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ly 31, 2023

만물의 마지막? The End of All Things?

만물의 마지막? The End of All Things? (7/29/2023)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새날을 시작하려는데 밖은 뿌연 연기로 덮여 있고 민감한 사람에게는 위험한 대기라 하니 문을 열기가 두렵다. 끝이 보이지 않는 캐나다 산불에서 온 것이다. 가뭄이면 땅은 물이 필요하여 나무와 숲의 수분을 흡수하기에 나무로 덮인 산에 불이 난다. 캐나다 동서 500곳 이상에서 타는 산불연기가 미국 일부를 강타하고 있다. 
기후는 엘니뇨 현상으로 지구기온이 올라가 기상청이 생긴 이래 최고의 기온을 보인다. 애리조나 텍사스 플로리다 서부 지역이나 라스베이거스는110-120도를 20일 이상 지속한다. 바닷물도 더워지고 플로리다 바다는 100도가 되어 산호초가 죽음에 직면하고 있다. 생명이 필요로 하는 온도의 한계를 넘는 열파는 생명을 위협한다. 시카고는 1995년 7월 2-16일 2 주간 동안 106도의 더위로 739명, 대부분 노인이 생명을 잃었다. 전기 과다사용으로 정전이 일어나고 에어콘을 작동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남극에는 바다 얼음이 녹으면서 빙하 빙산이 무너져 내리고 바닷물이 상승하며 남태평양의 섬들이나 일본은 물속에 들어갈 위험을 직면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인도 일본 한국과 미국의 버몬트 뉴욕 등은 큰 홍수로 많은 재산과 인명을 잃고 캘리포니아 한 부촌은 갑자기 땅이 꺼지면서 12채의 집이 무너지는 참변도 일어났다. 지구는 여러 면으로 몸살을 앓으며 점차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환경을 넘어서고 있다. 
사회적으로 개인이나 대인관계에서 생명존중 사상이 줄어들고 있다. 미국에서 2022년 총기 사망 47,286 중 자살 26,728(54%), 살인 20,958(43%)이고 아편약물 과다로 죽은 79,770명은 현실의 고통을 이기기 위한 발버둥을 보여주고 팬데믹 동안 우울과 좌절에 빠져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 자들이 많음을 본다. 지난 6월 한국의 한 가정 냉동실에서 얼어 있는 두 어린아이가 발견되었다. 30대 엄마는 이미 세 아이가 있기에 2018, 2019년에 태어난 아이들을 더 감당할 수 없어 저질렀다 고백한다. 또 생후 5일 된 아이가 강에 버려지기도 한다. 2015-2022 년 사이 병원에서 태어난 기록은 있으나 호적에 등록되지 않은 아이가 6천명, 그중1,025명은 확인되고 나머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살기 좋은 나라이지만 생활 자체에 시달리며 자녀출산을 원하지 않는데다 출산을 하여도 영아 살인 형벌이 2년이라 가볍게 생각하고 자녀 양육의 짐을 벗고자 하는 현상이라니 한 세대 전과는 판이한 형편이다. 나의 생명이 귀한 것처럼 자녀나 남의 생명도 꼭 같이 귀하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2020년부터 3년동안 지구에 덮친 코비드 19은 역사에 유례없이 전세계의 교회 학교 정부 회사 등의 모든 집회와 관계를 중단, 단절시키면서 지금까지 7억이 감염 확진되고 690만명의 생명을 앗아갔으니 어떤 전쟁보다 인명피해가 크다. 병균은 미지의 발생일 수가 있지만 실험실에서 만들어 세균무기로 살포될 것이라고 지금도 논쟁하고 있다. 
이런 일은 종말현상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많다. 자연재해, 역병, 전쟁, 기근, 자기 사랑이 대표적인 종말현상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이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생명 있는 동안에 서로 사랑하고 대접하며 최선으로 봉사하다가 마음의 창문을 열고 주의 날을 맞도록 준비하여야 하리라.  









살아 있다는 것 What is to be alive

살아 있다는 것   What is to be alive (7/22/2023)
인생을 3,40마일로 달리는 젊은이와는 달리 8,90마일을 달리는 노년에게는 하루를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저녁 잠자리에서 죽음 같은 잠을 청할 때 아침에 일어난다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겠나? 새 아침을 맞아 숨을 쉬고 살아 있다는 것을 알 때 감사하지 않겠나?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단지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이상이다. 어떤 지인은 15년간 특별시설에서 의식 없이 숨을 쉬고 있다. 인공적인 영양공급을 받으며 살아있다고 하지만 과연 살아 있는 것일까?
살아 있으면 움직이고 활동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같다. 노년에 고관절 골절이 되어 병상에 누우면 매일 근육이 빠지다가 대개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고 한다. 매일 걷고 간단한 운동을 하며 삶에 힘을 기르고 활동을 한다. 친구를 만나고 맛나는 음식과 마음을 나누고 웃음을 펴는 즐거움은 삶의 힘을 더하여 준다.
살아 있다는 것은 사명이요 일이다. 하루의 순간에도 시인은 시 구절이 떠오르고 음악인은 음악을 흥얼거리고 목회자라면 교회와 교인들이 머리와 가슴에서 떠나지 않겠지만 은퇴목사는 지금까지 인도하신 신실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게 되리라.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라고 다짐한 시인처럼 살아 있는 동안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께서 어떤 분인지 그가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으리라.
살아 있다는 것은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인 것을 실감하게 한다. 어떤 자는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던 중 갑자기 떠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죽음의 골짜기에서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는데 일어나 새로운 삶을 살기도 한다. 살아 있다고 하여도 내가 내 건강이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 생명을 다스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매일 알게 된다. 
살아 있다는 것은 육신만 아니라 속 사람이 살아 있음을 말한다. 생명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그가 생명이라 하시며 누구든지 그 안에 있으면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하신다. 영원한 삶은 고뇌로 덮인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낙원에서 누리는 영화로운 삶이다. 지금이라는 주어진 시간에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예수님을 모시고 그 안에 살며 그가 다스리는 천국의 맛을 보다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영원히 주와 함께 살아 있을 것을 내다보며 날마다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살기를 바란다. 





Monday, July 17, 2023

법을 지키는가? Obeying the Law

법을 지키는가? Obeying the Law (7/15/2023)
얼마 전 시카고 시에서 보내온 편지는 학교안전 지역에서 속도를 위반하였다며 벌금을 내라는 통지서였다. 내 자동차 사진과 함께 적힌 날짜와 시간은  모임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속도가 얼마라는 말은 없이 내가 6-10마일을 초과하였다고 하며 항의를 하든지 아니면 벌금을 지불하라고 한다. 놀라운 일이었으나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길에 학생이 없었지만 학교안전 지역이라는 법은 집행이 되는 것이다. 법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마음이 원하고 눈으로 보는 대로 행하며 약육강식의 혼란한 세상은 불안과 공포로 가득할 것이다. 법은 우리 삶을 제한하는 것 같으나 모두가 안전하게 생명과 자유를 누리도록 하며 우리 매일의 삶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법은 사람이 생겨나며 처음부터 있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때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과 하늘의 모든 동물을 다스리고 땅에서 나는 것을 먹으라 하시며 에덴 동산의 각종 나무의 과일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는 먹지 말라. 그것을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다. 이 법은  사람이 죽지 않고 복을 받아 생육하고 번성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의 표현이다. 
먹을 열매가 많은데도 사람이 금지된 열매를 보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 같은 탐심이 발동하여 따서 먹었다. 그러자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며 하나님이 두려워 숲 속에 숨었다. 그와 하나님과의 친근한 관계는 깨어지고 한 몸인 부부관계도 원망과 책임전가로 변하였다. 두 사람은 스스로 삶의 길을 개척해야 했고 태어난 두 아들 사이에는 살상이 일어나고 죽인 자는 그것을 부인하고 핑계를 하였지만 형벌이 따라왔다. 이에 하나님은 법에 법을 첨가하고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과 함께 많은 규정을 주셨다. 12세기 Maimonides는 이 규정들을 613가지로 정리하고 248 하라, 365 하지 말라로 구분하였다. 일반 사회에서도 수만가지 법을 만들어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규정한다. 예수께서는 많은 계명과 규정을 두 가지 곧 사람이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가장 큰 계명으로 나누었다. 
법과 규정은 하나님과의 관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것을 지키면 이로서 삶을 누릴 것이지만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관계는 깨어지고 죄책과 형벌의 두려움에 빠지기에 법을 어기고도 그것을 부인하며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중의 잘못을 저지르곤 한다. 천체의 운행이나 자연계의 만물이 법칙을 따르고 인간사회에도 규정과 도덕이 지켜질 때 아름다움과 생명을 누리지만 규정이 깨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한 가지 법을 지키지 못하는데 만 가지 법을 지킬 수 있을까? 많은 법 가운데 하나를 어기어도 죄가 되고 해당하는 형벌을 받아야 하며 행동과 마음으로 법을 어기는 사람은 누구나 형벌과 저주의 대상이기에  사랑의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나 죄는 없는 분이라 그가 우리와 함께 살며 우리 죄의 형벌을 대신 받고 죽어 죄의 값을 치르고 부활함으로 법의 정신을 완성하시었다. 오늘도 법은 우리의 죄성과 무력함을 고발하며 오직 하나의 해결인 예수를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고백하기만 하면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고 의롭게 하시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하신다.










Friday, July 14, 2023

최종적 결정 Final Decision

최종적 결정 Final Decision (7/8/2023)
식당에 가면 다양한 음식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까? 그것을 어떻게 요리하고 무엇을 첨가할 것인가 복잡한 질문에 대답하며 스스로 결정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것이 최고의 음식이거나 내게 가장 맞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어 다음에는 다른 것을 시킬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때와 형편에 따라 선택과 결정은 달라질 수 있다.
최근 한국인은 누구나 한 두 살 젊아졌다는 뉴스가 화두가 되었다. 사람마다 음력 양력으로 두 세개의 나이가 있어 혼동을 겪다가 만 나이로 통일한다고 결정하였다. 나이는 내가 얼마를 살았다는 것을 말한다. 태어날 때 한 살이라는 것은 태 속에 있는 기간을 내가 그만큼 살았다는 것을 인정함이다. 만 나이는 태 속에 있던 나의 생명이나 활동이 아니라 세상에 나온 이후를 고려하는 것이라 본다. 내가 에티오피아 의과대학에 있을 때 한 유대인 생리학 초빙교수는 태아가 태어나 8일에 할례를 받고 이름을 지을 때부터 사람이라 하여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태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많은 사람의 생각이라 이는 낙태와 그대로 연결이 된다. 
여인이 임신하면 입덧만 아니라 삶의 많은 부담이 있고 활동의 자유가 제한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건강과 경제, 가족계획 등을 고려하여 피임 또는 낙태가 많이 이루어진다 결국 1973년 소위 Roe v Wade (낙태 자유와 반대) 판결로 연방대법원은 낙태를 인정하였다. 50년 동안 많은 태아가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졌다. 누가 낙태를 하나? 2022년 통계는 20대가 전체의 절반 이상인 53%, 30대 30%, 40대 4%, 틴에이저 9%였고 인종적으로는 흑인 39%, 백인 33%, 히스패닉 21% 기타 7%였고 방식은 약물 또는 시술로 천문학적 비용이 수반되는 의료사업이다. 
낙태 논란은 처음부터 있었다. 태아도 생명이라는 생각이다. 태아의 심장 박동이 시작되는 임신 6주에는 낙태 금지, 대개는 14주 이후 또는 태아가 외부에 나와 스스로 살 수 있는 24 주에는 낙태불가 등으로 낙태를 반대하는 주가 점점 많아지는 가운데 소송이 있고 결국 연방대법원은2022년 6월24일 낙태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연방대법원이 통과시킨 낙태허용법을 같은 법원이 폐기하는 것은 ‘법은 법이다’라는 정신에 맞지 않는 것이지만 법원도 잘못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 연방 대법원 제도가 있게 된다. 낙태금지법 중심 판사는 암살의 위협을 받아 탱크로 다니고 유례 없이 청사를 철망으로 보호할 정도로 반발이 심하였다. 그래도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국가에서 최종적인 결정이 되고 모든 주와 국민은 그것을 존중하고 따르게 된다.
미국은 민권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대 직장과 대학에서 다양성을 가지고자 흑인과 여인에게 특혜를 주는 Affirmative Action제도가 생겼으나 이로서 능력 있는 자가 피부색갈 때문에 도리어 차별을 받게 되고 또한 부족한 자격자가 입학은 하였지만 졸업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은 것이 법적인 문제가 되다가 최근 연방대법원이 그 법을 폐지하고 누구나 실력으로 겨룰 수 있게 하였다. 그 밖에도 여러 다른 판결이 있었다.
세상에서 많은 결정과 판결이 있지만 마지막에 생명의 창조주로 임신전부터 나를 알고 독특하게 세상에 보내고 다스리는 하나님은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하실까 생각하게 된다. 







Tuesday, July 4, 2023

누군가의 희생으로 With Someone’s Sacrifice

누군가의 희생으로 With Someone’s Sacrifice (7/1/2023)
빌 크로더가 모스코바를 방문 중 어느 주일 크렘린 궁전 옆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였다. 신혼 부부들이 예식을 올린 후 줄을 지어 무명용사의 묘지에서 사진을 찍고 들고 있던 화환을 묘지에 바치는 것이었다. 그들이 행복한 결혼식을 하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이들 이름을 모르는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매일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음을 기억하고 감사하면 더욱 풍성함을 누리게 된다.
금년은 625전쟁 73주년이다.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한국의 존폐 위기였다.  3일만에 서울은 함락되고 조만간 남한 전체가 넘어갈 형편이었다. 급하게 유엔은 파병을 결의하고 미군이 앞장 서서 내한하였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으로 서울을 탈환하며 북으로 진격하였다. 3년 후 휴전이 되고 많은 인명피해 중에 미군 3만7천 전사, 10만 부상이었다. 한미동맹이 체결되고 한미 연대로 전쟁재발에 대비하고 있다. 잿더미에서 허덕이는 국민은 미국 및 여러 나라와 많은 자선 단체의 구호, 기술 지원으로 국가 재건에 힘을 모았다. 인재 양성을 위하여 미국 대학은 한국학생을 길렀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고 다짐하며 국민이 열심히 일하여 오늘 세계 경제 7대국에 속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나? 미지의 가난하고 조그만 나라를 전쟁에서 구하여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하겠다는 미국의 정신과 군인들의 희생에 기인한다.
시카고 근교 데스플레인스는 레이크 파크에 순회 한국 전쟁 기념관을 설치하고 참전 희생자를 추모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6.25를 전후하여 가졌다. 이곳 전쟁 기념관에는 각 전쟁에서 전사한 주민들의 이름을 새기고 이들을 기억하며 존중하고 모든 참전자에게도 같은 마음을 가진다. 이것이 미국의 힘이다. 산위에 세워진 동리라는 국가 정체성을 인식하며 미국과 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위하여 지금도 헌신과 희생을 하고 있다. 
미국의 이런 정신은 어디서 왔을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시어 가난하고 병든 자 눌리고 포로된 자에게 복음과 자유를 선포하고 결국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희생하였다. 잡히어 죽임을 당하기 전 날 마지막 만찬에서 그는 떡을 들고 감사기도를 하고 나누어 주며 ‘이 떡은 너희를 위하여 찢기는 내 몸이다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그리고 잔을 들고 감사한 후 ‘이 잔은 너희 죄를 사하고자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다. 희생하는 자기 몸과 피를 들고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사람들이 생명 얻는 것을 보기에 가능하리라. 이런 예수님 정신이 미국인의 심령에 심어지고 삶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도 세계 어디서나 재난 기근 역병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달려가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이 미국인이다. 가난하고 뒤쳐진 나라에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생명의 복음 전파를 위한 교회를 일으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희생을 실천하고 있다. 희생하면서도 감사하는 자를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으로 오늘의 한국과 내가 있는 것을 기억하고 특히 미국에 사는 우리도 감사하며 남을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