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6:22-27 여호와의 얼굴 The Face of the LORD (5/16/21 은혜와 진리장로교회)
이사야 43:4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한다고 하신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보배롭고 존귀한 사람이다. 가슴에 두 손을 얹고 고백하자. d옆 사람에게도!
누가 가장 보배롭고 존귀하게 생각하나? 부부, 자녀?
5월 가정의 달 가정마다 부모와 자녀, 조부모와 손자녀, 부부와 형제 모두가 행복한 줄로 안다. (사진을 보인다) 그 중 행복한 순간을 말하면 할아버지가 손자를 가슴에 안고 들여다 보는 것이 아닐까? 할아버지는 아이에게서 눈을 뗄 줄 모르며 미소를 짓고 손자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모습으로 잠을 자고 있거나 또는 마주 보며 방긋 웃는다. 이것이 가족 모두에게 행복이요 복이다.
성경 본문에서 이런 광경을 본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러하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400년간 종 생활을 하며 신음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그 소리를 듣고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해방시킨다. 성인 60만이 애굽을 나와 광야를 행진하며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가고 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유를 누리며 살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40년 광야 생활은 너무나 힘들어 일 세대는 약속의 땅을 보지도 못하고 다 죽었다. 약속의 땅에 도착한다고 해도 그곳은 그들을 환영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의 강한 민족들은 침략자들과 대항하여 전쟁을 하며 자기 땅을 지키려고 한다. 싸움이요 고통이다. 약속의 땅이라고 찾아온 미국에서 살기 위한 24/7 노동, 폭동이 와도 뉴욕 사업가들 철문이 없어 문을 내릴 수도 없이 일을 하지만 항상 소외를 느끼고 오늘 아시안 혐오를 통하여 경험하는 것이 광야의 삶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이런 때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시하여 아론으로 그 백성을 축복하게 하신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신다. 광야에서 고생하는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품으며 그들의 행복, 복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이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품에 안고 내려다 보며 웃고 축복하는 모습이다.
여기 여호와가 세번 나온다. 여호와는 스스로 계시는 분, 모든 것을 없는 데서 만드신 창조주,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그 분, 그 이름이 여호와다.
1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그는 복을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후 그에게 처음 하신 말씀은 축복이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1:28)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그에게 복을 주어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 (창12:2)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제사장 아론이 백성을 축복하고 오늘 목사가 교인을 축복하고 또 아버지는 자녀를 축복한다.
이삭은 맏아들 에서를 축복하려 하는데 리브가는 아버지의 축복을 야곱이 받도록 한다. 에서는 내게도 복을 주소서. 사람들은 복 받기를 원한다.
복이 무엇인가? 이삭의 축복을 보면 야곱에게는 풍성한 양식과 부, 종을 부리는 것이 복이다. 에서에게는 동생을 섬기며 칼을 의지하고 전쟁하며 자기를 지키는 것이 복이다.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양을 치며 외사촌과 결혼하고 20년을 살며 열한 자녀가 나고 재산도 많이 모으는 복을 받았다. 외사촌과 외삼촌의 언어와 표정이 달라지고 불편하다. 그곳은 자기가 영주할 곳이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형 에서가 20년 전 아버지로부터 받을 복을 동생 야곱에게 빼앗긴 것을 보복하고자 400명 군사를 이끌고 야곱에게로 오고 있다. 야곱에게는 위기다. 자녀들과 아내들과 양들을 종들과 함께 앞서 보내고 자기는 얍복강 가에서 밤새껏 어떤 사람과 씨름한다. 새벽이 되어 상대가 가겠다고 놓으라 하나 야곱은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다고 한다. 무슨 축복인가? 아내와 자녀 많은 재산이 있으나 현재 위기를 벗어나고 생명의 안전과 안녕, 형의 분노가 풀리어 칼을 꽂는 것 그리고 형과의 화해라 본다.
복복복, 우리가 복을 원하나 이 복은 내가 원한다고 가지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 모든 것을 있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주셔야 한다. 자연 만물과 우리 생명 가정 모든 것을 주시고 주장하시는 이가 여호와시다. 그가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여호와 이름으로 복을 주신다. 그 자신이 복이다.
여호와는 너에게 복을 주어 너를 지키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전체에게 복을 주시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나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신다. 그 복은 지키신다는 것이다. 광야생활에서 먹을 것, 가는 길, 칼이나 전쟁, 재난이나 흉년, 질병이나 짐승 등의 위험에서 보호한다. 울타리가 된다. 약속의 땅이라도 위험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이 지키신다. 눈동자 같이 지키신다. 내가 독수리 날개로 너를 업고 지켰다 하신다. 시121편은 우리 영혼을 지키신다. 육체와 물질도 중요하지만 영혼이 쇠잔하지 않도록 악의 세력에 넘어가지 않도록 지키신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한다. 사탄이 너를 밀 까부르듯 하고자 요청하였으나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한다.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신다. 집을 나가지만 집에 돌아온다는 보장이 있나? 뉴욕의 한 집사, 한국에서 사업, 외아들 데리고 배를 타고 바다 낚시, 열심히 낚시를 하다 보니 아들이 없어졌다. 찾을 길이 없다.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주께서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고 집에 돌아오게 하신다. 이 하나님은 주무시지도 않고 졸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지키고 계신다. 우리 생명과 영혼이 안전을 누릴 수가 있다.
주께서 지키시면 누가 감히 해할 수 있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을 외삼촌 라반이 추격할 때에 주께서 간섭하여 지키셨고 에서의 칼에서 하나님은 야곱을 지켜 주셨다. 요일5:18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 주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아무도 없다.
2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한다. 여호와의 얼굴은 햇빛처럼 빛을 비추신다. 얼굴은 여호와 자신이라 곧 빛이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한 때 어둠이 덮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공허하고 혼돈하다.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니 보시기에 좋았다. 빛이 들어오면 볼 수 있고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5월의 햇빛이 비치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나님 자신이 빛이라 그가 임하면 아름다움이 있다.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씨름할 때 축복을 구하자 야곱의 이름을 묻고 이스라엘이라 하였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그가 하나님을 만났던 것이다. 그곳 이름을 브니엘 곧 하나님의 얼굴이라 하였다. 야곱은 하나님의 얼굴, 그의 빛을 직접 보았던 것이다. 그는 씨름하다가 허벅지 관절이 위골되어 절둑거리게 되었으나 그가 걸어가는 길에 해가 돋아 비치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금까지는 내 힘, 생각으로 살았으나 이제는 주의 빛을 따라 살리라. 불기둥이 인도하듯 주의 빛이 그의 길을 비치며 인도하고 있었다. 길이 험하고 에서가 와도 주께서 길을 여신다. 힘차게 나가고 있다.
하나님이 빛을 창조했으나 어둠을 없애지 않고 빛과 어둠이 공존하게 하신다. 대조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더하신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고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칭하시다. 하나님의 얼굴을 비추어도 빛을 받아드려 낮에 속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전이 어둠 속에 사는 자들이 있다.
애굽의 종생활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얼굴빛이 그들을 해방시키고 그들은 광야를 행진하며 많은 이적을 친히 보고 체험하였다. 애굽에 많은 재앙이 내릴 때 이스라엘과 애굽을 구분하시는 것, 애굽 사람 집에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든 장자가 더 죽임을 당하는데 이스라엘 집에는 아무런 죽음이 없었다. 홍해가 마른 땅 길을 내어 건너게 되나 애굽 군인은 모두 물속에 수장되는 것, 광야를 지나며 갈 길을 알지 못하는데 구름 기둥 불기둥의 인도, 쓴 물이 단물로 변하는 것,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에서 강같은 물이 흐르는 등 매일이 기적이었다. 여호와의 얼굴 빛이 함께 하심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과 이적과는 상관없이 어둠 속에서 불평 원망한다.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 한다. 이들의 심령은 어둠이라 불신과 두려움 우울 고통 무지로 덮여 있다.
어둘 때는 보이지 않다가 빛이 비치면 얼굴이나 머리 등의 모습이 나타나고 무엇이 부족한지 보인다. 먼지 같은 속의 허물과 죄도 나타난다. 광야 세대에 여호와의 얼굴 빛이 비치니 그들의 죄가 나타나고 정죄되면 그들은 심판을 받고 죽게 된다. 예수께서 빛으로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여 빛을 받아드리지 않는다 (요3:19) 죽을 운명이다.
그러나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사랑으로 용서하신다. 그들이 행한 대로 하면 심판 받아 죽을 것이지만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기에 그들을 용서하고 용납하신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을 시켜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에 절하며 섬기고 춤춘다. 하나님이 진노하여 그들을 멸하고자 하였으나 모세가 중재하며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용서하여 달라고 하다. 용서 못하면 차라리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한다. 주께서 뜻을 돌이키고 용서하였다. 은혜다. 우리가 잘하기 때문에 잘못이 없는 선행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사람이 누가 있나? 바울은 자랑이 많은 사람이다. 율법을 따라 흠 없이 살려고 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을 박해하고 죽이는 것을 하나님을 위하는 것으로 알고 다메섹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여 엄벌할 생각이었다. 햇빛보다 더 밝은 주의 빛이 그를 비추었다. 그는 땅에 엎드러지고 그가 자랑하던 자기 지식 자기 경건은 모든 것이 큰 죄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다. 심판 받아 죽음이 마땅하다. 그러나 아나니아의 안수함으로 새로운 빛이 들어오니 보지 못하던 하나님 아들 구주 예수를 보게 되고 그 입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의 행한 대로 갚지 않고 그를 자기 그릇으로 선택하셨다. 그의 은혜로움을 발견하였다. 그는 인간적으로 자랑스런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주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것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그에게 복이다. 어둡던 눈이 열리어 생명의 보화를 발견한 것이 복이 아닌가!
3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나를 향하여 그 얼굴을 들고 바라보신다. 잊혀진 존재, 멀리 있다고 생각되는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자기 백성을 향하여 눈을 떼지 않고 계신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한 후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다.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라 왕상 9:3. 많은 곳 중에서 솔로몬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하고 봉헌한 이 성전에 주의 눈이 항상 살피고 함께 하신다. 우리가 우리를 주의 것이라고 고백하며 그에게 드리면 주의 눈은 항상 우리를 향하신다. 어느 사람이 그린 그림이 국전에 입상하여 전시회를 갖는다.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그 그림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종일 그것을 바라보고 있어도 부족함을 느낀다. 주께서 자기 형상으로 사람을 만드신 때 이는 창조의 면류관, 보기에 참 좋았다. 좋고도 좋았다. 눈을 뗄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이런 인간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떠난다. 하나님을 피하고 숨는다. 하나님을 피할 곳이 없지만 그래도 숨는다. 아담이 에덴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닐었는데 그가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게 되어 나무 사이에 숨었다. 주께서 그를 찾아오셨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어디 있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왜 숨는가? 나오너라 네 얼굴을 보자 얼굴을 들라는 것이다. 주의 얼굴을 그에게로 향하신 것이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 멀리 가서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모두 잃었다. 흉년이라 먹을 것이 없어 남의 집 돼지를 치며 돼지가 먹는 것을 먹어야 했다. 그는 고생하며 정신이 난다. 아버지 집은 품꾼이라도 먹을 것이 풍부한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돌아가리라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아들이 떠난 후에 언제 아들이 돌아올 것인가 하며 아들이 간 쪽으로 눈을 향하고 있다.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거지가 된 아들이 멀리 오는 것을 보자 뛰어가서 그를 안고 반긴다. 아들은 엎드려 죄를 자복하며 나는 아들의 자격이 없다고 하나 아버지는 살진 소를 잡아 잔치를 한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고 잃었다가 찾았다고 한다. 관계가 회복되고 화목이 이루어진다. 큰 아들은 불평한다. 나는 어김 없이 아버지를 섬겼는데 염소새끼 한 마리 주지 않더니! 내 아들아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닌가! 그를 그대로 인정한다. 불평한다고 밀어내지 않는다. 넓은 사랑이다.
주의 백성이 주의 집에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 이름 부른다. 내가 너를 보고 싶다. 눈을 들고 찾으신다.
하나님을 떠나가면 서로 갈라지고 전쟁을 한다. 가운데 담이 생긴다. 그런데 눈을 들고 찾으며 만나자는 것이다. 화해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평강이다. 여기 평강은 샬롬, 전쟁이 없는 것만 아니라 전쟁 중에도 평강이다. 3500년 역사 중에 14351 전쟁, 전쟁이 없던 때는 오직 286년, 설령 전쟁이 없다 해도 이웃과 불화하고 내 스스로의 마음 속에도 전쟁 같은 아픔이 많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형편은 어떠하든지 심령 깊이 안정을 가지는 것이 평강이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말씀한다.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다 (요14:27) 이런 평강이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 빌4:6. 평화의 왕 예수로 인한 평강이다. 1555 Nicholas Ridley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화형을 당하게 되다. 화형 전날 동생이 형을 찾아가 함께 있으며 힘과 위로가 되기를 원하였으나 형은 그를 돌려 보내며 나는 평소처럼 잠 잘 것이라 하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평안이 가득하였다. 샬롬, 평강은 안녕 번영 완전 일치 건강 안전 온전 구원 등 우리에게 좋은 모든 상태를 말한다. 주를 모시면 일어난다. 예수님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죄 용서 받고 주와 화목하여 하나가 되고 자기 스스로를 받아주어 평안하고 이웃과 하나가 되어 화목한 상태를 가지면 그것이 복이요 평강이다.
여기 여호와가 세번 나온다. 삼위 일체 하나님이다. 처음은 성부 하나님으로 그는 사랑으로 우리를 지키신다. 둘째는 성자 예수님의 은혜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하여 죽으시고 우리가 행한 바가 아니라 믿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의롭다 하시는 주의 은혜다. 셋째 여호와는 성령님의 교통하심이다. 죄를 용서하여 중간에 막힌 담이 없어지고 서로 화목하여 하나되고 교제하게 하신다. 이것이 오늘 축도가 된다. 축복은 사모하고 받아야 한다. 축도가 끝이 나면 세상으로 나간다. 세상에서 살게 된다.
4 마지막으로 27절 그들은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하신다. 내 이름으로 그들에게 축복한다는 말은 원어로 그들 위에 내 이름을 둔다는 말이다. 그들 위에 여호와 이름, 여호와 자신, 여호와의 얼굴 빛을 더하는 것이다. 옷으로 입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축복이다. 주의 사람은 주의 주님 자신 이름 빛을 받아 그것을 나타내는 사람들이다. 모세는 신34:10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라 하였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여호와를 만나고 내려오니 그 얼굴에 광채가 나서 사람들이 바라보지 못하여 수건으로 그 얼굴을 가리기까지 하였다. 그가 하나님을 만난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
어느 지역을 방문한 사람이 교회를 찾고자 하여 어떤 사람에게 교회가 어디인가 물었다. 그는 잘 모르지만 이 골목으로 들어가 보시오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환히 빛나더라고 하였다. 예배를 통하여 주의 이름 주의 빛을 받으면 얼굴이 빛나게 된다. 이것이 주의 백성들의 특권이다. 우리는 주의 이름 주님 자신 곧 주의 빛을 받아 가진 사람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의 동리가 숨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을 미국 건국에 동참한 청교도들이 건국 이념으로 삼았다. 미국은 산 위에 있는 불 켜진 동리다.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 투명성도 보지만 우리를 통하여 우리 구주 예수와 하나님과 그의 빛을 보게 된다. 온 세계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에 앞장 섰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주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복을 받게 된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며 너는 복이 될 것이라 온 세상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시고 그 말씀을 이루어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주를 통하여 온 세상 만민이 복을 받고 생명을 누리고 있다. 이스라엘의 여호람왕이 유다의 여호사밧왕과 에돔왕을 청하여 모압과 전쟁에 나가던 중 물이 없어 곤경에 빠지다. 여호람은 그 지역에 선지자 엘리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3왕이 찾아가다. 엘리사는 만일 유다왕 여호사밧이 아니면 내가 당신을 향하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리라 하고는 골자기에 물이 솟아나게 하고 모압을 정복하고 승리하게 하였다 왕하3:14. 여호사밧 덕분에 여호람과 나라가 살아났다. 나로 인하여 누가 살아났나? 요나를 통하여 니느웨가 살아났다. 예루살렘에 의인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성을 용서하리라 (렘5:1). 얼마나 큰 축복인가! 우리로 인하여 내 이웃과 세상이 구원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얼굴에 주의 빛을 받은 자다 또 우리 속에 비침을 받아 우리 삶에서 주의 영광과 진리가 나타나고 주의 의와 공평 자유가 나타남으로 어디서나 당당하게 주의 크고 위대하심을 전하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여호와는 복을 주시는 분이다. 그가 우리를 지키신다. 그의 얼굴 빛으로 우리가 살게 되고 우리 죄가 나타나지만 그의 은혜로 사랑을 받는다. 그는 우리를 향하여 얼굴을 돌리고 바라보시며 우리를 부르고 기다리며 우리와 하나되고 화목하여 평화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주의 얼굴을 쳐다보며 주의 소원과 그의 축복을 받아드리고 우리가 주의 이름, 빛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 세상을 살리는 일에 함께 동참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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