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28, 2020

국가적 재난과 위기에서 In the Midst of Global Disaster and Crisis

국가적 재난과 위기에서 In the Midst of Global Disaster and Crisis (3/28/20)

이스라엘 다윗의 왕정 말기에 국가적인 큰 재난이 닥쳐왔다. 3년간 기근이 계속되는 일과 역병으로 7만명이 죽는 참사였다. 기근은 큰 재난이다. 에티오피아가 하늘의 비로 농사를 짓는데 5년간 기근으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폐위를 당하고 공산주의가 시작되었지만 3년간 기근으로 멩기스투 정권은 17년만에 무너졌다. 히스기야왕 당시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왔지만 하룻밤 역병으로 앗수르 군대 십팔만 오천명 모두가 송장이 되었다. 기근과 경제 문제는 정권이 바뀌는 큰 문제요 역병으로 국민들이 죽어나가는 것도 국가의 패망위기다. 오늘 온 세계가 함께 직면하는 문제를 어떻게 감당할까?

재난이 어떻게 생겼나를 묻는다. 기근 가운데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자 여호와께서는 사울과 그 집이 기브온 사람을 죽여 피를 흘린 것으로 인함이라 하신다. 기브온 사람은 아모리 족속으로 여호수아 앞에 항복해오자 이스라엘이 그들과 맹세하여 그들을 살리고 함께 살게하였는데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한 열심으로 그들을 죽인 것이다(삼하21:12). 하나님 앞에서의 맹세를 저버린 것과 인종주의였다. 하나님 앞에서의 맹세는 대대로 지키게 되는데 사울은 자기 족속을 위한다며 그들을 죽인 것이다.
전국적인 역병은 다윗의 인구조사가 이유였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전쟁에 이기게 하고 나라를 확장하고 안정시킨 것을 알면서도 이제 자기의 군사력이 얼마나 되는가를 확인할 의도였다. 이로 인해 하나님이 제시한 세 가지 재난 중에 다윗이 군사력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택일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다윗은 가장 가벼울 것으로 알고 역병을 택하였지만 역병천사가 7만명을 죽이고 왕도 예루살렘을 향한다. 국가의 위기다.

위기와 재난에 다윗은 어떻게 응하나?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묻는다.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다윗은 그들의 소원대로 사울의 자손 중에서 일곱명을 그들에게 내어 주어 응당한 벌을 받게 하였더니 비가 내린다. 다윗은 죽은 자들과 사울 요나단 부자를 함께 조상 묘지에 안장하여 사울, 요나단과 맺은 약속을 지켰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어주셨다.
역병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백성은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 집을 치소서 (삼하24:17) 회개하는 기도를 하다. 다윗은 선지자 갓의 말을 따라 아라우나의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 그곳에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고 재앙이 그쳤다.

이런 일은 역사에 반복된다. 오늘 세계와 미국이 겪고 있는 재난 앞에 주의 종들과 국가 지도자는 깊이 생각하고 기도할 때라고 본다. 미국은 이민자로 된 나라, 이민자가 들어오는 뉴욕 항구 엘리스 섬에 항로를 밝히는 횃불을 들고 서 있는 여인은 가난하고 삶에 지쳐 해안의 쓰레기로 버려진 이들은 내게로 오라 황금문 옆에서 불을 비쳐주리라 한다. 이것이 건국자의 이념이요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사는 합중국 정신이다. 이민을 봉쇄하고 소수자를 차별하는 백인우월 주의는 건국정신도 하나님의 마음도 아니다. 한국의 현존과 발전을 스스로 이룬 것처럼 생각하고 미국은 돈과 과학 기술 무기가 미국을 위대하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다윗의 대처방안을 보며 우리가 당면한 재난 앞에 모두 겸손하게 엎드릴 때가 아니겠나!


Friday, March 27, 2020

The Crown to Whom? (English)

The Crown to Whom? (3/26/20)

As in the Bible we name people with specific meanings. Calling Chun Soo or Man Bok, we expect the named to live thousand years or to be blessed with ten thousand blessings, but the name given by God fulfills its intended meaning. Abraham named by God as father of all nations has become the ancestor of Jews, Christians and Moslems in the world, Peter the Rock being the foundation faith of the church.

God, sending his son into the world, named him Jesus, Savior from sin and death. Three wise men from afar came to Jerusalem and asked for the newborn King of the Jews. Jesus, launching his ministry in Capernaum (village of comfort), visited the synagogue there to worship God. A demon-possessed man there saw him and cried, “He is the son of God” and the demon left his host. Jesus gives comfort, peace, healing and life any place and any time.
The centurion of Rome the world power in charge of executing Jesus saw him die and confessed and proclaimed, “He is the son of God indeed”. Completing his ministry and returning to God, Jesus sat on the throne, with all living creatures and elders around laying their crowns before him and praising him. His church sings praises, ‘Crown Him with Many Crowns’, ‘Crown Him, Crown Him, King of Kings’, proclaiming him as Savior King.

Now the whole world has almost stopped its function in unprecedented horror due to a novel virus. World Health Organization named it coronavirus for it looks like a ball with spikes. Corona means crown in Latin. Coronavirus can be interpreted as ‘crown to virus’. The same virus ended up as 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and 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before but now it acts like a king.

The virus seems to me like a spiked mace used in medieval torture and flogging. It invades a host without any symptom and spreads to neighbors secretly, attacking the breathing organ and finally choking it to death. It spreads rapidly in secret to all continents of the world except Antarctic and to all 50 states of USA, disabling all finance, science, technology and military forces, disassembling company, factory, school, church, and public and private organizations, and distancing each other in distrust. Crying ‘coronavirus (crown to virus)’, all surrender and see it proceed.

The virus adjusts properly as a living organ. It invades in disguise and deceit, grows and kills the host. Individuals, organizations, and nations almost stop their regular activities, surrender and lay their crowns before it without resistance, opening the way for it to expand its power like king. It is what Satan does. Satan disguises itself from the beginning, deceives with lies, and separates God and man, killing and destroying man. Satan even appeared to Jesus saying “I will give you the whole world of splendor if you bow down and worship me” but Jesus commanded, “Satan, be gone! Worship and serve the Lord your God only.” Satan left him right away. Then Satan and its tool demons run away in fear and trembling even at a sight of Jesus and then are thrown in fire of hell finally. Satan dare not stand along with Lord Jesus, author of breath, vitality and abundant life.

Most of the church and Christians have crowned self and world as king. Now you see they lay their glorious crowns before the virus preceding Satan, don’t you? We will rather shout “Spiked mace to virus!” won’t we? Isn’t it time for us Christians and churches to watch and repent our self-imposed kingship contrary to our saying that Jesus is our King? Where Lord Jesus reigns as King, there comes the heaven full of life, love, freedom and peace. Won’t we start our faith reformation for life as we sing praise loudly in spirit and truth ‘Crown Jesus’?

Wednesday, March 25, 2020

왕관을 누구에게? The Crown to Whom?

왕관을 누구에게? The Crown to Whom? (3/25/20)

성경에서와 같이 우리는 이름에 의미를 부여한다. 천수, 만복이라 부르며 오래 살고 모든 복을 받아 이름대로 되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은 그대로 된다. 열국의 아버지란 이름을 받은 아브라함은 유대인, 기독교인, 회교도의 조상이 되고 반석이란 베드로는 믿음으로 교회의 초석이 되었다.
하나님은 아들을 세상에 보내며 이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자, 예수라 하였다. 멀리서 찾아온 천체연구가는 그를 유대인의 왕으로 불렀다. 예수는 멸시받는 어촌 가버나움(위로의 마을)에서 사역을 시작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회당에 들어갔다. 마침 그곳에 왔던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를 보더니 하나님의 아들이라소리지르며 귀신이 떠나가다. 예수는 위로와 평안, 치유와 생명을 주신다. 이 예수를 사형집행한 세계의 권력 로마의 백부장은 마지막 그에 대하여 이 사람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다고백하고 선포하였다(15:39). 예수께서 사역을 마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의 보좌에 앉으니 둘러 선 생물과 장로들이 그 앞에 엎드려 머리의 면류관을 벗어 그에게 드리며 왕으로 찬양한다(4:10). 온 교회가 그를 구원자 왕으로 믿고 선포하며 면류관 벗어서 주 앞에 드리세’(25), ‘왕관 드려 왕관 드려 승리하신 주님께’(12)를 찬양한다.

지금 온 세계가 유례 없는 공포로 거의 정지상태에 빠졌다. 이상한 바이러스의 영향이다. 그것이 공에 대못이 박힌 것처럼 생겼다고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바이러스라 이름하다(Covid-19). 코로나는 라틴어로 왕관(Crown)이며 코로나바이러스라 하면 왕관을 바이러스에게로 해석된다. 같은 바이러스가 이전에는 SARS (심한 호흡장애증), MERS(중동 호흡장애증)로 끝났으나 이번에는 왕노릇한다.
내가 볼 때 이 바이러스는 중세시대 고문과 매질에 사용된 철퇴 (Mace)와 같다. 이것이 들어오면 처음엔 증상 없이 숨어서 이웃으로 전달하다가 결국 호흡을 곤란하게 하고 숨통을 막는다. 은밀히 삽시간에 남극을 제외한 온 세계, 미국 50개주 전체에 퍼져 부와 과학, 기술과 무력을 손들게 하고 공장과 회사, 학교, 교회, 식당 등 모든 모임을 해체하고 격리시키며 서로에게 불신을 일으킨다. 누구나 어디서나 코로나바이러스!’라며 항복하니 진행되는 일이다.

바이러스는 생명체이기에 적응한다. 자기를 감추고 속이면서 침투하고는 퍼져가다가 숨을 끊어 죽인다. 개인이나 단체, 국가가 정상 활동을 중지하고 죽은듯 그에게 항복하고 왕관을 바치니 그는 왕이라 자처하며 마음대로 뻗어간다. 이는 바로 사탄이 하는 일이다. 사탄은 처음부터 가장하여 거짓으로 속이고 사람을 하나님과 갈라놓고 죽이고 멸망시킨다. 그는 예수에게도 나타나 내게 엎드려 경배하라 그러면 온 세상을 주겠노라했으나 주께서는 오직 주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라고 명하니 사탄은 떠나갔다. 그러자 사탄이나 그 졸개 귀신은 예수를 보기만해도 두려워하고 떨며 도망하다가 마지막은 불못에 던져진다. 호흡과 생기,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구주 예수와 사탄은 공존할 수가 없다.

그간 교회와 성도라도 대개 자신과 세상을 왕으로 섬겼다. 그러다 바이러스를 앞세운 사탄 앞에 우리가 자랑하던 모든 영광 왕관을 맥없이 벗어 바치고 있지 않은가! ‘철퇴를 바이러스에게!’ 힘차게 외칠 일이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왕이신 주를 모시면서도 그동안 스스로 왕노릇하던 것을 회개하고 새롭게 구주 예수를 왕으로 모실 때가 되었다. 주 예수가 왕으로 다스리면 생명과 사랑, 자유와 평화가 가득한 천국이 임한다. 나와 가정, 교회가 예수께 왕관드려' 신령과 진정으로 찬양함으로 살기 위한 신앙개혁을 일으켜야 하지 않을까!

Friday, March 20, 2020

고난과 단련 Adversity and Training

고난과 단련 Adversity and Training (3/18/20)
은퇴 후 미네소타에서 목사 없는 교회의 임시목회를 할 때 교회에 나오지 않은 사람의 장례식 집례를 부탁받았다. 카작스탄의 고려인으로 미국에 와 살다가 세상을 떠난 블라디미르 김씨의 장례식이다. 고인에 대한 이야기는 눈물겨운 우리 조국의 이야기였다. 조선의 가난과 기근을 벗어나고자 만주와 북간도, 연해주로 옮겨간 이들이 많았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스탈린 정책으로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20만명 가량이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할 때 고인은 네 살 아이로 끌려가며 부모를 잃고 기차 짐칸에 던져졌다. 황량한 들판에 내버려진 사람들 중에서 이 아이는 마침 삼촌의 손길을 만나 거둠을 받았다. 맨손으로 땅을 일구고 생존해야 하는 그들의 새로운 운명이 시작되었다. 미국같이 풍요한 나라에서도 이민 일세가 밤낮으로 온갖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그들의 삶이 어떠하였을까! 고난 속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은 꿈의 힘으로 일어나 뻗어가고 가정을 이루며 자녀를 길렀다. 이들 중 고인의 딸 하나가 1976, 80년 올림픽 체조종목에서 금메달 다섯을 차지한 소련 대표선수 넬리김이었다. 고난을 통하여 강인하게 훈련된 결과를 안았다. 그 후 넬리는 국제 체조연맹 이사가 되어 1996년 미국으로 오고 부모와 가족을 초청한 것이다.
우리 민족처럼 강인한 민족도 드물다. 먹을 것이 없는 가난만 아니라 외국의 침략을 받으며 모든 것을 빼앗기는 가운데도 연단과 인내로 살아남아 오늘같이 자랑스런 한국을 만든 것이다. 미국 이민역사에도 한인처럼 단시일에 일어난 민족이 일찍 없었다고 한다. 어떤 형편에나 굴하지 않고 이기고 일어나 밀고나가는 끈질긴 면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고난 속에 단련되고 이로 인하여 역경에 대한 면역이 강해진 것이라 본다.
삶자체가 전쟁이라 항상 생사의 위험을 안고 산다. 우리 몸과 건강을 위협하는 병균과 질병이 너무나 많다. 이상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세계가 마비되고 감염과 죽음의 두려움이 삶을 누르고 있지만 면역이 강한 젊은이들은 설령 감염이 되어도 별 증상 없이 잘 감당하고 이겨낸다고 한다. 음식이나 운동이 면역 향상에 도움되지만 고난과 단련으로 속에서 생성되는 힘은 더 크다. 노숙자 사역자는 노숙자들은 면역이 강하여 감기나 병에 잘 걸리지 않지만 일단 걸리면 감당하기 어렵다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데 조그만 나라로서 역사상 어떤 나라보다도 고난을 많이 겪고 나라 이름이 없어지기도 했다. 하나님이 과연 계신가? 계신다면 그들에게 왜 그런 고난이 일어나나? 하나님은 그만큼 힘이 없는 분인가? 이런 질문은 성경에나 지금에나 계속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외국의 침략과 점령으로 나라를 잃고 포로로 잡혀가 세상에 흩어지고 사는 곳에서 멸시와 천대, 학살까지 당하였다. 그러나 그 민족은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아 일어날 뿐 아니라 옛 조국땅에 나라를 회복하고 현재 경제 과학 언론 등 각방면에서 온 세계와 미국에 뛰어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고 잘 산다는데 왜 이런 고난을 겪는가? 하나님이 주신 생명 길을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에 좋은대로 살아간 결과이지만 하나님은 죽음같은 고난으로 이들을 단련하신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우리는 함께 겪는 어려움 속에서도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망을 가지게 된다.

Thursday, March 12, 2020

알자 힘써 알자 Know, Press on to Know

알자 힘써 알자 Know Press on to Know (3/12/20)

셀폰은 우리 삶에 필수가 되어 있다. 전화만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이메일, 화상대화, 사진, 비데오, 음악, 영화, 정보 등 과거에 상상하지 못하던 많은 것을 언제 어디서나 즐기고 있다. 사진을 찍으면 그것을 용도별로 분류하여 앨범이나 책을 만들고 행사별 연도별 슬라이드 등으로 유용하게 활용한다. 알지 못하면 무용이기에 계속하여  힘써 배우고 익힌다.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서도 지금 연구하는 개인과 기관이 많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고자 재정을 투자하고 힘써 연구하고 있기에 멀지 않아 그 정체가 들어나면 접종 예방도 치료도 가능할 것이다. 그 때가 오기 전에 수 많은 사람이 감염되어 죽고 있는 현실이기에 감염되지 않도록 나라나 개인이나 접촉을 제한하여 격리하고 손을 씻어도 잘 씻어야 하는 지침이 나와 있기에 잘 따르면 어느 정도 안전할 수가 있다.
이민자로 이 땅에서 다른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살기 위하여는 배울 것이 전부다. 평생을 살아도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 지금도 힘써 배우며 알아가고 있다. 모르면 당장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이 나라의 사회 경제 문화 자연의 다양한 유익을 누리지 못한다. 아는 것은 생존, 잘 사는 힘이 된다.
성경에서 구원 의미의 이름 호세아 선지자는 그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고 있다며 알자, 힘써 알자고 한다. 알면 구원과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열심히 탐구하고 애써 알면 삶의 유익과 편리함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고자 열심히 애써 공부하면 원하는 학교에 들어갈 수도 있다.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면 의욕과 동기가 생기고  사회 위치와 장래에 도움과 유익을 얻을 수는 있으나 그것이 정말 원하는 구원과 생명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호세아는 구원과 생명을 위하여 여호와를 알자고 한다. 여호와는 영원히 스스로 계신 창조자로 생명의 근원이며 생명의 길을 제시하는 하나님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믿는 하나님, 오늘 그리스도인이 믿는 예수,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이다. 그를 알되 무엇보다 앞서 힘써 아는 것이 구원과 삶의 길이요 한 평생 잠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건강식을 하면 건강해진다는 것을 알면 그것을 섭취하듯이 생명을 누림에는 생명 원천 소유임을 알게 되면 그를 받아드린다. 여호와를 어떻게 아나?
어떤 것을 알려면 매뉴얼을 본다. 하나님 자신과 생명의 길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성경이다. 성경을 떠나서 하나님을 알 수가 없기에 그를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힘써 알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면 성경에서 아는 하나님을 경험으로 더욱 확인한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친구 관계를 맺음으로 그를 알렸다. 그를 알고 받아드려 그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의 생명 사랑 능력 평안을 경험한다.
때로 우리는 눈으로 하나님을 보고 싶으나 너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하고 내 등을 볼 것이라하신다. 앞에서가 아니라 그가 지난 자취를 보라는 말이다. 내 삶과 역사에 그가 지나간 자리는 내가 그를 확실하게 알고 믿음으로 생명과 구원을 얻는 길을 열어준다.

Saturday, March 7, 2020

생명이 넘치는 행복한 교회 A Happy Church full of Vitality

요한21:15-17 생명이 넘치는 행복한 교회 A Happy Church full of Vitality (3/8/20 언약)

은퇴목사, 스페어 타이어, 평소 보이지 않다가 타이어에 문제가 생기면 찾는다. 이번 위임 예배에 권면 타이어가 펑크 났어요 하루 있더니 설교 타이어가 펑크 났어요 한다. 그런데 스페어는 일시적으로 필요를 채우지만 원래 타이어와는 비교가 되지 못함을 양해하자.
기도:

70년대 이민 사회에서 세 가지를 잘만나야 복이다. 자동차 미케닉, 고장이 자주 났기에 좋은 미케닉 만나는 것 중요, 피곤하게 살고 아이들 학교나 우리 건강을 위해 검진 받을 일 많은데 의사를 잘 만나야 했다. 이민 생활 많은 것이 미숙한 때 교회는 위로와 안식, 정보만 아니라 정말 삶의 기둥을 세워주는 역할을 한다. 교회를 말할 때 무엇? 건물이 아니라 목사와 교인이다. 교인은 좋은 목사를 만나고 목사는 좋은 교인들을 만나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있나? 시간이 지나며 서로가 그렇게 만들어 간다. 부부도 처음부터 행복한 좋은 부부도 있지만 세월을 지나며 서로가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과 같다. 목사와 교인이 행복한 관계를 형성하면 교회생활이 재미가 있고 사는 맛이 나고 생기가 솟아난다. 이번 위임되는 목사와 교인들이 서로가 행복을 느끼고 삶의 기운이 넘쳐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주님은 목사와 교인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말씀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양이라 하시다. 예수님은 교회를 자기 양이라 한다. 많은 관계 가운데 왜 목자와 양이라 하시나?
1 양은 항상 목자를 필요로 한다. 양은 온순해보이나 고집이 많아 자기 길로 가다가 위험에 빠진다. 양은 근시라 멀리 보지 못하고 눈 앞에 있는 것만 보고 따라가다가 길을 잃는다. 양은 힘이 없고 약하여 쉽사리 도둑이나 사나운 짐승의 표적이 된다. 목자가 함께 하지 않으면 양은 항상 위험이다. 제대로 살 수가 없다. 이것이 곧 이스라엘이요 교회다. 이를 아는 다윗은 스스로 목자이지만 또한 하나님을 자기 목자라 한다. 그는 매일 하나님이 목자라는 것을 고백한다. 하나님은 또한 자기 양된 그 백성을 위하여자기 목자를 세워주시다.
목자를 세우심: 하나님은 자기 양된 백성을 위하여 목자를 세우신다. 왕 제사장 등을 세우신다. 예수께서도 교회된 자기 양을 위하여 목자를 세우신다. 본문 디베랴 바닷가 실망과 좌절 속에 옛 직업 고기잡이로 돌아온 일곱 제자를 찾아오신다. 그리고는 그들을 대표하여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세번이나 말씀하시며 그를 목자로 세워주신다. 베드로는 주께서 위임하고 세워주신 훌륭한 목자였다. 교회 지도자의 일은 목자의 일이라 이를 목사라 부른다. 베드로는 목자로 세움 받아 주의 백성 교회를 잘 치리하였다.

  주님이 누구를 목자로 세워 자기 양을 맡기나?
목사의 자격과 조건은 무엇인가?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지만 주님은 이런 조건보다 주를 사랑하는가를 본다. 네가 나를 사랑하나? 정말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나? 왜 목사가 되나? 직업중 하나로 택할 수 있다. 대우를 생각한다. 편안 것을 찾는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양을 주의 심정으로 사랑한다. 주님의 양인 교회를 사랑할 사람을 목자로 세우신다.
목자를 세울 때 주께서 기대하는 것은:
1) 양을 먹이라. 양의 기본 필요를 채운다. 주님은 디베랴 바닷가 실의에 빠진 그들을 찾아가 추운 그들을 위하여 불을 피우고 배고픈 그들을 위하여 조반을 준비하셨다. 그들을 먹이는 일이다. 목자가 양을 위하여 싱싱한 꼴 시원한 물을 제공하여 그들로 배부르고 만족하게 한다. 먹일 때 양의 정도가 모두 다르다. 어떤 이는 부드러운 젖만 마시는 자가 있고 어떤 이는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오늘 많은 설교 많은 책이 홍수처럼 범람하나 하나님을 알게 하고 참 생명을 주는 양식이 얼마나 되나? 아모스는 양식, 물이 없는 기갈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없는 기갈이라 탄식하다. 하나님 말씀만이 생명 주고 길을 인도하기에 목자는 각자 양에게 맞는 양식을 준비해서 먹임으로 양의 생명과 성장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2) 내 양을 치라, 돌보라. 양들이 길을 잃고 헤맬때 찾아가고 짐승이 다가올 때 막아낸다. 병든 자, 소외자, 영양 실조, 시험에 빠진 자가 있는가를 살핀다. 목자는 양이 어디 있는가를 알고 살핀다. 주의 제자가 실의와 두려움에 빠져 바다에 나간 것을 주님은 알고 찾아오신다. 목자는 매일 아침 저녁 양의 이름 하나 하나를 부르며 양과 눈을 맞추고 그들의 형편을 확인하고 사랑을 표현한다.
3) 목숨바쳐 최선을 다하라. 삯군이 아니라 목자로서 일하라.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양을 칠 때 양하나라도 잃지 않도록 눈붙일 틈도 없어 돌보았다. 다윗은 자기 아버지 양을 지키기 위하여 사자 곰과 싸워야 했다. 예수께서는 선한 목자라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시다. 베드로도 주를 사랑하기에 주의 양을 사랑하기에 억지가 아니라 자원함으로 또 어떤 이익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고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양의 본이 되는 목회를 하고 다른 목사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권하며 자기 목숨을 내려 놓았다. 바울은 교회에 흉악한 이리가 들어와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니 깨어 기도하라 하며 자기를 바쳤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이나 다른 사람 상관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 주님만이 우리가 따를 목자의 모범이기에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쳐주신 주님을 본받아 주의 양을 위하여 내 삶을 드린다.
4) 품에 안고 중보한다. 양이 목자를 떠나거나 목자를 반대하거나 불평을 쏟아놓으면 어떻게 하나목자는 밤을 세워서도 찾아 어깨에 메고 온다. 모세는 불평 원망하며 돌질 하려는 백성을 가슴에 안고 엎드려 기도하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러지 않으면 차라리 나를 데려가소서. 그들 위하여 중보하는 사역을 함으로 하나님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다. 목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첫 말씀이 아버지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신을 온전히 바치다. 이렇게 충성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여 영광의 면류관을 준비하고 계신다. 이런 목자라면 양이 행복하지 않겠나? 정말 살맛나고 힘이 나지 않겠나?

  이런 행복을 가지기 위하여 양은 어떻게 해야 하나?
1) 목자를 받아드린다. 우리가 목자 없이는 주리고 길을 잃고 헤맬 것이기에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자를 세우시어 노회를 통하여 위임해 주신다는 것을 인식한다. 우리가 광고내고 면접하여 우리 좋은대로 목자를 정하였다 말할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주께서 이 교회를 사랑하여 이 교회의 형편에 맞는 목자를 보내주신 것이다. 목사가 이전 교회에서 여기 온 것은 더 좋은 조건을 찾을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의 종이기에 주께서 가라고 하니 순종하여 왔다는 것을 본인과 교인들이 함께 인정해야한다. 목사는 우리 목자요 교인들은 나에게 맡겨주신 주의 양임을 인정하고 받아드림이 아름다운 좋은 관계다.
2)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간다. 그것이 사는 길이다. 목자가 앞서가며 인도하면 양들은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간다(10:4)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른다(10:27). 이것이 생명 길이다. 목사를 통하여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받아드리고 그 말씀을 따라 살고 행한다. 주일 예배만 아니라 성경공부와 기도회 모임등에 함께 하며 말씀을 받아먹고 훈련되면 자라고 성숙한다.
3) 자라고 번식한다. 성장하면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와 전도를 통하여 다른 사람을 주 앞으로 교회로 인도하여 번식한다. 야곱이 치던 라반의 양떼가 얼마되지 않았으나 야곱이 치는 동안 큰 떼로 자라났다. 양이 건강하게 자라면 번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늘 전도가 되지 않은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도 번성하는 교회가 많다. 말씀에 바로 서고 영적인 만족이 오면 봉사와 전도를 통해 일어나는 일이다.
4) 목사에게 감사하고 이해한다. 양이 목자는 그의 구원과 참생명을 위한 분임을 알게 되면 그에게 감사하고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그도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알게 된다. 엘리야는 기도할 때 3 6개월 비가 내리지 않은 큰 능력을 나타내었지만 왕비 이세벨이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그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5:17) 도망하며 탈진상태에서 쓰러져 죽기를 원할 정도였다. 하나님이 도우셨다. 모세도 그가 손을 들어 기도하다가 피곤하여 손이 내려 온다. 그 때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붙들어 올림으로 아말렉과의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예수님도 행로에 피곤하여 수가성 우물가에 앉아 쉬시며 물한그릇을 요구하였다. 목자도 힘들어 지칠 때가 있고 약하여 넘어질 때가 있다. 주의 종도 사람이라 피곤하고 실망하고 쓰러질 때가 많다. 힘을 더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27:23목자가 양을 부지런히 살피고 먹일 때 피곤하고 지치지만 양털로 옷을 만들어 입고 양의 젖을 마실 때는 모든 수고를 잊고 새 힘을 얻게 된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지만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은다(4:12). 목사와 교인이 함께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여 3겹줄이 되면 당할 자가 없다. 악한 세력 음부의 권세라도 이기지 못한다. 이런 양이라면 목사가 행복하지 않겠나?

목자와 양은 교회에서 목사 교인만 아니라 직분자와 일반교인관계다. 집에서는 부모와 자녀관계다. 직장에서 직원들과의 관계다. 어떤 때 우리는 이중 역할로 목자이면서 동시에 양, 양이면서 동시에 목자가 된다. 우리가 있는 환경이 어떠하든지 우리가 목자의 입장에 있을 때 어떤 목자? 우리가 양이 된 때는 어떤 양이 되어야 하겠나? 지금 나는 교회에서 가정에서 어떤 형편인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목자가 되기로 결단하나? 주님이 기대하는 양이 되겠나? 그렇다면 그 교회와 가정 직장은 생명이 넘치는 행복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이 교회는 양과 목자, 교인과 목사가 서로 만난 복된 교회, 행복하고 생명이 넘치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







Wednesday, March 4, 2020

알지 못하기에 Due to ignorance

알지 못하기에 Due to ignorance (3/4/20)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지금 세계 많은 나라의 운행이 마비되는 느낌이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하여 짧은 시일에 세계적으로 전파  9만여명이 감염되어 3천여명이 죽고 한국도 대구를 중심으로 5천여명의 환자가 생기니 학교 국회 법원 교회마져 문을 닫았다. 미국에도 200명 환자에 죽는 자가 늘어나니 재택 근무를 선호하고 금융시장은 내려 앉고 여행과 모임 접촉을 자제하고 있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생필품을 필요 이상 구입 적치하니 며칠 전 트럼프 대통령은 너무 겁을 먹지 말라고 국민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사실 계절적인 독감은 더 위험하다. 금년 2 22일 현재 미국의 독감환자는 3200, 입원자가 31만명, 죽은 자가 1 8천명이나 되니 숫자로 보면 비교할 수 없는 것이나 독감 공포로 생활을 마비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면COVID 19이라 불리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왜 그렇게 심한 공포로 온 세계를 덮나? 그 정체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뱀이나 박쥐를 먹어서 온 것이라고 하고 또는 중국 우한 미생물 연구소에서 몇 년 전 코로나바이러스를 인공조합하여 만들고 그 치료제나 백신 제조에 실패하였는데 그 바이러스가 유출되어 나왔다는 말이 있기도 하니 사람이 자기가 만든 프랑켄스타인 만스터로 위협과 죽임을 당하는 것과 같다.

독감은 예방접종이 있고 또 걸린 경우 치료하는 약이 있다. 그러나 이 코로나는 예방약도 치료약도 없는데다 감염이 되어도 증세가 없거나 미미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또 환자 접촉이나 여행을 하지 않고도 원인 모르게 감염이 되고 치사율이 독감은 1%미만이나 코로나는 3%정도로 나타나니 공포를 일으킨다. 바이러스 자체보다 그것을 모르기에 그에 대한 공포로 사람은 더 위험에 빠진다. 지금 연구중인 예방과 치료제가 나와 시행되면 코로나를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코로나만 아니라 우리 삶의 많은 영역에 일어난다. 우리가 미국에서 여러 혜택을 누리고 살면서도 한국 정치와 정치인에게는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우리가 사는 지역 국회의원이나 인물들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하고 투표소에 나가는 일이 참으로 많다. 사람의 의지하는종교 본능은 누구도 꺾지 못하기에 많은 종교가 명멸하였다. 말을 듣고 어떤 유익을 위하여 무조건 따르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한국 코로나 전파 시발점이 된 신천지는 그 창설자 이만희가 하나님께 해당하는 모든 이름을 자기에게 붙이고 자기를 구세주라 할 때 그가 어떤 사람이며 그가 가르치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고 조금의 위로와 도움 받는 것으로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다. 신도들과 국민은 죽어가는데 자신은 숨어 있다가 구속될 두려움에 마스크를 끼고 나타난 자를 구세주라 하겠나? 자기의 정체를 스스로 폭로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가? 믿는 하나님과 예수를 얼마나 알고 있나? 그가 누구며 그가 한 일, 지금 하는 일은 무엇이며 그와 나와의 관계는 어떠한지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은 무엇인지를 얼마나 알고 있나? 맹목적으로 믿으며 알지 못하기에 두려움과 의심, 불안과 배신에 빠지고 신자의 표시가 나타나지 않게 된다. 가룟 유다는 예수의 제자였지만 스승이 참으로 어떤 분인지 그가 무엇을 하는지를 몰랐기에 그를 배반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닌가! 우린 좀 더 확실하게 알아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