순이라 사순절이 되고 숫자 40은 노아 홍수, 모세와 엘리야의 금식, 예수의 광야 시험과 금식이 모두 40일로 고난과 관련된다. 예수님의 영광스런 부활은 십자가 고난 후에 오는 것이기에 니케아 교회회의(325)는 부활주일 전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그의 고난을 기억하는 기회로 삼고자 사순절을 정하고 시작의 첫날을 ‘재의 수요일’이라 하였다. 재는 참회와 슬픔의 표시로 이마에 재를 바르고 지난 죄를 참회하며 사순절을 시작한다. 
사순절에는 교회에서 출교되거나 성찬참여를 금지 당한 사람이 회복되는 훈련을 하고 새 신자가 세례 받을 준비를 하고 일반교인은 겸손하게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동참하게 된다. 교회는 기도와 금식, 자선 세 가지를 시행하였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시키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기도로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로 용서하시는 분임을 믿으며 감사한다. 집을 나간 탕자가 돌아올 때 사랑으로 받아주는 아버지와 같다.  금식은 육체의 소욕을 제어하며 물 이외의 모든 음식을 금하거나 또는 오후 3시 이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며 육류를 금하다가 근대에는 금요일만 육류를 제외하기도 한다. 또는 오락이나 기호품을 금하고 절제하며 부족함을 체험한다.  자선과 구제는 주님의 사랑과 희생의 삶을 본받아 내 가진 것으로 구제하고 국내외 많은 자선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사순절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나? 개인이 주님의 고난을 조금이라도 경험하면서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 영혼과 삶이 성령의 은혜와 능력으로 새로워지는 기회가 된다. 나 이외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과 형편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나로서는 처음 목회하던 1978년 기도와 금식 중에 영혼의 깊은 어둠에 빠졌지만 토요일에 부활하신 주님을 놀랍게 경험하고 영광의 부활주일을 만나다. 이것이 나를 목회자가 되게 하는 힘과 바탕이 되었다. 가장 큰 유익은 나의 금식이나 구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은혜와 사랑으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인격과 가슴을 확인함으로 내 믿음과 삶이 확고하게 되어 어떤 물결이나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 큰 축복이요 힘이다.  
사순절은 나를 위한 것이라 이 기간에 믿음과 삶이 새로워지는 축복이 임하기를 기원한다. 










Saturday, February 13, 2021

흰소, 붉은 소 The White Cow, The Red Calf

 

흰소, 붉은 소 The White Cow, The Red Calf 
금년은 신축년, 60년에 한번 오는 흰소의 해다. 소는 우리 민족과 특별히 친밀하다. 농사 짓는 인류와 함께해 온 소라 농사가 삶의 근본이던 우리에게 소는 삶과 직결되어 있다. 소의 성격이 우리와 닮은 점이 있어 더욱 그러하다. 소는 꾸준하다. 시간을 나누는 간지에 넣을 동물의 순서를 정하고자 경주를 시켰더니 소는 느리기에 일찍 출발하여 결승점에 먼저 도착하였는데 그 뿔에 매달려 온 쥐가 뛰어 내리며 “내가 1등”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소는 논과 밭의 일, 짐을 나르는 일을 하기에 가족의 하나로 생각되어 생구라 부르고 꿈의 살찐 소는 풍년, 파린 소는 흉년을 말하기에 사람이 음식을 먹듯이 소에게도 여물을 잘 먹인다. 
소는 유순하여 어린이의 말도 잘 듣기에 여름철 소를 먹이고자 풀이 있는 산에 가서 놓아두고 친구들과 놀다가 오후에 배불리 풀을 먹은 소를 찾아 집으로 돌아온다. 때로 소를 찾지 못하면 동민들이 등불을 들고 찾아나서기도 했다. 소는 재산 목록 1호가 될 정도로 귀하고 값진 것이라 땅을 사거나 학비로 목돈이 필요할 때 사용되기에 한 때 상아탑 대학을 우골탑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중섭 화가의 흰 소 (1954)는 미술평론가 모임에서 21세기에 남을 한국의 그림이 되었다. 깨끗함, 기백, 역동감과 진취성, 범접하지 못할 위엄 등이 백의민족의 삶과 기상을 닮은 것이다. 소는 하품 외에는 버릴 것이 없다고 하듯이 모든 것을 내어준다.  
성경은 공백이 아니라 인간상황에 주어지기에 그때나 오늘이나 같은 사람이라 성경에 소가 많이 나온다.  농사와 운반으로 열심히 일하는 소는 하나님의 한 모습이다.  하나님을 둘러싼 그룹천사의 사면 얼굴의 하나가 소로 나타나고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말하는  4복음의 마가복음은 쉴틈 없이 일을 하는 소의 모습이다. 
소는 재산이고 정결한 동물이라 고기와 젖은 양식이 된다.  소는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제물로 사용된다. 사람은 허물과 죄로 부정하여 거룩한 하나님을 대할 수가 없기에 하나님 앞에 서려면 정결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신에게 기도하기 전 정화수로 몸을 씻는 관습이 있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라 누군가 대신 죽음으로만 죽음을 면하기에 소나 양 염소 등을 사용한다. 생명이 피에 있기에 피를 대신 흘림으로 죽을 자를 살게 하고 피 이외의 나머지 부분은 불에 태우든지 또는 음식으로 나누고 잔치를 한다.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온 때 소를 잡아 잔치한 것은 죽었던 생명이 살아온 것을 기뻐함이다. 사체와 접촉하여 부정하게 된 자가 정결하게 되려면 멍에 메지 않고 새끼를 낳지 않은 붉은 암송아지를 성밖에서 잡아 전체를 불태우고 그 재를 섞은 물을 부정한 자에게 뿌린다. 하나의 의식이지만 이는 예수께서 성밖 십자가에서 죄인 대신 죽어 흘린 그의 피를 믿고 받아드리면 누구나 용서와 정결함을 입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됨을 보여준다.  
2021년 정결한 흰소의 해에 붉은 소 예수의 피로 씻음 받고 굽힐 줄 모르는 기백으로 풍성한 나날을 누리기를 소망한다.  

February 12 is the new years day of the year of the white cow in Korean traditional lunar calendar. The cow is like Koreans in many ways, faithful hard labor, gentleness and boldness with energy, and giving all things away for others. It is regarded as a family member. The White cow shows pure cleanness, a symbol of Koreans, the race of white clothes. The cow was offered as sacrifice for unclean sinners to make them clean and ransomed, which shows in advance the person and work of Jesus Christ, who is portrayed as a cow in Gospel of Mark as well as one face of Cherubs, character of God himself. In Jesus anyone is clean and ransomed.










Monday, February 8, 2021

“교회가 3파입니다” The church in three factions

 

“교회가 3파입니다” The church in three factions 
미국은 처음부터 이민의 나라로 자기가 살던 나라를 떠나 새로운 꿈을 찾아 온 사람들 또한 여러 분야의 필요를 채우고자 초청된 전문직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어떤 배경이든지 일단 미국에 와서 살면 멜팅 팟 (찌개 그릇)으로 모두가 녹아 하나로 융합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세월이 지나 뚜껑을 열고 보니 기대와는 달리 샐라드 볼처럼 각 인종 종족 언어가 자기 모습 그대로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자 이제는 각각이 자기 위치와 능력을 발휘하며 서로 연결하고 조화를 이루는 큰 모자익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국가정책이 변화하였다. 사람마다 생각과 방침이 다르기에 차이와 대립은 조직체에도 나타난다. 
공산주의는 다른 것이 용납되지 않지만 민주사회에서는 표현과 모임의 자유가 주어지기에 서로가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받아준다. 미국 정치에서 민주 공화가 대표적이나 10여 정당이 있고 이스라엘은 49 정당이 있으나 나라의 평화와 일치를 위하여 협력하며 모자익을 형성한다. 미국이 드물게 힘든 대통령 선거를 지나며 국논이 완전히 분열 대립 상태였기에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하며 나라의 일치와 평화를 우선으로 강조하였다. 그러나 정책이 다르다고 상대를 배제한다면 과연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교회도 생각과 기대가 서로 다른 사람의 조직체이기에 예외가 아니다. 어느 교회는 목사가 떠나며 3파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목사가 떠나기를 원하는 사람, 있기를 원하는 사람,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겠지만 다른 면으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교회는 크기가 어떠하든지 목사가 없이는 교회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기에 목사는 필요한 존재이지만 어떤 이유로든 목사가 떠나는 일이 생기고 그 때마다 교회에는 상처와 긴장이 있고 도전과 기회가 된다. 이런 교회에 담임목사가 바로 부임하면 자기 목회 방침을 제대로 펼 수가 없고 다시 문제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기에 전환기 목사 제도가 있다. 
전환기 목사는 일정 임기가 정해지고 담임목사 승계가 불가능하며 그의 주된 일은 교회의 상처치유와 일치를 이루어 담임목사 부임을 위한 길을 준비하며 교회의 역사를 존중하고 교회의 정체성 곧 사명을 확인하고 교회 지도력을 양성하고 교회가 속한 교단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교회 안정을 위해서는 먼저 장로들이 바르게 방향을 잡아야 한다. 
바다에 항해하는 배들은 레이다가 없을 때 북극성의 위치를 확인하고 방향을 정하듯이 교회의 방향설정 나침반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역사하심이다. 장로 수양회를 통하여 이들로 말씀에 서서 기도하게 하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한다. 이들이 교회에서 교인을 위하여 교인과 함께 기도하게 하여 전체적으로 주의 은혜와 역사를 경험하게 되니 교회생활에 동기가 부여되어 직분자 교육, 제자 훈련과 주중 성경공부에 서로 격려하며 참여하게 된다. 기쁨과 감격으로 찬양하고 예배하며 교회의 각종 사역에 헌신한다. 당회 모임도 감사와 웃음이다. 이런 변화가 전체적으로 일어나 교회는 하나의 모자익을 형성한다. 
몸이 하나요 지체는 많으나 한 몸을 이루어 머리가 원하는 일을 수행한다는 말 그대로다. 그러지 못하면 병이라 말씀과 기도, 성령의 역사가 약이나 수술의 일을 한다. 담임목사의 길은 준비되고 전환기 목사는 떠날 때가 되어 교회는 안정 속에서 새로운 목사와 감격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Monday, February 1, 2021

이런 교회? A Church like This?

 

이런 교회? A Church like Thins?
오래전 어느 목사가 찾아와 문제 없는 교회를 하나 소개하여 달라고 한다.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나는 그에게 그런 교회가 하나 있다고 하니 크게 관심을 보인다. 그것은 천국에 있지! 하였더니 실망을 하는 것 같다. 사실 문제 투성이 사람이기에 이런 사람을 위하여 교회와 목회자가 있다. 주께서 바로 문제의 인간 가운데 오시고 그들을 위하여 교회를 세워셨다. 
이런 교회에서 40년간 사역을 하고 마지막 8개월 안식년을 가진 후 은퇴식을 하기로 했으나 사실상 은퇴를 한 것이다. 40년! 충분히 일했으니 이제는 쉬고 편히 지나자! 원하던 여행을 하며 친구를 만나며 여기 저기를 찾으니 참으로 자유롭고 편한 시간이다. 한 달이 되던 밤 옆구리가 아파 온다. 의사와 통화한 후 12시간을 운전하고 돌아와 의사를 만나니 슁글(대상포진)이라 한다. 약이 없기에 아플만큼 아파야 한단다. 이런 병도 있나? 하지만 도리가 없다. 한 달 동안 앉으나 누우나 계속 통증에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다. 그렇게 아픈 것은 처음이다. 
 주님, 어떻게 된겁니까? 물으니 대답이 들려온다. 40년 사역했으니 이제 편안하게 지나자고? 나와 한 약속을 기억하나? 잊고 있던 43년 전의 일을 생각나게 하신다. 대학을 졸업하며 당시 죽을 병에 걸렸다. 멀리 바닷가의 요양 병원을 찾아가니 저녁이라 하루밤을 여인숙에서 지나게 되다. 희망이나 내일이 없고 삶의 의욕이나 죽을 힘도 없다. 하나님 앞에 앉아 예배하는데 주께서 말씀을 주신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그가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않으셨도다(시118:17,18). 믿어지지 않으나 그것은 주의 말씀이다. 죽으려고 왔는데 죽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왜 이런? 또 살아서 어떻게? 여호와의 훈련이니 그의 행사를 선포하라 하신다. 믿음의 눈이 열리며 희망과 기쁨 감사가 속에서 올라온다. 삶의 이유와 사명이 확실해진다. 
 슁글의 통증 가운데 이말씀을 기억하자 주께서 일을 하라면 순종하겠습니다! 주께 응답할 수 밖에 없다. 바로 노회에서 전화가 오고 주일 설교 요청을 받은 곳이 미네소타 교회다. 금요일 저녁 어느 장로 댁에서 10여명이 모여 정말 배꼽을 잡고 웃는다는 말 그대로였다. 목사 장로가 모여 그렇게 웃을 수도 있는가! 농학(조오크)대학 학장이라는 장로가 있어 모두가 입만 열면 웃음이다. 몸의 통증이 사라지고 있었다. 주일 강단에서 보니 앉아 있는 400명 회중이 목자 없는 양이라는 것을 실감하자 가슴이 아프다. 예배 후 당회원과 노회대표 모임에서의 6개월 전환기 목회 초청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나? 
 석 달 동안 년말과 새해를 준비하자 당회가 나에게 몸이 불편한데도 수고하였으니 휴가를 다녀오라 한다. 정해진 사역기간에 무슨 휴가는요? 사양하니 1월 당회에서 비행기표를 건네주며 플로리다에서 쉬고 오라고 한다. 
 교회에서 얻어준 아파트는 골프장 바로 옆이다. 아내가 뉴욕에서 걸어보고 싶어하던 골프장을 아침 저녁 걷는다. 아파트 전망은 좋지만 북향이라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음산한 것을 장로들이 보고 갔다. 브라질 상파울로 교회집회를 위해 부부가 1주일을 다녀오니 그 사이 정남향 아파트로 모든 것을 옮겨두었다. 두 번 더 이 교회의 전환기 목회로 모두 5년정도 사랑을 나누었으니 나야말로 얼마나 복받은 목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