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28, 2017

가장 큰 감사 The Greatest Gratitude

로마서 6:17-23 가장 큰 감사 the greatest gratitude  이종형 

감사절을 지나면서 무엇을 감사하였나? 가족이 함께 모인 것, 서로 사랑하는 것, 음식이 풍부한 것, 지난 1년간 건강과 함께 직장 사업 학업이 은혜로 지난 것,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매우 상대적이기도 하다. 집도 가족도 친구가 없어 이런 때 외로움과 아픔으로 우울에 빠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도 많이 있다. 가정이 행복을 누리지만 뜻하지 않은 슬픔과 아픔을 당한다. 음식이 풍부하고 맛이 좋지만 입맛을 잃어버리면 음식이 반가운 것이 아니다. 또 풍부한 세상에서 먹을 것이 없어 하루 한끼로 겨우 사는 자들도 많다. 결혼에 행복을 누리며 감사하나 결혼 생활 어려워 고통을 겪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교회 생활이 감사하나 또 교회 생활로 인해 상처 받는 경우도 많은 것을 본다.
우리 이민이 한 세대 전과 지금은 아주 다르다. 한국이 가난한 때 미국의 꿈을 가지고 잘 살려고 와서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여 집이나 자녀 교육 등은 안정되었지만 직장에서의 진급이 잘 되지 않고 어려움 겪으면서 역이민으로 한국에 돌아간 자도 많다.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제대로 인정 받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남편은 돌아가기 원하나 대개의 부인들이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기가 자유롭다는 것이다. 한국에 가면 옷 자동차 집 등 생활하는 것에 눈치를 많이 보게 되고 자유가 없다고 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일을 더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도 여기가 좋은 것은 자유다. 자유는 무엇보다 귀하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로 있을 때 1775 3 23일 토마스 제퍼슨, 조지 워싱턴도 참여한 버지니아 의회에서 Patrick Henry가 나에게 자유를 달라 그러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 하는 연설을 하여 독립운동의 불길을 붙이다. 자유는 생명 만큼 귀한 것이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피를 흘리고 싸워 영국의 식민에서 해방하여 자유를 얻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1 1 6일 국회 연두 교서에서 미국의 네가지 기본적 자유 곧 언론 자유, 예배 자유, 가난에서 자유, 두려움에서 자유를 말하다. 이런 자유를 누리는 것이 감사하나 지금도 우리는 자유를 위해 투쟁한다.
사람에게 욋적인 자유는 있을 수 있으나 속으로 얽매는 것이 많이 있다. 대학 때 읽은 소설 인간의 굴레라는 작품이 있다. Of Human Bondage Somerset Maugham 필립이란 주인공, 그는 부자집 아들로 태어났으나 절름발이였고 부모가 일찍 죽어 큰 유산을 받고 목사인 삼촌의 양육을 받다. 엄한 신앙 규칙을 따르며 목사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학교 공부를 하는데 성적은 좋으나 절름발이로 많이 놀림과 따돌림을 당한다. 교회의 엄한 가르침과 실제 생활이 다른 것을 보고 회의를 가지며 독일에 가 철학을 공부하여 자기를 찾고자 하는데 신앙을 버리고자 하나 대신할 다른 것을 찾지 못한다. 밀드레드라는 여인을 만난다. 매우 이기적이라 돈 많은 필립을 이용하나 필립은 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에게 얽매인다. 이 일 저 일을 하다 실패, 의사가 되고자 의대에 다니며 유산을 투자한 것이 파산하여 가난을 처음 맛 보며 그 때 가진 것의 고마움을 안다. 결국 사라라는 평범한 사람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평범한 삶을 살면서 많은 성공보다 실패를 받아드리는 것이 행복이라 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자유를 원하나 굴레를 쓰고 사는 것이다. 재산 건강 종교 사랑 가정 직업 모두가 중요한 것이나 그것이 자유라기 보다는 굴레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오늘 취미 약물 등 즐기는 것에서 시작하여 중독, 굴레가 되어 그로 인해 생명을 잃는 자도 많이 있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자유를 어떻게 얻나? 많은 고생과 실패를 통한다. 인도의 간디는 계급제도 아래 눌림 받는 자의 자유를 위해 30년 이상 투쟁하며 무저항 운동을 이끌다. 그가 이루고 싶은 것은 정치적 사회적 자유와 함께 인간의 냇적 자유다. 냇적 자유는 하나님 앞에서 오는 영적인 해방임을 아나 그는 아직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에게서 멀리 있다고 고백하며 고민하였다. 그가 찾는 자유가 참으로 먼 것을 실감하다.
외적인 자유와 냇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최근 알라바마의 Roy Moore상원 중진 위원, 미네소타의 Al Franken상원의원이 성문제와 관련하여 여러 사람으로부터 고발을 당하고 있다. Franken 의원은 사과를 하였으나 무어 의원은 부인하는데도 1212일 그의 재선 출마를 포기하라고 압력을 받고 있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르나! 냇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속에 있는 죄성의 종이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속에는 음난 욕심 교만 등 죄성이 있다. 바울은 본문 17절에서 우리가 본래 죄의 종이라 한다. 죄성이 우리 속에 있어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고 왕노릇하니 우리는 그것의 종이 되어 그가 이끄는대로 끌려가며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 아무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의 부정 불법을 행하며 부끄러운 열매를 맺어 결국은 파멸과 죽음에 이른다. 인간이 겪는 굴레의 현실이다.

여기 좋은 소식 복음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굴레를 끊어버리는 일이다. 예수께서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죄인 가운데 오시어 육체와 정서, 관계의 굴레를 대신 담당하시다. 이 굴레의 근본이 바로 죄라 주께서 그 죄의 값을 치르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우리 모든 죄를 풀어주시는 일을 하였다. 우리가 잘 하여서가 아니라 오직 그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어 하신 일이다. 오늘 우리가 주께서 제정하신 성찬을 행한다. 유월절 만찬을 하시다가 떡을 드시고 감사기도를 하신 후 이 떡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이를 먹으며 나를 기억하라. 식후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 잔은 너희 죄를 사하려고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이를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하시다. 주님은 자기 몸을 주시며 감사기도를 드리고 자기 피를 주시며 감사기도를 하였다. 자기 생명을 주시며 감사하였다. 자기 생명을 바쳐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우리 모든 죄의 형벌과 값을 치르심으로 그를 믿는 자는 죄 용서와 자유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얻게 하되 영생을 얻는 길을 여셨다. 온 인류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으니 그것이 감사한 일이라 이로서 자기를 드리며 감사 기도를 하신 것이다.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죄 용서와 자유, 생명 주시기 위하여 은혜로 하신 일이다. 이를 받아드리기만 하면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여 의롭다 하시고 거룩하게 하여 영생을 선물로 주신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6:23) 십자가에 죄용서와 자유, 생명이 있다.
바울은 죄와 죽음의 고통에서 승리: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벤허 영화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때 멀리서 나병환자가 친구들이 예수로부터 고침 받은 것을 생각하여 그 십자가를 바라보자 그 순간 자기 몸의 병이 사라지는 것을 보다. 그는 병의 굴레에서 놓여 자유함을 얻다. 천로역정에서 기독도가 세상 살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나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모든 짐이 풀림을 보다. 내가 아는 홈레스 마약 중독자가 오래 고난을 겪다가 주의 십자가 복음을 듣고 그를 바라보는 순간 자유함을 얻어 새 사람이 된 자가 여럿 있다. 어떤 굴레가 있고 얽매여 종으로 지난다 해도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 보는 순간 자유함을 가진다. Michael Robert, At the Cross십자가에서. 십자가에서 처음 빛을 본 때 내 마음의 짐이 굴러갔도다 십자가에서 믿음으로 빛을 받았으니 이제 온 종일 행복하도다 Minnie Steele찬송: 나는 언제 내 짐이 굴러간지를 기억한다. 밤 낮 수년간 짐을 지고 다녔다. 내가 주님을 찾고 그의 말씀대로 믿었더니 바로 내 모든 짐이 굴러 갔도다 굴러갔도다 굴러 갔도다 내 모든 짐이 굴러가 기쁘도다. 예수 안에서 십자가를 통하여 참 자유를 얻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보다 큰 감사가 있을까?

우리가 주를 믿음으로 세례 받고 예수의 죽음에 참여하여 나의 모든 죄성과 이로 인한 모든 죄의 실상을 십자가에 못박아 처리하고 부활하신 주와 연합하여 주님의 새로운 생명을 입게 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주의 사람이 되면 죄가 더 이상 왕노릇하지 못하고 예수의 은혜가 우리를 덮고 다스림으로 주께서 우리 왕이 되심을 알게 된다. 그가 나의 주요 나의 왕이라 고백하고 그를 나의 왕으로 모시면 죄의 세력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고 이끌지 못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우리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한다 (요일5:18). 이제는 육체가 원하는대로 살지 않고 주께서 원하시는대로 살게 된다. 주께 속한 주의 종이 된 것이다. 우리 스스로 자유로 선택한 것이다. 생명을 위한 선택이다.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 북쪽의 어떤 사업가가 남쪽을 여행하다가 노예시장에서 노예를 팔고 사는 것을 목격하다. 노예를 가운데 세우고 입찰로 경매를 한다. 나이 남여 건강 상태 등을 점검하고 값을 정한다. 한 여자 노예를 입찰한다. 50 100불 돈이 올라간다. 350불까지 올라간다. 사업가가 400불을 걸었다. 아무도 더 이상 부르지 않는다. 낙찰이 되다. 그가 돈을 지불하고 그를 샀다. 노예 시장에서 그를 건져 내었다. 그 여인은 이전 주인에게서 떠나 이제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일지 모른다. 주인이 호텔에 가서 저녁을 잘 먹게 하고 하룻밤을 자게 한다. 그리고 아침을 먹게 한 후 두툼한 봉투를 건네 주며 이제 너는 자유다. 여기 네가 한 동안 살 수 있는 돈을 넣었으니 가서 새로운 삶을 살아라 그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 순간 그 여인은 그 사업가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하다고 하며 말한다. 지금까지는 내가 자유 없는 노예로 주인을 섬겼지만 이제 내가 자유인으로 당신을 내 주인으로 평생 섬기며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자유를 가진 종으로서 사업가를 새롭게 섬기며 살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을 향한 태도다. 1970년대 가수 Bob Dylan Gotta serve somebody 누군가를 섬겨야 해. 당신이 영국이나 프랑스의 대사가 되거나, 놀음을 하고 싶거나 춤을 추고 싶거나, 세계 중량급 권투 선수가 되거나 패물을 주렁 주렁 찬 사교계 명사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당신은 누군가를 섬겨야 하리라, 예 정말, 누군가를 섬겨야 하리라 그것이 마귀이든지 아니면 그것이 주님이든지 당신은 누군가를 섬겨야 하리라. 우린 누구를 섬기나?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만 아니라 우리의 왕이시다. 그는 왕으로서 우리를 마귀와 죄악의 세력을 정복하고 우리를 구하여 참 자유를 주신다. 아들이 자유케 하면 참으로 자유한다. 진리 안에서 자유를 가진다. 다른 누가 줄 수 없는 자유다. 그것은 뺏길 수 없는 자유다. 예수께서는 우리 왕으로 그를 따르고 믿는 자에게 참 자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믿는 자는 영생을 가진다. 일시 누리는 생명이 아니라 영원토록 하나님의 생명을 누린다. 이보다 더 감사한 것이 있나? 가장 큰 감사는 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 기쁨 그리고 영생을 얻는 것이다. 이를 누리기를 바란다. 참 자유와 생명,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주신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그가 나의 왕임을 받아 드리는 이 성찬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동영상은 www.kpcm.org 

Monday, November 27, 2017

자기를 주는 감사 Thanks of Giving Self

자기를 주는 감사   Thanks of Self Giving   이종형
감사절을 맞아 많은 감사를 한다. 우리가 받아 누리는 것,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고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 등에 감사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가 주는 것으로 감사를 가진다. 가족이나 다른 이에게 선물을 할 때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섬기며 나누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시어 평소 죄인을 찾아 가르치고 치유하고 섬기며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마지막 제자들과 만찬을 하면서 떡을 가져 감사 기도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22:19). 식후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6:27,28) 하시다. 떡과 잔으로 만찬을 하면서 감사 기도하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다. 주님은 떡을 찢기는 자기 몸이라 잔을 쏟아 붓는 자기 피라 하시며 자기를 깨뜨리고 생명을 주신다고 한다. 주님은 의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죄와 죽음의 심판을 받고 있는 죄인,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는 악한 자를 위하여 자기 몸과 생명을 주신다 (5:7,8,10). 그러면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다. 자기를 주시되 희생하여 자기를 주시며 감사한다. 어떻게 그런 감사를 할 수 있을까?

1)하나님께서 그를 보낸 목적을 피하지 않고 이루심이다. 하나님은 저희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그가 오신다고 말씀하셨고 예수님 자신도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라 하시다 (10:45).  보통은 살기 위하여 오셨지만 주님은 죽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다. 그것을 이루시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2)자기 생명을 버림으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얻게 되니 그것도 귀하고 감사한 일이다. 한 번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죽음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구원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이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다. 자기가 한 알의 밀과 같이 죽임을 당하여 믿는 모든 사람을 멸망에서 구하여 생명을 얻게 하니 감사한 일이다. 감자를 심을 때 감자를 여러 개로 쪼개어 심으면 하나 하나가 감자로 자라나고 여러 감자가 달린다. 하나의 감자가 죽음으로 감자 밭을 이룰 정도이니 그것을 본다면 감사한 일이 아닐까?
3)예수께서는 자기 몸인 떡과 자기 피인 잔을 주시며 받아 먹고 마시라 하신다. 주의 몸과 피를 받아 들이면 그것이 우리 몸에 퍼지고 우리는 주의 생명으로 살며 주의 지체로 주의 사역을 하게 되니 주님은 죽으시지만 주의 백성을 통하여 살아 일하고 계시니 감사한 일이 아니겠나? 온 세상에서 성찬에 참여하여 주의 떡과 잔을 받는 자는 모두 주께 접붙임을 당하여 주의 몸의 지체가 되니 주님은 온 세상에 그만큼 퍼져 나가는 것이니 감사하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살려고 하면 자기 생명을 잃고 자기 생명을 잃으면 얻는다 하시며 우리에게도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지고 따르라 하신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이 있다 하신다(20:35). 받기를 좋아하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나를 드리고 희생하여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을까! 그것이 우리의 과제로 주어지고 있다.

Thursday, November 16, 2017

한 나무 잎의 감사 Thanksgiving of One Leaf

한 나무 잎의 감사  Thanksgiving of One Leaf    이종형
            



감사의 계절을 지나며 그렇게 아름답게 수를 놓던 나무 잎이 뚝뚝 떨어지면서 감사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듣는다. 나무 잎은 어떤 감사를 하나?

이른 봄 앙상한 나뭇 가지에 새삯이 올라오고 잎이 나오면서 잎은 감사한다. 추운 겨울을 이기고 새 봄에 올라오도록 그 속에 생명의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벌거벗은 가지에 아름다운 옷을 입힌다는 것이 귀한 일이요 또한 생명은 힘이라고 말한다.

여름 철 그 잎은 다른 잎들과 함께 어울려 나무를 덮으니 새들이 깃들어 둥지를 틀고 사랑을 나누며 새 생명을 탄생시키고 매미가 찾아와 노래하니 즐거움을 만끽하고 나무 아래 그늘에는 사람들의 쉼터와 사랑을 나누는 자리가 되니 그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고 함께 하여 공동체를 이루니 내게는 아름다운 노래가 있고 다른 이에게는 안식과 평화, 사랑과 생명을 전하니 얼마나 축복인가!!

가을이 되면서 푸른 잎은 울긋 불긋 아름다움을 나타내며 보는 이를 즐겁게 하고 노래하게 하니 이것 또한 감사한 일이라. 그간 자기 자리를 지키다가 이제 떠날 때가 되는 것을 알고 그 자리를 올라 올 다음 세대에게 맡기고 내려 앉을 준비를 하는 겸손함을 가지게 되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세월이 지나고 연륜이 쌓이면서도 추해지지 않고 더욱 아름다워지고 더욱 겸손해질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겨울이 오자 잎은 일생을 마치고 힘 없이 떨어져 약한 바람에도 날아가 여기 저기 흩어 진다. 어디에나 자리하여 머무는 곳에서 자기 몸을 희생하며 썩을 준비를 힌다. 그가 썩어 거름이 되니 봄의 생명을 일으키고 자라나는 영양을 더하니 이 보다 귀한 일이 있겠나? 감사에 감사다.


잎을 지으시고 생명을 주시고 짧은 일생이나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살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하는 소리를 듣는다. 주여 감사합니다.!!

Sunday, November 5, 2017

참 생명 영원한 생명 True Life Eternal Life

참 생명 영원한 생명 True Life Eternal Life ( 요한 3:14-18 11/4/17 토요)
니고데모와 주님이 만난데서 주님은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하셨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라면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 니고데모가 이해하지 못하기에 바람을 비유로 말해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 역사를 통해 설명한다. 오늘 말씀: 14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한다. 생명을 누리게 함의 하나님의 의도다.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라 그의 피조물이 풍성한 생명을 누리기 원하신다.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생명을 넣어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시다(창1:28)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시고 모든 것을 주셨다. 그런데 그들이 살고 있는 그곳에 두 가지 대조되는 나무가 있다. 하나는 생명 나무요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다. 생명 나무의 열매는 먹으면 생명을 누리고 살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으면 죽음을 가져오기에 죽음의 나무와 같다. 이제 선택은 아담에게 달렸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시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 하게 하신다. 기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보다는 그가 선택하여 하나님의 말씀 따르는 것이 참 사랑의 관계다.
왜 생명 나무와 죽음의 나무를 같이 두셨나? 대비법이다. 죽음이 없으면 생명의 진가를 모르고 생명이 없다면 죽음이 얼마나 어둡고 무서운 것임을 모른다. 하나님은 창조하면서 대조를 두신다. 온 땅이 어둠이 덮여 있을 때 하나님이 빛을 만드시다. 그러면 어둠은 없어져야 할텐데 여전히 어둠이 있기에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시어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다. 이것도 상관관계다. 어둠이 없으면 빛이 얼마나 좋은 것이며 생명을 주는 것인지 빛의 고마움을 모른다. 빛이 없다면 어두움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둘을 같이 두신다.
아담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생명의 길이 무엇임을 알고도 뱀의 거짓과 유혹에 넘어가다. 그가 하나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누리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살았는데 뱀이 그에게 하나님처럼 되는 길을 말한다. 어떻게 그가 하나님이 되는 것을 상상하나? 자기 자유가 뻗어간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기 위하여 죽음의 열매를 먹은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보다 뱀의 말을 따랐다. 그는 하나님이 되는 길을 택하였으나 실상은 죽음을 택한 것이다. 그는 죽었다. 생명이신 하나님과 분리 된 것이 바로 죽음이다. 더 이상 하나님과의 친근한 관계가 아니다. 두려움이 관계를 막다. 이것이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모습이다.
죽음을 택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대책이 있다. 버리지 않으시고 양을 잡아 피를 흘리고 그 가죽으로 아담 하와에게 입혀 동산을 떠나 스스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다. 이제는 하나님을 떠나 육신이 되어 살지만 사실 하나님의 생명을 떠나 죽은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한 아브라함은 타락한 인간이다. 죄성을 그대로 지니고 죽음을 안고 있는 인간을 택하여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생명의 축복을 주시고 온 세상이 생명의 복을 누리도록 하시다. 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애굽에 가서 종생활을 하다가 때가 되어 하나님이 그들을 해방하고 그들은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간다. 광야는 쉬운 곳이 아니다. 갈길을 모르고 물과 먹을 것이 없고 짐승과 전갈이 있고 외적이 침략한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고 채워주시며 생명을 누리게 한다. 하루 이틀이면 약속 땅에 이를 줄을 알았으나 40년이 되도록 그 땅은 보이지 않고 길은 멀고 험하다. 일세대는 거의 다 죽었다. 원망 불평 쏟아지는 것도 이해할만 하다. 계속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니 주의 심판이 임하다. 불뱀이 나타나 사람들을 물기 시작한다. 물린 사람은 누구나 독으로 인하여 죽는다. 이 어려운 시련 가운데 그들은 잘못을 깨닫고 모세 앞에 나와 잘못의 용서를 구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한다.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구리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세우고 누구든지 뱀에 물린 사람이 그 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살 것이라 한다 (민21장). 하나님은 죽음을 겪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생명의 길을 예비하신다. 구리로 된 불뱀을 처다보는 사람은 살게 된다. 진영 백성이 성인 60만 어린이 여자를 합치면 200 만이라고 하는데 이들 진영 크기가 얼마나 될까? 양 사방 길이가 10마일은 될 것이라 한다. 구리 뱀을 가운데 세우면 끝에 있는 사람은 적어도 5마일은 와야 할 것이다. 뱀을 처다보라. 처다보면 살고 처다보지 않으면 그대로 죽는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다리는 바리새인 니고데모에게 주님은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설명하여도 니고데모는 알지 못한다. 바람을 가지고 설명하여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땅의 일을 알지 못하면 하늘 일을 어떻게 알겠나? 주께서 역사적 사건 모세의 불뱀으로 말씀 하신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다. 모세가 만들어 세운 구리뱀을 처다보는 사람은 일단 죽음에서 생명으로 회복된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죽는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운명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죄의 값 형벌로 죽어야 하는 운명이다. 이런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고 생명을 누리기 원하였으나 그것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죽음에 처한 자를 위하여 준비하신 것이 있다 아담을 위하여는 양을, 광야의 백성을 위해선 구리 뱀을 준비하셨다. 죄의 독이 퍼져 죽음에 있는 인류를 위해서는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 어린양 예수를 준비하셨다.

주께서 자신이 들려야 한다는 것을 수 차례 말씀하다. 모세가 뱀에 물린 사람을 위하여 구리 뱀을 높이 달아올렸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다. 구리 뱀은 불뱀 모양으로 생겼으나 불뱀이 아니다. 그 안에 독이 들어 있지 않다. 구리가 불에 녹아 죄의 값을 모두 태우고 구리 뱀으로 만들어 지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이나 우리와는 다르다. 죄가 없으시다. 십자가에 달리심은 모든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시며 죄인의 고통을 겪으신 것이다. 그가 나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죽음으로 나의 살 길을 마련하셨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처다보는 자는 생명을 얻는다. 참 생명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이다. 죽지 않은 생명이라 참생명이다. 내가 곧 길이요 생명이라고 하신 그 생명이다. 예수께서 들리시다. 십자가에 달려 들리셨다.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들리셨다. 그가 죽고 장사되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여 승천하고 영광의 자리에 앉으신 것은 죄와 죽음을 정복한 승리자, 영원히 온 세상을 다스리는 영광의 왕으로 들리심이다. 그를 믿음으로 바라 보는 자는 누구나 하늘의 생명,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다. 더 이상 죽음의 고통을 겪지 않는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라.
요한3:16절은 복음의 핵심이요 성경 전체의 요약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시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다. 우리가 그만큼 귀하기에 아들을 희생하여 우리에게 아들의 생명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기 원한다. 세상에서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생명 참 생명을 주시기 원하신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생명을 택해야 할 것이다. 그 길은 바로 십자가에 들리신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처다보는 일이다. 믿고 바라보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새 생명을 얻는다. 이는 죽고 난 뒤만 아니라 오늘 현재 예수를 믿는 순간 내가 주님과 연결 되어 주님의 생명을 얻음으로 된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믿지 않기에 심판을 받는다. 이미 심판을 받았다. 내가 어떤 생명을 가지고 있나? 확인하며 주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자. 동시에 아직 생명을 얻지 못하고 사는 자를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축복을 바란다.

감사가 좋아요 It is good to give thanks

시편 92:1-8 감사가 좋아요  Good to give thanks (11/5/17 주일)
11월 감사의 달, 왜 감사의 달이라 이름을 붙일까? 가을 오곡백과가 익고 추수가 있으니 감사하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우리 삶에 감사가 많이 필요한데 감사가 메마르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라 본다. 미국에서는 Thank you, Excuse me 두 단어만 하여도 산다고 하나 실제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감사하다고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감사가 드문 것 같다.
성경은 감사로 가득하다. 구약에 감사yadah 114회 인정한다, 신약에 감사eucharisteo 71회 고마움을 표현한다는 의미다. 감사는 인정하고 그것을 표현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 그 인물이나 그 하는 일을 인정하고 그 인정하는 것을 마음으로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92:1 지존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It is good to give thanks!! 여기 감사를 다른 말로는 여호와 이름을 찬양하고, 그의 인자를 알리고, 그이 성실을 베푼다고 한다. 알리고 베푸는 것은 선포함이다. 감사하면 찬양하고 알리고  전한다. 이것이 좋은 일이라 한다. 33:1,2 찬송과 감사는 정직한 자, 의인의 마땅한 바라 한다. 감사는 좋은 일이요 적절한 일이요 유익한 일이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감사하지 않은 것은 좋지 않다는 말이다. 왜 감사하지 않을까? 1)6절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하고 무지한 자가 깨닫지 못한다.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무반응 무감각이다. 오래 전 미시간 호수를 항해하던 배가 시카고 에반스턴 근방에서 좌초하여 가라 앉을 형편에 구조 작업이 필요하다. 인근 노스웨스턴 대학 학생 Edward Spencer가 추위를 무릅쓰고 17명을 구조하여 살리면서 자기는 건강을 잃었다. 그러나 17명 중 아무도 그에게 감사 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이웃이나 하나님에 대하여 감사의 감각이 없다. 감각이 없음은 병이다. 나병이다. 예수께서 마태 마가 누가 복음에서 제일 먼저 고치신 병이다. 치료 받아야 할 병자다. 어둡고 답답한 세상이다.
2) 7절 악인은 감사하지 않은다. 1:21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며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한다. 악인이 교만하여 자기만을 생각하면 감사가 나오지 않은다. 말세 현상으로 딤후3:2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교만하며 비방하고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않은다. 몇년 전 아마존 선교지에 가서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본교회의 이우범 장로와 디트로잇 의사 한 분을 오게 하여 인디오 마을 의료 선교를 하다. 당시 그곳 20년 사역을 한 선교사의 말이 그곳 인도오 말에는 미안하다 감사하다 사랑한다는 단어가 없다고 하다. 자기만 살고자 서로를 인정하기 않고 서로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그들 생활이다. 그들 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감사를 가르치며 생활을 보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불평과 원망, 분노다.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불평이 많았다. 그들은 물이 없다고 불평, 물을 주자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 만나를 주니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 메추라기를 주어 싫컷 먹게 하는데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는데도 마늘 부추가 필요하다고 불평한다. 삶에 기쁨이 없고 어둡다.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다. 특히 이스라엘 진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원망하니 그것이 삽시간에 진영으로 퍼진다. 전염병처럼 퍼진다. 전체 분위기가 원망으로 바뀐다. 스스로 살 맛이 없고 이웃이나 하나님을 노엽게 만든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진영에 죽음이 온다. 약속의 땅에 가지 못하고 모두가 중간에서 멸망하다. 감각이 없어 감사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않음으로 결국 망하게 되니 좋은 일이 아니다.

  감사는 좋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를 찬양하고 그를 선전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기분이 좋은 것만 아니다. 삶의 질이 좋아지는 것이다. 어떤 면에 좋은가?

1  먼저 하나님께 좋다. 감사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한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 그의 인자와 성실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만 보아도 마음이 좋고 감사가 생기는데 하나님께 감사함은 마땅하고 좋은 일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삼라만상 자기의 창조물을 사랑하시지만 특히 하나님이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백성을 볼 때 사랑이 간다. 항상 사랑 하신다. 그의 성실하심은 변치 않고 말씀을 지켜 행하고 우리를 향한 그의 생각은 깊으시다. 또한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매우 크기에 마음이 기쁘다. 지금까지 우리 삶을 인도하고 채워주신 것을 생각하면 감사하다. 날마다 함께 하시니 감사하다. 무엇을 하여서가 아니라 하나님 그대로 그분이 좋아 인정하고 감사함이 더욱 좋다.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사람도 인정 받으면 기쁘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는 것이 감사하고 자랑 스럽다고 말할 때 피차 얼마나 기쁜가! 그 말이 힘이 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우리가 소원을 알리고 이것 저것 간구를 한다. 그러나 감사는 더욱 큰 힘이 있다. 하나님이 인정 받으면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자기를 인정하는 자에게 가까이 오신다. 22:3 하나님은 성도의 찬양 중에 거하신다. 우리 중에 그가 자리를 정하신다. 하나님이 오시면 하나님의 모든 것이 같이 온다. 하나님을 가지면 모든 것을 가진다. 창문으로 햇빛을 받아드리려면 커텐을 열어야 한다. 그것이 감사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의 임재와 그의 생명과 풍성함을 함께 누리려면 감사가 필요하다.
이전 목회지에서 어떤 자료 공학 포스닥이 연구를 하는데 연구 진전이 되지 않은다. 그러면 그는 앉아 말씀 묵상하고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린다. 그러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일 정도로 일이 풀려나간다고 하다. 그가 한국에 나가서 대덕단지에서 큰 일을 하고 은퇴 후 연변과학 기술대학에 가서 사역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정 받고 높임을 받으면 그는 더욱 일을 하신다. 원수의 포위를 풀어줄 뿐 아니라 원수를 흩으시고 멸망시키신다.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에게 좋은 것이다.

2   감사는 우리 자신에게 좋고 유익하다. 감사하니 마음에 좋고 기쁨이 있다. 시인은 아침에 주의 인자를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감사한다. 주를 생각하니 마음이 기뻐 소리 높이 외친다. 복된 삶이다. 26:3 이런 사람의 마음은 평안에 평안이 더해진다. 내일을 생각하면 염려거리가 많다. 아이들 앞날, 모기지 물 일, 세상 돌아가는 일, 정치, 고국의 일 등 좋은 소식이 별로 없다. 그때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감사기도 하면 내일에 대한 소망과 함께 힘이 생긴다. 내가 2010년부터 오른 쪽 눈에 문제가 있었다. 2014년 가을 에티오피아에서 돌아와 눈이 이상하여 안과에 갔더니 macular degeneration 이 왔다고 한다. 무엇인가 물으니 나이 든 사람과 관련하여 시력 상실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고치는 약은 없으나 진행을 늦추는 치료가 있다고 한다. 그 진단은 받을 때 내 반응을 보며 내 스스로가 놀랐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었다. 내 친구 하나는 두 눈을 다 보지 못하면서도 실로암 안과병원을 설립하여 개안수술을 해 주는 귀한 삶을 살며 남을 위해 사역하고 있고 또 다른 친구 하나는 한 눈을 보지 못하면서 한 눈 가지고 의사로 평생 살다가 은퇴하고 선교지에 다니며 봉사하고 있는데 나는 지금까지 두 눈 가지고 살며 사역할 수 있었으니 감사하였다. 그렇게 기도하니 얼마나 마음이 편안한지 전혀 걱정 근심이 없은 것을 고백한다. 주님 주신 마음이라 보고 더욱 감사한다.
청교도들이1620-9-6영국을 출발하여 버지니아 제임스 타운을 향해 대서양을 항해한다. 바람에 밀리면서 65일 후에 도착한 곳은 버지니아가 아니라 매사추새츠 Cape Cod이다. 어려운 결단을 하고 새 삶을 위해 바다를 건넜는데 도착한 곳은 엉뚱한 곳이다. 그 땅이 어떤 곳인지 사전 정보도 없고 맞아 줄 사람 아무도 없다. 실망이고 좌절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다. 추운 겨울 지나면서 101명 중 반 이상이 죽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공동체 지사로 역할한 William Bradford는 일기에 기록하다. 작은 불이 천명을 비친다. 여기 켜진 촛불이 많은 사람 어떤 의미에서 온 나라를 비치고 있다. 하나님 안에서 가지는 소망이요 꿈이었다. 세상을 향한 빛, 그것이 미국 기독교 정신의 시작이다. 감사로 시작하다.
감사와 건강 관계 연구를 한 사람들이 있다. 염증을 줄이고 심장에 좋다. 잠자기 전에 감사하면 잠이 잘 온다. 감사와 찬양은 우리의 냇적 미를 일으킨다. 감사가 눈에는 빛, 입술에 미소 가슴에 즐거움을 일으킨다. Dr Robert Emmons UC Davis and Dr Michael McCullough U of Miami, 3그룹을 나누어 한 그룹은 일주일 감사한 것, 다음 그룹은 짜증 스런 것, 다음 그룹은 삶에 영향 미친 것을 10주간 기록하게 하다. 10주 후 감사한 것을 기록하는 사람들은 다른 그룹 사람에 비하여 삶의 긍정, 낙관, 그리고 의사 방문 적다. Dr Martin Seligman U Penn411명에게 그간 어떤 사람이 친절 베풀어 준 것에 대해 감사 편지 쓰지 못한 것 있으면 감사 편지를 써서 직접 배달하게 하였더니 그후 이들의 삶이 훨신 더 행복하였다. 부부가 서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인정할 때 훨신 관계가 아름답다. 감사는 자기 자신에게 좋은 것이다.

3  감사는 다른 사람에게 좋고 유익을 준다. 다른 사람이 힘을 얻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한다. 시편 92편은 안식일의 찬송시다. 주일에 예배하며 드리는 찬송이다. 세상 일을 내려 놓고 주님을 바라보니 하나님과 그가 하신 일을 알고 깨달아 감사하며 찬양할 때 모든 회중이 함께 기뻐하고 감사한다.
다니엘은 바베론으로 끌려간 이스라엘의 젊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바벨론 사람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신이 따로 있다. 다니엘은 그들 신을 섬기지 않는다. 그 지혜와 함께 꿈을 해석하는 능력이 있어 왕과 나라에 큰 유익을 주기에 총리가 되기까지 하였다. 바벨론 장관들은 그를 시기한다. 그를 고발하기 위하여 다른 어떤 신에게 기도하는 자는 사자굴에 넣도록 법령을 만들고 왕으로 서명하게 하다. 6:10 다니엘은 이 법을 알고도 자기 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이런 형편에 그는 감사하는 기도를 하였다. 그는 고발되고 사자굴에 던짐을 받았다. 왕이 다니엘에게 말한다.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말 그대로 하나님은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막고 다니엘을 지켰다. 왕이 참소자를 사자굴에 던져 넣게 하다. 그들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그들을 움켜 그 뼈까지도 모두 삼켰다고 한다. 왕은 온 나라에 조서를 내려 다니엘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요 영원히 변치 않으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고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다(6:26). 다니엘이 곤경에 처한 때에도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를 사자굴에서 건질 뿐 아니라 그의 모든 대적은 멸망을 당하고 왕을 통하여 하나님의 크고 위대함을 선포하였다.
Keith Green 70년대 복음송 가수요 작가요 피아노 연주자다. 그의 오 주님 아름다워요 주의 얼굴만 바라봅니다 주의 눈이 내게 임할 때 주의 은혜가 넘쳐나요는 잘 알려지다. 그를 통해 예배 형태가 바뀌었다 할 정도다. 그가 1982년 비행기 추락 사고로 두 아들과 함께 죽다. 아내 멜로디 그린은 어린 딸과 같이 집에 있었다. 얼마나 충격이 컷을까? ?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남편의 삶과 사역에 감사하며 격려하는 편지 카드를 보내다. 부인은 기가 막힌 형편에서 감사해요, 여러분이 내게 큰 축복이오. 하루 하루 이기고 있다고 하다.
내가 1983년 한국에서 교수하다 방학이 되어 미국에 와서 주일에 참석하던 미국 교회는 예배가 내게는 새로운 것이었다. 찬양이 많았다. 30분 정도 모두 서서 찬양하는데 그 내용은 대개가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 그가 하신 일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다. 그 찬양을 하는 동안 내 마음이 새로워진다. 눈물이 흐르고 감격이 온다. 설교를 듣지 않아도 영혼은 만족이 되었다. 예배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 목회하며 이런 찬양예배를 통하여 많은 사람에게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다. 감사와 찬양은 다른 사람에게 능력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몸에 좋다는 것은 하려고 한다. 감사가 그렇게 좋다. 돈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마음만 작정 하고 언제나 감사하기만 하면 그것이 고루 고루 좋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니 인간 본분을 다하는 것이라 좋다. 내 스스로 행복을 누리고 어려운 세상에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니 좋은 것 아닌가! 나의 감사로 이웃이 복받고 구원 받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주님 때문에 감사하고 당신 때문에 감사한 것이 우리의 행복이요 즐거움이다.

(동영상 kpc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