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30, 2023

연결과 소통 Connection and Communication

연결과 소통 Connection and Communication (8/26/2023)
인터넷(International Network)으로 온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스마트폰 카카오 이메일 페이스북 페이스타임 트위터 등으로 가족과 친구가 어디에 있으나 인터넷이 있으면 실시간 교신하고 이야기하며 영상도 볼 수 있는 세상이라 나는 섬이 아니라 모두와 연결되어 있는 기쁨을 가진다. 그러다가 인터넷이 중단되면 주고 받는 소통을 하지 못하여 관계가 단절되고 친구와 가족과도 연결이 되지 않는 답답함을 경험한다.
외로운 이민 생활에서 가까이 만나고 식사하며 대화하고 친구가 되어 마음을 털어놓고 지날 수 있는가 하였더니 언제부터인가 그가 나를 오해하고 나의 부족과 아픔을 퍼뜨리고 헛 소문을 만들고 네 인격을 무너뜨리더니 만나지도 않고 피하며 나를 싫어하는 표시를 노골적으로 한다. 배반당한 느낌으로 외로움과 아픔 분노가 일어나고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자 하나 되지 않아 고민하며 잠을 자지 못하고 우울증과 몸에 병이 생기기도 하여 전문 상담가를 찾거나 의사의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이것이 사회의 현실이라 연결하고 소통하는 관계는 그만큼 삶에 중요하다. 
사람과의 관계 이상으로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욱 심각하여 생사가 달린 문제다. 하나님은 인격체라 자기 형상을 가진 사람과 교제하며 소통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사람은 돌아서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 좋은 대로 살고 뻗어가며 하나님 없이 살고자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를 피하려 하나 속에는 죄책과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에 시달린다. 세상은 혼돈에 빠지고 생명을 떠난 비참과 대립, 원한과 살상을 겪게 된다. 하나님은 그래도 사람을 사랑하여 인내하며 막인 담을 헐고 관계회복의 길을 여신다. 하나님의 사랑과 길을 보여주며 그에게로 돌아오라고 선지자를 세워 자신을 사람과 연결시키고자 한다. 공의의 하나님은 죄의 형벌로 죽음 아래 있는 사람이 자기와 관계를 회복하도록 사람의 죄와 형벌을 대신하여 어린양의 피를 흘려 죽이고 그의 죄를 용서하도록 기도하는 제사장을 세워 사람을 하나님과 연결시키게 하였다. 성경의 선지자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고 소통하기 위한 직분이다. 그러나 한계는 어린양 짐승이 사람을 대신할만큼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옛 부족사회에는 서로 갈등과 전쟁 살상이 많았다. 한 추장이 이를 피하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원수인 상대방 추장에게 보내며 화해를 청한다. 상대방이 그를 받고 평안하게 돌려주면 화해가 성립된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그가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그에게만 생명이 있음을 알리고 생명을 전하고 회복하다가 마지막은 스스로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피를 흘리고 죽음으로 사람이 하나님과 화해하고 생명을 얻도록 하였다. 누구든지 그 아들을 받아드리면 하나님과 화해하고 생명을 누리게 된다. 예수님은 선지자와 제사장의 일을 겸하여 하시고 이 일을 그의 제자들에게 맡기셨다. 오늘 목사는 바로 선지자와 제사장 역할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전하고 어린양 예수의 피로 사람의 죄를 용서하도록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에 앞서 하나님은 자기 말씀을 기록한 성경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고 신자는 모두 제사장으로 자신과 남의 죄를 회개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회해하고 나아가 이웃과 연결하고 소통하여 생명과 평화를 누리도록 하신다. 오늘 나와 내 가족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죽음을 넘어선 생명을 누리고 있는가! 이웃과의 관계에서 열린 소통이 원활하게 되고 있는가!










Tuesday, August 22, 2023

자유인이 종 Free Servant

자유인이 종 Free Servant (8/19/2023)
8.15를 맞아 일제에 나라를 뺏기고 종살이 하다가 해방되어 자유를 얻은 것을 감사한다. 나라와 땅, 말과 이름 모든 것을 수탈당하고 남자는 징용으로 여자는 위안부로 끌려갔다. 미국의 원자탄에 일본이 항복한 덕분에 우리가 해방과 자유를 얻었다. 국민은 춤을 추고 꽹과리를 울리며 기뻐하였다. 그러나 가난 무지 질병에다 이념과 파벌, 분쟁은 여전히 모두를 누르는 세력이었다. 나라는 분단되고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극심한 고통이 현실이었으나 그럼에도 땀흘리며 나라를 바로 세우고 교육과 과학발전에 전념하여 경제 대국에 진입하였지만 여전히 무엇엔가의 자유를 갈망하며 미국까지 왔다고 참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우리를 기본적으로 억압하는 것이 있다. 죽음과 형벌의 두려움이다. 죄가 없으면 두려워할 것이 없지만 누구나 죄에 눌린 종이 되어 죄성이 시키는대로 따라가며 더욱 큰 두려움에 매인다.  모두의 문제이기에 누가 도울 수 없고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이 신음하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보내고 죄가 없는 그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승리하여 우리를 해방시켰다. 유일한 자유의 길은 무죄한 그가 흘린 피의 능력 뿐이라 누구든지 그를 받아드리면 참 자유를 얻게 된다. 예수를 믿어도 여전히 육신과 세상에 얽매이지만 구원과 영생을 다시 확인하면 감사와 기쁨, 삶의 힘이 생기고 자유와 구원을 허락한 예수님과 복음을 스스로 나누게 된다. 
예수께서는 전능한 분이나 섬기는 자로 사셨다. 제자들과 식사하다가 친히 그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그는 섬기는 종으로 있다며 그들도 서로 발을 씻어주라 하신다. 그는 가난 질병 귀신으로 고생하는 자, 세상에서 천대 받는 사람의 친구요 섬기는 종으로 살았다. 그는 섬김을 받으려 않고 오히려 섬기고 자기 목숨을 대신 바치고자 왔다고 말씀하신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택한 종의 길이다. 우리에게 자유와 생명을 주시고 우리도 자기처럼 살기를 기대하신다. 
남북전쟁 이전 미국 남부에는 노예시장이 활발하였다.  북부의 한 사업가가 남부 여행중 노예시장에서 노예 경매하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하였다. 어느 여인이 경매 대상이 되고 사람들은 금액을 말하며 응찰하였다. 여행자는 맨 나중 최고의 금액으로 낙찰하고 그 노예를 사서 노예시장에서 데리고 나왔다. 저녁을 먹이고 호텔에서 잠을 재우고 다음 날 아침 한 봉투 돈을 쥐어주며 ‘이제 너는 자유다 가서 자유롭게 살아라’ 하였다. 얼마나 원하던 일인가? 종에서 자유인이 되었다. 춤을 출 일이다. 여인은 얼굴에 기쁨을 표시하며 자기를 해방시킨 그 사람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한다. ‘나를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자유인으로서 평생 당신을 섬기며 살게 하여 주십시오’ 한디. 너무나 감사한 나머지 자원하여 그를 섬기는 종으로 살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바울은 그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한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완전한 자유인이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의 종이라고 하였다. 성도는 믿음으로 구원과 자유를 얻은 은혜에 감사함으로 ‘너희도 그렇게 하라’는 주의 말씀을 따라 자원하여 남을 섬기는 종이 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 교회만 아니라 이웃과 선교지에서 섬기는 종으로 산다면 주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Sunday, August 13, 2023

다르면서 함께 Different Together

다르면서 함께 Different Together (8/12/2023)
인종혐오 범죄가 그치지 않는다. 외모 언어 문화가 다른 것을 받아주지 못하는 지나친 반응이라 본다. 유유상종이라 끼리끼리 함께 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다. 지역 학교 등이 대표적이고 한국에서 어느 지역 어느 학교 출신 모임은 마피아라 부를 정도로 배타적이라 한다. 더욱이 해를 당할 경우에는 더하다. 작은 나라로 계속적인 외국의 침략을 받으며 외인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감으로 침략자를 놈이라 하고 일본인은 왜놈, 중국인은 뙤놈이라 부르며 복수하듯 비하한다.  
미국은 이민의 나라다. 원주민이 먼저 왔지만 구라파 백인의 힘에 밀려 그들은 청소되듯 밀려나고 개척과 개발을 위한 많은 노동력을 사들인 노예로 충당하였다. 노예가 해방되자 이민으로 필요를 채우고 나라를 돌아가게 한다. 지금도 노동자 유입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많은 의사 간호사가 초청되고 유학, 가족, 회사, 여행, 삶의 기회 등으로 이민하여 서로 다른 인종이 섞여 살고 있다. 
미국 이민에 대하여 멜팅팟 (끓는 뚝배기)라 했다. 누구든지 미국에서 살면 여러 재료를 넣고 끓여 찌개가 되듯이 하나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한 세대를 지나고 보니 종족들은 각각 그대로 남아 있는 샐라드볼이었다. 하나가 되지 못하고 상치 시금치 캐럿 토마토 등이 각각 자기대로다. 이민자로 뛰어나고 열심히 일하는 자가 많다. 공장에서 보통은 80프로 생산이나 말도 서투른 한국인이 120프로를 생산하니 동료의 미움을 받는다. 자리를 빼앗기면 증오하고 그가 잘못을 저지르면 혐오하게 된다. 외모만 아니라 재능 능력 성과가 다르기에 용납이 힘들고 피차 어려움을 가진다. 사회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서는 모두를 용납하며 각자 있는 곳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모자이크(Mosaic)로 각자 다르지만 함께 어울릴 때 좋은 작품을 만든다. 
우리 몸이 건강하게 활동하려면 보이지 않는 오장육부만 아니라 눈귀코 손발 등 모두의 모양 위치 기능이 다르지만 함께 조화해야 한다. 눈이 귀에게 너는 눈이 아니니 필요 없다고 할 수 있겠나? 몸의 모든 지체가 서로 다르지만 함께 활동할 때 건강한 삶을 누리기에 지체 중에 배제할 것은 하나도 없다.
세상은 모두가 서로 다르면서 자기를 주장하고 이익을 추구하며 무시하고 미워하며 갈등하고 대립하고 분쟁하고 분리한다. 개인이나 단체 나라 세계의 현실이다.
이런 세상에 예수께서는 이들과 함께 하고자 오셨다. 자신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나 세상은 하나님을 등지고 마음대로 살면서 유대인 헬라인, 지성과 야만, 빈부귀천을 구분하고 병약자를 무시하고 소외하였다. 예수께서는 태어날 방도 없는데다 바로 죽음의 위협을 받으며 당분간 타국으로 피신해야 하였다. 성인으로 일을 시작할 때는 소외된 지역 갈릴리에서 이름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배고프고 눌린 자, 약하고 병든 자를 치유하고 만족시키며 보통은 접촉하지 않는 죄인과 세리의 친구로 살았다. 그가 행하는 기적과 특별한 삶의 방식으로 명성이 올라가고 많은 사람이 운집하자 기득권은 그를 이단이라고 처형하였지만 그는 자기와 다른 자들과 함께 하여 생명과 평안, 구원과 자유를 주셨다. 그는 자신과 다른 자와 함께 하여 겸손하게 그들을 섬기고 죽으심으로 생명을 일으키셨다. 교회와 성도는 예수의 뒤를 따라 ‘다르면서 함께’ 삶으로 세상에 생명과 평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Tuesday, August 8, 2023

함께 홀로 Together Alone

함께 홀로 Together Alone (8/5/2023)
사람은 함께 어울려 살게 되어 있다.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아 함께 할 짝을 만들어 주셨다. 함께는 선물이지만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 함께 일함으로 얻는 것이 많지만 홀로 있어 넘어지면 일으킬 자 없기에 사람은 가정을 이루고 공동체를 만든다. 농경사회에는 혼자가 아니라 두레로 함께 일하고 좋고 나쁜 것을 함께 나눈다. 공장에서도 많은 사람이 각자의 부분을 일하여 함께 전체를 이룬다. 함께 일하며 서로의 관계는 어떠한가?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대빗 리스만의 ‘군중속의 고독’은 변화하는 사회형편 묘사다. 산업화와 함께 물건 생산은 사람들의 기호와 편리를 먼저 생각하고 유행을 창출한다. 유행에 맞추어 함께 살며 자기를 표현하고자 한계를 넘어서고 부담을 느끼며 자기를 상실하는 고독이 일어난다. 마음보다는 소유 포장 등 외형을 따라 결정하고 결집한다. 장문수 시인은 “가까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먼 사람이요 아주 멀리 있어도 마음이 있다면 가까운 사람이라 사람과 사람 사이는 거리가 아니라 마음이래요”  부부가 평생을 함께 살아도 고독을 느낀다면 그것은 마음이 아니겠나!  
팬데믹이 시작될 때 나온 영화 ‘홀로 함께’는 사회적 거리와 격리가 생활화되자 복잡한 뉴욕을 떠나 시골로 옮겨간 사람이 홀로에서 자기의 진솔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분주한 함께의 삶에서 잊고 있던 자기를 홀로인 때 찾는 유익을 가진다. 
함께와 홀로는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 더욱 나타난다. 축하와 기쁨의 잔치에서 함께 하는 사람이 많지만 고통과 아픔의 때는 어떠한가! 욥은 동방에서 알려진 부자로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이 함께 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모든 소유가 강탈당하고 자녀들은 함께 생일 파티 하던 중 집이 무너져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자신의 몸 전체는 악성 종양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에 빠진다. 함께 있던 사람들은 그를 외면하고 아내는 그에게 죽는 것이 낫다고 권한다.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온 친구들은 그의 참상에 할말을 잃고 있다가 입을 열며 그의 죄와 허물을 지적한다. 위로가 아니라 더 심한 고통을 주었다. 욥은 고난의 홀로를 경험하며 더욱 하나님을 구원자로 바라보았다. 신실한 하나님은 그에게 전보다 배가 되는 복을 주셨다. 홀로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기회가 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시편 22편 첫 구절로 부르짖지만 그는 그 시편 마지막에서 하나님이 풍성한 생명으로 보상하시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삶은 남을 위한 것이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눌린 자 소외된 자를 풀어주고 친구가 되고 함께 하였다. 사람들이 모이고 한 번은 군중이 5천명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떡 몇 개로 배불리 먹이고 남은 것이 풍부하였다. 그를 왕으로 삼자는 군중운동이 일어나자 예수께서는 따로 홀로 산으로 올라갔다. 왜?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의 음성을 듣고 새로운 사명과 능력을 받는 시간이다. 그는 자주 홀로 시간을 함께 하는 많은 사람을 위한 삶과 사역의 근간으로 삼고 함께와 홀로의 조화를 잘 이루었다. 
우리가 함께 살며 차별과 불이익을 받는 때가 있어도 홀로의 시간을 가지면 함께의 삶에 힘을 얻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