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oul Ministry
One Soul Ministry supports mission for one soul Jesus loves more than the whole world (Mark 8:36)
Tuesday, July 1, 2025
아버님을 생각하며 Adoring My Dad
아버님을 생각하며 Adoring My Dad
이사하여 처음 맞는 아버지 날에 두 딸의 가족과 함께 모여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나는 내 아버지를 생각하였다.
아버님은 한일합방(1910) 다음 해 경주외곽 시골에서 태어나 가난에 시달리며 결혼하였다. 돈을 벌겠다고 일본에 건너가 온 힘을 다했으나 별소득이 없었다. 내 나라에서 그렇게 노력하면 잘 살리라 믿고 협동조합 돈을 빌려 땅을 사고 부부가 개간하기를 반복하여 괜찮은 집을 마련하고 안정을 찾았다. 유행병 장질부사 콜레라를 이겨내었으나 일을 하느라 조리하지 못하여 한쪽 다리에 문제가 생겨 평생 지팡이를 사용하는 불구가 되었다. 어머니가 예수를 믿자 가정전통에 어긋난다고 반대하였으나 어머니는 손자 나를 데리고 산 넘어 멀리 교회로 비바람이나 겨울 추위에도 쉴 줄을 몰랐다. 이들을 위하여 아들은 마을에 예배당을 짓고 교역자를 초청하였지만 자신은 믿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 유언을 지키고자 3년간 예수 믿겠다고 하였는데 하나님은 그를 평생 자기 사람으로 택하셨다.
나는 일제시대 태어나 해방을 보고 경주중학교에 가자 아버님은 경주에 집을 구입하여 아들이 편안하게 공부하게 하였고 내가 대학 졸업하며 죽을 병에 걸린 때 나를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시켜 치료받게 하셨다. 내가 직장을 가지고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살다가 유학하고 교수로 귀국한 것이 아버님께 자랑이었다. 나는 다시 이민목회자로 조국을 떠나며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고 미국시민권을 얻으며 국적을 상실함으로 사실상 법적인 권리를 포기하였다. 아버님은 저염식을 하시다가 쇠약하고 노화 와병으로 마지막이 가깝다는 소식을 듣고 성탄예배 후 출발하여 27일 새벽에 도착하니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님은 금방 숨을 거두고 따뜻한 체온은 그의 사랑을 말하였다. 임종하지 못한 아픔 속에 아버님은 떠나가셨다.
나는 농토나 물질적 유산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가 내게 남긴 삶의 유산은 참으로 많다. 오늘의 나는 아버님 삶을 이어받은 유산이다.
그의 근면은 자립을 위하여 일과 삶을 하나로 삼았다. 그는 불구자로 몸을 끌면서도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일을 하셨다. 그는 진실하였다.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삶의 표본으로 속아는 것을 몰랐다. 그는 자선과 나누기를 좋아하였다. 어려운 자를 보면 가진 것으로 돕고 그에게 구하는 자에게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내일을 바라보며 꿈을 가진 것이 작명에 나타난다. 내 이름 (종소리) 종은 항렬이고 남은 한자는 아버님이 지으셨다. 누님은 (경사) 경, 나는 (형통할) 형, 동생은 (클) 홍으로 종이 울리면 경사가 나고 일이 형통하여 큰 일을 이룰 것이라는 마음의 소망이었다. 성경을 몰랐지만 성경에서 이름을 짓는 원리와 통하였다.
그는 시골에 살았지만 넓은 세계와 연결하여 살았다. 일찍 신문 라디오 텔레비로 세계를 호흡하며 정세를 파악하고 그것을 사랑방 모인 사람들과 공유하였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사람을 믿고 일을 맡기며 돈을 빌려주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다. 자기 농토의 십일조를 봉헌함으로 시골교회가 참으로 드물게 처움부터 자립하였다.
그의 정신을 따라 산다고 하지만 아버지날에 그를 생각하며 나의 부족을 느끼면서 어느덧 나도 이제 주 앞에서 아버님을 뵐 날이 다가 오는 것을 본다. 동시에 나의 자녀들은 나에게서 무엇을 볼 것인가 자문하며 나를 낳아 양육하신 아버님께 감사하고 아버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린다.
Adoring My Dad
On my first Father’s Day after moving to a new place, I spent a truly joyful time with my two daughters’ families. Afterward, I found myself thinking of my own father.
My father was born in a rural area on the outskirts of Gyeongju in the year following the Japan-Korea annexation (1910). He suffered through poverty and got married. In hopes of earning money, he went to Japan and worked with all his strength, but saw little financial gain. Believing he would live better in his homeland, he borrowed money from a cooperative, bought land, and together with my mother, repeatedly reclaimed and cultivated land until they eventually secured a decent house and a stable life.
He survived epidemics like typhoid and cholera, but due to not taking time to recover properly while working, he developed a problem in one leg and lived the rest of his life with a cane as a disabled person. When his mother became a Christian, he opposed it as it went against the family tradition. However, the mother, taking her grandson (me), would go over hills to a faraway church, never skipping even in storms or winter cold. For them, the son built a chapel in the village and invited a preacher, though my father himself did not believe. Eventually, to honor his mother’s dying wish, he said he would believe in Jesus for three years, but God chose him as His own for life.
I was born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witnessed liberation, and attended Gyeongju Middle School. My father bought a house in Gyeongju so I could study comfortably. When I was terminally ill after graduating university, he admitted me for long-term treatment in a sanatorium. When I got a job, married, had children, studied abroad, and returned as a professor, it was a source of pride for him. As I later left my homeland again to serve as an immigrant pastor, I could not care for my parents and gave up my Korean nationality when I became a U.S. citizen, effectively forfeiting my legal rights. Upon hearing that my father was frail and near death due to aging and illness while eating a low-sodium diet, I left after the Christmas service and arrived at dawn on the 27th. My father, who had been waiting for me, passed away shortly before, his warm body still expressing his love. He left me behind with the pain of missing his final moment remaining in me
I never expected to inherit land or wealth, but the legacy of his life that he left me is truly immense. Who I am today is the heritage of his life.
His diligence fused work and life into one for self-reliance. Even as a disabled man, he worked hard and tirelessly.
He was sincere, the embodiment of the saying, “As you sow, so shall you reap,” and he never knew how to deceive.
He loved charity and sharing. If he saw someone in need, he would help with what he had and never refused anyone who asked.
He had dreams for the future, which are reflected in the names he gave. My name "Jong" (meaning bell sound) is my generational syllable, but he chose the other characters for my siblings and me: my sister is “Gyeong” (celebration), I am “Hyeong” (prosper), and my younger brother is “Hong” (great). His hope was that when the bell rings, blessings will come, prosperity will follow, and great things will be achieved. Though he didn’t know the Bible, the principles behind biblical naming matched his.
Though he lived in the countryside, he was connected to the wider world. Early on, he followed world affairs through newspapers, radio, and television, and shared his insights with neighbors in his gathering room.
He was a man of faith. He trusted people, entrusted them with work, and lent money. And he believed in God. He offered a tithe of his farmland, and thanks to that, the rural church became financially independent from the beginning, which was rare.
Though I try to live following his spirit, on Father’s Day, as I remember him, I feel my own shortcomings and realize that the day I will meet my father again before the Lord is drawing near. At the same time, I ask myself what my children will see in me. I give thanks to my father, who gave birth to and raised me, and I offer gratitude to God, who gave me such a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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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기능, 기억 저하와 상실Decline and Loss of Cognitive Function and Memory
인지 기능, 기억 저하와 상실Decline and Loss of Cognitive Function and Memory
주변에 인지 기능 기억 장애로 고통을 겪는 자들이 많다. 한 친구는 젊은 시절 태권도 사범으로 발차기로 뛰면 천정에 닿을 정도로 날렵하였다. 목사로 은퇴하여 부부가 예배에 참여하고 걷거나 운동을 하지만 가족이 염려를 한다. 나와 대화하면 가까이 살며 자주 찾아오는 딸에 대하여 세번 이상 반복하여 이야기한다. 금방 한 말이 뇌에 저장되지 않아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90새인 누님이 오래동안 혼자 잘 살고 있었는데 몇 년 전 인지 기억 기능이 저하하여 약을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 몰라 아들이 함께 살며 도왔다. 급기야는 화장실에 가는 것도 잊고 실수를 계속하자 아들이 감당할 수가 없어 양로시설로 옮겨야 했다.
한 친구의 아내는 소아과 의사로 많은 일을 하였는데 인지능력이 저하하더니 스스로 옷을 입을 수도 없고 단어를 잊어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여 남편의 24/7케어를 받고 있다.
이런 일은 전화기나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건망증과는 다르다. 옛날 일을 기억하고 최근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하면 그 반대도 있다. 또는 과거의 좋지 않은 것만 기억하고 좋은 것은 기억하지 않아 아픔을 가지기도 한다.
인지기능과 기억력 저하의 초기단계에는 치료가 가능하나 상태가 진행하여 상실단계인 알츠하이머, 치매에 이른다. 공통적인 증상은 인지 기능 저하로 기억력, 집중력, 언어능력, 판단력 저하에서 상실에 이르고 치료가 어려워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는 고통을 겪으나 본인은 실감하지 못한다.
이런 자가 많은 것은 장수시대 노화현상과 뇌기능 저하, 만성질환과 뇌의 외상, 스트레스와 우울증, 수면과 운동부족, 사람을 만나 관심과 사랑을 나누는 기회가 부족하고 서구화된 음식이 작용하는 것으로 본다.
이들을 홀로 둘 수 없기에 언제나 함께 하고 또는 여행을 하며 여러가지 과거와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인지기능을 자극하고 새롭게 한다. 어떤 경우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매일 병원으로 찾아가는 남편에게 간호원이 사유를 묻는다. ‘그는 나를 몰라보아도 나는 그를 알아본다’하며 사랑을 표현하고 마음에 안정을 부여한다.
인지기능 기억 저하와 상실은 사람관계에만 아니다. 건강하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거나 기억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많은 기적을 체험하였다.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는 일은 세상의 어떤 힘이 아닌 것을 알았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억하라 하시지만 그들은 자유를 누리면서 곧 하나님과 그가 하신 일을 잊어버리고 오히려 금은목석 우상을 따르고 숭배하였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 후손들은 하나님이 더욱 생소하여 그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와 상관 없는 삶을 산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않고 사랑하신다. 사람과 달리 하나님은 그들의 잘못이나 죄를 모두 잊으시고 그들을 손바닥에 새기고 돌본다고 하신다. 여인은 자가기 낳아 젖을 먹이고 기른 아이를 잊을 수가 있어도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는다고 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이스라엘의 역사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면서 떡과 잔을 들고 그것은 그들에게 주는 자기의 몸과 피라 하면서 그를 기억하라고 하신다. 나를 위하여 생명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을 알고 기억하며 그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나눈다면 그것이 삶의 힘이 아닐까!
. Decline and Loss of Cognitive Function and Memory
Many people around us suffer from cognitive and memory impairments. One friend was once a taekwondo master in his youth, so agile he could kick and reach the ceiling. After retiring as a pastor, he and his wife attend worship services and continue walking and exercising, yet his family worries. When speaking with me, he repeatedly talks about his daughter—who lives nearby and visits often—more than three times. Because what he just said isn’t stored in his brain, he repeats the same words.
My 90-year-old sister had lived well on her own for a long time, but a few years ago, her cognitive and memory functions began to decline. She couldn’t remember whether she had taken her medication, so her son moved in to help. Eventually, she even forgot how to go to the bathroom and had frequent accidents, which her son couldn’t manage anymore, so she had to be moved to a nursing facility.
Another friend’s wife, a pediatrician who had accomplished much, experienced cognitive decline to the point that she could no longer dress herself or remember words to speak properly. Her husband now provides full-time care, 24/7.
This is different from forgetfulness like misplacing a phone or keys. Some remember old events but not recent ones; others are the opposite. Some remember only negative past experiences and forget the good, which adds to their sorrow.
In the early stages of cognitive and memory decline, treatment is possible. But as it progresses into loss—such as Alzheimer's or dementia—cognitive functions including memory, concentration, language, and judgment deteriorate to the point of loss. At this stage, treatment becomes difficult, and the individual suffers a life far from normal, often without realizing it themselves.
The prevalence of such cases is attributed to aging in this era of longevity, brain function decline, chronic illness, brain injuries, stress, depression, lack of sleep and exercise, insufficient human interaction and love, and Westernized diets.
These individuals cannot be left alone. Being with them, traveling, and experiencing both the past and new things can stimulate and renew cognitive function. In one case, a wife no longer recognized her husband, but he visited her every day. A nurse asked why he still came. He replied, “Even if she doesn’t recognize me, I recognize her.” That love gave peace and comfort.
Cognitive and memory decline doesn’t only affect human relationships. Some appear healthy but have no knowledge or memory of God. The Israelites were chosen by God and experienced many miracles. They knew that their liberation from slavery in Egypt was by no earthly power. God told them to remember this, but once they enjoyed freedom, they quickly forgot God and His works, turning instead to idols of gold, silver, and wood.
Descendants who have not experienced God’s power find Him unfamiliar and live as though He does not exist. Yet God does not forget them. Unlike people, He forgets all their wrongs and sins and promises that He has engraved them on the palms of His hands and will care for them. Even if a woman could forget the child she bore and nursed, God says He will never forget them. That is the love of God and the history of Israel.
At the Last Supper, Jesus took bread and wine and told His disciples that it was His body and blood given for them, urging them to remember Him. Knowing and remembering the Lord who loved us even unto death, loving Him and sharing that love—wouldn’t that be the true strength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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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한민국 Han Country Han Nation
한국, 한민족(Han Country Han Nation)
세계역사에서 한국은 기적의 나라라 불린다. 반만년 역사에서 국호를 잃은 것은 오직 일제 35년, 1950년 전쟁 직전 세계 최빈국이 오늘 세계 7대 부강국에 들어간 것,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큰 단일교회가 있고 교인수 비례 세계 최고 선교사 파송국이다. 이런 힘이 어디서 생길까? 여러가지 설명을 하지만 나라 이름 ‘한’에서 온다고 본다.
‘한’은 마한, 진한, 변한 곧 삼한(기원전 2세기에서 3세기)에서 유래한다. ‘한’은 문자가 있기 전 사용하던 순수한 구술어로 크나, 위대하다, 높다, 넓다, 하나로 뭉친다, 지도력을 가진다 등의 의미다.
삼한의 마한은 경기 충청 전라지역 54개 소국가들의 연맹체요, 진한은 경북지역12 소국가며 변한은 경남 지역 12소국가의 연맹체로 이들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자존감을 가진 공동체였다.
마한에서 백제가 강하여 나라가 되고 진한은 서라벌이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가 되고 변한은 김해 중심 가락국으로 발전하며 농산물 광물로 중국과 교역하였으나 신라에 병합되었다.
삼한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로 발전하고 신라가 통일하지만 정신은 ‘한’이 중심이 되었다. 삼국이 고려가 되어 삼한의 정신을 보이고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한’을 많이 말하였다. 1897년 고종은 나라를 대한제국이라 하고 중국의 간섭에서 독립하여 자주적인 민족정체성울 천명하고 자기를 황제라 하였다. 일본의 식민지 약탈과 억압에서 독립을 외치며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와 자주 민주주의 주권국가 한국, 한민족이 된 중심은 ‘한’이다.
‘한’은 우리 글에 연결된다. 세종대왕이 문자를 창제하여 사용되었으나 언문이라 불리다가 1910년 주시경 선생이 ‘한글’이라 이름하고 일제의 금지에도 자주정신으로 사용하여 오늘에 이르고 유엔은 한글을 세계 최우수 문자로 인정하였다.
‘한’은하늘과 연관된다. 해와 달이 비치는 하늘은 높고 넓게 펼쳐진 공간으로 ‘한얼’로 생각된다. 얼은 정신 혼 영의 인격체라 하늘을 신성시하여 숭배하는 제천의식 (마한의 무당, 동예의 무천, 부여의 영고)이 성행하였다. 성경의 하나님은 엘이라 얼과 연관이 되듯 하느님이 하늘에서 중생을 다스린다는 믿음으로 그의 도움을 기다리며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하늘은 또 한울로 표현되며 크고 높고 넓은 울타리로 그 아래 있는 만물과 사람을 살피고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어 우리 민족은 농사를 하든지 여행을 하든지 울타리 하느님의 보호와 인도를 바라는 기도와 제사를 하였다.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성경을 번역할 때 성경의 신을 한국사람들이 사용하는 하느님으로 하자는 의견과 새로운 이름 천주로 하자는 의견이 대립하여 한동안 천주라는 성경과 하나님이라는 성경이 별도로 출판되다가 하나님으로 통일 되었다.
하나님은 한민족이 가지고 있는 하느님 개념에 성경이 말하는 창조주로 온 세상을 능력과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여 아들 예수를 보내어 우리와 함께 하고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알고 믿도록 하였다.
우리 역사는 삼한시대부터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한’이 중심이며 한국이나 한민족은 크고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요 민족으로 자존적인 정체성을 가진 공동체이다. 크고 위대하시어 천지를 창조하고 다스리며 지혜와 능력,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경배하며 그와 인격적인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의 인도를 받으며 그의 뜻을 펼치는 특권을 가진 한국, 한민족이 되기를 참으로 소망한다.
Korea, the Han People (Han Country, Han Nation)
Korea is often called a miraculous nation in world history. In its 5,000-year history, it lost its national name only during the 35 years of Japanese colonial rule. Just before the 1950 war, it was one of the poorest countries in the world, but today it ranks among the world's seven most prosperous nations. It has the largest single church in Christian history and, in proportion to its population, sends out the most missionaries worldwide. Where does such strength come from? While many explanations exist, it is believed to originate from the name of the nation: “Han.”
“Han” originates from Mahan, Jinhan, and Byeonhan—the Samhan (from the 2nd century BCE to the 3rd century CE). “Han” was a pure oral term used before writing systems, meaning “great,” “mighty,” “high,” “wide,” “unified,” and “leader.”
In Samhan:
• Mahan was a confederation of 54 small states in today’s Gyeonggi, Chungcheong, and Jeolla regions.
• Jinhan had 12 states in the Gyeongbuk area.
• Byeonhan also had 12 states in the Gyeongnam region.
These were independent, self-respecting communities.
Baekje rose from Mahan; Silla grew from Jinhan with Seorabeol (Gyeongju) as its center; and Gaya (centered in Gimhae) arose from Byeonhan. These states traded agricultural and mineral products with China but were eventually absorbed by Silla.
Samhan developed into the Three Kingdoms—Goguryeo, Baekje, and Silla—with Silla later unifying them. However, the spirit of “Han” remained central. Even when the Three Kingdoms gave way to Goryeo and later Joseon, the Confucian scholars frequently referred to “Han.” In 1897, King Gojong proclaimed the Daehan Empire, asserting independence from Chinese influence and declaring a sovereign national identity by calling himself emperor. During Japanese colonial oppression, Koreans cried out for independence, forming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in 1919, and later the Republic of Korea in 1948, firmly rooted in the spirit of “Han.”
“Han” is tied to the Korean script. Although King Sejong invented it, it was initially called “Eonmun.” In 1910, Ju Si-gyeong renamed it Hangeul. Despite Japanese bans, it survived through a spirit of independence. The UN has recognized Hangeul as the world’s most outstanding writing system.
“Han” is also connected to the heavens. The sky, illuminated by sun and moon, was seen as vast and divine—called Haneol or Han-eol. The word “eol” (as in spirit, soul, or character) implies a sacred being. Ancient rituals worshiping the sky (like Mahan’s shamans, Dongye’s Mucheon, and Buyeo’s Yeonggo) reflect this.
In the Bible, God is called El, resonating with “eol.” Koreans believed that “Haneunim” governed life from heaven, and they offered prayers and sacrifices for help.
“Heaven” was also called Hanul, meaning a vast and high fence that protected all living things. Koreans prayed to this protective deity during farming and travel.
When Protestant missionaries translated the Bible into Korean, there was debate between calling God “Haneunim” or using the new term “Cheonju.” For a time, Bibles were published with both terms, but eventually, “Hananim” became the unified name.
This term combined the Korean concept of a divine being with the biblical Creator—God who rules the world with power, justice, and love, sent His Son Jesus to dwell among us, and saves us from sin and death.
From the Samhan era to today’s Republic of Korea, “Han” has been central. Korea and the Han people are a great nation with a unique and self-defined identity, blessed to worship the great and mighty God who created and governs the universe. May we, as the Han people, live in intimate relationship with Him, guided by His will and sharing in the privilege of carrying out His purpose.
Thursday, May 22, 2025
우리 하나님 여호와 LORD Our God
우리 하나님 여호와 LORD Our God
100여년 전 할머니는 둘째 아들이 병든 때 그가 섬기는 신들에게 빌고 굿까지 하여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멀리 사는 친척이 ‘예수 믿으면 병이 나을텐데’ 하기에 시도하기로 했다. 산을 넘어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교회를 찾아가 예수를 믿고 기도하였다. 아들의 병이 나았다. 그는 참 신을 만난 감격으로 그간 모시던 모든 신을 파기하고 열성으로 예수를 믿었다. 조상이 섬기던 신들과 전통을 버린 것으로 박해를 받았지만 그는 믿음을 굽히지 않았다
한계를 가진 사람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소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신을 찾고 그에게 구한다. 로마는 만신전을 세워 섬기며 그것이 나라 부강의 근간이라 생각하였다. 바울이 아덴을 방문하여 많은 신전을 보며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는 것도 보았다. 알지 못하여 빠뜨림으로 화를 당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집트도 많은 신상을 만들고 섬김으로 강대국이 되었다고 믿었다. 히브리인들이 그곳에 살며 번창하자 그들을 두려워하여 노예로 삼고 학대하며 고역을 시켰다. 히브리인은 고통속에 부르짖지만 그들을 도울 자가 없다. 조상의 하나님이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듣고 양치는 모세를 만나신다. 그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며 이집트에서 압제 받는 백성을 구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라 하신다. 모세는 조상의 하나님이 생소하여 그 이름을 묻는다. 신은 바알 그모스 등 이름이 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하신다. 누가 만들지 않았고 그는 모든 있는 것의 근원으로 시공을 초월하며 언제나 살아 일하는 자라는 말이다. 모세는 설득과 굴복을 당하여 그 일을 맡았다. 이집트와 그들의 신에게서 하나님의 백성을 해방시키고 약속의 땅을 향하여 40년간 광야길을 걸어가며 ‘스스로 있는 자’는 누구보다 강하고 사랑이 있는 분임을 확인하였다.
‘스스로 있는 자’는 히브리어로 YHWH 다.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기에 읽는 것이 쉽지 않다. 아버지 이름도 부르지 못하는데 사람이 어떻게 절대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을까? ‘스스로 있는 자’가 나오면 ‘나의 주 ‘곧 아도나이 (Adonai)로 부르고 그 모음을 붙여 우리 말로는 여호와라 한다. 하나님은 일반 이름이나 여호와는 히브리인의 하나님 이름으로 모세를 통하여 서로 관계를 맺었다.
나라를 건설한 히브리인 이스라엘은 그들의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 바알을 숭배하였기에 하나님은 진노하여 3년6개월간 우로를 내리지 않았다. 선지자 엘리야는 바알과 여호와 중에 누가 참 신인가 시험하기를 제안하고 바알 선지자 450명과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야가 모였다. 제단을 쌓고 제물을 얹어두고 기도하여 불을 내리는 신이 참 신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불의 신이라는 바알은 그 많은 선지자의 부르짖음에도 응답이 없다. 그러나 엘리야가 기도하자 불이 제물과 제단을 모두 태웠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머뭇거리지 말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택하여 섬기라’고 한다.
여화와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에 아들 예수를 그리스도로 세상에 보내시고 그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영생을 얻는 약속을 하신다. 그는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며 필요를 채우시고 기도에 응답하시며 여호와이심을 확인시킨다.
할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여호와가 되시어 평생 나와 함께 하며 일하신 것을 감사하며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144:15)를 다윗과 함께 고백한다.
그대는 어린아이인가?Are You A Child?
그대는 어린아이인가?Are You A Child?
너는 어찌 그렇게 어린아이 같은가 하는 말을 듣는다. 나이와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철이 없고 순진 천진하고 거짓 없이 솔직하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분간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본다. 이런 어린아이는 고대로마사회나 성경에서도 인구 숫자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예수님 주위에 수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았다. 시간도 배고픈 것도 잊는다.주께서 그들을 먹이고자 하나 가진 음식이 없다. 한 어린아이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 놓았다. 자기가 먹을 것을 그대로 드렸다. 예수께서 축복하고 나누어 주게 하니 배부르게 먹은 사람이 5천명이나 이 수에 여자와 어린아이는 포함되지 않았다. 음식을 제공한 어린아이라도 숫자를 말할 때는 사람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왜 그런가? 어린아이는 믿을만한 책임적인 존재가 아니다. 나라를 위하여 전쟁에 나가거나 가정을 먹여 살리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어린아이는 보살핌과 보호를 받는 대상이기에 그에게 책임을 맡기거나 물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시에는 생존율이 낮았기에 그가 얼마나 살지 보장이 없다. 태어나지만 작명이나 출생신고를 미루기도 하고 때로는 죽은 형의 이름과 생일을 받기도 하였다.
어린아이는 질서를 잘 지키지 못하고 마음대로 떠들기에 어른의 모임에서 제외되고 그들을 물리치기도 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며 그들을 안고 축복하며 사랑하시고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다.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다. 그는 어린아이를 어른과 꼭 같은 인격체로 인정하고 천국을 허락하신다. 예수님과 같은 생각으로 방정환 같은 선각자가 어린이날을 제정하게 하였다.
사회에서 소외되는 어린아이가 어떻게 천국을 소유하는 표본이 되나? 어린아이는 감동이 많고 감수성이 강하며 잘 신뢰하고 따르며 의지하기에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이 된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과 일에 감동을 받고 순수한 믿음으로 받아드리며 전적으로 그를 의지하고 신뢰하는 그들을 하나님이 영접하지 않겠나?
어린이가 천국에 들어가면 어른은 들어가지 못하는가? 확실하게 들어간다. 어린아이와 대조되는 어른의 특성은 독립성이 강하며 감정을 표현하거나 어떤 일을 결정하기 전에 경험과 지식에 근거하여 깊이 생각하고 평가하는 여유를 가지고 자기가 한 말이나 일에 대하여 책임을 가진다. 이런 어른이라도 어린아이 같은 감동과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일단 확인하고 믿게 되면 확실하게 신뢰하고 그것을 나누고 전하며 이 일에 평생을 헌신하기도 한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는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 뛰노라/삶이 시작할 때 그러했고 자금 어른이 되어서도 그러하며/ 늙어서도 그러기를 바라노라/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나는 나의 모든 날이 자연 경외로 채워지기를 바라노라 한다.
어린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한다.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어릴 때의 감동과 경험이 어른의 바탕이 된다. 어릴 때 무지개를 보던 감동이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되기를 바란다. 창조주의 자연세계를 감탄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자신을 주는 사랑과 은혜에 감동하여 그를 신뢰하고 그에게 자신을 맡긴다면 그것이 바로 어린아이의 믿음이 아니겠는가. 어린아이가 주의 품에 안기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주 앞에서 어린아이인가 스스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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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산 자의 어머니 Mother of All Living
모든 산 자의 어머니 Mother of All Living
니카라과 단기선교를 갔을 때 만난 한 여인에게 아이 여섯이 있었는데 이들의 아버지가 다 다르면서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아이들은 아주 건강하고 밝고 행복하게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다. 니카라과는 한 때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는데 점령자들이 지나가며 여인들을 임신시키던 행태가 남아 있어 지금도 아버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자 없이는 생명이 생기지 않지만 아버지를 몰라도 엄마는 애기를 낳아 잘 기르고 있는 것이 장하였다. 이 여인이 살아 있는 여섯 아이의 어머니라는 것을 보며 아담이 그 아내 하와를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 부른 것을 생각한다
하나님이 처음 아담과 그의 배필 여자를 지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고 축복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출산하게 했지만 그보다 앞서 생명 자체를 위한 명령을 주셨다.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는 먹을 수 있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는 것이다. 살려면 그 명령을 지키고 선악과를 먹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여자는 ‘그것을 먹으면 죽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는 간교한 뱀의 말을 하나님 말씀보다 더 믿고 그것을 바라보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 것 같아 그것을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다. 그들은 벗은 몸이 부끄러워 나무 잎으로 가리고 하나님이 두려워 숨으면서 뱀에게 속은 것을 알았다.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자 그는 잘못을 인정하였다. 하나님의 형벌로 아담에게는 가시가 있는 땅을 개간하는 수고와 여인에게는 해산하는 고통을 더하고 뱀에게는 배로 다니고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였다. 평화롭고 안전하던 땅에 고통과 갈등이 왔다.
그때 아담은 아내를 하와(생명) 곧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 이름하였다. 어머니는 근원이라는 말로 살아 있는 아이를 출산하여 어머니가 되고 모든 산 자는 그에게서 시작하여 내려간다는 의미다.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말씀에 따라 이들은 죽었지만 아담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죄의 대가로 일하는 수고와 임신과 해산의 고통을 겪게 하시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축복은 살아 있는 것을 알았다.
하와가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말은 생명을 가지는 모든 사람은 그에게 뿌리를 두고 그에게서 시작되었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엄마(움)가 품고 보호하며 생명으로 결실하도록 인내한다.
여자의 후손에서 죄를 짓게 한 뱀, 곧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예수께서 태어나고 그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피 흘려 죽고 부활함으로 죄와 죽음을 가져온 사탄을 정복하고 자기를 믿는 자에게 구원과 영생을 허락하셨다. 하와는 예수님과 함께 예수를 믿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인 생명 공동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의 뜻을 따라 그의 생명사역에 참여한다. 교회는 또한 어머니로서 믿는 자들을 품고 보호하며 자라게 하고 또한 주의 생명을 나누고 많은 사람을 초대함으로 새생명이 태어나고 자라게 하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이어간다.
산 자의 어머니 하와로 시작된 생명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뻗어가면서 세상의 모든 산 자가 예수 안에서 영원히 산 자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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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Encounter
만남 Encounter
숲길 아파트 옆으로 겨울동안 앙상하던 나무들이 봄 기운의 햇빛을 만나며 꽃을 피우고 잎을 내더니 어느새 숲을 이루어 간다. 사람도 만남으로 삶의 방향과 인격이 형성된다. 부모와 만남은 인생의 첫 단추로 중요하다.
시각 청각을 상실한 헬렌 켈러는 설리반 선생을 만남으로 삶의 힘과 희망이 싹트고 교육가 작가 사회운동가로 꽃피웠다.요한 웨슬레는 옥스포드 엘리트로 조지아 원주민 선교사로 2년간 사역하였으나 실패를 자인하고 돌아가는 배에서 폭풍에 시달리며 죽음 같은 두려움에 떨었다. 놀란 일은 갑판 한 곳에 둘러 앉아 조용하게 찬양하는 사람들이다. 그는 그들에게 ‘두렵지 않은가?’ 물었더니 애기를 안고 있는 여인이 ‘이 애기가 두려워할까요’ 반문한다. 그는 충격을 받고 그들 모라비안늘이 모이는 런던 올더스게이트 집회에 참석하여 회심을 체험하고 감리교 창시자가 되었다.
간디가 예수님 산성설교를 읽으며 그 정신이면 인도의 계급제도를 철폐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남아프리카를 방문 중 교회를 찾았다. 안내자가 그를 보더니 잘못 왔으니 건너 편에 있는 (흑인)교회로 가라고 한다. 간디는 ‘이것이 기독교의 실상이라면 나는 평생 힌두로 살겠다’고 결심했다. 누구를 만나는가가 중요하다
가장 위대한 만남은 예수님과의 만남이다. 예수를 믿고 기대하며 따르던 제자들은 그가 잡히고 십자가에 처형되는 것을 보며 실망과 좌절 두려움으로 숨어 있다가 살기 위하여 고기 잡으러 나갔다. 한 마리 잡지 못한 새벽에 누군가 바닷가에 서서 지시하는 대로 따랐더니 그물 가득하게 고기가 잡혔다. 그들은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인 것을 알았다. 주님은 모닥불과 조반을 준비하여 그들을 영접하고 베드로에게 사랑의 고백을 받고 사명을 맡겼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부활하여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 전파를 위하여 삶을 바쳤다.
예수님은 살아 계시기에 사람을 만나신다. 예수 믿는 자를 이단으로 척결하던 사울은 해보다 더 밝은 빛속에서 그의 이름을 거듭하여 부르는 이가 바로 자기가 박해하는 예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뒤집혔다. 그는 박해하던 예수를 생명의 주라고 전파하고 기독교 신앙의 체계를 세웠다.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에서 왕위 쟁탈전쟁을 하던 콘스탄틴은 십자가로 이기라는 환상을 보고 승리하여 왕이 되고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였다.
법학도가 되려던 루터가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가 천둥번개를 만나 둘이 땅에 쓰러지며 ‘성인이여 나를 살려 주시면 수도가가 되겠나이다’ 약속하고 살아나 수도사가 되었다. 윗덴베르크 대학 교수로 강의하며 로마서를 연구하던 중 사람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95개조 토의 제목을 게시한 것이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다.
근대 기독교 역사에서 무디, 스펄전, 가가와 도요히꼬, 이성봉 등은 모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변화되고 쓰임 받았다.
우리는 어떠한가? 예수님을 믿으며 많은 체험이 있어도 믿음의 굴곡을 겪는다. 나는 1978년 수난주간 금식하며 목요일 세족예배를 하고 큰 시험이 덮쳐 영혼의 가장 어두운 밤 성금요일을 맞았다. 부활주일을 어떻게 맞이하나? 고민하며 토요일 예배당에 앉아 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강단에서 나를 바라보신다. 순간 나의 어둠은 사라지고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넘쳤다. 교수에서 목회자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고 평생 살아 계신 예수님을 전하며 섬기는 기쁨과 감격을 가진다.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하며 달려가게 하신 신실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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