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27, 2024

마지막이 가까이 The End is Near!

마지막이 가까이 The End is Near!
최근 건강하던 선배 한 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교단 한인교회 역사를 저술하고  많은 일을 하던 분이다. 그가 마지막이 올 것을 알고 준비하였는지 나는 모르지만 그 날을 안다면 준비하는 것이 지혜일 것이다. 
2024년 마지막이 며칠로 다가온다. 새해를 맞으며 한해의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고자 하면서 마지막이 가까이 다가오자 미흡한 것이 있으면 보충하고자 한다. 학교를 졸업하려는 학생이나 학위를 얻으려는 사람은 정해진 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완성해야 졸업과 학위의 영광을 얻을 수 있으나 준비가 되지 않으면 마지막이 와도 그것은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마지막을 맞으며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더욱이 마지막이 전혀 예상하지 않게 임한다면 어떻게 될까? 오래 전 펜실바니아 지오가 레이크에서 피크닉을 하는 중 갑자기 큰 나무가 내 위로 쓰러졌다. 그 큰 덩치가 머리나 몸을 쳤다면 그 자리에서 나는 끝났겠지만 단 몇 인치 내 머리 옆으로 내리치며 나를 아껴주었다. 주께 감사하지만 그 순간 아무런 예상이 없던 중 마지막을 맞을 수도 있었다. 
마지막은 언제 임하나? 달력이나 졸업은 정해진 날짜가 있어 알 수 있지만 많은 경우 그 날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더라도 맞을 마지막이라면 어떻게 할까? 크리스마스는 온 세계가 기억하고 즐기는 날이지만 사실 예수께서 오신 것은 마지막을 알리고 준비하게 한다. 한 아기가 태어나는데 아무리 사람이 많고 복잡하다고 하여도 해산할 장소를 찾다가 마구간 구유에서 분만할 정도라면 인심이나 형편이 마지막에 이른 것이 아니겠나!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왕이 죽이겠다는 음모를 하였기에 다른 나라로 피난을 하여야 했고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학살을 당하여 통곡하는 소기가 하늘에 사무친 것은 마지막 모습이 아니겠나! 
삶의 처음을 마지막처럼 맞은 예수께서 외치신 첫 말씀은 회개하라 전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천국은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하는 나라다. 누구나 자기가 주장하는 자기 왕국을 가지려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고 하는 것은 전적인 대결구도다. 내 나라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일 것인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려면 나의 왕국을 끝내야 한다. 나의 삶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일본은 강제로 한국을 합방하여 한 나라의 이름과 함께 주권을 말살하였으나 하나님의 나라는 강제 병합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자기를 내어드리는 것이다. 회개로 이루어진다. 이민하여 시민권을 받고자 스스로 국적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내가 원하지 않으면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고자 내가 그동안 살아온 나의 지난 삶과 나의 전부에게 마지막을 고하고 주님과 그의 나라를 환영하고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얻는 것이다. 
예수께서 종말을 많이 말씀하시고 그가 재림하실 때 세상은 마지막을 만나 심판을 받고 영생과 영벌의 세계로 나누어질 것을 알려주시며 깨어 준비하라 하신다.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구주로 믿으며 받은 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하고 동시에 주리고 병들고 나그네 되고 갇힌 자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섬기는 것이 곧 주께 한 것이라며 주의 나라에 들어가는 준비라 하신다. 내게 남은 날이 얼마든지 마지막을 내다보며 준비하는 매일이 되기를 소망한다. 

한 생명의 탄생 The Birth of a Life



한 생명의 탄생 The Birth of a Life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남녀가 만남으로 되기에 자녀를 낳기 위하여 사람은 결혼하기도 한다. 처음 창조된 남녀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을 받아 인구가 늘어나고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 유학 와서 만난 한 사람은 자녀가 16명이라 하여 놀라기도 했지만 그것이 인구가 증가하고 힘이 생기는 방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미국은 세계 강국이 되고자 인구 3억을 넘기려고 육아와 이민정책을 실시하여 성취하였다, 동시에 양육의 책임과 생활비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여 산아를 제한하는 자가 많은데다 고령자와 결혼을 기피하는 독신의 수가 증가하며 오히려 인구는 감소하기도 한다. 한국이 겪는 현상이다. 영국이나 프랑스는 이민으로 인구 감소를 보충하지만 이주한 모슬렘은 다산이라  그 인구가 증가하면서 멀지 않아 나라를 인수할 준비를 한다고도  한다.
부부가 결혼하고 금실이 좋으면 애기가 생긴다고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결혼한 아브라함은 75세에도 자녀가 없는 때에 이민하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그 자손이 하늘의 별,바닷가의 모래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게 되어 큰 나라를 이룰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다. 기대하며 99세가 된 때 지나가는 손님으로 나타난 하나님은 그 아내 사라가 일년 후 애기를 낳을 것이라 한다. 생리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포기한 그들이 웃음을 주는 아들 이삭을 낳고 400년 후 인구 200만이라는 큰 민족 이스라엘을 이루었다.생명이 태어나고 가족과 민족을 이루는 것은 사람의 계획이 아니었다.한 생명 이삭이 태어날 때 그의 앞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된 것이다. 이삭만 그럴까? 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허락하고 또 뜻이 있다고 본다. 태몽으로 어떤 아이가 날 것이라 짐작하기도 한다. 
청년 요셉은 그가 약혼한 처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놀라며 분개하나 여인을 생각하여 가만히 파혼할 생각을 하였다. 그 때 천사가 나타나 네 아내 데려 오기를 두려워 말라 그가 임신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라 태어날 아들은 그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구주가 될 것이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며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선지자의 말씀을 알려 주었다. 그는 순종하였고 아내 마리아가 해산할 때 하늘의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께 평화로다 찬송하였다. 예수께서 태어나심은 하나님의 계획이요  그를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류구원을 이루시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고향 회당에서 그가 태어난 목적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성령이 임하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눈먼 자를 보게하고  눌린 자를 놓아주며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것이라 하셨다.  그는 그 일을 위하여 살고 사역하다가 마지막에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고자 십자가에 달려 자기 생명을 내어주며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고 생을 마감하였다.이제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기에 하나님이 그를 보내신 뜻을 완성하고 지금도 이루고 계신다. 
설령 태몽이 없었다 하여도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무엇을 위함일까? 이 성탄절기에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뻐하면서 나는 어떤 삶을 살며 어떤 유익을 세상에 끼칠 수 있을까 자문하고 결단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고난이 있는? Are you in Affliction?

고난이 있는?  Are you in Affliction?
사는 것이 고난이라 역사는 고난으로 가득하다.  심한 고난을 겪는 욥은 사람은 고난을 위하여 났다고 한탄할 정도였고 개인만 아니라 인류 역사는 가난 질병 갈등과 투쟁 전쟁으로 연속된다. 고난은 삶의 큰 도전이라 이를  피하고 이기기하여 힘을 기르고 많은 기술과 의약을 개발하여 사람이 살기에 편리하게 하지만 여전히 고난은 누구에게나 있다. 고난 속에서 삶의 기쁨과 의미를 잃어버리고 자포자기 하거나 남을 해하고 자기를 해하며 심지어 생명까지 끝내는 자들이 노인이나 젊은이나 누구에게나 참으로 많다는 것이 놀라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고난을 어떻게 할까?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는가? 그는 기도하라고 한다. 이는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기에 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께 나아가 그의 도움을 받으라는 것이다. 사실 고난이 없으면 모든 것을 스스로 잘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면서 자기 약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다가 결국 하나님을 찾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이 고난 속에 도움을 청하며 자기에게 나아 오기를 기다리신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역을 당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은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해방시키고 탈출시켜 자유민이 되게 하고 나라를 세우게 하셨다. 독립국가가 되었으나 주변 나라의 잦은 침공으로 고난이 심하였다. 강대한 아수르는 대군으로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진격하고 항복을 요구하며 어떤 나라의 신도 그 나라를 아수르왕의 손에서 건지지 못하였다고 위협한다.  대항할 힘이 없는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날 밤 침략군 18만5천명 전체는 시체가 되었다. 하나님은 원수를 제거하고 자기 백성을 지키셨다.  이런 일은 고난을 당하는  개인에게도 얼마든지 있다. 중요한 것은 고난 당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고난은 훈련을 위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한 방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을 주셨다. 비어 있는 땅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안정되고 강한 민족들을 몰아내고 점령하게 하였으나 아직도 그 땅의 많은 가나안 족속이 남아 있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전쟁을 알지 못하는 차세대 자손들에게 전쟁을 가르치고 알게 하기 위함이라 하셨다. 전쟁의 고난을 통하여 강한 민족으로 육성하신다. 강한 훈련은 강한 군인을 만들어 내는 법이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매우 많은 전쟁과 고난의 훈련으로 강한 민족이 되고 이로서 6.25전쟁의 잿더미에서 일어나 세계 부강국가에 들어간 기적을 이루었다. 이민자인 우리도 받은 훈련으로 새로운 낯선 것에 굴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을 살리는 고난이 있다.  한국 전쟁이 났을 때 즉시 미국을 중심한  유엔의 파병 결의로 16개국 병사들이 생면부지의 땅에서 적군과 싸우다가 근 5만명의 꽃다운 목숨을 바친 피로 한국은 살아 피어나고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닌가! 
고난 중의 가장 큰 것은 모든 사람이 죄의 심판과 죽음으로 지옥불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이다.  여기서 해방과 탈출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시고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피 흘려 죽으심으로 누구든지 그를 인정하고 믿으면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천국의 복락을 누리게 하셨다. 주께서 오신 것을 기억하는 이 대림절에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나의 모든 고난이 벗어짐을 체험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Are You in Affliction?

Life itself is affliction, and history is filled with suffering. Job, who endured severe trials, lamented that humans are born for trouble. Not only individuals but human history is marked by afflictions of poverty, disease, conflict, struggle, and war. Affliction is a major challenge in life. To avoid and overcome it, humanity has developed strength, skills, and medicines, making life more convenient. Yet, affliction persists for everyone. It’s shocking to see how many, whether young or old, lose their joy and sense of purpose in life, giving in to despair, harming others and selves, or even ending the lives. Then, how should we manage the affliction?

Is here anyone in affliction? Let him pray the Bible ways. This means turning to the all-powerful and loving God for help because the problem is beyond our ability to solve on our own. Without affliction, people might think they can handle everything themselves. But when faced with overwhelming suffering, they recognize their weakness and seek help, often leading them to God. God waits for people to come to Him for help in their affliction.

When the Israelites were enslaved and suffering in Egypt, they cried out to God. He heard them, sent Moses, and freed them, transforming them into a nation of free people. However, even as an independent nation, they endured severe afflictions from frequent invasions by surrounding countries. When the powerful Assyrian army advanced on Jerusalem and demanded surrender, mocking the power of any god to save a nation from the Assyrian king’s hand, King Hezekiah turned to God in desperate prayer. That very night, 185,000 Assyrian soldiers died. God protected His people and defeated their enemies. This kind of deliverance is not limited to nations; it can happen to individuals facing their own afflictions. The key is to trust and pray to God in times of trouble.

Affliction is also a tool God allows for training. When God gave Israel the Promised Land, it wasn’t uninhabited; they had to drive out the strong, settled nations living there. Some Canaanite tribes still remained, and God used this to teach the next generation about war. Through the hardships of war, He trained Israel into a strong nation. Intense training produces strong soldiers. Similarly, the Korean people have become a resilient nation through a history of wars and suffering, rising from the ashes of the Korean War to become one of the world’s afflluent nations. As immigrants, we, too, have been shaped by the training we received and can rise above new and unfamiliar challenges.

There is also suffering endured for the sake of saving others. During the Korean War, the immediate decision by the United Nations, led by the U.S., to send troops resulted in soldiers from 16 nations fighting on an unlnown land. Nearly 50,000 young lives were sacrificed to ensure Korea’s survival and its growth into the nation it is today.

The greatest affliction of all is tje judgment of all ment for sin, leading to death and eternal punishment in the fires of hell. To deliver us from this, Jesus, the Son of God, came to earth. By shedding His blood and dying for the sins of all humanity, He provided a way for anyone who acknowledges and believes in Him to be forgiven of sins and enjoy the eternal blessings of heaven. In this Advent season, as we remember the coming of Jesus, may we experience the blessing of being freed from our affliction by trusting in Him.

Saturday, December 7, 2024

소 통 Communication

소 통  Communication
국가의 본질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 붕괴를 막기 위하여 윤석열 대통령은 12월3일 밤 계엄령을 선포하였으나 즉시 국회의원190명이 모여 만장일치로  계엄령을 150분만에 무효화하고 대통령은 해제를 발표하였다. 국민들이 잠자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통령으로서는 긴급한 비상사태였으나 그것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나 국민과는 소통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이든 함께 하는 일이라면 소통은 필수라 서로 이해하고 조정하여 협력할 것이나 소통이 없으면 오해와 불신이 일어나고 관계와 협력은 와해한다. 소통을 잘 하면 서로를 존중하고 용납하며 평화를 가진다. 이는 부부와 가족  교회 단체 어디나 동일하다. 
특별히 선교는 소통이다. 선교사는 파송단체, 동료, 지역민과 소통이 원활할 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한국 장로교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포삼열 선교사는 1890년 26세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그는 당시 한국 주재 선교사 7명의 생활방식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함께 모여 살다가 사역을 위하여 주민들에게 나아가고 또 알렌과 언더우드는 왕실로부터 참판 같은 벼슬을 받고 좋은 관계에 있었다. 낯선 곳에 사는 형편을 이해하지만 선교사는 지역민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과 정치는 우호적인 형편에서 쉽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차라리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서울 북쪽 평안도 지방을 요청하였다.키가 큰 그는 방에서 바로 설 수도 없는 일반 주택에 살며 주민과 함께 하고 평양 길거리에서 순사 이기풍의 돌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웃음으로 일어나 그를 바라보자 그는 감동을 받아 예수를 믿고 신학교 첫 졸업생 7명의 하나로 제주도 선교사로 자원하여 가서 돌을 맞기도 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이 평양에서 접전하여 모두 피난하지만 마포는 그의 양을 버리고 떠날 수 없다며 교인들과 함께 하고 이른 봄 눈이 녹으며 말과 사람의 시체가 썩어 콜레라가 발생하자 그는 소수의 교인들과 함께 거리를 청소하였다. 사람들이 신임하고 모여들어 신축 중이던 예배당 건물을 두 번이나 증축하였다. 주민과 소통하며 마음이 통할 때 그들은 희망과 믿음으로 함께 하여 아시아의 예루살렘을 이루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 보다는 눈에 보이는 우상을 따르고 섬기는 실정이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방시키고 약속의 땅을 향하여 광야를 통과하던 중에 모세가 하나님의 법을 받고자 산에 올라간 사이 백성들은 송아지를 만들어 그들을 인도하는 신이라고 섬기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이스라엘 역사는 보이는 우상과 보이지 않은 하나님 사이에서 선지자들이 활동하였으나 배척을 당하였다. 
하나님은 결국 자기를 보이며 사람과 함께 살고 사역하도록 예수로 오셨다. 성육신은 하나님이 사람과 소통하려는 마지막 결단이었다. 가난하고 병들고 눈 멀고 포로로 눌린 사람들과 소통하며 참 치유와 자유,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떠나시자 실의와 두려움에 처한 제자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는 가운데 주의 약속대로 성령이 임하고 그들은 방언을 말하였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 모인 15나라 사람들은 각각 자기말로 들으며 3천명 5천명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소통의 결과다.  
지금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기간에 우리는 하나님과 소통이 되고 서로가 소통이 되는가! 소통으로 생명과 평안 기쁨을 누릴 수 있으리라.

여호와께 감사하라 Give Thanks to the LORD!

여호와께 감사하라  Give Thanks to the LORD!
감사절 주간 친구 목사들의 방문을 받고 함께 교제하며 지난 1년간 감사한 일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다. 한 부부는 서로가 다르게 매우 분주하고 활발하게 일을 하며 서로가 부부의 정을 나누며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사모가 어떤 충격을 받으며 인지능력에 이상이 생기고 몸이 약해지면서 남편이 옆에서 손을 잡고 사랑을 나누며 이전에 갖지 못하던 시간을 가지는 것이 행복이요 감사라 하였다. 한 쪽이 병이 들어 하던 활동이 제한되자 새로운 감사의 일이 일어난 것이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의 일을 하며 너무나 분주하다가 병이 들어 누울 때 쉬는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것과 상통한다.  우리가 가족이나 친구나 많은 사람들을 항하여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은 하나님께 감사가 돌아간다. 
추수 감사절은 농부가 봄부터 열심히 일을 하여 가을에 추수를 하지만 하나님께서 햇빛과 비를 주시고 자라게 하신 것이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계절이다. 농사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일이 그러하다. 내가 노력을 하지만 노력한다고 모두 이루어지지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운이라고도 하지만 사실은 우리 삶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도움이다. 
시편 기자는 100편에서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하자 한다. 사람만 아니라 온 땅이 여호와께 감사한다. 왜 감사하는가? 그는 여호와시다.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스스로 계시는 자로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의미다. 그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이 아니라 그가 자신을 사람에게 여호와로 나타내셨다. 스스로 계신 분, 그는 하늘과 땅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시라 그에게 감사한다. 우리가 부모를 통하여 세상에 태어났기에 부모님께 감사하자만 하나님은 우리를 모태에 짓기 전부터 우리를 알고 택하여 나게 하였다고 하신다.  생명은 하나님이 살아라 명령하여 우리를 이 땅에 보내주셨기에 그에게 감사하며 우리는 그의 것이라 고백한다. 우리의 성이나 가정, 출신학교로 자기의 소속을 말하며 자랑스러워 하지만 근본적인 우리의 소속은 여호와 하나님이라 얼마나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인가! 우리는 그의 것으로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기는 양이라 인정하고 고백한다. 사람은 자기 집이나 자녀를 남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고 돌보며 양육한다. 먹을 것과 입을 것, 살아갈 길과 안녕을 위하여 후원하고 훈련한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 자기 양을 기르고 돌보신다. 자기 자녀를 품에 안고 사랑하며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위험에서 지키고 보호하신다. 어느 무엇도 우리를 그의 손에서 빼앗아 가거나 해칠 수가 없다.
여호와는 선하시고 그이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른다.  우리를 향한 그의 생각은 항상 선하시고 악이 없기에 우리로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하게 되기를 바라신다.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은 끝이 없으시다. 사람의 사랑은 상대적이고 변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태도에 상관 없이 언제나 사랑으로 기다리며 맞아 주신다. 그는 우리를 향하여 신실하게 변함 없이 믿음을 지키시고 우리만 아니라 대대로 내러 가신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다윗의 하나님  그리고 오늘 믿음의 자손 우리의 하나님으로 신실하게 우리를 대하고 돌보시니 우리가 어찌 감사하지 않겠나!

Thursday, November 21, 2024

감사하라고? Give Thanks?

감사하라고? Give Thanks? 11/23/2024
미국에서는 두 마디 말만 하여도 살 수 있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Thank You) 와 실례합니다 (Excuse me)이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 좋아요 감사해요 당신은요? (How are you? I am fine, thank you. And You?)한다. 의례이 주고 받는 인사라도 안부를 묻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길을 묻거나 지나갈 때에도 실례합니다 한다. 인사하기 보다는 인사 받는 것이 당연하고 내가 길을 묻거나 앞을 지나가는데 양해를 구하기 보다는 내 권리라고 생각하는 식의 문화와는 사뭇 다른 것을 느끼나 점점 익숙해지고 따르게 된다.  미국이 어떻게 감사하는 문화가 되었을까? 아마도 성경에 기초한 것이라 본다. 성경에는 모든 일에 감사하라, 감사하는 말을 하라,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 이런 말이 계속 나온다.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며 잘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 감사에서 시작된다. 감사하면 많은 유익을 얻는다.
무엇보다 관점과 견해가 긍정적이 된다. 인생살이에 어려움과 고난이 많아도 그것을 어떻게 보는가는 중요하다. 특히 가난과 625 전쟁을 경험하며 많은 기회를 잃은 것을 생각하며 한탄할 수 있지만 그래도 고난과 가난을 이기고 인생을 개척한 것을 감사하면 자존감을 가지게 된다. 감사는 정신 육체의 건강을 가지고 온다. 감사하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우울 좌절을 이기고 밤에 잠을 잘 자게 된다. 질병이 치유되기도 한다. 이미 여가서 언급한 시카고의 젊은 화가 솔맨의 이야기다.  결혼하고 첫 아기가 임신되었는데 몸이 좋지 않아 의사를 찾아가니 임파선 결핵이라 3개월 살 수 있다고 한다. 삶의 의욕은 사라지고 좌절과 실망으로 헤매일 때 그를 보던 아내가 말한다. 하나님께서 3개월이나 살게 하였으니 감사하면 어때요?아내의 말을 깊이 생각하며 감사하기로 작정하고 그리스도 얼굴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감사하며 새날을 시작하고 감사하며 아내를 보고 감사하며 태아를 위하여 기도한다.  감사하며 그림을 그린다. 3개월이 되어 의사를 찾았더니 병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의사는 무슨 약을 먹었느냐 묻는다. 약이라면 아내가 처방한 감사라 하자 의사는 동의하였다.  감사는 관계를 아름답게 한다. 감사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우대하면 관계는 좋아지고 또한 인정을 받게 된다. 감사하면 건강한 개인, 가정,  건강한 사회가 이루어진다. 
어떻게 하면 감사를 일상으로 삼을 수 있을까? 습관으로 삶의 일부가 되게 할 것이다. 감사를 말로 표현한다. 마음에 있는 것이 말로 나오지만 말을 하면 마음에 말의 내용이 형성된다. 내가 누리는 가정이나 재물 지위 어떤 것이나 내가 획득한 것으로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면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난다.이로서 하나님과 사람,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된다. 내가 감사하는 말과 표현을 하고 감사 카드나 편지를 쓸 때 자신이나 상대방에게 오는 결과를 보면 더욱 감사를 표현할  수 있으리라  감사일기를 기록한다. 그 날의 감사한 일을 찾아 기록한다. 한 둘로 시작하나 점점 수가 많아지는 것을 발견할 것이고 스스로 감사의 혜택과 유익을 경험할 것이다. 나아가 내 생명을  나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면서 나에게 영생을 주시고자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가 넘치는가!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더욱 풍성한 그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사랑 구현 Love in Action

사랑 구현 Love in Action
시카고에서 사랑을 나누던 모녀가 이틀을 운전하여 우리가 사는 프린스턴지역으로 찾아왔다. 헤어진지 4개월 서로 보고 싶어 하며 벼르다가  시간을 정하였다. 80대 어머니를 모시고 딸이 테슬라 전기차로 850마일 여정을 떠나는 것이 처음이다. 두세시간마다30분간 충전하는 시간을 휴식으로 삼지만  호텔에서 잠을 자고 돌아갈 때도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만나도 오래 있지 못하고 이틀을 같이 지나지만 호텔 숙박 4일,왕복길에 4일 그리고 만나 함께 지나는 2일로 전체 6일 여정이다, 피곤하고 고생스런 일이나 사랑때문에 감내한다.많은 시간과 정력 경비가 소요되지만 사랑은 행함으로 구현된다.
우리 부부는 이곳 4개월간 운전대를 놓고 많은 한계를 가지며 적응하는 가운데 이들을 최선으로 환대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지도록 준비한다.  
이들은 시카고교회에서 시행하는 노년 프로그램에서 아내가 처음 만나고 그 딸은 점심시간에 만나며 친절과 사랑으로 가까워지다.  딸의 아버지는 내가 목회하던 교회 열쇠를 모두 만든 분으로 교회 출석도 하기에 더욱 친근미를 느낀다. 그가 스트로크를 만나 휠체어를 타는데 딸이 직장을 그만두고 19년간 아버지를 보살피다 2년 전에 그가 세상을 떠나자 허탈한 상태에서 어머니로 위로를 얻으며 모시는 가운데 내 아내 사모를 만났다. 어머니는 동생을 위하여 신장 하나를 기증하는 사랑의 실천자이다.이들 모녀가 친구로서 찾아오기에 기쁨과 사랑으로 맞는다.
프린스턴은 미국독립전쟁터로 알려져 있다. 17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에서 독립을 선언하자 영국은 전쟁을 시작하고 영국군은 트렌턴으로 진격하였다. 1776년 12월 25일에서 다음1월3일은 결정적인 10일 전쟁으로 프린스턴에서 워싱턴 장군의 군대가 승리함으로 미국의 독립과 건국이 확정되었다.  여기서 전사한 미국 병사 15명 영국병사 21명을 묻은 묘지 앞에 이오니아식 4 돌기둥 콜로네이드 관문을 통하여 묘지로 들어간다.  놀라운 일은 미영 양국 전사자를 함께 묻고 묘지에는 두 나라 국기를 나란히 꽂아 두고 있다. 대적하여 싸운 원수이지만 형제의 사랑을 죽음에서 나누고 있음이 인상적이다. 
프린스턴이라면 아인슈타인을 기억하는데 그는 1933년 독일에서 유대인으로 학대를 당하며 망명난민으로 고등연구소 (Instirute of Advanced Studyied) 의 초청받아 위대한 업적을 남겼기에 그를 기억하는 실제모습 동상이 자랑스럽다. 당시 연구소장 오펜하이머의 만하탄 프로젝트에 기반하여 원자탄이 제조되고 이차대전을 끝내게 되었다.
최근 미국  명문대학 1위인 프린스턴 대학교는 인재 양성을 위하여 개척자들이 세운 하바드(1636) 예일(1701)에 이어 1746년 장로교 정신으로 세워진 학교로 사명을 수행하고 있고 웅장하고 엄숙한 채플에서 기도하며 찬양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지다. 
랭캐스터의 사이트 앤 사운드 (Sight and Sound)극장은30년전 전도를 목적으로 세워지고 금년은 다니엘을 공연하고 있다. 미국만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오기에 주말에는2천석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평생 한번은 관람하고 싶은 곳이다. 무대는 정면과 양면 또한 복도가 사용된다. 다니엘은 세 친구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훈련 받고 왕의 총애를 받자 그의 바벨론 동관들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그를 질투 증오 모함하여  많은 환난을 겪지만 이겨내는 것을 아주 실감나게 보여주어 믿음을 굳게 하여 준다. 그리고 아미쉬 마을을 방문하고 버기라는 달구지를 타며 독일에서 1700년대 캐톨릭의 박해를 피하여 신앙의 자유를 주는 펜실바니아에 정착하여 대대로 전통을 지키며 사는 것을 보며 이민자로 큰 격려와 도전을 받으며 이틀의 일정을 감사함으로 마감한다. 

세월을 아까라Redeem the time

세월을 아까라Redeem the time
시카고의 젊은 초년생 화가 워너 솔맨(Warner Sallman)이 몸이 좋지 않아 의사를 찾았더니 의사는 그가 임파선 결핵이라 3개월을 살 수 있다고 진단하였다. 신혼에 부인이 임신하였기에 더욱 슬픔과 좌절에 빠지고 견디기 어려웠다. 성악을 하는 아내가 그에게 말한다. 석달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석달이나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감사하며 살자고 하였다. 아내의 말을 생각하며 그것을 받아드리고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불평 원망을 없애고 감사하며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하고 그리스도 초상화(Head of Christ)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시한부 3개월이 지나면서 몸은 점점 좋아지고 의사는 그가 병에서 깨끗해진 것에 놀라며 무슨 약을 먹었는가 한다. 약이라면 아내가 준 감사가 전부라고 하였다. 그의 마지막이라 생각한 작품은 1940년 50만부 이상을 인쇄하고 우리 집에도 사랑을 받고 솔맨은 76세까지 많은 작품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전파하였다. 
누구나 동등하게 가진 시간에 대하여 무심하기도 하지만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고 한다. 여기  시간은 달력이나 시계의 시간(크로노스)이 아니라 기회로 허락된 시간 (카이로스)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다. 내가 1980년 피츠버그에서 피크닉을 하다가 큰 나무가 갑자기 내 위에 쓰러졌다. 내가 깔려 죽은 줄로 생각하였지만 나무 둥치가 머리를 조금 비껴 땅을 쳤기에 나는 다치지 않고 살아났다. 2018년 도미니카에서 강의하다가 뒤로 쓰러지며 졸도하였다. 놀라서 모두 나와보니 죽은 것이라 심폐소생술을 하고 아내는 자극을 주느라 발가락을 바늘로 찌르기도 했는데 얼마 후 기도소리에 의식이 돌아왔다. 저녁 잠자리에 들 때 아침에 일어난다는 보장이 없으나 새날이 주어진다. 누구나 경험한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기회로 허락된 삶이다. 
세월을 아끼라는 것은 돈을 주고 사서 내 것으 로 만든다, 대속한다는 의미로 시간을 내버려 두지 말고 가치 있게 최대한 활용하라는 것이다. 때가 악하기 때문이다. 질병과 고난, 실패만 아니라 많은 유혹과 시험이 우리를 넘어뜨리려 한다. 즐기며 살자고 마음대로 살 수가 있다. 탕아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였다. 그가 어느 날 방에 있는데 밖에서 노는 아이들이 집어서  읽어라 집어서 읽어라 노래한다.  앞에 있는 책을 집어 읽는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우리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졌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고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기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체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143:11-14)는 말씀에 가슴이 꽂혀 꼬꾸라지고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하루 하루의 주어진 때와 삶을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 받아 성경을 연구하고 정리하여 신학을 대성하고 오늘까지 신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까? 부와 지식 향락을 누구보다 많이 추구하고 누린 솔로몬은 그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권한다. 하나님은 나에게 자기 사랑을 전하고 그가 하신 일을 나누기를 원하신다. 기간이 얼마든지 삶과 활용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받은 시간과 생명을 소중이 여기며 서로 사랑하고 생명의 주를 나누고 전하며 살 것이다. 

벗지 않고 덧입고자 Not Unclothed but Further Clothed

벗지 않고 덧입고자 Not Unclothed but Further Clothed
단풍이 한창 아름답더니 한 잎 두 잎 뚝뚝 떨어지며 숲은 입고 있던 화려한 옷을 벗고  어느새 벌거벗은 나목으로 가득하다. 차가운 겨울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지나려 하는지! 우리는 조금만 추워도 두터운 옷을 덧입고 더 입는데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옷을 벗기도 하고 덧입기도 한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에서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저지면 하늘에 있는 새로운 집 곧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이 있다고 한다. 태어나 살던 한국을 떠나 미국에 와서 새로운 환경과 집을 가진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지만 이는 우리의 몸과 생명을 말한다. 사람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디에서나 살기 위한 노력과 수고 고난을 겪는다. 무거운 짐을 지고 탄식하고 신음하기에 이를 벗고 좀 더 편안하게 살고자 직장과 사업 지역을 옮기고 집을 바꾸기도 한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도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과 고통이 있다. 고린도는 해안의 무역도시로 부와 향락을 추구하는 자들이 모여 들지만 혼란과 소요가 가득하다. 여기 복음이 전파되고 주를 믿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들은 일반인의 조소와 놀림을 받고 욕을 먹으며 고난을 당하고 심지어 박해를 받기도 하였다. 땅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영원한 하늘 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삶의 위로가 되고 그것을 사모하지만 그래도 매일이 어려움이다. 옷을 벗어버리듯 삶을 벗고 세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자가 그때나 지금이나 있다. 누군가 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며 장기와 조직의 값을 계산하여 51억원짜리 집이라 하였다. 이 땅에 사는 우리 집이 51억인데도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이를 쉽게 상하고 포기하고 파괴할 마음을 가진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우리가 원하는 바는 벗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라 한다. 세상의 추위와 풍파 어려움을 견디고 이기기 위하여 하늘의 옷을 덧입는 것이다. 무거운 인생짐에 시달리며 탄식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옷을 입고 그들과 다른 모습과 본을 보이며 사는 것이다. 예수께서 고난과 슬픔을 겪으시며 하나님의 아들로 승리하신 것을 따라가는 삶이다. 뿐만 아니라 세상과 사탄에게서 오는 많은 유혹과 시험이 있다. 거짓과 술수, 방탕과 술취함, 음란과 호색, 다툼과 분리, 불신과 증오가 우리를 넘어뜨리려 한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있으면 악한 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진다. 또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다.  머리에 구원의 투구, 가슴에는 의의 흉배, 허리에는 진리의 띠, 어디에서나 평화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잡고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덧입고 든든히 서는 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의 모습이다.  
무력과 정복, 자랑과 교만, 방탕과 탐욕으로 가득한 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하고 많은 성도를 처형하는 중에 그들에게서 예수의 십자가 사랑과 평화를 보면서 나라 전체가 돌아서고 복음 전파의 중심지로 변한 것은 세상에 살면서도 벗으려 하지 않고 예수의 옷을 덧입고 살아간 성도들의 담대함이라 감사하다. 잎이 떨어지며 자기를 죽이는 것 같으나 봄이 오며 숲은 새로운 옷으로 풍성해진다. 세상을 떠나 주와 함께 즐길 영원을 기대하면서 무거운 짐을 지고 탄식하는 세상에서 예수의 옷을 덧입고 살며 일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요 사명인가!

단풍을 즐기며 Enjoying the Fall Foliage

단풍을 즐기며 Enjoying the Fall Foliage
가을이 짙어지며 아름다운 단풍을 즐길 곳을 찾던 것을 기억한다. 내장산 설악산을 찾고 시카고에서 이웃공원이나 엘크그로브의 단풍을 즐겼다. 뉴저지는  가든 스테이트 말 그대로 주 전체가 숲이 우거지고 내가 사는 아파트도 숲을 끼고 있어 보이는 것이 모두 아름다움이다. 
누구나 아름다움에 끌리기에 사람은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머리와 얼굴 옷과 장식품 등에 마음을 쓰며 성형수술을 하고 스타일을 내고 명품 옷이나 가방을 가진다. 보는 사람의 눈을 끌고 인정을 받으려는 마음이다. 
면접에 외모는 중요하다. 이스라엘의 첫 왕을 선택할 때 사울은 누구보다 키가 크고 외모가 출중하여 보는 사람의 호감을 얻었다. 왕이 되자 교만과 자기방어에 급급하고 하나님을 떠났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지시로 이새의 아들 중에서 왕 의 후보자를 선정하는데 맏아들 엘리압이 외모가 특출하여 바로 그를 하나님이 원하는 자라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키와 용모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며 일곱아들 모두 불합격이었다. 이새가 그 자리에 부르지도 않은 막내 양지기 다윗을 만나자 그를 하나님의 뜻을 이룰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기뻐하셨다.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 바리새인은 화려한 긴 옷을 입고 거리에서 인사 받기를 좋아하였다. 기도 금식 구제는 신앙의 3대 덕목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이나 사람 앞에서 사람에게 보이고 인정받기 위하여 나타내는 자들이 많았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속에는 탐욕과 여러 부정함이 가득하고 그것이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신다. 주님은 속이 아름답기를 원하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 창문을 닦아 내듯이 속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겉을 치장하고자 하듯이 속을  돌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결하고 아름답게 하기를 원하신다. 오라 우리가 서로 의논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되리라 하신다. 죄를 찾으려 하여도 찾지 못하고 아름다움을 보신다.  사람이 죄를 인정하고 죄의 값으로 양을 희생하여 드리고 기도하면 죄를 없게 하였다. 
단풍의 아름다움은 나무 잎의 큰 변화다. 가을이 되며 해가 비치는 시간이 짧아지고 날씨가 싸늘해지면 잎의 엽록소가 파괴되고 안토시아닌이 활성화되며 색깔이 아름답게 변하는데 이는 속에서 자기를 파괴하고 죽는 고통을 통해 일어나는 일이다. 
구약에서 매년 양을 잡아 죄를 대신하는 것은 양으로 죄를 온전히 씻지는 못하지만 하나의 표징으로 보여주다가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통하여 온전한 길을 여셨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고 희생하신 것은 하나님이요 사람이신 그가 나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고 죽기까지 하셨다. 나에게 죄용서와 생명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자기 생명을 바치셨다. 생명 드려 구원한 나를 주께서 바라보실 때 얼마나 아름답고 존귀하겠나!  두 딸의 엄마에게 둘 다 예쁘고 귀한 딸이지만 첫째가 더 친근하고 사랑스럽다. 처음은 많은 진통 고생을 하고 낳았기에둘 째는 고통을 피하고자 절개 수술로 아픔 없이 낳은 것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내가 고생하며 얻은 자식이 더욱 사랑스러운 것이다. 
내가 허물로 불결하다고 염려할 것이 없다. 주께서 하신 일을 받아드리고 믿기만 하면 정결한 처녀와 같이 주 앞에서 사랑스럽고 단풍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누리게 된다. 

Enjoying the Fall Foliage

I remember looking for places to enjoy the beautiful fall foliage as autumn deepened. I visited Naejangsan and Seoraksan, and in Chicago, I enjoyed the foliage at neighboring parks or in Elk Grove. New Jersey, known as the Garden State, is literally filled with forests, and my apartment is surrounded by trees, making everything around me beautiful.

Everyone is drawn to beauty, which is why people place importance on appearances. They care about their hair, face, clothes, and accessories, sometimes getting plastic surgery, styling themselves, or owning luxury clothes or bags. It’s all about catching people’s eyes and seeking recognition.

Appearance is important in interviews. When Israel’s first king was chosen, Saul stood out because he was taller than everyone else and had an impressive appearance, gaining people’s favor. However, once he became king, he became proud, self-defensive, and strayed from God. When Samuel, following God’s direction, sought a king from among Jesse’s sons, he thought the eldest, Eliab, with his striking appearance, was surely the one God had chosen. But God said not to look at his height or appearance, for He had already rejected him. God looks at the heart, not the outward appearance. All seven sons were rejected. When David, the youngest, who wasn’t even called to the gathering, was brought in from tending sheep, God rejoiced, seeing him as a man after His own heart to fulfill His will.

In Jesus’ time, the religious leaders, the Pharisees, loved to wear elaborate long robes and be greeted in the streets. Prayer, fasting, and almsgiving were the three major virtues to be practiced before God, but many did these acts for people to see and recognize them. Jesus said that although they clean the outside of the cup and dish, the inside is full of greed and wickedness, and it is this that defiles a person. The Lord desires inner beauty.

So how do we achieve this? Just as we clean windows, we must cleanse the inside. Just as we care about outward adornment, we must tend to the heart. God desires to make us pure and beautiful. “Come now, let us reason together,” says the Lord. “Though your sins are like scarlet, they shall be as white as snow.” Even if you try to find sin, it cannot be found, for God sees only beauty. When a person acknowledges their sin, offers a lamb as a sacrifice, and prays, their sin is removed.

The beauty of fall foliage comes from a significant transformation in the tree’s leaves. As autumn arrives, the days grow shorter and the weather colder, chlorophyll in the leaves breaks down, anthocyanins become active, and the colors change beautifully. This process involves the leaves destroying themselves and dying, bringing about this beauty.

In the Old Testament, lambs were sacrificed yearly to atone for sin, though this could not completely cleanse sin. It served as a sign until God opened a perfect way through His Son, Jesus. Jesus bore our sins and sacrificed Himself—He, who is both God and man, endured suffering and death in our place. He gave His life to grant us forgiveness, life, and eternal salvation. How beautiful and precious I must appear to the Lord, who saved me through His sacrifice! A mother loves both her daughters equally, but the firstborn often feels closer to her heart because of the pain and labor she endured during childbirth. Similarly, a child born through hardship is even more beloved.

There’s no need to worry about being unclean due to my faults. If I accept and believe in what the Lord has done, I will be as pure as a virgin before Him, filled with love, and enjoy eternal beauty beyond comparison to the fall foliage.



나의 주소 Wher I Live

나의 주소  Wher I  Live
이사 와서 사는 아파트 주소가 Palm Street이라 내가 어디에 사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웃 길이 백향목, 복숭아나무라 내가 사는 길은 종려나무라 생각한다. 
종려나무는 교회에서는 부활주일 전주일을 종려주일로 지키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사람들은 자기 옷을 길에 펴고 종려가지를 흔들며 호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지극히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리라 외쳤다. 섬김의 표상인 나귀를 타고 왕도에 들어가는데 사람들은 그에게 호산나 곧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며  로마 황제를 제압할  왕의 왕으로 영접하는 마음을 표현하였다고 본다. 장엄하게 우뚝 선 종려나무는 품위 있는 왕을 상징한다.
약속의 땅을 향하여 광야를 걷고 걸으며 길에 지친 자들에게 엘림의 종려나무 숲은 쉼터와  새 힘을 제공하는 오아시스였다. 지친 인생에 꿈과 활력을 준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다고 한다. 종려나무를 말하지만 의인이 그러한  삶을 산다는 것이다. 
종려길에 살아서가 아니라 종려나무처럼 살려 면 의인이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의인이란 율법을 모두 지키고 한번이라도 죄를 범하지 않는 자를 말한다. 모세가 율법을 받아 정리하였기에 그 이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는 사람이 의인이었다. 노아 아브라함 욥과 같은 사람을 의인이라 하였다. 율법이 온 후에는 하나님과 친히 대면하여 율법을 받은 모세도 의인이라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단언하는데 그렇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없다는 말인가? 하나님은 율법 외에 다른 길을 마련하셨다. 아들 예수를 보내시고 그는 죄가 없으면서도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기에 그는 사람의 죄를 청산하는 구원자가 되는 유일하신 분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고 받아드리면 그는 죄를 용서 받고 구원을 얻는다. 울법으로 의인은 없지만 예수를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의로 여기시고 은혜로 구원하신다. 
종려같에 살면서 예수를 호산나 구주로 영접하기에 주의 은혜로 의인으로 인정받아 하나님의 집에서 청청하게 영생의  복을 누리기를 바란다.
Palm은 종려나무 잎이 펼친 손바닥 같아 손바닥이란 의미를 가진다. 손이 있으면 바닥이 있고 누구나 그것을 자주 들여다 보고 손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를 살피게 된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사49:16) 하신다. 항상 나를 보살피고 지킨다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그들(내 양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0:29) 하신다. 폭풍노도를 잔잔하게 하시고 5병2어로 5천명을 배부르게 먹이신 주께서 나를 손에 잡고 계시면 나의 삶이 얼마나 평화롭고 풍성하며 안전할까!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다 하는 말은 손으로 바람을 잡으려 해도 하사라는 의미다. 솔로몬왕은 추구하던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기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삶의 길이라 한다. . 내 주소의 번화가 31102다. 3위1체 하나님을 손에 붙잡고 찬송가 102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에 이 세상 부귀 명예 행복… 어떤 것보다도 주께서 더욱 귀하다는 것을 고백하고 찬양하며 주소답게 살고 싶다. 


My Address
Moving to an apartment I find the address is Palm Street, which makes me think about where I live. The nearby streets are named Cedar and Peach, so I think that the street I live on must be named after palm trees. Palms are familiar to us, Christians especially in church, where we observe Palm Sunday, the Sunday before Easter. When Jesus entered Jerusalem on a donkey, people laid their clothes on the road and waved palm branches, shouting, “Hosanna!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Hosanna in the highest!” Although He entered the capital on a humble donkey, symbolizing a servant, the people greeted Him as a king who would save them, hoping He would conquer the Roman emperor. The majestic palm tree, tall and dignified, symbolizes such a king.

When the Israelites were journeying through the wilderness toward the Promised Land, the palm groves of Elim welcomed them and provided a restful oasis for those weary from their travels, offering them new strength. It’s a tree that brings virality and hope to tired souls. Psalm 92:12–14 says, “The righteous will flourish like a palm tree, they will grow like a cedar of Lebanon; planted in the house of the Lord, they will flourish in the courts of our God. They will still bear fruit in old age, they will stay fresh and green.” The palm tree is used as a metaphor, but it speaks to the life of a righteous person.

Living on Palm Street doesn’t make one righteous, but living like a palm tree means living as the righteous. The righteous person, according to the law, is one who never breaks it. Before Moses received the law, those who obeyed and followed God’s word were considered righteous. People like Noah, Abraham, and Job were called righteous. After the Law came, even Moses, who received the law directly from God, is not referred to as righteous. In fact, Scripture declares, “There is no one righteous, not even one.” Then does that mean no one can be saved? God provided another way. He sent His Son, Jesus, who was without sin, to die in our place and be resurrected. Because of this, He is the only one who can atone for our sins and offer salvation. The key is to recognize one’s own sinfulness, believing in Jesus as Savior, and accepting Him. By doing so, one’s sins are forgiven, and they receive salvation. Although no one is righteous by the law, by believing in Jesus, God counts that as righteousness and grants salvation by His grace.

By living like a palm tree and receiving Jesus as the Hosanna and Savior, one can be recognized as righteous by God’s grace and enjoy the eternal blessings of life in His house.

The word “palm” also means “the open hand.” With an open hand, there is always a palm, and we often look at our palms, checking to see what’s in them. God says, “I have engraved you on the palms of my hands” (Isaiah 49:16), meaning that He constantly cares for and watches over us. Jesus also said, “I give them eternal life, and they shall never perish; no one will snatch them out of my hand” (John 10:28). If the Lord, who calms storms and fed 5,000 with five loaves and two fish, holds my life in His hands, how peaceful, abundant, and secure my life would be!

In Ecclesiastes, the phrase “empty, empty” refers to the futility of trying to grasp the wind. King Solomon realized that everything in this world turned out empty, and the true path in life was to fear the Lord. My address is 31102, and I think of it as reflecting the Triune God (3 in 1) and hymn 102, “I’d Rather Have Jesus than Silver or Gold.” I want to live in a way that matches my address, confessing and praising that nothing is more precious than the Lord, more than any wealth, fame, or happiness this world can offer.

태풍을 대하며 Facing Hurricanes

태풍을 대하며 Facing Hurricanes
태풍철이 되어 플로리다는 태풍 헬린으로 200여명이 목숨을 잃고 많은 피해가 있더니 이번에는 태풍 밀턴이 탬파와 올란도 지역을 타격한다고 하여 대피하고 많은 성도들이 기도하였다.태풍의 세력이 약화하여 10여명 생명을 앗아가고 방향을 바꾸어 바다로 빠진 것이 감사하다. 
태풍은 태평양 인도양의 위치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한국 쪽에는 타이푼 ,호주 지역에는 사이클론, 미주에서는 허리케인이라 하며 시속 70-150 마일의 강풍이 폭우를 동반하여 수백 마일 넓이로 바람이 돌면서 나아가기에 어느 것도 그것을 감당하기 어렵게 휩쓸고 파괴를 일으킨다. 
태풍은 바다에서 시작한다. 태양열로 해수면이  더워지며 수증기가 증발하여 지구 자전 공전과 합세하여 바람을 일으키고 점점  가세하여  바다에는 풍파와 해일을 일으킨다.  지금까지 사람의 지혜와 기술로 태풍과 바다물이 육지로 넘치는 해일Tsunami)을 막지 못하고 있어 철이 되면 태풍지역은 두려움으로 시달리며 생명을 위하여 대비하게  된다. .
성경에는 바람과 폭풍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바다에 풍랑을 일으키지만 하나님은 바람으로 재앙의 파리와 메뚜기를 불러드리고 몰아내며 바람으로 홍해를 갈라 마른 길을 내고 이스라엘 사람은 건너게 하고 애굽 군대에게는 물이 덮여 수장되게 하였다. 바람으로 메추라기를 몰고 와서 광야의 60만 대중이 배부르게 고기를 먹게도 하였다. 아삽은 원수에 대하여 주의 광풍(Tempest)으로 그들을 쫓으시며 주의 폭풍(Hurricane)으로 그들을 두렵게 하소서 기도하였다  바람은 요나가 탄 배와 바울이 탄 배를 뒤집을 정도의 힘을 보이며 승객들을 두렵게 하였다.
하나님의 창조에서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Ruach)이 수면에 운행하였는데 영은 또한 바 람이다.  바다는  아름다우나 두려운 위험이 되고 바다는 조용히 있지 못하기에 혼돈 혼란이라 바다는 소란한  세상을 보여준다. 호세아는 그들이 바람(ruach)을 심고 폭풍(supah 태풍)을 거둔다고 한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죄악이 바람으로 시작하나 자라고 확장하여 전체적인 파괴를 가져오는 태풍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주를 믿는 사람이 말씀과  살려고 하지만 세상 풍파에 시달리며 많은 시험과 역경을 당한다. 한 주일 예배에 빠질 일이 생기더니 두 주 석 주로 늘어나다가 교회와 멀어지는 경우가 있지 않는가! 부부 관계도 적은 일로 시작하더니 점점 크게 되어 함께 살 수 없는 파괴적인 태풍을 만나기도 한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으로 발전한다.
태풍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예수의 제자들이 탄 배가 광풍에 침몰할 정도로 시달릴 때 주께서 물 위로 걸어가 배에 올라 바다를 잔잔하게 하였다.또 주님은 폭풍에 요동하는 배에서 주무시기도 했다. 아무리 태풍이라도 바다와 바람을 지으신 창조주를 침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주가 함께 계시면 안전한 것이다. 태풍에 눈이 있다. 수백 마일 태풍 가운데 20마일 정도는 아무 바람이 없이 고요하고 평안한 공간이다.다니엘은 사방으로 원수에게 둘러싸여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그는 하나님의 품인 태풍의 눈에서 안전하게 보호되었다. 
초대교회 제자들은 많은 증오와 박해를 받으면서도 주께서 약속하신 위에서의 능력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 바람이 각자에게 임하자 그들은 능력을 받고 태풍 세력으로 세상에 나가 부활의 주님으로 옛 사람을 무너뜨리고 새 사람과 교회를 일으키는 변화를  가져왔다. 성령 바람이 태풍 능력으로 발전하는 역사가 오늘 교회에도 일어날 수 있다고 기대해 본다. 

메뚜기인가 A Grasshopper?

메뚜기인가  A Grasshopper?
이민 초기 어느 목사가 뉴욕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퀸즈 주택지역에 있는 미국교회당을 빌려 모였다. 주일 아침 일찍 본교회가 모이고 11시에는 한인교회, 저녁에는 다민족교회가 모여 교회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었다. 한번은 본 교회 목사가 3목사회의를 소집하여 어떤 내용일지 모르고 그 시간에 맞추어 갔더니 예배당에는 인근주민이 모두 모인듯 그득하였다. 이들은 건물을 빌려 사용하는 회중을 성토하는 자세였다. 소란하다 길거리 주차하기가 힘 들다 그들의 불편을 말한다. 교회에 인접한 어떤 사람은 어린아이들이 놀면서 그 집 개를 놀렸는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기까지 하였다. 다민족 교회의 백인 목사가 사과를 하고 다시는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고 한다. 한인목사의 차례가 되었으나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주의 은혜를 구하며 앞으로 나가 다민족교회 목사와 같이 불편을 끼쳐 미안하다 더욱 조심하겠다고 하다. 그리고는 한 마디 더 하겠다고 하며 말을 이었다. 한인들은 고국에서 교육 받은 사람들로 이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세금 내고 자녀 교육에 힘쓰며 성실하게 살고 있다. 이민초기 미국 문화에 익숙하지 못하고 영어가 불편하기에 함께 모여 예배하고 교제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일이라 하며 그곳에 모인  백인들 대부분이 폴란드 이민자의 후손임을 알고 그들의 조상들도 처음에는 한인과 같은 길을 걸었음을 기억시키다.  그리고 미국 정부에서 받아주고 시민권을 주어 살게 하였으니 함께 평화롭게 협력하며 살자고 호소하였다. 그 후에는 주민들이 달라져 먼저 인사를 하고 반가워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한인들이 처음에는 그들에게 불편하고 무가치하고 성가신 가시로 보였을지 모르나 나중에는 존중 받는 위치에 이르고 얼마 후 한인교회는 본교회의 제안을 받고 병합하여 한인목사가 담임목사가 되어 지도력을 발휘하는 자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인이 백인 앞에서 스스로를 과소평가할 때가 있으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위치를 인정하고 인정받게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400여년 종생활의 고통으로 부르짖는 소리가 커지자 하나님은 모세를 세워 그들을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게 하였다. 그 땅의 지형과 형편이 어떠한지 어느 길로 갈 것인지 알고자 각 지파 대표로 뽑힌 12명을 정탐으로 보내다. 40일간 정탐한 후 돌아와 두 사람이 메고 온 포도성이를 보이며 과연 그 곳은 비옥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말하고는 그 땅의 성벽은 강성하고 주민은 키가 크고 장대하여 자기들은 메뚜기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 땅에 들어가면 처자들이 모두 잡히게 될 것이니 지도자를 세워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하자 백성들은 이집트에 매장지가 없어 광야로 불러내어 죽게 하는가 하며 통곡한다. 그러나 정탐 중 갈렙 여호수아 두 사람은 다른 10명의 보고에 동의하면서도 그 땅을 지키는 보호자는 떠나고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같이 하기에 믿음으로 들어가면 그들은 메뚜기에게 먹히는 먹이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이스라엘은 그들을 정복하고 그 땅을 차지하여 하나님 백성으로 뻗어가고 훗날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세상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이루었다.
이민자와 그 후손으로 외형을 보면서 장대한 그들 앞에서 스스로 메뚜기로 위축할 수 있겠으나 주를 믿는 자는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하고 주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고 주의 인도와 보호를 받고 있음을 감사할 수 있으리라.
 

안녕하셔요 In Peace?

안녕하셔요 In Peace? 
우리의 인사는 안녕하셔요 안녕히 가셔요 안녕히 주무셔요 등 안녕이 중심이다. 이스라엘은 샬롬(Shalom평화) 인사다. 무엇보다 평안이 삶에 중요한 것을 말한다. 전쟁 기근 질병이 난무할 때 두려움 염려 걱정 불안이 덮는 가운데 평안을 기원하는 것이다. 
전쟁은 파괴 피난 죽음이라 모두를 떨게 한다. 현재 우크라이나, 가사의 전쟁형편을 한국과 이스라엘은 역사에서 많이 겪었다. 나라만 아니라 개인 단체 인종 종교 정당 간에도 갈등 대립 투쟁이 이어진다. 한인 백명이 모이면 99명은 인디언이 아니라 추장기질이라 발전요소가 되지만 동시에 갈등과 분리 고통인 것이 교회와 단체의 역사에서 나타난다. 입에 넣을 것이 없어 배고파 시달리는데 어떻게 하나?  에티오피아는 장기간의 기근흉년에 먹지 못함으로 왕정이 무너지고 사회주의, 다시 민주주의로 혁명과 변화가 왔지만 지금도 나라의 안정과 평안은 멀기만 하다. 뜻밖의 질병은 어떤가? 코비드 팬데믹 동안 감염과 확산 죽음의 두려움으로 온 세계 나라와 기관은 폐쇄하고 격리하였다. 이런 때 평안 안녕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미국 개척당시 옥스포드를 졸업하며 요한 웨슬리는 원주민 선교를 위해 조지아로 와서 2년간 헌신하였으나 결과가 미미해 실패를 자인하고 영국으로 돌아간다. 대서양을 건너는 배가 심한 폭풍으로 뒤집힐 것 같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검은 옷의 한 무리가 둘러 앉아 조용하게 찬송을 부르고 있어 놀랐다. 한 남자에게 두렵지 않은가 물으니 아니라고 한다.애기를 안고 있는 여인에게 물으니 오히려 반문한다. 왜 무서워요? 내 품에 있는 아이가 무서워할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품에 있는데요 한다. 웨슬리는 충격을 받고 런던에서 그들 모라비안들의 집회에 참석하여 마음이 뜨거워지며 변화를 체험하였다. 예수께서 어린아이들을 품에 안고 축복하셨다. 내가 어린아이로 하나님의 품에 안겨 사랑을 받으며 기뻐할 수 있으면 그것이 평안이 아닌가! 
어느 목사가 가족과 함께 유학하는데 가진 돈이 떨어졌다. 부부는 함께 기도하며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자고 하였다. 아침에 아파트 문을 여니 여러 종류의 식품 바구니가 놓여 있어 깜짝 놀라다. 누가 한 일인지 모르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배달되더니 부인이 직장을 구하자 끊어졌다. 광야를 행진하던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주시던 하나님의 공급임을 알고 감사와 찬양을 했다고 한다.
육군대령으로 제대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된 사람이 장로교회에 부임하여 당회를 인도하는데 한 안건에 대하여 장로들이 많은 토의를 하자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가 한 마디 하면 모두 예라 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 깨어지며 부임할 때의 감격과 함께 마음의 평화를 잃고 그는 잠을 잘 수 없고 음식을 먹을 수도 없게 되어 사임하였다. 어느 목사는 많은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운 때 강단 앞에서 기도하며 성찬상에 자기 몸을 눕히고 죄인을 위하여 몸과 생명을 주시고 평화의 중보자가 되신 주님께 감사하며 자기도 몸과 생명을 주께 바쳐드리고 자기는 죽었다고 고백하며 주께 그 교회를 맡겨드렸다.그의 마음에 평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가지는 평안은 돈이나 지위가 아니라 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그의 말씀 안에 거하며 주께서 함께 하여 일하심을 볼 때 감사와 평안이 솟아오른다. 환란과 죽음을 극복하신 주께서 주시는 세상과 다른 참된 평안을 경험하도록 하자.


**In Peace?**

Our greeting is "Annyeonghaseyo" ("Be at peace"), with phrases like "Annyeonghi gaseyo" (Go in peace), "Annyeonghi jumusyeoyo" (Sleep in peace), etc., all centered around the idea of peace (안녕). In Israel, they greet each other with "Shalom" (meaning peace). This emphasizes how important peace is in life, especially when war, famine, and disease are rampant. When fear, anxiety, worry, and unease engulf us, we wish for peace.

War brings destruction, refugees, and death, making everyone tremble. Currently, both Ukraine and Gaza are experiencing war, something Korea and Israel have faced often throughout history. But it’s not just nations at war—conflict, confrontation, and struggles also exist among individuals, groups, races, religions, and political parties. When a hundred Koreans gather, ninety-nine are chieftain-like, which can be a source of progress but also brings conflict, division, and pain, as seen throughout the history of churches and organizations. What do you do when you’re starving and there’s nothing to eat? Ethiopia experienced long-term famine and hunger, leading to the fall of its monarchy, the rise of socialism, and later a revolution towards democracy, but even now, the country struggles to find stability and peace. 

What about unexpected diseases? During the COVID-19 pandemic, fear of infection, the spread, and death caused the world to shut down, with countries and institutions going into lockdown and isolation. How can peace and safety be found in such times?

During the early pioneering of America, John Wesley, a graduate of Oxford, went to Georgia for two years to serve as a missionary to the Native Americans, but with minimal results, he admitted failure and returned to England. While crossing the Atlantic, the ship he was on faced a violent storm, and Wesley trembled with fear, thinking the ship would capsize. But on one side of the ship, he saw a group of people in black clothing sitting quietly, singing hymns, which surprised him. When he asked a man if he wasn’t afraid, the man said no. When Wesley asked a woman holding a baby if she was scared, she responded with a question, "Why should I be afraid? Is my baby in my arms afraid? We are in the arms of God." Wesley was deeply impacted by this. Upon returning to London, he attended the Moravians’ gatherings and experienced a personal transformation, feeling his heart warmed. Jesus held children in His arms and blessed them. If I can be held in God’s arms like a child, receiving His love and rejoicing in it, isn’t that true peace?

A pastor, studying in US with his family, ran out of money. He and his wife prayed, deciding to eat when they had food, and fast when they didn’t.They didn’t know who had done this, but it continued to be delivered every week until his wife found a job, and then it stopped. They thanked and praised God, recognizing it as His provision, just like the manna He provided to the Israelites in the wilderness.

A man, a former army colonel who had become a pastor after studying theology, took charge of a Presbyterian church. During a church council meeting, he struggled to accept the lengthy discussions the elders had about an agenda item, thinking that if he made a single statement, everyone would agree. When this didn’t happen, his sense of excitement from when he first started and his inner peace crumbled. He couldn’t sleep or eat, and eventually resigned. Another pastor, struggling under immense pressure, lay on the communion table in front of the pulpit and prayed. He thanked the Lord, who gave His body and life for sinners and who became the mediator of peace, and offered his own body and life to the Lord, confessing that he was dead to himself and entrusting the church to God. He said he then found peace in his heart.

The peace we have is not from money or status but is given by the Lord. When we dwell in His word and see the Lord at work with us, thanksgiving and peace well up within us. Let us experience the true peace that the Lord, who overcame tribulation and death, gives—a peace that is different from that of the world.

어떤 나라 What Kingdom

어떤 나라 What Kingdom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는 저마다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다. 누구나 자기 좋은 대로 결정하고 살 것인가 아니면 모든 사람이 함께 자유와 평화를 가질 것인가? 한국은 자유민주와 친북이 대립하며 어디로 가나? 장치에 상관 없이 자기만 좋을 수가 있을까? 나라라면 국민 영토 통치가 중요하나 일제 시대나 북한의 형편은 통치가 중요함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나라를 바라나? 주를 믿고 따르는 자로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 처음 외친 말씀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고 그의 말씀과 행함은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다. 그가 가르친 기도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시 로마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를 말한다. 황제의 뜻을 이루는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나라다.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나라다.  하나님의 뜻은 생명과 사랑, 평화와 자유다. 
어떻게 이루어지나? 예수께서 배신과  죽임 당할 것을 알고 고민되어 죽을 지경이라 그는  이 잔을 지나가게 하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기도하고는 담대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폭도에게 잡히어 비참한 십자가 죽음으로 나아갔다. 사람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이나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 아들을 희생하는 쓴 잔으로 이루어지게 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이루신다. 
사람의 일차적 요구인 먹어야 하는 일용할 양식 없이 누가 살겠나?하나님 나라는 이 요구가 채워진다. 광야의 이스라엘만 아니라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일용할 양식은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말씀처럼 주어진 일을 최선으로 순종하고 수행할 때 주어진다. 
다음은 용서다. 용서는 관계가 무너지거나 막힌 것이 없게 한다. 문제는 삶의 조건과 기준을 어기는 잘못을 행함이다. 개인이나 나라의 질서와 평화 자유를 위하여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남을 존중하고 공동체를 위해 세워진 기준을 따를 것이지만 실수와 잘못은 일어나고 이를 인정하면 용서하는 것이다. 사람의 용서와 하나님의 용서는 서로 결부된다. 큰 부채를 탕감 받았지만 자기에게 조금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은 자의 탕감을 취소했다는 것이 이를 말한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에 서로를 용서하고 받아주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신다. 
삶의 성패는 유혹과 시험으로 결정된다. 예수께서 유혹과 시험을 이기고 메시아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는 육체의 욕심, 안목의 정욕, 자기 자랑의 시험을 하나님 말씀으로 대응하고 물리쳤다. 다윗은 멀리서 목욕하는 여인을 보며 시험에 넘어가 큰 화를 불러 들였다. 
악의 재앙이 있고 삶을 무너뜨리는 올무가 많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고자 군사를 이끌고 추격하지만 다윗은 도망하고 피하다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왔지만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사람을 해치는 악에 빠지지 않았다. 다윗은 자기가 대항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맡기어 그가 처리하게 하였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오직  하나님께 있는 나라가 그의 나라다. 나라가 잘 되고 못되는 것은 통치자의 책임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자기 사람을 책임지고 돌보며 인도하고 공급하고 보호하기에 모든 영광은 그에게 돌린다.
내가 주의 뜻을 행하며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주장하고 다스리게 하면 내 마음이 주의 나라가 되고 생명과 평화가 넘치어 주의 영광 나타나면 내 있는 곳이 어디든지 거기 누구나 원하는 나라가 임하리라.


**What Kingdom**

Ahead of a presidential election, each candidate claims they will create a country worth living in. Will everyone live as they please, or will all people share freedom and peace together? In South Korea, freedom and democracy are in opposition to pro-North ideologies. Where is the country headed? Can one pursue only their own interests, regardless of the system? In any country, the people, territory, and governance are important. The colonial period under Japan and North Korea’s current state show the significance of governance. 

What kind of nation do Christians long for? As believers and followers of the Lord, we must understand what God desires. The first words Jesus proclaimed were that the kingdom of God was near, and through His words and actions, He showed what the kingdom of God looks like. The prayer He taught begins with the coming of God's kingdom. He spoke of God's kingdom while living in a nation dominated by Rome. It was a contrast between a nation fulfilling the emperor's will and a nation fulfilling God's will. God's kingdom is where His will, as it is done in heaven, is also done on earth. His will is life, love, peace, and freedom.

How is it fulfilled? Knowing He would be betrayed and killed, Jesus was anguished to the point of death. He prayed, "Let this cup pass from me; yet not as I will, but as You will." Afterward, He faced His capture with a bold and peaceful heart, walking toward the brutal death on the cross. This unimaginable suffering led to the realization of God's kingdom through the bitter cup of sacrifice. If we follow God's will, He will take care of what comes next.

How can anyone live without daily bread, the most basic human need? God's kingdom fulfills this need. This isn't just for Israel in the wilderness but something everyone experiences. Daily bread is provided when we obey and diligently carry out the work given to us, just as Jesus said, "My Father is working, so I am working too."

Next is forgiveness. Forgiveness ensures that relationships are not broken or blocked. The problem is the mistakes that break the standards and conditions of life. For the order, peace, and freedom of individuals and nations, we must respect others and follow the standards established for the community. But mistakes and wrongdoings happen, and when we acknowledge them, we forgive. Human forgiveness is linked to God's forgiveness. As in the parable where a man, forgiven of a large debt, refused to forgive another who owed him a little, his own forgiveness was revoked. Since all people are sinners, God desires us to forgive and accept one another.

The success or failure of life is determined by temptation and testing. Jesus overcame temptation and testing and began His Messianic mission. He countered the tests of fleshly desire, lust of the eyes, and pride with the Word of God and defeated them. David, on the other hand, gave in to temptation when he saw Bathsheba bathing from a distance, bringing great disaster upon himself.

Evil and calamities exist, and many traps can ruin life. King Saul led his army to kill David, but despite fleeing and hiding, David refrained from killing Saul when given the chance, knowing it would be evil to harm the Lord’s anointed. David entrusted the matter to God, allowing Him to handle it.

The kingdom of God is one where all power and glory belong to Him. The success or failure of a nation rests with its ruler. God takes responsibility for His people, guiding, providing for, and protecting them, so all glory goes to Him.

When I act according to the Lord’s will, allowing God, not myself, to reign and govern my heart, my heart becomes His kingdom. When His life and peace overflow and His glory is revealed, the place where I dwell will become the desired kingdom for anyone.

Tuesday, September 17, 2024

해맞이 The Suurise

해맞이 The Suurise
아침 해가 뜨는 것을 자주 보러 나가는 딸의 초청으로 새벽 일찍 프린스턴 카네기 호수변으로 갔다. 그는 이미 자리를 정하여 등불을 켜고 의자와 담요를 준비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지도하는 소그룹 인도자들도 조용하게 같이 한다. 침묵으로 해가 뜨는 쪽으로 향한다. 왜 이렇게 해를 맞으려 할까? 장면이 아름답다. 어둠을 물리치고 빛을 준다. 빛은 생명이다 등 말할 수 있으리라. 경주 불국사 석굴암의 불상은 동해에서 오르는 햇빛을 먼저 받는다. 이집트 왕들의 계곡에 위치한 왕의 묘는 왕의 시신만 아니라 사용하던  물품과 하인 종들이 같이 묻혀 있다. 가장 깊이 안전하게 묻혀 있는 왕의 시신에는 일년 한번 햇빛이 들어와 비치도록 되어 있다. 누구나 해와 빛을 요구한다. 
이집트 시내산 일출이 장관이기에 많은 여행객이 산을 오른다. 우리 부부는 산 아래 호텔에 투숙하여  밤 1시에 낙타를 타고 갈 수 있는 곳까지 한 시간을 오르고 나머지는 안내인을 따라 등불을 들고 걸어서 정상으로 올라간다. 모세의 집이 있는 곳으로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기다리던 동이 트고 반대편 산봉우리들이 나타나고 모세의 집과 산전체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난다. 나무 없는 붉은 바위산의 위엄과 위용이다. 어둠에 덮여 있던 모든 것이 해오름과 함께 자기를 자랑하듯 보인다. 오션비치나 미시건 호수의 해오름이아름다우나 어찌 비교가 되랴! 도심의 카네기 호수 해맞이도 나름대로 아름답다.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하여 나에게 네가 무엇을 보느냐 물으신다. 
해는 호수 저편 멀리 나무 사이로 얼굴을 내밀더니 점점 올라온다. 작아 보이나 해는 어둠을 쫓아내며 빛으로 사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호수의 잔잔한 물결, 환영하듯 팔 벌린 나무가지와 잎, 이슬 품은 잔디의 영롱한 빛의 속삭임, 어둠에 덮인 태초에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 하심을 동감한다. 주변의 어둠을 비치던 등불은 더 이상 효력이 없다.나의 자랑 업적이 뛰어나고 빛나보였으나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다.노를 젓는 몇 척의 배가 시합하듯 호수를 달려 나간다. 길에는 자동차가 힘차게 달리고 있다. 분주한 하루, 경쟁의 일상이 활발하게 시작한다. 해가 점점 오르며 잠간 사이 내 앞의 호수를 채우고 내게로 가까이 다가오며 광활한 하늘을 달린다. 그 속도가 시속 1670킬로이니 어떤 비행기가 그렇게 달릴 수 있으랴! 우리가 잠자며 쉬는 밤에도 태양은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 또한 가까워진 해를 나는 눈이 부시어 쳐다볼 수가 없고 눈을 들 수도 없다. 그 강한 빛 앞에 나는 고개를 숙이는 미약한 존재로 나의 허물과 부족이 그대로 들어나 할 말이 없다. 그 빛 앞에 나는 그대로 노출된다. 
창조주 하나님은 빛이요 생명이다. 그 아들 예수께서 빛이시라 그 앞에 숨길 것이 없다. 나의 부족 허물을 보여줌은 나를 정하게 하기 위험이다. 나의 죄를 깨닫고 정결함을 얻도록 그가 나의 죄의 형벌을 받고 나에게 용서와 생명의 길을 열었기에 나만 아니라 부처도 이집트 왕도 누구든지 빛이요 생명이신 예수 이외에는 생명길이 없기에 의의 태양과 빛이신 그를 사모하고 모시고 싶어한다.

**Welcoming the Sunrise**

Accepting the invitation of my daughter, who often goes out to watch the sunrise, my wife and I headed to the shores of Carnegie Lake in Princeton early at dawn. She had already chosen a spot, set up a lantern, prepared chairs and blankets and was waiting for us. Her small group of student leaders, whom she trains, quietly joined her. In silence, we all face the direction where the sun will rise. Why do we long to welcome the sunrise like this? The scene is gorgeousl. It dispels the darkness and brings light. One might say, "Light is life." The Buddha statue at Seokguram Grotto in Gyeongju receives the first sunlight rising from the East Sea. The tombs in Egypt’s Valley of the Kings are not only burial places for the kings but also contain the items they used in life and their servants, who are buried with them. A shaft is designed so that once a year, sunlight reaches the king's body, which is buried deep and safely. Everyone seeks light and the sun.

Many travelers hike up Mount Sinai in Egypt to witness its spectacular sunrise. My wife and I stayed at a hotel at the foot of the mountain and began our ascent at 1 AM, riding camels for an hour to the point where they could take us, then walking the remainder of the way to the summit with our guide carrying a lantern. Many people had already gathered at the site where there is a hut built in memory of Moses . As dawn broke, the opposite mountain peaks appeared, revealing the grandeur and beauty of Moses' house and the entire mountain. The splendor and majesty of the red, treeless rocky mountain were awe-inspiring. Everything that had been covered in darkness seemed to boast of itself as the sun rose. While the sunrise over Ocean Beach or Lake Michigan is beautiful, how could they compare? Even the sunrise over Carnegie Lake in the city has its own beauty. Through Zechariah, God asks me, "What do you see?"

The sun, barely visible between the trees far beyond the lake, gradually rises. Though it appears small, the sun drives away the darkness, revealing things as they truly are in the light. The calm ripples of the lake, the tree branches and leaves outstretched as if in welcome, the shimmering dew on the grass—these all whisper of the brilliance of light. I resonate with the moment in creation when God created light and saw that it was good. The lanterns that had illuminated the darkness are no longer needed. My pride and accomplishments, once seemingly great and bright, now mean nothing. A few rowboats race across the lake as if in a competition. Cars speed energetically down the road. A busy day, full of works to do, is well underway. As the sun continues to rise, it quickly fills the lake before me, drawing closer and running across the vast sky. With a speed of 1,670 km per hour, no plane could fly like that! Even as we sleep through the night, the sun is tirelessly at work. As the sun comes closer, I can no longer look at it because of its brilliance, and I can’t lift my eyes. In front of such powerful light, I bow my head as a weak being, exposed for all my faults and shortcomings, unable to say anything. I am entirely exposed before that light.

God, the Creator, is light and life. His Son, Jesus, is the light, and before Him, nothing can be hidden. Revealing my faults and shortcomings is not to condemn me but to cleanse me. By realizing my sin and receiving cleansing, I know and thank that He took the punishment for my sins, opening the way for forgiveness and life. Not only for me, but even Buddha and the kings of Egypt—everyone—must recognize that without Jesus, who is the light and life, there is no path to life. He, the Sun of Righteousness and the Light, is the one we long for and want to embrace.

나는 여호와라 I AM the LORD

나는 여호와라 I AM the LORD
대학을 졸업하고 60여년만에 만난 친구가 나에게 수석으로 대학입학한 것을 기억시킨다. 나는 하나님께 부끄러운 마음이었다. 고 3때 교회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며 크리스마스 행사로 대학입시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다  장기간의 기침감기로 피곤하고 어머님이 곰국을 끓였으나 입맛이 없어 먹지도 못하는데 시험 날짜가 다가왔다. 기도할 수 밖에 없다. 주님, 입시는 다가오는데 준비를 제대로 못하였습니다. 내가 주를 믿는 것을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모두 아는데 내가 시험에 떨어지면 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피입니다. 지혜와 지식의 주께서  도우셔서 합격하게 하옵소서. 주님, 이왕 입학시켜 주시려면 주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일등으로 입학시켜 주십시오 기도하고 시험에 응하였다. 입학자 명단을 일간신문에 발표하기에 날짜가 되어 신문을 보려고 도서관에 갔더니 어느 친구가 너 일등으로 입학하였더라 한다. 동명이인이겠지 하며 믿지 못하는 마음으로 신문을 보고는 확인하였다. 다급하여 기도한 것을 하나님이 그렇게 바로 응답하실 것을 상상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축하한다. 어떻게 그렇게 하였나? 물으시기에 우연히 되었겠지요 대답하고는 돌아서서 하나님께 크게 부끄러움을 느끼고 잘못을 깨달았다. 입학하자 대학신문사에서 대학별 수석합격자 면담한 것이 생각나 그 때 무슨 말을 하였을까 알고 싶어 65년이 지나 후배동료에게 부탁하여 받아보니 거기서 수석입학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언급하지도 않았다. 나는 배은망덕한 것을 다시 깨달으며 그 후에 일어난 일과 연결이 된다. 
입학을 하고서도 기침이 계속되어 의사를 보았더니 당시 국민병이라던 폐결핵초기라며 약을 쓰면 곧 나을 것이라 하더니 6개월 후에는 흔적도 없이 깨끗하다, 입학 인터뷰 기사로 알려지며 당시 신문배달 구두닦이 식모살이 하는 이들을 위한 야간 고등 공민학교에서 영어교사와 담임선생이 되어 매일 저녁  가르치고 돌보는 기쁨을 가지고  또  믿음의 동아리로 활동하며 분주하게4년이 지나갔다. 졸업하면 군에 입대하든지 중고등학교 교사로 발령되는데 내게는 해당이 되지 않았다. 갑자기 피를 토하여  쓰러진 것이다. 심한 폐결핵이다. 삶의 희망과 의욕이 사라지고 마지막이 다가온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나? 믿는 자의 창피를 피하고자 부모님은 나를 멀리 요양원으로 보내어 거기서 죽기를 바라셨다고 한다. 입원 전날 밤을 여관에서 보내는데 주께서 내게 말씀을 주신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라 하신다. 주의 명령이 아니라 나의 결단이다. 죽으러 온 자에게 죽지 않는다며 사명을 주신다. 그러면 왜 죽을병인가? 그가 나를 경책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않았다고 한다.(시118:17,18). 말씀을 받아들이니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6개월 후 퇴원하여 지금까지 건강하게 주의 하신 일을 나눈다고 한다. 지금 다시 기억되는 것은 대학 지원을 준비하며 법대에 가기로 작정한 때 주께서는 법관으로 판단하는 일은 내게 맡기고 너는 내 사랑을 전하면 어때? 하시는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주의 사랑, 주의 영광을 전하는 것을 주님은 원하신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으로 고생하는 자기 백성을 구하라고 모세를 부르시며 자기 이름을 여호와라 하시며 능력과 기적으로 해방시키고 자기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알리고  인정받기를 바라셨다. 인정과찬양이 그의 영광이요 기쁨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나는 여호와라 하신다. 이름만 아니라 하시는 일로 그는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여호와 하나님이시기에 나는 그를 인정하고 찬양한다. 

I AM the LORD (Jehovah)
A friend I met for the first time in over 60 years after graduating from college reminded me that I had been admitted to college as the top student. I felt ashamed before God. When I was in my senior year of high school, I was serving as the president of the church's student assembly and was unable to properly prepare for college entrance exams due to many activities including the Christmas event. On top of that, I was exhausted from a long-term cold amd cough, and my mother had made meat soup, but I had no appetite and couldn’t eat, while the exam date was fast approaching. I had no choice but to pray. "Lord, the entrance exam is approaching, but I haven’t been able to prepare properly. My friends and teachers all know that I am a Christian. If I fail the exam, it is not I but You that will be ashamed. Lord, you are the Lord of wisdom and knowledge, please help me to pass. Lord, once You are going to help me get into college, please allow me to be admitted at the top ranking for Your name and glory." After praying, I took the exam.

The day the list of admitted students was announced through the daily newspaper, I went to the library to check the paper, and a friend told me, "You were admitted as the top student." I didn’t believe it, thinking it must be someone with the same name. But when I checked the paper, it was me I couldn’t imagine that God would answer that quickly to my desperate prayer. When a teacher at school congratulated me and asked how I had managed to do it, I responded, "It must have been a chance." As I turned away, I felt deeply ashamed before God and realized my mistake.

I remembered the interview with the university newspaper where they interviewed the top students from all colleges. I wanted to know what I had said back then 65 years ago about my privilege admission, I asked a junior colleague to retrieve the paper for me. When I read it, I realized that I had not even mentioned that my admission as the top student was by God’s grace. I realized once again how ungrateful I had been, and it connected to what happened afterward.

Even after entering college, my cough persisted. When I saw a doctor, he diagnosed me with early-stage tuberculosis, which was considered a national disease at the time. The doctor said that with treatment, I would soon recover, and six months later, there was no trace of the illness. As the news of my admission interview spread, I was recruited as an English teacher and homeroom teacher at a night school for underprivileged poor youth, such as newspaper sellers, shoeshine boys, or housemaids. Every evening, I taught and cared for them with joy and love, while also playing a part in a Christian club. The four years of college life passed quickly. Upon graduation, I was supposed to either enlist in the military or be appointed as a high school teacher, but neither applied to me. Suddenly, I collapsed, coughing up blood. It was severe tuberculosis. Hope and desire for life disappeared, and the end seemed near. How could this happen? My parents, wanting to avoid the shame of having a Christian believer suffer, sent me to a distant sanatorium, hoping I would die there.

The night before I was admitted to the sanatorium, I stayed at an inn. That night, the Lord spoke and gave me a word: "I shall not die but live, and proclaim the deeds of the Lord." (Psalm 118:17) It was not a command from the Lord, but my resolution. To someone who had come to die, a word of promise of life and mission was given. Then why this fatal illness? "Though He has chastened me severely, He has not given me over to death." (Psalm 118:18) When I accepted this word, I was filled with joy and hope. Six months later, I was discharged, and to this day, I have tried to share what the Lord has done for me

As I remember now, when I was preparing for college and had decided to study law, the Lord approached and proposed, "How about leaving judging as a judge to me and spreading My love yourself?" I accepted this suggestion. The Lord desires us to spread His love and deeds. When God called Moses to deliver His people who were suffering as slaves in Egypt, He revealed His name as the LORD (Jehovah) and delivered them with his power and miracles. He wanted to make Himself known and acknowledged as Jehovah God. Acknowledgment and praise are His glory and joy. Even now, God says, "I AM the LORD." Not only His name but also His deeds show that He is the one and only Jehovah God, incomparable to anything else. Therefore, I acknowledge and praise Him.

기도와 노동 Ora et Labora

기도와 노동 Ora et Labora 
9월 첫 월요일은 노동절 공휴일이다. 노동자들이 땀을 흘리며 육체 정진 영적인 노동을 하여 모두가 잘 살게 되는 것을 인정하고 이들의 수고를 치하하며 하루를 쉬게 한다. 노동은 힘든 노고이기에 누구나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특히 3D곧 어렵고 추하고 위험한 (difficult dirty dangerous) 일은 피하고자 한다. 일을 존중하나 막일손이 부족한 미국에서 멕시칸들의 노동이 없다면 일반생활이 얼마나 불편할까? 백의민족 우리 문화도 흰옷을 입고 땀을 흘리며 흙에서 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래 전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쉬는 시간에 정구 치는 것을 갓을 쓰고 담뱃대를 문 당시 양반들이 구경하다가 그들이 땀을 흘리자 여보 선교사 양반 왜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하오? 우리 집 하인에게 시키시오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땀을 흘리고 힘들게 하는 일은 하인의 담당이다. 
그러나 땀 흘리고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정복하고 생물들을 다스리라고 사람에게 명령 하신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요 특권으로 하나님의 창조적 일에 함께 하여  이루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자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평생토록 땀을 흘리고 수고하는 노동을 하여야 먹을 것을 얻을 것이라고 하나님이 처방하였다. 사람이 생명을 누리고 사는 기본 조건은 육체나 정신 영의 일과 노통이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함이라 하시며 쉬지 않고 일하셨다. 그는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며 사람을 얽어 매는 많은 속박을 풀어 주셨다.  이런 일을 위하여 그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른 새벽 한적한 곳에서 때로는 높은 산에서 또는 밤을 새워 철야기도로 아버지의 뜻과 힘을 의지하여 일을 하셨다. 함께 일할 제자들을 선택하여 함께 있게 하고 내어 보내 주께서 하시는 일을 하게  한 것도 그러하다. 먼저 주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가진다. 주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훈련하는 것으로 기도가 중요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자 주께서는 기도가 아니고는 될 수 없는 일이라 하였다. 일하기 전에 기도하고 기도하고는 일을 하기에 기도가 노동이요 노동이 바로 기도라 본다. 
6세기의 성자 베네딕트는 자기가 훈련하는 수도사들의 삶의 원칙을 기도와 노동(Prayer and  Labor, 라틴어로 Ora et Labora) 으로 삼았다. 주를 따르는 자들의 첫째 의무는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주와 함께 하는 시간이고 다음은 땅에서 사는 동안 먹어야 하기에 이를 위하여 밭에서 또는 길쌈을 하며 땀 흘리는 노동을 하는 것이라 기도와 노동의 균형을 이루게 하고 지금도 그것을 수도원의 규율로 정하고 있다.
죄와 죽음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 죽음이 얼마나 고통일까? 예수께서 심히 고민하여 죽을 지경이라 하시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얼굴의 땀이 핏방울 같았다. 그리고 담대하게 십자가로 나아가  아버지의 뜻을 기쁨으로 다 이루었다. 땀 흘리는 기도는 힘든 노동이요 땀 흘리는 노동이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면 그 얼마나 큰 축복이요 특권이겠는가!



**Prayer and Labor - Ora et Labora**

The first Monday of September is a public holiday known as Labor Day. It’s a day to acknowledge and appreciate the physical and spiritual labor of workers, who sweat and strive to ensure a better life for all, and to give them a day of rest. Labor is hard work, so naturally, people tend to avoid it. Especially jobs that are difficult, dirty, and dangerous—the so-called “3D” jobs—are often shunned. While work is respected, imagine how inconvenient everyday life in America would be without the labor of Mexican workers, especially given the shortage of manual laborers. 

In Korean culture, too, the notion of wearing white clothes and toiling in the fields is not easy. There's an old story about missionaries who came to Korea long ago. While they were playing tennis during a break, some yangban (Korean nobility), who wore traditional hats and smoked long pipes, watched them. When they saw the missionaries sweating, they asked, “Why are you working so hard, sir? Why don’t you have one of our servants do it for you?” For the yangban, sweating and hard work were tasks for servants.

However, working and sweating is a gift from God. When God commanded humans to be fruitful, multiply, subdue the earth, and rule over all living creatures, it was a blessing and a privilege—a way to participate in God’s creative work. When humanity turned away from God, the earth produced thorns and thistles, and God decreed that people would have to toil and sweat for their food throughout their lives. The basic condition for human life is the labor of the body, mind, and spirit, through which God’s will is accomplished.

Jesus came into the world so that people might have life and have it more abundantly. He worked tirelessly, preaching the gospel, healing the sick, casting out demons, raising the dead, and breaking many forms of bondage that held people captive. To accomplish this work, He spent time in prayer before God. Whether early in the morning in a quiet place, on a high mountain, or through all-night prayer, He relied on the Father’s will and strength. He also chose disciples to be with Him and sent them out to do the work He was doing. The first priority was to spend time with the Lord, listening to His word, learning, and being trained in prayer. When the disciples couldn’t heal a demon-possessed boy, Jesus told them that such things could only be done through prayer. Thus, prayer before work and work done in prayer become one—prayer is labor, and labor is prayer.

In the 6th century, Saint Benedict made “Prayer and Labor” (Ora et Labora in Latin) the guiding principle for the lives of the monks he trained. The first duty of those who follow the Lord is to pray, meditate on the Word, and spend time with Him. The next is to labor, whether in the fields or in weaving, to sustain life on earth. This balance between prayer and labor is still maintained as the rule of monastic life today.

How great was the suffering of the crucifixion, endured to save humanity from sin and death? When Jesus prayed in the Garden of Gethsemane, He was so deeply distressed that His sweat became like drops of blood. Yet, He boldly went to the cross and joyfully fulfilled the Father’s will. If laboring in prayer and laboring to accomplish God’s will is a blessing and privilege, how great indeed is that blessing!

너는 살아라 Live!

너는 살아라  Live!
코비드로 세상은 역사상 처음으로 폐쇄되는 경험을 하였다. 가까운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서 두려움으로 피하고 조심하였다. 그러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들이 많다. 한국에서 2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고 한다. 미국의 록밴드 메탈리카의 제임스 헤트필트는 스트레스에 눌려 자살을 시도하다가 살아라는 음성을 듣고 돌아섰다고 한다. 삶이 힘들고 우울과 외로움이 심하고 정신장애가 겹치어 죽고 싶은 충동을 받을 때가 있지만 살아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하나님은 생명이라 그가 창조한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셨다.사는 것이 축복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시작에 대하여 돌보는 이 없이 길가에 버려진 피투성이 태아로 발짓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라 하며 그를 안고 살려 자라게 하였다. 사방이 깜깜한 시련과 고통이라도 하나님은 살아라 말씀하고 붙들어 주신다.
살려면 삶의 힘을 얻어 자라고 일을 하기 위하여 적절하게 먹고 움직이며 활동하고 쉬며 자는 시간을 가지고 동료를 만나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살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름이다. 떡으로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다. 에덴동산의 아담에게 모든 것이 허락되었으나 한 가지 금지된 것은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것이다. 서로 옳다 그러다 판단하면 생명을 해치기에 서로 받아주고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이 자라고 열매 맺게 하였더니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자 하나님은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돌아서서 회개하고 살아라 하신다. 예수님의 첫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가 알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그것이 생명이요 천국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왜 살아라 하시나? 할 일이 있어서다. 각자에게 주어진 일이 있다.생명의 근원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며 받아드리는 일이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을 두는 것이다.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으로 대치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영원하기에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리는 것이다. 시인은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유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하는 것이라 한다. 그는 나와 함께 하여 나를 지키시고 나의 필요를 채우시며 나를 어려운 고통과 환난에서 구하시고 아들 예수를 보내시어 나의 죄를 용서하고 죽음에서 건져 영생을 주셨다. 내 주변에서 또는 멀리 가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가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말하여 생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예수께서 내가 다른 마을에도 가서 복음을 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다고 하신다.  생명 있을 동안에 주어진 사명이다. 
이집트에서 히브리인의 아들로 태어난 모세는 남자 아이는 모두 강에 던져 죽이라는 왕의 명령에 따라 강에 버려졌지만 너는 살아라는 왕의 왕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공주가 건져내어 왕궁에서 양육하고 광야에서 훈련 받아 80세에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해방시키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라는 사명을 주신다. 40년이 걸려 사명을 이룬 때 그의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지만 그의 사명이 끝났으니 이제 하나님과 함께 영원을 살게 하고자 그들 불러 가셨다. 모세는 먼 훗날 엘리야와 함께 변화산에서 예수님을 만나 인간 해방의 길을 의논하고 우리 구원과 영생의 길을 열었으니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Live!**

The world experienced its first-ever shutdown in history due to COVID. Watching loved ones die, people avoided and were cautious out of fear. However, many choose death for themselves. In Korea, the leading cause of death among people in their 20s is said to be suicide. James Hetfield of the American rock band Metallica attempted suicide under the pressure of stress but turned back after hearing a voice telling him, Live. Life can be hard, with intense depression, loneliness, and overlapping mental disorders, leading to suicidal impulses, but the voice of God telling us to live can be heard.

God is life, and He blessed those He created with the command to be fruitful and multiply. Living is a blessing. When Israel began, God took and nurtured a bloody newborn abandoned on the roadside, telling it to live, even though it was covered in blood. Even in the darkest trials and sufferings, God tells us to live and holds us up.

To live, we must gain the strength to grow and work, and must eat, move, and rest appropriately, meet companions to be with.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o follow the word of God, who commands us to live. Not just by bread alone, but by the word of God, which is the nourishment of life. In the Garden of Eden, Adam was allowed everything except one thing: he was not to eat from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Judging what is right or wrong harms life; thus, God’s word tells us to accept one another and love each other. When Israel grew and bore fruit but then betrayed and left God, He asked, "Why do you choose to die? Turn back, repent, and live." Jesus' first words were,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near." Knowing our relationship with God and returning to Him is life and heaven.

Why does God tell us to live? Because there is work to be done. Each person has work given to them. It is to know, acknowledge, and accept God, the source of life. What God hates most is for his people to set up idols other than Himself. Sometimes we may want to replace the invisible God with something visible, but what is visible is temporary, while the invisible God is eternal, so we praise God. It is to tell others who God is and what He has done. The psalmist says that the reason he is alive and not dead is to proclaim what God has done. He is with me, protects me, provides for my needs, rescues me from suffering and hardship, and sent His son Jesus to forgive my sins and save me from death, giving me eternal life. By telling people around me, or going far away to proclaim who God is and what He has done, life is spreaded. Jesus said, "I must go to the other villages too, to preach the gospel, for that is why I have come." It is the mission given to us while we have life.

Moses, born as a Hebrew in Egypt, was abandoned in the river under the king’s order that all male babies be thrown into the river to die. But the princess rescued him, raising him in the palace under the command of the King of Kings, God, who said, "You shall live." He was trained in the wilderness and at the age of 80 was given the mission by God to liberate His people and lead them to the Promised Land. When he accomplished his mission after 40 years, his eyes were not dim, and his strength had not weakened, but his mission was over, so God called him to live with Him forever. Moses, along with Elijah, met Jesus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long after, discussing the path of human liberation, opening the way for our salvation and eternal life. How blessed it is to be alive!

해방 절기 Liberation Feast

해방 절기 Liberation Feast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라 
이 날이 40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 길이 지키세 길이 길이 지키세
1945년 8월15일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것을 경축하여 정인보 선생이 작사한 광복절 노래다. 독립을 위하여 뜨거운 피와 땀을 흘리던 많은 어른 친구들이 이 날을 보지 못했으나 나라를 다시 찾아 자유를 누리는 국민은 새나라의 흙을 만지며 꽹과리 울리고 바닷물처럼 춤을 추는 축제를 길이 지키자고 한다. 정부가 수립되고 1950년 4월26일 이를 광복절 노래로  확정하였으나 두 달 후 625에 일어난 전쟁으로 이 노래가 알려지고 불릴 기회조차 놓쳤고 전정과 기아에 시달리며 살기가 힘들어 해방과 자유의 감격과 즐거움을 누릴 틈도 없었다.  더욱이 해방은 국민의 소원이었지만 쟁취한 것이 아니라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고 항복함으로 주어진 것이기에 처음에는 축제였으나 점점 잊어버리는지도 모른다. 해방이 없었다면 어떠할까? 오늘의 한국과 국민이 있을까? 땅과 국권만 아니라 나와 나의 인권도 없을 것이 다. 그러기에 해방 절기를 감사하며 축하하고 즐거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에서 유대인만큼 고난을 많이 겪은 민족도 없지만 그들만큼 세계 역사에 기여하는 민족도 드물다. 그들 조상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역하며 신음하고 부르짖었다. 하나님이 모세를 세워 이집트에 내리는 여러 재앙 중에 유대인들은 양을 잡고 떡을 먹으며 잔치하는 가운데 이집트의 초태생이 모두 죽음으로 그들은 쫓겨나듯이 해방되며 그들은 대대로 그날을 유월절로 지키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들 스스로 해방을 쟁취할 수 없어 고통으로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그들에게 해방을 선물로 주셨기에 유월절로 그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의 능력과 사랑을 찬양하라는 것이다. 3500년이 지난 지금도 유대인은 유월절을 지키며 하나님을 높이고 민족적으로 단합이 된다. 내가 목회할 때 한 여성도가 유대인과 결혼하겠다고 하여 결혼 예비교육을 하며 종교가 다른데 둘의 생활과 자녀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물었다. 신랑 될 사람이 자기는 개혁파라 부인이 지키는 크리스마스 부활절 등 기독교 절기에 참여할 것이며 아내 될 사람도 자기의 절기에 참여하고 함께 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다고 한다. 결혼예식은 유대교 랍비와 내가 공동으로 집례하여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하였다.
해방 절기가 중요하지만 해방을 가져온 힘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찬양하는 것이 핵심이다. 유대인은 세계에서 가장 고난을 많이 겪은 민족이지만 그들은 유월절 장막절 같은 절기를 지키며 능력과 사랑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찬양하기를 쉬지 않기에 하나님이 그들과 같이 하여 세계에 기여하며 미국의 과학 교육 언론 경제의 중심적 힘을 가지게 하고 있음을 안다. 고난으로 훈련 받으며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들을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다. 
해방 중에 가장 큰 것은 영원한 죽음에서의 해방이다. 오만과 죄의 종으로 죽음을 안고 신음하는 인간 곧 나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었기에 누구든지 그를 받아드리고 믿기만 하면  죄와 죽음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생명과 자유를 누리게 하신다. 주일마다 교회로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은 나를 죽음에서 해방시킨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을 인정하고 찬양함으로 나의 삶을 새롭게 하고 주의 힘을 얻는 것이라 참으로 감사와 기쁨을 가진다. 



성령을 받았느냐? Received the Holy Spirit?

성령을 받았느냐? Received the Holy Spirit?
어느 일이나 처음 시작할 때는 배우는 기간이 있다,. 나는 아내의 소원을 따라 목회하지 않고 교수가 되려고 미국에 공부하러 왔다가 한 과정을 끝내고 교회의 청빙을 받아드릴 형편이었다. 목회를 모르기에 목회를 하며 목회를 배우고 싶었다. 다른 한인교회가 없어 저녁 예배가 있는 미국교회를 찾다가 사도 오순절교회 둘을 알아 시간이 될 때 번갈아 가며 참석하여 목회를 배우기로 하였다. 
어느 저녁 한 교회에 갔더니  강사로 와서 설교하던 목사가 나를 가리키며 저기 있는 한국 목사 너 성령 받았느냐 한다 그럼요! 하니 너 방언을 말하나? 한다. 아니요! 하였다. 당시 한국에서 방언은 이상한 사이비 현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그렇다면 너는 성령 받지 못하였다! 단언하!는 것이 아닌가! 내게는 그 목사를 향하여 저게 목사인가 하는 분노가 일고 동시에 성령 받지 못한 목사가 목회를 하다니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설교  후 교인들은 앞으로 나가 서로 위하여 기도하기에 우리 부부도 나가니 담임목사가 나에게 마이크를 주며 한 마디 하라고 한다. 나는 장로교 목사 답게 고전 12장에는 방언을 포함한 성령의 9은사가 나오는데  왜 방언으로 성령 받았다 받지 않았다 판단하나 하였더니 내 말이 끝나자 그들은 나를 둘러 서서 기도한다. 감사한 마음이 든다. 성령 받지 못한 목사 성령 받게 해달라는 것인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역사는 목회만 아니라 신앙에 필수이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를 믿고 말씀을 깨닫고 가르치고 설교하며 교인들을 심방하고 상담하기에 나는 이미 성령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내 교회에 돌아와 기도하는데 음성이 들린다. 종형아 너 성경을 믿나? 예 제가 믿기에 그 말씀을 붙들고 살지요. 너 성령을 믿나? 예 믿어요 하니 그렇다면 왜 방언은 믿지 않나 하신다. 내게 큰 충격이다. 생각하지 않던 부분임을 인정하고. 잘못했습니다. 이제부터 믿겠습니다 대답하였다. 
그 후 참석한 다른 교회 목사가 교인들에게 방언으로 기도할 사람은 기도하셔요 단 통역이 있을 때만 하십시오 하자 한 사람이 방언으로 기도한다. 바로 다른 사람이 통역을 한다. 참으로 질서와 평화가 있는 것을 보며 한국에서 보던 것과는 아주 다른 경험이다. 방언은 언어가 다른 사람이 알아듣는 것이 있고(행2)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방언(고전14)이 있으나 교회에서는 대개 후자가 통역 없이 통용되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믿는 자를 만나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는가 물었더니 그들은 성령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예수를 전하여 믿게 하고 기도하니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그들은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다. 다른 은사와 달리 방언은  바로 나타나기에 그것을 성령 받은 증거라고 말하는 것이라 이해하게 된다.
성령 사역과 방언을 믿으면서 내 믿음과 목회가 달라지고 내가 아니라 성령께서 직접 역사하시는 것을 알게 되고 이민목회를 감당한 것은 성령의 도우심이다.  놀라운 일은 3년 목회후에 신학교수가 되고자 박사과정에 돌아가려고 할 때 교수를 원했던 아내가 말한다. 목사가 목회하면 되지 박사공부를 더하면 무엇해요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순종하며 받아들이자고 하다. 오직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 주께 감사사고 찬양한다.

"Did you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you start anything, there is a period of learning. I came to the United States to study with the intention of becoming a professor, not a pastor, following my wife's wishes. After completing one course, I found myself in a situation where I had to accept a call to pastoral ministry. Since I knew nothing about pastoral work, I wanted to learn about it by actually doing it and from other pastors.. As there were no other Korean churches, I decided to attend American churches with evening services. I found two Apostolic Pentecostal churches and planned to alternate between them as time allowed, to learn about pastoral work. 
One evening, I went to one of these churches, and the pareacher, who was a guest speaker, pointed at me and asked, 'You, the Korean pastor over there, have you received the Holy Spirit?' I replied, 'Of course!' Then he asked, 'Do you speak in tongues?' I said, 'No!' At that time, speaking in tongues was a strange, cult-like phenomenon in Korea. He then declared, 'If that's the case, you have not received the Holy Spirit!' Anger welled up within me, wondering if he could really be a pastor, and at the same time, I felt ashamed that a pastor who hadn't received the Holy Spirit was doing ministry. After the sermon, the congregation went forward to pray for each other, so my wife and I also went forward. The pastor  of the church handed me the microphone and asked me to say a few words. I, as a Presbyterian pastor, said that in 1 Corinthians 12, there are nine gifts of the Holy Spirit, including speaking in tongues, so why judge whether someone has received the Holy Spirit based on whether they speak in tongues or not? As soon as I finished speaking, they surrounded me and began to pray. I felt grateful. Were they praying for the pastor who had not received the Holy Spirit to receive it? 
The work of the Father, Son, and Holy Spirit is essential not only in ministry but also in faith. I believed I had already received the Holy Spirit, as I had been inspired by the Holy Spirit to believe in Jesus, understand the Word, teach, preach, visit church members, and counsel them. 
When I returned to my church and prayed, I heard a voice: 'Do you believe in the Bible, Jong-hyeong?' I responded, 'Yes, I believe, and I live by that Word.' 'Do you believe in the Holy Spirit?' 'Yes, I believe.' Then, the voice asked, 'Why do you not believe in speaking in tongues?' I was deeply shocked. I admitted that this was something I had never considered and answered, 'I was wrong. From now on, I will believe.' 
Later, at another church, the pastor said to the congregation, 'If anyone wants to pray in tongues, please do so, but only when there is an interpreter.' Someone began praying in tongues, and immediately another person interpreted. Seeing such order and peace was a very different experience from what I had seen in Korea. There are tongues that are understood by people who speak different languages (Acts 2), and there are tongues of prayer offered to God (1 Corinthians 14), but in most churches, the latter was practiced without interpretation. When Paul met believers in Ephesus, he asked them, 'Did you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you believed?' They didn’t even know that the Holy Spirit existed. After sharing Jesus with them and praying for them, the Holy Spirit came upon them, and they spoke in tongues and prophesied. Unlike other gifts, speaking in tongues manifests immediately, so I came to understand that it is often seen as evidence of receiving the Holy Spirit. 
As I came to believe in the Holy Spirit’s work and speaking in tongues, my faith and ministry changed. I realized that it wasn’t me but the Holy Spirit who was directly at work, and that it was the Holy Spirit’s help that enabled me to carry out my ministry among immigrants. The remarkable thing was that after three years of ministry, when I was about to return to the doctoral program to become a seminary professor, my wife, who had originally wanted me to be a professor, said, 'Why pursue more doctoral studies? A pastor should just do ministry.' We agreed to accept the opportunity God was giving us and obey. It was all the work of the Holy Spirit, and I give thanks and praise to the Lord."



서로 사랑하자 Love One Another

서로 사랑하자 Love One Another
결혼 60년을 맞은 부부에게 어떻게 결혼하였는가 물으니 부인이 말한다. 교회예배에서 누군가 기도하는 목소리가 너무 좋아 마음에 닿는데다 그 내용이 자기가 할 기도를 대신하는 것이라 참으로 감사하고 좋았는데 얼굴을 알지 못하다가  교회에서 개인 새벽기도를 하며 만나게 되고 마음이 통하여 사랑이 일어나 결혼하였다고 한다. .
반면 좋아하지 않다가 상대를 알면서 좋아하고 사랑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의 남북이 나누어지고 이념과 체제가 다른 대립이라 좋아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한 피 받은 한민족임을 생각하면 가까움을 느낀다.  80년대 초까지는 남한보다 잘 살던 북한이 점점 가난해지다가 기근으로 나라 전체가 고난의 행군을 하던 1997년에 시카고 우리민족 서로 돕기는 모금한 10만불로 그들을 돕기로 결정하였다. 대표자 대신 부대표인 내가 책임을 맡아 심양 주재 선교사가 구입한 양곡 480톤을 객차로 먼저 보내고 우리 4명팀은 기차로 평양에 도착하였다. 양각도 호텔에 안내되고 우리는 양식을 배달하려는 목적이었으나 양식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안내인이 알아보는 동안 나는 한 팀원과 같이 빠져나가 평양시내를 다니며 구석 구석 삶의 현장을 보고 뼈저리는 일이 많았다. 배고픈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 어버이 수령 모독이라 배가 아프다고 해야 하였다. 수령은 이밥에 고깃국 기와집을 공약했지만 오히려 백성의 가진 모든 것은 사라지고 평양을 벗어나면 50년대 한국 모습이라 가슴이 아프다. 
주일을 맞아 우리 팀은 김일성 외가 곳 칠골교회에서 예배하다. 평양 봉수교회에는 빌리그래함 사모 일행이 방문하고 있어서다. 두 교회가 있어 종교 자유를 보여주지만 외빈이 있을 때만 모인다고 알려졌다. 내게 설교하라고 한다. 외빈에게 설교하라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 특별 대우였다.  예배시작 시간 10분 늦게 도착하자 목사 부목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안내인을 책망한다. 바로 강단에 올라가며 설교 본문을 알려주고 예배가 시작되었다.  찬송이 은혜롭고 팀의 한명이 기도하는데 간절한 반응이 있다. 목사가 요일4:7-12을 말하자 교인들은 일제히 성경을 펴고 목사가 봉독하며 은혜로운 부분은 반복하여 읽고 강조하는 것을 보며 나는 충격을 느낄 정도로 이들이 외형만 아니라 참으로 진지한 것을 보았다 말씀과 기도 찬양이 있는 곳에는 성령이 역사하는 것을 믿는다. 
나는 우리 팀의 방문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라고 하며 하나님은 사랑이라 우리가 그 사랑을 받았기에 받은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위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라 믿기 어렵기에 그는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인 아들 예수로 오시어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그는 지혜 능력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하여 모든 문제를 돕고 필요를 채우며 섬기신다. 그는 죽음의 원인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스스로 죄의 형벌을 받아 대신 죽어 화목제물이 되고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는 죄의 용서와 영생을 주시는 것이 참 사랑이다. 누가 듣고 믿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날 수 있을까? 북한 동포도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았기에 우리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여 찾아가 그 사랑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제는 사랑을 받는 자로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사랑받은 자의 올바른 삶이 아니겠나!

강아지 똥 Doggie Poo

강아지 똥  Doggie Poo
길을 걷다가 간혹 강아지 똥을 만나면 이를 피하고자 한다. 이 강아지 똥을 권정생은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아무런 가치와 쓸모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던 강아지 똥이 민들레 씨를 만나 자기를 주며 그것이 자라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자 그는 자기의 가치와 목적을 알게 된다. 이 이야기를 내가1978년 수난주간 목요일 예배에서 사용하였다. 은혜를 받고자 사순절 금식을 하며 절정이 되는 주간 주께서 마지막만찬을 하신 목요일 저녁 성도들의 발을 씻어주고 성찬식을 행하고 설교에서  강아지 똥 이야기를 하며 주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가 살아난다는 말씀으로 나 스스로 은혜가 되었다. 
예배 후 아내를 집에 데려다 주면서 목회초년생 답게 예배가 어떠하였는가 물으며 은혜로웠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아내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금식하고 나는 교회에서 금식하며 준비한 예배였으니 당연히 은혜가 되었을 것이다. 사모의 응답은 그걸 설교라고 하는가? 거룩한 예배에서 강아지 똥을 말하다니 말이 되는가? 나를 충격과 미궁으로 빠뜨렸다. 집에서 목욕을 하고 싶었지만 목욕은 무슨 목욕! 돌아가 기도하라고 내 몰아친다. 이런 잔혹한 일이 또 있을까? 자고 있는 아이들 얼굴도 보지 못하고 쫓겨나듯 교회로 돌아갈 때 금식의 은혜는 사라지고 마음에 어둠이 내리 덮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기도도 나오지 않고 아무런 의욕이 없어진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밤이 지나 성금요일 태양은 올라 왔으나 내 영혼은 가장 어두운 칠흑 같은 밤이다.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날 대낮에  임한  캄캄함이 이정도였을까? 
토요일이 다가온다.  어떻게 부활주일을 맞이하나? 그래도 부활주일은 오고 있어 컴퓨터가 없던 시기 원지를 긁어 주보를 만들고 있는데 한 미국목사가 전화로 아직도 교회에서 금식하나 하면서 찾아오겠다고 한다. 누구를 만나고 싶지도 않아 오고 싶으면 오라 하였더니 그가 11시 경에 왔다. 본당으로 들어가 나란히 앉아 무슨 말을 하였는지 기억이 되지 않으나 서로 대화하던 중 내가 강대상 쪽을 보니 그곳에는 인자하신 주님이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순간 내 속에서 기쁨과 평안이 올라오며 어둠은 사라지고 밝은 빛이 찾아왔다. 옆의 목사에게 너는 내 친구다 너를 사랑한다고 하며 크게 포옹을 하였다.
아내에게 전화하니 그는 고민에 빠져 있다. 내게 일어난 일을 말하며 저녁 아이들이  잠든 후에 교회로 데리고 왔다. 그가 기도하는데 11시 누군가 옷자락 펄럭이며 앞문으로 들어와 강단으로 가서 서는데 너무 눈이 부시어 처다 볼 수 없었지만 순간 주님임을 알고  주님 사랑합니다 크게 고백하며 기뻐 춤을 추듯이 변화가 왔다. 그날 아침 그는 부활하신 주님과 베드로의 대화 말씀을 읽는데 백낙희의 딸 남선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큰 글자로 나타나는데 주님 저는 주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대답함으로 덮친  마음의 어둠과 무거움이 벗어지고 주를 사랑하게 되었다.
3월 26일 흰 눈이 내린 올바니 한인교회의 부활주일 새벽, 보도의 눈을 쓸고  새벽예배에 나아오는 성도들을 맞이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증거하는 감격이 내 삶의 방향을 전환한 계기였다. 
강아지 똥으로 덮친 무덤 같은 어둠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남으로 주어진 새로운 삶의 가치와 목적보다 더 큰 축복이 있을까!

주는 나의 비전The Lord is my Vision

주는 나의 비전The Lord is my Vision
고등학교는 한 사람의 인생 길을 정하는 중요한 기간이다. 진로를 생각하며 전공과목과 대학을 정하거나 아니면 사회로 나간다. 인생의 꿈 비전 소망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내 외손자는 게임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꿈이라 마지막 학년이 시작되기 전에 이에 맞는 대학을 찾고자 부모와  함께 대학 다섯을 방문하고 담당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를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은 꿈이 있지만 하나님이 나의 비전이라 한다. 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Be thou my vision 이 찬송은 영어 세계에서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Amazing Grace와 같이 많이 불리운다. 이는  아일랜드 (Ireland)의 성자 패트릭(Patrick)을 생각하며 작사 작곡되었다. 패트릭 은 영국에서 16세에 아일랜드 해적에게 납치되어 종으로 팔리고 양을 치는 일을 하였다.  그는 예수를 믿기에 여러 해를 열심히 일하다가 탈출하여 고국으로 돌아가고 프랑스에 가서 공부도 하였다. 어느 날 아일랜드 사람이 나타나 젊은이여 와서 우리와 함께 살자고 하는 환상을 보았다. 그는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고 야만과 해적의 아일랜드 복음화를 위하여 헌신하고  최선을 다하여  선교하였다. 
433년 부활주일에 아일랜드 왕은 그들의 신Druid 축제를 위해 모든 물을 끄고 켜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이교신은 어둠을 가지고 온다.  패트릭은 아일랜드 제일 높은 Slane산 에 올라가 횃불을 높이며 예수께서 세상의 빛이라는 것을 밝혔다, 왕명을 어기며 생명을 걸고 빛이신 예수를 증거하였다. 그는 결국 아일랜드를 복음화하고 후에 성자 칭호가 주어졌다. 그의 비전 꿈 소망은 오직 예수 뿐이었다.
누군가 패트릭을 생각하며 Slane산이라는 곡을 썼다. 6세기에 아일랜드의 시인 Dallan Forgaill이 패트릭을 기억하고 시를 썼다.  1905년 25세의 대학생 Mary Byune이 이 시를 발견하여 영어로 번역 도선관에 소장하고  1917년 아일랜드 연구가 Eleanor Hull이 Slane곡과 시를 연합하고  이는 1919년 발간 찬송가에 수록되어 사랑받는 찬송이 되었다. 주께서 나의 비전 소망임을 말한다.
사랑하는 시카고를 떠나 딸들의 소망을 따라 새로운 곳에 와서 어떻게 살까? 여기서의  꿈과 비전은 무엇일가? 고등학교 시절 주님이 주신 비전을 살리라. 고교 3학년때 대학 진학을 앞두고 선생님의 추천과  아버님의 소원을 받아 법대에 가기로 하고 준비하였다. 어느 날 기도하는데 음성이 들려오고 대화가 이루어지다. “종형아 법대에 간다고?” “예 그러려고 합니다”. “법대에 가면 무엇하는데?” “졸업하고 과정을 거쳐 결국은 판사가 되겠지요” “판사는 무엇하는데?” “송사에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여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러다고 하겠지요” “그래. 그렇다면 판단하는 일은 내게 맡기고 너는 내 사랑을 전하면 어떻겠어?”  항거하기 어려운 제안이다.  “알겠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너무나 놀랍게도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이다.  내 꿈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꿈이 나타난다. 하나님을 나의 비전으로 삼는 시간이다.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이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었다. 그렇다면 무슨 공부를 할가? 자문하고 알아보니 목사가 되는 길이라 신학 공부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사대 영문과를 택하고 입학하며 발탁되어 무산아동을 위한 야학에서 주의 사랑을 나누는 삶이 시작되었으니 이를 계속할 것이다.

Saturday, September 7, 2024

홈 베이스 Homebase

홈 베이스 Homebase
야구에 홈이 있다. 투수가 볼을 던지면 주자는 치고 홈에서 출발하여 일루를 향하여 달리고 2루 3루를 지나 홈으로 향하는데 그 과정은 본인만 아니라 관중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투수와  포수 그리고 수비는 주자가 홈에 이르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주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린다. 신경과 힘을 겨루다가 일단 주자가 홈에 이르면 관중의 박수와 갈채를 받지만 본인도 만족과 안도감을 가지고 마음을 놓고 쉬며 힘을 모아 다음 타순을 기다린다. 홈을 떠나 달리는 길이 힘들고 어려워도 홈이 있다는 것이 큰 위로요 소망이 된다. 
사람에게는 홈이 필요하다. 삶과 일에 시달리고 힘들어도 홈은 휴식이요 다음 날을 위한 준비가 된다. 집과 같은 곳이 없다.  아내와 자녀가 있는 집, 아내가 가꾼 아름다운 정원은 풍성한 나의 휴식처였다.  목회하며 격무에 시달리고 또한 관계의 불편함으로 힘들 때가 있지만 홈에 이르면 감사와 자유 평안이 있고 새로움으로 전환된다. 나의 몸과 마음을 풀어주고 회복시키는 홈이다.
은퇴 후 전환기 교회에서 사역할 때도 임기가 끝나면 돌아올 홈이 있다는 것이 위로와 힘이었다. 아내에게도 그러하다.  선교지 사역으로 탈진상태에 이르러도 휴가기간에 돌아올 홈이 있는 것은 힘과 평안과 새롭게 달릴 바탕이었다. 집과 환경이 삶과 사역의 홈베이스가 된다.  이런 베이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사역할 때 자라난 자녀들은 멀리 있어도 부모가 있는 집이 그들의 홈이라 서로  후원하고 힘을 더하였다. 이제 나이로 많은 제약을 가지자 자녀들은 그들 가까이 오기를 원하더니 한 딸은 생일 소원이 엄마 아빠가 그들 가까이 오는 것이라 한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그의 오랜 소원을 이루어 주기로 하다. 정든 곳 여러 친구와 작별하고 딸 옆으로 가기로 결정하니 마음이 편하였다. 단 시일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가볍게 이사하도록 그들이 도왔다.  집과 장소, 사역이 홈 베이스가 되었지만 이제는 자녀들과 함께 하는 홈베이스를 구축한다. 세 딸이 팀이 되어 두 딸이 있는 곳으로 순조롭게 이사를 하다. 그들이 원하는 바를  따르는 것이 평안이요 기쁨이요 내가 원하는 바다. 그들과 같이 있음이 행복한 나의 새로운 홈베이스다. 사는 집은 달라도 이제는 가족이 홈이다. 언제든지 만나고 즐기고 사랑을 나누며 삶의 동력을 얻고 기쁨을 가진다. 가족 같은 것이 없다. 시달리고 피곤할 때 엄마 품에 기대고 또 약하고 힘이 없어도 자녀들 옆에서 힘을 얻는 것이 최고의 홈이 아니겠나! 
이런 홈이라도 언젠가는 누군가 곁을 떠날 날이 온다. 슬픔과 아픔이지만 현실이다. 세상의 홈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영원한 홈이 기다린다. 주께서 팔을 벌리고 “잘 하였다. 내가 주는 평안을 누리며 안식하라” 하신다.  나를 위해 희생하신 주님, 아버지의 사랑 성령님과 천사들의 위로가 함께 하는 완전한 홈이다.  더 이상 세상에서 달리며 시달릴 것이 없는 주께서  마련하신 홈베이스다.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하며 주와 함께 즐거움을 누리는 그 날의 홈베이스를 향하여 한 걸음 씩 나아가고 있음을 감사한다.

떠나도 떠나지 않아 Leaving but Not Leaving

떠나도 떠나지 않아 Leaving but Not Leaving
살아 있는 사람은 항상 이동을 한다. 미국의 원주민은 아시아에서 그리고 개척자는 영국과 구라파에서 옮겨와 이 나라를 건설하였다.  우리도 조국을 떠나 이곳에 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떠나고 도착하여 앞을 바라보고 힘들게 개척하며 떠난 곳을 생각할 틈이 없기도 하고 또는 잊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계획에 없던 목회를 미국에서 시작하여 처음은 한 교회 3년 기간으로 정하여 교회가 안정되면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며 여러 교회를 개척하다가 뉴욕에서는 떠남이 허락되지 않아 10년을 지나며 전도자에서 목회자로 전환하고 시카고에 와서 그 교회 최장 13년 사역 후 최초의 은퇴자가 되었다. 은퇴 후에는 목회자가 공석인 전환기  교회들을 섬기면서 전체적으로 여러 지역 여러 교회들에 부임하고 떠나고 또 선교사로 3년간 섬기며 남달리 많은 이동을 하였다. 나의 동갑 친구는 전도사로 부임한 교회에서 강도사 부목사를 거쳐 담임목사가 되어 은퇴하고 원로목사기 되기까지 45년을 한 교회에서 사역한 것과는 아주 다른 많은 경험을 하였다. 
한 교회 목사로서 얼마나 오래 있었든지 상관 없이 일단 교회를 떠나면 다른 목사가 부임한다. 교인은 양이요 목사는 목자이기에 양떼에 새로운 목자가 오면 그 목자가 중심이 되고 이전 목자는 상관할 것이 없다. 목사가 교회를 떠나면 완전히 떠난다. 몸도 마음도 더 이상  관련할 것이 없다. 그 양떼는 맡겨진 목자의 돌봄을 받게 된다.
지역을  떠나는 것도 그러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로 고향을 떠난 후에 다시 돌아가기  않았다. 아들의 배필을 고향에서 구하지만 아들이 그곳으로 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떠나면 떠난 것이다.  
그런데 떠나도 떠나지 않은 것이 있다. 고국을 떠나 이민을 왔지만 항상 고향과 고국을 그리며 내왕하기도 한다. 몸은 떠났지만 마음은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나의 경우 시카고에 가장 오랜 30년을 살면서 목회자로, 은퇴한 후에는 하나의 자연인으로 동료와 이웃을 친구로 삼아 지나다가 이들을 떠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눈물로 석별의 정을 나눈 많은 이들을 어이 잊을 수 있겠나? 한 집에서 28년을 살며 아내가 창조하여 아름다움이 풍성한 정원에서 팬데믹기간 막내의 결혼을 아빠가 주례한 것을 어찌 잊을 수 있겠나! 집에 들어설 때마다 밝고 시원한 공간을 선물로 주신 주님께 감사하던 그 집을 어떻게 잊겠나? 떠나지만 떠나지 못하고 마음에 그것을 품고 있다. 또한 한국일보 칼럼을 통하여 만나던 독자들의  아쉬워하는 격려를  받아들여 이들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만나며 사랑을 나누고자 한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3년을 지나다가 떠나간다 하시니 그들이 걱정하고 염려하였다. 주님은 떠나면서도 떠나지 않는다고 하며 보혜사  성령을 보내어 그들 속에서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할 것이라 하신다. 보이는 주님은 떠났지만 약속하신 대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보증으로  성령을 보내시고  우리는 성령님과 동행하다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믿는 자로서 모두 주님을 새롭게 만나 영원한 주의 나라에서 더 이상 이별이나 떠남이 없이 주와 함께 영원히 살 것을 기대한다. 주여 속히 오시옵소서!


무엇을 가지고 갈까 What to Take With

무엇을 가지고 갈까 What to Take With
시카고 생활 30년을 정리하고 자녀들의 소원을 따라 그들 가까이 프린스턴에 가서 살기로 결정을 하다. 이사하며 말하는 다운사이즈는 집과 살림을 줄인다는 것이다. 큰 집이 필요 없이 두 사람이 단출하게 살 수 있는 아파트면 충분하다.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가고 별로 사용하지 않던 것 또 있어도 잊고 살던 것들은 모두 버리거나 필요한 이들에게 넘겨주기로 하고 내가 가지고 갈 것을 결정한다. 당장 생활에 필요한 것과 또 기억과 연결된 사진이나 물품이 포함되고 이사비용이 만만치 않기에 줄이고 줄여도 짐은 많아진다. 
이민할 때 가방 몇개 들고 왔으나 지금까지 50년간 잘 살게 된 것이 감사하다. 미국에서 이사를 많이 하며 지역 안에서 옮기고 또 타지역으로 옮기었다. 은퇴 후에는 전환기사역을 담당하고 선교사로 먼 나라에도 살았지만 살던 근거지는 두고 가서 사역하다가 다시 돌아왔으나 이제는 근거지를 정리하고 섭섭하게 떠나게 된다. 무엇을 가지고 가는가 성경에서 실례를 본다.
베데스타 못은 물이 크게 움직일 때 누구나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라도 고침을 받기에 못 가에는 많은 병자가 모였다. 전신불구로 들것에 누워 있는 한 환자는 물이 움직일 때면 언제나 다른 사람이 먼저 물에 들어가기에 절망이었다. 그때 예수께서 그를 만나 “일어나 네 상을 들고 걸어가라” 하신다. 그는 바로 일어나 누웠던 침상을 들고 걸어간다. 완전한 새 삶을 시작하는 그에게 주님은 왜 환자로 누워있던 침상을 들고 가라고 하실까? 아마도 그것을 보면서 그가 병자로 있다가 고침 받은 것을 기억하며 감사하라는 것인가? 또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개인이 사용하던 것을 버려 두어 남에게 불편을 주지 말라는 것인가? 그가 성한 사람이라도 밤에 잠잘 때는 침상이 필요하다는 것일까? 주님의 의도는 확실히 모르지만 상을 가지고 가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
선지자 엘리야는 악한 왕에게 선포한대로 3년6개월 비가 내리지 않고 왕이 옹호하는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여 그가 섬기는 여호와가 참 하나님인 것을 증명하고 훗날 변화산에서 기도하는 예수님을 만나 그의 별세를 의논할 정도로 위대하였다. 그는 무엇을 가져가고 무엇을 남겼나? 그는 예언서, 집이나 자녀를 남기지 않았다. 단벌 옷을 입고 사역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올라가며 그의 겉옷을 벗어 내린다. 가지고 가는 것 없이 모든 것을 남겼다. 그가 가는 곳에는 겉옷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로운 옷과 필요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사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셨다. 들의 백합화나 공중의 새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책임지신다. 삶의 열매는 가져가지 않고 타인을 위하여 남겨 둔다. 추수를 하여도 다 거두지 말고 밭이나 나무에 얼마를 남겨두어 가난한 자 나그네가 즐기도록 하라고 하신다.
언젠가 우리가 세상을 떠날 날이 온다. 무엇을 가지고 갈까? 내가 도미니카에서 강의하다가 졸도하여 죽음에 들어간 적이 있다. 가져갈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을 그대로 남기고 간다. 오직 믿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나의 주요 구원자라는 믿음이면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여 풍성한 생명을 누리기에 충분하다.

참으로 자유한가? Are You Free Indeed?

참으로  자유한가? Are You Free Indeed?
이민일세는 대개 누구나 잘 살기 위하여 밤낮 없이 열심히 일을 한다. 우리 일세는 많은 경우 가난을 피하고자, 자신이나 자녀 교육을 위하여 또는 기회를 찾아 왔기에 한국에서 하던 일을 지속하는 전문인 외에는 대개 무슨 일이나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면 하였다. 세탁소나 청소 네일 미용 식품 생선 잡화 등 모두 남달리 부지런하게 일에 일을 하였다. 너무나 분주하고 피곤하여 어떤 이는 번 돈을 셈하거나 은행에 가지고 갈 틈도 없었다. 남자는 집에 오면 쉬는 시간이 있지만 부인은 바로 부엌에 들어가고 빨래나 다른 많은 일과 아이들 돌보며 눈코 뜰 짬도 없어 피곤이 쌓였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하던 삶이라 이민 온 것을 후회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는가 물으면 특히 부인이 아니라며  여기가 좋다고 한다. 이유는 마음이 편하고 자유롭다는 것이다. 자기를 살리며 일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아 만족하다. 너무 고단하고 힘들지만  자기를 발견하는 해방감으로 자유를 누리고 아이들 교육시키고 집을 구입하고 고국에 송금할 수 있는 것이 행복한 일이다. 
미국에서 6월19일 Juneteenth라는 노예해방 기념일이 몇 년 전 제정되었다. 영국에서 건너온 소수의 개척자들이 넓은  대륙을 농산물 생산지로 개발하는데 필요한 많은 일손을  아프리카인으로 충당하면서  노예산업과 시장이 형성되고 사람이 물품으로 거래되어 인권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이 무자비하게 취급되었다. 뿌리라는 소설에서 쿤타킨테라는 노예 몸에서 붉은 피가 흐르는 것을 주인이 보며 그도 자기와 꼭 같은 피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란다. 차차 노예도 사람이라는 인식이 일어나며 이로 인하여 미국은 남북으로 분리된다. 북부는 공장이 많아 시간제 임금과 고용제도가 발전하나 세계의 곡창 남부는 고용된 인부로 운영할 수 없어 노예제도가 옹호되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노예해방을 선언하고 남부는  항복했지만 2년 반이 지나도록 텍사스는 여전히 노예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북부의 Gordon Granger 장군이 1865년 6월 19일 텍사스 Galveston에 들어가 노예 해방을 요구하였다. 속박을 당하던 사람들이 자유의 선언을 들을 때 기쁨과 감격이 얼마나 컸을까!  
미국에 사는 우리든지 공식으로 노예에서 해방된 그들이 참으로 자유로운가! 여전히 많은 억압과 얽매는 사슬이 있다. 경제가 부요하고 학식과 지위로 많은 것이 갖추어졌는데도 육체의 고통, 우울과 좌절에 빠진 자가 많고 술과 마약에 중독되고 자살하는 자의 수가 점점 많아지는 것은 진정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해방되고 자유가 주어진 때의 기쁨과 감격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자유는 죄와 죽음이라는 폭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없고 그 결과 죽음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 두려움이요 억압이다. 죽는 것만 아니라 영원한 고통의 형벌을 받는다는 것을 상상하면 어찌 마음에 평안이 있을까!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여 자기 아들 예수를 보내고 죄와 죽음에서 사람을 해방시키고자 피를 흘려 죽게 함으로 누구든지 그를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참 자유인이 된다. 서부 개척자들의 표어였던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한 말씀과 진리인 예수께서 주시는 영원한 자유를 우리가 가져야 하리라.

하늘을 담는 그릇 Embracing the Heaven

하늘을 담는 그릇  Embracing the Heaven
짐 근처에 삼림공원이 있어 자주 방문한다. 걷는 길은 숲이 많아 자연을 즐기고 자연과 대화하며 원더 워킹 묵상을 한다. 숲을 이루는 나무는 겨울철에 잎이 모두 떨어지고 가지만 뻗어 있는 것이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더니 잎이 나고 뻗어 나며 풍성해지는 것을 감사하는 것 같았는데 곧 잎이 무거운지 가지는 땅으로 숙이고 하늘이 가려 잊어버리고 땅을 누리는 것 같다. 성경통독 말씀을 들으며 주와 친밀함을 가진다. 
걷는 길은 크고 작은 네 호수 길이라 많은 사람이 낚시를 즐기고 있다.  봄마다 타운에서는 호수에 송어를 방류하는 기간을 가지고 낚시꾼이 즐기게 한다. 나는 낚시하지는 않지만 낚시하는 사람들이 조용하게 인내하며 고기가 물기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때로는 누군가 고기를 잡아 올리면 함께 기뻐하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봄이면 오리와 캐나다 거위들이 쌍쌍이 짝을 지어  모이더니 어느 새 많은 애기들을 거느리고 나타난다. 엄마는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아빠는 뒤에서 주변을 살피며 가족의 안전을 지킨다.  열심히 헤엄치고 풀에서 양식을 찾아 먹으며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더니 부모 품을 떠날 정도로 크게 되어 날아간다. 이런 자연의 변화에서 나 자신의 변화를 보며 순응하는 것을 배운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호수에 비치는 하늘을 보는 것이다. 하늘 그대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름답지만 하늘이 호수에 비치고 호수가 하늘을 담고 있는 것은 감동이다. 큰 호수는 큰 대로 작은 호수는 작은 대로 하늘을 담고 있어 호수는 하늘을 담는 그릇이 된다. 맑은 하늘만 아니라 하늘의 여러 형태의 구름이든지 해와 달, 하늘을 나르는 새와 비행기 모두가 조용한 호수에 담기고 호수 주변의 숲들이 그대로 나타나 보여 호수는 신비로운 거울과 같다. 가까이 다가가니 나의 얼굴도 비친다. 그러다 바람이 불어와 파도가 일고 물결이 치면 호수가 담고 있던 하늘이 흔들리더니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그 호수를 지나면 풀과 이끼가 여기 저기  있는 호수를 만난다. 이 호수도 같은 하늘 아래 있어 하늘을 담고 있으나 제 모양이 아니다. 여기 저기가 가리워져 있어 보이는 부분,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 얼마나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호수에 달려 있다. 그것을 지나 만나는 호수는 전체가 이끼에 덮여 있어 하늘이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 이들은 같은 하늘 아래서 길 하나로 나뉘어 있는 호수 가족으로 같은 하늘을 담는 그릇이지만 하늘을 담기도 하고 그러지 못하기도 하는 것이 호수의 형편이다. 
이를 보며 호수는 내 마음이라 생각된다. 내 마음은 하늘과 하나님을 담도록 만들어진 그릇이다. 하나님을 담을 때 내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음이 청결하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청결은 주께서 처음 외치신 말씀처럼 회개와 세례를 통하여서 된다.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면 주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정결하게 하신다. 정결하여도 세상 물결이 들어오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세상 염려와 걱정 정욕의 이끼가 마음을 덮으면 하나님을 볼 수가 없다. 주여 나의 마음을 정하게 하시고 이끼를 걷어내어 주 안에서 고요하여 온전히 하나님을 담고 나타내는 그릇이 되게 하소서 기도한다. 

깨끗하게 하리라 To Be Cleansed

깨끗하게 하리라 To Be Cleansed
세상에 빛이 없다면 어떨까? 태초에는 모두가 어둠이요 혼돈이었다.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고 빛이 들어오니 사물이 나타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은 빛이시요 예수께서 세상의 빛이시라 우리를 비치시고  빛은 생명이라 우리가 그 안에 살면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을 얻는다.
빛은 실상을 보여준다. 밤에는 창문이 어떤지 보이지 않아 알 수 없지만 빛이 비치면 창문이 깨끗한지 더러운지를 보고 알게 된다. 안경도 그러하다. 안경이 깨끗해야 잘 보이기에 자주 닦는다. 불순한 것을 닦아 내면 새롭게 잘 볼 수 있게 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우리가 보고 관리하지만 눈으로 보이지 않은 우리 속 마음은 어떠한가?  겉으로 좋은 옷을 입고 단장을 하여 흠이 없는 것 같은데 속은 겉과 다를 수가 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을 외식 위선이라 한다. 예수께서 바리새인을 가리켜 외식하는 자라 하며 그들을 회 칠한 무덤이라 부른다. 겉은 아름다운 비석을 세우고 있으나 속은 썩은 송장이다. 그들 속에서 나오는 것은 탐욕과 거짓 교만과 분노라고 주께서 말씀하신다. 
속의 더러움을 어떻게 정결하게 할 수 있나? 주께서 빛으로 그 더러움을 보시고  나의 더러움을 비치고 나에게  보여주실 때 내가 인정하고 내가 추하다는 것을 고백하고 주의 도움을 요청하면 주님은 나를 사랑하기에 자기 피로 나의 죄를 씻어내고 정결하게 하신다. 오직 예수를 통해사민 죄를 씻고 깨끗함을 입는다. 우리 수도물에 한 때 정수기를 사용하였다. 보기에는 좋은 식수 같은데 조사를 하여 불순물이 있는 것을 보여주고 정수하게 하였다. 그러다가 시에서 물 근원을 정수함으로 이제는 맑은 물을 마시고 있어 감사하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 앞에 데리고 왔다. 그런 여인은 돌로 쳐서 죽임을 담한다. 어떻게 할까요 하며 주를 시험한다. 주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 하시고 빛을 비추신다. 모두 자기 죄를 깨닫고 하나씩 돌아가고 여인만 남는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은다 돌아가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신다. 
용서 받은 자는 다시 죄를 범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나 과연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은 다시 넘어진다. 어떻게 하나? 창문이나 안경을 깨끗하게 닦지만 다시 또 더러워진다. 다시 닦는다. 우리가 다시 죄를 저질러 심령이 더러워져도 낙심할 것이 아니라 다시 인정하고 고백하면 주님은 다시 용서하신다. 일곱 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신다. 이것이 주님의 관용이요 사랑이다. 세상에서는 누구를 정죄하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오래 참으시고 용서하시고 성령을 보내어 위로하시며 죄를 이기게 하신다. 
용서 받지 못하는 자는 자기 더러움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를 깨끗하다고 하는 사람이다. 이는 거짓이요 위선이지만 스스로 인정하는 죄인과 세리에게는 주님이 가까이하며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기셨다.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그는 자기 죄를 깨닫는 자에게 친구와 구주가 되심을 말씀한다. 
나는 깨끗한가 아니면 그렇지 못한가? 주의 빛이 비치어 내가 깨끗하지 못하여 부정함을 알고 인정할 때 주님은 나를 찾아 위로하시며 깨끗하게 씻기시고 새 옷을 입혀 주시기에 평안과 자유를 가지고 감사한다! 

Wednesday, June 5, 2024

기억하라 Remember

기억하라 Remember
메모리얼 데이를 맞아 평화와 자유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 육해공군 해병대원을  기억하며 관련 묘지를 찾아 감사의 헌화와 예식을 가진다. 산 위의 도시 정신에 근거하여 탄생한 미국이지만  그들이 없으면 세계 대전이나 남북전쟁 같은 참화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겠나? 과거에 희생한 군인만 아니라 오늘도 여전히 자원하여 헌신하는 군인들이 미국과 세계 각처에서 대를 이어 복무하는 것을 기억하며 감사한다
미국 군인이 아니었다면 한국이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군인은 있었지만 훈련도 장비도 제대로 없던 때 준비된 북한군의 갑작스런 남침으로 정부와 국민은 힘 없이 밀리고 밀려 남으로 내려가며 나라 존폐의 위기에서 미군의 참전과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탈환하고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며 많은 희생을 치르는 3년에 휴전하고 당시 세계 최빈국이 지금 10대 강국에 들어간 것은 미국과 미군, 유엔군의 덕분임을  메모리얼 데이에 더욱 기억하고  감사한다. 
기억하라는 말이 성경에 352회, 변형된 표현이 550회가 나오는 것은 기억의 중요함을 말한다.  기억하다는  마음에 둔다 간직한다 새긴다는 의미다. 사람은 새기기를 좋아한다. 옛날 사람들이 큰 바위에 여러 그림과 형상을 그리고 새긴 것이 오늘까지 남아 있어 당시의 생활형편을 알게 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나무나 돌에 무엇이나 새기고 남겨 알리고 기억되기를 바란다. 
무엇을 기억하나?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고 하듯이 받은 사랑이나 좋은 일은 쉬 잊어버리고 받은 상처나 아픔은 잊지 못한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로서 동생이 형의 장자권을 뺏고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채자 형은 분노하여 복수하려는 마음을 가진다. 동생은 멀리 외삼촌 집으로 피신하여20년을 지나며 가정을 이루고 많은 자녀와 큰 재산으로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형의 노가 풀린 줄로 기대하였지만 형은 400명의 군사를 데리고 동생에게 원한을 갚겠다고 한다. 자기가 한 일은 잊어버리고  받은 손해와 상처를 잊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억하라 하신다. 사람이 지키면 생명 누리도록 축복하고 번성하게 하는 언약으로 아담, 노아,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을 기억하라 하신다. 홍수로 땅의 생명을 진멸한 하나님은 다시는 전체 생명을 멸하지 않는다는 언약을  무지개로  기억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언약을 돌에 새겨 주시며 그것을 기억하라 하신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는 살아계신 전지전능자로 사랑과 은혜로 노하기를 더디 하는 분이다. 그가 사람을 고난과 죽음에서 구원하고 함께하여 지키고 돕고 채워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오늘 내가 생명을 누리며 살아 활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안식일을 기억하고 주를 인정하고 섬기게 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하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서로 도울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 언약의 완성으로 오신 예수께서는 어려운 자들을 사랑하고 평안과 자유를 주시다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에서 떡을 들고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주시는 그의 몸이요 잔은 우리 죄를 사하려고 희생하여 흘리는 그의 피라 하시며 성찬을 먹고 마실 때 그를 기억하라 하신다. 주의 몸과 피의 희생 사랑을 기억하면 내 죄가 용서되고 영생을 얻으며 매일 삶의 힘이 되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기쁨으로 그의 사랑을 나누고 전하면 더욱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