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28, 2017

집이 준비되어 있어요

집이 준비 되어 있어요 (요한복음 14:1-6)
우리 인생에 감당하기 어려운 가장 큰 아픔, 트라우마가 어떤 것인가?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을 잃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자식을 잃는 것이 가장 큰 아픔일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의 부르심을 받은 때 큰 꿈을 가지고 자기들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 3년 동안 그들은 다른 사람이 경험하지 못하는 위대한 것을 보았다. 맹인이 보게 되고 앉은뱅이가 걷고 귀신이 나가고 풍랑이 잔잔해지고 보리떡 다섯개 물고기 두마리 한 아이의 점심으로 5천명을 먹이고 12광주리가 남는 큰 일을 보았다. 그는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메시아로 유대 나라를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세울 때 그들이 함께 통치 세력에 참여할 것을 기대하였다. 이런 절정의 시기에 이제 예루살렘에 간다. 거기서 지도자들에게 잡혀 고난을 당하고 죽을 것이라 한다. 그들을 떠나갈 것을 말씀한다. 금요일 십자가에서 죽기 전 날 밤 유월절 만찬을 하면서 떡은 그들을 위하여 주는 자기 몸이라 포도주는 많은 사람의 죄를 위하여 흘리는 자기 피라 하며 받아 먹으라 한다. 그러면서 그들 중의 한 사람이 그를 배반할 것이라 한다. 정말 이해 하기 어려운 말이다. 절대로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베드로도 그날 밤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할 것이라 한다. 어떻게 된 것인가? 이 제자들은 믿을 수 없는 일이 다가오는 것을 보는 것 같다. 걱정 염려 불안 두려움 슬픔이다. 그들의 기대와 인생이 모두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우리 삶이 어떻게 되나? 마음에 근심이 대단하다. 여기 근심은 큰 풍랑에 배가 요동치는 것이다. 인생이 완전히 흔들리고 혼돈이다.

주님은 그들에게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지금까지 나를 믿고 따른 것처럼 계속하여 믿으라.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또한 나를 믿으라. 내가 하던 일을 보고 나를 믿지만 내가 하나님과 하나라는 것을 믿으라 한다. 믿음이 근심을 이기는 길이다. 무엇을 믿나?
1) 주님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라. 내가 온다고 함은 현재형이다. 지금 함께 하는 것처럼 계속 함께 있다. 주님과 함께 있을 때 그들은 근심할 것이 없었다. 먹을 것이 없어도 풍랑을 만나도 어떤 어려운 병자를 만나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주께서 그들을 도와 해결하였다. 주님은 함께 하신다. 내가 너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은다. 내 얼굴을 보지 못해도 내가 너를 떠나지 않은다. 항상 같이 한다 (마28:20)

2)함께 하심을 믿으면서 그의 말씀과 약속을 믿으라. 주를 믿는 자들을 위하여 있을 곳을 준비하러 간다고 하신다. 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오늘 우리 이민자에게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수 있다. 내가 먼저 공부하기 위하여 미국에 오다. 아내와 세 아이들이 한국에 남다. 내가 가서 준비되는 대로 부르겠다고 한다. 어찌 나만 그랬을까?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한다.
터어키 카파도키아를 방문하면 신기한 것이 많다. Goereme 도시 전체가 노천 박물관이다. 그곳에 kaymakli라는 지하도시가 있다. 8층으로 되어 있지만 현재 4층만 공개되고 되고 있어도 그 깊이가 80미터나 된다. 이 지하도시에 1만명 이상이 살고 있었고 여기 교회 수도원 수녀원도 있다. 이곳은 이들에게 생활터전이다. 더운 곳이라 낮에 일을 하고 집에 들어가면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다. 그리고 모슬렘이 들어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할 때 이들이 여기서 피난을 하였다. 안전하고 편리한 곳이었다. 여기 땅이 석회석으로 되어 있어 굴을 파기가 쉽다. 가족이 살다가 아들이 결혼하면 아버지 집에 연결하여 굴을 파서 아들 집을 만든다. 집이 완성되면 신부를 데리고 온다. 이것이 성경 시대의 결혼 후 살림을 나는 방식이다. 예수께서 믿는 자를 위하여 집을 준비한다는 말은 신랑이 신부와 함께 살 집을 준비하는 것이다.
내가 떠나 가는 것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 집으로 간다. 아버지 집은 하나님 나라다. 아버지가 계신 곳이다. 주님은 그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고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오셨는데 이제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가신다. 그 일을 이루심은 바로 그가 고난 곧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서다. 죽음을 통하여 우리 죄를 먼저 용서하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이 될 때 우리 집이 준비되는 것이다.
어떤 집인가? 하나님 나라는 더러운 것이 없다. 죄가 없다. 아버지 집은 주를 믿는 사람을 위하여 준비된 곳이다. 준비된 사람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다. 아버지 집은 낯 선 곳이 아니다. 마음이 편하고 안전하여 걱정 근심 없이 쉴 수 있고 곳이다. 완전하고 영원한 곳이다. 자녀로 인정 받으며 사랑이 있고 친밀한 관계가 있다. 계시록에서 천국에는 없는 것이 일곱가지가 있다. 계21:1- 바다 곧 거친 풍랑 없고 눈물이 없고 죽음, 슬픔, 울음 아픔이 없고 밤이 없다. 고통이 없다. 생명과 평안 자유와 기쁨이 있다. 너무나 아름답다, 순수하고 자유롭다. 생수가 흐르고 값지고 빛난 보석으로 꾸며져 있다. 천사의 노래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을 찬송한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를 위하여 준비된 집이다.
아프리카에 가서 평생을 선교하다가 은퇴를 위하여 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영국 선교사가 있었다. 항구에 도착하는데 군악대와 함께 많은 인파가 나와 환영하고 있다. 내가 선교사로 평생을 헌신하고 돌아오는 것을 알고 환영하는가보다 하며 감격이 된다. 그러나 실상은 바로 영국 왕자 일행이 아프리카에 사냥을 갔다가 돌아오는 것을 환영하는 것이다. 왕자와 환영객은 모두 떠나다. 선교사가 홀로 남았다. 아무도 그를 반기지 않고 알아주지도 않은다. 슬픔에 빠지다. 하나님 이게 무업니까? 세상 왕자도 이런 환영을 받는데 하나님의 아들인 나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아들아 그것은 잠시 세상 영화지. 너를 위하여 여기 천국에 준비된 영원한 것이 있단다. 눈을 열어 하늘나라의 일부를 보게 하였다.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3) 집이 준비되면 직접 데리러 오신다. 주를 믿는 자를 위하여서 주님이 직접 와서 우리를 그 집으로 데리고 가 함께 살도록 하신다. 빌립은 그 길이 어디인지 모른다.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다. 주님은 아버지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고 가는 길을 일러주는 것만 아니라 오시어 나를 직접 그곳으로 데리고 가신다. 베드로는 천하인간에 구원 받을 이름이 예수 외에 없다고 한다. 예수만이 천국 길이다. 그 길을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 그곳은 외롬 없이 주님과 다른 성도들고 함께 친밀한 사랑을 나누고 된다. 주님이 데리러 오신다.
영국에 Augustus Toplady라는 목사가 성실하게 일을 하다가 38세에 죽음을 맞게 되다. 죽음이 가까이 올 때 말한다. 주께서 내게 믿으라고 주신 진리 내가 설교한 영광스런 진리가 이제 실제로 경험하도록 다가온다. 내 영혼이 기쁘다. 내가 날개가 있다면 비둘기 처럼 날아 아버지 품에 안기겠다. 죽기 한 시간 전 잠에서 깨더니 큰 즐거움, 하늘의 즐거움을 어떻게 측량하랴. 곧 주님이 나를 데리러 오신다. (눈물을 흘리며) 빛 빛 빛 빛 하나님 영광의 빛이여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고 눈을 감다. 그가 지은 찬송이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494).
피츠버그에서 목회할 때 의사의 아들 챨스가 루케미아 병을 앓았다. 가끔 병원으로 심방을 하다. 그는 여러 곳에 줄을 매어 달고 있다. 코와 입에도 호스가 연결되어 있다. 한 번은 갔더니 그의 얼굴이 밝으며 무엇인가 말을 하고 싶어한다. 물어보니 그렇다고 하여 간호사 불러 입에 연결된 것을 잠시 뽑아달라고 하다. 그가 말을 한다. 자기가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저 앞에 빛이 있고 화려한 성과 함께 아주 아름다운 광경을 본다고 한다. 양쪽으로 꽃이 피어 있고 동물들이 풀밭은 즐기고 아주 평온한데 자기는 빛이 있는 성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한다. 말을 마치고 입에 호스를 다시 연결하였는데 그는 얼마 있지 않아 주님 앞으로 갔다. 영광스런 아름다움이다. 그의 장례식은 은혜 그것이었다.

주를 믿는 사람은 아버지 집으로 데리고 가시지만 주를 믿지 않은 사람은 남겨진다. 남겨진 자는 하나님과 분리된 곳에 간다. 그곳은 마귀와 그 사자, 곧 마귀를 따르는 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지옥이다. 불과 유황이 타는 고통의 장소다. 불이 타면서도 빛이 없어 어둠 뿐이다. 캄캄함 가운데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으면서도 죽을 래야 죽을 수 없는 고통이다. 더욱 비참한 것은 하나님과 이웃과 관계가 단절된 것이다. 생명과 기쁨, 자유, 평안과 관계가 없다. 세상에서 좋은 집 영원히 살 집을 마련하지만 주님 밖에 있다면 하나님 나라와는 상관 없다.
에집트에 가면 빼지 않고 보는 것이 있다. 피라밋이다. 피라밋은 왕들의 무덤이다. 그곳만 아니라 룩소에 가면 왕들의 계곡이 있는데 그것도 무덤이다. 에집트에서는 왕이 되면 바로 자기가 묻힐 피라밋이나 무덤을 만든다. 보통 20년이 걸리고 연 10만명이 동원된다. 때로는 완성하지 못하고 죽을 때도 있다. 자기가 살 집을 짓지 못하고 죽는 것이 슬픈 일이다. 많은 부장품을 넣는다. 피라밋이나 무덤이 도굴된다. 도굴되지 않는 무덤을 영국 고고학자 Howard Carter가 1922년발견하다. 투탕크아문이 9세에 왕이 되고 10년 통치 후 (1332-1323) 죽고 왕들의 계곡에 묻히다. 무덤이 준비되지 않아 다른 왕을 위하여 준비한 무덤에 묻혔는데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 5398점 그 일부로 박물관을 하나 만들다. 돌아가며 전시한다고 한다. 이런 집을 준비하고 만족스럽게 죽는다고 해도 이들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을까? 이들 심령에 주가 없으면 주께서 이들을 위한 집을 준비하지 않는다.

우리를 위하여 어떤 집이 준비되어 있다고 믿나? 주께서 주의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한 집이 있고 마귀가 그 추종자들을 위하여 준비한 집이 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주님이 오시어 우리를 데리고 아버지 집으로 가실 것을 기대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1)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때 여관에 들어갈 방이 없었다. 공중의 새가 깃들 곳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예수에게 집을 내어주는 자가 없었다. 그는 집이 없는 자의 형편을 아신다. 그가 우리 살곳을 준비하신다. 우리가 살아 있으면서 주님을 위하여 우리 마음에 방을 준비하여 그를 모시고 그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면 그는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집을 준비하신다.

2)우리가 가족의 초청을 받고 미국으로 갈 준비를 한다. 집도 정리하고 직장이나 학교도 그만 두고 비자 나오기를 기다리며 떠날 것을 기대하는데 비자가 나오지 않는다. 6개월을 기다린다. 그동안 어떻게 지나나? 이미 마음은 미국에 가 있으니 갈 것을 기대하며 세상 욕심 없이 기다린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주의 나라에 가는 것을 기다리며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상 염려 걱정 모두 내리고 주의 나라를 향하여 살며 주의 나라를 말할 것이다. 주님만이 천국 길임을 소개할 것이다.

3)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 사랑을 나눈다. 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사랑한다. 가난한 자 어려움 당하는 자 병으로 고생하는 자 세상에 눌린 자를 위하여 주의 사랑을 나누고 돌볼 것이다. 그 때 주님은 “잘 하였다 너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하신다. 주님이 우리를 데리고 가실 때 우리는 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 후 광명한 천국에 편히 쉴 때 주님을 모시고 나 살리니 영원히 빛나는 영광일세 (610) 찬송 하며 주 앞에 나갈 것이다.

(동영상은 harrisburgkorea.org 에서 볼 수 있습니다)

Monday, March 27, 2017

하나님의 완전 무장 (이사야 59:9-19)

바울이 마지막 시대 성도를 향하여 마귀를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엡6:11) 하였는데 본문은 하나님 자신이 전신 무장 하는 것을 본다. 어떻게 된 일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보는 형편(59:9-15상): 이들은 곰 같이 부르짖고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정의와 구원을 찾고 바라나 전혀 보이지 않고 빛과 광명을 찾으나 어둠 뿐이라 길을 더듬으며 넘어질 뿐이요 이들은 강한 자라 하나 죽은 자와 같다. 사데 교회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 자라고 한 현상이다 (계3:1)
이런 형편에서 이들은 하나님의 손이 짧고 귀가 둔하여 듣지 않고 구원하지 않는다고 원망하다가 스스로를 본다. 그들의 허물과 죄, 죄악이 너무나 큰 것을 인정한다. 여호와를 배반하고 속이고 하나님을 떠나 패역하고 거짓을 하며 정의와 성실을 외면함으로 정직이 없고 악을 떠나는 자가 오히려 탈취를 당하듯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들이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주께로 돌아오지 않는다.

하나님의 대책 (59:15상-19): 하나님은 이들 형편 밖에 계시지않고 이들의 죄와 고통을 보시며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는 죄인이 죄 가운데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이들을 바르게 인도할 사람(선지자)와 이들을 위하여 중보할 사람(제사장)이 일어날 것을 기다리고 기다리신다. 선지자 제사장은 거짓된 자기 말만 말하고 자기 욕심을 채운다.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으시다.
하나님 스스로 무장을 하고 나타나신다. 팔의 능력과 공의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 의의 흉배, 보복의 속옷, 열심의 겉옷으로 무장하고 맹렬한 홍수의 발로 임하신다. 주의 백성이 무장하고 악과 싸우지 않으니 하나님이 스스로 무장을 하고 나오신다. 원수를 보복하여 물리치고 자기 백성을 보호하고 자기 영광을 동서에 나타내신다. 누가 완전 무장한 하나님을 감히 대항하거나 당할 수 있을까?

오늘 형편이 당시 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없다.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서로가 원망할 뿐 바르게 인도할 사람, 중보할 사람이 없다. 하나님 자신이 아들 예수로 임하신다. 그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로 생명 바쳐 싸우신다. 원수를 멸하고 우리를 구원하며 구주 되시는 자기 영광을 나타내신다.


우리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원수로 죄악에 잠겨 있나?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로 고통을 겪으면서 믿음을 지키나? 보고만 있을 것인가? 겸손하게 회개할 것인가? 전신 무장하여 주님의 전쟁에 참여할 것인가?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따르고 충성할 것인가?

Friday, March 24, 2017

하나님의 후회 (삼상15:10-21)                 이종형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라 후회가 없다(23:19)고 하는데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고 하신다니 (삼상15:11) 무슨 말씀인가?  그에게 실망하고 그를 향한 생각을 바꾸신다는 것이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스라엘을 지도하고 있는데 백성들은 다른 나라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한다. 사무엘은 슬펐으나 하나님은 백성 중에서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키가 크고 얼굴이 잘 생긴 사울을 왕으로 세우게 하였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사명을 주셨다. 전쟁이 끝난 때에 하나님이 후회하신다고 하시다. 사울이 하나님을 후회하게 할 정도로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사무엘이 근심하며 가슴이 무너지듯 밤을 세워 하나님께 부르짖다.

사울이 전쟁을 끝내고 갈멜에 가서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 사무엘이 직접 확인하고자 사울을 찾아가니 사울은 자랑스럽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그런데 사무엘은 양과 소의 소리를 듣는다. 백성들이 아말렉에서 가장 좋은 양과 소를 끌어온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함이라 한다. 사울은 다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가서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는 가운데 왕을 사로 잡고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가지고 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면서 자기 좋은 대로 하였다. 전리품이 없다면 전쟁에 이긴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나? 왜 그렇게 좋은 것들을 모두 죽여야 하나? 그는 자기 영광과 욕심에 끌려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고도 그것을 백성들에게 전가하고 자기는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였다고 하며 오히려 하나님 예배를 위한 것이라고 정당화한다. 자기가 한 일을 인정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사울이 달라졌다. 왕으로 세움 받을 때는 겸손하게 자격이 없다고 숨어 있던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로 싸움에 승리하자 자기를 내 세우며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울의 첫 전쟁에서 승리하고 얻은 모든 것을 전장에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고 하였으나 사울은 자기와 백성을 위해 좋은 것을 탈취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움 받고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로 번영하게 될 때 자기 영광과 욕심을 채우고자 함이 하나님을 슬프고 후회하게 하여 하나님의 생각을 바꾸게 한다. 결국 사울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대신 다윗이 세움 받아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일을 하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을 후회하게 하고 있지는 않나?

Tuesday, March 21, 2017

신부 찾아 3천마일

신부 찾아 3천마일 (29:1-14)              이종형 목사 
야곱이 아내를 그의 외가 하란에서 찾도록 부모의 축복으로 보냄 받았다. 그의 나이 77, 가는 길은 3천 마일, 험하고 멀어 걸어서 1년이 걸릴만하다. 중간 벧엘에서 하나님이 나타나 그를 축복하며 허락한 것을 모두 이루도록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힘을 얻어 걷고 걸어 도착한 곳이 우물 곁, 목자들이 우물 물을 먹이고자 기다리고 있었다.  친절로 그들에게 형제여 하고 부르면서 그곳이 어디인지 물으니 하란이란다. 외가 땅이다. 그들이 외삼촌 라반을 알 뿐 아니라 그의 딸 라헬이 양을 몰고 온단다. 하나님이 이렇게 목적지 외가 곳에 인도하시고 또 라헬이 온다니 그의 신부가 될지도 모를 사람이다. 라헬이 도착하자 야곱이 우물을 막은 큰 돌을 옮기고 물을 길러 양떼들에게 먹인다. 라헬에게 자기를 소개하고 입을 맞추고 울음을 터뜨린다. 속이고 술수를 부리던 야곱이 여기서 그의 진심이 나타난다. 라헬이 달려가 아버지 라반에게 말을 하고 라반이 달려나와 그를 안내해 집으로 간다. 야곱이 사연을 말하자 그를 혈육이라고 기뻐하며 받아준다.

이 말씀에서 무엇을 볼 수 있나?
목적이 가는 곳이 분명하면 중간에 포기하거나 곁길로 가지 않고 끝까지 간다. 그것도 하나님의 동행과 약속이 같이 하면 큰 힘이 된다. 야곱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인사하고 기쁨으로 사랑하고 섬긴다. 그는 혈육의 친척임이 인정되어 가족으로 영입되고 목적한 바를 이루는 축복을 가진다.
사순절을 지나며 우리는 주님을 생각한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단절되었던 인간 세상에 그의 신부를 찾으러 오시다. 멀고 험한 길 고통과 시련이 많으나 굽히지 않고 사랑과 섬김으로 우리의 혈육됨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죄에서 건지고자 십자가에서 자기를 주시기 까지 하시다. 그 사랑에 감격한 사람이 그를 맞고 따르니 그의 신부가 되는 특권을 가진다.


우리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어디까지 어떻게 왔나? 무슨 힘으로 가고 있나? 친절과 사랑 섬김으로 살고 있나?  목적지에 이를 때 너는 내 혈육이요 한 가족이다 들어와 함께 살자고 하는 하늘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겠는가?

Monday, March 20, 2017

하나님의 시험

81:7  하나님의 시험
하나님은 능력과 사랑이시라 그 백성의 필요를 알고 채우며 인도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시 세계 최강의 나라 애굽에서 노예생활로 시달리며 부르짖자 하나님이 그 무거운 멍에를 벗기려고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해방시키셨다. 애굽 군인이 추적하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 놓여 있어 부르짖자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고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셨다. 따라오던 애굽 군인은 강물이 회복되자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 이를 본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 같은 분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하나님은 곧 이들을 시험하셨다. 매마른 광야에 물이 없다. 그들은 목이 마르다고 불평하며 지도자를 원망하고 다투었다(므리바). 우리를 광야에서 죽이고자 인도하여 내었다고  하나님을 불신한다. 큰 어려움에서 구원 받은 그들이 작은 어려움에 이기지 못하고 불신과 원망을 한다. 이들은 결국 실패자가 되어 하나님이 예정하신 큰 축복과 약속의 땅을 받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을 하였다.
이런 일이 우리 삶에 일어난다. 오래 전 한국이 어려운 때 살기가 힘들었다. 어렵게 미국에 먼저 와 안정을 한 후 형제를 초청하여 살길을 마련하여 준다. 그런데 삶의 과정에 사소한 일로 섭섭하고 마음이 상하여 서로 남남이 되는 실례를 많이 보았다. 큰 일을 잊고 작은 것에 얽매일 때가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자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 위에 임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능력과 사명으로 충만함을 입다. 그러자 곧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려고 광야로 가서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하셨다. 배고픔과 어려움이 그를 엄습한다. 마귀를 통해 시험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그렇게 배가 고파야 하나? 돌을 변하여 떡이 되게 하고 성전 꼭대기에서 나비처럼 날아내려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천하를 영광스럽게 소유하여야 하지 않겠나? 예수께서는 자기를 위하여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그 시험에 이겼더니 정말 하나님의 뜻하는 아들이 되어 하나님의 인류구원을 이루셨다.

죄와 죽음의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 받은 후에도 작은 일에 계속 넘어지는 것이 나의 현실이다. 사순절을 지나며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높이고 승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