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ne 25, 2017

한 나라의 안전과 번영 Security and Prosperity of a Nation

시편 127:1-5 한 나라의 안전과 번영 Security and Prosperity of a Nation (6/25/17 주일)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한다. 인사에 나타난다. “안녕이라는 말이 많다. 만나면 안녕하셔요? 아침에는 안녕히 주무셨어요? 저녁에는 안녕히 주무셔요. 중동, 이스라엘, 에티오피아에도 샬롬, 평안이 인사다. 자기 집에 살아도 안녕, 집을 떠나 외지에 가 살아도 평안이 필요하다. 평안과 안정은 한국 이스라엘 에티오피아만 아니라 모든 사람도이 원하는 것이다

1  평안, 안정 없는 세상이라 안전을 찾는다. ? 인간 세상에 전쟁이나 기근 질병 사고 등이 많기에 여기서 안전을 바란다. 뉴욕타임즈에 의하면 지난 3500년 동안 1000명 이상 죽은 전쟁이 없던 시기는 268년이고 20세기에만 전쟁으로 죽은 사람의 수가 1 8백만이라 한다. 확실한 기록은 없으나 인류 역사에는1만 내지 25만번의 전쟁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인명 재산의 손실이 있었겠나? 오늘은 한국 6.25전쟁 67년이 되는 날이다. 1950 6 25일 주일 새벽 북한의 탱크부대가 내려 오며 시작된 전쟁이 삽시간에 경상도 남쪽 일부를 남기고는 모두 넘어갔다. 유엔군 참전과 맥아더의 인천 상륙 작전으로 다시 전선이 북상하여 압록강까지 가다가 1953 7 27일 휴전할 때까지 엄청난 희생을 치르는 전쟁을 하다. 휴전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전쟁 중이다. 전쟁에 투입된 병력은 남한쪽이 180만 북한쪽은 215, 사상자는 군인 민간 포함 남한측이 사망 52만 부상 94만 실종43만 합 189, 북한측은 사망 70, 부상 182, 실종 80, 332만이라 한다. 당시 남북한 전체 인구의 1/5이 피해를 입다. 유엔군은 사망 미군 54246를 포함 75690, 부상 48만 실종 54,  중공군 사망 13만 부상 20만 실종 97만 이라 한다. 개인 재산 피해를 떠나 남한 일반 산업 시설 40%, 북한 전력 74% 연료산업 89% 화학산업 70%가 파괴되다. 미국이 한국 전쟁으로 인한 3년간 지출 비용은 총 6780 억불, 1953년에서 2000년까지 비용 1조 달러가 넘는다.(1,001 billion). 전쟁은 엄청난 손실을 가져온다. 정신적 피해는 어떤가? 비행기 소리만 들어도 놀라고 숨을 정도다. 욥은 말한다. 7:1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한가? 새 번역은 이 땅에 사는 인생에게 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겠나? 전쟁은 살상무기로 하는 것도 있지만 매일 힘들게 하는 노동도 전쟁과 같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매일 이른 아침에 사업처나 직장에 나가는 것, 학생들이 학교에 가는 것도 어느 면에는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다. 고통이 많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는 것을 꺼린다. 일본에서 2014 122,700명 등교 거부, 18세 이하 자살 9/1 131, 8/31 92, 봄학기 개학 일주일 후 3/8 95, 미국 홈스쿨링 177 2천명, 학교에 가지 않은 사람 16만명이다. 학교가 전쟁터, 아이들이 벼랑끝에 있다. 누구나 전쟁의 형편을 피하고 싶다. 시리아 난민들이 생명을 걸고 탈출하며 바다와 여러 나라에서 유랑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전쟁 같은 형편에서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2  사람은 안정을 추구한다. 아브라함 마슬로Maslow 1943년 인간 동기 이론 논문에서 인간 기본 필요 계층을 말하다. 바탕은 생리적인 것, 다음은 안정과 평안, 그리고 소속감, 인정 받음, 자기 실현 등으로 나간다. 생명 유지에 필요한 생리적인 것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안정이다. 오늘 본문에서 집을 세우고 성을 지킨다. 이는 솔로몬이 쓴 것이다. 이 시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 여기 말하는 집은 성전이요 성은 예루살렘 이라 본다. 성전을 짓고 예루살렘 성을 쌓는 것은 백성들의 안정과 평안 위한 것이다. 우리 개인도 집을 짓고 성을 쌓기 위하여 열심히 일을 한다. 전쟁에서 죽기 아니면 살기 하는 식으로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은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위한 것이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을 위하여 20년간 열심히 눈붙일 틈도 없이 양을 치고 일을 하였다. 외삼촌 재산이 많이 늘어났다. 외삼촌에게 말한다.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 30:30). 자기 집을 세워 안정되고 자녀를 생산하여 번성하기기를 원한다. 또 이 집은 왕국 나라를 말한다. 삼하 7:11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겠다고 하니 하나님 말씀이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지어 주겠다 곧 네 나라를 세우겠다고 하신다(대상17: 10). 국가 지도자는 강하고 안정된 나라 세우기를 원하고 국민은 안정과 번영을 원한다. 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투자한다. 사실 인류 문화와 문명, 과학과 기술은 사람들의 힘든 노력의 댓가요 결과다. 성경도 열심이 일을 하는 것을 칭찬하고 게으름을 책망한다.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고 한다. 솔로몬도 열심히 일을 하다. 지혜를 얻어 성전을 짓고 왕궁을 짓고 정치만 아니라 시를 읊고 동물 식물에도 조예가 깊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전쟁을 피하기 위하여 외국과의 정책적인 결혼으로 동맹관계를 든든히 하다. 그러나 결혼 통하여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다. 나라가 둘로 나누어지고 결국 모든 백성은 포로가 되어 흩어지고 유리 방황하게 되었다. 유다를 명망시킨 바벨론은 참으로 강한 나라였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바벨론 성벽이 높이가 300, 두께 75자로 난공불락이라 하다. 영원히 안전과 번성을 누릴 것이라 믿다. 그러나 하나 남지 않고 모두 파괴되고 말았다.
성경은 말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 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127:1)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고 안전한 곳을 찾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헛되다고 한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삼촌 따라 유리 방황하던 데서 안정을 누리고 싶다. 살림이 늘고 양이 많아져 분가를 할 때 아브라함이 롯에게 먼저 선택하라고 하다. 롯이 높은 산 언덕에서 내려다 보니 소돔이 비옥하고 좋아보여 그곳을 선택하였다. 그곳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악한 자였다. 롯이 그곳에 가자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다른 나라에 잡혀 가다. 삼촌이 가서 건져내다. 얼마 후에 소돔의 죄로 그 땅이 불과 유황으로 심판을 받을 때 아브라함의 중재로 롯은 건짐을 받다. 그러나 아내와 재산 모든 것을 다 잃었다. 하나님 없이 죄 중에서는 안정을 누릴 수가 없다. (시카고에서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이다. 한 사람이 택시를 운전하며 열심히 일을 하다. 집을 장만하다.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50세 생일을 맞으며 친구들을 초청하여 저녁을 하기로 약속하다. 생일 잔치 전날에도 열심히 운전하며 일을 하다. 어느 지점을 지나가며 앞 신호등에 설 준비를 하는데 길옆 건축 현장에서 세멘트를 퍼서 위로 올리던 크레인이 갑자기 중간에 열리면서 세멘트가 하필 그 택시 위에 떨어지다. 차가 납작해지고 그 속에 있던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사고다. 그러나 수고하고 계획한 모든 것이 얼마나 헛되게 끝나버리고 마는가!) 자녀는 하나님의 주신 선물/기업이요 상급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녀가 많으면 힘이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 사람들은 저출산이다. 모슬렘들이 출산을 많이 한다. 민주주의 나라에서 숫자로 이기는 길을 열어간다. 그래서 모슬렘이 런던 시장이 되고 프랑스도 멀지 않아 모스렘 나라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자녀들이 많아서 된다. 미시건 디어본도 완전히 모스렘 도시가 되다. 자녀가 많고 인구가 많으면 그것이 힘이다. 성문에서 원수를 만나도 든든하게 대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이것도 헛되다. 하나님이 없으면 동물 세계가 되고 부모를 거역하고 대항하고 심지어 서로 대적하여 죽게도 한다. 기업가의 자녀들 중에 얼마든지 일어나는 것을 본다. 교육도 귀한 것이요 교육을 통하여 큰 것을 하지만 하나님 빠진 교육은 인간을 도구로 만든다. 유물주의 인본주의 교육이 인간을 황폐로 인도한다.

3  참안정과 번영은 하나님에게서 온다. 하나님은 온 인류와 나라를 다스린다. 우리 생명, , 나라가 모두 하나님에게서 오다. 바울은 행17:25,26 만민에게 생명 호흡 만물을 주시고 인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 연대와 거주의 경계를 정하시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은 단4:17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며 자기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것을 깨닫다. 이 하나님의 우리 사람을 향한 생각은 렘29:11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라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 한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만날 때 어떤 형편에 있든지 그들에게 평안을 주신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안전을 주신다. 주께서 함께 하면 안전과 번성을 누린다. 처음 유리 방황은 아담에게서 시작하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으로 안정을 잃다. 하나님 반역하고 떠난 것이 불안이요 전쟁이다. 그 아들 가인이 아벨을 죽이자 그는 유리하는 자가 되어 안정을 얻지 못하다. 이렇게 유리 방황하며 안전을 얻지 못함은 어디 참 안정이 있는가 인식하고 찾는 기회가 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야곱 요셉 등이 모두 고향을 떠나 유리 방황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리게 됬다. 다윗은 사울왕의 선택을 입어 왕을 잘 섬기다가 왕의 질투와 미움을 받자 도망하여 유리 방황하다. 그러나 그 때에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평안을 누리는 것을 배웠다. 삼하 22:2,3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요 내가 피할 나의 반석,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피난처 나의 구원자라. 그 안에서 안정을 누리며 보호를 받아 이스라엘을 안정과 번영에로 인도한 위대한 왕이 되었다. 어거스틴은 고백한다. 내가 주 안에서 안식하기까지는 어디서도 평안을 누릴 수가 없다. 스카트랜드 에딘버러 도시의 로고는 Nisi Dominus Frustra Without the Lord Frustration127편의 처음 3자다. 여호와 없이는 헛되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지 아니하면 집을 짓거나 성을 지키는 것이 헛되어도 함께 하시면 안정과 번성을 가진다. 자녀와 국민 고객을 선물로 받아 힘을 얻고 번영하는 축복을 누린다. 어떻게 하면 되나?
1)하나님께서 내 생명과 가정, 나라의 주인임을 인정하고 높인다. 하나님을 인정하면 그도 우리를 인정한다. 91:15  저가 내게 간구 하리니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4:8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엘리사는 하나님을 높이고 인정하는 이스라엘 선지자다. 아람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 계획하면 이스라엘은 그것을 알고 미리 대처한다. 엘리사가 있어서 그들의 군사 기밀을 안다고 생각하여 그를 잡고자 그가 있는 곳을 포위 하였다. 엘리사의 하인 게하시가 아침에 일어나 둘러싼 군인들을 보고 너무 놀라다. 엘리사는 우리와 함께 있는 자가 저들보다 많음을 보게 하여 달라고 하자 게하시의 눈이 열리다. 불말 불병거가 그들을 지키고 있음을 보다. 엘리사는 아람 군대를 눈멀게 하여 수도 사마리아로 인도하고 잘 대접하여 보냈더니 다시는 전쟁할 생각을 하지 못하다. 2의 로마라 불리우던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이 1453년 모슬렘 터키에 넘어가고 같은 해 그리스가 넘어가다. 그리스에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1829년 독립이 선포되다. 4백년 가까이 모슬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런데 독립하고 보니 85%가 기독교 신앙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어떻게?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다. 이것이 나라 전체의 힘이 되다. 반면 콘스탄티노플은 기독교인들이 독립을 얻지도 못하고 30만 이상 학살을 당하고 전체 주민99%가 모슬렘이 되고 말았다. 가정에서 주를 높이는 교육을 하지 못한 것이 이유라 한다. 겸손하게 주를 인정하며 높일 때 주께서 지키시고 안정을 주신다.
2) 하나님이 정한 한계와 경계를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경계를 주신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가 있어 바다가 흉용하여도 경계를 넘어서지 않은다. 때로 범할 때가 있다. 태풍이 불면 땅을 삼킬 때가 있다. 경계를 넘어설 때는 재난이다. 하나님은 민족과 나라의 경계를 주시고 한계를 주어 서로 존중하게 하신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일,일을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한계는 일 주일에 하루를 쉬라고 하신다. 수고로운 일은 저주의 결과이나 안식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일주에 하루 피곤을 쉬어 몸을 회복하고 동시에 하나님 인정하고 예배하도록 함이다. 소유의 한계도 있다. 아담과 하와가 범한 잘못이 여기 있다. 에덴의 모든 것을 주셨지만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시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것을 존중하라 하신다. 남의 소유 남의 것을 존중하라. 이것이 바로 도덕이요 공의다. 재산이나 사람이나 내가 내것을 주장하듯이 남의 것을 존중, 인정하는 것이 공의로운 삶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다. 유다의 여호사밧이 왕이 되자 나라의 종교개혁을 가져오다. 하나님과 우상을 구분하여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 바른 길을 알게 하고 재판관을 세워 백성들의 선악을 재판하게 하고 레위 사람을 세워 하나님 백성을 말씀으로 가르치게 하다. 곧 하나님이 정한 길을 알도록 하다. 대하20장 모압 암몬 마온 3연합군이 유다를 침범해 오다. 여호사밧은 이들을 대항할 힘이 없어 하나님을 바라보다.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다(20:13)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노래하는 자를 세워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찬양하니 찬양을 시작할 때 침략군이 서로 싸우며 패퇴하였다. 하나님이 안정과 평안을 주신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54개국 중에 유일하게 남의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다. 산악이 많은 지형을 말하고 군인들이 용감한 것은 사실이나 이들은 강한 복음을 가진 나라다. 이는 스바 여왕의 나라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수도 악숨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언약 돌판 모형을 만들어 교회마다 몇개씩 가지고 있다. 교회의 가장 큰 명절은 우리 달력 1 20일경 예수께서 세례 받음으로 공중앞에 나타난 것을 지키는 뜸껏이라는 절기로 교회마다 있는 언약돌판을 제사장이 머리에 메고 시가지를 행진하는데 노래와 춤으로 기뻐하다. 330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고 지금도 전체 달력이 기독교 중심으로 일년에 보통 150일 금식을 하고 음식도 먹을 음식, 먹지 않을 음식을 구분하고 일을 하는 날 쉬는 날을 구분하며 경건한 신앙생활을 한다. 왕정을 몰아내고 공산주의 정권이 섰지만 역사상 전례없이 17년만에 공산 정권이 무너지고 지금은 민주 정권이 되어 있다. 공산 정권은 하나님을 배제한다. 하나님 말씀을 배제한다. 아무리 사람을 죽이고 정권을 연장하고자 했지만 17년만에 무너지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헛된 일이요 하나님이 함께 하면 안정이 있다.
3) 서로 사랑하라는 주의 말씀을 따르는 길이다. 사랑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은 그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잘 때도 주신다고 번역한다. 솔로몬이 잠을 잘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 무엇을 줄꼬 묻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자를 축복하여 안정되게 한다. 예수께서 약한 자 가난한 자 병든 자를 사랑하여 친구가 되셨다. 죄인을 사랑하시다. 배고픈 자를 먹이고 목마른 자를 마시우고 갇힌 자를 찾아주고 병든 자를 위로하는 것은 바로 주님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고 하시다.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한다. 하나님이 원수를 친구로 만드신다. 에티오피아는 83개 종족으로 되어 있으나 서로 인정하고 받아주며 한 나라를 이루어 평화롭게 살고 있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 치안이 잘 되고 안전한 나라다. 소매치기 도둑은 있지만 밤에 다녀도 별 문제가 없다. 한국전쟁이 났을 때 그 나라가 파병을 하다. 자유를 사랑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친구가 되었다. 모하멧이 자기 나라에서 600년대 박해를 받을 때 피난해 에티오피아까지 왔다. 왕이 그를 사랑으로 잘 보호하고 지켜주었다. 모하멧이 죽을 때 에티오피아 사람은 형제이니 지하드 성전을 하지 말라고 하였단다. 모슬렘이 여러차례 에티오피아를 공략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기독교인들과  나란히 잘 살고 있다.


사람은 불안하고 갈등이 많은 세상에서 안정과 번영을 찾는다. 인간적인 모든 노력을 할 필요가 있으나 하나님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헛되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면 안정과 번영이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며 그가 정한 한계와 법도를 지키고 서로 사랑하는 삶을 지속하면 주께서 우리를 인정하여 우리를 향한 그의 평안과 번영을 주신다.

Sunday, June 18, 2017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 The Father Heart of God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 Father Heart of God (누가15:20-32,  6/18/17 아버지 주일)
아버지 주일에 모든 아버지에게 주의 위로와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아버지로서 역할이 어떠한가? 자녀들을 위하여 미국에 오고 자녀들을 위하여 열심히 일을 한다. 아버지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 권위를 가지면서 자녀와 함께 있고 공급하고 보호하며 따뜻하고 부드럽게 용납하는 아버지인가? 아버지에 대한 미국 문화는 우리가 바라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미국에서 자녀가 부모와 함께 사는 가정이 점점 적어진다. 1960년에 88%에서 2016 69%, 엄마와 사는 아이는 8%에서23% 늘어난다. 성인 남자 1600명 조사 50%이상이 자랄 때 아버지를 느끼지 못하고 34%가 아버지를 롤 모델로 삼다. 이런 현상이 왜? 미국의 문화 때문이라 한다. Ken Canfield, The Heart of a Father: How you become a dad of destiny, 아버지의 마음: 운명의 아버지가 되는 길이라는 책에서 1)개인주의로 내일 비전 보다 오늘의 자기 행복 추구, 2)우선순위가 가족보다 직장과 성취, 돈에 있고, 3)헌신, 희생, 책임감이 줄어드는 경향이 영향 미친 것이라 본다. 결과로 아버지 없는 가정의 경제는 가난이 5, 극심한 가난은 10, 십대 성관념에 이상, 자살의 70%, 정신과 입원환자 80%가 깨어진 가정 출신이라는 통계다. Canfield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하여는 먼저 자신을 살피라 다음은 자녀와 관계를 개선하라 셋째는 평생 아버지로 장기 계획 세우라고 한다. 아버지의 중요성을 알고 아버지의 위치를 회복 하고자 Promise Keepers 운동, 이와 비슷한 운동으로 한국에서 아버지 학교가 시작, 미국서도 한인 교회 중심으로 발전되고 있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데 아버지의 롤 모델이 없는 것이 또한 실정이다. 자기가 보고 배운 아버지처럼 살고 싶은데 그런 모델이 없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실수 없는 완전한 아버지 모습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시다.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고후 6:18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1:12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 가진다. 64:8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마9:6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바 아버지라 하고 성령께서 우리가 그를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다.

예수께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로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여러가지로 설명하시면서 오늘 읽은 본문은 두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아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준다. 15장의 시작은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자 모여든다.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수군거리며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비난한다. 종교와 사회에서 인정 받는 기득권 세대인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가까이 하면 좋을텐데 그들이 멀리하고 싫어하는 세리 죄인들과 예수께서 어울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 이에 반응하여 주님은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한다. 한 사람이 양 백마리가 있는데 한 마리를 잃은 경우 99마리를 두고 한 마리를 찾아나가 그 양을 찾고서는 잔치를 베풀었다. 한 여인이 은돈 열드라크마 중에 하나를 잃고는 그것을 찾아 기뻐하여 잔치를 한다. 그리고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 째가 아버지를 떠나갔다가 실패자로 돌아올 때 기쁨으로 환영하며 잔치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어떤 아버지의 모습을 보나?

1 아들에게 희망을 가지고 기다린다. 내게 돌아올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한다. 먼 나라에 가서 사업하겠다 한다. 살아 있는 아버지에게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 몫을 달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기 자식이라고 집에 가두어 자기 그늘 아래 있으라고 강요하지 않고 그가 원하는 그의 몫을 주고 자유를 준다. 집을 나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하나님은 사람을 로보트로 만들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로 만드시고 그가 하는 것을 막지 않으신다. 이것이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다. 자녀가 태어날 때 처음부터 아담 같은 어른이 아니라 힘 없는 어린아이로 태어난다. 아이는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나 부모의 보살핌과 공급함으로 자란다. 이들이 자라나면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남으로 가정을 알게 되고 또 그에게 주어진 재능을 발휘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자유를 행사하면 그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아버지로서 허락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기다린다. 하나님은 우리를 내 버려 두지 않고 보살피는 마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린다. 아들이 멀리 있지만 아버지 눈과 마음은 그에게 있다. 하나님은 멀리서도 내 생각, , 걸음, 길을 모두 아신다고 다윗은 고백한다. 아들이 잘 되기를 희망하고 기다린다.

2 용서하고 받아주며 아들로 회복시킨다. 먼 나라로 간 아들이 큰 사업을 하고 돈을 벌 생각을 하였겠지만 실패하다. 그 돈을 다 낭비하고 또 그 나라에 흉년이 와서 먹을 것이 없게 되자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하는데 돼지 치는 일을 한다. 먹을 것이 없어 돼지가 먹는 음식을 먹고 싶으나 그것도 주는 자가 없어 굶주리는 신세가 되다. 그 때에 정신이 난다. 내 아버지 집에는 품군도 배부르게 먹고 지나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내가 아버지께 가서 잘못의 용서를 구하고 품군으로 써 달라고 해야겠다 하고 아버지께 돌아간다. 아버지가 멀리서 거지가 되어 돌아오는 그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춘다. 환영하는 표시다. 내가 아버지와 하늘에 죄를 지었으니 이제는 아들이라 부를 수도 없다고 한다. 아버지는 책망하거나 벌할 생각 않고 용납하고 받아준다. 우리 잘못을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대신 형벌을 받게 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신다. 용서의 표시로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긴다. 아들로 다시 회복시키신다. 옷을 입히는 것은 우리의 죄와 허물된 모든 아픔, 부끄러운 수치와 상처를 덮어 주심이다. 허물과 죄로 얼룩진 우리를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덮어주신다. 죄 용서 받고 의롭다 함을 받은 존재로 만드신다. 반지를 끼운다. 반지는 신분과 권위의 표시다. 그가 종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하는 영광과 권위를 가짐을 말한다. 아들이면 아버지와 같은 권위를 가지고 아버지와 같은 자리에 앉는다. 우리를 아버지와 함께 앉게 하신다. 아버지의 권위와 영광을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여 주신다. 발에 신을 신기라. 긴 여행에 신이 없이 왔다. 신은 신분이요 보호다. 이제 험한 인생에 신을 신고 보호를 받고 당당히 살며 사명을 행하라. 이 신은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을 전하는 평화의 복음의 신이다. 아들은 그가 가장 필요로 하는 용서를 받은 것을 확인하다. 아버지가 아들이 한 대로 대하거나 우리 죄를 하나 하나 기억하면 우리가 어떻게 그 앞에 설 수 있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한다. 동이 서에서 멀듯이 우리의 모든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
헤밍웨이가 쓴 세계의 수도(The Capital of the World)라는 단편은 한 아버지와 10대 아들 이야기다. 아들이 집을 나가 마드리드 거리를 방황하다가 투우사가 되겠다고 생각하다. 투우사가 되는 것은 곧 죽음이라 그것으로 삶을 끝내겠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 나서나 찾지 못하여 신문에 광고를 내다. “사랑하는 파코야 화요일 정오 몬타나 호텔 앞에서 만나자. 모든 것 용서했다. 너를 사랑한다. 아빠가그 날 800명의 파코가 호텔 앞에 모였다. 파코는 스페인에서 흔한 이름이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용서와 사랑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 우리가 아버지를 향하여 이 교회로 올 때 하나님은 이미 멀리서 보시고 뛰어 나와 우리 목을 안고 입을 맞춘다. 의의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긴다. 내가 너를 용서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 아들이다 하신다. 상상할 수 있나?

3 잔치를 베풀고 기뻐한다. 15장은 잃은 것을 찾을 때의 기쁨을 잔치로 표현한다. 잃은 양을 찾은 때, 은전 드라크마를 찾은 때 멀리 갔던 아들이 돌아온 때 잔치를 베푼다. 아버지의 기쁨이다. 아버지가 그 자녀를 바라볼 때 가지는 마음은 기쁨이다. 62:4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내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되리라 시16: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라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에게 있다.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느8:10 여호와의 기쁨이 너희의 힘이다. 여기 너 자리에 내 이름을 넣어보라. 어떤 마음이 되나?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기뻐 잔치를 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힘이 나고 즐겁나. 오늘 우리가 주 앞에 올 때 주님이 기뻐하며 잔치를 베푸신다. 예배는 잔치다. 우리도 얼마나 큰 기쁨인가! 21:6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신다. 33:26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기뻐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한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를 기뻐하시나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렇게 기뻐하신다. 어떻게 하랴? 멀리 있던 우리가 주님 앞에 올 때 주께서 우리를 받아 기쁨으로 잔치를 베푸시고 내가 그 잔치의 중심에 있음을 알자.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은 기뻐하며 잔치를 베푼다. 동시에 계속하여 하나님이 기쁨으로 잔치할 수 있는 길은 잃어진 자를 주께로 인도해 오는 것이다. 떠나갔던 자가 돌아오는 것 세례 받고 주를 믿는 일은 주를 기쁘게 한다. 아버지가 신겨 주신 평화의 복음으로 예비한 신을 신고 전도하여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면 기쁜 잔치가 일어난다. 전도와 선교가 이를 위한 것이다.

4 불평하는 맏아들을 받아준다. 큰 아들이 들에서 일을 하다가 돌아와 잔치하는 것을 보고 종을 불러 사실을 알고는 화가 나서 집에 들어 가지 않은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서 그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고 따랐다. 그가 멸시하던 동생이 돌아오자 송아지를 잡고 큰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가 자기를 위해서는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지 않은다고 불평이요 분노다. 이런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나는 평생 주를 믿고 있는데 기도의 응답이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새로믿는 사람들이 은혜와 복을 받고 기뻐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 분노하는 마음이 생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태도다. 세리와 죄인을 받아주는 주님이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둘째는 몸은 멀리 가 있으나 마음은 아버지께 와 있지만 큰 아들은 몸은 집에 있으나 마음은 멀리 있다.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나가서 그 아들에게로 간다. 얘야 너는 항상 나와 같이 있다. 내게 있는 것이 모두 너의 것이 아니냐! 한다. 우리가 이를 모르고 산다. 우리가 이를 감사할 줄 아는 것이 복이다. 아버지와 함께 있고 아버지의 모든 것을 내가 가지는 것이 송아지 한 마리에 비교가 되겠나? 아버지는 큰 아들을 나무라지 않고 그에게 그의 위치를 확인시킨다. 우리가 큰 아들의 입장이나 작은 아들의 입장이든지 거절당할 것이라고 걱정할 것이 없다. 주님은 우리를 받아 주시고 사랑하신다.
오늘 아버지 주일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받아드린다. 그로부터 내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인정하고 그에게 찬양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아직 그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경우는 오늘 그의 자녀가 되어 그를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가 있다. 예수를 믿고 영접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고 아버지 마음을 닮아 내가 부모로서 아버지로서 아들과 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결심할 때 주의 복이 있을 것이다.



Tuesday, June 13, 2017

주의 영과 자유 The Spirit of the Lord and Liberty

주의 영과 자유 The Spirit of the Lord and Liberty (고후3:17, 6/11/17 야외예배)

예배당 안에 있다가 야외에 나오면 발견하는 어떤 것? 바람, 하늘을 나는 새 독수리, 나무와 꽃 등 자연을 맛본다. 바람이 부는 것을 어떻게 아나? 바람을 느낀다. 깃발을 나부끼고 시원하고 생기가 난다. 막을 자가 없다. 벽으로 막으면 옆으로 돌아서 간다. 자유롭게 움직인다.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다. 바람이 자유롭게 움직이듯 주의 영이 임한 사람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성령은 그 원어가 바람이다. 하나님의 숨길이 바람이요 영이다. 이 영이 임하면 자유롭다. 하나님의 호흡으로 생령이 된 사람의 특성은 생명과 자유를 가진다. 처음부터 자유를 가지고 태어나다. 독수리를 보라. 높이 오른다. 마음대로 공중을 날고 있다. 누가 그것을 중지시키거나 그 가는 길을 막을 수 있나? 자유다. 성경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는 것과 같다고 한다(40:31).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는 독수리같은 힘과 자유를 가진다는 말이다.
사람은 자유를 추구한다. 미국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인가? 자유라 한다. 내가 돈이 있든 없든 그것이 큰 문제가 아니다. 옷을 잘 입든 못 입든, 공부를 하였든지 못하였든지, 남자든 여자든 별로 상관 없다. 눈치를 볼 것이 없다. 이 자유와 반대되는 것은 속박을 받고 종이 되는 것이다. 자유를 잃고 종이 되어 속박 받을 때가 많다.
자유가 무엇인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 최초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담과 하와는 정말 자유를 가지고 마음대로 살 수가 있었다. 동산에 있는 모든 과일을 다 먹으라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곧 선악과는 먹지 말라 그것 먹으면 죽는다고 하시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지만 한 가지는 금지되어 있다. 사탄이 나타나 묻는다. 정말 하나님이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나? 엉뚱한 질문이다. 하나님이 이 아름다운 동산에서 너에게 자유를 주지 않았구나? 네가 종이 되었구나? 너는 자유로운 존재다 하며 그를 동정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아담은 자유를 원하다. 제한 금지를 넘어 마음대로 하고 싶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그 열매를 먹었다. 나는 자유다 할 수 있었으리라 하나님에게서 자유를 누리겠다고 하였으나 당장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사랑으로 함께 하던 하나님이 두려워 숲 속에 숨었다. 대신 그는 그 때부터 사탄의 말을 듣고 따르는 사탄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그를 떠나는 죄를 짓고는 함께 살 수가 없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하나님의 말씀처럼 그는 죽게 되었다. 마음대로 한다는 자유를 추구하다가 이런 일을 당한다. 애굽에서 종으로 고역을 치르는 히브리 사람에게 자유를 달라고 하자 바로는 그들에게 벽돌을 만들되 짚을 주지 말고 벽돌을 만들라 하다. 더 중한 고통을 준다. 마음대로 하겠다는 자유가 우리를 더욱 속박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알콜 중독이나 마약 중독이 그런 경우다. 요즘 셀폰 인터넷이 그러하다. 셀폰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중독단계에 들어갈 때가 있다. 그것 없이는 불안하다. 자유롭다 하나 그 자유가 우리를 종으로 만든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죄의 종이 되고 사탄의 종이 되어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사탄이 주범이다. 사탄은 거짓말로 속이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한다. 모든 인간이 그런 형편에 처해 있다. 생명과 사랑이신 하나님은 우리 사람에게 자유, 참 자유를 주시기 원하신다.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며 사명선언을 하시다 눅4:18,19 그 내용은 해방선언이다. 주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함이라. 주의 영이 임함으로 하는 일이다. 포로된 자, 보지 못하는 자, 눌린 자를 자유케 하여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이다. 주의 사역은 전부가 자유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 일이 주의 영 곧 성령 강림으로 되어진다. 포로, 사탄의 종에서 해방이다. 눈이 멀어 보지 못하는 것은 알지 못하는 무지다. 눌림을 당한다. 가난과 질병 염려와 두려움 외로움 등으로 눌림 받는다. 이것이 심하면 우울증에 빠진다. 이런 자들을 주께서 풀어주신다.
주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함이 있다. 본문 앞 뒤에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것, 그 수건이 벗어지는 것을 말한다. 얼굴에 수건을 쓰고 가리고 있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알 수 없다.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 내려올 때 그 얼굴에 광채가 나서 처다보기 힘들어 그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 그것을 따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다. 하나님을 바로 볼 수 없게 되다. 수건으로 가리고 보니 하나님을 볼 수도 알 수도 없다. 성경을 받아 갖고 있으나 그 말씀과 내용을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니 얼마나 두렵고 답답한 일인가? 미국이 좋은 나라나 말도 문화도 모르고 산다면 얼마나 답답한가? 알지 못해도 자기 고집이 있다. 오해와 편견이 있다. 열등감이 생긴다. 자유롭다 하여도 이런 것에 종이 되고 속박이 되고 있다. 주의 영이 임하면 자유가 온다. 어둠에서 벗어나는 자유, 빛 가운데 사는 자유가 온다. 주의 영은 진리의 영이라(14:17) 그가 오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16:13). 하나님과 그의 사랑을 알게 되고 예수가 누구며 그가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내가 나를 알게 된다. 진리를 알게 되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 (8:32)  더 이상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과 자유를 가진다. 사탄의 거짓을 알게 되고 벗어난다.
주의 영은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자유롭게 하고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한다. 사탄의 길을 따라 내가 좋은대로 내 마음대로 하면서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요 그 결과가 죽음이다. 이 죽음이 우리에게 두려움을 준다. 죄의 삯, 형벌은 사망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다 (6:23).  예수께서 죄의 값을 자기 생명으로 지불하고 우리 죄를 용서하시다. 13:11 18년간 귀신에 붙잡혀 몸을 펴지 못하고 있는 한 여인을 만나자 주께서는 그를 풀어주시다. 중풍병이 걸려 걷지 못한다. 죄로 인한 것이었다. 네 죄 사함 받았다. 용서하시자 그가 일어날 수 있다. 속에 있는 죄책과 아픔을 풀어주면 일어난다. 이런 일이 있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그 죄를 내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 다윗은 위대한 왕이나 그가 죄를 지은 것을 알다. 밧세바와 간음한 죄를 알다. 하나님 보다 사람을 의지할 생각으로 인구조사를 하다. 하나님의 형벌이 임하다. 내가 죄를 지었다고 자기 죄를 고백하자 하나님이 용서하시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우리 죄를 깨달을 수가 없다. 16:7 성령이 오시면 우리 죄를 알게 하신다. 다윗은 자기 죄를 알고 고백하니 용서함 받을 수 있었다. 자유를 가진다. 빌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 루인스키와 추행을 한 것이 나타나 이로 인해 탄핵재판까지 받게 되다. 시카고 윌로우크릭교회 빌하이벨 목사가 그의 영적 지도자로 여러 번 만나 진실을 말하라고 하였으나 그는 거짓말을 하였다. 2000 8월 윌로우크릭 교회 지도자 대회에 빌 클린턴 현직 대통령을 초청하여 하이벨 목사가 90분동안 인터뷰하는 순서를 넣었다. 많은 반대가 여기 저기에 있었으나 하이벨은 교회가 할 일 있음을 알고 진행하다. 윌로우크릭 교회에 모인 600, 위성으로 참여하는 4000명이 보는 앞에서 인터뷰가 진행되다. 그는 대통령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것을 몰랐다. 르윈스키와의 문제를 숨기고 탁핵심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마음에는 전혀 자유가 없고 무거운 속박의 마음 뿐, 그러나 잘못을 고백하고 나니 자기에게 자유가 왔다고 하다. 고백하고 나니 어떤 일이 일어나도 마음은 자유였다. 주께서 모든 죄를 짊어지고 형벌을 받음으로 용서의 길을 열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 죄를 깨닫고 고백할 때 주께서 용서하고 자유를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믿쁘고 의로우사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의롭다 하신다. 죄에서 자유함을 얻으면 더 이상 죽음이 우리를 위협하지 못한다. 죽음을 넘는 자유를 가진다. 두려움도 없다. 염려도 없다. 자유함을 주신다. 8: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을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담대하게 설 수 있다.
이런 자유를 가짐은 우리가 자유를 감사하며 누리고 주를 사랑하고 바르게 살며 섬길 수 있도록 하신다. 이제는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힘을 가진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일군으로 일을 한다.
남북이 나누인때 북쪽의 한 신사가 남쪽을 여행하다가 노예시장을 보게 되다. 노예를 경매하고 있다. 한 여인이 경매되고 있다. 불쌍한 마음이 들다. 최고의 액수를 내고 그 여인을 사다. 돈을 내고 그를 노예시장에서 사서 내다. 자기 소유가 되었다. 그날 밤 호텔에 가서 하룻밤을 편하게 재우고 먹였다. 다음 날 아침 이 신사는 돈을 두툼하게 넣은 봉투를 건네 주며 이제 너는 자유인이다. 이 돈을 가지고 가서 마음껏 자유롭게 살아라 하다. 그 여인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한다. 주인님,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내가 스스로 자의로 주인을 평생토록 섬기도록 할테니 나를 받아주십시오. 참 자유를 얻은 여인의 자의로 한 선택이다. 그는 자유를 가지고 기쁨으로 섬기는 일을 택하다. 즐거움이다.
우리가 의무와 책임으로 일을 하면 무겁고 힘들 때가 많다. 그러나 내가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스스로 섬기는 자유를 가지면 기쁨이요 감사다. 이것이 성도의 삶이다. 주의 이름으로 주의 백성을 섬기는 것이 바로 섬기는 자유다. 하나님의 자녀로 다른 주의 사람을 섬기는 것이 자유다. 주의 사람들이 주를 위하여 몸을 바치고 삶을 바친다. 베드로 바울만 아니라 역사에서 많은 사람이 순교한다. 주께서 생명 버려 나를 구하고 자유와 생명 주신 것을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섬기는 자유를 가짐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한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주의 영이 임하면 주를 전하는 자유를 가진다. 막을 수가 없다. 매로 치고 감옥에 넣어도 어디서나 주를 전한다. 간수에게도 주가 생명임을 전한다. 참 자유다.

자유로운가? 주께서 주시는 마음의 자유, 삶의 자유를 누리나? 아직 어디엔가 속박되고 눌림을 당하는 일이 있나? 아들이 자유케 하면 우리는 참 자유다. 주신 자유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은 고백과 수용이다. 그리고 그 자유를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주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고 섬기며 다른 사람에게 자유와 안식을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