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anuary 29, 2022

기도 모임 Prayer Meeting

 기도 모임 Prayer Meeting

지난주 미시간 교회협의회 연합기도회 모임에서 말씀을 증거하며 내 자신이 은혜와 도전을 받았다. 미시간은 자동차 3사가 있는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한인 의사와 자동차 관련 한국 회사와 직원들, 유학생이 많아 30여 한인교회가 있다. 경기가 어려워지며 자동차 회사가 존폐 위기를 당하자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형편에 교회협의회 교회들이 함께 기도하기를 결정하고 처음 모인 것이 바로 내가 한 교회에 전환기 목사로 부임한 2007년 12월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혹한과 눈비를 불구하고 매월 셋째 월요일 연합기도회로 모여 금년 1월 182차로 모였는데 주님 오시는 날까지 지속할 것이라 한다. 기도 모임을 진행하면서 자동차 3사는 회복되고 사람들이 다시 모여오고 교회는 영성이 깊어지고 하나가 되며 개인의 삶은 변화되고 제자로 자라나며 전도로 교회가 부흥하고 있다. 

구세주로 믿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는데 부활하셨다고 하더니 얼마 후 많은 사람이 보는 중에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닭 좇던 개 하늘 쳐다보는’ 격이 되었지만 그중 120명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위에서 능력이 임할 때까지 이 성에 머무르라”하신 주의 말씀을 따라 함께 모여 기도에 전념하였다. 약속하신 성령이 내리고 그들은 외국인이 알아듣는 말로 증거하였다. 개인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믿는 자가 늘어나며 교회가 탄생하고 폭발적인 성장을 하며 선교가 따라왔다. 교회의 탄생과 성장, 사역과 확장은 기도와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했다. 

종교개혁이 퍼져가자 카톨릭의 박해가 심하고 전쟁도 일어났다. 루터보다 100년전  보헤미아에서 개혁운동으로 화형 당한 후스를 따르는 교도들 소수가 모라비아에 숨어살다가 박해를 피하여 1722 년 진젠돌프 백작의 영지 한곳을 얻어 하나님의 처소 헤른후트라 이름하고 진젠돌프가 1727년 5월 형제 서약으로 기도하는 공동체로 만들어 한달 되자 삶에 변화가 보였다. 4개월후 성소 제단의 불을 꺼지지 않게 한다는 말씀에 근거하여 1727년 8월27일 남녀 각각 24명이 매일 한 시간씩 기도하기로 서약하고 연속기도를 시작하였다. 6개월만에 26명이 선교에 헌신하고 나중에는 이 작은 교단이 300여 선교사를 파송하는 기적을 일으킨 이 기도는 100년간 계속되었다. 실의의 요한 웨슬레는 런던 모라비안들의 기도모임에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회심을 경험하며 감리교 탄생의 길이 열렸다. 

한국교회 부흥도 같은 맥락이다. 하디 의료선교사가 1903년 선교사기도회에서 자기 교만과 한국인을 무시한 죄를 고백함으로 원산 부흥이 일어나고 1907년 정월 평양 장대현교회 사경회에서 길선주 장로가 자기는 도둑이라 고백하자 참여한 사람들이 각자 죄를 회개하며 한국교회 대부흥이 시작되었다.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는 ‘선교의 기적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임재와 기도의 능력이라’ 불렀다. 가난의 바닥이던 한국이6.25 전란으로 덮쳐진 잿더미에서 교회의 새벽, 철야, 산상 기도의 결과로 교회는 활성화되어 170나라에 3만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나라는 세계경제 10위권에 들어간 것이 아니겠나!

현대 세계교회의 기적 명성교회는 1980년 김삼환목사와 40여명이 기도를 중심 사역으로 시작하여 매년 3월과 9월 특별새벽기도회를 진행하는데 근래에는 5일간 연인원 20만명이 참가하여 사상 최대의 새벽기도회가 되고 나아가 교회의 많은 선교지 가운데 에티오피아의 병원과 의과대학에 6천만불을 드린 것은 선교역사에서 한 교회의 최대 규모가 되었다. 이런 역사를 보며 오늘 교회가 회복할 것은 바로 기도모임과 성령의 능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Saturday, January 22, 2022

선 악 과 The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

선  악  과 The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 

인간 타락과 죽음을 가져오는 선악과를 왜 하나님이 만드시고 사람이 먹도록 버려 두셨는가 하는 것은 큰 질문이다.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니 보기에 좋았으나 마지막에 만든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았다. 각종 동물을 그에게 보내어 아담이 그들의 이름을 지었지만 그의 짝이 없었기에 하나님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만들었다. 창조가 완성되어 보기가 매우 좋았다.

하나님이 사람을 위하여 동산을 창설하고 각종 과일 나무와 함께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게 하시며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마음대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선악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최초의 죽음이 걸린 금지조치를 주셨다. 왜 이런 금령을 내렸을까?

하나님이 입 기운을 넣어 만드신 아담은 육체를 입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속성으로 공중의 새와 들의 동물을 다스렸지만 아담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었다. 하나님은 만물에 질서의 법을 주시고 하나님과 아담사이에도 질서와 한계를 두어 아름다움을 지키신다. 아담은 원하는 바를 행하는 자유를 가지지만 또한 관계와 질서를 위하여 자유를 바르게 사용하는 책임도 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은 만물 중에 선악과는 아담에게 주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것임을 확인하심이다. “이것은 내 것”이라는 한계를 정하셨다. 아담에게는 하나님의 것을 인정하고 구분하며 존중할 책임이 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먹지 못하게 하셨다”고 뱀이 말한다. “선악을 아는” 것은 선악을 구분하는 것이지만 아담은 알고 구분하는 능력이 이미 있었다.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것이나 배필을 보자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남자에게서 나왔기에 여자라” 한 것은 지식이 있었다는 표시다. 하나님이 다윗이나 솔로몬에게 선악을 구분하는 지혜를 주신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은 그것을 먹음으로 오는 판단하고 심판하는 일은 하나님께만 속하였다는 의미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다윗은 그를 죽이려는 사울을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고 자기가 판단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다.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선악과의 영향이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을 듣고 선악과를 바라보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 보이는 욕망이 일어난다. 욕망은 좋은 것이나 그것은 한계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바른 관계가 아니라 그는 자기가 다스려야 할 한 동물의 말을 듣고 일어나는 욕망에 따라 선악과를 먹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더니 하나님 형상의 영광이 떠난 벗은 몸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친근하던 하나님이 두려워 숲 속에 숨는다. 아담은 한 몸이라던 하와를 비난하고 그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생명 관계가 깨어진 죽음이다. 생명나무 열매로 이들의 상태가 영원히 가지 않도록 하나님의 동산에서 추방되고 이들의 자녀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다. 이것이 선악과를 먹은 결과, 인간의 역사다.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셔서 죄인이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열고 예수를 믿음으로 죄 용서와 영생을 얻고 생명나무 열매를 즐기는 천국을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Tuesday, January 18, 2022

누가 다스리나? Who Reigns?

 계시록 19:6 누가 다스리나 Who Reigns? (미시간 교회협의회 연합 기도회 1/17/22)

미시간 교회 협의회 연합 기도회가 지금까지 182회로 지속되며 많은 사람이 참여하여 기도함으로 개인과 교회 그리고 지역사회에 주의 뜻이 임한 줄로 믿으며 참여하신 분들을 치하한다.

새해가 되면 새해의 결심을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 나 자신, 다른 사람과의 관계 등 여러 분야의 결심을 한다. 이 결심은 내가 수행한다. 얼마나 지켜 나가나? 처음 열흘을 잘 하면 잘 하는 수준이다. 내가 한다고 하지만 곧 해이해지고 또 잊어버리곤 한다. 누가 하는 일인가? 내가 내 삶을 다스리고 주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내 몸의 건강이나 분노와 실망들 마음이나 영적인 형편을 내가 잘 조절하고 있나? 잘 되지 않음을 고백한다.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누가 다스리나?

1  저마다 자기가 다스린다. 스스로도 다스리지 못하며 남을 다스리고자 하는 것이 우리 모습이다. 저마다 남을 다스리고자 하기에 충돌이 일어난다. 이로 인해 개인 단체 사업 국가 간에 경쟁, 분쟁과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역사 현장이다.  

나는 일본의 통치를 경험하였다. 내 말, 내 이름만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기는 지배를 받았다. 해방된 조국이 남북으로 나누이고 북한은 공산주의 독재 통치로 사람들은 더욱 억압을 당하고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파도 배고프다고 말을 할 수도 없이 인격을 잃을 정도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정치 세력은 다스린다. 발전된 바벨론은 권력과 물질 향락으로 사람의 영혼까지도 다스리는 자리에 이르렀다. 모두가 그 부귀에 탐일하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종이 되어 있고 지배를 당한다. 오늘 사회는 인터넷SNS소시얼 미디어가 말하는 대로 생각하고 믿고 따라간다. 종이 되어 지배를 받는 형편이다.


2  보이지 않는 세력이 다스린다. 지난 2년 동안 온 세계는 코비드19으로 불안과 공포에 쌓여왔다. 중국 우환에서 2019년 시작되어 온 세계로 뻗어가며 미국에는 2020년 1월에 나타났다. 세계 보건 기구에서 코비드 바이러스의 이름을 코로나, 왕관이라 지었다. 그 모양이 왕관과 비슷하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코로나 하면 왕관을 드린다는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바이러스에게 코로나 코로나 왕관을 드려요 왕관을 드려요 한다. 미생물이라도 그 말을 들으면 그렇게 행사하여 온 세상을 뒤흔들고 왕노릇한다. 사회적 거리를 두라 마스크를 하라 손을 씻으라 하고 모임과 집회를 제한하고 백신을 개발하여 바이러스에 맞서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힘 있는 존재로 뻗어간다. (2020년에 내가 미국 대통령과 세계보건기구 책임자에게 바이러스 이름을 코로나로 지은 것과 그 영향에 대해 이메일 하였으나 응답도 없다.) 이 바이러스가 지금까지 세계에서 550만 생명을 앗아 가고 미국에서 836000 명을 죽임으로 이차대전에서 죽은 418500 의 배수가 된다. 죽음은 사람을 두렵게 한다. 금년 년초 하루는 크리스마스와 뉴이어에 가족이 모이고 접촉이 많아서인지 하루 새로운 환자가 100만명이 되기도 하였다. 질병통제 예방국의 조치를 따르느라 기도회도 대면으로 모이지 못하고 가까운 사람과도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 온 세계 교회가 주일 예배로 모이지 못한 것은 역사에 없던 일이다. 

이 바이러스의 특색은 전파력이 매우 강하고 접촉을 통하여 몰래 침범해 들어와 처음 얼마 동안은 나타나지 않게 숨어 있다. 그러다가 열과 기침을 일으키고 호흡을 답답하게 하다가 결국 숨통을 끊는다. 도둑이 하는 짓이다. 주께서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라 하셨다. 도둑은 몰래 들어와 훔치다가 들키면 도망하든지 아니면 강도로 변하여 대결하고 죽이고 한다. 주께서 말씀한 이 도둑은 바로 사탄이다. 사탄이 코비드 19 바이러스를 이용하여 온 세상을 장악하고 주의 백성들이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지도 못하게 한다. 코로나, 왕관을 드려요 하면 바이러스로 가장한 사탄이 왕이 된듯 힘을 휘두르고 있다. 병원마다 환자가 차고 넘치지만 특별한 조치가 없다. 그의 세상이 된 것 같다. 개인 단체 나라도 온 세계도 그 앞에 힘이 없다.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3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계시록에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고 노래하며 24장로와 모든 생물이 자기들의 왕관을 벗어 주께 드리며 코로나 코로나! 주께 왕관 드립니다. 주께서 우리의 왕이시다고 그를 높이며 경배한다. 주께서 다스리며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다고 찬양한다. 그는 다스리기에 합당하신 분이다. 주님은 양에게 생명을 주시되 더욱 풍성하게 하신다. 주님이 다스리면 백성은 생명, 풍성한 생명, 평안과 기쁨을 가진다.  이 주님은 왕으로 다스릴 자격이 있으시다. 

  1)  그는 창조주요 알파와 오메가시다. 온 세상이 그에게서 시작되고 그에게로 돌아간다. 그가 아니면 어떤 것도 있을 수 없다. 주님은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창조자로 그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관리하고 다스린다. 그가 모든 것을 주장하신다. 개인만 아니라 나라도 그의 손에 있다. 바벨론과 느부갓네살, 파사와 고레스 모두가 주의 손에 있다. 나라의 시작과 종말이 모두 주의 통치아래 있다. 바벨론은 파사에 무너지고 넘어가고 하나님은 파사왕 고레스를 자기 종으로 사용하셨다. 바벨론 파사만만 아니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 미국, 한국도 다스리고 그 지도자도 다스리신다. 조선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 (Chosen) 한국은 하나님의 나라라 해석할 수 있다. 할렐루야

  2)  그는 전능한 왕이다. 그가 하지 못하는 일이 없으시다.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고 고백하고 찬양한다. 나라만 아니라 자연을 다스리신다. 바다에 큰 풍랑이 일게 하고 또 조용하게 하신다.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신다. 사탄을 다스리신다. 사탄이 의인 욥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자 그의 모든 것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였지만 사탄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허락 범위 안에서만 활동하였다. 하나님이 욥을 지키기에 사탄이 어떤 일을 하여도 욥을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가 없었다. 아수르가 유다를 침범해 온 때 히스기야왕이 감당하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 겸손히 기도하자 하나님은 앗수르 군대 185000명을 하루 밤에 송장이 되게 하셨다. 주께서 지키시면 악한 자가 손을 대지 못한다.

  3)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모르시는 것이 없다. 우리 생각 말 행위 모든 것을 아신다. 오늘의 것만 아니라 어제 내일 모든 것을 아신다. 개인만 아니라 나라의 시작과 끝을 모두 알고 계획하고 다스린다. 주께서 계획하고 진행하시기에 모든 것이 주의 통찰 아래 있다. 멀리서도 모두 아신다. 주님은 나사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두 아시고 그가 죽었지만 그를 깨우러 간다며 아버지께 영광 돌릴 것을 내다 보신다.  

  4)  그는 신실하시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그가 하신 말씀은 변하지 않는 진실한 말씀이다. 천지는 변하여도 그의 말씀은 일점 일획 변함 없이 모두 이루어진다. 그의 말씀 계획 통치는 영원히 변하지 않고 진실하다.

그의 통치의 성격은 어떠한가?

  1) 주님의 통치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고자 예수께서 오셨다. 주님은 사랑과 긍휼로 사역하셨다. 질병에 시달리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 사랑을 보이셨다. 주께서는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이나 12년의 혈루병 환자나 주님은 이들을 사랑으로 고치셨다. 배고픈 군중을 불쌍히 여기사 먹을 것을 주시고 죄인으로 취급되고 멸시와 소외 받는 사람들을 친구로 받아드렸다. 사탄과 그 졸개 군대 귀신에 사로 잡혀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 말씀 한 마디로 그 귀신을 쫓아내셨다. 마지막에는 사탄과 귀신을 무저갱 지옥에 던져 넣고 더 이상 사람을 괴롭히지 않게 하시고 인간을 억압하는 바벨론 독재 세력을 무너뜨리고 자유를 주신다. 사랑이다. 

  2)풍성한 생명을 주신다. 전능한 주님은 양에게 생명을 주고 풍성하게 하신다. 풍성한 생명이 무엇인가? 돈과 권세인가? 죽을 병에서 고침받고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 주가 주시는 풍성한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죽지 않은 생명,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이다. 영생은 어떻게 주어지나? 죽음은 죄의 심판으로 왔기에 죄의 문제를 처리한다. 주께서 어린양 대속물로 우리 죄인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자기를 내어주어 희생함으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기에 죄인을 용서하신다. 날때부터 중풍병 달린 자에게 너 죄 사함 받았다. 간음 현장에서 잡혀 돌에 맞아 죽을 여인에게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십자가에 매달려 그를 정죄하고 처형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자기가 죽음은 죄를 용서하고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죄가 용서되면 생명을 얻는다. 영원한 생명이요 풍성한 생명이다. 

  3)기쁨과 평화를 주신다. 주의 다스림이 있는 천국에는 사랑과 영생, 평안과 즐거움의 잔치다. 더 이상 죽음이 없다. 사탄의 세력이 없다. 독재의 아픔이 없다. 영원한 기쁨의 천국이다. 주께서 다스리신다.


4  세상 마지막 천국이 있지만 오늘 전능의 주가 다스리는 천국을 가질 수 있을까?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며 외치신 첫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이다. 천국 곧 주의 통치가 일어나는 길은 회개를 통하여서다. 회개는 돌아서는 것이다. 가던 길을 돌아서서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것이다. 

  1)회개가 필요한가: 에덴에서 사탄이 한 처음 일은 사람으로 하나님이 된다는 거짓을 말한 것이다. 저마다 내가 왕이다 하나님이다 하는 생각은 사탄에게서 온 것이다. 결국 하나님을 배제하고 저마다 자기가 왕이 되어 다스리고자 하니 거짓과 술수, 투쟁과 살상이 일어나고 사람을 두려움과 고통에 빠뜨린다. 주께서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으로 전쟁과 기근과 역병을 허락하신다. 고통 속에서 생명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기회로 삼으라는 것이다. 

오늘 내 자신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천국을 소유하나 아니면 내가 다스리겠다며 갈등하고 고통을 겪나? 교회는 어떠한가? 국가는 어떠한가? 개인이나 교회 국가에 얼마나 많은 아픔들이 있나? 성경에서 이스라엘 왕과 국민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어떤 나라도 감히 침범하지 못한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싸우시며 그들에게 평화를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면 전쟁과 기근과 역병이 일어나 백성은 고통과 죽음을 당한다. 성경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러하다. 생명과 평화 회복의 길은 회개다. 돌아서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에 왕으로 모셔드리는 것이다. 내가 아니라 주께서 다스리고 일하게 하시는 것이다. 나라가 태평을 누리고 개개인에게 생명이 일어난다. 이스라엘만 아니라 나라, 교회와 우리 개인에게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본다. 

미국이 건국될 때 그것은 하나님 중심이었다. 잘 살며 부요하여 일등국가가 되자 점점 인본이 되고 하나님을 배제하는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 낙태와 동성애 살상이 언제까지 자행될 수 있을까? 하나님이 그대로 내버려 두실까? 팬데믹 역병을 하나의 징계로 받을 수 있을까?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 

  2)회개하고 주를 왕으로 모실 때 생명과 평화가 온다. 다윗이 자기 힘을 과시하고자 인구조사를 한 때 하나님이 벌을 내리시며 역병을 보내었다. 3일에 7만명이 죽었다. 천사가 칼을 들고 예루살렘을 향하였다. 다윗이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한다. 범죄한 것은 나인데 이 백성은 무슨 일을 하였나요? 나와 내 집을 치소서 하며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섰다. 천사가 칼을 거두고 역병은 끝이 났다. 다윗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하였다. 

오늘 오미크론으로 우리 이웃에서도 고통당하며 죽어가는 사람을 본다. 어떻게 할까? 우리 성도들이 회개하고 기도할 때다. 바이러스에게 내어준 코로나 왕관을 도로 찾아 그 왕관을 주께 드리며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찬양하며 선포할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이다. 이제 우리가 조국과 미국, 세계를 대신하여 부르짖고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스스로 왕이 되어 다스리고자 한 모든 죄를 회개하고 돌아와 기도한다. “주님 전능하신 주님, 사랑의 주님, 주께서 나의 왕입니다. 나의 통치 영광 자랑 고집 모든 것을 주의 발 앞에 내려놓고 주께 왕관 드리며 왕으로 모십니다” 한다.  


전능의 주가 다스리시니 바벨론이 무너지고 원수 마귀 사탄의 세력이 불못에 던져지고 주께서 통치하는 주님 나라, 즐거운 잔치의 축제가 일어난다. 이 잔치에 주를 모신 우리가 참여한다. 고난 당하며 믿음을 지킨 주의 종들이 참여한다. 너희가 나의 고난에 함께 하였으니 너희가 내 나라에서 나와 함께 다스리며 보좌에 앉으리라 하신 주님의 약속이 신실하게 이루어진다. 할렐루야. 

누가 다스리나? 우리 개인과 공동체가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고 크게 찬양하고 선포하고 행함으로 주의 나라가 임하여 풍성한 생명의 잔치에서 기쁨을 누릴 것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찬양하고 기도하기를 축원한다.  



Monday, January 17, 2022

한 마디 말의 힘 The Power of a Word

 한 마디 말의 힘 The Power of a Word

만물은 나름대로 소통 수단이 있지만 사람은 말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교신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말을 하면 말의 내용만 아니라 소리의 진동이 전달되고 상대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킨다. 돌아보면 지난 날 누구의 한 마디 말이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또 기분을 상하게 하고 슬픔과 실망을 주기도 했다. 불안과 좌절에 빠진 한 고아가 지구 저편에서 온 후원자의 한 마디 말로 희망과 삶의 의지를 얻고 변화가 되었다. 일단 입에서 나간 말은 현실이 된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라 그가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현실이 되었다. 우리가 최고의 현실을 창조하려면 최고의 말을 선택할 것이다. 

캘리포니아 대학 물리학과 베이커 교수는 학기초 학생들에게 “여러분은 이 과목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나 50%는 통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대로 되었다.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능력을 주신 것과 그 능력은 크게 개발될 수 있음을 알자 말이 달라졌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이 과목을 통과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과제는 어렵지만 함께 노력하고 도전합시다.” 꼭 같이 어려운 과제를 모두가 좋은 성적으로 통과하였다. 죽이고 살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기에 자기의 불운이나 실패로 불평 원망의 말을 하거나 또는 승리 감사 평화의 말을 계속하면 말하는 것이 사실이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의 존재 희망 활동을 어떻게 표현할까? 내가 보는 나, 다른 사람이 말하는 나의 모습이 전부인가! ‘나는’ 바보, 실패, 쓸데 없는 존재인가? 아니면 어느 부부의 말대로 ‘나는’ 그의 사랑, 기쁨, 행복인가? 아침에 일어나며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날의 자기가 된다. 

12살의 여아가 죽었다. 모두 슬퍼하며 울고 있는데 예수께서 그가 죽지 않고 자고 있다 하니 모두가 비웃는다.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얘야 일어나거라” 하니 그 아이가 잠에서 깨듯이 일어났다. 12살에 시골집을 떠나 도시로 홀로 유학하며 호기심, 두려움이 많은 아이에게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함께 하리라” 말이 왔다. 그는 혼자가 아니라 그분이 항상 같이 하신다는 것이 그의 평생 삶에 현실이 되었다. 어떤 일을 어떻게 보고 어떤 말을 할 것인가가 운명을 결정한다.  

말은 마음에서 나온다. 꿀인가 쓰레기인가? 씨앗인가 총칼인가? 쌓인 원망 불평 분노 아픔일 수도 있고 가득한 기쁨과 평화, 감사와 사랑일 수도 있다. 말하기 전에 잠깐이라도 그 말이 나가면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인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내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두고 그 말이 나오게 할 수 있을까? 성경은 하나님의 ‘입 기운’으로 된 말씀이기에 생명을 일으키고 활동하는 능력을 가진다. 예수께서 사탄의 시험을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자 시험을 이기고 사탄은 떠났다. 예수는 육신을 입고 오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말씀이다. 어떠한 일을 만날 때 내 생각이 아니라 내 속에 계신 주님과 그 말씀을 말함으로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생명과 평안을 일으키는 말의 힘을 날마다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Tuesday, January 11, 2022

풍성한 생 명 Abundant Life

풍성한 생 명 Abundant Life(22-1-11 KCBS 은목교회 방송설교)

요10:10

새해를 맞이하며 주의 은총과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여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요10:10에 근거하여 주님의 풍성한 생명이 넘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지난 2년간 코비드 19라는 팬데믹으로 온 세계는 마비되다 싶이 하였다. 2019년 중국 우환에서 시작된 것이 온 세계로 퍼지며 2년동안 지속되고 있다. 접촉하면 감염되기에 사람들은 거리를 두고 만나지 않게 되고 모임도 취소되고 심지어 교회 집회도 제한되어 모이지 못하였지만 환자와 죽는 자는 하늘을 찌른다. 미국은 2020년 1월에 시작하여 퍼지자 대통령이 앞장 서서 백신을 맞으라고 권고하고 규정하였지만 2년동안 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금년에 들어 미국에서 하루에 100만병이 감염되기도 하고 전체 사망자 수는 금년 1월 현재 836,000명으로 2차대전에서 전사한 418,500보다 두배가 되는 수가 되었다. 우리 이웃에도 앓고 있는 자 죽은 자가 여기 저기에 많기에 두려움을 가진다. 접종을 하여도 예방을 위하여는 사람을 만날 때 일정 거리를 두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을 씻으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해이해지고 있다. 


팬데믹의 원인은 바이러스로 세계보건기구에서 그 이름을 코로나로 지었다. 코로나는 왕관이라는 말로 이 바이러스의 모양이 왕관 비슷하게 생겼다고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코로나 하면 왕관을 드린다는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게 왕관을 바치며 당신이 우리의 왕이라 말하는 것이나 같다. 그것은 하나의 바이러스이지만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엎드리며 코로나 왕관드려요 하면 그것이 왕처럼 행세하여 온 세상을 지배한다. 이 바이러스는 몸 속에 들어와도 처음은 알지 못한다. 걸렸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가 기침과 열을 일으키고 결국 호흡 기관 폐를 침입하여 호흡을 곤란하게 하다가 숨통을 끊는다. 이는 도둑이 하는 것과 비슷하다. 도둑은 들어오는 것을 미리 알리지 않는다. 훔치다가 들키면 도망하거나 아니면 강도로 변하여 대결하고 죽이기도 한다. 예수께서는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라 한다. 주께서 말씀하는 도둑은 바로 사탄의 세력이다. 사탄은 사람을 하나님과 멀게 하여 생명을 끊고 멸망시키는 일을 한다. 내가 보는 대로는 사탄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용하여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교회로 모이지 못하게 하여 하나님 예배를 방해하고 자기가 왕으로서 코로나 코로나! 숭배 받는 것을 즐긴다. 그가 왕이 되어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일은 거짓과 속임, 격리와 소외, 두려움과 위협, 고통과 죽음 뿐이다.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이다. 


여기서 인간은 끝나는가? 아니다. 예수님이 계신다. 도둑과 달리 그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함이라 하신다. 그는 하나님이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 그는 가장 낮고 천한 마구간에서 태어나고 멸시 받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나며 목수 일을 하는 아버지 요셉을 도왔다. 그는 가난과 질병 많은 귀신으로 고통 받는 사람과 함께 살며 보고 경험하였기에 그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신다. 고통을 아는 것만 아니라 그 멍에를 대신 짊어지시는 일을 하였다. 그는 자기 사명에 대하여 ‘주께서 내게 기름 부어 주심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것이라’ 며 사역하셨다. 그는 생명을 주시고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셨다. 그는 맹인을 보게 하고 말못하는 사람을 말하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나병으로 외롭게 살던 사람을 치유하여 가족에게 돌려 보내셨다. 누구도 제어하지 못하는 귀신에 눌린 사람을 풀어 자유하게 하셨다. 그는 생명과 자유를 주시는 분이다. 


그러면 공포와 죽음에 눌린 사람이 어떻게 이런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을까? 생명을 주시는 예수를 만나는 것이다. 어떻게 그를 만나 그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그가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며 외친 처음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다. 회개는 가던 길을 돌아서는 것이다. 오늘 세상이 당하고 있는 우울하고 힘든 이 고통은 우연히 온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 중심으로 살며 자기 욕심과 거짓, 시기와 분쟁, 미움과 분노, 폭력과 살상으로 가득 찬 삶을 살며 하나님을 배반한 결과라 본다. 시카고에 지난 한 해에 살인으로 천명 이상이 생명을 잃었다. 자기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사랑이 사라진 형편이다. 주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해라 이것이 모든 율법의 요약이라 하셨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만 사랑하고 물질 명예 자랑을 추구하며 살았다. 이것이 사탄의 세력에 눌린 삶이다. 이를 깨닫고 돌아서는 것이 회개다. 개인으로 할 일이요 교회가 할 일이요 사회가 할 일이다. 

회개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나아간다.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할 것이다. 주께로 돌아서서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고 세상을 다스리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심을 인정하고 그를 높이며 나의 주로 나의 왕으로 모시는 것이다. 그에게 왕관을 드리고 그를 섬긴다. 바이러스에게 왕관을 드리고 두려워 하여 모이지 못하는 것과 다르다. 주님은 사랑이라 그에게는 빛과 생명이 풍성하고 그는 자유와 평화를 주신다. 풍성한 생명이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누릴 수 있는 풍성함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코로나 코로나 하며 바이러스에게 왕관드린다고 하던 말을 중단할 것이다. 코비드 또는 팬데믹이라 부를지라도 그를 코로나로 부르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왕관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나를 사랑하여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시고 나에게 영생을 허락하신 주 예수께 모든 영광과 존귀를 드릴 것이다. 그러면 온 세상의 주가 되는 주께서 지금 어둠으로 덮고 있는 팬데믹을 제거하여 주시리라 믿는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여 범죄함으로 하나님께서 팬데믹 역병의 재앙을 내리신 때 다윗이 회개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칼을 빼어 든 천사 앞에 나아가자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고 용서하셨다. 다윗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하였다. 우리 모두가 함께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이 땅이 겪고 있는 역병의 재앙을 풀어주시도록 기도하고 예배하면 나만 아니라 이 땅이 구원 받고 주께서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주님은 신실하시다. 생명을 주시되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주께서 우리의 왕임을 인정하고 영광을 주께 돌리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Friday, January 7, 2022

하나님의 안식 The Rest of God

 하나님의 안식 The Rest of God

사람은 열심히 일을 하면 피곤을 느끼기에 쉬는 시간을 가지고 힘을 회복한다. 누구나 휴식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어떠할까?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빛에서 시작하여 만물을 만드시고 마지막에 자기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심으로 6일에 천지와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 일곱째 날에 그가 하시던 일을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하셨다고 한다. 하나님도 사람처럼 휴식이 필요한가?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피곤하여 쉬시는 분이 아닌데도 그가 안식했다는 것은 그가 의도하던 대로 모든 것을 끝내고 더 가감할 것이 없기에 일을 그쳤다는 말이다. 6일동안 말씀으로 천지와 만물을 만들고 생명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주시고 보시니 ‘좋았다’. 마지막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라 하셨다.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심히 좋았다’. 그의 안식은 의도하던 대로 모든 것이 완성되었기에 일을 끝내고 자기가 한 일을 보고 기뻐하며 만족하심이다. 

6일동안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된다’는 말로 창조활동이 진행되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제 7일에는 그 말이 없다. 이는 창조의 모든 과정이 끝나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물을 다스리게 되니 하나님이 보시고 매우 좋다고 하심이 계속되고 있음을 말한다. 하나님이 이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창조는 완성되었지만 제 7일은 하나님의 복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며 다스리게 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구분하여 하나님의 날로 정하고 하나님은 생명활동을 계속하신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을 범한다는 비난에도 그는 ‘아버지께서 일하시기에 나도 일한다’며 안식일에 병을 고치고 생명을 일으키는 일을 하시며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고 자기는 안식일의 주인이라 밝히셨다. 어떻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는가?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며 좋다고 기뻐하실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나도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며 그를 공경하고 예배하지 않겠나? 안식일은 이로서 하나님과 사람이 친근하게 하나가 되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표징’이 된다. 안식일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고 사람들은 그의 백성임을 확인하고 증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제 7일에 일을 쉬고 안식하라 명하신다. 사람의 6일 일은 자기가 살기 위한 것, 자기 목적을 이루며 남보다 뛰어나고자 장악하고 쟁취하려는 일이 대부분이다. 안식일에 이런 자기 중심의 일을 멈추고 안식하여도 무너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지킨다는 보장이 그 명령에 들어있기에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급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기뻐한다. 사람이 자기 일을 그치고 안식하면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동등한 새로운 인간공동체를 이루고 나타내기에 세상이 이를 기다리지 않겠나?  

구약의 안식은 장차 오는 참된 안식의 그림자가 된다. 신명기의 안식일 계명은 6일동안 힘써 하던 일에서 쉬는 것과 함께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구원받았기에 안식하라 한다. 노예에서 해방된 안식이다. 이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다 이루었다’ 하심으로 사람을 죄와 죽음의 노예에서 구원하기 위해 죽으시고 안식일 다음 날 부활하시어 영원한 안식을 사람에게 주심으로 완성되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주께 나아가면 주께서 약속하신 참된 안식을 얻는다. 이들이 ‘주의 날’에 안식하며 예배하고 주와 하나가 되면 천국의 안식을 체험하고 주의 백성임을 확인하고 증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