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22, 2024

머리의 화관과 찬송의 옷 Flowery Crown and Garment of Praise

머리의 화관과 찬송의 옷 Flowery Crown and Garment of Praise
시카고의 좋은 계절이라 수선화 목련이 먼저 피더니 지금은 야생 배꽃이 동리를 덮고 있다. 가는 곳마다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겨우내내 죽음 같은 슬픔과 우울에 잠긴 모습이더니 따뜻한 기운을 맞으며 꽃이 만발하고 파릇 파릇 새 잎으로 생기를 주는 것은 슬픔이 변하여 화관과 근심이 변하여 찬송의 옷이 되는 느낌이다. 
사람은 가난과 슬픔으로 마음이 상하고 무엇엔가 눌리고 있다. 가난을 피하여 미국에 와서 자유롭게 밤낮 일을  하며 집을 구하고 아이들을 최상의 학교에 보낸다. 만족할 만 한데 마음에는 무엇인가 부족과 공허를 느낀다. 한국에서의 재능 기술과 달리 삶을 새롭게 시작하고 또 나라는 존재가 인정받지 못하여 자존감이 상하는 아픔을 가지며 집과 일터로 내왕하나 옆집 이웃과는 교제할 틈도 없이 눌린 생활로 답답하다. 교회가 숨통을 열어주나 거기도 끼리끼리가 많아 마음이 상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조국이 잘  살게  되었으나  사람들의 얼굴에 기쁨과 웃음을 보기 힘들고 국민의 행복지수는 세계의  바닥이듯 만족이나 감사가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인가? 창조질서가 파괴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고 자기 호흡을 주어 살게 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 사람 속에 들어와 풍성한 생명과 만족을 누리게 함이다. 그러나 사람이 잘 살면서 하나님을 배제하고 자기가 주인이 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하나님을 밀어낸 빈 자리는 돈이나 재산 명예 같은 세상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아 공허와 허탈이다. 솔로몬이 하나님 중심으로 시작하여 지혜와 부의 복을 받고 명성을 얻으면서 자기 중심으로 많은 정략적인 부인을 맞고 그들의 신을 같이 섬기며 하나님께 등을 돌리자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며 슬피 부르짖었다.
어떻게 대처하나?  한계를 느끼며 우울하고 좌절하여 술과 약을 택하고 생명을 해친다. 한국의 노인 청년 자살율이 세계 최고라는 것은 충격이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가 복음을 듣고 마음이 상한 자가 위로를 받고 포로 된 자가 자유를 얻고 갇힌 자가 놓임을 받는다는 이사야 예언을 이루고자 자신이 사람 예수로 오셨다. 이 예언 성취가 예수님의 사명이었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갈릴리를 중심으로 불치병 나병환자 맹인을 고치고 귀신 들린 사람을 해방시켰다. 그를 만나면 슬픔과 눈물의 머리에 즐거움의 기름을 바르고 화관을 쓰고 찬송의 옷을 입는다. 평생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화관과 찬송의 옷을 입으면 하나님이 영광을 위하여 심긴 의의 나무가 되어 그의 의와 사랑을 나타낸다. 주의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수를 전할 때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빛나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고 처음 교회가 창립되었다. 사람들은 제자들을 땅에 온 신이라고 할 정도였다. 요한 웨스레는 옥스포드 출신 엘리트로 개척지 미국 원주민에게 복음 전파 2년에 실패와 좌절감으로 본국에 돌아가는 길, 풍랑이 심한 배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데 한쪽에 조용하게 앉아 두려움 없이 찬양하는 이들을 만나고 런던에서 그들의 모임에 참석하여 말씀을 듣는 중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하며 회심의 새 사람이 되고 감리교를 창설하여 온 세상에 복음을 나누었다. 이렇게 슬픔과 좌절이 지금도 머리의 화관과 찬송의 옷으로 변하고 있다.
















Monday, April 15, 2024

보지 않아도 Even though I do not See

보지 않아도 Even though I do not See 
우리는 본다는 말을 항상 사용한다. 음식의 맛을 본다 먹어 본다. 사람을  만나 본다 지나 본다 등등이다. 본다는 것은 직접 경험하여 알고 확인하는 것이다. 보면 알고 믿을 수 있기에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 한다. 
예수님이 부활하였다는 말을 듣고도 제자들은 믿지 못하였다. 도마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못자국 창자국을 만져 보아야 믿겠다고 하였다.  로마는 많은 신을 숭상하며 신상이 있는데 기독교는 신상이 없기에 무신종교라 로마의 신들이 분노하여 화를 내린다고 하여 네로황제가 박해를 시작하였다. 보이지 않으면 없다는 생각이다. 도마는 주를 보자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고 로마의 콘스탄틴은 왕위쟁탈 전쟁에서 십자가를 보고 승리하여 기독교를 공인하였다. 보는 것이 힘이다.
그래도 보는 것에는 제한이 있다. 보아도 다 보지 못하고 어둠에 가리면 볼 수가 없고 잘못 볼 수도 있다. 마리아는 부활한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알았다. 외모를 보면서 속은 보지 못한다. 사무엘이 이새의 맏아들 엘리압을 보며 왕의 후보로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버렸다며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본다고 하신다. 부모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던 막내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드는 자라 그의 뜻을 이룰 것이라 한다. 
예수께서 도마에게 너는 본고로 믿는가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 하신다.  부활하신 주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신다. 제자들이 두려움으로 문을 닫고 있는데 주께서 나타나 평안의 인사를 하신다. 제자들이 그를 유령으로 알고 두려워하자 주님은 살과 뼈가 있다며 음식을 요청하고 잡수시더니 보이지 않은다. 살아 있음을 확인하였으니 보이지 않아도 믿을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 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신다. 하나님이 아담을 만든 후에 그 코에 숨을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한 것과 같다. 목숨은 목의 숨이라 숨이 있으면 살고 없으면 죽음이다. 주의 숨, 주의 영이 들어오면 내가 살고 그가 내 안에 계시며 나는 주를 알고 믿는다. 아무라도 성령이 아니면 예수를 주로 시인할 수가 없다. 
성경 말씀으로 주를 알고 믿게 된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은 하나님이요 또 그리스도 예수시다. 말씀을 듣고 읽고 받아드리면 말씀과 함께 주께서 내 속에 계신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것은 읽는 자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구주임을 알고 믿게 함이었다. 말씀을 통하여 주를 만나고 확신하게 된다. 또한 기도를 통하여 주를 알게 된다.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대화로 인격적인 소통이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을 받고 주께서 살아계심을 알게 된다. 
예수께서 아버지에 대하여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한다. 주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신다. 아들을 보면 아버지를 안다. 믿음의 사람을 보면 예수를 보는 느낌이다. 선교지나 내 주변에서  살아계신 주님이 내 인격과 삶을 통하여 나타나면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를 알게 된다. 베드로는 그들이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 그를 사랑하고 믿으며 기쁨을 가진다고 하였다. 예수를 눈으로 보지는 못하여도 그를 알고 믿음으로 하늘나라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Monday, April 8, 2024

살아 계시기에 Because He Lives

살아 계시기에 Because He Lives (4/6/2024)
오래동안 만나지 못하고 연락이 없던 친구를 뜻밖에 만나게 되면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만나는구나! 반가워한다. 살아 있으면 만나게 된다. 부활하여 살아 계신 예수남과 나는 어떠한가? 
예수께서 가장 참혹한 십자가 형틀에 달려 돌아가시고 로마 군인은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면서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피와 물이 다 쏟아지게 하였다.  그의 사형을 결정한 종교회의에 찬동하지 않은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이 그를 바위에 판 무덤에 장사하고 큰 돌로 무덤문을 막았다. 종교지도자들은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고 살아 났다고 할까 하여 황제의 도장을 찍어 무덤을 인봉하고 경비병을 세워 지키었다. 로마의 세력이 하는 일이라 누가 도전하거나 대항할 수가 없었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게는 완전 충격이요  두려움이었다.  제자들은 잡히어 같은 형벌을 당할 수가 있기에 믿음을 버리든지 아니면 숨어야 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의 죽음을 대신하여 죽음으로 죽음의 원인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죄를 정하는 율법의 정신을 완성하고 죄에서 풀어 자유와 생명을 주시기에 그 생명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자 무덤을 열고 부활하셨다. 세상 죄를 대신하여 죽는다고 하면서 그가 죽음으로 끝난다면 그는 자기 죽음도 해결하지 못하고 더욱 다른 이의 구주는 될 수가 없지만 그는 살아나시고 인간 구원의 길을 열었다. 이제 누구나 예수님을 믿으면 죄의 용서와 구원을 받는다. 그의 부활은 인간 이성과 율법을 초월하는 일이라 주님은 살아난 후 40일간 주로 제자들을 만나며 자기가 살아 있음을 확인시키고 믿음을 세우셨다. 
주를 사랑하던 몇 여인은 그의 시체에 향유를 바르고자  무덤을 찾아갔다. 이미 돌은 굴러가고 문은 열려 있다. 천사가 나타나 그는 살아나셨다고 한다. 혼비백산 놀란 자들이 떠나가지만 마리아는 남아서 울며 살핀다. 앞에 나타난 사람을 동산지기로 알고 시체에 대하여 불으며 자기가 가지고 가겠다고 한다. 주께서 마리아야 부르신다. 주님의 부활 후 처음 만남이다. 그를 사랑하며 슬픔에 빠진 사람을 만나 평화와 기쁨을 주신다. 
제자들은 두려움으로 집에 모여 문을 닫고 숨어 있다. 주께서 오시어 평안을 전하며 그들을 만나신다. 유령인 줄 생각하고 놀라는 그들에게 자기는 살과 뼈가 있음을 보이며 먹을 것을 청하여 잡수시었다. 기쁨과 확신에 찬 그들을 내어 보내신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도 만나 확인시키셨다. 
실망과 좌절에 쌓여 시골 고향으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 함께 동행 대화하며 메시야 성경구절을 해석하며 저녁 숙소에서 음식을 나눌 때 그들이 주를 알아보았다. 그들은 마음이 뜨거워 제자들에게 돌아가 주의 부활하심을 전하였다.
반대자도 만나신다.  예수를 처형한 종교지도자들은 그가 부활하였다며 모이는 자들을 이단으로 정하고 척결하는 일에 젊은 사울을 앞세웠다.  박해길에 나선 그를 주께서 이름 불러 만나자 그는 눈이 열리고 박해자에서 전파자로 변화되어 세계 선교의 선구자가 되었다 
예수께서 살아 계시기에 지금도 사람을 만나신다. 목회 초창기 어려움으로 어둠을 겪을 때 부활의 주님을 만나 힘을 얻은  목사는 당시에 나온 빌 게이더의 살아 계신 주를 찬양하며 주님이 바로 힘과 소망 생명이요 교회의 증심임을 확인하였 다.  어떤 형편에서나 주님이 나를 찾아오시어 만나시고 나를 세우시고 새롭게 하심을 오늘도 경험할 수 있을까! 







Tuesday, April 2, 2024

약사의 가장 어두운 날 The Darkest Day of History

약사의 가장 어두운 날 The Darkest Day of History
미국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날은 1780년 5월18일로 선불 연기에 짙은 안개와 검은 구름으로 동부가 덮인 때였다. 미국 민주정치에는 2021년 1월 6일 대통령 선거 결과에 불만을 가진 자들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하여 국정을 마비시킨 날이라 한다.  민족적으로는 유대인이 독일 나치에서 6백만이 학살을 당한 날이요 한 나라로는 강세 일본이 미국 진주만 공격으로 이차대전을 확대하는 가운데 미국이  히로시마에 1945년 8월 6일 최초의 원자탄을 투하하고 8월9일 나가사끼에 제 2의 원자탄을 투하하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일왕이 8월15일 무조건 항복한 날이라 할 것이다. 어둠은 개인이나 단체 나라가 밖으로 안으로 존재가 위협을 받으며 삶의 힘과 희망을 잃어버린 형편이다. 
세계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날은 언제일까? 세상의 빛 예수께서 배반과 죽임을 당함으로 빛이 끄진 날일 것이다. 어둠의 세상에 빛을 창조하여 아름다움을 주신 하나님이 삶이 죄의 어둠으로 덮인 세상에 빛으로 아들을 보내어 길을 보여 주시고 마음과 생각의 아름답고 추함을 들어내자 어둠이 그를 받아드리지 않고 오히려 그를 배척하였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시기와 증오로 그를 잡아 죽이려고 기회를 찾는다. 한 제자가 배반하여 주께서 밤에 기도하는 동산으로 폭도를 인도하여 선생님 안녕하셔요 인사하며 입을 맞추는 것을 신호로 스승을 반대지에게 넘기자 제자들은 도망하고 죽더라도 주를 따르겠다 장담하던 베드로는 세번이나 주를 모른다고 할 때 주님에게는 어둠이 닥쳤을 것이다. 그는 종교재판에서 신성모독으로 정죄되고 치안과 법을 맡은 로마 총독은  그가 무죄임을 알고도 무리의 소리에 눌려 그에게 십자가 처형을 언도한 것은 종교와 국법의 어두움이었다.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때 대낮 3시간 온 땅이 깜깜하였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의 절규는 영혼의 어두움이요 바위무덤에 묻힘은 생명이 꺼진 캄캄함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가운데 9번 째가 3일간의 흑암이었다. 낮의 해와 밤의 달이 일을 멈추자 세상은 어둠이요 생명활동은 중지되었다. 
하나님을 거역하여 배를 타고 도망하던 요나로 풍랑이 일어나고 그가 바다에 던짐 받자 큰 물고기가 그를 삼키고 고기 배속에 있던 3일을 주께서는 자기가 겪을 아둠이라 하셨다. 주님은 인간의 모든 어두움을 친히 경험하고는 어둠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가장 어둔 밤을 가장 밝은 아침으로 바꾸어 주셨다. 어거스틴이 탕아로 어둠 속을 방황하는 중에도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는 계속되었다  집어서 읽으라는 어린이들의 놀이 말에 이끌려 그가 읽은 말씀,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으니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롬13:12)는 충격파로 그는 빛을  만나 회심하여 주의 사람이 되고 교회에 최대 공헌을 하였다. 어떤 목사는 수난주간 금식하며 목요일 세족식과 성찬식을 하고는 가장 깊은 영적 어둠에 빠져 신음하다가 토요일에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며 생명의 기쁨과 자유로 부활 새벽을 새로운 감격으로 맞았다고 한다. 
새벽의 어둠이 가장 깊듯이 역사에 가장 어둔 주님 무덤 3일은 역사에 새 아침을 가져 왔다. 이 아침을 나의 아침으로 맞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