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September 30, 2022

세계성찬주일 World Communion Sunday

세계성찬주일 World Communion Sunday
매년 10월 첫 주일은 세계의 대부분 개신교회가 세계성찬주일로 지키는 날이다. 성찬은 세례와 함께 교회가 행하는 성례전으로 예수께서 제정하셨다. 예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음의 진리를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매체다. 
예수께서 세상에서 제자들과 함께한 마지막 유월절 식사가 최후의 만찬인 것을 아시고 식사 중 그는 떡을 들고 이 떡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 잔을 들고 이 잔은 너희 죄를 사하려고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 하시며 받아 먹고 마시라 이를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하셨기에 이를 성찬이라 부르며 교회마다 시행하고 있다.
세계성찬주일은 피츠버그 셰디사이드 장로교회 담임목사 휴 톰손 커어에게서 시작되었다. 1930년 그가 총회장인 장로교단만 아니라 세계 교회가 성찬을 통하여 하나되는 것을 바라며 제안하고 1936년 총회가 채택하고 다른 교단 대표자들을 총회 성찬에 초대하였다. 2차대전이 일어나며 세계가 나누어지고 분쟁에 휩싸인 때 미국교회협의회 세계전도부가 성찬을 통하여 교회의 일치를 염원하여(Communion and Union) 1940년 세계로 확장하고 평화, 구제, 장학금을 위해 헌금하게 하였다. 
유월절은 유대인의 해방 절기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400년 이상 종으로 신음할 때 하나님이 그들을 해방시키고자 모세를 통하여 여러 재앙을 내리다가 마지막 유대인들은 흠 없는 어린양을 잡아 피를 문에 바르고 가족이 함께 모여 고기를 먹는 밤에 하나님이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자 유대인은 쫓겨나듯 해방을 맞은 것이 처음 유월절로 그들이 매년 지키는 가장 큰 축제다.
예수께서는 자기 피를 흘리고 몸을 주며 그 피를 마시고 고기를 먹는 자에게는 죄에서 해방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유월절 어린양으로 자기가 죄를 대신하여 피 흘리고 죽임 당할 것을 말씀한다. 
식사 잔치에 참여하는 자는 모두 하나가 되고 친근한 가족이 된다. 유월절을 지킬 때마다 유대인은 더욱 하나로 결속되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로 해방된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기억 확인하며 먹고 마신 고기와 피로 힘을 얻어 역사상 많은 고통과 박해 죽음이라도 이겨내는 강한 민족이 되었다. 성도는 성찬을 통하여 꼭 같은 것을 체험한다. 
떡을 먹고 잔을 마시면 그것은 몸에 들어가 녹아서 그와 하나가 된다. 성찬의 내용물은 바로 주님의 몸과 피이기에 참여한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와 하나가 되고 주님 자신과 하나가 되며 주님의 생명과 힘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몸이 된다. 심장에서 그리스도의 피가 고동치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몸은 많은 지체로 되어 있으나 하나다. 손과 발, 눈과 코 모든 부분이 하나로 연결되어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서로 존중하고 하나가 될 때 살아 있는 몸으로 활동한다.  
교회의 사역은 바로 주께서 하시던 일로 예배와 훈련으로 제자를 양육하고 전도와 봉사로 세상으로 뻗어간다. 몸으로 또는 물질로 헌신하고 복음 전파와 생명구원, 평화와 질서, 섬김과 구제에 하나가 된다. 주님은 이제 머리를 두실 자기 몸을 찾고 기뻐하신다.
교회는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세상은 교회를 보면서 그리스도를 알게 된다. 세계성찬주일 성도와 교회는 성찬을 통하여 세상에서 살아 활동하는 그리스도임을 더욱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Thursday, September 22, 2022

애플 피킹 Apple Picking

애플 피킹 Apple Picking
지난 주간 시카고 은퇴목사회 주관으로 애플 피킹을 하는데 5가정이 참여하고 현직 목회자 두 분이 버스와 음식으로 섬기겠다고 자원하여 너무 감격이었다. 출발 장소에서 미시간에 있는 과수원까지는 두 시간 거리라니 멀지도 않게 위치하고 있다. 시카고에서 30년가까이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다. 목회할 때는 교회 밖의 일에 신경 쓸 틈이 없었지만 은퇴한 후에는 다른 여러 곳으로 부름 받아 다니면서 이런 여유를 가지지 못하였다. 아내는 과수원집 딸이라 치아를 망가뜨릴 정도로 사과를 너무 좋아하였지만 하루 사과 하나를 먹으면 의사를 볼 일이 없다는 말을 따라 나도 가능하면 매일 아침 사과를 먹는 것을 식생활이 되게 하였기에 이 날을 무척 기다리고 있었다. 팬데믹 기간 여행을 자제하고 있다가 12명 친밀한 얼굴들이 함께하는 버스여행이 참 오랜만이라 새로운 날이 온 것 같다. 
복잡한 시카고를 벗어나 하늘은 맑고 지나가는 풍경은 옛정을 일깨워주는데 중간 맥도날드에서 조반을 대접받는다. 베풀고 받는 사랑과 친절, 서로가 나누는 따뜻한 말과 마음은 모두에게 즐거움이다. 미시간 지방 길에 들어서서 과수원으로 가는 길은 정말 과수 숲이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끝이 보이지 않는 과수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고 우리는 바구니를 하나씩 집고 달구지 같은 차를 타고 사과밭으로 가다. 여기는Lemon Creek Winery로 1850년대 포도원과 포도주 생산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포도만 아니라 사과 배 복숭아 매실 등 각종 과일을 재배하고 일정 기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과일을 마음껏 따게 한다. 
줄줄이 들어선 사과나무들, 땅에 떨어진 사과, 나무에 달린 사과, 전체가 사과다. 에덴의 풍경이 눈 앞에 현실로 나타났다. 사과 종류가 다양하다. 골든 딜리셔스, 레드 딜리셔스, 몰리 딜리셔스, 갤라, 제스타, 골든 수프림, 조나골드, 엠파이어, 조나단 등 여러가지 중에서 누구나 자기가 선호하는 것을 택한다. 먼저 나무에 달린 과일을 따서 맛을 보니 일반 가게에 있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신선하고 부드럽고 즙이 많고 향기로와 입만 아니라 뇌와 마음, 눈과 몸 전체를 감동시킨다. 일행은 모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땄기에 만족스런 모습이다. 다시 찾아온 달구지를 타고 본부에 가니 종류와는 상관 없이 모두 같은 값으로 무게에 따라 계산을 한다. 모두가 흡족한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시카고로 돌아오는 길에 골든 코랄 식당에 들려 저녁 대접 받고 나니 이미 시카고는 러시 아워가 되었다. 시카고 레이크쇼 길로 들어가 세계 최고의 건축 마천루 야경을 바라보며 운전하는 목사님의 능란한 시카고 다운타운 일등 관광 안내는 기대 밖의 소득이었다. 
이번 애플 피킹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 세상을 보았다. 세계는 70억 인구로 끝없이 펼쳐진 사과밭과 같다. 종류별로 모양도 색깔도 맛도 질감도 각각이 독특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자에게는 최고의 것이라도 그것을 원하지 않는 이에게는 잊혀진 존재가 된다. 인종과 종족의 각각은 나름대로 최고의 맛과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인정 받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하나 값은 싸고 비싼 것이 없이 모두가 동일하다. 창조주 앞에서는 무슨 일을 했는가 무게는 달라도 존재로서는 누구나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것임을 더욱 깨닫고 돌아온 것이 감사하다.  





노동 기피? Shunning the Labor?

노동 기피?  Shunning the Labor?
학교가 개학을 하는데 교사가 부족하고 스쿨버스 운전할 사람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는다. 식당도 항공사도 일할 사람이 필요한 실정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집에서 일을 하거나 쉬면서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것이 일을 하여 얻는 것보다 못지 않으니 일을 기피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또 일을 잘 하던 사람들도 조용하게 사직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죽지 못하여 일을 한다는 이가 있지만 사람은 근본적으로 일을 기피하는 것 같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소위 3D (Dirty Difficult and Dangerous) 일은 더욱 더하다. 소련이 해체되고 모스크바에 갔을 때 대개의 남자들은 술병을 들고 배회하고 있었고 북한에서는 집단으로 사람들을 철로 변에 모아 두었으나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두 사람이 일을 하여도 감독자를 세워야 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한인에게 그만큼 살면서도 왜 그렇게 일을 하는가 묻기도 하였다. 
많은 사람은 일하는 것을 형벌이나 종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죄를 지은 댓가로 노동의 수고와 어려움이 주어졌다. 땅이 저주를 받아 땀을 흘리는 수고를 하게 되었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을 받았지만 임신의 고통으로 수고하여 자식을 낳는 분만을 노동 (labor)으로 표현하며 산고와 함께 양육이 힘들어 생산을 포기하는 자가 늘고 있다. 오래 전 한국에서 선교사들이 땀 흘리며 정구치는 것을 구경하던 양반이 왜 그리 땀 흘리며 일을 하는가 우리 집 하인에게 시키라 했다 한다. 한 때 미국에서도 일손이 모자라 힘든 일은 노예들이 하였지만 그들의 일을 통하여 많은 것을 이루었다.
범죄하기 전 노동은 힘든 것이 아니라 즐거움인 것으로 안다. 바하마나 켄냐에서 나무 아래에서 즐기던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 야자나 코코넛을 따서 자신과 가족의 먹을 거리를 제공하며 기쁨으로 나무를 돌보지만 노동은 하나님에게서 온 신성한 선물이다. 하나님은 천지와 모든 것을 창조하고 하나 하나 일을 끝내며 보기에 좋다고 만족해 하고 지금도 그 창조물을 관리하고 다스리신다. 하나님께서 일을 놓으면 우주와 인간 세상은 어떻게 될까? 인체는 머리만 아니라 눈코, 팔다리, 내장 등 많은 지체가 있다. 심장이나 뇌는 쉬지 않고 일하지만 심장이 5분만 쉰다면 어떻게 될까? 심장은 내가 시키거나 저절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일 하시는 것을 보여 준다. 열심히 일을 하여 몸이란 공동체와 사회가 살아 돌아가게 되고 많은 산물과 산업 발전을 일으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며 식사할 겨를도 없이 많은 일을 하셨는데 그의 일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사람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었다. 이제 그 일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맡겨졌다. 
빛이 있는 동안 일을 하지만 밤이 오면 쉬게 된다. 하나님은 밤과 안식일을 주시어 쉬게 하시고 사람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배하며 새로운 삶과 일의 힘을 얻는다. 노동절에 많은 일하던 사람들이 공원에 함께 모여 쉬며 기쁨을 나누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오늘 한국이나 미국, 세계는 많은 사람의 육체 정신 영적 노동 위에 세워져 있음을 알기에 나의 일을 통하여 보다 나은 세상을 형성한다는 감격을 가진다. 

Tuesday, September 6, 2022

축복의 특권 The Privilege of Blessing

축복의 특권 The Privilege of Blessing (9/3/2022)
어느 고등학생이 대학진학과 진로를 생각하는데 그를 아끼는 교사들과 부모는 그에게 법대를 권하였다.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법대에 가면 무엇하는가?” 하는 음성을 듣고  “변호사 판사가 되는 거지요” 하였다. 다시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지?”질문에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것이지요” 하니 세번 째 말씀이 들린다. “너도 잘못이 많은데 남을 판단하겠다고? 그 일은 내게 맡기고 너는 축복하는 일을 하면 어떻겠나?” 며 10여년 전 초등학교 어린시절 일을 기억나게 하신다. 동리 아이들이 함께 장난치며 한 시간을 걸어 학교에 가는데 그 중 두 아이가 그를 많이 괴롭혔다. 놀리고 욕하고 발길질하고 자주 무거운 도시락 책보따리를 그에게 지우고 자기는 마음대로 한다. 그는 마음과 몸이 너무 힘들어 한 번은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하나님 저들이 없으면 내가 편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겠어요” 하였다. 그 후 한 아이는 장질부사로 다른 아이는 형의 사냥총 사고로 죽었다. 그런가 하였는데 하나님은 그것이 기도응답이라 하시는 것 같아 너무 놀랍고 무서운 충격이었다. 잘못 말한 것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말을 하고 그를 미워하는 자의 집을 향해서도 저주하지 않겠다고 응답하였다. 그는 사람을 축복하는 길이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목사가 되는 길을 택하였다고 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며 내가 너를 복 주고 너는 복이 되어 많은 사람을 복 받게 하리라.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리라 하시며 그에게 축복하는 사명을 맡기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고 감사의 제물을 드렸다. 이는 제사장의 일이다. 제사장은 자신과 타인의 잘못과 허물을 짊어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짐승의 피를 드리며 용서를 구하고 그에게 용서와 축복을 선포하고 진리와 생명의 길을 제시한다. 사람은 잘못하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그 잘못을 형벌하기보다는 용서하고 생명 누리는 길을 제공하셨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그 일을 위함이다.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길을 제시하며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다가 마지막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생명을 내어주며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다 이루었다” 하시며 운명하셨다.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생명길을 여는 사명을 수행하신 것이다. 그는 평화를 빌며 축복할 때 그 축복을 받을 사람이 아니면 그것이 그에게 돌아온다며 축복하라 하신다. 용서와 축복은 주를 따르는 사도만 아니라 목사에게 맡기셨다. 오늘 모든 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 한다. 모든 성도가 다른 이를 용서하고 축복하는 특권을 가진다. 
오늘 소시얼 미디어에 무서운 비판 악담 저주가 많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은 자기 사람을 지키며 그를 복이 되게 하여 많은 사람에게 복을 나누게 하신다. 상대가 복 받을 사람이 아니면 그 복이 돌아온다. 남을 욕하고 험담하고 저주를 한다면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이다. 페르시아의 하만이 모르드개와 그 민족을 멸하려 하다가 자기와 자녀들이 죽임을 당하였고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는 기독교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 역사의 사실이다. 
예수님의 피로 용서와 생명을 누리는 주의 사람들이 제사장으로 언제나 축복하는 말을 하며 서로 복을 나누는 개인, 공동체를 만든다면 얼마나 큰 특권이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