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y 30, 2022

메모리얼 데이 Memorial Day

메모리얼 데이 Memorial Day 
5월마지막 월요일은 미국의 메모리알 데이다. 남북전쟁에서 희생당한 자들의 묘지에 꽃을 바치며 장식일 Decoration Day라 하던 것을 1차 대전에서 전사한 자들과 그 후 전쟁에서 전사한 이들을  추모하여 Memorial Day로 바꾸었다. 이날에 사람들은 육군 묘지를 찾아 전몰한 자들의 자유와 평화 사랑과 용기를 기억하고 치하하며 동시에 그들이 죽은 비극적 전쟁이 다시는 없어야 하겠다는 염원을 가지기도 한다. 날짜를 정하고 기억하는 것은 사람들로 잊지 않게 하려 함이다. 사람은 지난 날을 잘 잊게 마련이다. 실수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곧 잊어버리고 다시 반복하면서 새로이 깨닫게 된다. 우리도 31절 광복절 등으로 다시는 나라를 잃지 않아야 하고 해방으로 회복한 나라를 잘 지키리라 다짐하게 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말을 반복하여 하시면서 기억할 것을 기억하라고도 하신다. 하나님이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는지 또한 그들은 누구인지를 계속하여 기억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400년 이상 종 생활하며 고통 속에 부르짖고 신음하는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들을 건져낼 것을 작정하고 모세에게 명하기를 가족이 함께 모여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집 안에서 양의 고기를 먹는 동안 천사가 그 나라 사람과 동물의 모든 처음 난 것을 죽이지만 피가 있는 집은 지나가기에 이집트는 더 이상 그들을 종으로 잡아 두지 않고 쫓아 내듯이 내어 보낼 것이라 하였다. 죽음이 이스라엘의 집을 지나갔기에 그 날을 유월절로 영원히 기억하고 지키라 하셨다. 당시 가장 강국이던 이집트는 하나님의 능력 앞에 무릎을 꿇고 이스라엘 사람은 종에서 자유인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그때로부터 3500년이 지났지만 유대인은 지금도 유월절을 지키며 하나님과 그의 하신 큰 일을 기억함으로 그들의 선민 근육이 강화되어 역사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다. 
우리 삶에 언제 죽음에서 구원받은 날이 있는가? 그 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내게는 죽음에서 살아난 날이 있다. 2018년 1월초 1주일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열린 시니어 미션 트레이닝 강사로 섬기게 되었다. 1월10일 아침 강의를 하고 휴식시간 후 둘 째 시간 강의를 하는데 코가 막혀 강의를 진행할 수 없다고 말을 한 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몰랐다. 아내가 보니 서 있던 내가 그대로 뒤로 바닥에 넘어지기에 참여자와 함께 얼른 앞으로 나가니 내 눈은 휑하게 열려 있고 숨은 끊어진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심폐소생을 시키고 아내는 사관을 딴다는 생각으로 내 발을 깨물었다고 한다. 얼마를 지났는지 모르나 사람들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병원에 실려가 두뇌와 척추는 상하지 않았다는 확인을 받았으나 허리 통증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중에도 살아났다. 그 날이 오거나 내 허리가 아프면 일어난 일을 기억하며 주의 은혜와 능력을 찬양하고 감사한다.
그리스도인이 지키는 주일은 주의 부활을 기억하는 날이다. 예수께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키려고 대신 죽으시고 부활로 죽음을 이김으로 그가 구주로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날이다. 죄로 죽었던 내가 주의 대속과 부활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을 이 날에 기억하고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한다. 이 날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누구를 기억할까? Whom to Remember?

누가복음22:14-26 누구를 기억할까? Whom to Remember? (5/29/2022 Agape)
내일은 미국의 메모리알 데이다.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으로 있을 때 어린아이 들에게 메모리알 데이가 무엇인가 물으니 수영장 문 여는 날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했다. 가족이 바비큐하는 날일 수도 있다. 이날은 전쟁에 나가 전사한 미국용사들을 기억하는 날이다. 왜 그들을 기억하나? 나라를 지키고 미국의 정신을 지켜 나가기 위하여 생명을 바친 사람들이다. 미국의 정신은 하나님 아래서의 자유와 평화, 권리와 책임, 자원 자선과 희생, 평등과 기회, 불굴과 용기, 교육과 지도력 등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시민이 그러하지만 특히 국방을 책임진 군인에게는 투철한 정신이다. 국가와 군인이 서로 하나가 되고 신뢰하며 감사하는 관계가 되어 있다. 나라가 침범을 당하거나 테러가 일어나거나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모두 하나가 되어 대처한다. 세계에 어떤 재난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뛰어가고 후원하는 사람이 미국인이다. 
미국과 미국군인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한국을 상상할 수 있겠나? 2차대전시 독일의 나치즘에 대항하여 아이젠하워 장군이 지휘하는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하고 승리함으로 2차대전이 끝나고 한국이 해방되는 길이 열렸다. 한국이 해방되고 5년이 되어 아직 안정이 되지도 않는 때 소련과 중공의 도움으로 북한은  갑작스럽게 남한은 침략하니 남한은 아무런 대책 없이 밀려 내려가 경주 인근 안강까지 갔다. 나라의 운명이 눈 앞에 이른 것 같다. 맥아더 장군이 지휘한 1950년 9월15일 인천 상륙 작전으로 한국을 위기에서 구하여 오늘의 한국이 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한국이라면 미국과 맥아더 장군과 병사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참전한 한 젊은 군인에게 왜 군에 지원하였나 물으니 그의 대답은 “내 삶이 앞에 놓여있다. 옳고 그른 것의 차이를 알았다. 잘못이 판을 치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이들을 기억하고 치하하고 애국심과 함께 미국의 정신을 더욱 강화한다. 우리는 잘 잊어버린다. 그러기에 기억하도록 날을 정한다. 잊어버리면 없던 것이나 같다. 망각 amnesia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기억은 망각에 부정어가 앞에 붙어 anamnesis잊지 않는다는 말이다. 잊지 않도록 하고자 날짜를 정하고 기억한다.
좋은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감사하고 그 일을 지속하려 한다. 특히 생명과 관련될 때는 그것이 크다. 
내게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또한 기억하는 의사가 있다. 어머니께서 60대에 척추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척추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2년간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고 하반신은 완전히 마비가 되었다. 의사의 말은 이제 가망이 없으니 준비를 하라고 하였다. 내가 미국에서 학위공부 하고 있을 때인데 나를 위하여 헌신한 어머니와 마지막을 함께 하며 기도하고 싶어 갔다. 친구를 통하여 서울대 병원 척추 전문의사를 소개받아 엑스레이를 보여주었더니 모시고 오라고 하여 진단하더니 척추암이라 수술을 하여도 낫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통증은 없앨 수 있다고 한다. 수술 날짜를 정하고 기도채널 통하여 기도를 부탁하다.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한다. 정신이 맑게 깨어 났다. 일주일이 지나 발가락 끝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나는 돌아왔다. 결국 2년만에 걷기 시작하였다. 어디 아픈 곳이 없다며 25년을 사시다가 91세에 편안하게 주의 나라에 가셨다. 그 의사를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를 기억하고 감사하게 된다. 동시에 많은 기도 동지의 기도와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주님은 이를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하신다. 주께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셨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키기 전날 밤에 제정한 것이다. 흠 없는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르고 가족이 집 안에서 양고기와 쓴 나물을 먹었다. 그 시간에 애굽의 처음 난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문에 피가 있는 이스라엘 사람의 집에는 죽음이 이르지 않았다. 그들은 애굽에서 강제로 쫓겨나듯이 떠나고 해방을 맞았다. 죽음이 그들의 집을 건너갔다고 하여 유월절이라 이름하고 해마다 그날을 지키며 기억하라고 하셨다. 죽음 같은 노예생활 애굽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에 하나님과 그의 하신 일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예배하였다. 그들은 이 날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위대함과 하신 일을 기억하며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강한 민족이 되었다. 
유월절 제정 후 1500년이 지났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 절기를 지켰다. 그러면서 주님은 이 해방 절기에 더 큰 의미를 더하셨다. 만찬을 끝낼 무렵 주께서는 떡을 들고 감사기도 하신 후 이 떡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이를 행하며 나를 기억하라 하시고 잔을 들고 감사한 후 이 잔은 너희 죄를 사하려고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 이를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하신다.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기억하고 지키게 하셨듯이 주님은 이 만찬을 행하며 주님을 기억하라 하신다. 주님의 무엇을 기억할까?

주께서 오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인 종으로 살았지만 모든 사람은 죄와 허물의 노예되어 하나님을 떠나 살면서 심판을 받아 영원한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 허물과 죄로 인한 죽음에서 건짐 받기를 원하나 세상에 그럴 사람이 없기에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내셨다. 주께서 사역하며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렸다. 그러나 이들은 언젠가 또 죽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영생 누리기를 원하신다.
죄가 없는 주께서는 자기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죽음으로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우리를 대신하고 우리에게 생명 길을 주셨다. 그를 믿는 자는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생 얻게 하셨다. 자기 생명을 주어 우리를 살게 하신 것이다. 떡을 들고 잔을 들고 감사기도를 하신다. 자기 몸이 찢기고 피를 흘리면서 감사한다. 그로 인하여 생명이 살아나고 땅에 오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이 감사하였다. 그 자리에 예수를 파는 가룟 유다가 앉아 있어도 감사한 일이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길이 열리니 감사한 것이다. 12군단 되는 천사를 동원하여 원수를 물리칠 수 있지만 자원하여 자기 생명을 대신 주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주를 믿고 영생 얻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도 주를 믿고 생명 얻었으니 주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양한다.
주일은 주께서 부활하신 날이다. 주께서 부활하지 않았으면 예수님의 죽음은 다른 사람의 죽음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그가 죽음과 무덤을 깨치고 부활함으로 그는 죄가 없다는 것과 우리의 구주가 된다는 것을 증명하였기에 주의 날 곧 주일이라 한다. 이 날에 부활하신 주님, 우리의 구주임을 기억한다. 부활주일이 일년에 하루 있지만 그날만 아니라 주일마다 주의 부활과 새 생명을 기억하고 주를 찬양하며 기뻐한다. 오늘 모여 예배하며 내가 얻은 새 생명 영생을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우리의 죄를 사면하듯이 잊으시기에amnesia 우리는 anamnesis 잊지 않고 기억하며 감사한다. 

우리가 주님을 기억하며 그에게 감사한다. 누구나 기억한다. 누가 나를 기억하나?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나를 기억하고 반가워하면 얼마나 기쁜가! 누가 나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나? 목사가 나를 기억하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복인가! 대통령이 한 사람의 시민인 나를 기억하고 안다고 하면 얼마나 큰 기쁨이요 영광이겠나! 왕 중의 왕 구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면 그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나? 
그날에  사람들이 주 앞에 나아와 내가 주의 이름으로 말씀전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능력을 행하였나이다 하니 주께서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라 하신다. 나는 주의 이름으로 주를 위하여 일을 한다고 했는데 주께서 나를 모른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시면 얼마나 비극인가? 그러나 주께서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자가 있다. 
사람은 피를 흘리며 고생 중에 나은 자식을 더욱 잊지 못한다. 주께서는 자기 피를 흘려 생명 바쳐 구원한 사람을 잊지 못하신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아들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한다. 우리의 지난 날이 어떤 형편이든지 상관이 없다. 내가 회개하고 주를 믿고 영접하여 주를 나의 주로 모시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 예수님과 바울은 아바 아버지라 불렀다. 아버지를 향하여 자녀가 아빠라 부르면 어찌 그 자녀를 잊을 수가 있겠나? 
어떤 사람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였다. 유산을 받더니 먼 나라에 가서 다 탕진하고 살 수가 없어 돼지 치는 집에 가서 일을 하며 돼지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자 해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 때 정신이 났다. 내 아버지 집에는 품군들도 먹을 것이 많은데! 돌아가기로 작정하고 거지 신세가 되어 돌아간다. 멀리서 아버지가 보고 있다가 뛰어나가 그를 맞는다. 아버지, 내가 아버지와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니 이제는 아들이라 할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군의 하나로 써 주소서. 아버지는 그를 맞아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고 이 아들은 잃었다가 다시 찾고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서 때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멀리 떠날 때가 있어도 돌아오기만 하면 기뻐 받아 주신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얼마나 오래 떠나 있었든지 상관이 없다. 아버지!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주께서 내 아들이라 기억하신다.
기억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잔치를 즐기게 하신다. 
그뿐 아니라 마25장에서 주인은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느니라 (마25:34,36) 우리가 언제 그렇게 하였나이까?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다. 내가 나를 나타내고 인정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을 위하여 남몰래 하는 일이라도 주께서는 자기가 대접 받는 것으로 기억하고 복을 주신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요 많은 지체가 있다. 주님의 몸을 건강하도록 섬기는 것을 주님은 기억하신다. 주일학교에서 섬기는 분들을 알아주는 자 없다고 하여도 주님은 자기를 위하여 한 일이라고 기억하신다. 
메모리알 데이에 내가 누구를 기억한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또 중요한 것은 누가 나를 기억하는가 하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 옆에 있던 한 강도가 주를 향하여 주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하자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다. 언제 우리의 마지막이 올지 모르나 주님 앞에 서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며 주께서 나를 기억하고 아버지의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는 축복을 누리기를 바란다.



Thursday, May 26, 2022

빌립보서 3:12-17 푯대를 향하여 Toward the Goal

빌립보서 3:12-17 푯대를 향하여 Toward the Goal (5/22/22퍼듀 김택룡목사 은퇴)
퍼듀 한인장로교회에서 27년을 신실하게 사역하고 은퇴하는 김택룡 목사님과 사모님을 축하하며 그간 김목사님을 모시고 교회를 섬기며 충성한 교우들께 치하를 드린다. 은퇴라 하면 이제까지 하던 일을 끝내고 물러난다는 말이다. 공식적인 사역은 끝날지 몰라도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은퇴 후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교회는 27년간 함께 하던 목사님을 보내고 어떠할 것인가?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왔나?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 처음 이민 왔을 때는 어떻게 잘 살 것인가가 중요하지만 한 가지 목표를 이루고 난 뒤에는 어떠한가? 내 자신이 학위 공부를 하였지만 학교가 있는 지역에서 목회를 하며 학생들이 학위를 얻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난 뒤에 학위를 받을 때 기쁨과 감격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았다. 목표를 이루고 정상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한 부인이 하는 말, 딱 하루 좋았다고 하였다. 그 후에는 직장 걱정을 하며 학위의 부담을 크게 느낀다고 했다. 목사에게 목회가 꿈이요 목표일 수 있으리라. 목회가 끝나면 내 삶의 목표가 이루어졌으니 끝난 것인가? 바울은 많은 일을 이룬 후에 오늘 본문에서 이미 다 이루었다고 하지 않고 예수께 잡힌 그것, 푯대를 향하여 아직 달린다고 한다. 
그는 이미와 아직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설립하고 미움과 박해를 받고 감옥에도 들어가며 많은 일을 하였지만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는 할 일을 이미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가 예수께 잡힌 바 된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앞으로 달려간다고 한다. 
15세기 스페인이 세계를 지배한 때 그들은 동전에 Ne Plus Ultra nothing further더 이상 없어, 스페인이 전부라고 하였는데 신대륙을 발견하게 되자 동전에서 Ne를 빼고 Plus Ultra More beyond 스페인을 넘어 얼마든지 더 넓은 세계가 있구나 하는 것을 인식하였다. 바울이 그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예수와는 상관 없이 오히려 예수 믿는 자를 박해함으로 예수를 박해하던 사람이나 주께서 그를 만나심으로 그는 주께 잡히었다. 그는 포로처럼 잡혔다. 잡히고 보니 할 일이 많다. 무슨 일? 목표가 있다. 

예수 사람:  더 이상 예수 믿는 자를 박해하지 못하게 하고 그를 주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그는 예수 사람이 되었다. 그는 선민 유대인임을 자랑하고 유대인 중에도 율법에 특출한 바리새인 됨을 자랑했다. 그는 유대인의 고발을 당할 때 로마 법 앞에서 로마인, 날때부터 로마인임을 내세우고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주께 붙잡히어 주의 사람이 되며 그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 그를 잡은 그리스도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분이요 모든 무릎이 그에게 꿇고 복종하는 분이다. 자기는 그분의 종임을 자랑한다. 종은 주인에게 속한 사람으로 스스로 자유가 없고 주인이 원하고 시키는 대로 한다. 종에게는 은퇴가 없고 마음대로 쉴 수가 없다. 오직 주인의 뜻에만 따르는 것이다. 주께 잡히기 전에는 자기 마음대로 하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기 뜻이 아니라 오직 주인을 위하여 살게 된다. 그는 주의 종으로 많은 일을 하였지만 지금도 주인에게 순종하며 살겠다는 것이다. 그는 주의 사람이라 주님이 다스리는 천국의 시민인 것을 확인한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어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한다. 주께서 오실 때 또는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주님이 우리를 천국 시민으로 받아 영원히 주와 함께 살 것이라 이 땅에서도 천국 시민으로 살 것이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천국에 속한 자로 살다가 주의 나라로 옮겨갈 것을 바라본다. 이것이 푯대가 된다. 

구원: 주께서 그를 잡은 것은 예수 믿는 자를 박해하던 죄에서 그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그는 햇빛보다 더 밝은 빛 속에서 주의 음성을 들으면서 그를 만나고 땅에 엎드러지며 주께 잡히었다. 그의 눈이 어두워지자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의 죄를 용서받고 의롭다고 인정 받고 구원 받았다.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 받은 것은 구원의 시작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너희 구원을 이루라 한다.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죄용서 받고 의롭다 함을 얻고 주를 닮아 거룩함을 입고 마지막 영화로운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모든 죄를 용서받고 의로움을 얻은 주의 사람은 주를 따르며 주를 본받고 닮아가며 자라나 성숙함에 이르고 거룩함에 이른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방식이 아니라 주님 방식으로 주께서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 평생토록 주를 따라 그를 닮아가면 우리 삶에 주님의 모습이 나타난다. 주를 닮은 사람,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된다. 인정 받지 못하여도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가진 것이 없어도 있는 것으로 나누고 욕을 먹고 비난을 받아도 그를 위해 기도하고 용서하며 품어주는 사랑을 나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첫 말씀이 아버지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런 용서와 사랑으로 우리가 주를 닮았다고 할 수 있겠나!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추격하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 있었지만 그에게 손을 대지 않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의 옷자락만 베고 또 다음에는 물병과 창을 가져가기만 하였다. 사울은 다윗에게 나는 너를 죽이려고 악을 행하는데 너는 그 악을 선으로 바꾸는구나 하며 다윗 승리를 인정하였다. 다윗은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다. 우리가 주를 가까이 하며 주를 닮으면 주의 사람, 다윗의 후손이 된다. 우리의 거룩함을 이룸으로 되는 일이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은 우리가 주의 나라에서 주께 영광 돌리며 영광스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영광은 우리가 그를 바로 알고 그를 바르게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아나? 읽고 들어 예수를 머리로 알고 우리가 전도 하는 것도 머리로 아는 것에 근거할 수가 있다. 그러나 안다고 하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함께 친밀하게 생활하면서 알게 되는 것이다. 김목사께서 27년을 함께 하였으니 여러분이 그를 얼마나 아나? 목사님은 교인들을 얼마나 아나? 결혼 생활을 50년 60년 함으로 부부가 서로를 안다고 하지만 참으로 모든 것을 알 수가 있나? 아직도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주님을 아는 것이 그러하다. 평생 주를 믿었다고 하여도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름을 부르고 만찬을 위해 기도할 때 눈이 열리고 주를 알아보았다. 이름을 부르고 만찬을 한다는 것은 친근한 교제를 말한다. 친근하게 가까이 할 때 그를 안다.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주님을 보고 그가 계신 그대로를 볼 때 우리가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하고 하늘 나라 영광에 함께 참여한다. 주의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주께서 맞아 주시고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주시며 주와 함께 영원히 거하게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으로 구원의 완성이다. 주의 나라에서 주와 같이 영광스런 모습으로 주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 바울의 푯대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히 기뻐하는 것이다. 땅에서 주께 영광을 돌리며 살 때 주의 나라로 연결되고 영광스런 존재가 된다. 이것이 위에서 부르심이고 이를 위하여 나아가게 된다. 
우리 삶은 다 이루거나 완성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달려갈 길이 앞에 있다. 주께 잡히기 전에는 자기가 많은 것을 이루고 그 이룬 것을 자랑하였는데 주께 잡히고 보니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

복음 증거: 바울이 주께 잡힌 것은 주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주께서 그를 부르신 것은 그가 보고 들은 것,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의 능력을 증거하여 사람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죄 용서 받고 거룩함을 입은 자들과 같이 기업을 얻게 함이다. 주님은 복음을 전하도록 그를 잡았다. 주를 만난 후 그는 다메섹 회당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하였다. 그는 안디옥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 받고 아시아와 구라파로 3차 선교여행을 하며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주께로 돌이켰다. 그는 박해를 받고 감옥에 들어가 생명의 위협을 받았지만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주님의 지상명령과 바울의 뒤를 따라 교회와 선교사의 헌신으로 역사상 많은 선교가 이루어지고 20세기 말에는 미전도 종족이 많은 지역을 10-40 창이라 하며 선교에 총력을 기울였다. 미국이 제일 많은 선교사를 해외로 보냈지만 동시에 오늘 어느 면에서 미국은 복음이 필요한 선교지가 되어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십자가의 원수로 살고 있고 하나님 없이 살고 있어 이들이 복음을 필요로 한다. 그러기에 은퇴하는 것으로 다 이룬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할 일이 있다. 
내 개인 간증을 하고 싶다. 2006년에 시카고에서 은퇴하며 40년 교회 일을 하였으니 충분하다 생각하며 이제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도록 하자 하고 바로 여행을 하였다. 한달만에 옆구리가 견딜 수 없이 아파서 시카고로 돌아와 의사를 만났더니 싱글 대상포진이라며 약이 없기에 아플 만큼 아파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아픈 것은 처음이었다. 주님 어떻게 된 것입니까? 물었더니 주께서 말씀한다. 네가 충분히 일을 하였으니 이제는 마음대로 지나자고? 나와 한 약속을 잊었나? 하신다. 대학을 졸업하며 죽을 병에 걸려 집 보다는 병원에서 죽을 생각으로 병원으로 가서 입원하기 전날 밤 주께서 말씀을 주신다. 시118:17,18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라 그가 나를 경책하셨으나 죽음에는 붙이지 않으셨다고 한다. 죽으러 왔는데 죽지 않는다고? 살아서 무엇? 주의 행사를 선포한다는 말씀을 받았더니 치유되고 건강하게 살아 있음을 기억시키신다. 주님 잘못했어요. 생명 있는 동안에는 주의 일을 하겠습니다. 이틀 후 미네소타 트윈시티 노회에서 목사 없는 전환기 교회에 와서 일하라고 한다. 핑계할 수 없다. 그후 팬데믹이 터지기까지 여러 교회에서 전환기목사로 에티오피아 선교사로 일을 하게 되었다. 주의 복음 증거에는 끝이 없다. 생명 있는 동안에 주님 오시는 날까지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와 부활의 능력, 주의 하신 일을 전해야 할 것이다. Ne Plus Ultra 이만하면 되었다가 아니라 Plus Ultra아직도 많은 일이 있음을 알고 순종한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얼마나 주를 닮고 얼마나 전도를 하고 있나? 여러분으로 인해 주를 믿는 자가 얼마나 되나?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은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한다. 주를 믿고 따르면서 우리는 임기가 끝이 났다 그만하면 많이 하였으니 쉬고 싶다고 할 수 있으나 주님은 내 아버지께서 지금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주님은 오직 생명 구원과 천국확장을 위하여 일하다가 마지막 십자가에서도 구원을 베풀고 숨을 거두면서 다 이루었다 하셨다. 생명이 끝나는 날 우리가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다.
주의 종으로 충성스럽게 섬기면 주께서 인정하신다. 달란트를 잘 활용한 자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큰 것으로 맡기노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 하신다. 그리고 잃은 자 하나를 얻으면 주의 나라에서 기쁨의 잔치가 일어나고 구원 받은 자로서 주를 닮아 주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날이 기다린다. 주님 오시는 날까지 주 앞에 서는 날까지 우리를 불러 맡긴 사명을 수행하고 주께서 준비하신 하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생명의 파도 The Wave of Life

생명의 파도 The Wave of Life (5/21/2022)
시카고에도 드디어 봄인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이 성큼 온 것 같아 나무나 화초가 저마다 다투어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무성하여 신록을 이룬다. 한국 봄은 입춘(2월3일)으로 시작하고 미국은 춘분 (3월20일)이 봄의 시작이지만 시카고의 지난 겨울은 참으로 길었다. 
우리 집 뜰에는 수선에서부터 앵두 배 벚 뽕 이스턴 레드버드 등 여러 나무와 화초가 아름다움과 풍성한 생명을 풍긴다. 새들도 분주하다. 집 벽 가까이 있는 나무에 비둘기와 라빈이 둥지를 틀고 알을 낳더니 애기가 나온다. 공원의 호수길을 걸으며 애기를 훈련하는 오리가족의 나들이와 호수에 쓰러진 나무에는 거북이 가족이 나와 햇빛을 즐기고 있다. 많은 곤충의 활동이 보인다. 모두가 생명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나무나 풀, 새나 곤충 물고기만 아니라 만물의 영장 사람은 생명의 대표라 할 수 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힘이다. 추운 겨울을 이기며 땅속에서 인내하고 있다가 제일 먼저 모습을 보이는 것이 민들레요 부추다. 이들은 단단한 땅을 뚫고 올라와 자기를 뻗으며 번식을 위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날리며 이를 먹는 자에게도 힘을 준다. 새의 알 생명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온다. 생명은 사는 힘이라 전쟁과 이민의 난관을 이기고 굴레를 벗는다. 힘 곧 에너지가 없으면 이미 죽은 것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많다. 일례가 바이러스와 질병이라 이에 대비하여 예방책과 약제품이 있지만 더욱 큰 것은 우리에게 정욕과 미움, 시기와 질투, 두려움과 분리, 파괴를 일으키나 보이지 않는 악의 세력이다. 도둑은 도적질하고 죽이지만 주께서는 생명을 주되 풍성하게 주신다. 그는 생명의 주인이요 힘과 능력이라 악을 이기신다. 하나님은 생명의 힘이라 역사와 전쟁을 다스리고 원수와 악한 세력을 정복한다. 주께서 병자, 귀신들린 자, 말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 죽은 자에게도 생명을 주어 일으킴은 바로 생명의 힘이다. 
생명은 움직임이다.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몸의 구조나 외모는 같지만 차이는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어떤 자극을 받을 때 반응하고 움직이면 살아 있다는 증거나 반응이 없으면 생명이 없음을 말한다. 하나님은 생명이라 항상 활동한다. 온 우주를 움직이고 세상 만물을 살피고 돌보신다. 우리 형편과 기도에 응답하고 활동하며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처음 흙으로 사람을 만든 때 그대로 두면 아무런 생명이 없는 석고가 되지만 하나님이 자기 본체인 생명의 숨결을 그 코에 불어넣으니 그는 생령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닮아 활동한다. 사람이란 삶이요 살아있어 움직임이다. 
생명은 파도로 퍼지며 생명을 일으킨다. 나무는 뿌리가 퍼지고 가지가 뻗어가고 씨앗이 날아가 새로운 생명을 일으킨다. 우리 집 나무들은 대개 아내가 숟갈로 옮겨온 작은 싹에서 자라나고 뻗어난 것들이다. 동물과 사람의 생명도 온 땅을 덮을 정도로 퍼져 나간다. 예수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 사마리아와 땅 끝 곧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신 것은 생명의 파도를 일으키라는 말씀이다.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와 유럽, 미국으로 퍼지며 생명의 물결을 일으켰다. 선교사나 목사만 아니라 교회와 교인 하나 하나는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 생명이 속에 들어오면 그는 힘을 가지고 활동하고 사역하며 생명 파도를 일으켜 죽은 영과 세상을 살게 하여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한다. 나는 생명이 있는가?










Wednesday, May 18, 2022

생수의 샘 Fountain of Living Water 5/14/2022)

생수의 샘 Fountain of Living Water 5/14/2022)
물은 생명이다. 인체의 70%가 물로 되어 있기에 하루에 6잔 정도의 물을 마시는 것이 건강에 필수라 한다. 그러나 어떤 물을 마시는가가 중요하다. 내가 사는 바트렛 지역은 오래동안 우물물에 가까운 강물을 섞어 수도물로 공급하였기에 집집마다 정수기 설치는 필수였지만 그래도 그대로는 마실 수 없는 수질이었다. 그러다가 미시간 호수 물을 끌어들이니 물값은 배로 올랐지만 정수하지 않아도 그대로 마실 수 있는 물이 되었다. 주민의 건강한 생명을 위하여 도시행정부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감사하다. 
세계 많은 지역이 물사정이 좋지 않다. 내가 사역하던 에티오피아나 케냐에는 여인이 물을 긷기 위하여 두세 시간씩 물통을 메고 가고 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한국 초창기 선교사로 인도네시아에 갔던 친구는 1년이 되지 못하여 모든 치아가 다 빠졌다. 이유는 물이 좋지 않은 것이었다. 미국에도 라스베가스나 로스앤젤레스 등은 사막을 도시로 전환한 곳이라 자체 물이 없어 멀리 타주에서 물을 받아오기에 물이 금같이 귀하다. 아틀랜타는 물이 좋기에 음료공장이 있고 수목이 번창하여 사람 살기에 적절하단다. 물이 생명이라도 홍수를 음료수로 바로 마실 수는 없다. 물이 생수가 되어야 생명을 살리고 건강하게 하기에 식품점마다 천연 또는 정수된 생수(?)를 진열한다. 
사람을 살리는 생수가 많다고 생각한다. 사우디 같은 나라는 석유를, 자본주의는 돈을 생수로 생각하기도 하나 그것이 사실인가? 공산주의는 평등을 생명의 길로 보고 사유재산을 몰수하고 종교를 아편이라 하여 기독교를 탄압 내지 제거하였지만 결과는 북한, 러시아, 에티오피아에서 보는 대로 생명이 풍성하던 나라가 메마른 죽음의 골짜기로 변하였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생수의 샘이라고 하신다. 역사적인 우물에서 물을 깃는 여인에게 이 물을 마시면 또 목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은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되어 다시 목마르지 않는다고 하신다. 여인은 이런 물을 내게 주어 다시 물 길러 오지 않게 하소서 한다. 개인이나 가정, 나라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황해도 깡패 김익두는 사람들이 시장에 가면서 만나지 않도록 성황당에 빌었다지만 그가 변하여 많은 사람을 섬기는 능력의 목사가 된 것은 한 실례다. 습격하고 탈취하고 죽이던 해적 바이킹의 삶이 달라지고 새로운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의 스칸디나비아를 이루고 빼앗던 삶에서 나누고 베풀게 되었다. 열심히 일하여 행복을 누리며 생명을 전하고 있다. 한국이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때 이들은 서울에 메디컬 센터를 건립하고 어려운 자를 무료로 치료하며 내 아내도 그곳에서 수술을 받고 생명과 건강을 얻었다. 미네소타주는 스칸디나비아인들이 중심이 되어 있어 전쟁후의 한국 인재를 양성하려는 유엔 방침에 제일 먼저 응하여 미네소타 대학이 매년 학생을 대거 초청하였고 한국 고아 입양만 아니라 갈 곳 없는 월남의 보트 피플, 나이지리아 난민 등의 안식처가 되었다. 바이킹 속에서 흘러 나오는 생수의 역할이다. 선택된 나라(조선 Chosen) 하나님 백성(한국 한민족)이 최빈국에서 일어나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 남태평양 여러 나라를 살리고 있는 것은 생수의 덕분이라 믿는다. 
5월 가정의 달에 우리 가정은 어떠한가? 생수가 있는가? 아니면 세상 것으로 채우고 있는가? 온 가족이 생수로 살고 그것이 밖으로 넘쳐나는 샘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How Shall I Be Remembered?

열왕기상3:6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How Shall I Be Remembered? (5/15/22 G&T)
어머니 주일을 맞아 가슴에 꽃을 받으며 어머니를 기억하였다. 어머니가 아닌 사람은 많아도 어머니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를 낳고 길러 주신 어머니를 어떻게 기억하나? 때로 아픔도 있겠지만 대개는 감사와 사랑을 기억하리라.
지난 주간 한국 대통령 이취임식이 있었다. 퇴임하는 대통령이 청와대 앞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내가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도록 도와 달라고 하였다. 그가 원하는 대로 그는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이 될까? 한 때 이름 있는 정치가라도 때가 지나면서 변화가 오기도 한다.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여 한국 31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이름이 프린스턴 대학교 건물에서 사라지고 뉴욕자연사 박물관 앞에 서 있던 테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 동상이 철거되고 미국 남부의 우상이던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도 철거되었다. 미대륙을 발견한 컬럼버스는 10월 둘째 월요일을 그의 날로 지켜졌지만 이제 그의 이름도 사라지고 있다. 한국의 세종대왕에 대해서도 그는 성군인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형편에 따라 기억이 달라진다. 
선지자의 말대로 이스라엘을 유다와 분리시켜 10지파를 차지하며 백성과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여로보암 왕은 그가 하나님의 길을 따르면 그 집을 든든히 세워주리라는 약속을 받았지만 바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함으로 그는 역사에서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여로보암 이라 기억되고 있다. 
반면 다윗은 실수와 부족이 많음에도 하나님을 따른 왕이라고 지금까지 기억된다. 그를 이어 왕이 된 솔로몬은 하나님께 1천번제를 드리자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백지 수표를 내밀며 마음대로 액수를 기록하라 곧 무엇이든지 원하는 바를 구하라고 하신다. 그 때 솔로몬은 먼저 자기 아버지를 말한다. 오늘 본문 말씀이다.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하였다. 자기가 왕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결과라고 인정하였다. 
1. 솔로몬이 기억하는 그의 아버지는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였다는 것이다. 
1)다윗은 먼저 하나님과 함께 하였다. 그에게 충성스런 많은 신하가 있었다. 용맹한 장군들이 있었다. 많은 무기가 있었다. 외교를 통하여 동맹한 나라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형편에도 그는 항상 하나님과 함께하고 그를 의지하였다. 다윗은 양을 치던 소년시절 블레셋과의 전쟁에 참전 중인 형들을 면회하러 갔을 때 적장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위협하는 것을 보자 그는 분노하였다. 그는 적장에게 말한다. 너는 칼과 창으로 오지만 나는 네가 모욕하는 만군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간다며 물맷돌로 적장을 넘어뜨리고 그의 머리를 베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후 많은 전쟁을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여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였다. 
오늘 우리에게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있다. 우리는 주와 함께 하고 있는가? 나의 경우는 12살 집을 나가 도시로 유학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나를 붙들어주고 나도 주와 함께 하여 오늘도 그 믿음으로 살고 있다. 주와 함께 한다는 삶이다.
2)다윗은 주 앞에서 살았다. 왕은 장관 백성 이웃나라에 보이고자 할 때가 많다. 그러나 다윗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행하였다. 하나님이 그의 생각 말 행위를 다 보고 살피신다. 그의 몸 내장의 모든 것도 살피고 계시기에 모르시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믿는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있다. 그가 하나님의 언약궤를 수도로 옮길 때 너무 기쁘고 즐거워 궤 앞에서 춤을 추며 뛰었다. 옷이 벗어질 정도였다. 아내 미갈이 그를 조소 하였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더욱 뛰놀 것이라 하였다. 어린아이가 부모 앞에서 재롱을 피우며 춤을 추는 것과 같다. 그의 즐거움 아픔 모든 것을 주 앞에 표현하였다
그가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받아 도망할 때 사울 지파에 속한 시므이가 따라오며 돌을 던지고 저주를 하였다. 신하 장군이 그를 단칼에 처리하겠다고 하였으나 그러지 말라 내 아들이라도 나를 반역하는데 그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하나님께서 그로 저주하게 하신 것이 아닌가? 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여 그 저주를 복으로 바꾸어 주실른지 알겠나? 그는 어느 형편에나 하나님 앞에서 든든히 섰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꼭 같이 귀한 것을 알고 있었다. 
2.그는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앞에 있었기에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행하였다. 1)여기 성실은 진리 진실이란 말이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한 마음으로 예배하고 섬겼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것이라 하였다. 진실되게  하나님을 높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다윗은 사울왕의 시기와 미움을 받아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를 따르는 자들이 있었다. 사울은 군사를 모아 그를 추적하였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장군이 그를 죽이겠다고 했으나 바로 막았다. 하나님이 기름부은 사람을 해하지 말라고 한다. 하나님이 기름 부은 것은 자기 소유로 삼은 것이기에 그는 하나님의 것에 손을 대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존중하고 예배하는 자세다. 그를 죽이겠다는 그의 원수였지만 그를 죽였다는 아말렉 소년을 하나님의 사람을 범한 자로 죽이고 사울을 위하여 애도하는 시를 지어 노래하며 슬퍼하였다. 그가 충성스런 장군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하여 남편 되는 장군을 죽게 하였다. 선지자 나단이 그를 책망하자 그는 엎드려 사죄하였다.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처럼 존중하고 받들었다. 하나님을 진실되게 섬기고 예배하나?
2)다윗은 공의를 행하였다. 사람을 정의롭게 공평하게 대하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도 꼭 같이 귀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준다. 자기가 비천한 목동에서 왕으로 선택이 되었지만 다른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럴 수 있음을 안다. 그는 사람의 능력을 따라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맡기고 군대의 직위를 맡겼다. 
그가 사울에게 쫓길 때 그 아들 요나단이 그를 사랑하고 보호하였기에 그 아들에게 은혜를 베풀겠다 하여 불구자 므비보셋을 왕의 상에서 같이 먹도록 하였다. 그에게 공의를 베푼 것이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동생 다말을 범한 형 암논을 죽이고 도망하고 3년이 지난 때 드고아 여인이 왕 앞에 자기 일을 호소하며 왕이 쫓겨난 아들을 돌아오게 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그의 말을 잘 받아드리고 압살롬을 돌아오게 하였다. 그는 이름 없는 한 여인의 호소와 탄원을 잘 받아주며 모든 사람은 자기 생명과 권리를 보호받을 자격이 있음을 알고 공평하게 정의를 행하였다. 오늘 민주주의에서 다수의 의견을 따르면서 소수를 소외시키는 일이 많다. 공산주의는 평등을 내세우면서도 백성을 도구화하고 인격대우를 하지 않는다. 다윗은 공의를 행하는 것으로 기억이 되었다.
3)그는 정직한 마음을 가졌다. 이는 그의 태도로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그의 태도가 변치 않고 언제나 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가 처음 부름 받을 때나 그의 마지막 때나 하나님과 사람을 향하여 한 마음을 가지고 행동한 것이 기억할 만한 것이었다. 
3.그렇게 기억하면 어떤 결과가 오나?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억하고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그 은혜를 항상 베풀어 주시어 다윗을 이어 왕위에 앉을 아들을 주셨다고 한다. 다윗이 왕이 된 것은 그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 같이 솔로몬은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에게 은혜를 베푸신 결과로 주어진 것을 인정한다. 좋은 기억을 하면 그에 대한 은혜를 보답하고 싶은데 하나님은 다윗의 아들 가운데 솔로몬을 왕위에 앉게 하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II그렇다면 오늘 나는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나? 표사유피 인사유명이라 하는데 묘비에 어떻게 새기는가로 기억될 것인가! 가족이나 사람이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는 때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기억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1. 모든 사람이 주께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많은 사람이 와서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고 귀신을 쫓아 내고  능력을 행하였다고 하니 주께서는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나를 떠나가라 하신다. 주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하였다고 하는데 주님과는 전혀 상관 없이 자기를 나타낸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상에서 부유하고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하지만 주께서는 교회 안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라오디게아 백성이 다스린다는 이름대로 우리가 다 한다며 주님과는 상관 없는 교회인 것이다. 오늘도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 누구인가를 기억하신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나 교만하여 하나님을 떠나 원수되어 있었으나 예수를 믿고 회개함으로 새로워졌다. 예수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한대로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자녀로 인정하고 기억하여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게 하신다. 탕자가 재산을 받아 멀리 가서 모두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살 길이 없어 집에 돌아온다. 이제는 아들 자격이 없으니 품군으로 써 달라고 하지만 아버지는 멀리서 그 아들이 오는 것을 보고 뛰어나가 그를 맞아주고 품에 안는다. 한번 아들이면 영원한 아들이다. 얼마나 귀한 축복인가! 
2.주님은 우리가 한 일을 기억하신다. 마25:34 내 아버지께 복받은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된 때 영접하였고 헐벗은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느니라 하니 그들이 응답한다. 우리가 언제 주님께 그런 일을 하였나이까? 주께서는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신다. 무시할 수 있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대한 것이 바로 주님에게 한 것이라며 주님은 그를 기억하시고 주의 나라를 주신다. 주께서는 우리의 작은 일을 모두 기억하신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몸의 지체가 되어 건강한 몸이 되도록 서로 섬기고 사랑을 나눈다.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부엌에서 일을 한다. 셀그룹에서 섬긴다. 자동차를 운전한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것 같으나 주님은 기뻐하고 기억하신다. 길가의 나그네 이름 없는 사람을 우리가 생각하면 그것은 바로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 된다.  주님은 우리가 한 일을 기억하시는 것만 아니라 내 아버지의 나라를 상속하라 하신다.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까? 어떤 큰 업적을 남겨서 어떤 일을 특별히 잘하여서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는 것으로 등등을 말할 수 있으나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죄로 인하여 이지러진 그 형상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음으로 회복하고 모든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확인하며 항상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며 진실하게 주를 섬기고 의롭게 이웃을 대하며 마음을 한결같이 하면 주께서 기억하시고 우리 가정과 자녀를 축복하시고 땅에서 주의 나라 확장에 아름답게 사용하실 것이다. 주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Thursday, May 12, 2022

부모와 자녀 Parents and Children

부모와 자녀 Parents and Children (5/7/2022)
5월은 어린이날 어머니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다. 사람이라면 자녀가 없을 수는 있어도 부모가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다.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지만 그래도 부모는 있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그들이 나은 자녀를 기르고 함께 살고 사랑하고 무엇이나 주고 싶어한다. 성경은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녀에게 줄줄 안다고 한다. 자녀가 나보다 더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다. 가난하여 자기는 먹지 못하여도 자녀는 먹이려고 하고 자기는 입지 못하여도 자녀는 입힌다. 자기에게 한계가 있는 것을 알기에 자녀 교육을 시킨다. 소를 팔고 전지를 팔아서라도 자녀 교육을 시키기에 한 때는 상아탑이라는 대학을 우골탑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자녀교육을 시켜야 그들의 앞날이 잘 열릴 것을 기대한다. 
낯선 땅으로 이민 온 것도 대개는 자녀를 위한 것이다. 학군이 좋은 곳에 정착을 하고 무슨 일이나 하는 것이 부모다. 한국에서 전혀 상상하지 못하던 노동과 직장을 택하면서도 자녀가 공부를 잘 하고 좋은 학교에 진학을 하면 부모에게는 보람이요 기쁨이다. 
그래도 부모나 자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것을 알기에 신앙을 가지고 기도하며 보이지 않는 더 큰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것은 동서고금에 같은 일이다. 예수님 당시 많은 사람이 자기 자녀들을 그에게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 능력으로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였기에 그를 만나면 생명과 복을 받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그들을 꾸중하며 보내려고 하였다. 제자들은 결혼하여 자녀를 가져보지 못하였기에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알지 못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책망하며 어린아이들이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며 그들 하나 하나를 안고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하였다. 
손을 얹어 축복하고 기도하는 것은 부모가 하는 일이다. 이삭이 아들 야곱과 에서에게 손을 얹어 축복하였고 야곱은 두 손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손을 얹어 축복하며 기도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듣고 축복하시기에 그들이 복을 받았다. 오늘 부모도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심을 안다. 기도는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왔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에 사람은 하나님을 닮았다. 하나님이 자기 자녀를 사랑하신다. 사랑하면 자기의 모든 것 곧 생명까지 바친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여 하나 뿐인 아들을 주신 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영생은 세상의 모든 것을 넘어서서 영원히 누리는 축복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우리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왔기에 그의 자녀가 되지만 누구나 예수를 믿고 받아드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받는다. 자녀라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특권을 가지는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가? 주께서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고 바울도 그렇게 불렀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 또는 아빠 아버지라 부른다면 하나님은 어떠하실까? 세상 부모 이상으로 기뻐하며 가장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나? 가정의 부모 자녀이지만 나는 또한 천지의 주인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귀한 복이 있겠나!







Thursday, May 5, 2022

굴에서 나오라 Exit from Cave

굴에서 나오라 Exit from Cave (4/30/2022)
팬데믹으로 갇히어 지나다가 교단이 희년에 남길 유산이라는 주제 강의를 위하여 교단 한인총회에 참석하고자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고 회의 장소 클리블랜드로 갔다. 총회는 50년 자유를 선포하는 희년 모임이라 축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성경에서 50년을 희년(Jubilee)이라 부르고 뿔나팔을 불면서 시작하는데 모든 빚을 면제하고 팔렸던 땅은 원주인에게 돌아가고 종들은 모두 자유를 얻어 자기 집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하여 하나님이 본래 만드신 대로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이다. 빚을 지거나 내 땅이나 집이 넘어가거나 내가 팔려 남의 종이 된 것이 현실이라면 그 사람은 어떠하겠나? 삶이나 마음이 자유를 잃고 사슬에 묶이거나 굴속에 갇히어 있는 것이나 유사할 것이다. 사슬에 묶이어 감옥에 있거나 굴속에 숨어 있는 경우는 부과된 것이 있고 자신이 마음으로 선택한 것도 있다. 물려 받은 가난, 질병이나 인종차별 등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어도 우리를 얽어 매는 사슬이요 두려움과 걱정 좌절 미움 등으로 스스로 담을 쌓고 굴을 만들기도 한다.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되지 않는 것이 생의 현실이다. 그러나 형편은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자유와 평화를 주시기 원하고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종으로 고생하며 울부짖던 아브라함의 후손을 구출하여 자유를 주시고 자기 백성으로 삼았다. 이집트에서 그들이 잘 먹고 살았지만 그곳은 자유가 없는 감옥이나 다름이 없었다. 
예수께서는 희년의 자유선포를 자기 사명으로 삼았다. 가난한 자가 기쁜 소식을 듣고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눈 먼 자가 보게 되고 눌리고 감옥에 갇힌 자에게 자유를 주는 삶과 사역이었다. 중풍병자, 맹인, 귀신들린 자들을 정상적인 자유로운 삶으로 회복시켰다. 죽어서 굴 무덤에 장사되고 썩어 냄새가 나는 사람에게 나사로야 나오라 하자 그가 살아서 나왔다. 자유의 선포요 실행이다.
엘리야는 위대한 선지자였다. 왕과 백성은 하나님을 뒤로 하고 눈에 보이는 신상을 경배하였다. 엘리야는 말로  3년 6개월 비가 내리지 않게도 죽은 자를 살리기도 했다. 그는 왕과 왕비가 믿고 후원하는 우상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인 것을 증명하고 우상 선지자들을 처형하자 왕비는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한다. 엘리야는 두려움으로 도망하여 국경 밖으로 나가고 탈진 상태에서 산의 굴속에 들어가 죽고 싶다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하나님은 그에게 굴에서 나오라 산앞에 서라며 불러내신다. 누구보다 큰 능력을 행하던 사람이라도 때로 두려움과 낙담으로 굴속에 숨을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불러내어 자유를 주시고 더 큰 일을 하도록 하신다.
예수의 제자들이 큰 기대를 가지고 그를 따랐지만 그는 죄인으로 몰리고 처형을 당하자 제자들은 두려워 숨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 앞에 나타났으나 믿기가 어려운데 그는 그들을 떠나셨다. 아직도 두려움속에 문을 닫고 앞 날을 내다보았다. 바람소리와 함께 불길 같은 성령이 그들 각자에게 임하자 그들은 새롭게 되었다. 스스로 숨어있던 굴에서 밀려나와 예수가 구주임을 전하며 세상을 뒤집는 변화를 일으켰다.
예수를 믿는 사람도 세상에서 언젠가는 죽는다. 죽음은 우리의 마지막 대적이다. 예수께서 죽었다가 3일후에 죽지 않는 생명으로 부활하면서 누구든지 그를 받아드리는 사람은 죽음을 이기고 영생을 얻는다. 
나는 어떤 굴에 갇히어 있는가? 영원한 자유와 생명을 주시고자 굴에서 나오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