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February 27, 2019

3.1운동과 기독교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and Christianity


                                      3.1 운동과 기독교 (3.1 Independence movement and Christianity) (2/27/19) 
                                                     이종형 (은퇴목사, 전 장로회신학대학원 역사신학교수)
섬나라 일본은 개인의 생존과 종족간의 공존을 위하여 강인한 훈련과 협력을 삶의 바탕으로 외부를 향해 침략과 약탈을 삶의 수단으로 하였다. 힘에 밀려 서구에 문을 열었지만 일본은 근대 과학 기술을 받아드리고 개발하여 명치유신으로 힘을 기르면서 섬의 한계를 넘어 대륙 정복의 야욕을 노골화하였다. 힘의 대결 법칙을 배운 일본의 눈에 조선은 쇄국과 당쟁의 약소국으로 대륙의 관문이었다. 일본군함 운요호의 강화도 침입과 군함을 앞세운 개방 요구에 맞설 수 없어 조선은 강화도 조약 곧 병자 수호조약을 체결하고 (1876), 임오군란, 청일전쟁, 민비살해, 노일전쟁을 거치며 1905년 을사보호조약, 1910년 합방으로 나라를 굴욕적으로 강탈당하다. 일본은 조선 국호와 국권을 폐지하고 식민 무단정책으로 인권과 문화를 말살하고 토지와 문화재, 자원을 찬탈하며 동화 개화라는 이름으로 강도정치를 하다. 미국 사상가 라인홀드 니이버의 말대로 작은 나라 한국은 그 역사상 국호를 지켜온 열국 중 기적이던 것이 일본으로 깨어진 것이다. 원수를 혐오하며 벗어나고 싶으나 힘이 없어 한탄이라 죽음 같은 노예의 삶을 언제까지 살 것인가? 감시의 공포와 곤욕의 고통이 매일의 삶이나 한계점은 있다.
속에 있던 저항과 자유의 소리가 밖으로 나타날 때가 왔다. 중국 상해에서 독립운동 단체가 생기고 미국에서는 이승만을 중심으로 일차대전후 파리 강화회의에 조선 독립 청원을 하려던 것이 일본개입으로 무산되었으나 동경 유학생 500명은 미국 윌슨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에 힘 입어 1919 2 8일 동경 조선YMCM (기독교 청년운동) 회관에 모여 이광수가 기초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거리 행진을 하다. 이를 목격한 선우 혁은 귀국하여 평양 선천 정주 등의 교회 지도자와 접촉하고 천도교와 연계하여 독립 선언을 준비하다. 최남선은 정의 평등 자유 무저항의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33인을 대표자로 (기독교16 천도교 15 불교 2)하여 1919 3 1일 서울 태화관과 탑골공원, 전국 9개 지역에서 독립을 선언함으로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때 서울 이외의 8개 지역은 모두 교회지도자가 중심이 되었다.  2개월여 독립운동이 전국에 확산되자 일본 경찰은 비폭력 만세운동에 발포 사살 체포 투옥 방화등 폭력으로 진압하고 교회 모임을 금지하다. 33일 평남 강서교회는 무저항을 강조하는 글을 배부하는데 이날 장날이라 모인 자들을 학살, 체포하고 4 15일은 수원 제암리 교회 교인을 교회에 모아 불을 지르고 피하여 나오는 자를 총과 칼로 모두 사살하는 일을 하다. 독립운동 1200여회에 참가 인원 200, 사망 750, 구속 46, 부상16, 가옥 719, 교회당 47 파괴였다. 1919 10월 장로교 총회 보고에는 장로교인 중 수감자 1642, 석방 2162, 사망 47, 예배당 파괴 12였고 감리교는 연회를 감옥에서 해야겠다 할 정도가 되었다. 피해자는 기독교 22% 천도교 15% 무종교가 61% 기타로 당시 조선인구 2천만에 기독교인 20만이나 천도교100만을 능가하여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어떻게 소수의 기독교가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주도하며 참여하게 되었나?
1)기독교인은 무엇보다 성경에 나오는 모세 다니엘 에스더 같은 신앙인물이 모두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여 헌신하였음을 보고 배우다. 나라와 민족 없이 자기가 없음을 알다. 2)스스로는 힘이 없고 약하지만 능하고 강한 하나님을 믿으면서 믿음과 소망을 가지다. 아말렉, 앗수르 등의 침략에서 나라를 지키는 것이나 에집트나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는 것이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인 것을 보면서 믿음을 기르다. 3)기독교 핵심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며 눌린 자,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것이라 인권존중, 해방과 자유는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알고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바라고 행동하다. 독립운동은 총회의 결의가 아니라 개인적인 믿음의 결단으로 참가하고 헌신하였다. 4)기독교의 전국적인 조직은 독립선언서 배포와 운동확산을 용이하게 하고 세계적인 연결을 통해 일본의 만행과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게 되다. 5)선교부와 교회가 설립한 300 이상의 남여 기독교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며 믿음과 생활의 일치를 강조하고 야학과 병원 고아원 모자원 등의 사회 봉사 사역으로 기독교는 국민의 신뢰를 얻었으며 국민 1% 미만의 기독교지만 국민은 교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따랐다. 6)선교사는 다양하여 친일파 중립파가 있었지만 대개는 독립운동 지도자를 숨기고 보호하며 본국 선교부와 친지, 신문 등에 현실을 그대로 알림으로 독립 운동 정당성에 큰 힘을 싣고 세계의 협력을 구하였다.
독립운동으로 독립이 바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포악이 더욱 지속되다. 일본은 중국과 월남 등 많은 나라를 침략, 전쟁하며 드디어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자 미국이 반격하여 원자탄을 투하함으로 일본은 1945 8 15일 무조건 항복하다. 조선은 자기 힘이 아니라 주어진 은총으로 36년 일본압정에서 해방되어 염원하던 자유를 갖게 되었으나 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되고 오늘에 이른다.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으면서 한국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운 기적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평화와 자유를  찾고 있기에 이를 위해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북한의 김정은이 하노이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과연 그들이 그것을 참으로 이룰 수 있을까? 자유의 나라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진정 해방과 자유를 누리고 있나?  해방과 자유는 어디서 오며 어떻게 해야 그것을 나의 것, 너의 것으로 만들어 함께 누릴 수 있을까?

Tuesday, February 26, 2019

생명의 길 The Ways of Life


사도행전 2:28-42 생명의 길 (The Paths of Life)(2/24/19 전하는 교회)
미국에 온 꿈을 이루었나? 미국의 꿈은? 잘 사는 것?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벌어 자녀 교육시키고 원하는 곳에 집을 정하고 안정되게 사는 것인가?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럴 수 있다. 미국에 온 꿈을 이루었다면 세상에 온 꿈은 이루었나? Abraham Maslow유대인 학자는 인간 요구 구조를 연구, 첫째는 생리적 필요 의식주와 성 문제  2 안전security 3 소속감 belonging 4 인정 recognition 5 자기 실현 self actualization, 그 외에 심미감이나 영성 등이라 한다. 사람은 이 하나 하나를 충족하고자 노력한다. 생리적인 요구는 이루나 안전하지 못하면, 소속감은 있으나 전자든지 인정을 받지 못하면 만족이 안된다.
애플 컴퓨터/셀폰 창업자 Steve Jobs 2011 56세로 죽음을 맞으면서 남긴 글이 2015년에 나왔다. 살아온 인생을 후회: 나는 성공의 최고봉에 도달했다고 보이고 그렇게 생각되나 내가 자랑했던 부와 인기는 죽음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일하는 것 외에는 기쁨이 없었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도 못하였다. 운전이나 돈버는 일은 남을 시켜서 할 수 있으나 아픈 것은 남에게 대신 시킬 수가 없다. 잃은 물건은 다시 찾을 수 있으나 잃은 생명은 다시 찾을 수 없다며 한탄하다.
성경에 어떤 사람이 주께 달려와 무릎을 꿇으며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나요? 그는 부자, 돈 많이 모으고 또 관원, 이름과 권세를 얻은 사람, 그쯤 되면 나이 들고 건강을 잃은 경우가 많으나 이 사람은 건강한 청년이다.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형편 이다. 그런데 그는 공허하다. 부귀공명 건강 그것이 모두가 아닌 것을 알고 영생, 참생명을 구한다. 참 생명은 무엇이며 어떻게 얻나?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오순절에 모인 군중들 앞에 설교한 내용의 일부다. 그는 기쁨 넘치는 생명의 길(2:28)을 말하며 구원을 받아 참 생명을 가지라 한다(40). 군중은 우리가 어찌할고 하며 도움을 청한다(37).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때 지진이 나며 옥문이 열리고 사슬이 풀어지는 일이 일어나다. 간수가 엎드려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나(16:30)? 구원, 참생명의 기쁨은 돈이나 지위로 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근본과 연결된다. 나는 어떻게 왔나? 목적이 무엇인가? 이것은 기독교 복음의 요약이다.

1 나는 어떤 사람:
1)하나님이 창조하시다. 생명체로 사랑과 자유, 평화를 가지도록 만들어 에덴 동산에서 살게 하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먹고 살 수 있으나 한 가지 금지 조항 곧 선악과는 먹지 말라 먹으면 죽는다. 왜 이런 금지? 선악과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이다. 주인을 알고 분간하고 존중하라. 사람은 피조물로 창조주인 하나님과는 구분된다.
2)죄를 선택: 선악과 먹음은 하나님의 것을 빼앗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 불순종이요 죄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선악을 알게 되고 사람이 하나님 만이 하는 선악 판단을 하게되니 사랑 자유 평화가 깨어지고 생명에서 떠나게 되다.
인간의 운명은 이 때부터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심판을 받게 되고 결과는 모두 죽음을 겪는다.
3)인간의 길: 이런 인간이 하나님 세계의 생명과 사랑 자유와 평화를 원하여 하나님께로 건너가고자 한다. ? 정치(유토피아). 과학(편리, 불행), 윤리 종교 등으로 가고자 하나 잠14: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2 하나님의 사랑과 대책: 이런 인간의 노력에도 여전히 죄와 죽음 속에 있음을 보는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여 스스로 길을 만들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다리를 만들고 건너오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그가 하신 일은 행10:38착한 일을 하고 질병과 마귀에 눌린 자들을 풀어주는 일을 하다가 결국 죄 없는 그가 인간 죄를 대신하여 심판 받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다. 그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함으로 생명의 길을 보이시고 기쁨과 영광을 가지셨다. 그는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다. 이것이 베드로의 설교 내용이다. 그 결과는 주께서 하신 말씀대로 요5:24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죄인이 영생, 심판이 없고 사망에서 생명 으로 옮겼다. 어떤 사람에게 일어나나?

3 사람의 책임: 주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심판 받고 죽으신 후에 부활 함으로 죄와 심판 죽음 문제를 모두 해결하신 것을 말하다. 그리고 그의 설교를 듣는 자에게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한다. 하나님을 불순종한 것을 깨달아 회개하고 주를 믿음으로 세례 받으라 한다. 듣는다. 세례는 주와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믿음은 받아드림이다. 1:12 영접 하는 자 곧 그 아들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믿음으로 예수를 영접하여 예수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참 생명을 얻는다.
모든 인류는 두 부류로 나눈다. 죄인으로서 심판을 받아 죽음에 처한 사람, 죄와는 상관 없고 심판을 받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사람이다. 여러분은 둘 중 어느 쪽에 속하나? 어디에 속하고 싶은가? 그러면 생명에 속하는 길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는 것이다. 3: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하신다. 주님은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 속에 들어오시기 원하기에 문을 두드리신다. 이 문은? 우리 마음 문이다. 어떻게 문을 열고 모시나? 기도로 한다.

주님, 나는 내 마음대로 살아온 죄인입니다. 내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나를 사랑해 날 대신하여 죽고 부활하신 생명의 주님을 모시고 살기를 원합니다. 이제 내 마음을 엽니다. 주님 내 속에 오시어 나의 주가 되시옵소서. 나를 하나님 자녀로 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생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주의 자녀로 살게 하옵소서 아멘.
이 기도를 진정으로 하였다면 지금 주님은 어디 계실가요? 내 속에 계신다. 그는 나의 주가 되시고 나는 주의 자녀가 되고 심판이 없는 죽음을 정복한 영생을 가지게 되다. 기쁨이 넘치는 생명이다. 주님을 영접하였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다. 축하한다. 바로 이 시간이 하나님의 자녀로 출생한 시간, 날짜 시간 장소를 적으면 출생증명서다.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의심이 있으면 이 출생 증명서가 확인시켜 준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형제 자매다. 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다. 한 가족 한 공동체가 되다. 우린 남이 아니라 한 가족 한 형제 자매로 서로 사랑하고 나누게 된다. 기쁨과 행복이 우리 안에 넘치게 된다. 주의 생명 부활 생명의 기쁨이 우리에게 충만하기 바란다.

동영상은 www.diasporachurch.net 

Thursday, February 21, 2019

삶의 경계 설정 Boundaries for Life


삶의 경계 설정 (Boundaries for Life) (2/21/19)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위하여 생명체는 개인이나 공동체에 경계, 한계, 영역이 있다. 삶의 경계를 넘어서 물고기가 물을 떠나거나 바다가 해일로 육지를 덮침은 재난이다. 화씨 80-70도가 쾌적 온도요 나라와 나라가 경계를 존중할 때 평화다. 최근 시카고의 세계적 명성을 가진 하베스트 바이블 채플 설립자 맥도날드가 재정 낭비, 언어 폭력으로 해임이 되고 미국 최고의 캐톨릭 추기경 맥캐릭이 성추행으로 옷을 벗기우고 세계 최고의 부자 아마존 창설자 베이조스가 불륜으로 가정이 파괴된 것은 모두 설정된 경계를 넘어간 충격적 사실이다.
처음 생명을 창조한 하나님은 생명을 위한 경계를 설정하였다. 하나님은 일남 일여 처음 부부로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부족한 것이 없는 낙원에 살도록 하고 한 가지 법을 주었다. 낙원의 모든 열매는 먹을 수 있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곧 선악과는 먹지 말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선악과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경계를 설정하는 말씀이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은 것은 경계를 침범한 일이요 선악을 알고 판단하게 되어 하나님의 것을 탈취한 것이다. 이들은 낙원에서 쫓겨나 스스로 살기 위해 땀 흘리고 고생하면서 서로 속이고 비난하며 갈등과 살상, 파멸을 연속하는 인간 역사를 만들었다.
사람은 낙원을 회복하고자 땀 흘리며 일하고 지식과 과학 기술을 발전시켜 삶을 편리하게 하였으나 실제는 과학과 기술의 경계, 한계를 넘는 더 큰 고통과 비애가 인간을 덮고 있다. 생명을 위한 처음 하나의 법 곧 내게 속한 것과 속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경계를 알고 존중하지 못한 것이 오늘 비극의 시작이라면 이것은 과학 기술로 풀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법, 경계를 지키지 못한 인간이 그 이후 다양한 문제를 풀기 위해 만들어진 무수한 법, 한계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건강한 삶을 위한 길이 무엇일까?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임을 아는 데서 시작한다. 부부가 나은 자식이라도 그 생명은 부부의 것도 자식의 것도 아니다. 생명을 주신 이가 따로 있다. 주인이 거두어 가면 생명은 끝난다. 나는 받은 생명을 관리하고 누릴 뿐이다. 내 생명을 귀하게 생각하고 건강하게 보존하고자 먹고 입고 배우고 경쟁하나 여기도 어느 정도를 넘지 못하는 경계가 있음을 본다. 중요한 것은 생명을 대할 때 항상 생명 주신 자, 생명의 주인이 있음을 생각하고 그가 생명 주신 목적을 알고 존중할 뿐 아니라 나 외의 다른 생명도 꼭 같이 존중하고 또한 받은 생명을 나누며 사는 것이다. 나이와 인종, 외모, 관계가 어떠하든지 남의 생명과 인격을 말이나 행동으로 침범하는 것은 경계를 넘는 파괴가 된다. 부부는 서로에게만 속한 경계가 설정된 것으로 이를 넘어서는 불륜은 바로 도둑이요 파괴다. 남의 것을 훔치는 일이다. 또한 자기 나이와 건강, 힘과 능력의 한계를 알고 그 안에서 최대한 누리고 나누는 삶이 행복과 만족이 되리라.


Monday, February 18, 2019

왜 성령? Why Holy Spirit?


사도행전 2:1-13 왜 성령?Why the Holy Spirit? (2/17/19 전하는 교회)
질문을 하겠다. 믿을 때 성령을 받았나? 19장에 바울이 에베소에 가서 성도들을 만났을 때 한 질문이다.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나? 우린 성령이 있는 것도 듣지 못하였다고 하다. 내가 그런 질문을 받다. 교수가 될 생각으로 미국에 와서 석사를 하고 박사 과정에 입학을 받았지만 뜻하지 않게 올바니에 가서 목회를 하게 되다. 목회 준비가 부족하여 스스로 은혜를 먼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주일 저녁 예배 있는 미국교회를 찾아가 참여하다. 1976년 어느 날 자주 가는 교회에 갔더니 외부 강사가 와서 설교를 하던 중간에 나를 향하여 가르치며 저기 있는 한국 목사 너 성령 받았나? 질문한다. 예 성령 받았다. 그러면 방언을 하나? 하지 않은다. 그러면 너는 성령 받지 못하였다 한다. 아니 이런 수가!! 정말 황당하였다. 설교 후에 교인들이 강단 앞으로 나가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나도 나갔더니 본교회 담임목사가 마이크를 내게 주며 한 말 하라고 한다. 장로교 목사 답게 성령 은사가 9가지로 성령 받은 증거가 많은데 왜 방언만인가? 그들은 상관 않고 모두 나를 둘러 서서 기도한다. 성령 받지 못한 한국 목사 성령 받게 해달라 하는 마음이다. 그들에게서 사랑을 느끼다. 내 교회에 돌아와 기도하는데 주께서 물으신다. 네가 성경을 믿나? 그럼요. 그러면 왜 방언은 믿지 않나? 잘못했습니다. 이제 믿겠습니다. 그 때부터 성령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예수께서 내가 아버지께로 가면 내가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보낸다(16:7) 승천 하기 직전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라(24:49)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1:5).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리라 하신다. 왜 성령을 받아야 하나? 성령을 받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1  성령은 생명이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라 성부 하나님이 생명이요 성자 예수 께서 생명이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니고데모가 주님을 찾아왔을 때 네가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거듭난다는 말을 니고데모가 이해하지 못한다.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 설명하다 (3:3)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다. 하나님의 살리는 기운 생기다. 성령이 들어오면 생명이 일어난다. 창조시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가득한데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다(1:2) 운행한다는 말은 닭이 알을 품듯 품고 있다는 의미다. 혼돈 공허 흑암 세상을 성령이 품으니 빛과 생명이 일어나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그 코에 생기 곧 성령을 불어넣으시자 움직이는 생령이 되었다. 성령이 임하면 생명이 일어난다. 예수께서 부활 첫 날 제자들이 유대인을 두려워 하여 문을 닫고 있는데 찾아가시다.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 쉬며 성령을 받으라 (20:22) 하시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의 새 생명, 그의 생명을 일으키는 성령을 숨으로 생기로 그들에게 불어 넣어주시다. 주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는 우리 모두가 죽음에 매여 있으나 이제 부활로 죽음을 정복하다. 생명이 죽음을 이기다. 주의 성령이 그들에게 생명을 일으킨다. 영생을 주신다. 성도들 120명이 모여 교회를 이루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몸은 생명체다. 육의 생명 아니라 주의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이 있어야 주의 몸이 된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아무리 건강해 보이는 몸이라도 호흡이 없으면 죽은 것이다. 교회가 크다 작다 할 것 없이 그리스도의 호흡 곧 성령이 없으면 그것은 몸이 아니라 시체에 불과하다. 사데 교회를 향한 주의 말씀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었다 (3:1)하신다. 교회가 재고 조사를 하여 그들의 현재가 어떠한지 살피고 조직을 새롭게 하였지만 외형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이 있어야 한다. 인공 지능이 발달하여 성능 좋은 로보트를 만들고 그것이 바둑을 두고 자동차를 조립하고 병원에서 수술까지 한다. 그러나 그 안에 생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기계에 불과하다. 우리 교회가 숫자나 장소에 상관 없이 주의 영이 임하여 우리 각자가 주의 영을 받아 있으면 주의 생명을 가지고 주의 몸을 이룬다. 120명이 모인 자리에 하늘로 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집에 가득하더니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그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하다. 빠진 사람 없이 모두가 성령을 받다. 주의 생명을 얻게 되다. 이 생명은 예수를 믿음으로 주어진다. 성령이 역사해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된다. 성령이 아니면 아무도 예수를 주시라 할 수가 없다(고전12:3) 주의 생명을 가지면 어떤 음부나 원수의 세력이 어떻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주의 생명을 가진다!!

2  성령은 힘과 권능이다. 생명은 있으나 활동이 없는 경우가 있다. 노인의 경우 생명은 살아 있지만 힘이 없어 활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식물 인간도 있다. 교회도 그런 경우가 있다. 교회 이름은 있고 사람들은 모이나 주의 몸으로서 하는 일이 없다. 성령은 살아 움직이고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더한다. 성령이 충만하다고 하는 것은 내 힘 내 생각이 아니라 성령 힘에 압도 되어 그 힘 곧 주께서 하시는대로 따라 간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무슨 힘으로 그런 놀라운 일을 하셨나? 성령의 능력이다. 그의 잉태 출생 세례 시험 그의 사역 모두 성령이 충만하여 되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다 (4:14).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그가 한 일은 모두 성령의 충만한 능력으로 된 것이다.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고 한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복음서 다음으로 기록한 것으로 어느 복음이나 서신보다 성령 언급이 많다. 사도행전에 성령을 56회 말한다. 공관복음 전체 68장에 34, 바울이 쓴 서신 중 제일 긴 로마 고전 32장에 45회 나오는 것에 비하면 행전은 성령을 많이 말한다.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 한다. 누가는 헬라인 의사다. 헬라인은 지혜와 지식을 구한다. 의사로서 눈에 보이고 증명되는 것을 믿고 따른다. 이런 누가가 눈에 보이지도 않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일을 누구보다도 많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그가 지혜와 능력이 부족함을 느끼고 몸으로 삶으로 성령 체험하여 확실히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힘과 능력이 어떻게 나타나나?
1) 초대 교회 섬기는 사람들은 자기 힘이 아니라 주의 힘으로 일을 하다. 베드로 사도만 아니라 집사 스데반 빌립 등이 모두 성령의 능력으로 주의 일을 하였다. 자기를 내려 두고 주님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에 아름다운 공동체가 된다. 주의 일을 한다면서 내 생각으로 내 이름 유익을 위할 때가 있음을 보지만 성령께서 임하여 충만하게 되면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을 한다. 두려움이나 어려움을 이기고 주의 주시는 능력으로 일을 하게 된다.
2) 성령이 임하면 지혜와 총명이 온다. 다니엘이 꿈과 환상을 해석하였다. 바벨론 왕은 그가 신들의 영이 있어 그런 것을 알았다고 하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읽을 때 모두 깨닫게 되나?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깨달아 알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을 제자들이라도 깨닫지 못하였다. 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4:2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 (딤후3:16). 성령은 모든 것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신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고전2:10,11). 베드로는 12제자 중 말이 참 많다. 사람이 방에 들어오기 전 그의 말이 먼저 들어온다고 할 정도로 많은 말을 하다. 그는 다른 11제자가 한 말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말을 하였다. 그런데 많은 말 가운데 주의 칭찬을 받은 말은 그가 예수를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그 고백에 대하여 그것을 알게 한 것은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 하시며 칭찬하다(16:17). 성령께서 역사할 때만이 주의 뜻을 바로 알 수 있다. 베드로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니 그가 성경을 바로 깨달아 1장에서 말하고 2장에서 설교하는 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말한다. 말씀을 받는 것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 있어 성령이 임해야 바르게 기도할 수 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8:27). 그때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이루어진다.

3  성령은 인종과 계층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하나가 되게 한다. 삼위가 하나시다. 예수께서 하신 일이다. 그는 천대 받고 사람 취급 받지 못하는 사마리아에 들려 남편 다섯이나 있던 여인을 만나고 그 여자 하나에게 하나님 예배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말씀 하시고 이방 두로에 가서 귀신 들린 아이의 어머니를 만나 그 딸을 고쳐 주시다. 죄인 취급 받는 세리 마태를 제자로 삼고 세리들과 잔치를 하다. 성령은 주의 일을 계속하신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니 그들이 방언을 말하다. 방언은 지방 말 곧 각 나라 종족의 언어로 내 본래의 말이 아니라 다른 말이다. 방언은 크게 두 가지로 상대방이 알아듣는 말,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있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은 오직 하나님과 나 사이에 되어지며 통역이 있어야 알 수 있는 것으로 바울이 고전 12,14장에서 말한다. 2장의 방언은 다른 사람이 알아 듣는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적어도 15나라에서 왔지만 그들이 각각 자기 말로 알아 듣다. 하나님이 자기 뜻을 알도록 하신다. 알아들으면 서로 교신이 되고 마음에 쌓은 담이 무너지는 것을 본다. 왜 담이 생기나?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니 서로 믿지 못하고 접근하지 않은다. 말이 통하면 마음이 열리고 친구가 된다. 성령이 임하니 빌립은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다른 이는 안디옥으로 가서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가 세워진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대표자를 사마리아와 안디옥으로 보내고 그들을 받아드리다. 연결이 되고 하나가 되다. 성령은 베드로를 로마 백부장 고넬료 집으로 보내시고 그가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이 듣는 사람들에게 임하다.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함을 보자 베드로가 놀라며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그들을 한 형제로 받아주다. 언어와 종족만 아니라 생각과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가 되나? 오직 성령의 역사다. 성령이 임하면 서로가 통한다. 마음이 열리니 서로 하나가 된다. 복음이 우주성을 가지는 것이 바로 성령을 통하여 된다.

우리 교회가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나? 오순절 초대교회가 필요한 것을 주께서 채워주셨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서 예수 생명, 새 생명으로 거듭났나? 우리에게는 우리 힘을 초월한 주의 능력과 권능이 있나? 우리는 정말 누구든지 주 안에서 받아드릴 수 있는가? 주께서 주의 일을 위하여 우리를 새생명으로 주 안에서 하나되게 하고 주의 능력으로 주의 일 하기를 원하신다. 이 일을 위하여 주께서 성령을 부어주신다. 언제? 안수하고 기도할 때 일어나지만 처음 오순절에는 모인 사람들이 주 앞에 겸손하게 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성령이 각자에게 임하였다. 주께서 주시는 성령은 임할만한 사람에게 임한다. 우리 교회가 겸손하게 기도하며 기다리는 가운데 주의 영이 임하여 초대교회 같은 교회로 새롭게 나아가게 되기를 바란다. 다 일어나서 함께 기도하자.

(동영상은 www.youtu.be/ZOYRfPzd8z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