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ne 5, 2024

기억하라 Remember

기억하라 Remember
메모리얼 데이를 맞아 평화와 자유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 육해공군 해병대원을  기억하며 관련 묘지를 찾아 감사의 헌화와 예식을 가진다. 산 위의 도시 정신에 근거하여 탄생한 미국이지만  그들이 없으면 세계 대전이나 남북전쟁 같은 참화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겠나? 과거에 희생한 군인만 아니라 오늘도 여전히 자원하여 헌신하는 군인들이 미국과 세계 각처에서 대를 이어 복무하는 것을 기억하며 감사한다
미국 군인이 아니었다면 한국이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군인은 있었지만 훈련도 장비도 제대로 없던 때 준비된 북한군의 갑작스런 남침으로 정부와 국민은 힘 없이 밀리고 밀려 남으로 내려가며 나라 존폐의 위기에서 미군의 참전과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탈환하고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며 많은 희생을 치르는 3년에 휴전하고 당시 세계 최빈국이 지금 10대 강국에 들어간 것은 미국과 미군, 유엔군의 덕분임을  메모리얼 데이에 더욱 기억하고  감사한다. 
기억하라는 말이 성경에 352회, 변형된 표현이 550회가 나오는 것은 기억의 중요함을 말한다.  기억하다는  마음에 둔다 간직한다 새긴다는 의미다. 사람은 새기기를 좋아한다. 옛날 사람들이 큰 바위에 여러 그림과 형상을 그리고 새긴 것이 오늘까지 남아 있어 당시의 생활형편을 알게 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나무나 돌에 무엇이나 새기고 남겨 알리고 기억되기를 바란다. 
무엇을 기억하나?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고 하듯이 받은 사랑이나 좋은 일은 쉬 잊어버리고 받은 상처나 아픔은 잊지 못한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로서 동생이 형의 장자권을 뺏고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채자 형은 분노하여 복수하려는 마음을 가진다. 동생은 멀리 외삼촌 집으로 피신하여20년을 지나며 가정을 이루고 많은 자녀와 큰 재산으로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형의 노가 풀린 줄로 기대하였지만 형은 400명의 군사를 데리고 동생에게 원한을 갚겠다고 한다. 자기가 한 일은 잊어버리고  받은 손해와 상처를 잊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억하라 하신다. 사람이 지키면 생명 누리도록 축복하고 번성하게 하는 언약으로 아담, 노아,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을 기억하라 하신다. 홍수로 땅의 생명을 진멸한 하나님은 다시는 전체 생명을 멸하지 않는다는 언약을  무지개로  기억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언약을 돌에 새겨 주시며 그것을 기억하라 하신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는 살아계신 전지전능자로 사랑과 은혜로 노하기를 더디 하는 분이다. 그가 사람을 고난과 죽음에서 구원하고 함께하여 지키고 돕고 채워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오늘 내가 생명을 누리며 살아 활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안식일을 기억하고 주를 인정하고 섬기게 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하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서로 도울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 언약의 완성으로 오신 예수께서는 어려운 자들을 사랑하고 평안과 자유를 주시다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에서 떡을 들고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주시는 그의 몸이요 잔은 우리 죄를 사하려고 희생하여 흘리는 그의 피라 하시며 성찬을 먹고 마실 때 그를 기억하라 하신다. 주의 몸과 피의 희생 사랑을 기억하면 내 죄가 용서되고 영생을 얻으며 매일 삶의 힘이 되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기쁨으로 그의 사랑을 나누고 전하면 더욱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된다.
 






Monday, May 27, 2024

하나님이 예배에! God in the Worship Service

하나님이 예배에! God in the Worship Service
누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할 때와 그러지 않을 때에 나의 생각, 말과 행동이 다를 수 있다. 사람들에게 나타날 때와 혼자 있을 때는 옷 차림이나 자세가 다른 것이 보통이다. 누구를 만나거나 모임에 참석할 때 입는 옷과 집에서 입는 옷이 다르고 몸치장이 다르다. 내가 보이는 것에 마음을 쓰면서 동시에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표시가 된다.
목사가 주일 예배를 인도할 때 목욕을 하고 단정한 옷을 입지만 은퇴목사도 때로 교회에 초청을 받으면 보통과는 달리 더욱 그러하다. 일반 교인만 아니라 다른 선배 목사나 유명인사가 있다면 좀더 신경을 쓴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자리에 계신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그는 우리의 외모보다는 우리 마음에 관심을 가지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면서도 대개 사람은 의식하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에 고려하지 않을 때가 있다. 실상은 하나님이 거기 계신다.
내가 어느 교회에 초청받아 설교하는 주일 담임목사는 멀리  여행을 떠난 상태였다. 그가 멀리서 아침에 텍스트를 보내며 온라인으로 예배에 참여하여 은혜를 받겠다고 한다.  몸은 멀리 가 있지만  본 교회에서 드리는 주일 예배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그가 몸으로 함께 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는 함께 하여 같이 예배하며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며  모든 것을 현장에 참여한 자와 같이  하게 된다.  팬데믹동안 교회가 모이지 못하여 온라인으로 예배를 진행하며 누구나 어디서나 연결만 하면 함께 예배할 수 있게 하고 지금도 사정이 있거나 여행중에 온라인으로 교회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여행중인 담임목사가 멀리서 함께 예배에 참여한다는 것을 알면서 하나님께서 이 예배에 참여하여 함께 하신다는 생각이 머리를 친다.  담임목사이든  누구든 예배에 참여하면 예배자로서 하나님을 인정하며 은혜 받기를 기대하고  은혜를 받았다 아니다 말을 하지만 하나님은 예배자가 아니라 예배를 받으시는 분으로 오시어 그  예배가 그가 받으시기에 합당한가 아닌가를 보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새롭게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사람은 사람에게 보이고자 목욕을 하고 단정한 차림으로 나타나지만 하나님은 우리 속 사람을 보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스스로 마음을 살핀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나의 추함을 보여주시고 나는 겸손하게 인정하고 하나님은 아들의 피로 정결케 하심을 성령으로 확인시켜 주시고  마음을 감동시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되는 축복을  허락하신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주께 합당한 예배가 되고 이를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게 된다. 
교회예배만 아니라 우리 매일의 삶이 예배가 된다. 하나님은  매 순간 우리와 함께하고 살피신다. 죄를 지적하거나 간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돕고 지키고 인도하시기 위함이다.  그는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속에 계시면서 우리가 어디서 어떤 일을 만나든지 혼자 버려 두지 않고 옆에서 속에서 함께하여 돌보신다는 사실을 알면  힘이 생기고 안정을 가진다.  이스라엘의 광야길에 함께 하시고 앞서 가며 길을 열었던 하나님이 나의  삶도 그렇게 인도하셨다. 어디나 계시는 무소부재요 무슨 일이나 하시는 무소불능의 하나님이 내 옆에서 내 속에서 역사하여 힘과 위로가 되시기에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그를 높인다. 







Monday, May 20, 2024

성령을 받으라 Receive the Holy Spirit

성령을 받으라 Receive the Holy Spirit
사람이 기대하는 바가 순식간에 완전히 무너지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그 일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일어났다.  삶이 답답하고 어두운 시절, 로마의 정복과 통치, 가난과 굶주림, 구분과 차별이 많고 갈릴리 지방은 멸시와 소외를 당하며 질병과 고통이 운명 같았다. 그때 혜성처럼 나타난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며 굶주린 자를 배불리고 불치병자 벙어리 맹인을 회복하여 새 삶을 주었다. 바다 위를 걷고 폭풍을 잔잔하게 한다. 창세 후 없던 일이 일어난다. 그에 대한 기대에 기대로 사람들이 몰리는데 그 능력자가 종교지도자의 고발로 로마 법을 따라 가장 비참한 처형인 십자가에 달린다. 아무런 저항이나 힘이 없이 보통 죄인처럼 죽고 무덤에 장사된다. 모두에게 실망이지만 삶을 걸었던 제자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허탈이다. 그는 무덤에 장사되고 제자들은 그런 일이 자기들에게 일어날까 두려움으로 문을 닫고 숨어 있는데 예수께서 부활했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그가 나타났다. 평화의 인사로 마음을 안정시키더니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신다. 숨은 호흡이요 영으로 생명을 일으키는 힘이다.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한 그가 부활 생명을 그들에게 주시는 것이다. 이는 태초에 하나님이 흙으로 만든 사람 코에 생기 곧 숨을 불어넣어 생명체가 되게 한 것과 같다. 하나님의 생기는 그의 영이요 생명이다. 하나님이 생기를 넣어 살게 한 사람, 더욱이 그의 제자들인데 그들에게 왜 숨을 불어 성령을 받으라 하시나? 하나님의 숨과 영이 사람에게서 떠났던 것이다. 사람이 행하는 것이 죄요 그들의 생각하는 것이 악이라 하나님의 영이 그들과 함께 있을 수 없어 떠난 것이다. 그들은 육체로 살며 생각하고 육체가 원하는 일을 행하며 하나님과 멀리 떠나 있는 형편이다. 
하나님은 이미 그의 영을 선지자에게 주어 자기 말씀을 전하게 하고 왕을 세워 그의 뜻을 따라 백성을 통치하게 한다. 하나님은 사울을 그의 영으로 감동시켜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였으나 그가 감당하지 못하는 블레셋 원수를 다윗이란 목동 소년이 물리치고 평화를 가져오니 사람들이 다윗을 추앙하자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악을 꾀한다. 하나님의 영이 그를 떠나고 악신이 그에게 임하여 번뇌하는데 다윗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지혜와 용맹이 생겼다. 왕이라도 주의 영이 떠나면 악에 빠진다. 
인간을 악한 죄에서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를 나게 하시고 그는 성령으로 사역하다가 죽음에서 부활하여 그의 숨으로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다. 그의 숨, 영은 살리는 영이다. 그의 영을 받으면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난다. 육신에 있지만 성령을 따라 행하게 된다. 
제자들은 주께서 처음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할 것을 바라지만 주님은 그들이 성령으로 권능을 받으면 예루살렘에서부터 땅끝까지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 한다, 그래서 로마 같은 나라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 새로운 백성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라는 것이다. 약속대로 오순절에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온 세계를 향하여 복음 전도자가 되고 주의 교회가 탄생하고 확장되었다. 교회를 통하여 주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신다. 




Monday, May 13, 2024

어머니의 품 Mother’s Arms

시편  131:1-3 어머니의 품 Mother’s Arms

어머니 주일에 어머님들에게 감사하며 주의 축복을 기원한다.
니카라과를 단기선교로 방문한 때 한 어머니는 자녀 여섯이 같이 왔는데 아이들 모두 아버지가 다르고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전 스페인이 점령한 때 군인들이 지나가며 자녀를 낳게하던 풍습이 남아 있는 것이라 하였다. 아버지는 책임 없이 지나가 버리고 말지만 엄마는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품에 안고 정성으로 기른다. 엄마의 특권은 품이 있다는 것이다. 품에 안고 가장 귀한 사랑을 쏟으며 자기에게 필요한 영양과 생명이 되는 젖을 먹이며 생명을 바쳐 아이를 돌보고 양육하는 것이다. 
오늘 성경에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서 고요함 같이 내 영혼이 주안에서 고요하고 평안하다고 한다.
어머니의 품은 고요한 안정과 평화를 준다. 배가 고플 때 배를 채우는 양식이 있고 슬픔이 있을 때 위로가 되고 두려움이 있을 때 안정이 되고 누구에게 욕을 당하거나 얻어 맞거나 고통이 있을 때도 엄마의 품은 보호와 힘이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나? 
어머니 엄마 맘은 많은 나라의 공통적인 말이다. 우리 말  엄마는 움에서 나왔다. 움은 가지에 움이 돋는다 새싹이다. 새 생명이다. 엄마는 새생명을 일으키고 태어나게 하는 분이다. 엄마 없이 생명으로 태어나는 일은 없다. 하나님께서 엄마를 통해 주신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실 때도 마리아를 통하여 아들을 주셨다. 마리아가 거절하였다면 예수께서 태어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내 생명은 내가 난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통하여 이 땅에 태어난 것이라 어머니 없으면 내가 존재할 수 없다. 가지에 움이 돋기까지 생명은 가지 속에서 차가운 겨울을 지나며 준비하듯이 생명은 어머니 태 속에서 그의 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태 자궁은 나를 품어준 품이다.
어머니 움은 음식이나 물건을 저장하는 곳이다. 사람이 피신하여 거하는 곳도 움이요 움막이다.  터어키 카파도기아를 방문하면 지하도시를 방문하는데 그것은 모스렘을 피하는 기독교인들이 땅속에 움을 파고 피신한 곳이다. 움막은 주로 언덕이나 바위 사이 바람을 피하고 악한 짐승이나 도적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다. 낮에는 밖에 나가 일을 하다가 어려운 일이 있거나 밤이 되면 움막으로 들어가 쉬면서 안정과 보호를 받는다. 그리고 우리 전통적인 움은 음식 보관소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음식을 오래 보관하려는 지혜로 움을 땅 아래나 언덕에 방처럼 만들고 음식을 보관 저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경주의 석빙고다. 상하지 않고 신선하게 처음 맛을 보관항 수 있다. 엄마의 태와 품은 움이다. 생명이 보호받고 힘을 얻으며 처음 모습을 유지하는 움이 다. 놀라는 일을 갑자기 만날 때 엄마야 부르는 것은 움인 그의 품을 찾는 것이다. 집을 떠나 멀리 나가 있을 때 외롭고 힘드는 일이 많을 때 고향과 집을 그리워하는 것은 엄마의 품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어린아이때만 아니다 나이 들어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사람은 본능으로 안전을 찾기에 어머니의 품은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된다.
전쟁의 참화에서 피난하다가 폭탄이 떨어져 많은 사람이 죽고 부상을 입는다. 한 여인이 쓰러져 죽어 있어 일으켜 보니 어린애기를 품에 안고 보호하고 있어서 애기는 살아났다. 사실을 알게 된 아이가 평생 어머니를 잊을 수 있겠나!
세상에 어떤 일이 있어도 어머니의 품에 있으면 고요하고 평안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때 그의 제자들과 따르던 자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머니 마리아는 십자가 아래 와 있다. 아들의 슬픔과 아픔을 품는 마음이다. 예수께서는 어머니 옆에 있는 요한을 향하여 네 어머니다. 어머니를 향하여 아들입니다 하며 두 사람을 연결시켰다. 요한은 마리아를 어머니로 받들었다. 요한이 목회하던 에베소에는  마리아를 모셨던 집이 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때 죽을 병에 걸려 군에 입대하지도 못하고 발령을 받지도 못하자 어머니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네 병을 고치도록 하겠다 하며 평생 피땀 흘려 일군 농토를 팔아 나를 요양병원에 보냈다.. 어머니 믿음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인 치유를 받고 지금까지 61년간 건강하게 지나고  있어 감사에 감사다. 위기를 당할 때 어머니가 옆에 계신다는 것은 큰 복이다.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서 고요하듯 내 영혼이 하나님의 품에서 평온하고 고요하다고 다윗은 고백한다. 어머니 품의 아이는 교만하거나 오만하지 않고 하지 못할 큰 일을 하겠다고 자랑하지도 않는다.어머니 품의 아이는는 오직 어머니 품으로 만족한다. 다윗은 이 어머니의 품을 하나님의 품과 비교하였다. 하나님에게 어머니 품 같은 품이 있을까?
사46:3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태에서 태어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엽힌 너희여 너희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하신다. 하나님은 안고 품고 업으신다.  품는 것은 품이다. 하나님이 나를 나게 하셨기에 끝까지 나를 안고 품으신다.
그 실례가 출애굽에 나온다. 신1:31  광야에서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0녀간 종살이하며 부르짖고 신음할 때 하나님이 모세를 세워 그들을 해방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때 애굽 군인들이 추격하고 홍해를 만난 때 물이 갈라져 마른 땅이 되어 건너게 하시나 애굽 군인은 모두 물에 수장되었다. 광야를 행진하며 물이 없을 때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시고 먹을 것이 없을 때 만나와 메추라기 고기를 주시고 아말렉이 침공할 때 그들을 정복하고 안전하게 지켜주시며 가나안 변경까지 잘 도착한 후에 모세는 회상하며 한 마디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안고 품어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다윗은 시편139에서 주께서 나를 지으셨기에 주의 눈을 내게서 떼지 않고 보고 계시며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신다고 하며  내가 어디로 가든지 하늘이나 땅이나 깊은 수렁이나 바다끝에 가서 있어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나이다 고백한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로 양을 치고 있는 동안 형들은 선지자 사무엘을 모신 잔치에 참여하고 있으나 다윗은 부모에게서 잊혀지고 있는 때에도 하나님은 그를 불러 오게 하여 사랑하는 자라고 확인하셨다. 블레셋 골리앗 장군 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때 목동 다윗은 물맷돌로 장군의 이마를 명중하여 블레셋을 이기고 사울 왕에게 발탁되었으나 그가 시기하여 군대를 동원하여 다윗을 잡고자 해도 매번 하나님은 다윗을 지켜주셨다. 하나님의 품에 안고 그를 보호하다가 사울을 이어 왕이 되게 하셨다. 
우리 개인의 삶은 어떠한가? 나의 삶을 보면 한국에 있을 때나 50년전 미국에 가방 하나 들고 유학와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께서 나의 앞에 미리 가시어 길을 여시고 나를 인도하여 안전하게 갈 수 있게 하셨다. 내가 죽을 병이 걸린 때에 주님은 더욱 아파하시며 나를 안고 위로하며 말씀을 주시어 낫게 하신 것이 얼마나 귀한가!
하나님의 품은 한 없는 사랑이요 용납이다. 잘못하여 멀리 떠나 있었지만 고난 중 깨닫고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용서하고 픔어주신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1:18. 한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둘 째가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 먼 나라로 가더니 모든 것을 탕진하고 흉년이 들어 남의 집 돼지를 치며 돼지가 먹는 것으로 배를 채우고자 하나 먹을 것이 없었다. 그 때 아버지 집을 생각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돌아간다. 아버지가 멀리서 바라보다가 거지가 된 아들을 알아보고 뛰어 나가 안고 입을 맞추고 그를 영접하며 잔치를 베풀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납의 넓은 품이다.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누구나 받아주는 넓은 품이다. 어머니의 품이 여기서 온 것이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품을 실현하고자 하나님은 보이는 교회를 세우셨다. 
오늘 본문  시131편은 제목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  시120-134 까지 15편의 하나다. 이는 3편씩 조를 이루는데 처음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세상에 살며 고난을 겪는 형편 둘째는 고생하다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자 정하고 가는 길을 묘사하고 세번 째는 아버지 집에서 가지는 기쁨과 안정 회복을 말한다. 131편은 129-131의 마지막으로 하나님 전에 돌아와 가지는 고요하고 안정된 평화를 표시한다. 주 앞에서는 세상에서의 교만과 허망된 모든 것을 내리고 겸손한 심정으로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에서 어머니 얼굴을 바라보듯 주의 집에서 아버지의 얼굴 바라보며 모든 염려 걱정 무거운 짐을 내려두고 고요함과 안정을 누린다. 시84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마음과 육체가 살아계신 여호와께 부르짖나이다. 주의 궁정에서 하루가  다른 곳에서 천날 보다 나은즉 내 하나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다윗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사는 것을 소망하였다 (시23)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고 만나 주시기 때문이다. 
이 성전은 바로 오늘의 교회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속함을 받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하나님의 품 어머니의 품이 되는 곳이다.  세상에서 어떤 시련과 어려움을 겪는다 하여도 교회에 오면 서로가 용납하고 품어주는 포근함을 경험한다. 그러기에 교회를 어머니라 표현한다. 3세기의 키프리아누스, 개혁자 칼빈은 교회는 어머니라고 한다. 어머니의 품이 있는 곳이다. 여기에는 사랑과 용납이 있다. 누구든지 오기만 하면 용납되고 사랑을 받는다. 
교회에서 생명이 태어난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지만 성령의 역사로 예수 안에서 새생명을 얻는다. 주일마나 모임 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소리를 듣는다. 태어나면 품에 안기어 젖을 먹고 자란다. 음식을 먹고 배가 부르면 만족해 한다. 교회에서 말씀과 기도로 자라나고 훈련된다. 자라나면 품이 없던 사람들이 품이 생긴다. 젖이 생긴다. 나도 남을 품을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다. 교회가 하는 일이다.  교회에서 서로 형제라 부른다. 형제는 희랍말로 Adelphos로 두 단어 A Delphos 아는 하나라는 말, 델포스는 태 자궁이라는 말로 한 태에서 한 품에서 태어났다는 말이다. 교회는 모두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태어나 주 안에서 모두 형제 자매가 된 것이다 교회 건물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엄마의 품과 같이 품으면서 생명을 배태하고 출산하여 길러내는 것이 교회의 품이다. 
내가 교회에서 얼마나 용납을 받고 있나? 내가 얼마나 꿀보다 더 단 말씀의 젖을 먹고 자라다?  자라면서 나의 품도 넓어지고 커지며 다른 이를 품고 생명을 태어나게 하고 양육할 수 있겠나?
어머니 주일에 어머니를 기리면서 동시에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의 품을 감사하고 교회의 품에서 안정과 평화 만족을 누리며 내가 교회 품의 일부가 되어 생명을 일으키고 품고 용납하며 주의 생명과 평화가 펼쳐지기를 기원한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Thank You, Mom!

어머님 감사합니다 Thank You, Mom!
어머니날을 맞아 평소보다 더욱 어머님을 그리워하며 감사한다.  나를 낳으시고 오늘 내가 있게 하신 그는 출생부터 세상을 떠나기까지 특별하였다. 경주 서부외곽 서당 훈장의 딸로 태어났으나 여자이기 때문에 글을 배우지 못하고 집안 일을 하다가 16세에 경주 남부외곽 홀어머니 모시는 총각과 가정을 이루었다. 남편은 비가 새는 낡은 집에 새댁과 어머니를 두고 돈을 벌겠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밤낮 없이 일을 해도 돈이 모이지 않아 일년만에 빈손으로 돌아온 남편은 조합돈을 빌려 버려진 땅을 사고 부부가 열심히 개간하기를 반복하여 집을 지어 옮기고 안정을 이루었다. 엄한 시모에게 글을 배우고 길쌈을 하며 삶의 지혜를 얻는 중에 딸 다음 장남인 내가 태어났으나 시모에게 아들을 빼앗기듯 안아볼 틈도 없이 일에 얽매였다. 내가 두 살 때인지 엄마 품에 안겨 마차를 타고 외가에 가던 것이 엄마와의 행복한 처음 기억이다.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산 넘어 멀리 교회에 다녔으나 겨울이나 비 오는 날이 어렵기에 아버지는 효성으로 동리에 예배당을 지으시고 어머니가 먼저 주님을 믿고 별을 보고 새벽종을 울리는 종지기가 되고 교역자를 정성으로 섬기고 주민들의 기념일을 기억하고 베푸는 사랑을 나에게 심어주셨다.
어머니는 나에게 일찍 독립심과 자유를 주시며 나를 한 인격으로 존중하고 초등학교 이후 집을 떠났으나 나를 건강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셨다. 대학을 졸업하며 내가 죽을 병에 걸린 때에 그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나를 고치겠다며 국립병원에 입원시켰다. 아버님은 어머님을 존중하고 찬동하였다.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6개월에 퇴원하고 취직 결혼하여 교수목사가 되겠다고 유학하며 멀리 떠났으나 그의 기도는 항상 나와 같이 하였다.
내가 수학 중 어머님은 척추암으로 심한 통증에 걸을 수도 없어 의사가 포기한 상태에서 내가 돌아가 전문의사를 소개받았더니 치료는 불가하나 통증은 줄일 것이라 하며 기도팀의 응원으로 수술을 하고 기적으로 2년 후에 걷기 시작하여 아픈 곳이 없다며 25년을 사셨으니 감사한 것 뿐이다. 척추를 위하여 무거운 일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지시였으나 몸에 벤 일을 멈추지 못하다가 결국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지만 남편과67년 해로하고 남편을 먼저 보냈다. 그후 어머님은 장남에게 오시어 6년간 며느리와 깊은 사랑을 나누며 가정은 행복하였다. 그의 삶은  성경 읽고 찬송하며 적게 잡수시고 잘 주무시며 의사를 볼 일이 없었다.  
내가 장남으로 한국에서 부모님을 모시지 못한 불효라고 하자 어머님은 죽을병에서 살린 것보다 더 큰 효도가 있는가 하시며 나를 위로하고 감사하니 내가 감사하였다. 며느리가 장보러 가며 무엇 접수시고 싶은가 물으면 주는 대로 먹는다 하시니 지혜를 배우며 더욱 성의를 다하여 섬기게 된다. 그의 기도는 누구에게 짐이 되지 않고 죽을 때는 자는 듯이 주 앞에 가는 것이라 하시더니 손녀 박사학위 수여식에 참여하고 작은 손자 결혼을 보고자 뉴욕 큰 손자집에서 저녁식사 후 앉아 기도하는 것 같았는데 조용하게 숨을 멈춘 상태였다. 기도대로 되었다. 어머님은 삶의 지혜, 정직, 근면, 겸허한 사랑과 섬김, 기도의 본을 남기시고 지금 주의 나라에서 찬송하고 계실 것을 알기에 더욱 감사한다.. 









Tuesday, May 7, 2024

어린이 없는 어린이 날? Children’s Day without Children?

어린이 없는 어린이 날? Children’s Day without Children
한국의 실버타운이나 미국의 은퇴촌은 인기가 있다. 노년에 편안하게 살 수 있어 좋고 또 자녀들의 걱정을 덜어주기에 좋아한다. 은퇴촌을 두 곳 방문하니 입주자들은 기쁘고 즐겁게 살았다. 골프카트가 교통수단이고 서로 팀을 이루어 만나고 저녁이면 함께 모여 게임과 춤을 즐긴다. 그러면서 앰뷸런스가 자주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 것은 어린이들이나 젊은이들이다. 달력에는 어린이날이지만 어린이 없는 어린이날이다. 은퇴촌만 아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 백넌사를 보니 그때는 6학년까지 학생이 많았는데 지금은 초등학생이 없어 성인교육으로 대신한다. 젊은이는 도시로 이주하고 연장자들이 남은 은퇴촌이 되어 있다.
어린이날이 되면 초등학교 주변만 아니라 어디나 장난감 의복 학습장 등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물품으로 즐비하던 가데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1960년대 인구 100명에 77명이 어린이였는데 2023년에는 15명의 어린이다. 1960년대에 0-14세가 100명에 49명이던 것이 2023에는 11명이다 교회도 2021년 통계에 영아부 없는 곳이 78% 중고등부 없는 곳 41%로 지난 10년간 주일학생 40%가 감소하였다..
한국의 출산율은 여성 1명당 1.1로세계 198개국에서 2년 연속 제일 마지막이다. 산업화 도회화 되면서 살기에 급급하여 부부가 일을 하고 여가나 오락을 즐길 시간도 없기에 자녀를 둘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또한 자녀 양육/교육비가 너무 부담이 된다.  자녀가 없으면 당장은 편하겠지만20년 30년 후 나라의 기둥은 어떻게 될  것인가? 
유럽에서 프랑스가 대표적으로 저출산이라 어린이가 적지만 프랑스에 이민해 온 모슬렘은 다산을 하면서 30년 후에는 자연스럽게 나라를 인수할 것이라 전망한다 어린이가 없으면 미래가 없지만 지금의 아이들이 앞으로 나라를 이룩할  것이다. 
산아제한은 낙태문제다. 미국에서 2020년 한해에 90여만건의 낙태가 있다가 낙태금지법이 생겼다 낙태는 생명에 관한 견해다. 생명은 하나님이 부부를 통하여 주신 선물이요 하나님이 주인이라 사람은 받는 것이요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기에 태아라도 생명의  존엄성을 가진다. 그러나 인본적인 생각으로는 태아는 내가 좌우하는 나의 소유라 생각하고 조절하는 것이다. 태어난다 하여도 어떤 문화에서는 자녀를 재산으로 생각하여 팔고 사기도 하고 심지어 처분하기도 한다. 생명자체의 존엄성이 주어지지 않는다.    
일제 치하 한국인의 인권은 없는 것이나 같았기에 방정환 선생 같은 선각자는 어린이에게서 나라의 미래를 보고 그들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그들이 씩씩하고 바르게 자라나 나라의 좋은 기둥이 되도록 색동회를 만들고 1921년 어린이 운동을 서울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펴지고 어린이날을 제정하도록 하였으나 1938년 일제가 폐지하였다가 광복 후 어린이날을 부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린이가 없으면 어른이 없고 어린이가 없다면 나라의 내일도 없기에 어린이는 나라와 교회의 가장 큰 자원이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것이라 존중하고 받아들여 양육하고 매일을 어린이날로 생각하고 어린이를 축복하여 그들이 자존감과 사명으로 자라나 나라와 세계, 교회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인재로 삼아야 할 것이다. 







Monday, April 22, 2024

머리의 화관과 찬송의 옷 Flowery Crown and Garment of Praise

머리의 화관과 찬송의 옷 Flowery Crown and Garment of Praise
시카고의 좋은 계절이라 수선화 목련이 먼저 피더니 지금은 야생 배꽃이 동리를 덮고 있다. 가는 곳마다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겨우내내 죽음 같은 슬픔과 우울에 잠긴 모습이더니 따뜻한 기운을 맞으며 꽃이 만발하고 파릇 파릇 새 잎으로 생기를 주는 것은 슬픔이 변하여 화관과 근심이 변하여 찬송의 옷이 되는 느낌이다. 
사람은 가난과 슬픔으로 마음이 상하고 무엇엔가 눌리고 있다. 가난을 피하여 미국에 와서 자유롭게 밤낮 일을  하며 집을 구하고 아이들을 최상의 학교에 보낸다. 만족할 만 한데 마음에는 무엇인가 부족과 공허를 느낀다. 한국에서의 재능 기술과 달리 삶을 새롭게 시작하고 또 나라는 존재가 인정받지 못하여 자존감이 상하는 아픔을 가지며 집과 일터로 내왕하나 옆집 이웃과는 교제할 틈도 없이 눌린 생활로 답답하다. 교회가 숨통을 열어주나 거기도 끼리끼리가 많아 마음이 상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조국이 잘  살게  되었으나  사람들의 얼굴에 기쁨과 웃음을 보기 힘들고 국민의 행복지수는 세계의  바닥이듯 만족이나 감사가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인가? 창조질서가 파괴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고 자기 호흡을 주어 살게 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 사람 속에 들어와 풍성한 생명과 만족을 누리게 함이다. 그러나 사람이 잘 살면서 하나님을 배제하고 자기가 주인이 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하나님을 밀어낸 빈 자리는 돈이나 재산 명예 같은 세상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아 공허와 허탈이다. 솔로몬이 하나님 중심으로 시작하여 지혜와 부의 복을 받고 명성을 얻으면서 자기 중심으로 많은 정략적인 부인을 맞고 그들의 신을 같이 섬기며 하나님께 등을 돌리자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며 슬피 부르짖었다.
어떻게 대처하나?  한계를 느끼며 우울하고 좌절하여 술과 약을 택하고 생명을 해친다. 한국의 노인 청년 자살율이 세계 최고라는 것은 충격이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가 복음을 듣고 마음이 상한 자가 위로를 받고 포로 된 자가 자유를 얻고 갇힌 자가 놓임을 받는다는 이사야 예언을 이루고자 자신이 사람 예수로 오셨다. 이 예언 성취가 예수님의 사명이었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갈릴리를 중심으로 불치병 나병환자 맹인을 고치고 귀신 들린 사람을 해방시켰다. 그를 만나면 슬픔과 눈물의 머리에 즐거움의 기름을 바르고 화관을 쓰고 찬송의 옷을 입는다. 평생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화관과 찬송의 옷을 입으면 하나님이 영광을 위하여 심긴 의의 나무가 되어 그의 의와 사랑을 나타낸다. 주의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수를 전할 때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빛나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고 처음 교회가 창립되었다. 사람들은 제자들을 땅에 온 신이라고 할 정도였다. 요한 웨스레는 옥스포드 출신 엘리트로 개척지 미국 원주민에게 복음 전파 2년에 실패와 좌절감으로 본국에 돌아가는 길, 풍랑이 심한 배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데 한쪽에 조용하게 앉아 두려움 없이 찬양하는 이들을 만나고 런던에서 그들의 모임에 참석하여 말씀을 듣는 중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하며 회심의 새 사람이 되고 감리교를 창설하여 온 세상에 복음을 나누었다. 이렇게 슬픔과 좌절이 지금도 머리의 화관과 찬송의 옷으로 변하고 있다.
















Monday, April 15, 2024

보지 않아도 Even though I do not See

보지 않아도 Even though I do not See 
우리는 본다는 말을 항상 사용한다. 음식의 맛을 본다 먹어 본다. 사람을  만나 본다 지나 본다 등등이다. 본다는 것은 직접 경험하여 알고 확인하는 것이다. 보면 알고 믿을 수 있기에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 한다. 
예수님이 부활하였다는 말을 듣고도 제자들은 믿지 못하였다. 도마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못자국 창자국을 만져 보아야 믿겠다고 하였다.  로마는 많은 신을 숭상하며 신상이 있는데 기독교는 신상이 없기에 무신종교라 로마의 신들이 분노하여 화를 내린다고 하여 네로황제가 박해를 시작하였다. 보이지 않으면 없다는 생각이다. 도마는 주를 보자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고 로마의 콘스탄틴은 왕위쟁탈 전쟁에서 십자가를 보고 승리하여 기독교를 공인하였다. 보는 것이 힘이다.
그래도 보는 것에는 제한이 있다. 보아도 다 보지 못하고 어둠에 가리면 볼 수가 없고 잘못 볼 수도 있다. 마리아는 부활한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알았다. 외모를 보면서 속은 보지 못한다. 사무엘이 이새의 맏아들 엘리압을 보며 왕의 후보로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버렸다며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본다고 하신다. 부모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던 막내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드는 자라 그의 뜻을 이룰 것이라 한다. 
예수께서 도마에게 너는 본고로 믿는가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 하신다.  부활하신 주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신다. 제자들이 두려움으로 문을 닫고 있는데 주께서 나타나 평안의 인사를 하신다. 제자들이 그를 유령으로 알고 두려워하자 주님은 살과 뼈가 있다며 음식을 요청하고 잡수시더니 보이지 않은다. 살아 있음을 확인하였으니 보이지 않아도 믿을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 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신다. 하나님이 아담을 만든 후에 그 코에 숨을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한 것과 같다. 목숨은 목의 숨이라 숨이 있으면 살고 없으면 죽음이다. 주의 숨, 주의 영이 들어오면 내가 살고 그가 내 안에 계시며 나는 주를 알고 믿는다. 아무라도 성령이 아니면 예수를 주로 시인할 수가 없다. 
성경 말씀으로 주를 알고 믿게 된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은 하나님이요 또 그리스도 예수시다. 말씀을 듣고 읽고 받아드리면 말씀과 함께 주께서 내 속에 계신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것은 읽는 자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구주임을 알고 믿게 함이었다. 말씀을 통하여 주를 만나고 확신하게 된다. 또한 기도를 통하여 주를 알게 된다.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대화로 인격적인 소통이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을 받고 주께서 살아계심을 알게 된다. 
예수께서 아버지에 대하여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한다. 주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신다. 아들을 보면 아버지를 안다. 믿음의 사람을 보면 예수를 보는 느낌이다. 선교지나 내 주변에서  살아계신 주님이 내 인격과 삶을 통하여 나타나면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를 알게 된다. 베드로는 그들이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 그를 사랑하고 믿으며 기쁨을 가진다고 하였다. 예수를 눈으로 보지는 못하여도 그를 알고 믿음으로 하늘나라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Monday, April 8, 2024

살아 계시기에 Because He Lives

살아 계시기에 Because He Lives (4/6/2024)
오래동안 만나지 못하고 연락이 없던 친구를 뜻밖에 만나게 되면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만나는구나! 반가워한다. 살아 있으면 만나게 된다. 부활하여 살아 계신 예수남과 나는 어떠한가? 
예수께서 가장 참혹한 십자가 형틀에 달려 돌아가시고 로마 군인은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면서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피와 물이 다 쏟아지게 하였다.  그의 사형을 결정한 종교회의에 찬동하지 않은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이 그를 바위에 판 무덤에 장사하고 큰 돌로 무덤문을 막았다. 종교지도자들은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고 살아 났다고 할까 하여 황제의 도장을 찍어 무덤을 인봉하고 경비병을 세워 지키었다. 로마의 세력이 하는 일이라 누가 도전하거나 대항할 수가 없었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게는 완전 충격이요  두려움이었다.  제자들은 잡히어 같은 형벌을 당할 수가 있기에 믿음을 버리든지 아니면 숨어야 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의 죽음을 대신하여 죽음으로 죽음의 원인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죄를 정하는 율법의 정신을 완성하고 죄에서 풀어 자유와 생명을 주시기에 그 생명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자 무덤을 열고 부활하셨다. 세상 죄를 대신하여 죽는다고 하면서 그가 죽음으로 끝난다면 그는 자기 죽음도 해결하지 못하고 더욱 다른 이의 구주는 될 수가 없지만 그는 살아나시고 인간 구원의 길을 열었다. 이제 누구나 예수님을 믿으면 죄의 용서와 구원을 받는다. 그의 부활은 인간 이성과 율법을 초월하는 일이라 주님은 살아난 후 40일간 주로 제자들을 만나며 자기가 살아 있음을 확인시키고 믿음을 세우셨다. 
주를 사랑하던 몇 여인은 그의 시체에 향유를 바르고자  무덤을 찾아갔다. 이미 돌은 굴러가고 문은 열려 있다. 천사가 나타나 그는 살아나셨다고 한다. 혼비백산 놀란 자들이 떠나가지만 마리아는 남아서 울며 살핀다. 앞에 나타난 사람을 동산지기로 알고 시체에 대하여 불으며 자기가 가지고 가겠다고 한다. 주께서 마리아야 부르신다. 주님의 부활 후 처음 만남이다. 그를 사랑하며 슬픔에 빠진 사람을 만나 평화와 기쁨을 주신다. 
제자들은 두려움으로 집에 모여 문을 닫고 숨어 있다. 주께서 오시어 평안을 전하며 그들을 만나신다. 유령인 줄 생각하고 놀라는 그들에게 자기는 살과 뼈가 있음을 보이며 먹을 것을 청하여 잡수시었다. 기쁨과 확신에 찬 그들을 내어 보내신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도 만나 확인시키셨다. 
실망과 좌절에 쌓여 시골 고향으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 함께 동행 대화하며 메시야 성경구절을 해석하며 저녁 숙소에서 음식을 나눌 때 그들이 주를 알아보았다. 그들은 마음이 뜨거워 제자들에게 돌아가 주의 부활하심을 전하였다.
반대자도 만나신다.  예수를 처형한 종교지도자들은 그가 부활하였다며 모이는 자들을 이단으로 정하고 척결하는 일에 젊은 사울을 앞세웠다.  박해길에 나선 그를 주께서 이름 불러 만나자 그는 눈이 열리고 박해자에서 전파자로 변화되어 세계 선교의 선구자가 되었다 
예수께서 살아 계시기에 지금도 사람을 만나신다. 목회 초창기 어려움으로 어둠을 겪을 때 부활의 주님을 만나 힘을 얻은  목사는 당시에 나온 빌 게이더의 살아 계신 주를 찬양하며 주님이 바로 힘과 소망 생명이요 교회의 증심임을 확인하였 다.  어떤 형편에서나 주님이 나를 찾아오시어 만나시고 나를 세우시고 새롭게 하심을 오늘도 경험할 수 있을까! 







Tuesday, April 2, 2024

약사의 가장 어두운 날 The Darkest Day of History

약사의 가장 어두운 날 The Darkest Day of History
미국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날은 1780년 5월18일로 선불 연기에 짙은 안개와 검은 구름으로 동부가 덮인 때였다. 미국 민주정치에는 2021년 1월 6일 대통령 선거 결과에 불만을 가진 자들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하여 국정을 마비시킨 날이라 한다.  민족적으로는 유대인이 독일 나치에서 6백만이 학살을 당한 날이요 한 나라로는 강세 일본이 미국 진주만 공격으로 이차대전을 확대하는 가운데 미국이  히로시마에 1945년 8월 6일 최초의 원자탄을 투하하고 8월9일 나가사끼에 제 2의 원자탄을 투하하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일왕이 8월15일 무조건 항복한 날이라 할 것이다. 어둠은 개인이나 단체 나라가 밖으로 안으로 존재가 위협을 받으며 삶의 힘과 희망을 잃어버린 형편이다. 
세계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날은 언제일까? 세상의 빛 예수께서 배반과 죽임을 당함으로 빛이 끄진 날일 것이다. 어둠의 세상에 빛을 창조하여 아름다움을 주신 하나님이 삶이 죄의 어둠으로 덮인 세상에 빛으로 아들을 보내어 길을 보여 주시고 마음과 생각의 아름답고 추함을 들어내자 어둠이 그를 받아드리지 않고 오히려 그를 배척하였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시기와 증오로 그를 잡아 죽이려고 기회를 찾는다. 한 제자가 배반하여 주께서 밤에 기도하는 동산으로 폭도를 인도하여 선생님 안녕하셔요 인사하며 입을 맞추는 것을 신호로 스승을 반대지에게 넘기자 제자들은 도망하고 죽더라도 주를 따르겠다 장담하던 베드로는 세번이나 주를 모른다고 할 때 주님에게는 어둠이 닥쳤을 것이다. 그는 종교재판에서 신성모독으로 정죄되고 치안과 법을 맡은 로마 총독은  그가 무죄임을 알고도 무리의 소리에 눌려 그에게 십자가 처형을 언도한 것은 종교와 국법의 어두움이었다.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때 대낮 3시간 온 땅이 깜깜하였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의 절규는 영혼의 어두움이요 바위무덤에 묻힘은 생명이 꺼진 캄캄함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가운데 9번 째가 3일간의 흑암이었다. 낮의 해와 밤의 달이 일을 멈추자 세상은 어둠이요 생명활동은 중지되었다. 
하나님을 거역하여 배를 타고 도망하던 요나로 풍랑이 일어나고 그가 바다에 던짐 받자 큰 물고기가 그를 삼키고 고기 배속에 있던 3일을 주께서는 자기가 겪을 아둠이라 하셨다. 주님은 인간의 모든 어두움을 친히 경험하고는 어둠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가장 어둔 밤을 가장 밝은 아침으로 바꾸어 주셨다. 어거스틴이 탕아로 어둠 속을 방황하는 중에도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는 계속되었다  집어서 읽으라는 어린이들의 놀이 말에 이끌려 그가 읽은 말씀,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으니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롬13:12)는 충격파로 그는 빛을  만나 회심하여 주의 사람이 되고 교회에 최대 공헌을 하였다. 어떤 목사는 수난주간 금식하며 목요일 세족식과 성찬식을 하고는 가장 깊은 영적 어둠에 빠져 신음하다가 토요일에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며 생명의 기쁨과 자유로 부활 새벽을 새로운 감격으로 맞았다고 한다. 
새벽의 어둠이 가장 깊듯이 역사에 가장 어둔 주님 무덤 3일은 역사에 새 아침을 가져 왔다. 이 아침을 나의 아침으로 맞을 수 있을까?  






Tuesday, March 26, 2024

죽으면 죽으리라 If I Perish I Perish

죽으면 죽으리라 If I Perish I Perish
해리스버그 전환기 교회에서 사역할 때 언덕 위 아파트에 살며 언덕 꼭대기 교회 옆 묘기를 거의 매일 산책하며 97세 노인과 16세 젊은이가 묻혀 있는 것을 보며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죽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하였다. 삶에 대한 많은 설명이 있지만 그것은 죽음을 향하여 가는 과정이요 죽음은 삶의 끝이요 피할 자가 없다는 것이다.  죽음이 끝이라면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살까?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 먹고 마시며 즐기자. 살아 있는 동안 주어진 삶의 사명을 수행하자. 살기 위해 삶에 장애를 없애자 …한다.
에서는 야곱의 쌍둥이 형이지만 서로의 살이 달랐다. 에서는 들의 사냥군이나 야곱은 집사람으로 엄마의 일을 도와 죽을 끓인다.사냥에서 돌아온 에서는 배가 고파 동생에게 죽 한 그릇을  요구하자 야곱은 형의 명분과 바꾸자고 한다. 배고파 죽겠는데 형이라는 이름이 살려주나 하는 식으로 에서는 응하고 맹세하였다. 한 순간 살려고 한 것이 평생 후회하고 그 후손의 운명이 되었다. 육신 욕심, 안목 정욕  생의 자랑을 이기지 못하여 일어나는 많은 사례의 하나다. 
그런가하면 자기를 죽이며 다른 사람을 살리는 자가 있다.
유대인 에스더가 파사 왕비가 된 때 파사에 사는 유대인은 죽음을 직면하고 있다. 총리 하만은 자기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는  모르드개에 분노하여 그만 아니라 그의 종족을 멸절하도록 날짜를 정하였다. 왕후의 숙부  모르드개는 왕후에게 자기 민족을 구하도록 왕에게 탄원하기를 원하지만 왕후라도 왕이 부르지 않으면 왕 앞에 나갈 수 없었다.  “너는 왕궁에서 홀로 안전할 줄 아는가?  너의 민족은 사라진다”를 듣자 왕후는 3일간 금식하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왕 앞에 나아간다. 왕과 총리 하만을 왕후의 잔치에 초대한다. 하만이 유일하게 최고의 대우를 받고 나오는데 모르드개는 그를 본척도 하지 않는다. 하만은 분노하여 모르드개를 매어 달도록 나무를 세우고 왕의 허락을 얻고자 한다. 모르드개가 살아 있으면 하만은 죽음 같은 치욕을 느낀다. 그가 죽어야 자기가 살 것 같다. 왕후는 두 번 째 잔치에서 왕에게 자기 생명을 구하여 달라 요청하고 하만을 고발한다. 모르드개를 달려던 나무에 하만 자신이 달리고 유대인은 죽음을 면하고 살아 번창한다. 살려면 죽고 죽으면 산다는 실례다.
.예수께서 사랑과 능력으로 사역한 것이 기득권의 종교지도자에게는 큰 위협이었다. 그들이 살기 위해서 예수를 제거하기로 정하다. 예수께서는 12군단이 넘는 천사를 동원하여 자기를 보호할 수 있지만 그런다면 만백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어떻게 이룰 수 있겠는가 하신다. 아버지께 버림받는 아픔을 가지면서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도록 십자가 죽음으로 향하였더니 부활함으로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신다
나라와 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거는 군인, 시민의 안전과 치안을 위해 헌신하는 소방관 경찰, 건강과 생명을 위하여 코비드 팬데믹 때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은 의료진 등은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 사는 사람이라 생각된다.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나로 주의 뒤를 따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주의 삶을 본받을  수 있을지를 물으며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Saturday, March 23, 2024

생명력을 새롭게 Fresh Life Energy

생명력을 새롭게    Fresh Life Energy
                  
죽음 같던 나무와 땅을 해치고 돋아나는 새싹에서 생명의 힘을 본다. 쉽게 피곤하고 힘이 약하여 여기 저기 아픈 데가 생기며 많은 제한을 가지는 80 이후에도 어쩌면 9988 생명력을 새롭게 할 수 있을까?
지난 몇년간 나는 몸과 마음에 문제가 생기면 주께서 나를 처음 만드신 때의 형편으로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며 응답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데 최근 나를 살리는 생명 리셋 이란 전홍준 외과의사가 쓴 책을 알게 되었다. 그가 45년간 환자를 임상 치료하며  암 고혈압 당뇨 같은 치유곤란한 40여 질병을 치료하며 환자들이 수술과 약으로 고침 받고는 다시 재발하는 것을 보며 의학의 한계를 실감하였다. 그는 병을 알고 나니 삶의 기본이 태초의 자연과 창조주께로 돌아가면 대개의 병이 낫는다는 것을 임상치료로 체득하고 낫지 않은 병은 없다, 어떤 병이라도 쉽게 낫는다, 피와 몸의 독소를 제거하고 면역을 높여야 한다고 한다. 이를 위하여 호흡 음식 활동 마음 네 가지를 잘 다스려야 한다. 
맑은 공기를 심호흡 하여 산소와 맑은 피가 몸전체에 고루 퍼지게 한다.하나님의 호흡이 사람을 생령이 되게 하였다. 음식은 자연 채식 절식 소식이다. 활동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교제하고 걷기 같은 운동을 하여 몸의 온도를 높이면 면역이 증강되고 병균의 서식을 막는다. 마음은 삶의 방향을 정하는 역할하기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음에 쌓인 아픔 상처 원한 등으로 부정 비관 파괴적인 말과 행동이 나오면 병이 생긴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긍정적이고 세워주는 생각 말과 행동은 생명을 풍요하게 하는 힘을 더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다, 나는 존귀한 존재다, 어떤 형편에서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지키신다 믿고 말하며 감사하고 기뻐하면 속에서 생명의 힘이 올라온다.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과 용납, 용서와 화해로 삶의 즐거움과 힘이 일어나 독소나 병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지고 생명력을 새롭게 한다. 





Monday, March 18, 2024

섬기는 자로 As one who serves

섬기는 자로 As one who serves
금년 미국대통령 선거를 위하여 각주가 후보자를 추천하는 과정에서 지난 회요일(3/12) 공화민주 양당에서 각각 대의원 적정수 이상을 얻은 후보자가 나와 결정되었다. 전당대회에서 최종 승인하고 11월 선거의 대통령 후보자가 될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는 자들이 많다.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어린 아이에게 너는 커서 대통령이 되어라 할 때 그 소원은 무엇일까?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 지도자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무엇일까?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는 1655년 법원을 장악하기 위하여 방문하고 짐(왕)이 곧 국가다 하였다. 법원의 결정이 아니라 왕의 뜻과 지시대로 나라가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인디언의 추장이 되는 것이다. 현재도 그런 통치자와 나라들이 있어 저항세력은 제거되고 있다.
그후 100년쯤 독일북부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2세는 짐은 국가 제일의 공복이다 하며 민주적 계몽 군주로서 민주주의의 길을 열었다.  다른 사람의 인권과 의견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국민의 안녕을 위하여 제일 심부름꾼으로 섬긴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가지셨지만 그는 섬기는 자로 사셨다 일반대중의 필요를 채우셨지만 그의 제자들을 섬기셨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물으시며 자기는 섬기는 자로 있다고 하시며 실천하셨다. 만찬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대야에 물을 가지고 와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다. 제일 낮은 종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는 떡과 잔을 들고 나누어 주시며 그들을 섬기었다. 그래도 제자들은 그를 세상에 오시는 구원자 왕으로 인정하고 그 앞에서 누가 크다며 서로 다투고  어떤 제자는 직접 주님께 그의 옆자리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런 일은 세상 사람이 구하는 것이라며 주님은 그의 제자는 그를 따른다 하시며 그가 세상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하신다. 
누군가 내 발을 씻겨주고 누군가 나에게 음식을 봉사함으로 내가 섬김 받기를 원하지만 주님은 왕이요 스승으로서 백성과 제자를 섬기셨다. 그들을 하늘나라 시민이요 주인으로 인정하고 존중한 것이다. 섬김은 먼지로 더러워진 발을 씻기는 것으로 시작하여 죄로 더러워져 심판 받고 죽을 자를 위하여 자기가 죽어 흘리는 피로 그 죄를 씻어주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하고 하늘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게 하는 것으로 절정을 이룬다. 
주님의 섬김과 죽으심으로 오늘 내가 살고 영생을 소유하게 된 것이 감사 중의 감사다.
타문화권 선교사는 그들을 돕는 것 보다는 섬기는 사람이다. 돕는다면 그들을 도웅 받는 빚진 자로 만들지만 섬기면 그들을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대우하고 인정함으로 그들을 세워주게 된다. 인정 받고자 하는 자가 많은 이민교회 목회가 얼마나 어려운지 어떤 목사는 성찬상에 누워 죽음으로 자기 몸을 드린다고 기도하였다. 주의 백성 위하여 자기 생명을 온전히 바친다는 마음이다. 섬기는 자의 마지막 모습이지만 그 마음은 주님의 뒤를 따라 주님의 삶과 죽음에 참여하는 기쁨을 가질 것이라.
사순절에 나를 위한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실천하며 어떻게 섬기시는 주님과 하나되는 감격을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