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ne 28, 2022

힘을 기르라 Build up your Strength

힘을 기르라 Build up your Strength (6/25/2022)
1975년 뉴욕에서 목회하던 교회에 중학교에 다니는 어느 장로의 딸이 얼굴 예쁘고 공부를 잘하였더니 다른 아이들이 그를 따돌리고 놀리며 몸으로도 그와 싸우고자 하였다. 이를 안 엄마가 그를 태권도장으로 데리고 가서 특별 교습을 부탁하고 학교에 갈 때에 도복을 가지고 가서 보게 하며 매일 도장에 가서 훈련을 받았다. 3개월이 지나 발 차기를 제대로 하게 된 때 학교에서 그를 괴롭히던 아이들 중에서 제일 키가 크고 힘이 센 아이를 골라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한 판 승부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모두 둘러서서 보는 가운데 이 조그만 아이가 뛰며 발차기를 하여 상대방을 쓰러뜨렸다. 모두가 탄성을 지르더니 다시는 그를 놀리거나 괴롭히는 일이 없었다. 이렇게 매일의 인생살이가 힘이라는 것을 배운 사람은 운동과 무술만 아니라 건강 음식, 지식과 기술로 힘을 기른다. 
개인만 아니라 국제정치도 힘의 대결이다. 양순하다고 봐주는 것이 없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을 알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4개월이 넘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 역사는 전쟁의 역사요 성경 구약의 역사도 전쟁으로 채워져 있다. 이스라엘의 아합왕 시대에 아람왕 벤하닷이 많은 나라를 점령하고 32지방왕을 세워 이스라엘을 침략할 구실을 찾으며 모든 은과 금. 왕비들과 딸들을 모두 넘기라 한다. 곧 전쟁을 하자는 것이다. 아합은 선지자의 말을 따라 고관의 청년들을 앞세우고 군대가 적군을 공격하여 죽이니 아람왕은 도망하고 이스라엘왕은 크게 이기고 많은 전리품을 얻었다. 선지자가 다시 아합왕에게 가서 말한다. 왕은 가서 힘을 기르고 할 일을 알아 준비하소서. 아람 왕이 왕을 치러 오리이다 하였다. 전쟁에 대비하고 동시에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으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평화롭던 유럽나라들은 이제 국방비에 투자하고 무기를 준비하고 대비한다. 군인들이 발전된 무기로 훈련을 받고 실전에 참여하는 것은 더욱 큰 힘이다. 미국군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전 경험이 있기에 그것이 힘을 더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노예 생활하던 자기 백성을 구출하고 주시기로 약속한 가나안은 비어 있는 땅이 아니라 강한 민족들이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하여 정복 점령 정착하고 평화를 누리게 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전쟁을 알지 못하기에 이들에게 전쟁을 가르치기 위하여 하나님은 여러 민족들을 남겨두어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가르치겠다 하셨다. 전쟁이 힘을 기르게 한다. 
한국은 역사에서 많은 침략을 당하고 전쟁을 경험하며 배웠다. 이웃의 위협과 침략에서 나라를 지키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고 정도전도 안창호도 외쳤다. 교육 과학 기술 정보에 많은 것을 투자하고 그만큼 이루어 현재 많은 분야에서 세계 제일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 나라의 힘이다. 아프리카와 중동 여러 나라의 개발 기술 시범, 누리호 위성으로 우주 강국 진입, 석탄을 석유로 전환하는 기술, 한국어의 유엔 공용어, 말라위의 한국 편입 소청 등은 한국이 힘을 기른 증거이지만 또한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능력의 하나님을 교회가 겸손히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였기에 하나님이 은혜로 사랑을 베푸신 결과로도 본다. 하나님을 기뻐함이 힘이기에 개인, 국가가 그를 기뻐하면 625 같은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힘을 기르게 될 것이다.   









Wednesday, June 22, 2022

아버지날 Father’s Day

아버지날 Father’s Day(6/19/2022)
미국이 6월 셋째 주일을 아버지날로 정하여 아버지를 기억하고 존중을 표시하지만 한국은 거의 모든 아버지가 훌륭하게 기억될 것이다. 
경남 산청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이 대구로 중학교에 갔다. 공부에 관심 없이 지나다가 1학년을 끝내며 68명 반에서 68등이었다. 아버지의 실망이 두려워 68을 1로 고쳐서 가지고 갔더니 아버지는 아들의 1등을 축하하고자 재산 1호 돼지를 잡아 마을 잔치를 하였다. 어설픈 거짓에 속아 재산1호를 처리한 아버지께 그는 너무 죄송하여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하여 박사가 되고 대학교수를 거쳐 대학교총장이 되었다. 그의 아들이 중학교에 간 때 그는 아버지께 사죄하고 싶었다. “아버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인 것은 …” 아버지는 가로 막으며 “그만해라 다 알고 있다. 네 아들이 듣겠다.” 경북대학교 박찬석 총장의 이야기이지만 대개의 아버지가 그러하고 그 정신이 자녀에게 전해진다. 
나의 아버지도 그 중의 한분이다. 그는 일제시대 19세에 결혼하여 오두막집에 신부와 모친을 두고 돈을 벌겠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1년간 밤낮 노동을 하였지만 돈이 모아지지 않기에 이런 노동을 내 나라에서 해도 잘 살겠다고 확신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농협에서 융자하여 버려진 땅을 구입하고 부부가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상환과 융자를 반복하며 동리에서 잘 사는 집으로 변하였다. 정직과 성실 근면, 자수성가의 정신으로 일구어 낸 것이다. 해방 후 오래지 않아 장질부사에 걸리고도 조리를 잘하지 못하고 일을 하다가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른 아침부터 일에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 홍수 후 학교에 가다가 물에 빠져 옷이 흠뻑 젖어 집으로 돌아갔더니 아버지께서 호되게 야단을 치며 죽지 않으면 가야지 하며 쫓아 보냈다. 경주로 중학교에 보내며 아들을 위하여 집을 사서 어려움 없이 공부하도록 최선을 다 하셨다. 
모친이 예수를 믿자 제사를 하지 않는다고 반대하여 불화가 있기도 했지만 그는 굽히지 않고 손자 나를 데리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교회에 다녔다. 비가 오거나 추운 겨울에 교회에 가는 것이 염려되어 효심과 사랑으로 아버지는 동리에 예배당을 짓고 예배인도자를 초청하고 그를 접대하였으나 아버지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몇 년 후 운명 전에 아들의 손을 잡고 “내가 살았을 때는 네가 예수 믿지 않았으나 내가 죽은 후엔 너도 믿고 내가 가는 천국으로 오라”는 말을 남겼다. 아버지는 “내가 불효라 어머니 살아계실 때는 믿지 않았지만 유언을 지키고자 3년간은 믿겠다” 하시더니 담뱃대를 버리고 교회에 출석, 3년이 되기 전 주님을 만나고 평생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주의 종을 잘 섬겼다.
아버지는 내가 법관이 되기를 원하였으나 나는 목사가 되겠다고 하였더니 목사보다는 장로로 교회를 섬기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하면서도 나를 이해하고 받아 주셨다. 그는 관대하고 사랑이 많아 누가 도움을 요청하면 거절하질 않았다. 그는 시골에 살면서도 신문 라디오 텔레비 등으로 세계 정세를 알고 들려주며 또 내 이름을 위시하여 집안 친척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작명가 역할도 하였다. 그는 항상 내게 힘과 용기, 격려가 되고 그의 정신과 태도는 내게 남아있다. 그는 하늘 아버지가 어떤 분인가를 잘 보여주는 모범이라 기억하며 감사한다. 








Tuesday, June 14, 2022

검을 사라 Buy a Sword

검을 사라 Buy a Sword (6/11/22)
검이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눅22:36),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리라 (마태26:52). 예수께서 몇 시간 간격을 두고 제자들에게 하신 혼란스러운 이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  
예루살렘 밖 갈릴리 지역에서 3년간 사역하다가 그가 세상에 온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과 마지막 사랑의 만찬을 나누며 물으신다. 너희가 나와 함께 있을 때에 무슨 부족함이 있었는가? 없었다고 하자 이제는 전대나 배낭을 가지고 칼이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칼을 사라고 하신다. 여기 칼은 일상용품의 하나로 용도가 다양하지만 자신을 보호하는데 또는 원수를 공격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제자들은 아직 실감하지 못하나 주께서 떠나고 그들이 남는 세상은  그들에게 결코 우호적이 아니다. 주께서는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 복음은 적대 관계와 분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받지 않고 일일이 그를 비난하고 정죄하다가 처형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를 예측하는 제자들은 자기 보호를 위하여 칼을 준비하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몇 시간 후 예수께서 기도하던 곳에 유다가 인도하는 폭도들이 왔다. 베드로가 칼을 뽑아 한 사람의 귀를 잘랐다. 칼로 주님을 보호할 생각이겠지만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들고 온 무리를 칼 몇개로 대항하여 싸울 수 있을까? 더욱이 로마에 대항하며 예수 운동을 펼칠 수 있을까? 예수께서는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며 떨어진 귀를 만져 낫게 하시고 칼을 가지는 자는 칼로 망하느니라 하신다. 칼을 가지면 사용하게 되고 저항에 저항을 하며 피차 죽음을 면할 수 없는 것이 역사의 현실이다.
당시의 칼은 오늘의 총이다. 자기 보호와 안전을 위하여 미국에서 개인이 가진 총의 수가 2억이 넘는다고 함은 그만큼 불안하고 믿을 수 없는 사회다. 총을 가지면 과연 안전한가? 스탠포드대학 연구팀이 12년간 캘리포니아 1800만 주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그렇지 않다. 연구 기간 총으로 죽은 사람이 2300명, 총을 가진 집은 같은 지역에 살면서 총이 없는 집보다 2배의 살인이 있었고 총을 있는 집에 사는 자는 그렇지 않는 집보다 7배 이상이 배우자 가족 친구에 의해 살해되고 죽은 자의 84%는 총을 가지지 않은 여자였다. 외부로부터 낯선 자가 침입하여 살해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국제정치에서 무기를 가지는 것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지만 가지면 언젠가 사용하게 되고 총은 총을 부르고 죽음을 부른다.
그러면 예수께서 칼을 사라, 둘이면 충분하다고 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가 칼을 가졌기에 불법자의 하나로 여김을 받는다는 예언과 주께서 폭도에게 제자들을 가게 하라고 하여 자기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는다는 말씀을 이룬다고 하신다. 그의 말씀은 칼로서 폭력행사가 아니라 예언을 따라 불법자처럼 잡히어 죽는다는 것이다.
칼은 또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때 말씀으로 그를 물리치고 승리하여 성령의 능력을 입고 사역하였다.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가 온갖 술수와 갈등을 일으키는 세상에서 우리도 성령의 칼로 원수와 당당하게 대결하여 이기고 능력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나?   






Tuesday, June 7, 2022

총 끝 The End of Guns

총 끝 The End of Guns (6/4/20220
지난 5월24일 텍사스 유발디의 로스 초등학교에 총기를 든 18세 소년이 들어가 동생 같은 19명 학생들과 2명의 교사를 살해하고 많은 학생에게 부상을 입혔다. 학교의 총기 사건은 자주 일어난다. 큰 것만 하여도 1999년 콜로라도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13명, 2012년 코네티컷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26명, 2007넌 버지니아 블랙스버그 공과대학에서 32명이 생명을 잃었다. 이런 때마다 총기 규제에 대한 말이 뜨겁게 나오지만 지금까지 해결이 되지 않고 있고 학생들과 부모는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울 정도다. 미국인 10명 중 4명은 집에 총이 있고 3명은 총을 소유하고 있으며 총기 판매와 소유는 갈수록 많아지고 코비드 팬데믹 기간에 총기 판매가 이전보다 더욱 늘어났다. 
왜 사람들은 총기를 소유하나? 사냥, 오락의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개인의 안전과 보호다. 미국을 개척할 때부터 넓은 땅에 흩어져 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자기 안전을 위하여 총기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도시보다는 인가가 적은 시골이 총기 소유가 더 많다. 서로를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여 불안한 사회라는 것을 말한다. 이로서 미국 헌법 추가 2 조는 총기 휴대 권리를 인정하기까지 한다. 
총기 집단살해가 있으면 총기 규제에 대한 논란은 많지만 총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범죄 경력이 있는가 정신 질환이 있는가 하는 정도이지 별로 말이 없다. 사실은 총보다는 사용자가 더 심각하다.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그 속에 쌓여 있던 분노와 증오, 실패와 좌절, 실망과 우울, 자해 심리가 표출되고 터지는 것이라 본다. 동시에 사람의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부족하다. 아이나 어른이 좋아하는 게임의 많은 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상대를 죽임으로 내가 살아남는 것으로 쾌감을 느끼게 하며 상대는 생명이 아니라 처리할 대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을까? 창 끝 The End of Spears라는 실화에 근거한 영화가 2005년에 나왔다. 에콰돌의 열대 밀림에서 외부와 접촉이 없는 와다니 부족 선교를 위하여 네이트 세인트 조종사와 다른 4명이 여러 번 물자를 내려주다가 착륙을 하였다. 창을 의지하고 살던 사람들이 몰려와 그들을 침략자로 생각하고 모두 살해하였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수도 키토에서 선교하던 네이트의 누이 라헬과 다른 선교사 부인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그들에게로 들어갔다. 여인들은 위험인물로 생각되지 않아 해를 받지 않고 여러 면으로 그들을 섬기며 도왔다. 죽은 자들은 생명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생명을 바친 것이라며 사랑을 베풀자 네이트를 살해한 민카예와 부족원들은 감동을 받아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으며 성령의 역사로 변화가 되어 창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네이트의 아들 스티브는 민카예를 아버지로 삼았다. 두 사람이 콜롬바인 학교 총기 사고를 듣고 창 끝이라는 영화를 제작하여 총을 끝내는 길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법으로 규제해서가 아니라 개인이 사랑과 평화의 사람이 되어 서로를 신뢰하고 용납하며 섬기는 사회를 만들면 총이 필요 없게 되고 총은 끝나는 것이다. 예수의 복음과 성령의 능력으로만 사람이 변화되고 총이 끝나는 시대가 올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