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31, 2022

해가 지고 뜨고 The Sun Setting and Rising

해가 지고 뜨고 The Sun Setting and Rising (12/31/2022)
해가 지고 뜨기를 365번, 오늘 해가 지고 뜨면 2022년은 사라지고 2023년 새아침이 열린다. 해가 지고 뜨며 하루가 있고 우리 삶은 진행되고 해(나이)를 먹으며 뻗어간다. 해가 지지 않으면 뜨지도 않고 하루라는 개념도 없을 것이나 해는 분명하게 뜨고 진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십대 젊은이에게는 느리고 80대에게는 빠를 수 있지만 그 속도는 항상 동일하다. 지구를 70억 이상이 탄 둥근 비행기로 보면 그 직경은7,917.6 마일(12,742 km), 둘레는 24,901마일(40,075 km), 그 무게는 5.972x10^24 kg 이면서도 하루에 360도 한 바퀴를 돌기에 해가 지고 뜨는데 그 속도는 시속1,037.7 마일 (1,670 km), 태양 주위 궤도를 1년에 한 바퀴 도는 속도는 시속 66,962 마일 (107,764.9 kg)로 계속하여 스스로 돌면서 달리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다. 지금도 지구는 돌면서 달리기에 해는 지고 뜨고 날은 바뀌고 해가 바뀌지만 그 길과 속도는 변하지 않고 항상 동일하기에 사람은 연도와 날짜를 정하며 달력을 만들고 역사를 이어간다. 
우리는 해가 뜨고 진다고 하지만 창세기 1장에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라 하여 해가 지고 뜬다고 한다. 창조시에 천지가 어둠과 혼돈 공허에 덮여 있을 때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니 어둠이 물러가고 질서와 식별, 아름다움이 생기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기에 히브리 사람들은 저녁을 하루의 시작으로 본다. 그러면 해가 지고 뜬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
해가 지면 어두워지고 하던 일을 끝내기에 하루 일의 완성과 종결을 말한다. 일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생명이 태어나 자라 성인이 되어 많은 일을 하지만 끝이 온다. 해가 지는 것을 보면 아름다움이요 황혼은 더욱 색색이라 일과를 마치고 돌아보는 하루는 아름답고 감사하다. 품꾼은 해가 지면 삯을 받고 기뻐한다, 지는 해는 뜬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뜨는 해를 본다는 보장은 없어도 새 아침을 향한 소망이 있고 가슴에 기대와 감격이 있다. 해가 지면 일에서 쉬며 몸과 마음이 새로운 힘으로 충전하고 회복하는 기회가 된다. 어둔 밤이 없다면 좋을 것 같으나 우리 몸과 마음은 일에 일로 피곤하고 탈진하여 엘리야처럼 죽고 싶은 심정이라 더 이상 삶의 의욕과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지난 몇년간 코비드와 경제불황 등 여러 악재가 겹쳤지만 해가 뜨는 새 아침에 새로운 삶의 질서가 올 것을 기대한다. 몸이 아픈 사람은 어둔 밤 자기의 통증에 집중하며 더욱 고통스럽기에 욥은 새벽에 일어나기를 고대하며 언제나 밤이 갈까 부르짖어 기도하고 다윗은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온다고 고백한다. 해가 뜨면 새로운 날의 시작이다. ;
온 세상에 어둠이 덮여 혼돈과 공허로 찬 때 세상의 빛으로 예수께서 오시어 새로운 질서와 생명으로 해가 뜨는 새 아침을 허락하신다. 빛이 왔으나 여전히 어둠에 속한 자가 있기에 빛과 어둠을 나누고 저녁이 지나 아침이 오기를 기다린다. 생명의 해가 돋는 아침, 나는 어떠한가? 빛을 향하여 가슴을 열고 생명을 받아 누릴 수 있을까?










Saturday, December 24, 2022

세상의 빛 The Light of the world

세상의 빛 The Light of the world (12/24/2022)
자녀가 대학에 원서를 내고 기다리거나 영주권을 신청하고 기다리던 때를 기억한다. 불과 몇달이지만 기다리는 하루가 몇 년 같이 느껴져도 반드시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죽을 병이 들어 치료를 받으면서 회복될 날을 기다리는 심정은 또 어떠한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타락의 길을 연 아담과 그 아내 하와에게 해산의 수고가 주어졌지만 그를 넘어지게 한 간교한 뱀과의 관계에서 여인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뱀은 여인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며 사람을 죄와 죽음으로 인도하는 옛 뱀 마귀에게서 구원할 구주가 올 것이라고 하나님은 약속하였다. 주전 700년 이사야는 처녀가 잉태하여 임마누엘이란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는 평화의 왕이라고 예언하였다. 이스라엘은 약속된 메시아를 기다린다. 곧 오소서 임마누엘, 오 구하소서 이스라엘,  그 포로 생활 고달파 메시야 기다립니다. 기뻐하라 이스라엘, 곧 오시리 오 임마누엘이란 찬송을 부르며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은 약속대로 여인의 후손 아들을 주시고 사람 인정 받지 못하는 목자, 유대인이 상종하지 않는 이방인 박사들이 찾아가 그의 탄생을 확인하였다. 기다림은 헛되지 않고 이루어졌다. 
교회는 오신 주님의 생신을 축하하고자 그를 기다리는 생신 전 한 달을 강림절로 정하여 주일마다 소망 평화 기쁨 사랑의 초에 불을 켜다가 탄생 전야 또는 탄생일에 가운데 있는 흰 그리스도의 초에 불을 켠다. 그리스도가 중심이라 그가 오시지 않거나 없으면 우리의 삶은 여전히 죄와 죽음의 포로로 시달릴 것을 말한다. 연대를 BC/AD 곧 그리스도 이전(Before Christ)과 주님의 해 (Anno Domini)로 구분하는 것은 그가 역사의 중심이라는 의미다.
흰색은 빛과 순결을 표시한다. 초에 불을 켜면 어둠은 물러가고 빛으로 어둔 세상을 밝힌다. 천지 창조시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이 덮여 있었다. 빛이 있으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빛이 생기고 혼돈과 공허 흑암은 물러가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사람은 받은 자유를 남용함으로 다시 어둠이 찾아오고 세상은 어둠에 깊이 덮여 있는 형편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은 생명이요 빛이라고 요한은 증거하고 주님은 스스로를 세상의 빛이라 하시며 그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는다고 하신다. 
주님 탄생과 함께 그리스도의 흰 초에 불을 켜는 것은 생명의 빛이 왔다고 선포함이다. 빛은 불꽃으로 어둠을 밝히고 자기를 태우면서 따뜻하게 품어 생명을 일으킨다. 여인의 후손 주님은 인간의 최대 원수 어둠과 죽음의 세력을 정복하여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생명과 사랑과 평화의 왕으로 통치하시지만 그를 받고 받지 않는 것은 강요하지 않는다. 그를 믿으면 빛과 생명을 누리지만 그를 받지 않으면 여전히 어둠과 죽음에 남아 있다. 
주님은 그를 믿는 자를 세상의 빛이라 하신다. 한국에서 신학을 미국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교수하는 분이 교인들의 믿음을 뒤집고 있어 그를 심방하고 일어나 빛을 발하라 권면하였더니 불쾌하게 생각했다지만 그는 결국 변화하여 주의 빛과 생명을 전하게 되었다. 주를 받아 빛으로 살며 세상을 밝히도록 도전하며 오신 주님을 나는 어떻게 할까?





  

인류의 최대 뉴스 The Greatest News in Human History

누가복음2:8-20 인류의 최대 뉴스 The Greatest News in Human History (12/25/22 새 마음)
오늘이 성탄이면서 금년 마지막 주일이라 사회에서는 지난 1년 최대 뉴스가 무엇인가를 말한다. 여러분에게는 무엇인가? 세계적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과 중국의 심화하는 대립, 기후 변화 관계, 인플레, 이란의 여성 저항운동 등 여러가지를 말한다. 일년만 아니라 100년 또는 역사 전체를 말하기도 한다. 인류 역사에서는 불의 발견, 바퀴 발명, 화폐, 문자 등을 말한다. 삶에 큰 유익을 준 것이 사실이다. 
성경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최대뉴스를 말하고 있다. 빅 뉴스가 어떤 이에게는 좋고 관심이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도 유익도 없는 것이 많다. 금년 최대 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은 오직 푸틴의 야욕을 채워 주는 것일지 모르나 모든 사람에게는 고난이요 고통이다. 
모든 사람에게 큰 기쁨을 주는 좋은 뉴스는 무엇을 말하나?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그 증거로 강보에 쌓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볼 것이라 하더니 하늘의 천사들이 합창으로 외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들께 평화라 한다. 목자들은 바로 베들레헴으로 가서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구유에 있는 아기를 확인하고 천사가 말한 빅 뉴스를 사실로 알고 전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하며 돌아갔다고 한다. 곧 구주 예수께서 탄생한 것이 모든 사람에게 큰 기쁨을 주는 좋은 뉴스 곧 인류 최대 뉴스라는 것이다. 어떻게?

1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시다. 그곳에 있는 목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좋은 뉴스다. 어떤 뉴스는 나와 상관이 없지만 천사가 전한 뉴스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것이다. 탄생한 이가 구주 구원자다. 나를 모든 역경과 고통에서 건지시는 분이다. 가난과 질병 고통과 아픔 중에도 가장 큰 것은 누구나 당하는 죄와 죽음의 현실이다. 내가 무슨 죄가 있어? 방의 공기가 맑다고 생각하는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에 비추어 보니 먼지가 많은 것이 나타난다. 안경을 깨끗하게 사용하지만 때로는 닦아야 하는 것과 같다. 나는 깨끗하다 나는 세상에 살면서 조심하여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보면 내 몸과 마음은 많은 허물과 죄로 얼룩지고 이로 인하여 고통이 있는 것을 본다. 
어느 친구가 죽을 병이 들어 신음하다가 좋은 명의를 만나 치료 받고 생명을 회복한 것은 그의 일이요 나와는 상관 없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으나 내가 죽을 병에 걸린 때 그가 나의 의사가 되어 나를 살게 한다면 그는 나를 위한 의사가 된다. 의사라도 전문분야가 있다. 어떤 병에는 전문이지만 다른 병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동의보감 모든 병을 다 말할 수가 없다. 더욱이 죄로 인한 결과인 죽음의 병을 어떻게 할까? 구주는 어떤 병에서도 나를 구원하신다. 병만 아니다 풀지 못한 인간관계, 내지 못한 집세와 카드 빚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모든 인간의 무거운 짐에서 풀어 주시는 분이라면 과연 구주가 아닐까? 남을 위한 구주가 아니라 바로 나를 구주가 왔다는 것이 큰 뉴스다. 

2    그리스도 주시라는 말은 메시아 곧 구세주 모든 영역, 죄와 죽음에서 건지어 오늘을 살게 하는 것만 아니라 영원히 사는 길을 제공하는 분이시니 어디서 그런 분을 찾을까? 이집트의 피라밋이나 왕들의 계곡에 있는 지하 무덤은 인간 세계의 빅 뉴스가 되지만 그 염원은 죽어서도 죽지 않고 살고 싶은 심정이다. 피라밋이나 왕들의 무덤이 대개 도굴된 상태다. 부장물이 많아서다. 1922년 영국 고고학자 Howard Carter가 왕들의 계곡에서 발굴한 Tutankhamun 의 무덤은 도굴되지 않는 완전한 상태, 그는 9살에 즉위하여 겨우 10년 (1332-1323BC) 바로의 이름을 가지고도 여러 병을 앓다가 죽었지만 그의 무덤에서 발굴한 유물이 5천점 이상이라 그 1/10을 전시한 것이 박물관 하나를 채울 정도였다. 땅에서 살 때 사용하던 모든 기구들을 그대로 부장한다. 그는 자기 이름을 Tutankhamun 곧 이집트 신 가운데 공기의 신 아문의 산 형상이라 이름으로 그는 누구보다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자기 병을 이기지 못하여 얼마 살지 못하고 죽었다. 더 살고 싶은 마음으로 죽음 세계에서도 죽지 않고 모든 것을 사용하라며 많은 물품을 넣고 한 때는 그의 신하 종들을 함께 묻어 주인을 섬기게 한 적도 있었다. 죽어도 세상에 살 때처럼 누리며 살고 싶은 염원이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요 그 안에서 영생을 누리는 축복을 주시는 구주시다.

3    그리스도는 다스리는 왕이시다. 그의 다스림은 무력의 힘이 아니다. 알렉산더 나폴레옹 징기스칸 등은 큰 무력으로 많은 살상을 하며 정복을 하였다. 알렉산더는 20대에 더 정복할 땅이 없어 눈물을 흘렸다고 하나 그는 30세가 지나며 말라리아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나폴레옹은 마지막 손바닥 많은 섬 센헬레나에 귀양살이로 생을 마쳤다. 징기스칸은 달리고 달려 정복하다가 목이 말라 중간에서 술을 한잔 마시다가 술에 탄 독약으로 죽었다. 이들이 죽고 나서 그들의 나라가 어떻게 되었나? 일시적 영광과 불타는 욕심이었다. 
예수께서 탄생할 때 동방 박사들은 왕으로 나신 분을 찾아 왔다. 예수께서 빌라도 앞에서 심문 받을 때 그는 왕이요 왕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왕은 힘이다. 힘이 없는 왕은 무너진다. 헤롯은 두려워하여 태어난 왕을 죽이겠다고 베들레헴 지경 두 살 이하의 남자아이 모두를 죽였지만 그의 약함을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 그리스도는 사람을 괴롭히는 보이지 않는 세력을 물리친다. 사람에게 병과 고통을 주는 귀신의 세력을 제압하다. 그의 능력은 말씀의 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하시거나 스스로 명하심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사탄을 정복하였다. 마지막 원수 죽음의 경우 금방 죽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 장지로 메어 가는 과부의 아들, 죽고 4일이 되어 무덤에서 냄새나는 나사로를 살려 일으켰다. 주님은 죽임을 당했으나 죽지 않은 생명으로 부활하여 죽음을 정복한 왕의 왕이시다. 세상에 죽음을 정복한 자가 있나? 진시황은 불사약을 구하였다고 하지만 그도 죽었다.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11:25). 예수께서는 영원히 죽지 않은 생명 하나님의 생명을 주신다. 그는 죽음을 완전히 정복하신 왕의 왕이다.
 
4   놀라운 빅뉴스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것이다. 사람마다 종교를 가지고 어떤 신을 믿는다. 눈으로 확인하기 위하여 어떤 신상을 만든다. 선지자는 말한다. 나무를 잘라 그것으로 불을 피워 따뜻하게 하고 밥을 짓기도 하고 그 한 부분으로는 상을 만들어 신이라 하나 그것은 말을 하거나 듣거나 보지 않고 오히려 사람에게 짐이 된다고 하였다. 나무나 돌로 된 신상 앞에서 절을 하고 소원을 빈다. 엘리야 때 바알신 아세라 신을 섬기는 850명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엘리야 한 사람이 어느 신이 참인지 시험을 하다. 불의 신이라는 바알이나 아세라가 응답이 없고 불을 내리지 않았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불로 응답하여 참 하나님인 것을 증명하였다. 
사람들은 보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하나님을 보고 싶었다. 그의 뒷모습은 보았으나 얼굴은 보지 못하였다. 보면 죽게 된다. 이런 사람의 소원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늘 탄생하신 것이다. 그는 아기로 태어났으나 하나님이다. 그를 보면 아버지 하나님을 본 것이다. 빌립이 예수께 아버지를 보여달라 하자 내가 이렇게 오래동안 같이 있는데 아직도 모르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아버지를 보이라 하나?  그는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모두 하셨다. 무엇보다 그는 임마누엘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나타내었다. 구약에서는 언약궤가 그 역할을 하였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자신이 그들과 함께 계심을 보여주신다.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고 할 때 성전은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나 언약궤를 안치한 성막은 이스라엘이 가는 곳 어디나 함께 하였다. 주께서 함께 하여 다윗에게 승리를 주었다. 오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인하기 위하여 아들 예수를 보내주시고 그는 주의 백성과 함께 하셨다. 주께서 승천하시며 내가 영원히 너희를 떠나지 않고 함께 하겠다 하시며 성령을 보내주셨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우리를 찾아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최대 뉴스가 아니겠나?

5    이 뉴스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여진다. 최초로 뉴스를 듣고 찾아가 확인한 자는 목자다. 당시 목자는 비천한 사람이라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법정에 증인으로 설 수도 없는 사람이다. 요셉의 가족이 애굽에 온 때 고센 땅에 있게 하며 직업이 목축이라 하라고 하다. 애굽인은 목축을 가증하게 여기고(창46:34) 천시하여 상대하지 않기에 안전할 것이라는 의미다. 이런 목자에게 천사가 나타나 구주 탄생 소식을 먼저 전하였다. 목자가 사람 대접을 받는다. 이들은 천사의 소식을 듣고 찾아가다. 요셉과 마리아 아기 예수를 보고 확인하였다. 그가 천사에게 들은 것이 사실임을 알고 그대로 전하였다. 태어난 아기가 구주 그리스도이심을 최초로 듣고 최초로 전하였다. 주님에게는 천한 사람이 따로 없다. 동방에서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이 특별한 왕의 별을 보고 유대 왕궁으로 찾아갔다. 베들레헴이 왕의 탄생지로 알고 가서 아기에게 경배하고 왕의 선물 황금 유향 몰약을 드렸다. 이들은 박사라고 하지만 유대인 입장에서는 이방인이라 서로 관계할 처지가 아니다. 사람 대접 받지 못하는 사람을 먼저 찾아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은 빅뉴스다.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은 빅뉴스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고 함은 우리 모두가 꼭 같이 하나님의 창조를 받고 하나님의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은 빅 뉴스다. 노예 해방이 된 것은 사실이나 실제로 노예 생활하던 사람은 스스로 자유롭지 못한 점이 있지만 주인노릇 하던 사람은 그들을 동등하게 받지 못하는 면이 많이 있다. 교회라도 그러지 못하고 구분할 때가 많다. 야고보서에는 교회에 옷을 잘 입고 부한 사삼이 오면 환영하고 자리를 내어 주면서 가난하고 약한 자가 오면 냉대한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인도가 계급제도로 큰 사회의 아픔을 겪고 있다. 브라만 (승려) 크샤트리아 (통치자 무사) 바이샤 (지주 상인) 수드라(종) 다섯번 째 달리츠(불가접촉자), 간디가 지도자가 되어 이 계급제도가 사회의 병인 것을 알고 고심하다가 예수님의 산상설교에 심취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이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남아공을 방문 중 교회에 가고 싶어 한 교회를 찾아가다. 안내인이 당신이 갈 교회는 저쪽 저 교회라고 가르쳐 주는 것을 대하며 이것이 기독교의 실상이면 나는 평생 힌두로 살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세상에 오시어 가르침만 아니라 실제 삶에서 소위 언터치어블 곧 나환자 세리 등을 고치고 가까이 하고 친구가 되었다. 주님의 나심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는 면에서 빅뉴스다. 
 
오늘 나신 주님은 나를 위하여 오시었다 나의 구주로 나의 왕으로 오시었다. 하나님이 직접 나와 같은 인물이 되어 내게 오시어 나와 함께 하신다. 내가 나를 내세우고 교만해도 미국에 살면서 우리는 많은 차별을 받는다. 백인만 아니라 흑인들도 우리를 매우 차별한다. 이런 우리를 주님은 자기 형제로 받아주고 좋은 것을 주신다. 내가 구원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선교와 전도는 바로 이 최고의 뉴스를 전하기 위함이다. 선교지에 가지 않아도 내 있는 곳에서 이 사실을 나눌 수 있을까? 목자들이 확인하고 전한 것처럼 우리도 주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확인하였으면 나누고 전할 수 있을가?




Wednesday, December 21, 2022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민수기 16:41-48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Btn the Dead and the Living (12/18새마음
병원에 가면 앞에 영웅들이 여기서 일하고 있다 Heroes Work Here라는 간판을 본다. 코비드 어려운 역병이 덮친 때 환자가 되면 누구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 마스크를 하고 손을 씻지만 접촉하면 전염이 되기에 부부간에도 혼자 앓다가 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는 죽어도 나는 죽을 수가 없다 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의사 간호사는 환자를 돌보는 자기 임무도 있지만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환자를 치유하다가 감염되어 죽은 사람도 있다. 만일 의사 간호사가 일을 하지 않았으면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이다. 의사 간호사가 생명을 걸고 죽음과 생명 사이에서 일을 하였지만 역병을 중단시키지는 못하였다. 백신을 연구하는과학자도 질병과 생명 중간에 서서 일을 한 사람들이나 1차로 되는 것이 아니라 5차까지 나왔다. 그만큼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의 세력이 강하다. 이런 역병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은 참으로 많지만 누군가가 중간에 서서 도움을 주는 자가 있지만 우리도 죽음과 생명 사이에 서서 자기가 할 일을 하게 된다. 생명을 위하여 마스크 거리두기 손씻기를 하고 접종을 할 것인가 아니면 마음대로 살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오늘 본문에 아론이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다고 함은 무슨 의미인가?

죽음과 생명 사이에서: 선택
죽음의 역병이 어떻게 일어나나? 과학적인 여러 설명이 있지만 설명하지 못하는 많은 것이 있다. 성경에서는 인간의 선택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라 한다.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리라. 역병으로 하는 일이다.  
민수기 16장에 죽음이 여러 형태로 오나 역병은 일종의 마지막 현상이다. 레위 자손 중 고라가 이웃한 르우벤 족의 다단 아비람 온과 다른 지도자 250명과 함께 패를 만들어 모세와 아론을 비방하고 항거한다. 하나님 앞에 꼭 같은 사람인데 왜 너희가 다른 사람 위에 높이는가 함이다. 다단 아비람은 모세에게 왜 왕노릇 하는가 하며 항거한다. 
이런 때 모세는 설명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땅에 엎드린다. 대항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상대에게 생각할 여유를 준다. 모세는 엎드리는 사람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엎드린다. 일어나서 말한다. 레위인으로서 성막에서 봉사한다는 것이 작은 일인가? 어찌하여 제사장의 일을 원하는가? 그러면 제사장의 일을 하여 보라며 고라와 250명이 향로에 불을 담아 내일 하나님의 제단 앞에 나와 주께 불을 드려라 그러면 하나님이 택한 자를 알게 될 것이라 한다. 
고라와 일당은 모세 앞에서 항의하지만 다단과 아비람 오지도 않고 항거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준다더니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그들을 죽이려 한다는 것이다. 모세는 사람들에게 고라와 다단과 이비람 집 가까이 가지 말고 멀리 하라고 한다. 불평자와 가까이 하면 불평을 닮게 된다. 그들의 죄에 동참하고 함께 죽게 된다. 이들의 죽음이 일반인과 같은 것이면 모세는 하나님이 세운자가 아니지만 그들의 죽음이 독특하면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말을 끝내자 땅이 갈라지며 입을 벌려 그들을 삼켜 버린다. 그들 가족 모두가 한꺼번에 죽임을 당하였다. 또한 제단에서 고라와 250명이 향로에 불을 담아 주 앞에 나가는데 제단에서 불이 나와 그들 모두를 불살라 버렸다.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형벌을 내리신다. 하나님이 원하는 불이 아니다. 하나님이 세운 자가 누구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신다. 모세와 아론을 반대하고 항거하던 사람들이 모두 죽음을 당하였다. 백성들이 깨달을 수 있을텐데 그러지 못하다.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모여 와 너희가 백성의 지도자를 죽였다고 원망 불평하고 항거한다. 이는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원망 불평이다. 하나님이 분노하여 모세 아론에게 속히 떠나라 내가 이들을 순식간에 진멸하리라 하시면서 염병을 보낸다. 염병으로 죽은 자가 14,700명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어 사람을 나게 하고 살게 한다.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 하라 아브라함에게도 창대하게 하는 축복을 주셨다. 예수께서 오신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다. 이 생명을 누리려면 생명의 법을 따라야 한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도 지킬 것이 있다. 생명이신 하나님 안에 거하며 그의 길을 걸어야 한다. 하나님을 떠나 생명을 누릴 수가 없다. 
하나님은 생명을 위한 법을 주신다 신30: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그러면 생존하고 번성하는 복을 얻으리라 그러나 만일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면 반드시 망하리라 신30:19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는 생명과 죽음 사이에 처하여 있다. 내가 생명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택할 것인가? 여호수아는 생의 마지막 백성에게 너희가 선택하라고 하며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 도전한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 머뭇거리겠나? 하나님이냐 바알이냐 택할 자를 택하라 한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생각을 따라 죽음의 길을 택한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서: 모세와 아론이 하는 일
   생명에 대한 책임과 사랑: 하나님은 반역하는 백성에게 염병을 보내면서 모세와 아론에게 피하여 떠나라고 한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 겸손하게 엎드려 자기를 성찰하고 주께 기도하며 주의 뜻을 찾는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향한 책임과 사랑을 느낀다. 주께서 그 백성을 맡기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게 하였다. 모세를 그들의 목자로 세우셨다. 목자는 양을 사랑하는 것만 아니라 그들을 책임진다. 삯꾼은 어려움이 닥칠 때 양을 버리고 도망하지만 목자는 생명을 걸고 그들을 잘 인도하는 것이다. 야곱이 장인 라반의 양을 칠 때 도둑을 맞거나 죽거나 하면 그가 그 수를 물어내는 책임을 졌다. 목자는 잃은 양 하나를 찾아 온 산을 다닌다. 양의 생명과 건강을 목자에게 물으시는 것을 알면 두려운 심정으로 모세는 영들을 사랑한다. 꼴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며 품에 안고 돌보고 사랑한다. 양은 하나님이 그에게 맡긴 하나님의 양이다. 목자는 주인 앞에서 마음대로 가는 양을 책임진다. 모세와 아론은 양과 하나님 사이에 서서 양에 대한 책임을 생각한다. 그들을 살게 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야 한다. 차라리 나를 죽이소서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제하여 주시고 이들을 살려 주셔요. 그들을 책임지는 목자의 마음이다.
   대속의 속죄: 죽음의 길을 택하는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이해하고 모세는 아론에게 향로에 제단 불을 담고 향을 피워 백성에게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고 한다. 향로의 불은 태워서 자기를 드림이요 향은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로 제사장이 책임을 지고 자기 생명으로 그들을 대신하여 사죄하는 일이다. 아론은 즉시 향로를 가지고 백성에게 달려가다. 반항하여 염병으로 죽음을 맞는 회중이라 그는 죽음을 향하여 달려간다. 83세에 일을 시작하였으니 지금은 100세가 넘었을 것이지만 백성을 책임지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달려간다. 자기도 염병으로 죽을지 모르기에 죽음을 각오한 것이다. 모세와 아론은 죽음을 피하지 않고 양의 죽음을 향하여 달린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 죽음과 생명 중간에 선다. 에스더는 자기 백성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왕에게 탄원하고자 죽으면 죽으리라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가 그 백성을 구원하는 길을 열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이 바로 이를 위함이다. 세상 모든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실 구주로 죄인 가운데 뛰어 오셨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섰다. 
모세와 아론 같은 뛰어난 지도자라도 백성들의 반역을 막지 못하였다. 하나님도 그들을 막지 않고 자유를 허락하셨다. 사람이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지게 하신다. 죄를 지은 결과는 염병이요 죽음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아들을 보내어 죄인을 대신하여 속죄하게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죄인을 대신하여 속죄하고자 죽음을 각오하고 오셨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하는 제물이 되었다,
   죽음을 향한 도전: 아론은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다. 사이라는 것은 죽음과 삶을 구분하는 경계를 말하고 또 두 사이에서 죽음을 막아내는 것이다. 더 이상 죽음이 산 자를 치지 못하게 막아선다. 자기 죽음을 담은 향로를 가지고 이미 죽었다고 막는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잘못을 저질러 하나님이 염병을 보냈다. 천사가 칼을 들고 염병으로 백성들을 치며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다. 다윗이 그를 만나다. 범죄한 것은 나인데 이 백성은 잘못한 것이 없으니 나와 내 집을 치라고 하며 자기가 엎드리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 향로의 불을 드리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칼을 집에 꽂게 하고 역병이 중지 되었다 가운데 서서 자기 생명으로 죽음을 막아낸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은 양을 잡아 그 피를 자기 집 문 인방과 문설주에 바르고 안에서 음식을 먹고 있다. 죽음의 천사가 문의 피를 보면 그 집을 지나갔다. 피는 생명, 누군가 이미 죽었기에 지나간다. 피가 죽음을 막아 내다. 예수님의 피가 흐르는 곳, 내 심령에 주의 피가 있으면 죽음의 사자가 침범하지 못하고 물러난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중재자:  아론은 죽은 자 산 자 사이에 서서 중재한다. 하나님의 진노와 백성의 반역 사이에 서서 향로를 들고 죽음으로 죄의 형벌이 되었기에 하나님의 용납과 화해를 구하는 것이다. 내가 대신 죽으니 이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는 것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타는 불로 내어 놓은 것이다. 하나님은 아론을 대신 받아 주시고 그들을 용서하고 염병을 그치게 하셨다. 이는 대제사장 예수께서 하시는 일을 미리 보여주심이다. 예수께서 생명의 하나님과 죄로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죄의 형벌을 자기 몸으로 대신하여 지시고 인간의 죄를 청산하였기에 죄로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고 받아 주시도록 하였다. 십자가에서의 첫 말씀은 저들을 용서하여 달라는 것이다. 중간에 선 것이다. 중보자 화해자의 일이다. 원수와 분노의 관계를 풀고 화목하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신다. 제사장으로 하시는 일이다. 

내가 어떻게 영생을 소유하게 되었나? 죄가 없는 의인이어서 인가? 오직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서신 구주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받았다. 주를 믿고 생명 얻은 우리를 성경은 거룩한 제사장이라 한다. 제사장은 죄악으로 죽어가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서는 사람이다. 오늘 세상은 죄로 만연하다. 누구나 자기 좋은 대로 하고 있다. 사사시대를 방불한다. 국회에서 동성애를 인정하는 법을 통과시키다. 낙태를 한다. 생명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총기 사건이 일어난다. 게임과 놀이가 하나님 보다 더 중요한 자리에 있어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이다. 죽음을 택한다. 생명을 버리고 죽음을 택하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의 분노가 일어난다. 코비드도 그 결과라 생각된다. 살았다고 하나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많다. 제사장의 역할이 기대된다. 우리가 제사장으로서 죽은 자와 산자의 중간에 설 수가 있겠나?





Tuesday, December 20, 2022

가장 큰 사랑 The Greatest Love

가장 큰 사랑  The Greatest Love (12/17/2022)
구주 예수의 성탄을 기다리는 강림절에 전통 교회는 상록 화환의 소망 평화 기쁨 사랑 네 개의 초를 매주 하나씩 켜다가 성탄 전 주일에는 마지막 사랑의 초에 불을 밝힌다. 불을 켜면 어둠은 물러가고 밝게 사물을 보고 구별하듯 빛으로 오신 주님을 말하며 마지막 초는 사랑을 의미한다. 부부를 비롯하여 많은 인간관계는 사랑에 바탕을 둔다. 직장도 생계수단을 넘어서서 일을 사랑하고 동료를 사랑하면 행복하다.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어떤 사랑을 나타내는가?
  크리스마스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서로 투쟁하고 반목하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좋은 대로 행하며 어둠속에 살면서도 인정과 용납을 바라는 그들을 사랑할 가치가 있을까? 이런 사람을 친구로 삼아 함께하려고 임마누엘로 오신 것은 사랑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여 독생자를 주시고 어느 때나 언제나 함께 하심이 성경의 핵심이다. 예수는 가난하고 병들고, 눌리고 소외되고 눈먼 자를 찾아 삶을 회복시켜 주셨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큰 사랑이 없다 하시더니 십자가에 달린 때 그를 고소하고 처형하던 자들을 보며 아버지 저희를 용서하소서 하는 삶으로 오신 성탄은 하나님의 큰 사랑의 표현이다 
   크리스마스는 아들의 아버지 사랑이다. 불신하고 대적하는 사람들 사이에 아들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큰 모험인가! 생명이 태어날 방을 내어주는 자가 없고 왕은 그를 죽이고자 하기에 이집트로 피신해야 하는 위험을 알면서도 순종하고 태어나는 것은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지극한 순종이다. 그는 평생 아버지의 뜻을 따르다가 죽음을 앞두고 천사를 동원하여 피할 수 있지만 십자가에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듯 처절한 아픔을 경험하면서도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는 아버지의 인류구원 계획을 이루고자 순종했으니 큰 사랑이 아닌가!
   성탄은 요셉의 극진한 마리아 사랑을 보여준다. 약혼한 여인의 임신이 나타났다. 당시 중매 결혼은 혼례식에서 부부가 처음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오늘처럼 결혼 전에 사랑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기에 마리아의 임신은 용납될 성질이 아니다. 세상에 수치스런 일만 아니라 법정은 그녀에게 돌에 맞아 죽는 형벌을 내린다. 요셉은 이런 일이 마리아에게 임하지 않도록 조용히 끊고자 하는데 천사가 나타나 그녀의 임신은 성령으로 된 것이며 태어날 아이는 구원자 예수라 한다. 요셉은 마리아를 용납 보호하고 존중하여 분만할 때까지 기다리며 죽음 같은 사랑을 보였다.
   성탄은 마리아의 예수 사랑의 결과다. 청천벽력 임신예고를 천사에게 받은 처녀는 그 애기가 누구인가를 알자 그는 태아를 보호하고 여행 중 방을 찾지 못하고 태어나자 강보로 싸서 구유에 안전하게 누인 것은 그의 희생적인 사랑이다. 그는 주님의 십자가 아래서 가슴을 칼로 찌르는 아픔을 가지지만 아들을 품는 사랑을 보였다.
   성탄은 인종 귀천을 넘어서는 사랑 실현이다. 천시되는 목자들, 이방인 박사들의 방문, 경배와 선물을 왕이신 구주 예수와 요셉 마리아가 받은 것은 관계의 막힌 담을 무너뜨린 친밀한 사랑의 시작이다. 성탄은 온 세상 모든 사람이 가족같이 서로 사랑하는 길을 열었다. 
성탄을 기다리는 강림절, 사랑의 촛불을 가슴에 밝히며 가장 큰 사랑을 나도 체험하고 나눌 수 있을까! 

 








Sunday, December 11, 2022

큰 기쁨으로 Rejoicing Exceedingly

큰 기쁨으로 Rejoicing Exceedingly  (12/102022)
징글벨 징글벨…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명쾌한 음악이 울리는데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없고 오히려 수심이 가득하다. 연말에 청산할 부채, 끝내야 할 과제, 풀지 못한 관계, 상처와 눌림의 아픔이 있다. 어떻게 이들이 기쁨으로 살맛을 가질 수 있을까? 
캄캄한 밤 들에서 양을 지키고 있는 목자들에게 하늘이 환하게 비치며 천사가 나타나자 무서워하는 그들을 안심시키며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다윗의 동리에 너희를 위한 구주 곧 그리스도가 낫다고 전한다. 희망도 빛도 없이 존재 인정도 받지 못하는 어둠의 그들을 위한 구원자가 낫다고 하니 이들은 큰 기쁨으로 아기를 찾아가다. 대림절 3주에 기쁨의 핑크 빛 목자들의 초에 불을 켠다. 
왕의 별을 따라 먼 길을 온 박사들이 유대왕궁의 안내로 베들레헴을 탄생지로 듣고 나오는데 그 별이 길을 인도하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무르는 것을 보며 이들은 피곤을 잊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다. 
이는 그 동안의 기쁨과는 다르다. 양이 새끼를 낳거나 품삯이 오르거나 새로운 별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록하고 인정 받는 것과는 다른 기쁨이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이 선물을 받아 풀며 잠시 기뻐하는 것과 같았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약속 성취로 그의 신실하심을 보여준다. 진리인 그의 말씀은 시대와 환경을 초월하여 믿을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다. 탄생한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신다. 무거운 짐을 벗게 한다. 이민자의 삶에 부담이 많지만 목회는 수월하지 않다. 이민자는 애굽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으로 가는 중에 계속하여 원망 불평하는 사람들과 같다. 어느 목사 사모는 사람들로 심한 상처와 좌절을 겪고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아 홀로 숨어 있는데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길이 길이 변함 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본당의 찬송이 들린다. 주님 나는 뭐예요? 질문하면서 찬송에 끌리어 본당에 들어가 뒷자리에 앉으니 눈물이 쏟아지는데 그 앞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는 다 내게 오라 내가 쉬게 하리라는 현수막이 나타난다. 그는 자기 어깨를 누르고 있는 무거운 짐을 벗어 그에게 넘겨드렸다. 순간 속에서 기쁨이 올라오며 생물처럼 솟아났다고 한다. 주님은 나의 무거운 짐을 내리고 나에게 자유와 기쁨을 주신다.
또 다른 기쁨이 있다. 집을 구입하며 받은 융자금의 마지막 지불을 하고 완불이라는 은행통지를 받을 때 기쁨이 어떠하였나? 죄의 형벌로 사형에 언도된 상태에서 사면되는 기쁨은 그에 비할 수 있을까? 예수께서 나의 모든 죄와 허물 죽음을 대신 처리하고 나를 의롭다 할 뿐 아니라 내가 하나님 자녀로 살다가 그의 나라를 상속하는 것을 알면 얼마나 큰 기쁨인가! 이민 가는 비행 날짜를 기다리는 기쁨과 비교가 되겠나!
탄생한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실현하며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 구주요 왕이신 그가 나를 친구 삼아 나와 같이 계시고 나의 필요를 공급하고 삶과 사역의 힘을 주시며 나를 보호하고 시험을 이기게 하시니 큰 기쁨이 아닌가! 바울은 감옥에서도 그런 기쁨을 누리며 자유로웠다. 
금년 성탄에는 내가 주님을 새롭게 만나 이런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예수님의 사명 선언 The Mission of Lord Jesus

누가복음 4:16-24 예수님의 사명 선언 The Mission of Lord Jesus )12/4 새마음교회
12월이 되면 주님의 탄생을 앞두고 대림절 불을 밝히며 그의 강림을 기다린다. 그도 우리와 같이 탄생함으로 한 생명이 되었다. 생명이란? 삶의 명령이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사람이 있나? 생명으로 태어나는 명령을 받다.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였으나 처녀인 그에게 천사가 임신을 알리고 약혼녀를 의심하는 요셉에게 천사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알리다. 나는 것도 명령이요 사는 것도 명령이다.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어떤 형편에서나 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생명이란 삶의 사명이다. 살며 할 일이 있다. 누구나와 같이 예수께서도 명령과 사명을 가지고 태어나다. 
예수께서 성인이 되어 공생애 사역할 때까지 시절을 나사렛에서 지난 것으로 본다. 요셉의 아들이라 한다. 목수의 아들이라 한다. 고향에서 익숙한 이름이다. 요셉의 맏아들로 목수 일을 배우고 하였을 것이다. 형제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누이들과 같이 살았다 (마13:55). 안식일에 늘 하던 대로 회당에 갔다고 하는데 어린 때부터 부모를 따라 회당에 갔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어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안식일마다 성전에 모이기 어렵기에 어디서나 열명 정도만 있으면 회당을 세운다. 회당은 우리의 교회나 같은 성격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말씀을 읽고 배우고 기도하는 법을 배운다. 예수께서 열두살에 부모님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 유월절 절기에 갔다가 돌아가는데 부모는 그가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알았으나 없는 것을 발견하고 예루살렘에 돌아가 3일만에 성전에서 교사들과 토의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미 그는 그 나이에 교사들과 토론할 정도로 하나님 말씀을 알고 있었다. 이것이 평생 그의 힘이 되었다. 나중 사탄에게 시험 받을 때도 기록되었으되 하며 말씀으로 시험을 이겼다.
그가 30세 성인이 되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수행하면서 자라난 고향 나사렛 회당에 습관대로 가서 성경을 읽으려고 서니 맡은 자가 이사야 두루마리를 주었다. 당시는 오늘 우리 같은 성경이 아니라 양피지에 책별로 기록된 두루마리였다. 61장을 찾아 오늘 말씀을 낭독하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여 기름부어 보내심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자를 풀어주어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것이다. 부모를 통하여 태어나고 자라난 그가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역하도록 보내심을 받았다. 생명으로 보냄 받고 사역을 위한 사명 받고 보냄 받았다. 
보내받기 전 그에게 성령이 임하고 기름 부었다고 한다. 예수님의 삶은 전체가 성령으로 되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약혼녀인 때 천사가 나타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은 이의 영광이 네 위에 있어(눅 1:36) 임신한 것을 알린다. 요셉에게는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되었다 (마1:20)고 한다. 성령으로 임신되었다. 그가 공생애를 시작하며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에게 임하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음성이 들린다 (눅3:22) 그는 성령이 충만하여 요단강에서 광야로 가서 40일간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 시험은 유혹이요 또한 자격 심사로 합격해야 일을 하게 되는데 그는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니 그 소문이 퍼졌다 한다.
그는 요셉의 아들이었으나 성령으로 태어났고 지금은 성령이 충만하고 기름 부음 받은 성령의 사람으로 고향에 돌아가다. 기름 부음은 너는 내 것이라며 구분하는 것인데 구약시대 왕 제사장 선지자에게 그렇게 하였다. 기름부음을 한 마디로 그리스도 메시아다. 예수께서 메시아로 보냄 받은 것을 고향에서 선포하며 취임하는 것과 같다.
처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복음은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이다. 그것이 
가난한 자에게 전해진다. 가난은 물질 육체적으로 필요한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다. 당시는 거의 전부가 가난하다. 소수의 지주 부자가 있지만 대개는 가난하다. 가난하면 먹기 위하여 무슨 일이나 하도록 마음이 열려 있다. 이민 초창기 처음 왔을 때 먹고 사는 것이 급하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어떤 일이나 해야 했다. 시카고에 당시 공장이 많아서 대개가 공장에 나가 밤에도 낮에도 일을 하였다. 
가난하면 불평이 있다. 출애굽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먹을 것 마실 것 고기가 없다고 계속하여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하였다. 정치인은 국민의 불평을 막고자 잘 먹이려 한다. 한국이 분단되고 북한에 공산주의가 시작되며 김일성이 가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 기와집 이밥에 고기국을 먹게 하겠다고 했지만 97년 방문시에 보니 평양만 벗어나면 한국의 50년대 초가집, 가난에 시달리며 배고프다 하면 수령 모독이라 배아프다고 해야 하는 형편. 길거리에서 배낭을 메고 가는 개성에서 온 사람을 만나다. 양식 구하러 간다면 여행이 허락된 시절이다. 그는 길을 가다가 허리를 굽혀 무엇을 주어 배낭에 넣는다. 무엇인가 물으니 무엇이나 먹을 만한 것은 집어 넣는다고 하다. 마음도 배낭도 배도 열려 있다. 평양에 사는 사람은 차라리 시골에 사는 것이 낫다고 한다. 시골에는 뜯어 먹을 풀이라도 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복음, 영생의 기쁜 소식에 열려 있다. 부자는 가진 자로 자기 것을 지키려 하며 마음을 닫는다. 잘 받아드리지 않는다. 예수께서 수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 시골로 가서 일을 한 것이 바로 그러하다. 물질의 가난만 아니라 마음의 가난도 그렇다. 마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8복에서 먼저 말한다. 교만하면 마음이 닫히지만 겸손하고 가난하면 마음이 열린다. 배우고 받아드리려 한다. 나는 부한가 가난한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준다. 포로라면 포승줄로 묶이거나 칼이나 총끝에 밀리며 자유가 없이 매여 있는 모습이다. 전쟁 포로는 살았으나 죽은 것이나 같다. 전쟁은 악한 세력 마귀와 일어난다. 마약에 포로되어 죽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일에 노예되고 자신에 종이 되고 죄의 종이 된 자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자유를 갈망한다. 예수께서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 회당에 갔더니 귀신 들린 자가 소리 지른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고 한다. 주께서 명하니 귀신이 나가고 성한 사람 되었다. 거라사 지방에 군대 귀신들려 쇠고랑으로 묶었지만 끊고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며 소리지르는 사람이 있다. 주께서 그를 찾아가시고 귀신에게 명하여 나가게 하고 그를 자유롭게 하셨다. 
시카고에 기도의 집 교회가 있다. 한미교회 집사로서 업타운에서 큰 옷가게를 하던 사람이 물건이 계속 없어지는 것을 알아보니 그곳의 홈 리스들 소행이었다. 그들이 불쌍하게 생각되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2층 방에 모아 성경을 가르치려니 부족을 느끼고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고 도시선교사로 파송되어 홈 리스 교회를 시작하여 20년 이상 사역하고 있다. 교인 중에는 마약/알콜 중독자 점쟁이 총기 거래자 등 많은 사람들이 복음으로 포로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고 직업훈련 받아 직장 가지고 결혼 가정을 이룬다.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된 이가 여럿이고 선교사가 되어 인도네시아로 가기도 하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다. 할렐루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주신다. 안경을 낀 사람? 잘 보기 위함이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나이 들어 황반변성이 되면 어떤가? 고칠 길을 찾는다. 최고라는 매요 클리닉에도 가다. 주께서 맹인을 고쳐주시다. 보게 하시다.맹인 고친 날이 안식일이라 지도자들은 그를 죄인이라고 한다. 고침 받은 자는 그가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창세이후 맹인으로 난 자가 보게 되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데 나는 맹인으로 났지만 지금 본다고 하다. 그는 눈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를 고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알게 되었다. 그를 정죄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주님은 너희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다고 하며 그들은 맹인 지도자라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고 하신다. 
젊은 바리새인 사울은 예수 믿는 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박해하며 스데반이 순교할 때 앞장 서고 다메섹 성도들을 잡기 위하여 가는 길에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을 만나며 그 눈이 어두워졌다. 사람들의 인도 받아 가면서 자기가 얼마나 맹인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나니아가 기도하자 그 눈이 열려 의인 예수를 보게 되고 다른 사람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받았다.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는 자들이 있지만 영의 눈이 열리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 아닌가! 나는 아직도 눈이 어두워요 보기를 원한다고 주 앞에 겸손하게 나아갈 수 있을까!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한다. 마음이 상하고 눌린 자가 얼마나 많은가? 실패와 실망 우울 답답, 좌절과 절망으로 삶이 얼마나 눌리나? 인종차별로 눌리고 직장 사업부진 경쟁으로 눌린 형편, 친구가 멀어지고 코비드 팬데믹으로 갇히어서 가까운 이라도 혼자 앓다가 떠나는 것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프나. 주께서 자유를 주신다. 마음을 풀어 주신다. 코비드로 모이지 못하지만 그것을 감사하는 이가 있다, 어느 목사 사모는 몇 명 기도모임을 인도하며 온라인으로 멀리 있는 선교사들을 만나고 그곳 현장을 눈으로 보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 임재를 체험하는 놀라운 간증을 하였다. 
이런 지유함이 바로 주의 은혜의 해 곧 희년이다. 원상 회복이다. 하나님이 처음 만드신 그 모습으로 회복된다. 땅을 빼앗겼던 사람이 땅을 도로 회복한다. 종은 자유자가 된다. 빚은 모두 탕감이 된다. 모든 죄와 허물이 용서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으로 생명을 누리되 영생을 누리는 축복이 임한다. 얼마나 자유요 감사인가! 에수께서 오심으로 되는 일이다.
이 복음은 받아드리는 사람에게 복이 된다. 나사렛 고향 사람들은 그를 요셉의 아들이라 배척한다. 나다나엘은 빌립으로부터 예수님 소개를 받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는가? 지도자들은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일어나지 않는다며 배척한다. 잘 모르고 배척하며 그의 복음을 거절한다. 이들은 메시아는 이스라엘 사람들만 위한 것으로 아는데 예수께서는 시돈의 사렙다 과부, 이스라엘을 괴롭힌 아람의 장군이 은혜를 받았다고 하자 그들은 받아드리지 않고 그를 동리 낭떠러지로 밀고 가서 죽이고자 하였다.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은 국경을 넘어선다. 세상 모든 민족을 향하여 나간다. 어떻게? 주의 영, 성령이 충만함으로 권능을 받을 때 일어난다. 주의 사명과 사역은 성령의 힘으로 되어지다. 우리의 기도는 주의 영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성탄을 기다린다. 주의 오심을 기다린다. 주 예수께서 내게 오시어 나의 포로된 것을 풀어 주시고 눈을 밝게 하여 보게 하시고 나의 눌린 것을 자유케 하시는 역사가 일어나길 바란다. 내가 새롭게 되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다른 사람도 자유와 해방의 축복을 누리게 할 것이다. 아브라함은 복을 받고 천하만민이 그를 통하여 복을 받게 되었다. 교회는 에크레시아 부름 받아 모인 사람이지만 예배 마지막 축도하면 세상으로 흩어지고 파송되는 디아스포라 교회다. 베드로나 바울만 아니라 모든 주의 사람은 어디로 가든지 어디에 있든지 주의 자유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사명을 수행하는 축복을 나눌 수 있겠나? 




Wednesday, December 7, 2022

평화의 왕 The Prince of Peace

평화의 왕 The Prince of Peace (12/3/2022)
우리가 만날 때나 해어질 때 안녕이라 인사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도 평화 샬롬으로 인사한다. 이는 삶의 형편이 항상 불안하고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 이스라엘이나 역사적으로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지 못하고 갈등과 분파가 심하고 빈부의 격차, 가난과 억압, 도둑과 수탈, 외세의 침략과 파괴, 피난과 방황, 상실과 노예 생활, 질병과 죽음의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라 자연스럽게 찾는 평안 안녕이었다. 조국을 떠난 이민자가 추구하는 것이 안정이요 힘들게 일하다가 은퇴한 사람들의 마음에도 평안을 소망한다. 
평화와 안녕은 어디에 있나? 좋은 소식이 들린다. 하늘에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에게 평화라! 예수께서 탄생할 때 천사들이 부른 노래다. 태어나는 아기를 예언자는 평화의 왕이라 부른다. 그는 평화를 주시는 분이다.
예수의 탄생 크리스마스는 이미 일어났지만 교회는 역사적 사건인 그의 탄생을 기억하고 축하하며 성탄 이전 4주간을 강림절 (Advent 대강절 대림절)이라 하고 마음을 청소하고 기도와 묵상으로 그를 맞을 준비를 하며 불을 밝힌다. 전통적인 교회는 상록수 가지로 둥근 화환을 만들고 주변에 네 개의 초, 가운데 흰 왕초를 세우고 매주 하나씩 불을 켠다. 희망, 평화, 기쁨, 사랑의 불을 차례로 켜다가 성탄일에 그리스도의 왕초를 밝힌다. 내일 주일은 강림절 2주로 베들레헴 초라 불리는 평화의 불을 밝힌다. 나사렛에 살던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하기 위하여 고향 베들레헴에 갔는데 여관에 자리가 없어 마구간에서 낳은 아들이 평화의 왕이라는 소식이 베들레헴 목자들에게 먼저 전해지자 이들은 아기를 찾아가 확인하고 경배하였다. 또한 동방의 점성가들은 특별한 별의 출현을 보고 예루살렘 왕궁을 찾아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자를 찾다가 그들도 베들레헴으로 가서 확인하고 선물을 드렸다.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경건한 시므온은 출생 40일 결례를 위해 엄마 품에 안겨 성전에 온 아기를 받아 안고는 이제 평안하게 축을 수 있다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예수님은 태어나면서부터 평화를 주시는 분으로 증언되었는데 이 평화는 무엇을 의미하나?  우리 말로 평화라면 두 사람이 한 집에서 십자가를 중심하여 먹을 것이 걱정 없는 것을 말하는데 히브리말로 샬롬은 사람의 전인적인 안녕(Holistic Wellbeing)으로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먼저 육신적으로 건강하고 먹을 것이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병든 자를 치유하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셨다. 평화는 관계가 좌우하는데 먼저 하나님과의 평화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반목하게 하는 사람의 죄를 예수께서 대신 처리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는 길을 여신 평화의 왕이시다. 사람을 유혹하고 죄를 짓게 하는 악한 영적 세력과 항상 전쟁이 있지만 예수께서 사탄을 정복하셨기에 주 안에서 평화를 주신다. 대인관계에서 빈부귀천의 갈등과 분쟁이 있지만 상대를 인정하고 높이며 섬기신 주님의 삶으로 평화를 이룩한다. 주께서 나를 용납하고 사랑하기에 나도 나를 받아주며 자신과 평화를 가진다. 그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며 로마의 압제에서 나라를 해방시키지 않으셨지만 주를 모시고 주와 함께 하면 형편에 상관 없이 마음에 주어지는 평화가 있다. 강림절기에 평화의 왕 주님을 모시고 참 평화를 누리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