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ne 27, 2023

자유를 누리는가? Enjoy Freedom

자유를 누리는가? Enjoy Freedom (6/24/2023)
6월19일은 노예해방을 기념하는 쥰틴스 (Juneteenth)라는 미국 국경일이다. 노예문제로 남북전쟁이 일어나고 전쟁 중 1863년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령에 서명 발표하였으나 전쟁은 계속되다가 1865년 6월19일 남군이 항복함으로 전쟁은 끝이 나다. 그날 북군의 장군이 텍사스에서 노예해방을 모르고 아직도 종으로 살고 있는 이들에게 이미 2년 전에 노예해방이 선포되었다고 하자 이들은 기뻐하며 춤을 추고 그 후 텍사스는 이날을 기억하다가 1980년 공휴일로 정하자 다른 28개주와 디씨가 이에 합류하였다. 몇 년 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쥰틴스를 미국 국경일로 선포하였다. 그러나 법으로 주어진 자유와 실제로 누리는 자유는 다르다. 내게 주어진 자유를 누리면서 또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는가?
이민 초기에는 모두가 살기 위하여 많은 고생을 하였다. 부부가 함께 일을 하는 경우 퇴근하여도 부인에게는 끝나지 않는 집안 일이 많다. 잠잘 시간이 부족하나 꿈의 힘으로 버티면서도 특히 부인이 한국에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어떤 교인이 웨스팅 하우스에서 박사연구원으로 일을 하고 있던 80년대 조국에 많은 기회가 있는 것을 알고 나는 그에게 여기서는 일을 잘 하여도 진급이 어려운데 당신 같은 실력자가 한국에 돌아가면 좋지 않겠나! 하니 정색을 하며 응한다. 여기서 인종차별 받는 것이 한국에서 동족 간에 멸시 받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한다. 최근에 교수 연구원으로 은퇴한 후 미국에 온 이에게 들으니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운 여기서 살고 싶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어디나 살고 무슨 일, 말이나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데 어찌하여 ‘헬조선’이라며 떠나고 싶은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한국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내세워 이슬람 사원을 여기 저기 세우고 있는데 뜻 있는 주민들이 반대하며 진정서를 내고 있다. 나의 자유가 이웃한 다른 사람의 삶을 방해하며 불편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래 전에 이미 교회의 종소리가 사라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집트에서 해방된 히브리인들은 자유를 가지고 광야의 고난을 겪으며 자유롭게 불평과 원망을 하며 종생활의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하듯이 자유가 주어져 있으나 스스로 굴레를 쓰고 얽매이곤 한다. 열심히 일하여 경제적인 안정을 가지며 가진 것으로 만족하고 자유롭지 않은가? 병상에 눕지 않고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으로 마음에 감사를 가질 수 있는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에게 자유함을 가질 수 있는가? 남의 말이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나의 존재나 소유/업적을 다른 이와 비교하며 자유를 잃는다면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되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한다. 그리스도는 죄와 죽음에서의 해방과 자유를 주셨다. 하나님의 아들로 죄가 없으신 그가 우리 죄의 형벌을 대신 받아 죽어 묻히고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죄와 죽음을 벗어난 영생의 자유, 이를 지키는 것은 나의 몫이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죄와 죽음의 두려움에 시달리는 것은 종의 멍에로 돌아간 것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부하든 가난하든 평화이든 전쟁이든 진리인 예수를 알고 믿음으로 오는 참 자유를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을까! 






Monday, June 19, 2023

정원에서 식탁으로 Garden to Table

정원에서 식탁으로 Garden to Table (6/17/2023)
미국에서는6월 보름달을 딸기 달(Strawberry Moon)이라 한다. 원주민들이 6월 보름이 되면 딸기를 수확할 때라 그렇게 불렀다. 심고 가꾼 것을 거둘 때라 기쁨으로 수확하고 즐기게 된다. 일을 하고 그 결과를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보람되고 만족스런 일이다.
학위공부를 하던 시절 아파트 입주자에게 학교는 조그만 땅을 나누어 주고 농사를 하게 하였다. 우리가 받은 땅은 감당할 만한 15 자 5자 정도였다. 그 땅에 배추 무 파 등 필요한 것들을 심었다. 나는 공부에 열중하고 아내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돌보았더니 수확할 때에 땅에서 나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실감하였다. 그 땅에서 난 것으로 김장을 하여 겨우내내 먹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훨씬 지나 에티오피아에 선교사로 갔을 때 집 앞 좁은 공간을 개발하여 정원을 만들어 꽃도 심고 채소도 심었다. 일년 내내 더운 곳이라 언제든지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면 자라나 정직하게 잎과 열매를 내었다. 아침마다 ‘정원에서 식탁으로’를 싱싱하게 즐겼다. 
미국으로 돌아와 집에 텃밭을 만들고 땅을 파고 케일 상추 토마토 호박 오이 등 여러가지 채소를 심는다. 이른 봄 씨를 뿌린 화분을 방안에 두고 싹이 나오면 낮에는 햇빛에 내고 밤이면 방에 들려 추위에서 지키다가 때가 되어 밭에 옮겨 심는 정성을 드린다. 물을 주고 기다리면 어느 사이 자라나 케일 상추가 식탁에 오르고 고추 호박 오이도 잘 자라고 있으니 얼마 후면 또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유기농 청정채소를 기르고 먹는 즐거움이 크지만 비싼 채소를 사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심지 않고 기르지 않으면 기대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겨울 지난 땅을 뒤집어 고르게 하고 씨나 모종을 심어 자라게 하는데 자라는 채소를 해치는 것도 있다. 나비가 알을 낳고 해충이 침범하지만 잘 자라는 싹을 토끼가 먼저 시식을 하며 전체를 먹어 치우기도 한다. 이를 막고자 올빼미를 두어 지키기도 하지만 우리는 울타리를 두르기는 하나 어릴 때 풀을 주며 기르던 토끼를 생각하며 나누어 먹기도 한다. 자기는 수고하지 않고 남의 수고한 열매를 얻어 먹거나 훔쳐 가는 자도 있다. 
아담과 하와는 동산에 살며 그것을 지키고 경작하고 가꾸는 즐거움을 가졌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벗어나자 그 일이 땀 흘리는 수고가 되고 그 후에야 먹을 것을 얻었다. 힘들다고 일하지 않으면 먹을 것을 얻지 못한다. 
학교에서 졸업하는 계절에 열심히 공부한 학생과 그러지 않은 자의 차이를 본다. 졸업을 하는가 못하는가 이다. 열심히 연구 개발하고 과학과 산업을 발전시키고 일을 함으로 이름도 내고 좋은 일도 많이 하지만 먹는 것이 없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지혜자는 묻는다. 먹을 때의 즐거움은 일할 때의 수고를 잊어버리게도 한다. 성경은 자기 손으로 열심히 일하여 먹으라,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함께 각각 다른 재능을 주시고 때가 되어 그 재능으로 얼마나 일을 하고 수확하였는지 보고 상벌을 내리신다. 열심히 일하는 자체가 즐거움이지만 또한 인생졸업시에 하나님의 잔치상에 초대받으면 그보다 더 기쁨이 있을까!






Monday, June 12, 2023

졸 업 Graduation/Commencement

졸  업  Graduation/Commencement (6/19/2023)
6월이면 각급학교 졸업식이 있다. 초등학교나 고등학교보다는 대학 졸업이 성대하고 많은 사람이 모인다. 내게는 첫 외손녀가 토요일 대학 학위수여식, 월요일 전체 대학교 졸업식을 하기에 친가 외가의 모든 가족이 다 모인다. 그가 4년간 열심히 공부하여 졸업하는 것을 축하하지만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기회가 되어 좋다. 
졸업은 영어로 Graduation이지만 또한 시작이라는 의미의 Commencement 라 한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졸업에 요구되는 모든 과목을 이수하고 논문을 제출하고 통과되어 자격이 갖추어지면 Commencement라는 졸업식에서 가운을 입고 캡을 쓰고 단상에 올라가  총장으로부터 증서를 받는다. 그 중에서 인턴이나 연구. 학비 완불 등의 책임을 완수한 사람들이 Graduation Ceremony를 하지만 대개 이 둘을 하나로 묶어 하기도 한다. 그런데 모든 과정과 요구사항을 마치고 졸업하는 것을 어떻게 시작이라고 부르게 되었나?
중세 시대 유럽 대학에서 졸업을 위하여 논문을 쓰고 전문교수 앞에서 발표하고 질문에 잘 응답하여 통과가 되면 학회에 회원이 되는 자격이 부여되어 commencement라 하다가 후에는 논문통과에서 학위수여로 생각이 전환되어 졸업의 의미가 되었다. 이것이 미국에 적용되고 19세기에 졸업식은 학적 요구를 충족한 것을 인정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로 나아가 새로운 삶의 여정을 시작하는 의미를 포함하게 되었다. 곧 졸업은 마침이요 시작이라는 이중 의미가 된다. 이것이 이민의 현실로서 조국을 떠나며 그곳 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졸업과 같다고 할까? 각급학교 졸업이 있듯이 삶에도 이것이 반복된다. 모세는 이집트 노예 히브리인 아들로 태어났다. 히브리인의 번성을 두려워한 왕명으로 그는 3개월 후 나일강에 던짐 받는다. 히브리인 아들의 생명은 끝이 난 것이지만 왕의 공주가 강에서 아이를 발견하고 양자로 삼아 왕궁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으며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나이 40에 동족을 학대하는 이집트인을 죽인 것이 탄로되어 도망하여 낯선 땅으로 가 목자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았다. 40년 지나 산에서 양을 치다가 여호와를 만나고 히브리인을 탈출시키는 새로운 일을 위하여 목자의 삶을 끝낸다. 히브리인은 노예 삶에서 탈출하여 약속의 땅을 향해 광야를 행진하는 동안 모세가 중심에 있다. 40년 광야생활을 지나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산에서 하나님은 모세의 삶을 끝내고 아무도 그의 무덤을 알지 못하였으나 오랜 후에 변화산에서 엘리야와 함께 예수를 만나 탈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세는 죽었으나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전 한국에서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옷과 신을 시신이 있는 지붕으로 던지며 이 옷 입고 이 신 신고 잘 가시오! 하직인사를 했다. 죽어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고 믿었다. 우리 족보에는 죽음을 졸업의 졸로 표시하며 인생과업을 마쳤다는 것이나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는 표시다. 이생을 졸업하면 확실한 삶이 열리는 것을 주님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길과 진리, 생명이라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간다고 한다. 두 사람이 죽어 한 사람은 유황불이 타는 음부로 가고 다른 이는 천국의 아브라함 품에 간 것을 보여주신다. 이생의 삶을 졸업하면 그것이 끝이 아니다. 어떤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