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1 새로운 시작 A New Start (21-1-26 은목교회 방송설교)
청취자 여러분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로운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다. 금년 새해는 아주 암울하게 시작되었다. 국회가 대통령 당선자를 마지막 결정하려고 모인 1월6일 의사당은 소위 폭도들의 포위와 공격을 받아 의원들은 대피해야하는 미국 역사에 없던 일이 일어났다. 대통령은 결정이 되고 20일 취임식이 있는 의사당 주변은 철망으로 봉쇄되고 3만 군인이 지키고 있었으나 그 군인들도 믿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참으로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한 가운데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였다. 새 정부가 어떻게 분리된 민심을 하나 되게 하고 국민을 안정시킬 것인가 큰 과제를 안고 새로운 시작을 하였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 모두도 새롭게 출발하였다. 주변 환경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하여도 우리는 새해의 결심으로 새롭게 시작하여 어언 한 달이 지나간다. 새해 결심이 무엇이었나? 그것이 잘 지켜지고 있나?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보고 있나? 지난 날과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개가 새로운 시작을 한 사람들이다. 그 중의 몇 사람을 살펴 보려고 한다.
먼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다.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이민하여 살고 있었다. 이민자는 보다 나은 삶을 향한 꿈을 가진 자다.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아브라함은 꿈을 가지고 이민을 하였지만 자기 대를 이어갈 자식이 없다. 자기 계획대로 되지 않아 실망이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났다. 너는 살던 곳과 부모를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복을 주어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고 너를 통하여 세상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하리라 하신다. 그 때 그의 나이 75세, 안정할 나이에 또 다시 떠나야 하나? 이전에는 부모의 꿈, 자신의 생각으로 이민하였지만 이젠 하나님의 뜻을 따른 새로운 출발이다. 목적지를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는 말씀을 따라 출발하였다. 가라면 가고 머물라면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믿을만한 것인지 시험하고 확인도 하는데 그의 이름을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주셨지만 그는 자식이 없다.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가? 종을 후계자로 삼나? 아내의 종을 통하여 자식을 얻나? 여러가지 생각을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다. 이민 25년만에 생산 가능성이 없다고 하던 부인 사라를 통하여 아들 이삭을 주셨다. 자기 뜻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고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른다. 이삭이 잘 자라고 있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3일길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 하신다. 청천벽력이다. 우리라면 어떻게 할까?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이와 함께 그 산으로 향한다. 제단을 만들고 아이를 묶어 제단에 올리고 칼을 들어 그를 바치려 한다. 하나님은 급하게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아들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 이제 내가 네 믿음을 확인한다고 하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게 되었다. 신임하면 모든 것을 맡길 수가 있다. 하나님이 약속한대로 그는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이 창대하고 땅의 모든 사람이 복을 받는 조상이 되었다. 그의 새로운 시작은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가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입에 두고 마음에 묵상하며 그대로 지켜행하라 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믿으실 정도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는가?
예수께서 갈릴리 어부 베드로의 배를 빌려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더니 베드로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신다. 베드로는 내가 밤새 애를 썼으나 잡지 못했지만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겠나이다 하며 그물을 내리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다. 베드로는 주 앞에 엎드리고 주를 따르며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새해 출발은 어떠한가? 주의 말씀을 믿고 따르기로 하나?
다음으로 야곱은 태에서부터 쌍둥이로 다투다가 동생으로 태어난 후에는 계속하여 형의 자리를 얻고자 다투고 씨름하는 삶이었다. 배고픈 형에게 팥죽 한그릇을 주고 장자의 이름을 빼앗고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았으나 그는 형의 위협 속에 외갓집으로 도망하였다. 외삼촌의 둘째딸과 결혼하고자 7년을 수일같이 양을 쳤지만 첫날밤을 지나고 보니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은 다른 딸이다. 계속하여 속임을 당한다. 속이고 속임당하는 가운데 그도 양이 많고 자녀가 많이 나자 위험을 느끼고 야간 도주를 한다. 자기 가족과 재산을 이끌고 외가를 떠나 금의환향의 길을 출발하는데 외삼촌이 사람들을 모아 추격하는 것을 하나님이 막아주셨지만 이젠 형 에서가 400명 군사를 이끌고 온다. 산넘어 산이다. 많은 선물과 함께 가족을 먼저 보내고 자기는 강가에 남았는데 누군가 나타나 씨름을 하게 된다. 그는 지금까지 씨름하여 지지 않았는데 지금 상대방이 만만치 않다. 새벽이 되자 상대는 야곱의 허벅지를 치면서 놓으라고 하나 축복해야만 놓아주겠다고 한다.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었다. 발꿈치를 잡는 사람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함은 씨름 상대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축복이지만 야곱은 허벅지 뼈가 위골되어 절룩거린다. 그간 자기 힘과 꾀를 의지하고 씨름하고 다투었으나 이젠 그럴 수가 없다. 지팡이를 의지하며 하나님과 그의 능력을 의지하게 되었다. 더 이상 경쟁하고 씨름할 수가 없어 오직 하나님을 의지한다. 나를 의지하던 삶에서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새로운 시작을 하였더니 그 이름이 한 나라 이름이 되었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나?
마지막으로 가문과 학벌 신분이 좋아 촉망되던 젊은 사울이 있다. 그는 하나님께 열성이 있어 예수의 복음 전하는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 서고 유대교 지도자의 신임을 받았다. 이단으로 인정되던 예수교인들을 척결하도록 공문을 받아 외국으로 가고 있다. 그는 당당하고 야망이 가득하다. 목적지에 가까이 가는데 갑자기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 그를 비치자 그는 엎드러졌다. 음성이 들린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는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사울은 눈이 어두워지고 볼 수가 없다. 주의 손에 붙잡히고 주의 영이 임하니 눈이 열려 생명의 주를 보게 되고 이름을 바울로 바꾸었다. 그가 박해하던 예수를 전하며 아시아 구라파 각지에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자기가 산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그리스도가 사신다고 하며 성령에 이끌리다가 마지막 주를 위해 생명을 바치기까지 하였다. 교만하고 당당하던 그가 주님을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이민자로서 좌절과 실망은 아닌가? 모든 일에 씨름하듯이 힘든 투쟁은 아닌가? 자랑과 교만으로 자기를 내세우는 것은 아닌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주의 말씀과 힘에 의지하고 성령에 이끌리어 하나님이 예정하신 새로운 삶으로 출발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