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y 13, 2024

어머니의 품 Mother’s Arms

시편  131:1-3 어머니의 품 Mother’s Arms

어머니 주일에 어머님들에게 감사하며 주의 축복을 기원한다.
니카라과를 단기선교로 방문한 때 한 어머니는 자녀 여섯이 같이 왔는데 아이들 모두 아버지가 다르고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전 스페인이 점령한 때 군인들이 지나가며 자녀를 낳게하던 풍습이 남아 있는 것이라 하였다. 아버지는 책임 없이 지나가 버리고 말지만 엄마는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품에 안고 정성으로 기른다. 엄마의 특권은 품이 있다는 것이다. 품에 안고 가장 귀한 사랑을 쏟으며 자기에게 필요한 영양과 생명이 되는 젖을 먹이며 생명을 바쳐 아이를 돌보고 양육하는 것이다. 
오늘 성경에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서 고요함 같이 내 영혼이 주안에서 고요하고 평안하다고 한다.
어머니의 품은 고요한 안정과 평화를 준다. 배가 고플 때 배를 채우는 양식이 있고 슬픔이 있을 때 위로가 되고 두려움이 있을 때 안정이 되고 누구에게 욕을 당하거나 얻어 맞거나 고통이 있을 때도 엄마의 품은 보호와 힘이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나? 
어머니 엄마 맘은 많은 나라의 공통적인 말이다. 우리 말  엄마는 움에서 나왔다. 움은 가지에 움이 돋는다 새싹이다. 새 생명이다. 엄마는 새생명을 일으키고 태어나게 하는 분이다. 엄마 없이 생명으로 태어나는 일은 없다. 하나님께서 엄마를 통해 주신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실 때도 마리아를 통하여 아들을 주셨다. 마리아가 거절하였다면 예수께서 태어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내 생명은 내가 난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통하여 이 땅에 태어난 것이라 어머니 없으면 내가 존재할 수 없다. 가지에 움이 돋기까지 생명은 가지 속에서 차가운 겨울을 지나며 준비하듯이 생명은 어머니 태 속에서 그의 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태 자궁은 나를 품어준 품이다.
어머니 움은 음식이나 물건을 저장하는 곳이다. 사람이 피신하여 거하는 곳도 움이요 움막이다.  터어키 카파도기아를 방문하면 지하도시를 방문하는데 그것은 모스렘을 피하는 기독교인들이 땅속에 움을 파고 피신한 곳이다. 움막은 주로 언덕이나 바위 사이 바람을 피하고 악한 짐승이나 도적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다. 낮에는 밖에 나가 일을 하다가 어려운 일이 있거나 밤이 되면 움막으로 들어가 쉬면서 안정과 보호를 받는다. 그리고 우리 전통적인 움은 음식 보관소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음식을 오래 보관하려는 지혜로 움을 땅 아래나 언덕에 방처럼 만들고 음식을 보관 저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경주의 석빙고다. 상하지 않고 신선하게 처음 맛을 보관항 수 있다. 엄마의 태와 품은 움이다. 생명이 보호받고 힘을 얻으며 처음 모습을 유지하는 움이 다. 놀라는 일을 갑자기 만날 때 엄마야 부르는 것은 움인 그의 품을 찾는 것이다. 집을 떠나 멀리 나가 있을 때 외롭고 힘드는 일이 많을 때 고향과 집을 그리워하는 것은 엄마의 품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어린아이때만 아니다 나이 들어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사람은 본능으로 안전을 찾기에 어머니의 품은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된다.
전쟁의 참화에서 피난하다가 폭탄이 떨어져 많은 사람이 죽고 부상을 입는다. 한 여인이 쓰러져 죽어 있어 일으켜 보니 어린애기를 품에 안고 보호하고 있어서 애기는 살아났다. 사실을 알게 된 아이가 평생 어머니를 잊을 수 있겠나!
세상에 어떤 일이 있어도 어머니의 품에 있으면 고요하고 평안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때 그의 제자들과 따르던 자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머니 마리아는 십자가 아래 와 있다. 아들의 슬픔과 아픔을 품는 마음이다. 예수께서는 어머니 옆에 있는 요한을 향하여 네 어머니다. 어머니를 향하여 아들입니다 하며 두 사람을 연결시켰다. 요한은 마리아를 어머니로 받들었다. 요한이 목회하던 에베소에는  마리아를 모셨던 집이 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때 죽을 병에 걸려 군에 입대하지도 못하고 발령을 받지도 못하자 어머니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네 병을 고치도록 하겠다 하며 평생 피땀 흘려 일군 농토를 팔아 나를 요양병원에 보냈다.. 어머니 믿음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인 치유를 받고 지금까지 61년간 건강하게 지나고  있어 감사에 감사다. 위기를 당할 때 어머니가 옆에 계신다는 것은 큰 복이다.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서 고요하듯 내 영혼이 하나님의 품에서 평온하고 고요하다고 다윗은 고백한다. 어머니 품의 아이는 교만하거나 오만하지 않고 하지 못할 큰 일을 하겠다고 자랑하지도 않는다.어머니 품의 아이는는 오직 어머니 품으로 만족한다. 다윗은 이 어머니의 품을 하나님의 품과 비교하였다. 하나님에게 어머니 품 같은 품이 있을까?
사46:3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태에서 태어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엽힌 너희여 너희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하신다. 하나님은 안고 품고 업으신다.  품는 것은 품이다. 하나님이 나를 나게 하셨기에 끝까지 나를 안고 품으신다.
그 실례가 출애굽에 나온다. 신1:31  광야에서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0녀간 종살이하며 부르짖고 신음할 때 하나님이 모세를 세워 그들을 해방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때 애굽 군인들이 추격하고 홍해를 만난 때 물이 갈라져 마른 땅이 되어 건너게 하시나 애굽 군인은 모두 물에 수장되었다. 광야를 행진하며 물이 없을 때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시고 먹을 것이 없을 때 만나와 메추라기 고기를 주시고 아말렉이 침공할 때 그들을 정복하고 안전하게 지켜주시며 가나안 변경까지 잘 도착한 후에 모세는 회상하며 한 마디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안고 품어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다윗은 시편139에서 주께서 나를 지으셨기에 주의 눈을 내게서 떼지 않고 보고 계시며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신다고 하며  내가 어디로 가든지 하늘이나 땅이나 깊은 수렁이나 바다끝에 가서 있어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나이다 고백한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로 양을 치고 있는 동안 형들은 선지자 사무엘을 모신 잔치에 참여하고 있으나 다윗은 부모에게서 잊혀지고 있는 때에도 하나님은 그를 불러 오게 하여 사랑하는 자라고 확인하셨다. 블레셋 골리앗 장군 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때 목동 다윗은 물맷돌로 장군의 이마를 명중하여 블레셋을 이기고 사울 왕에게 발탁되었으나 그가 시기하여 군대를 동원하여 다윗을 잡고자 해도 매번 하나님은 다윗을 지켜주셨다. 하나님의 품에 안고 그를 보호하다가 사울을 이어 왕이 되게 하셨다. 
우리 개인의 삶은 어떠한가? 나의 삶을 보면 한국에 있을 때나 50년전 미국에 가방 하나 들고 유학와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께서 나의 앞에 미리 가시어 길을 여시고 나를 인도하여 안전하게 갈 수 있게 하셨다. 내가 죽을 병이 걸린 때에 주님은 더욱 아파하시며 나를 안고 위로하며 말씀을 주시어 낫게 하신 것이 얼마나 귀한가!
하나님의 품은 한 없는 사랑이요 용납이다. 잘못하여 멀리 떠나 있었지만 고난 중 깨닫고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용서하고 픔어주신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1:18. 한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둘 째가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 먼 나라로 가더니 모든 것을 탕진하고 흉년이 들어 남의 집 돼지를 치며 돼지가 먹는 것으로 배를 채우고자 하나 먹을 것이 없었다. 그 때 아버지 집을 생각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돌아간다. 아버지가 멀리서 바라보다가 거지가 된 아들을 알아보고 뛰어 나가 안고 입을 맞추고 그를 영접하며 잔치를 베풀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납의 넓은 품이다.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누구나 받아주는 넓은 품이다. 어머니의 품이 여기서 온 것이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품을 실현하고자 하나님은 보이는 교회를 세우셨다. 
오늘 본문  시131편은 제목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  시120-134 까지 15편의 하나다. 이는 3편씩 조를 이루는데 처음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세상에 살며 고난을 겪는 형편 둘째는 고생하다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자 정하고 가는 길을 묘사하고 세번 째는 아버지 집에서 가지는 기쁨과 안정 회복을 말한다. 131편은 129-131의 마지막으로 하나님 전에 돌아와 가지는 고요하고 안정된 평화를 표시한다. 주 앞에서는 세상에서의 교만과 허망된 모든 것을 내리고 겸손한 심정으로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에서 어머니 얼굴을 바라보듯 주의 집에서 아버지의 얼굴 바라보며 모든 염려 걱정 무거운 짐을 내려두고 고요함과 안정을 누린다. 시84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마음과 육체가 살아계신 여호와께 부르짖나이다. 주의 궁정에서 하루가  다른 곳에서 천날 보다 나은즉 내 하나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다윗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사는 것을 소망하였다 (시23)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고 만나 주시기 때문이다. 
이 성전은 바로 오늘의 교회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속함을 받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하나님의 품 어머니의 품이 되는 곳이다.  세상에서 어떤 시련과 어려움을 겪는다 하여도 교회에 오면 서로가 용납하고 품어주는 포근함을 경험한다. 그러기에 교회를 어머니라 표현한다. 3세기의 키프리아누스, 개혁자 칼빈은 교회는 어머니라고 한다. 어머니의 품이 있는 곳이다. 여기에는 사랑과 용납이 있다. 누구든지 오기만 하면 용납되고 사랑을 받는다. 
교회에서 생명이 태어난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지만 성령의 역사로 예수 안에서 새생명을 얻는다. 주일마나 모임 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소리를 듣는다. 태어나면 품에 안기어 젖을 먹고 자란다. 음식을 먹고 배가 부르면 만족해 한다. 교회에서 말씀과 기도로 자라나고 훈련된다. 자라나면 품이 없던 사람들이 품이 생긴다. 젖이 생긴다. 나도 남을 품을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다. 교회가 하는 일이다.  교회에서 서로 형제라 부른다. 형제는 희랍말로 Adelphos로 두 단어 A Delphos 아는 하나라는 말, 델포스는 태 자궁이라는 말로 한 태에서 한 품에서 태어났다는 말이다. 교회는 모두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태어나 주 안에서 모두 형제 자매가 된 것이다 교회 건물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엄마의 품과 같이 품으면서 생명을 배태하고 출산하여 길러내는 것이 교회의 품이다. 
내가 교회에서 얼마나 용납을 받고 있나? 내가 얼마나 꿀보다 더 단 말씀의 젖을 먹고 자라다?  자라면서 나의 품도 넓어지고 커지며 다른 이를 품고 생명을 태어나게 하고 양육할 수 있겠나?
어머니 주일에 어머니를 기리면서 동시에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의 품을 감사하고 교회의 품에서 안정과 평화 만족을 누리며 내가 교회 품의 일부가 되어 생명을 일으키고 품고 용납하며 주의 생명과 평화가 펼쳐지기를 기원한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Thank You, Mom!

어머님 감사합니다 Thank You, Mom!
어머니날을 맞아 평소보다 더욱 어머님을 그리워하며 감사한다.  나를 낳으시고 오늘 내가 있게 하신 그는 출생부터 세상을 떠나기까지 특별하였다. 경주 서부외곽 서당 훈장의 딸로 태어났으나 여자이기 때문에 글을 배우지 못하고 집안 일을 하다가 16세에 경주 남부외곽 홀어머니 모시는 총각과 가정을 이루었다. 남편은 비가 새는 낡은 집에 새댁과 어머니를 두고 돈을 벌겠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밤낮 없이 일을 해도 돈이 모이지 않아 일년만에 빈손으로 돌아온 남편은 조합돈을 빌려 버려진 땅을 사고 부부가 열심히 개간하기를 반복하여 집을 지어 옮기고 안정을 이루었다. 엄한 시모에게 글을 배우고 길쌈을 하며 삶의 지혜를 얻는 중에 딸 다음 장남인 내가 태어났으나 시모에게 아들을 빼앗기듯 안아볼 틈도 없이 일에 얽매였다. 내가 두 살 때인지 엄마 품에 안겨 마차를 타고 외가에 가던 것이 엄마와의 행복한 처음 기억이다.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산 넘어 멀리 교회에 다녔으나 겨울이나 비 오는 날이 어렵기에 아버지는 효성으로 동리에 예배당을 지으시고 어머니가 먼저 주님을 믿고 별을 보고 새벽종을 울리는 종지기가 되고 교역자를 정성으로 섬기고 주민들의 기념일을 기억하고 베푸는 사랑을 나에게 심어주셨다.
어머니는 나에게 일찍 독립심과 자유를 주시며 나를 한 인격으로 존중하고 초등학교 이후 집을 떠났으나 나를 건강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셨다. 대학을 졸업하며 내가 죽을 병에 걸린 때에 그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나를 고치겠다며 국립병원에 입원시켰다. 아버님은 어머님을 존중하고 찬동하였다.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6개월에 퇴원하고 취직 결혼하여 교수목사가 되겠다고 유학하며 멀리 떠났으나 그의 기도는 항상 나와 같이 하였다.
내가 수학 중 어머님은 척추암으로 심한 통증에 걸을 수도 없어 의사가 포기한 상태에서 내가 돌아가 전문의사를 소개받았더니 치료는 불가하나 통증은 줄일 것이라 하며 기도팀의 응원으로 수술을 하고 기적으로 2년 후에 걷기 시작하여 아픈 곳이 없다며 25년을 사셨으니 감사한 것 뿐이다. 척추를 위하여 무거운 일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지시였으나 몸에 벤 일을 멈추지 못하다가 결국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지만 남편과67년 해로하고 남편을 먼저 보냈다. 그후 어머님은 장남에게 오시어 6년간 며느리와 깊은 사랑을 나누며 가정은 행복하였다. 그의 삶은  성경 읽고 찬송하며 적게 잡수시고 잘 주무시며 의사를 볼 일이 없었다.  
내가 장남으로 한국에서 부모님을 모시지 못한 불효라고 하자 어머님은 죽을병에서 살린 것보다 더 큰 효도가 있는가 하시며 나를 위로하고 감사하니 내가 감사하였다. 며느리가 장보러 가며 무엇 접수시고 싶은가 물으면 주는 대로 먹는다 하시니 지혜를 배우며 더욱 성의를 다하여 섬기게 된다. 그의 기도는 누구에게 짐이 되지 않고 죽을 때는 자는 듯이 주 앞에 가는 것이라 하시더니 손녀 박사학위 수여식에 참여하고 작은 손자 결혼을 보고자 뉴욕 큰 손자집에서 저녁식사 후 앉아 기도하는 것 같았는데 조용하게 숨을 멈춘 상태였다. 기도대로 되었다. 어머님은 삶의 지혜, 정직, 근면, 겸허한 사랑과 섬김, 기도의 본을 남기시고 지금 주의 나라에서 찬송하고 계실 것을 알기에 더욱 감사한다.. 









Tuesday, May 7, 2024

어린이 없는 어린이 날? Children’s Day without Children?

어린이 없는 어린이 날? Children’s Day without Children
한국의 실버타운이나 미국의 은퇴촌은 인기가 있다. 노년에 편안하게 살 수 있어 좋고 또 자녀들의 걱정을 덜어주기에 좋아한다. 은퇴촌을 두 곳 방문하니 입주자들은 기쁘고 즐겁게 살았다. 골프카트가 교통수단이고 서로 팀을 이루어 만나고 저녁이면 함께 모여 게임과 춤을 즐긴다. 그러면서 앰뷸런스가 자주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 것은 어린이들이나 젊은이들이다. 달력에는 어린이날이지만 어린이 없는 어린이날이다. 은퇴촌만 아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 백넌사를 보니 그때는 6학년까지 학생이 많았는데 지금은 초등학생이 없어 성인교육으로 대신한다. 젊은이는 도시로 이주하고 연장자들이 남은 은퇴촌이 되어 있다.
어린이날이 되면 초등학교 주변만 아니라 어디나 장난감 의복 학습장 등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물품으로 즐비하던 가데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1960년대 인구 100명에 77명이 어린이였는데 2023년에는 15명의 어린이다. 1960년대에 0-14세가 100명에 49명이던 것이 2023에는 11명이다 교회도 2021년 통계에 영아부 없는 곳이 78% 중고등부 없는 곳 41%로 지난 10년간 주일학생 40%가 감소하였다..
한국의 출산율은 여성 1명당 1.1로세계 198개국에서 2년 연속 제일 마지막이다. 산업화 도회화 되면서 살기에 급급하여 부부가 일을 하고 여가나 오락을 즐길 시간도 없기에 자녀를 둘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또한 자녀 양육/교육비가 너무 부담이 된다.  자녀가 없으면 당장은 편하겠지만20년 30년 후 나라의 기둥은 어떻게 될  것인가? 
유럽에서 프랑스가 대표적으로 저출산이라 어린이가 적지만 프랑스에 이민해 온 모슬렘은 다산을 하면서 30년 후에는 자연스럽게 나라를 인수할 것이라 전망한다 어린이가 없으면 미래가 없지만 지금의 아이들이 앞으로 나라를 이룩할  것이다. 
산아제한은 낙태문제다. 미국에서 2020년 한해에 90여만건의 낙태가 있다가 낙태금지법이 생겼다 낙태는 생명에 관한 견해다. 생명은 하나님이 부부를 통하여 주신 선물이요 하나님이 주인이라 사람은 받는 것이요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기에 태아라도 생명의  존엄성을 가진다. 그러나 인본적인 생각으로는 태아는 내가 좌우하는 나의 소유라 생각하고 조절하는 것이다. 태어난다 하여도 어떤 문화에서는 자녀를 재산으로 생각하여 팔고 사기도 하고 심지어 처분하기도 한다. 생명자체의 존엄성이 주어지지 않는다.    
일제 치하 한국인의 인권은 없는 것이나 같았기에 방정환 선생 같은 선각자는 어린이에게서 나라의 미래를 보고 그들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그들이 씩씩하고 바르게 자라나 나라의 좋은 기둥이 되도록 색동회를 만들고 1921년 어린이 운동을 서울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펴지고 어린이날을 제정하도록 하였으나 1938년 일제가 폐지하였다가 광복 후 어린이날을 부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린이가 없으면 어른이 없고 어린이가 없다면 나라의 내일도 없기에 어린이는 나라와 교회의 가장 큰 자원이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것이라 존중하고 받아들여 양육하고 매일을 어린이날로 생각하고 어린이를 축복하여 그들이 자존감과 사명으로 자라나 나라와 세계, 교회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인재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