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ugust 26, 2022

말의 씨 The Seed of a Word

말의 씨  The Seed of a Word  (8/27/2022)
말에 씨가 있다. 말은 씨와 같이 생명이 있어 통에 두면 그대로 있지만 그것을 뿌리면 싹이 나고 잎이 자라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일단 입밖으로 나간 말은 뿌려진 씨앗이 되고 어떤 말을 하는가에 따라 해당되는 열매를 수확한다. 콩을 뿌리면 콩을 거둔다. 생명이 태속에서부터 엄마의 말을 듣다가 태어날 때 아들이다 딸이다 누구를 닮았다 눈이 크다 작다 등으로 시작하여 삶은 말로 연속되며 듣는 말, 하는 말로 가득하다. 어릴 때 듣는 말이 사람의 인격이나 일생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한 인생의 아픔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어려움은 힘을 기른다며 불굴의 투지로 풍성한 열매를 거둔 자들이 많다. 
성경의 지혜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기에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며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배부르게 된다고 한다. 신혼의 사랑을 나누는 남편이 매일 기타를 치며 이별의 부산 정거장, 목포의 눈물을 부르더니 3년만에 이혼을 하였다. 말은 자신과 듣는 사람의 삶과 인격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말을 할 때마다 어떤 씨를 뿌리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엘리야는 아합왕의 악에 대항하여 3년간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을 것이라 하더니 그대로 되었다. 이 기근 중 외아들과 함께 마지막 음식을 해먹고 죽겠다며 나무를 줍는 과부에게 엘리야는 먼저 자기에게 떡을 주면 기근이 끝나기까지 통의 가루와 기름이 없어지지 않으리라 하더니 그대로 되었다. 엘리야의 말은 그대로 사실로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이다. 어둠이 덮여 있는 태초에 빛이 있으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바로 빛이 생기고 빛과 어둠으로 밤과 낮의 구분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 절정이 구주 예수의 오심이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에게 세상을 구원할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천사가 전할 때 처녀는 모험 속에서 그 말을 마음 밭에 받아드리니 그대로 이루어졌다.  요한은 예수를 말씀이요 그 말씀은 하나님이라 하였다. 예수께서는 자기와 하나님은 하나라며 그의 말은 곧 영이요 생명이라 하였다. 그의 말씀을 받으면 그를 받는 것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을 받는 것이라 생명을 얻는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한다 하시며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게 하신다. 부모도 인정하지 않는 막내 다윗을 하나님이 만나자 자기 마음에 합한 자라 자기 뜻을 이루겠다고 하시더니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 최고의 왕이 되게 하고 그를 통하여 메시아가 오는 길을 열었다, 예수께서 오신 것은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기 위함이라 그의 말씀을 받으면 속에서 풍성한 생명의 싹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들것에 실려온 중풍병자에게 네 죄가 사함 받았다 일어나 걸으라고 그가 말씀하자 그는 일어나 걸어갔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말씀을 내가 받으니 어디서나 그가 내 옆에 계심을 확인하며 두려움이나 외로움 없이 지금까지 살고 있다. 
세상의 많은 말은 두려움과 염려를 주지만 생명의 열매를 누릴 수 있는 한 가지 말을 주고 받는 것은 바로 각자가 결정해야 할 부분이다. 

Tuesday, August 23, 2022

참 해방 Real Liberation

참 해방 Real Liberation (8/20/2022)
지난 광복절은 한국이 일본의 야만적인 억압과 수탈에서 해방되고 77년이었다. 국호와 국토, 주권, 문화와 언어 이름을 몰수하고 징집 징용 정신대로 국민을 도구로 삼고 많은 가정이 분산되고 300만 이상이 죽임을 당한 속박에서 해방되고 끊어졌던 반만년 역사가 다시 맥을 이었다. 해방이 되었지만 많은 사람은 일본을 향한 원한과 분노에 쌓이고 다른 이는 일본과 그 물품을 동경하였다. 나라는 분단되고 차별과 분리, 불신과 소외 등 무거운 눌림이 있다. 최빈국에서 오늘 10대 경제대국이 되었으나 자기 중심의 아집과 편견 가운데 최고가 되고자 명품을 찾으며 비교와 경쟁으로 “헬조선”이 되고 금년도 세계 행복 지수는 149나라 중 59위로 나타난다.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인터넷 사용이 세계 최고로 미국보다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나 실제로 마음은 해방과 거리가 먼 형편이다. 
미국 흑인은 링컨의 해방 선언 2년 후 1865년 6월19일 (Juneteenth)에 실제 해방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자유인의 삶을 모르고 여전히 억압 받는 피해자로 열등의식에 눌려 있다. 주거 학교 버스의 분리 정책에 정당한 시민 대우를 받지 못하고 표적 조사 죽임을 당하며 고통을 겪고 있어 “흑인의 생명도 귀하다”는 운동을 펼치지만 정신과 태도에는 해방과 거리가 있다. Rosa Parks 는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면서 담대하게 해방의 투쟁을 하고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 민권운동을 촉진시켰다. 응급실 흑인 의사 미셸은 죽고 깨어진 후에 삶의 참 길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숨쉬는 매순간이 새로운 기회요 내적인 혁명이 참해방의 길이라 한다. 자기 존중이 없어 매달 새로운 유행의 운동화를 신고 자기 억압에서 풀려나는 기분을 가지다가 외모와 상관없이 자기의 존귀함과 소중함을 인식하자 삶의 가치가 변하는 것을 본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0년간 노예로 고통하고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이 듣고 모세를 세워 초자연적인 힘으로 해방을 하였지만 힘든 광야에서 그들의 마음은 애굽에 종이 되어 불평과 원망을 하다가 참해방을 보지 못하고 멸망하였다.
하나님은 참해방을 주신다. 에덴동산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벗어나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사탄의 지시로 육체와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빠지고 얽매여 죄와 죽음의 종이 되었다. 여기 예수께서 해방자로 오셨다. 온 세상에 미칠 좋은 소식을 나누는 사역을 준비하며 그는 기도하는 가운데 에덴에서 활동하던 사탄의 같은 시험을 받지만 성령과 말씀으로 물리치고 해방의 자유를 가지고 사명을 선언하였다. 성령이 임함으로 가난하고 눌린 자, 포로의 해방을 선포하고는 바로 소외자 병자 귀신들린 자를 고치고 회복하여 해방시켰다. 네 사람이 메고 온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일어나 걸어가라 하자 그는 정상인으로 회복되었다. 
성전 앞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향하여 베드로는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자 그는 평생 눌려 있던 속박에서 풀려났다. 이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인종과 계층 편견 등 여러 속박에 눌린 자들을 성령과 말씀의 능력으로 해방하고 죄와 죽음의 두려움에서 풀어주는 구원 사역의 현장이 교회다. 이를 위해 주시는 주님의 능력을 교회는 체험하머 활용하고 있는가? 

Monday, August 15, 2022

자유와 질서 Freedom and Order

자유와 질서 Freedom and Order (8/13/2022)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의 별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일정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구는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밤낮과 계절을 구분하고 시간을 정하고 달력을 만들며 이에 맞추어 사람은 농사와 삶을 영위하지만 지구는 인간계획이나 기술에 따르지 않는다. 지구가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거나 운행을 중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구의 모든 것은 끝이 나리라.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마음껏 달리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얼마전 시카고 북쪽 90번 고속도로에서 밤중 충돌사고로 어린이 5명을 포함 7명이 즉사하였다. 서쪽으로 갈 차가 동쪽 길로 질주하며 정면충돌을 한 것이다. 자유롭게 운전하고 달리지만 길을 잘못 택함으로 자신과 남을 망치었다. 안전을 위하여 안내판이 있고 경찰이 배치되지만 점점 경찰이 보이지 않고 대신 카메라나 CCTV를 사용하며 한국에는 CCTV 800만개가 설치되어 있어 개인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기에 범죄와 사고가 줄어든다고 한다. 누군가가 나를 감시, 조정하고 있음을 알면 내가 방종하지 않고 자제한다. 이는 속박이 아니라 안녕, 질서를 위함이다. 자유는 결핍과 무지, 속박과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이지만 더욱 안전과 행복, 사랑의 관계로 풍성한 생명을 가지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신을 닮게 했다는 것은 확실히 자유하게 하심이다. 동산에서 그들은 마음대로 먹고 행동할 수 있었으나 생명을 위하여 한 가지,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법을 받았다. 생명의 소중함과 자유의 의미를 알고 삶의 질서를 위함이나 그들은 선악과를 먹었다. 결과로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며 그를 두려워하고 그의 말씀대로 되는 것을 알았다. 모든 생명과 번식, 태양계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바둑대결에서 쉽사리 4:1로 이긴 것은 알파고 스스로가 아니라 250명 박사의 기술로 가능하였다. 인공지능의 집안청소에서 자동차 자율운행, 전쟁참전, 우주 탐사까지 모든 것은 뒤에서 작용하는 힘에 의하여 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인공지능 로보트로 만들지 않았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셨다.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간섭하지 않고 자유를 주신다. 아담이 금지된 선악과를 먹을 때도 막지 않으셨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것을 핑계하고 정당화 하지만 하나님은 그 책임을 묻고 생명이신 하나님을 떠난 죄의 결과 죽음으로 심판하셨다. 인공지능이 잘못되면 그것을 만든 사람의 책임이지만 인간의 잘못은 철저하게 자신이 담당하게 된 것은 그가 완전 자유인으로 행동하였다는 것이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통제아래 있음을 본다.  
역사적으로 많이 논란된 한 가지 신학이론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주제다. 함께 종교개혁운동을 하면서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칼빈측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하는 아르미니우스측은 상대의 생각을 받아주지 못하여 갈라지고 이에 따라 장로교 감리교 등 교단이 분립되고 분쟁이 있었다. 이 둘은 어느 것 하나가 아니라 처음부터 함께 있다.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떠나 죽음에 처한 사람에게 참 생명을 주시고자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아들을 보내시고 아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고 부활함으로 그를 믿는 자가 영생을 얻게 한 것은 생명의 질서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이요 우리를 향한 사랑과 은혜이기에 이를 아는 사람은 감사함으로 그를 예배하는 자유를 가진다.









Saturday, August 6, 2022

이름값 Roles of a Name

이름값   Roles of a Name (8/6/2022)
물건을 모르면 비싼 것을 사라는 말이 있다. 그것을 만든 회사가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생활용품 미제를 찾기가 어렵지만 한때 미제라면 좋은 제품으로 알려졌다. 미국을 믿을 수 있듯이 그 제품도 믿을 수 있었다. 
이름은 사람이나 물건을 서로 구분하면서 그 성격 의미 목적을 보여준다. 이름은 일컬음에서 나오고 최초로 이름을 지어 부른 이는 하나님이다. 천지를 창조한 때 어둠 혼돈 공허였지만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생겨나 창조의 아름다움이 나타나고 보기에 좋았다. 어둠과 빛을 구분하여 밤낮이라 불렀다. 이름 불러 생긴 빛의 이름값은 어둠을 물리치고 아름다움을 보이며 구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고 아담이라 하였다. 아담은 흙이라 그는 흙에서 와서 흙에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지만 하나님의 영이 들어가면 생동하는 것이 사람의 가치다. 하나님은 자기 영을 거진 아담에게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여 그들을 구분하고 이름대로 특색을 나타내고 각각이 자기 이름에 응하도록 하였다. 아담은 부인의 이름을 하와라 하여 생명체로 태어나는 사람의 어머니가 되게 하였다. 이름을 부르면 그 특성과 가치가 나타나게 활동한다. 
사람이 자녀를 낳으면 이름을 짓는다. 성경에서 데라가 아들을 낳고 높임 받는 아버지 아브람이라 하였다. 그는 결혼을 했지만 아버지라 불러줄 자녀가 나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를 만나 그로 큰 민족을 이루고 그에게 복을 주어 모든 사람에게 복이 될 것이라며 있던 곳을 떠나 그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하신다. 순종하니 그 이름을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셨다. 아브라함이라 부를 때마다 그 이름의 의미가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게 되고 결국 25년 후에 아들이 태어나면서 그는 유대인 그리스도인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하나님이 세상에 보낸 아들을 예수 곧 구원자라 하고 그가 사역하며 모은 동역자 가운데 시몬을 베드로 반석이라 불렀다. 바람에 날리는 가벼운 모래라는 시몬을 반석이라 하며 그 위에 자기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였다. 베드로는 그의 말과 행동에 시몬의 특성이 있었지만 주의 영을 받자 창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믿음은 교회의 든든한 초석이 되었다. 이름을 짓고 부르는 것은 그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역사상 유례 없는 팬데믹으로 지난 2년 반 이상 세계는 마비되다 싶이 하고 백신이 개발되고 마스크와 거리두기 손씻기로 주의를 하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는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주범으로 그  이름이 코로나다. 코로나는 왕관, 왕관을 씌운다는 말이다. 코로나! 하면 상대에게 왕이다, 왕관을 드린다, 우리를 다스리라 하는 말이다. 코로나로 불리면 바이러스는 왕으로 군림한다. 인간을 파괴하는 사탄이 이 바이러스를 업고 세상과 교회, 믿음을 무너뜨리고 격리시키며 이름 값을 한다. 그리스도인은 코비드라 부르더라도 더 이상 코로나로 부르지 않고 멀리하면 점차로 힘을 잃을 것이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가지는가? 예수를 믿으면 그리스도인이다. 사탄과 죽음을 이긴 그리스도의 사람이면 악한 자가 감히 침범하지 못한다.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가 되면 더 이상 어둠이 다스리지 못한다. 위력 있는 이름 그리스도인이 자랑스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