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anuary 15, 2024

새 해의 비전The vision of New Year

새 해의 비전The vision of New Year
음식을 만들며 맛 보아라, 그리고는 먹어 보아라 한다. 옷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입어 보아라 한다.  길을 모르면 아는 사람에게 물어 본다,  누구에게 가 보아라 또는 와 보아라 한다. 보아라는 말을 쓰는 것은 눈으로 보고 경험하듯 확인하라는 말이다. 실수와 잘못, 거짓이 많기에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며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고 아직 일어나지 않는 일은 어떤가? 그것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고 확인하는 것이 비전이다. 새해가 시작되었으니 년말이 올 것이고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습관적으로 생각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는 일을 비전으로 미리 보고 경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차를 운전할 때 가는 길이 어떠한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GPS는 가는 길과 도착지, 과정과 시간을 모두 알려준다. 한 도구가 그럴 수 있다면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 삶의 처음부터 과정과 끝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간다면 행복한 인생길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유대교 추종자 바울은 비전을 보고  개종하여 아시아 유럽의 복음전파자가 되었듯이 패트릭은 아일랜드 복음화의 일인자가 되었다.  그는 5세기 영국 출신으로 16세에 해안에서 나포되어 끌려간 곳이  아일랜드의 목장이다. 힘들게 6년간 양을 치다 탈출하여 고향에서 프랑스로 유학하였다. 그 때 아일랜드 사람이 나타나 형제여 우리에게 와서 우리와 함께 살자고 하는 비전을 보고 그곳으로 돌아가 아일랜드 복음화에 헌신하였기에 그는 성자로 호칭되고  나중에 3월17일을 성 패트릭데이로 정하였다. 그의 전도영향으로 주를 믿은 시인 댈런 포게일 (Dallan Forgaill)이 6세기에 쓴 시가 아일랜드에서 내려오다가 1905년 매리 번이 영역하고 엘리너 헐 (Eleanor Hull)이 찬송가사 형태로 만들어 1919년 “주여 나의 비전이 되소서” (Be Thou My Vision)  아일랜드 찬송가로 출판되고 우리 찬송의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로 주께서 나의 비전이 되어 달라는 기도 찬송이다. 하나님은 비전을 주신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너는 무엇을 보는가 묻자 그는 살구나무 가지를 본다고 한다. 하나님은 잘 보았다 하시며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리라 하신다. 겨울동안 죽지 않고 살아 있다가 봄에 잎과 가지가 뻗어가듯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살도록 지키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고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보고 전달하며 백성들을 깨우치는 선견자(선지자)가 되었다. 
에스겔은 비전에서 해골이 가득한 골짜기로 갔다.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는가 하나님이 물으신다. 자기는 알 수가 없지만 주께서 아신다 하였더니 드디어 그 뼈들이 살아 일어나 큰 군대를 이루었다. 그것이 나라에 현실로 일어났다. 그러기에 잠언은 비전이 없으면 백성이 망한다(잠29:18)고 말씀한다. 
예수께서는 하늘비전을 나누셨다.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말씀하고 그것이 현실이 되도록 일하셨다. 네 사람이 메고 온 중풍병자에게 죄 용서를 선포하고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사람을 망가뜨리는  죄를 말소하고 온전한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시는 천국비전을 이루셨다.  회복된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주의 비전으로 살기를 주님이 바라시기에 주를 믿는 사람은 새해를 맞아 주의 비전을 보고 그것을 이루어 나갈 것이다. 











Tuesday, January 9, 2024

열린 문 Open Door

열린 문 Open Door
유대인 아침기도의 하나는 “우주의 왕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혜로 우리를 지으시고 여러 곳을 열고 통로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열린 것이 닫히거나 닫힌 것이 열리면 우리 삶은 끝이 나기에 주를 찬양합니다.” 혈관이 연결되고 대소변 통로가 열린 것이 감사하다.
뉴욕 엘리스섬에 우뚝 선 여인상은 미국이 자유롭게 열린 것을 상징한다. 물결에 밀려온 쓰레기, 세파에 시달린 지친 이들은 이리로 오라 내 팔 벌려 맞아주리라 하는 말에 힘 입어 많은 이민이 왔고 우리도 와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미국에서 어떻게 사는가는 개인의 선택이다. 밤낮 없이 일을 하여 자녀 교육과 안정된 삶을 이루고 다른 사람과 나라에 유익을 끼치는가 또는 자유로 방종하고 자기 편한대로 지나며 나라와 남에에게 부담을 주는가! 미국이라도 용납하기 힘들고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이민이 있기에 어느 국경에는 담을 쌓고 문을 닫음으로 많은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고 좌절하여 죽기까지 하는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 좁은 땅 한국의 남북이 분단되어 자유롭던 통로가 닫히고 넘으면 죽음이라는 철책이 놓여 있기에 우리의 소원은 막힌 담을 헐고 자유롭게 내왕하는 독일의 통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은 문을 닫던 쇄국정책을 경험하였기에 분단과 가난의 아픔에 좌절하지 않고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으로 나라의 문을 열고 나가 학문과 기술을 배워 들이고 불철주야 일에 일로 세계 6대 강국의 기적을 이룩하고 이제는 온 세계로 문을 열고 내왕하며 유익을 준다.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것이 있다. 새해라는 문은 우리 모두에게 동등하게 열려 있다. 들어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산 자는  들어가고 죽은 자는 들어가지 않는다. 일단 들어가면 무엇을 보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삶과 재능을 최고로 발휘하는가 아니면 시간에 밀리고 남용하다 시기를 놓치는가 하는 것이다. 
집마다 문이 있어 열고 닫지만 사람의 마음에 문이 있다. 사람을 보아 문을 열거나 닫는다. 받아들이거나 내어 보내는 것을 원하거나 원하지 않기에 일어난다. 내 속에 추한 것을 보이고 싶지 않고 또 내 것이 가득하여 다른 것을 더 받아드리지 않는다. 문제는 닫혀만 있어 나가지 못하면 건강과 생명을 망치게 된다. 속이 빈 것을 알고 개화정책으로 많은 것을 받아들여 잘 살게 되었지만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지는 못한다.  영생을 들고 누군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며 문을 열면 들어가 함께 하겠다고 한다. 생명의 떡이요 다시 목마름이 없는 생수인 예수시다. 그는 우리 속에 오시기를 원하는데 우리는 문고리를 잡고 열까 말까 망설인다. 문을 열고 그를 환영하기만 하면 그와 함께 생명과 기쁨, 평화와 자유가 들어온다. 그가 들어와 우리 속을 채우면 그 때는 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간다. 주님을 모신 빌라델비아에 주님은 열린 문을 두고 온 세상으로 주의 생명과 평화의 복음을 전하여 세상에 주의 생명이 채워지기를 원하신다. 나의 열린 문에서 무엇이 밖으로 나오는가를 자문하며 나를 통하여 주의 생명이 이웃에 뻗어나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