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30, 2019

살아계시기에 Because He Lives


살아계시기에 Because He Lives (4/28/19)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영원히 살아계신 주가 되셨다. 그가 살아 계신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살아 있으면 만나게 된다. 그가 찾아가서 만나주신다. 내가 죽었다가 살아난다면 제일 먼저 누구를 만나고 싶을까? 주님의 심정이다. 주를 잃고 슬퍼하며 상심하는 자, 소망을 잃고 고통하는 자, 믿지 못하여 의심에 눌린 자를 만나시다. 부활하신 주님은 문을 닫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음식을 같이 나누고 그리고는 보이지 않게 떠나셨다. 그는 시공에 제한 받는 육체가 아니기에 누가 주를 만나겠다고 어느 곳에 찾아가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모든 백성이 아니라 미리 택하신 증인 곧 모시고 함께 음식을 먹던 소수에게 나타나셨다고 한다. 주님이 그를 모욕하고 처형케 한 종교 지도자들에게 나타나 자기를 과시하고 그들을 굴복시킬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가 박해자 포행자 중 한 사람 사울을 만나신 것은 오직 그를 자기 증인으로 쓰시기 위함이다.
   주님은 지금도 사람을 만나주신다. 주를 만나면 생각과 삶이 달라진다. 기쁨과 소망이 있고 관점이 새로워진다. 주께 헌신한 자들이 교회, 선교지, 어디서나 주의 사환과 증인으로 일을 하면서도 약함과 질병, 환난과 고통을 만나고 기도 응답이 늦어지고 일의 열매가 없어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주께서 말씀이나 기도 중에 이들을 만나고 새 힘을 주어 일어나게 하시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살아계신 주님은 지금도 일 하신다. 그가 세상에 계실 때 하시던 일을 직접 또는 주의 사람을 통하여 행하신다. 그는 주를 믿는 자와 함께 하여 평안을 주시고 도움과  필요한 것을 공급하며 또 시험과 환난에서 지키고 보호하신다. 날마다 경험하는 일이다. 그는 살아계시기에 우리와 교제하기를 기뻐하고 우리가 주를 사랑하여 주의 몸된 교회에서 봉사하고 나아가 주의 이름을 높이고 복음을 전하면 더더욱 기뻐하신다.
    살아계시기에 주님은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로 그가 만드신 모든 것을 관리하고 다스리신다. 주께서 피 흘리고 세워주신 그의 몸된 교회를 사랑으로 관리하고 지키시기에 주의 눈이 자기 교회를 항상 살펴보고 계신다. 주께서 주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 모든 사람과 만물을 주장하시며 언젠가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바꾸실 것이다. 이로서 주께 찬양드리며 높여드릴 것 뿐이다.

       


닫힌 문을 열고 Opening the Shut Door


10:27-35, 47-48 닫힌 문을 열고 Opening the Shut Door (4/28/19 주일)
우리는 인생의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간 경험을 하였다. 이민이 쉬운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문이 꽉 닫혀 있어 열고 들어갈 수가 없었지만 여기 우리는 그 문을 열었다. 아이들 학교와 진학, 본인의 직장이나 사업에 닫힌 문이 많이 있은 것이 사실이나 문을 연 것도 있고 열지 못한 것도 있다. 문은 닫고 열려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왜 필요한 것인가? 어떤 사람은 받아주고 어떤 사람은 거절하기 위함이다. 개인 사생활, 정보를 보호하고 침략 약탈을 막기 위한 수단이라 본다. 문을 닫고 여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사는 공동체 생활에서 일어난다. 개인과 단체, 종족이나 문화 종교 국가에도 문이 있다. 미국에 누구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 같으나 서로 닫힌 문이 있다. 유색인종에 대해 문을 닫고 증오 범죄가 일어날 정도로 가까이 오는 것을 싫어하는 자도 있다. 미국 문호도 한 때 열려 있는 것 같았으나 지금은 많은 통제가 있다. 한국이 쇄국정책을 한 때가 있었다. 사람 사이에도 문이 있지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닫힌 문이 있다.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이 있어 하나님께 나가는 문을 닫은 것은 아무나 하나님 앞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다는 의미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 그런데 문을 열고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내왕하고 만날 수 있으면 큰 평안을 누린다. 개문만복래라고 하듯이 문을 열면 만복이 들어온다고 하면 어찌 문을 열지 않겠나? 문을 열고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좋은 것이 있는 것을 알면 어떻게 해서라도 문을 열고 들어갈 것이다. 천국 문에 들어가면 생명과 평안이 있다.
오늘 성경 행10장은 두 사람 두 종족 두 문화 사이에 문이 닫혀 있다가 그 문이 열리는 것을 보여준다. 고넬료와 베드로, 로마인과 유대인, 군대의 백부장과 그리스도의 제자, 무력과 영력, 다신과 유일신은 서로에게 문을 닫고 있을 정도가 아니라 문을 열고 들어가면 법에 위반된다.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고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이라는 것을 고넬료도 베드로도 알고 있지만 법과 관례를 넘어서서 닫힌 문을 열고 가까이 교제하게 되다. 이는 세상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과 생명, 천국을 위한 것이다.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려면 안에서 열어 주든지 열쇠가 있어야 한다. 닫힌 문을 여는 열쇠가 있다. 예수께서 베드로 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며 네가 매면 매여 있을 것이요 풀면 풀리리라 (16:19). 열쇠로 문을 열 수 있고 또는 그대로 닫아두고 있을 수 있다. 겨울 내내 문을 닫고 살다가 봄 따뜻한 햇빛과 바람이 불면 문을 열고 생기와 희망을 받아드릴 수도 있고 겨울처럼 그대로 닫아둘 수도 있다. 베드로는 문을 닫고 있다. 이방인 고넬료를 향해 문을 열지 못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도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아니라며 문을 닫고 있다. 고넬료도 문이 닫혀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구제하고 기도하지만 유대인의 멸시를 받고 있고 그의 죄 사함과 구원, 천국의 문은 열려 있지 않다. 이런 형편에 문을 여는 열쇠가 작용한다.

1믿음과 기도의 열쇠로 문이 열린다. 베드로가 주님에게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할 때 그 믿음을 나타내다. 그 때 천국을 여는 열쇠를 받았다. 그러나 이방인에 대한 문을 닫고 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향해 문을 열고 구제하는 일을 하고 있으나 아직도 멸시 받고 구원 확인이 없으니 항상 기도하였다. 그는 로마의 백부장으로 군대의 힘을 의지하여 무력을 사용하는데 익숙하고 로마가 발전하고 힘이 있음은 다신의 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는 한계를 보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있음을 알고 유일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 가지고 기도한다. 그가 기도할 때 하늘이 열리고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한다.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이다. 그 때 베드로는 피장 시몬의 집에서 기도 시간에 기도하고 있는데 하늘이 열리며 보자기 같은 것이 내려 오고 그 안에 각종 짐승과 새들이 가득한 것이 보이다. 일어나 잡아 먹으라는 음성이 들린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내가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것을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다. 그가 주님의 제자였지만 그의 마음은 주의 말씀을 향해 열려 있지 못하다. 닫혀 있다. 다시 음성이 들린다. 하나님이 깨끗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이런 일이 세번 반복되었으나 베드로의 마음은 아직 닫혀 있다. 그러나 그가 기도할 때 주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그에게 말씀으로 다가 오신다.
엘리야 시대 3 6개월 비가 내리지 않고 하늘이 닫혀 있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기도 할 때에 하늘이 열리고 비가 내리다. 한 번이 아니라 일곱번 기도하였다. 거듭 거듭 응답 있을 때까지 기도한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리라 (33:3).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1:12)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한다(16:16). 힘을 다하여 노력한다. 베드로는 금식하며 기도한다. 고넬료는 구제하면서도 항상 하나님께 기도한다. 주의 응답을 받고 주의 나라가 그에게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믿음은 닫힌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2말씀에 순종하면 문이 열린다. 믿음은 행함이 수반되고 주의 말씀을 순종함이다. 믿음 으로 순종할 때 일이 일어난다. 여호수아가 백성과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요단강이 앞을 막고 있다. 먼저 제사장에게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강으로 들어가라고 명하다. 대단한 모험이나 궤를 멘 제사장의 발이 강에 닿는 순간 물이 갈라지고 마른 땅처럼 되었다. 순종하면 문이 열린다. 고넬료가 기도할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 베드로를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고하리라(11:14) 한다. 그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구제하다. 군인이 폭력이나 공포가 아니라 사랑으로 구제하는 일을 하여 좋은 관계를 맺고 싶었지만 유대인을 자기 집으로 초청한 기록은 없다. 천사의 말을 듣고 바로 순종하다. 군인은 상관의 말을 순종하면서 부하께 이것 하라면 하고 저것 하라면 한다. 즉시 응한다. 고넬료는 천사의 지시에 바로 응하여 베드로를 청하니 생각 밖으로 베드로가 응하여 온다. 지배자 로마의 백부장으로서 자기 집에 오는 유대인 베드로 앞에 무릎을 꿇고 환영하였다. 순종하니 자기 집에 구원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된다.
베드로는 기도하며 본 이상의 뜻을 생각하고 있을 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문 앞에 왔다. 주께서 내가 보낸 사람들이니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고 하신다. 베드로는 아니라 하지 않고 바로 순종하여 가다. 어떤 사람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고 하지 말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는 참으로 하나님이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자를 받으심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방인을 향한 그의 마음이 열리게 되었다. 자기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 보게 되다. 베드로 고넬료가 서로 만나다. 이들의 관계에서 순종을 통하여 닫힌 문이 열리게 되었다. 서로 교제하게 되다. 천국 열쇠는 주의 말씀에 순종할 때 작용을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다. 하나님이 나타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네게 복을 주고 세계 모든 나라가 너를 통해 복을 받도록 할 것이라고 하시다. 그의 나이 75세 은퇴한 나이에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순종하였다. 어디로 갈지 모르고 매일 매일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앞을 향하여 가다. 그로 인하여 그의 후손 예수를 통하여 유대인만 아니라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다. 순종함으로 오는 일이다. 베드로가 말씀에 순종함으로 구원의 문이 고넬료 집에 열리게 된다. 이방인과 유대인 간에 닫혀 있던 문이 열리어 서로 교제하고 하나가 된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모습이다. 이전에는 남남이요 서로 외인으로 지났지만 이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고 한 몸이 된다. 유대인의 음식법은 유대인을 이방인과 구분하고 서로 나누지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서로 하나가 되게 한다. 문이 열려 서로 내왕하고 소통하는 축복을 누린다.
예루살렘 교회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다. 교제하는 문을 연다. 그들이 가서 그 믿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였더니 성령이 임하였다. 하늘 문이 열렸다. 예루살렘 교회와 하나가 되었다. 두 사도는 사마리아 여러 곳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이전 같으면 이방과 다름이 없어 가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주께서 하신 말씀에 순종한다. 너희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주의 말씀이다. 기회가 있는대로 주께서 보내시는 곳이면 어디나 가서 복음을 전하고 주의 사람들을 세우고 하나가 된다. 종족 문화의 닫힌 문을 여는 일을 한다.

3그리스도의 복음은 닫힌 문을 연다. 베드로가 주의 말씀을 듣고 열린 마음으로 고넬료의 집에 가서 고넬료도 자신과 꼭 같이 구원이 필요한 사람인 것을 인정하고 그에게 복음을 전하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화평의 복음, 하나님의 아들로 나무에 달려 죽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3일만에 살리시고 저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이름을 힘 입어 죄사함을 받는다고 전할 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저희가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다. 성령 부어주심은 하늘 문을 열고 하나님의 임재와 영을 주심이다. 베드로와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이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성령 받음을 보고 놀라다. 이제까지 예루살렘 교인들의 생각은 이방인이 예수 믿기 전에 먼저 유대인이 되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놀라운 새 일이 일어났다. 이방인이 할례를 받지 않고도 바로 주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을 본 것이다. 예루살렘 신자들이 베드로가 이방인 집에 들어간 것을 시비하자 베드로가 설명하니 그대로 받아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이는 나중 바울이 안디옥 지방에 가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믿으려면 먼저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베드로의 이 사건을 통하여 할례나 율법, 구제 선행이 아니라 주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10:10).
고넬료 집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베드로 일행과 다름 없이 성령을 받았기에 그들 모두 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한 지체가 되고 하나가 되었다. 행전 2장 오순절에 일어난 그 일이 일어났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에 성령이 임하고 세례함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하고 베드로가 가이사랴 고넬료 집에서 설교하자 성령이 임하고 이방 로마인 교회가 탄생하였다. 주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천국 열쇠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 사마리아와 땅끝 이방인까지 예수 복음의 증거로 천국 문이 열리고 구원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오늘 예배하는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어떤 사람을 향하여는 문이 열려 있고 어떤 사람을 향해서는 닫혀 있는 것은 아닌가? 어느 종족 문화 직업 성별 연령에 따라 문이 열리거나 닫혀 있는 경우가 많다. 유대인처럼 한국인이 인종 편견이 많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주의 나라가 임하면 닫힌 문이 열린다. 초대 교회 빌립보 골로새 로마 교회 등은 모두 유대인 이방인, 주인과 종, 남여 노소가 고루 고루 섞여 있어 하나가 되고 서로 문을 열고 사랑을 나눈다. 한국은 양반과 천민의 차이가 심하였다. 복음이 들어오니 이들이 한 교회에서 같이 신앙생활하면서 천민으로 생각되는 백정이라도 역량에 따라 교회 지도자가 되고 그가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주께서 성령으로 하시는 일이다. 이민 삶에 외롭고 지치는 일이 많아 안식과 교제가 필요하여 교회를 찾는다. 교회는 이들을 팔을 벌려 받지 못하고 문을 닫고 편을 가를 때가 많다. 우리는 언제나 주를 경외하며 봉사하고 항상 기도하는 중 주의 음성에 순종하고 주의 사랑의 복음을 삶에서 함께 나눌 때 서로의 마음이 열리어 하나가 되어 주의 나라의 생명과 평안 기쁨을 누리게 된다. 또 우리가 천국을 누리면 다른 사람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천국 문을 열고 안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개인과 가정,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사랑을 나누며 하나되어 열린 천국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Wednesday, April 24, 2019

웃으시는 예수님 Laughing Jesus


웃으시는 예수님 Laughing Jesus (4/27/19 한국일보)
예수께서 크게 웃으신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나? 성경이나 예술에서는 대개 그가 인간의 아픔과 고뇌와 함께 하는 분으로 묘사된다. 그는 우리와 꼭 같은 성정을 가지고 사셨기에 주림과 목마름, 피곤과 고민, 슬픔과 눈물을 경험하고 또 배반과 죽음의 고통을 당하였기에 그의 모습은 보통 비통하게 나타난다.
  몇 년전 어느 목사 화가로부터 웃으시는 예수의 그림을 선물 받고 보니 그후 그것이 컵에도 달력에도 나왔다. 나는 그 그림을 서재 십자가 위에 걸어두고 매일 바라본다. 웃으시는 주님은 내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더하신다. 예수께서 질고는 아시지만 기쁨과 웃음을 아실까? 성경에서 그가 기뻐하며 웃는 많은 장면을 보게 된다.
  그는 잔치를 좋아하신다. 세리를 제자로 선택하자 그가 많은 동료 세리들과 잔치를 베풀고 주님을 초대하였다. 주께서는 잔치집에 가시어 포도주가 떨어진 것 아시자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기쁨을 주셨다. 잔치집은 기쁨과 웃음이 있다. 제자들이 주의 보내심을 받아 사역하고 돌아와 보고하며 귀신들이 항복하더라고 기뻐하자 주께서는 그들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며 자신은 성령으로 기뻐하시다. 성령이 주는 열매는 사랑, 기쁨이라 웃음을 동반한다. 일을 할 때 성령이 함께 하면 웃음을 가진다.
  주께서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많은 시비와 반대를 받았다. 그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귀신이 들렸다, 안식일을 범하고 율법을 어긴다, 하나님을 모독한다 하더니 로마 권세에 고발하여 십자가 처형을 하기까지 그를 대적한다. 열방의 군왕과 관원들이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나 하늘에 계신 자가 웃는다고 성경은 말한다. 위에서 권세를 주셨거늘 받은 권세로 그 권세 주신 자를 대적하는 것이 웃을 일이 아닌가! 아들이 자라나며 그의 작은 주먹으로 힘을 모아 아빠의 가슴을 친다면 아빠는 아프지만 힘생긴 아들을보며 오히려 기뻐하지 않겠나!
  그는 가장 고통스런 십자가에 달려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 하시고 운명하시며 자기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셨다. 그가 죽음으로 죄인이 용서받아 새 사람되고 주의 몸과 피로 생명이 자라 힘을 얻게 됨을 보면서 그를 보낸 아버지 품에 돌아갈 때 잘 했다고 하며 함께 기뻐하며 나누는 큰 웃음을 보게 된다. 고생하며 나은 자식 위해 희생하면서도 자식이 자라 뻗어가는 모습을 내다보고 웃음 짓는 엄마를 생각한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음을 지키며 서로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바라볼 때 주께서 천국에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신다. 언젠가 내가 가서 함께 살 집을 주님이 준비하며 웃고 즐거워하신다. 웃으시는 주님을 바라보면 내 마음에 감사와 기쁨 웃음이 넘쳐난다.




어둠이 온 땅에 Darkness over the Whole Land


마가 15:21-37 온 땅에 어둠이 Darkness came over the whole land (4-19-19 성금요일 저녁)
본문 15:33 6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9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9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하시고 곧 운명하시다.
6시는 우리 시간 12시 제일 햇빛이 좋고 하루 중 제일 밝은 시간인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다. 오후 3시에 다시 햇빛이 돌아왔지만 주님은 운명하고 아리마데 요셉이란 사람이 시체를 모시고 바위 속에 판 무덤에 장례하다. 해가 넘어간 어둔 시간이지만 무덤 속은 더욱 캄캄한데 주님의 시체가 놓여 있다.
12시에 어둠이 임하였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해가 빛을 잃은 것이다. 일식이 그렇게 오래 갈 수가 없다. 모세가 애굽에서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 보내라 해도 듣지 않자 여러 재앙이 임하던 중 어둠이 3일 동안 덮이게 되었다( 10:22). 여호수아가 아모리 사람과 싸울 때 기도하기를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하였더니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 하였다(10:13) 이런 일은 단순히 자연적인 현상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온 세상에 어둠이 임하였다.

  어떤 면에서 어둠이 임하였나?
1빛이 끄지니 어둠이다. 해가 빛을 잃으니 어둠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 하신 빛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처형하여 죽게 하는 것은 빛을 끄는 일이다. 의의 태양인 예수께서 돌아가시니 어둠이다. 빛이 끄지니 세상이 어둡게 되다. 캄캄하게 되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세상 형편이 어둠이다.
2유대 종교의 타락과 위선이 어둠을 가지고 오다. 위선과 전통에 사로 잡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보내신 구주를 받지 않고 배척한 것이다. 예수께서 참빛으로 세상에 왔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 (1:11). 그를 고발하고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하였다. 조롱하고 비방한다. 그들의 어둔 상태를 보인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면 사회의 도덕 규범이 산다. 종교가 부패하면 사람마다 자기 좋은대로 욕심을 부리며 도덕이 짓밟히면 세상은 어두워진다.
3로마 법이 기능을 잃고 어둠에 처하였다. 로마의 평화와 질서가 법에 기인하는데 재판관 빌라도는 예수께서 무죄한 것을 알면서도 백성들의 소리에 굴복하여 그를 십자가 처형 언도를 하다. 정의를 구현하고 지켜야 할 법이 사람의 소리로 대치되니 어둠의 세상이다. 법이 기능을 하지 못하면 세상은 폭력과 살상으로 어둠의 현장이 된다.
4일반 사람들에게 어둠이 임하다. 며칠 전만 하여도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이 그를 십자가 처형하라고 외친다. 그들은 지도자가 시키는대로 십자가 처형하라 소리지른다. 그들은 거짓을 참으로 믿고 실망하여 머리를 흔들고 비난하고 조롱한다. 그들 심령에 빛이 오는가 하였는데 다시 어둠에 사로 잡혔다. 자기 생각 견해에 맞지 않으면 거절한다. 모두가 자기 중심이라 남을 생각하거나 받아드리지 못한다. 이기적이요 독선의 세상은 빛이 없다.
5가까운 제자들에게 어둠이 임하다. 제자들의 꿈이 컸다. 로마에서 해방되고 새로운 나라가 건설될 것을 믿었으나 이들은 점차 실망하다. 마음의 희망과 빛이 사라진다. 가까운 제자가 스승을 팔아 넘기다. 끝까지 주를 따르겠다고 하던 심복 제자들이 예수를 모른다고 하며 도망을 한다. 이들의 비참한 어둠의 모습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팔아넘기다. 그러면 그가 능력과 기적으로 세상을 뒤집어 엎을 줄을 기대하였는데 그러지 않고 말씀하신대로 정죄되는 것을 보고는 죄책의 밤을 만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다른 제자들은 어둠 속에 숨어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믿음과 희망은 사라지고 후회와 절망의 어둠에 사로잡히게 되다.
6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둠이 임하다. 주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시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그의 기도가 얼마나 힘들었기에 땀이 피와 같았다고 의사 누가가 기록한다.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였는데 기대와 달리 기도가 끝나자 가룟 유다가 이끄는 폭도에 의해 주님은 체포되고 제자들은 도망하고 그는 죄인으로 끌려가 심문당하고 예수께서 가장 비참한 사형도구인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가신다.
십자가에 달려 가장 고통이 심한 그 시간 해가 빛을 잃고 어두워지다. 이는 주님의 심령일 수가 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 시나이까? 하나님이 아들의 고난을 볼 수 없어 눈을 돌린 것이다. 주께서 얼굴을 돌리시면 세상이 어둡다. 세상의 악하고 어두운 현실, 아들의 십자가 고난을 볼 수가 없어 눈을 돌리신 것이다.
7 주께서 십자가를 지신 곳이 골고다 또는 갈보리라 한다. 그러나 골고다라는 말을 훨신 더 많이 사용하고 갈보리는 한 번 나온다. 골고다는 해골의 곳이다. 해골 모양이라 하나 해골이 많은 죽음의 곳, 두려움과 어둠의 냄새나는 곳이다. 공동묘지의 장소다. 가고 싶지 않은 곳, 모두가 피하고 싶은 곳이나 죽음이 사람을 이 어둠의 곳, 음부로 끌고간다. 죽음은 어둠을 가져다 준다. 골고다에서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셨다. 골고다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어둠으로 닥친다. 온 세상에 어둠이 임하였다.
올네이션즈 경배와 찬양, 땅에 어둠이 덮였으니 억압과 고통뿐 민족열방은 소망 빠져가, 광란거짓 속에 정의는 어가네가 오늘의 현상이다. 희랍철학자는 대낮에도 아덴의 거리를 등불을 켜서 들고 다니다. 어둠이 덮인 것이다.

  이런 어둠의 때를 기다리고 좋아하는 자가 있다. 짐승과 도둑이다. 약탈하고 죽인다. 마귀가 좋아하는 어둠이다. 마귀가 유다에게 예수를 팔려는 마음을 넣자 그가 나가니 밤이었다. 그의 심령을 밤으로 만들었다. 사탄의 지배를 받으며 그의 종이 되어 따른다. 예수께서 그 시간을 사람의 때요 어둠의 권세라 하시다 (22:53) 곧 어두움이 다스리는 시간이라는 말씀이다. 사탄은 이겼다고 환호한다.
사탄은 빛을 싫어한다. 빛의 천사로 가장을 하나 실상은 어둠이다. 거짓과 미움이요 교만과 살상이다. 처음부터 예수를 죽이고자 하였다. 탄생할 때 헤롯이 유대인의 왕이란 말을 듣자 그를 죽일 생각으로 동방박사들에게 탄생 장소와 때를 자세히 물었지만 실패하자 두 살 이하의 모든 아이를 다 죽였다. 예수께서 사역 시작할 때 하나님은 그를 광야로 인도하여 금식하며 사탄에게 시험을 받게 하였다. 사탄은 그에게 인간의 기본적인 요구로 시험하며 그를 넘어 뜨리고자 하였으나 주께서 넘어가지 않다. 그러다 마지막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게 하니 그들이 승리하였다고 춤을 추고 기뻐하는 밤이다.
1983 10월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이 오세아니아 5개국 순방을 위해 장관들 수행원들과 미얀마를 방문 수도 양곤에서 독립운동가 아옹산 묘소를 찾아 참배 행사를 준비 중 북한 인민무력부가 장치한 폭탄을 터뜨려 장관 수행원 등 18명 미얀마인 4명이 죽고 많은 부상자를 내었다. 전 대통령은 교통 정체로 지연되었기에 죽음을 면하였다. 전쟁 선포와 같은 나라의 큰 비극으로 슬픔에 잠기는데 북에서는 잔치를 베풀고 기뻐하고 좋아하였다 한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무덤에 장사되고 어둠이 땅을 덮을 때 제일 기뻐하고 춤을 추는 것은 어둠의 세력 마귀와 졸개들이다. 종교지도자였다. 마귀와 악이 세상을 다스리는 시간이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어둠이 세상에, 아들에게 오게 하시나?
1주께서는 하나님으로 사람이 되어 우리의 모든 형편을 경험하시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어둠을 몸소 겪게 하신다. 제도적인 교회로 인하여 성도들의 삶을 통하여 실망하고 좌절할 때가 많이 있지만 교회생활 잘하고 기도를 하여도 응답이 없을 때 실망하고 영적인 어두움을 맞기도 한다. 나라의 법과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정의가 사라지는 것으로 인해 우리는 어둠을 경험한다. 사람들 사이에 비난을 듣고 소외되며 슬픔과 좌절을 가진다. 해야 할 일은 많으나 하는 일이 되지 않고 몸에 병이 나고 돈은 없고 고통이 심하여 어둠을 경험할 때가 있다. 병이 나면 치료를 받지만 치료가 되지 않고 점점 악화되고 치료의 전망이 보이지 않으면 어둠의 그림자가 온다. 다윗이나 선지자나 모든 성도에게 이런 어둠이 있다. 내게도 어둠이 있었다. 63년 죽을 병이 걸려 병원으로 갈 때 인생이 보이지 않은 캄캄이었다. 미국에서 처음 목회를 하며 78년 사순절에 금식하고 기도하며 주님과 가까이하고 주의 은총을 바라는데 가까운 자에게서 온 어렵지 않은 일로 영의 어두움이 닥쳐왔다. 3 24일 금요일은 내 인생 전체에서 가장 어두운 영적 밤이었다. 주께서 이런 모든 어두움을 직접 경험하셨다. 우리가 아무리 극심한 아픔과 어둔 밤을 만나도 주님이 이미 경험하신 것이다. 그가 아시기에 우리의 모든 아픔과 어두움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이시다.
2베드로전3:18 주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고 죽은 것은 육체다. 육은 죽임 당하고 영은 살리심 받아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다고 한다. 음부에 내려 가신 것이다. 사도신경 영어에는 무덤에 장사되어 지옥에 내려 가셨다고 한다. 하나님이 지옥을 만드셨기에 알고 거지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 하신다. 그러나 죽음을 통해 영으로 지옥을 직접 경험함으로 지옥이 얼마나 고통의 어둠인지 확인하고 우리를 그 지옥에서 구원하시고자 믿음 주신다.
3예수께서 요나의 표적을 자신에게 적용하셨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물고기 배속에 있어야 함같이 자신도 그럴 것이라 하셨다. 고기 배속은 죽음과 같이 어두움이다. 요나는 하나님을 거절한 죄로 인한 심판을 받았다. 그가 어둠 속에서 주께 부르짖고 기도하며 감사하고 주의 전을 바라보았다. 예수께서는 요나와 달리 죄가 없으시나 죽음의 고통을 당한 것은 마땅히 죽을 죄인의 어둔 상태를 대신해 스스로 그 어두움과 죽음을 겪음으로 인간 구원의 길을 연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었다. 요나는 3일 후 다시 살아 활동하게 되었다.
4 어둠이 어둠으로 끝나지 않은다.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오고 있다. 태초에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어둠이 덮여 있을 때 하나님은 먼저 빛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다고 하셨다. 어둠에 빛이 온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한다. 빛이 오면 어둠은 물러간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하나님이 빛을 만드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칭하였다. 어둠에 빛이 들어왔으나 여전히 어둠이 남아 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를 세상권력으로 끄버렷지만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기에 빛은 살아나고 주님은 부활하신다. 그래도 여전히 어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주를 믿는 자는 생명과 빛을 받는다. 제자들에게 일어났다. 30:2,3 내가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시고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40: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었다. 어둠 속에서 기도하게 되고 주의 응답으로 빛을 보게 된다. 어둠에 빛을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다 하시다. 빛은 아름답게 한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라 이는 둘 째 날이라 한다. 빛 후에 어둠이 아니라 저녁이 지나 아침이 된다고 한다.
우리에게 어떤 어둠이 있나? 우리는 주의 빛을 받아 빛 가운데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오늘 어둠이 있을 수 있으나 주께서 새롭게 빛의 아침을 주심을 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