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28, 2017

Visit of Sarah Stone 사라 스톤 터어키 선교사 내방

Visit of Sarah Stone, Missionary in Malatya, Turkey, 
and Samuel, one of 4 children, 
to visit and explore colleges for Samuel, 
Please remember them in your prayer.
Tim Stone and three other children staying on their mission field,
13 years without any sabbatical, proclaiming the Gospel and equipping disciples
including ministry for the deaf,
establishing the church of God among all people 


터어키 말라티아의 새라 스톤 선교사와 아들 사무엘의 방문,
현재 터어키에서 홈스쿨링 하는 사무엘이 갈 대학교를 방문하기 위하여,
기도할 때 기억하여 주십시오
팀 스톤과 존, 대빗, 애나 조이는 선교지에 사역 중
안식년도 없이 13년 복음 증거하며 농아사역을 포함하여 지도자 양성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이룩하고 사역을 확장 중에 있음




Wednesday, April 26, 2017

어떤 목사?!

어떤 목사!? (삼상 21:1-9)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로 작정한 것을 다윗이 알게 되자 그는 급히 도망하여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다. 사람이 위기에 처한 때 하나님의 도움이 있는 제사장을 찾는 것이 지혜다. 지치고 허기진 다윗은 제사장으로부터 하나님께 드렸던 진설병을 받고 또 블레셋 장군 골리앗의 칼을 받았다. 다윗은 힘과 용기를 얻어 자기 길을 가다.
여기 제사장은 오늘 하나님을 섬기는 주의 종들이다. 사람이 제사장을 찾아오는 것은 하나님을 구하기도 하지만 도움을 얻기 위함이다. 제사장이 기도하여 돕지만 굶주린 자에게는 먹을 것을, 힘이 없는 자에게는 능력을 더해야 할 것이다.
매일 스트레스에 쫓기고 상처받은 심령들이 위로와 도움을 받고 새 힘을 얻고자 교회로 찾아온다. 교회가 사랑으로 받아주고 주의 종은 무엇보다 이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먼저 떡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드린 떡은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위에서 허락하신 선물이다. 주의 종은 먼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떡을 받고 그리고 그 떡을 배고픈 자에게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시다. 동시에 광야의 사람들이 만나를 먹고 죽었지만 주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라 이 떡을 먹으면 죽지 않고 영생하리라 하시다. 그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자기 몸이라 한다.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떡이다. 주의 종은 생명의 양식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전달하여 치유와 생명, 힘이 일어나게 하는 사람이다.
다윗은 떡을 받은 후에도 원수의 공격에 대비하거나 대항할 칼이 필요하였다. 그 칼은 그가 이전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죽이고 그에게서 빼앗은 칼이다. 세상에서는 그보다 좋은 칼이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칼도 하나님의 사람 다윗 앞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고 골리앗은 죽임을 당하였다. 그 칼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그 칼이 다윗에게 주어지다. 칼이 주인을 제대로 만났다. 다윗은 이제 원수를 향한 준비가 되었다. 성경은 이를 성령의 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생명 양식도 되지만 동시에 우리의 무기가 된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응해 완전히 승리하였다. 성령께서 말씀을 사용하여 원수를 물리치신다. 오늘 주의 종이나 성도들의 무기도 그러하다. 성도들을 주의 말씀, 성령의 칼로 훈련하고 무장시키는 것이 주의 종의 멋진 사명이다.
다윗은 제사장을 만난 후 백전 백승의 위대한 전사요 또 왕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나라를 일으켰다. 오늘 이 일 저 일로 쫓기며 지치고 상한 심령들이 주의 종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떡과 칼을 받고 돌아갈 때는 새 힘과 용기를 가지고 세상과 원수를 이기게 될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기쁘고 신나는 일인가! 주의 종의 특권이여! 주의 백성을 위하여 자기 종으로 불러 주신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게 된다.



Sunday, April 23, 2017

꼭 보아야 하나요? Do I have to see?

요한복음 20:19-31 꼭 보아야 하나요? Do I have to see? (4-23-17 주일)
부활주일 후 일주일을 어떻게 지났나? 오래전 한국에서 맹인 친구가 나를 방문 왔다. 미국에 처음이라 구경시켜 달라고 한다. 차를 태워 여기 저기 다니며 이런 저런 설명을 한다. 아무리 좋으면 무엇해 보지 못하는걸! 그 말이 내 마음에 그대로 새겨지다. 아무리 좋아도 보지 못하면 나와 무슨 상관인가!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을 만나고 내가 주를 보았다! 제자들이 주님을 만나고는 우리가 주를 만났다! 기쁨이 가득하다. 그 때 12명 중의 하나인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 주님의 부활을 믿을 수가 없다.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 (20:25). 의심 많은 도마라 하지만 그는 예수께서 부활한 확실한 증거를 보기 원한다는 말이다. 그는 일 주일간 큰 고민에 있었다. 우린 어떤 심정이었나?

1. 문제와 대답: 부활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산단 말인가? 이전에 없던 일이라 믿기 힘들다. 무덤이 열리고 시체가 없다. 마리아나 베드로 요한은 누가 가져간 줄로만 알았지 살아났다고는 생각 못한다. 나중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을 만났다고 하니 제자들은 그가 정신 없는 허탄한 말을 한다고 하며 믿지 않았다(24:11). 설령 부활하신 예수를 보아도 잘못 보는 경우가 많다. 주께서 자기를 분명히 알려주지 않으면 마리아는 그를 동산지기로 알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부활의 주님을 단순한 여행객 으로 보다. 제자들은 그를 유령으로 생각하다. 우리 눈으로 내가 똑똑히 보았다고 하지만 잘못 볼 때가 많다. 도마는 믿고 싶으나 증거가 없으면 믿을 수가 없다고 한다. 도마는 디두모라 불린다. 디두모는 쌍둥이란 말이다. 그의 한 쌍둥이는 어디 있나? 우리가 그의 쌍둥이일 수가 있다. 과학시대를 사는 우리로서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믿을 수 있다. 증거만 확실하면 믿겠다고 한다. 도마는 만족할만한 증거가 없이는 받아드리지 못한다. 자기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아야 믿겠다는 것이다. 주님은 자기를 믿고 싶어하는 자를 도와주신다. 도마가 일 주일 전에 다른 제자와 함께 있었더라면 같이 주님을 만나고 기뻐하였을텐데 한 번 빠진 사이에 엄청난 축복이 그들에게 임하고 도마에게는 그만큼 고민이 생겼다. 일 주일 후 오늘 주께서 다시 나타나시다. 이들이 집 안에 있고 문은 닫혀 있다.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닫아 두었다. 유대의 관원들을 두려워 한다. 스승 예수를 잡아 사형하도록 한 그들이 예수의 제자를 충분히 잡을 수 있다. 제자들은 주님 부활에 대해,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아직 반신 반의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염려와 근심 의문이 많다. 문을 닫고 있는데 주님이 들어와 방 한 가운데 서서 평강이 있을지라 한다. 주님은 그들에게 평강을 주신다. 어떤 면에는 도마 한 사람을 위하여 오신 것 같다. 그에게 말씀하신다. 믿음이 없다고 그를 꾸짖지 않고 그가 원하는 대로 네 손가락 내 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신다. 주님은 우리가 믿는 자 되기를 원하신다. 믿음 없는 자로 남아 있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다른 제자와 같이 있지만 도마는 믿음 없는 자였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중에 믿는 자가 있고 믿음이 생기지 않은 자도 있을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확실히 믿기를 원하신다. 도마가 손을 내 밀어 스스로 확인 하였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말이 없다. 중요한 것은 도마의 고백이다. 나의 주님이요 나의 하나님이시다. 확실한 변화다. 이전에 믿던 주님만 아니라 이젠 그의 하나님이라 하다. 하나님이 아니면 어떻게 죽음에서 부활한단 말인가? 그는 하나님이다. 예수께서 이미 그와 하나님은 하나라고 여러 번 말씀하였으나 알지 못하다가 이젠 확실하게 알게 되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니 문제가 풀린다. 마리아의 말을 듣고 믿지 못하던 제자들이 주님을 만나자 확실히 믿게 되어 우리가 주를 만났다고 한다. 증거가 없이는 믿지 못한다 하던 도마도 주님을 만나자 누구보다 강한 믿음의 고백을 하다. 이제야 부활한 주님을 목격한 증인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된다. 주님 부활에 대한 목격자의 증언도,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체험하는 것도 둘 다 꼭 같이 귀한 문제 해결의 열쇠다.

2  주님의 기대. 지난 주일 주님 부활하신 날 밤 제자들이 문을 닫고 숨어 있는데 주님이 오심은 주님의 기대와 하실 일이 있으시다. 그들로 믿게 하고 할 일을 주신다.
1)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라. 오늘도 주님이 오시어 평강이 있을지다. 주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신다. 이 평강은 샬롬, 인간의 최대 안녕 웰빙이다. 전쟁과 두려움이 없지만 걱정 근심이 없는 최적 상태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다. 지금도 중동에서 그 인사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다. 성도들이 모이면 이 평강을 서로 나눈다. Peace of Christ be with you!!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한다. 주를 만나면 무엇보다 평안과 기쁨이 일어난다.
2)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제 부활한 주님을 목격한 그들이 주님의 보내심을 받는다. 이전 사역할 때 주께서 제자들을 3년간 훈련시키고는 그들을 내어보내시며 그가 하는 일을 하라고 하신다. 이제는 주께서 부활하여 살아 계신 것을 목격한 대로 증거하라는 것이다. 예수의 사도들이 가룟 유다 자리를 채우고자 한 사람을 정하여야 하는데 그 조건이 주께서 살아 계시며 사역하실 때 항상 같이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1:22). 그들의 중요한 일은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라 (2:32) 며 전하다.
3) 주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 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신다. 주께서 떠나시면 보혜사 성령 보내신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성령을 주신다. 이 장면은 창세기 사람 창조를 연상하게 한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하나님이 자기 생기 곧 영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2:7). 하나님의 성령은 생명을 일으키는 기운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나 우리와 같은 몸을 가지고 오시어 우리 죄를 대신하여 형벌과 저주를 받아 죽으셨다. 그리고 우리 죄 용서를 완성하고 부활함으로 부활의 새 생명이 되셨다. 그 부활의 새생명을 주신다. 죄를 지은 사람은 죽어 있다. 제자들이라도 주를 부인하고 도망하고 또 죄에 사로잡힌다. 그들에게 성령 곧 부활한 새 생명의 생기를 부어주시어 그들을 새 사람 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한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다. 오늘 주님의 생기는 새로운 생명을 주신다. 주를 믿고 영접하는 자는 주의 생명으로 새롭게 난다.
4)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신다. 주기도에서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 기도한다. 죄를 서로 고하고 용서해야 주께서도 용서한다.죄가 있으면 죽은 심령이다. 주님 만나 성령 받음으로 생명 얻어 나가면 주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어진 죄 용서를 선포하게 하신다. 베드로를 위시하여 주의 제자들이 나가서 선포하다. 2:38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주를 만난 그들이 주의 분부한 바를 이룬다.

3  목격자의 증언 수용. 우리는 삶을 통해 목격자의 증언을 그대로 받아드린다. 미국에 처음 올 때 직접 먼저 와서 보고난 뒤에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가족이나 친구 여행자의 말을 통해 어떤 곳인지 듣고 온다. 한국을 떠나 이민으로 올 때는 큰 믿음과 함께 결단이다. 구라파나 아프리카 아시아 세계 각곳에 정말 아름답고 역사적인 훌륭한 곳이 많다. 한 번 가 보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그러나 시간 돈 정력 많은 것이 감당하기 어렵다. 대신 집 안에 앉아 다른 여행자의 다큐멘타리로 즐긴다. 가서 직접 보지 않아도 앉아서 듣고 볼 수가 있다. 비데오가 없을 땐 여행기를 통하여 알 수가 있다. 동양이 서양에 알려지지 않은 때 마르코 폴로가 동방 견문록을 쓴 것이 어느 면에서 동양에 대한 궁금증의 커텐을 열어 준 것이다. 직접 가서 보고 경험한 사람은 소수이지만 그들의 목격담과 사진을 통하여 수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게 된다. 직접 가서 눈으로 보는 것과 가지 않고 이야기를 듣는 것의 감동은 차이가 있겠지만 사실 자체에 대하여는 같은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살아 계신 주님, 부활하신 주님은 사랑하는 자를 만나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만난 것은 아니다. 10:40,41 주께서 부활하여 자기를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고 베드로가 증언한다. 오순절이 될 때 다락방에 120명이 모여 기도하며 주의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눈으로 본 자가 몇명이 되는지는 기록이 없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의 복음과 그의 부활을 전하니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3천명이 세례 받고 주의 사람이 되었다. 이들은 직접 예수를 본 자들이 아니라 베드로의 증언을 통하여 주님을 믿게 되었다. 주님은 우리가 믿는 자 되기를 바라시어 직접 나타나기도 하시고 또 많은 증인을 통하여 믿도록 하신다.

4  믿음은 복.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신다. 믿는 것이 복이다. 보고도 믿지 않은 자가 있다. 많은 유대인이 그랬다. 보지 않아도 마음의 확신에 따라 믿고 즐길 수 있다. 음식이 무엇으로 만들어졌으며 맛이 어떤가를 일일이 시험하여 맛을 보지 않고도 음식 만든 자를 믿기에 먹을 수 있다. 약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나 그 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먹는다. 효과를 보고 확실히 안다. 친히 눈으로 보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목격자의 증언이다. 목격자로서 주를 만난 사람은 나가 주님의 부활을 증거한다. 그 부활 증거를 들은 사람이 주를 믿고 새 생명 얻는다. 요한은 요한 복음 기록한 목적을 말한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 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20:31). 그는 3년간 주님의 사랑 받는 제자로 그리고 또 부활한 주를 목격한 자로서 성경을 기록함은 우리가 그의 증거를 듣고 예수를 구주로 믿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말씀을 듣고 읽음며 주를 보고 믿게 된다.
감리교의 창시자 죤 웨스레, 그는 옥스포드 대학 출신으로 주를 향한 사랑과 뜨거운 마음으로 영국 교회 신부가 되어 당시 영국의 식민지 미국 조지아 주에 와서 정착민,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다. 2년간 열심히 일을 하였으나 냉담한 반응과 함께 반대도 받다. 그는 실망한 마음으로 배를 타고 영국에 돌아간다. 대서양 풍랑이 심하게 일자 두려움에 빠지는데 배 한쪽에 애기를 가슴에 안고 있는 여인을 포함하여 몇 사람이 둘러 앉아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찬양 하는 것을 보고는 놀라다. 여러분은 이 파도가 무섭지 않은가? 특히 애기를 안고 있는 엄마께 물었다. 웃는 얼굴로 이 아기가 내 품에 있는데 두려움이 있겠나? 우리가 크신 하나님 품에 있는데 왜 두려움이 있겠나? 반문을 한다. 큰 충격을 받다. 그들은 모라비안 교도다. 모라비안은 배운 사람이 많지 않다. 그들의 확신과 평안을 보며 옥스포드 출신 웨스레가 너무 놀라다. 런던에 도착하여 모라비안들이 모이는Aldersgate Street장소 찾아 그들 성경공부와 기도회에 참석하다. 그의 나이 361738 5 24일 저녁, 회중의 한 사람이 루터가 쓴 로마서 강해 서론을 읽는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나를 죄에서 용서하고 죽음에서 구원하며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심령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말씀을 듣는데 웨스레는 이상하게 내 마음이 더워지는것을 느꼈다. 저녁 8:45. 그는 주여 나를 도우소서 기도하며 소위 회심을 경험하고 새로워지다. 그는 뜨거운 심령과 열정으로 영국과 미국에 하나님의 은혜와 회심을 나누는 놀라운 일을 일으키며 감리교회를 시작하다.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바울의 증언을 1500년 후 루터가 해석한 말을 200년 후 웨스레가 들으면서 그도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것이 목격자의 증언의 역할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며 그가 무슨 일을 하시나 예수께서 누구며 그가 무슨 일을 하시나 증거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주를 만나고 새로워진다. 말씀에서 주님이 역사한다.
이전 교회에서 목회할 때 찬양대가 크리스머스를 맞아 핸델의 메시야 전곡을 찬양하기로 하고 7개월 전부터 연습을 하다. 무릎이 아픈 한 대원은 두 시간 연습을 한 후에는 자신이 일어나기가 힘들어 옆에서 부축하여 주었다. 성탄이 다가오며 총 연습을 하는데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찬양하면서 죽임 당하신 어린양이 우리의 죄와 아픔 고통을 모두 담당한 일이 가슴에 다가와 뜨거워지고 눈물이 쏟아진다. 3시간 연습 후에 일어나는데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 걷게 되다. 놀라운 일이 일어나다. 그 후 그의 무릎은 깨끗하게 치유되었다. 찬양하면서 죽임 당하신 어린양이 현실적으로 그를 치유하는 체험을 한 것이다. 말씀의 능력이다. 그러나 증언과 말씀은 많은 비난 박해 어려움을 겪어 왔다.
볼테르는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면서 회의론자다. 정치와 종교가 결탁해 타락한 기독교 없애고자 그는 사람들로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의심하게 하는 글을 쓰겠다고 하여 성경을 의심하여 버리도록 하는 많은 글을 쓰다. 기독교는 12명이 시작한 것이지만 자기 한 사람이 무너뜨릴 수 있다고 하다. 허구로 가득찬 성경은 앞으로 100년이면 사라질 것이라 하며 그는 무신론적 글과 책을 써내다. 많은 사람이 동조하다. 1728년 그가 죽었다. 그런데 성경이 역사에서 사라질 것이라 하던 그가 죽은지 50년이 된 때 그가 살며 반기독교 책을 써내던 그의 집은 성경을 출판하는 성서공회 건물이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성경은 많은 박해와 비난을 받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하나님 증거로 역할한다. 이 말씀을 통하여 주를 알게 된다.


꼭 보아야 하나? 보는 것이 필요하다. 맨처음 예수께서 부활하신 때 부활한 주님을 만난 목격자들과 그들의 증언이 진실하다는 것이 증명 되어야 했다. 이제 주께서는 승천해 하나님과 함께 하신다. 그가 다시 재림하여 오실 때 우리는 그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눈으로 보든지 보지 않든지 주께서 기대하는 것은 우리 믿음이다. 주님은 우리 믿음을 위하여 많은 목격자의 증언을 주셨다. 베드로는 벧전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고 한다. 베드로의 증언을 통해 그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즐긴다. 증언을 통해 우리도 예수님을 대하고 믿음을 가지며 구원을 얻는다. 증언을 통하여 부활의 주님을 만난다.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지 않아도 우리는 앞서간 증인의 증언을 통하여 얼마든지 우리 마음으로 그를 보며 믿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복이다. 할렐루야! 아멘!

(동영상은 www.harrisburgkorea.org)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April is the Cruelest Month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영국의 세기적 시인 엘리오트는 그의 장시 황무지의 제1장 죽은 자의 매장을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시작한다. 싹이 나고 꽃이 피는 4월이 가장 아름다울 수가 있는데 어떻게 가장 잔인한 달이 되나?

겨우 내내 땅 속에서 잠을 자듯 편안하던 뿌리를 뒤흔들어 생명이 올라오고 죽은 땅에 라일락이 뻗어나게 한다. 황무지와 죽은 자의 매장을 뒤엎는다. 생명의 흔적이 보이지 않다가 4월이 되어 생명이 돋아나니 황무지를 더욱 죽어 보이게 한다. 생명이 힘이 있고 찬란할 수록 최상급의 잔임함을 나타낸다.
겨울 동안 나뭇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로만 있을 때는 모두가 같은 운명처럼 보인다. 봄이 되어 잎이 나고 꽃이 피자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이 뚜렷이 구분되어 죽음을 폭로하니 잔인한 일이 아닌가?


4월은 예수의 부활 계절이다. 부활이 없을 때는 모두가 같은 운명이다. 죽음으로 끝이 나는 것이지! 그러나 예수의 부활로 그를 믿고 받아드리는 자에게는 죽지 않은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고 믿는 자와 믿지 않은 자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한 쪽은 풍성한 생명으로 뻗어 가는데 다른 한 쪽은 죽음을 자처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영원히 운명이 나누어진다면 가장 잔인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주의 부활 생명을 받은 자는 4월을 가장 자애로운 달로 즐기게 된다. 더 이상 황무지가 아니라 낙원이며 더 이상 죽은 자의 매장이 아니라 풍성한 생명의 환희가 된다.

Thursday, April 20, 2017

마지막 한 끼 One Last Meal

마지막 한 끼 (왕상 17:8-16)

온 천지에 여러 해 가뭄이 들어 사는 것과 죽는 것은 한 걸음 차이 뿐이다. 한 여인이 남은 양식으로 마지막 한 끼를 하여 아들과 같이 먹고는 더 이상 살 길이 없어 죽기를 작정하고 들에 나뭇 가지를 주우러 나가다. 어떤 사람이 다가와 물을 좀 달라고 하더니 음식을 좀 달라고 한다. 여인이 자기 형편을 말하니 그렇게 하더라도 먼저 자기에게 떡을 달라고 한다. 그리하면 통에는 가루가 병에는 기름이 계속 채워질 것이라 한다. 나중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이왕 마지막 한 끼를 먹고 죽으려는 판인데 자기보다 더 급한 사람이 있는가보다 생각하였는지 그에게 먼저 떡을 구워 주었다. 그랬더니 정말 통에는 가루가 병에는 기름이 한 끼 해 먹을 정도로 계속 더하여졌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아합왕 시대 엘리야를 만난 사르밧 과부에게 일어난 일이다. 마지막 한 끼라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먹인 결과 계속하여 손님과 그 가족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양식이 공급되었다.

풍만한 마음으로 원기 왕성하게 사역하던 때가 있었지만 벌써 은퇴한지 10년된 목사로서 자신의 바닥이 날 정도로 텅 빈 것을 본다. 내어 놓을 것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떡을 기다리는 그의 사랑하는 백성을 먹이라고 하신다. 마지막 한 끼라 생각하고 정성을 다 하여 준비하고 공급한다. 나도 함께 즐긴다. 그러면 그 다음 한 끼를 위하여 하나님은 다시 채워주시는 것을 보게 된다. 말씀을 준비할 때나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할 때는 항상 이것이 내가 섬길 수 있는 마지막 한 끼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자기 백성을 사랑하는 신실한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나에게 마지막 한 끼라는 심정으로 떡을 준비할 수 있게 하심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사실 한 번에 한 끼 음식이면 충분한 것이지만 한 끼 한 끼로 생명과 건강, 힘을 얻어 살고 삶의 사명(생명)을 이루기를 하나님은 바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