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29, 2019

쓰레기 처리 감사 Thanksgiving for Trash Removal


쓰레기 처리 감사 Thanksgiving for Trash Removal (11/28/19)

감사의 계절에 여러가지로 감사하는 중 쓰레기 처리에 대한 감사가 있다. 매주 한 번씩 집안의 쓰레기를 모아 밖에 내어두면 트럭이 와서 이렇다 저렇다 묻지 않고 모두 싣고 내 눈에 보이지 않은 곳으로 간다. 그 쓰레기는 우리 집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만일 쓰레기 수거가 없다면 집이 냄새로 차고 이웃은 쓰레기 범벅이 될 것을 생각하면 쓰레기 처리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쓰레기 처리는 개인과 가정, 세계의 큰 과제다. 가정마다 쓰레기를 버리는 양이 많다. 미국인 평균 하루에 내는 것이 2킬로그램, 미국 전체에서 나오는 하루 쓰레기는 728천톤이다. 년간 플라스틱 병은 220억개, 사무실에서 나오는 종이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 만하탄까지 12자 높이 벽을 쌓을만한 양이라 한다. 가정에서 수거한 쓰레기는 일부 재활용으로 처리되나 대개는 2434곳의 매립지에 묻지만 냄새와 유해 메탄가스로 대기를 오염시킨다.
땅만 아니라 강과 바다도 쓰레기로 덮인다. 가장 큰 쓰레기 플라스틱이 매년 8백만톤씩 바다에 들어가고 이미 있는 15천만톤 플라스틱 쓰레기와 합류한다. 거북 고래 물고기 갈매기 등이 플라스틱 조각을 음식으로 알고 먹고는 죽는다. 땅과 물만 아니라 우주 공간 지구 궤도에 10센티 이상의 쓰레기가 14, 추적 가능한 우주 쓰레기가 22천이라 한다. 위성을 폐기처분하고 위성을 파괴하거나 위성이 충돌하여 생기는 것이다.

쓰레기는 이제 인간의 삶,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형편이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기술이 개발될 것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쓰레기와 공존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쓰레기의 주범은 바로 사람, 인간이 쓰레기를 생산한다. 우리의 삶 자체가 쓰레기로 채워져 있다. 쓰레기는 본래의 용도를 떠나 인간 삶의 요구를 벗어난 것, 한 번 사용되고 버려진 것, 쓸모가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이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 자기를 개발하지만 용도를 찾지 못하여 버려지고 잊혀진 상태에 있는 자가 많다. 그가 들어가 일할 자리나 사회에 끼어들 자리가 없어 시달리는 자들이 있다.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장애인도 많다. 범법자로 판단되어 사회와 격리된 자가 감옥에 가득하다. 이들은 세상의 용납을 받지 못하는 버려진 존재로 여겨진다. 만물의 찌꺼기 같이 생각된다.

누가 이들을 받아주거나 재생하나미국이 어느 정도 감당하다. 뉴욕 자유 여인상에 붙여진 동판에 이런 시가 새겨져 있다. 너의 (옛문화에서) 지치고 가난하고 힘든 군중, 자유를 숨쉬고 싶어하는 자들을 내게로 보내라 너희 해변의 버려진 쓰레기, 집없고 폭풍에 시달린 그들을 내게로 보내라 황금문 옆에서 내 불을 밝히리여기 미국에도 역시 아픔이 있기에 예수께서 오시다예수께서 받아주신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 죄인으로 취급되는 특정 직업인, 눌림 당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자들에게 참 자유를 주고 살아나게 하신다. 오늘도 주를 만남으로 세상에 유익을 주는 새 삶을 사는 자가 많다.

사람은 속에서 여러 죄를 생산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마음이요 (17:9)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기에 (8:21)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자기 중심이요 남을 용납하지 않는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 곧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비방이라 이런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15:18-20). 삶을 죄악의 쓰레기로 채우면서 자기는 깨끗하다고 하는 자가 많지만 죄를 인정하고 예수께로 향하면 그는 모든 더러운 죄를 깨끗이 처리하고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 죄의 모든 쓰레기를 대신 처리하고 우리를 깨끗하고 의롭다고 하시기에 이로 인하여 감사하며 주를 찬양한다.

Friday, November 22, 2019

교회 앞에 열린 문 Open Door before the Church


요한계시록 3:7-13 교회 앞에 열린 문 Open Door before the Church (11/20/19 Bethany)

한국에서 한 때 결혼하려면 여자가 남자에게 열쇠를 세개 준비해 주어야 한다고. 자동차, , 사무실? 유일하게 한국이 그러하다. 성경에나 전통은 남자가 값을 내고 부인을 데리고 온다. 남자가 열쇠를 가진다. 열쇠를 가진 사람이 힘이 있다.
오늘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께서 말씀하시는 여섯번 째 교회로 그 교회 앞에 나타난 주님 모습이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분으로서 내가 네 앞에 열린문을 두었다 하신다. 이 교회는 빌라델비아에 있다. 빌라델비아는 버가모 왕 아탈루스 2세가 주전 140 브루기아 지역을 헬라화하고자 건설, 무시아 루시아 브루기아 3국 접경 지역에 위치하여 서로 내왕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여기 교회가 있다.
주께서 세운 이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주의 말씀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 주를 믿는 자가 많지 않다. 별로 힘이 없다. 그러나 주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을 지키고 있다. 교회는 외형의 크고 작음, 숫자가 많고 적은 것, 활동의 다과보다 믿음이 중요하다. 빌라델비아는 교인의 수나 크기는 작으나 큰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열린 문을 허락하신다.
베드로가 갈릴리 어부 출신, 성급하고 실수가 많으나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들이라 믿음을 고백하니 주께서 그를 베드로 반석이라 하고 그에게 천국 열쇠를 준다고 하다. 열쇠로 땅에서 열면 하늘에서 열리고 땅에서 닫으면 하늘에서 닫힌다 하시다. 여기 교회 앞에 열린문을 두었다. 교회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는 것은?

1 하늘문이 열려 있다. 4:1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소리가 들리기를 이리로 올라오라. 요한을 초청한다. 주의 이름으로 밧모섬에 유배되어 고난을 겪는 요한에게 하늘문을 열고 하나님 앞으로 불러 하늘 나라의 모든 것을 보여주다. 영광스런 모든 것을 보게 한다. 그를 위로하심이다.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한다. 중간에 하룻밤을 지나며 돌로 베개하고 자는데 하늘문이 열리고 하늘과 땅이 사닥다리로 연결되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내리고 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나는 네 조부 아브라함 부친 이삭의 하나님이다 이 땅을 네게 주고 네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게 되리라 내가 항상 함께 있어 어디에서나 지키고 내 약속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28:12-15) 야곱이 그곳을 하늘의 문이라 벧엘이라 이름 짓다. 야곱의 삶에 고난과 어려움이 많았으나 이 하나님의 열린문이 그를 인도하고 지켜 주셨고 또 언제나 그 문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언제나 들어갈 수 있다. 열린문으로 하나님이 다가 오시고 우리는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 앞에 나간다.
동시에 주께서 다가와 말씀할 때 받아드리는 마음이 열려 있다. 주께서 말씀하여도 듣지 않는 자가 많다.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하는 것은 문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 주께서 열어주시면 마음이 열리고 알 수가 있다. 보혜사 성령이 마음을 열고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깨닫게 하신다. 주께 기도하는 것과 함께 주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을 문밖에 세워두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다. 자기들이 모든 것을 가진 부요한 자라 주님을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2 열린문은 자기를 공개하고 비밀이 없다. 주님은 숨기는 것 없이 모든 것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의 삶과 말씀 행적을 통하여 자신이 어떠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분명히 나타내 보이셨다. 주님은 주의 백성에게 너희는 빛이라 산 위의 동리가 숨기지 못한다 (5:14) 이는 착한 행실이라 하다. 불이 비쳐진 산위의 동리는 숨길 수가 없다. 미국을 건국할 때 청교도는 이 나라가 빛이 비치는 산 위의 동리가 되도록 하였다. 레이간 대통령 퇴임사에서 이를 재확인 기억시켰다. A lighted city on the hill 숨길 수가 없다. 세상 누구나 보고 안다. 투명한 모습 보고 사람들이 모여온다. 그런 미국이 되고 싶었고 그것이 미국이었다.
교회가 그러하다. 교회는 주님의 삶과 같이 세상에 숨길 것이 없이 투명한 존재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복음의 말씀을 듣기 전에 교회와 교인들의 삶을 본다. 우리 삶은 우리가 믿는 주가 어떤 분인가를 보게 한다.
에티오피아 개신교 선교의 시작이 그러하다. 1910년대 후반 미국 장로교에서 선교사를 보내기 시작하다. 의사와 농업 선교사를 보내다. 1919 Dr Thomas Lambie 가 의사로 가고 1920Fred Russell이 농업선교사로 가다. 추운 겨울 아침 누군가 러셀의 집 문을 두드린다. 맹인 거지가 서 있다. 들어오게 하니 문간에 앉는 것을 안내하여 소파에 앉게 하고 따뜻한 커피와 음식을 대접하였다. 이 거지는 이런 대접을 평생 처음 받았다. 그는 갈곳이 없는 혼자 사는 거지요 맹인이다. 선교사는 여기 내가 사는 집이 넓으니 함께 살자고 제안하다. 그리고 예수를 소개하니 내가 그분을 모르나 당신이 믿는 분이라면 나도 믿겠다. 영어를 가르치고 점자를 가르치다. 그가 전도인이 되어 트럭 운전자들이 모이는 곳, 친구들에게 전도하여 뎀비 돌로 지역에 처음 교회를 시작하게 되다. 이것이 장로교회의 시작이다. 이 맹인 거지가 기다다 솔란이다. 선교사가 문을 열고 그의 삶을 보여 준 것이 바로 교회 시작이 되었다. 러셀 선교사의 딸 도로시가 나이 70인데도 내가 있을 때 그곳 고아들을 위해 일을 하고 있고 자주 만나 교제하며 함께 사역의 동역자가 되었다.
우리 교회의 조직이나 재정, 하는 일 등 모든 것이 투명하고 우리 개인의 삶이 정말 누구 앞에 나타날 수 있을만큼 투명하나? 햇빛이 들어오면 먼지가 보인다. 주의 빛 앞에 부족이 나타난다. 그때는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주께서 우리 앞에 열린 문을 두고 우리 심령을 감찰하신다. 우리를 살피시는 주 앞에 설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3 열린 문이 있으면 누구나 들어온다. 미국은 열린 문이 있다. 세계 어디서나 어떤 이나 올 수가 있었다. 뉴욕 자유의 여인상 그곳에 엠마 라자루스가 쓴 시가 동판에 새겨져 있다 이런 내용이다.  손에 횃불을 들고 서 있는 여인은 난민의 어머니다 횃불을 든 그 손은 온 세계인을 환영한다 조그만 입술은 부르짖는다. 너희 옛 땅이여 지나간 영광은 네가 간직하라 너의 지치고 가난하고 힘든 군중, 자유를 숨쉬고 싶어하는 자들을 내게로 보내라 너희 해변의 버려진 쓰레기, 집없고 폭풍에 시달린 그들을 내게로 보내라 황금문 옆에서 내 불을 밝히리. 이것이 미국이다. 지금은 벽을 쌓아올리고 오는 길을 제한하고 있지만 미국은 열린 문으로 누구나 들어올 수 있었다.
교회가 열린문이 있다. 누구나 올 수 있다. 주님 가슴은 열려 있어 당시의 인간 쓰레기로 취급되던 자들을 모두 받아 주셨다. 가난한 자들, 여인과 어린아이, 이방인, 병든 자 나환자 세리 등 누구나 주님은 가슴 열고 받아 주셨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 주의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자들이다. 초대 교회에 유대인 이방인이 함께 모였다. 계시록에 나타나는 교회의 모습이 그러하다.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주의 나라에 있다(7:9). 한인교회로서 문을 닫지 않은 교회가 있다. 누구나 언제나 올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다. 지역 주민들이 마음대로 사용한다. 결혼식도 하고 모임도 갖는다. 지역과 소통하는 교회가 되어 있다. 소외된 자 갈 곳이 없는 자 모두가 와서 환영 받을 수 있는 교회는 열린 문을 가지고 있다.
열린문은 또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하며 사랑을 나눔이다.  빌라델비아는 형제 사랑이란 말이다. 서로 사랑하여 함께 나누는 공동체 교회였다.

4 세계를 향하여 문이 열려 있다. 빌라델비아는 헬라문화를 전파하기 위하여 세워진 도시다. 주의 교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이 말씀 따라 선교사들이 은둔의 땅 한국까지 왔다. 당시는 배를 타고 한 달 이상 걸리는 험하고 어려운 길을 찾아 알지 못하는 땅, 아무도 환영하지 않은 그 땅에 와서 주의 사랑으로 병원을 짓고 학교를 세우고 그리고 교회를 세웠다. 나라를 개화하는 큰 몫을 하였을 뿐 아니라 한국을 근대 선교의 기적으로 만들었다. 작은 땅이 세계의 가장 큰 교회 50중 절반을 차지하였다. 한국 교회가 문을 열고 선교에 앞장 섰다. 170 나라에 3만명 정도의 선교사가 나가 있다. 미국 이민교회도 선교지 교회로 생각하면 선교사의 숫자는 훨신 많아진다. 닫힌 문을 열고 나간다. 모슬렘 지역, 공산지역이 닫혀 있고 미전도 종족이 있다. 모슬렘 지역에 선교사가 들어가 일을 하기 어려우나 위성 방송을 통하여 믿는 자가 많아진다. 오래 전 한인 선교사가 이란에서 사역하다가 철수를 하였지만 방송으로 선교가 되고 있어 몇 년 후에 방문하고 연락하여 모으니 900명이 모였다. 놀라운 일이다. 직접 들어가서 또는 방송이나 인터넷으로 전도의 문이 열려 있다.
바울은 소아시아 지역에서 선교하다가 환상을 보다.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 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고 한다. 주의 부르심으로 알고 간 것이 빌립보요 그것이 구라파 선교의 시작이다.
3월에 성 패트릭 데이가 있다. 영국 옆에 있는 아일랜드의 경축일로 그 나라 복음화 위한 선교를 한 패트릭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가 영국 사람으로 바닷가에서 잡혀 끌려간 곳이 아일랜드, 양치기로 6년간 종생활 하다가 도망하여 나와 프랑스로 가서 공부하다. 환상에 아일랜드 사람이 나타나 거룩한 젊은이여 와서 우리와 함께 지나자 하는 초청에 응하여 가서 아일랜드를 복음화하는 전도자가 되고 아일랜드 처음 감독이 되었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암 케리, 그는 영국의 구두 수선공, 일을 하면서 제임스 쿡 선장이 쓴 여행기에서 복음을 듣지 못한 많은 민족이 있다는 말에 영향을 받고 벽에 세계 지도를 걸어두고 복음이 전해진 곳 전해지지 않은 곳을 표시하였다. 마음에 감동이 깊어 영국 교회 지도자들이 모인 곳에 가서 선교해야 한다고 말을 하니 젊은이 앉게, 하나님이 원하시면 너와 우리가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하신다”. 그는 견딜 수 없는 뜨거운 마음으로 1792년 다시 목사회에 참석하여 앞에 서다. 54:2 네 장막터를 넓히라 말씀을 읽고 선교를 역설하며 하나님으로부터 큰 것을 기대하자 하나님을 위하여 큰 것을 시도하자.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세계 선교회를 조직하고 케리를 처음 선교사로 파송하게 되었다. 그는 인도에 가서 인도말을 배우고 인도말로 성경을 가르치며 복음화에 앞장 섰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 큰 일을 하였다. 오늘 세계는 열려 있다. 하늘도 바다도 땅도 모두 열려 있다. 삶으로 문서로 봉사로 전도로 인터넷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주를 알게 되도록 복음을 전하는 문이 우리 앞에 열려 있다.

주께서 열린 문을 두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일하기를 바라신다. 응할 때 주께서 우리에게 큰 상을 주신다. 기둥이 되게 하고 다시는 나가지 않은다. 어떤 환난이 와도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 이마에 새겨 주시어 영원한 보장을 받는다. 이런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Thursday, November 21, 2019

장벽이 무너진 감사 Thanksgiving for the Wall Removed


장벽이 무너진 감사 Thanksgiving for the Wall Removed (11/21/19)
        이종형 osmk0836@gmail.com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언어와 생활 습관 등 서로 다른 점이 많았지만 그 중의 하나가 집에 담이 없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내가 살던 집도 높은 담에 든든한 대문, 담 위에는 철망과 깨어진 유리 조각이 있었는데 여기는 담이 없어 시원하고 자유로우며 서로 신뢰하고 열려 있는 사회임을 느끼게 하였다.

지난 11 9일은 독일을 동서로 갈라 놓았던 베르린 장벽이 무너진지 30년이 된 날이다. 동쪽이 공산주의에 점령되자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이 서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세워진 담벼락이었다. 편지는 주고 받았지만 사람은 내왕할 수가 없었다. 일가친척 친구들이 갈리우고 사업 직장 생활 모든 것에 제한을 가지며 29년 한 세대가 지나가다. 그것이 삶이라고 받아드릴 수도 있겠지만 자유를 원하는 물결은 막을 길이 없어 그 장벽은 결국 무너지게 되었다. 그들의 환호와 기뻐함을 지금도 기억한다.

보이는 장벽이 없어졌다. 정말 자유로운가! 보이지 않은 장벽은 여전히 있음을 본다. 우리에게 담은 있었지만 이웃과의 관계는 잘 열린다. 마음이 통하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털어낸다. 동시에 현실은 관계에 높은 담이 많다. 지역, 신분, 직업 등이 서로를 나눈다. 남북만 아니라 동서, 도시와 시골, 가진 자 못가진 자 간의 장벽은 높이 올라가 있다. 어디에나 있는 일이다. 담이 없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소수민인 우리가 다수민에게 소외 당하고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일상이다. 외모, 언어와 문화, 생활 습관이 다르기에 겪는 일이다. 미국 자체에도 같은 현상이다. 링컨의 노예해방 후에도 100년 이상 흑인은 사람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인권운동으로 또 다른 담을 무너뜨리긴 했지만 사회 각 부면에서 여전히 장벽이 많다. 같은 백인이라도 종족 지역에 따른 구분이 크다.

베르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사람들 관계에 있는 거리를 좁히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삶의 자세나 생활 습관이 달라 서로가 외계의 사람처럼 느껴지고 융화가 쉽지 않은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에티오피아는 왕정에서 공산주의를 거쳐 민주주의로 발전하였다. 한국 전쟁에 파병할 정도로 부유하던 나라가 세계에서 바닥이 되었다. 공산주의 산물로 주민들은 일하기 싫어하고 받기를 좋아하며 받아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은다. 생각과 삶의 자세가 서로 다르면 관계와 사회의 장벽은 생기는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큰 장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친밀하던 사람이 그를 두려워하고 멀리하고자 한다. 하나님을 거스린 죄의 형벌이 죽음인 것을 알기에 피하여 숲속에 숨는다. 하나님은 불칼로 담을 쌓고 분리하여 사람을 보호하였다. 죄는 형벌을 받아야 사면되고 형벌은 죽음이지만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을 사랑하여 결국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인간 죄의 형벌을 대신 받아 죽음으로 죄를 사면하고 우리에게 생명과 자유 평화의 길을 열고 부활하심으로 완성하였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을 무너뜨리고 소통과 생명의 길을 열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면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하여 생명을 누리고 이웃과도 평화하게 된다. 이 큰 장벽이 무너진 것이 어찌 감사가 아닌가!

Friday, November 15, 2019

버가모에 세워진 교회 The Church in Pergamum


요한계시록 2:12-17 버가모에 세워진 교회 The Church in Pergamum (11/13/19 Bethany)

예수께서 자기 교회를 믿음의 반석판 위에 세우신다고 하였는데 버가모에 세운다는 것은? 교회는 믿음의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들이 모이는 장소, 지역이 있다.  주를 믿는 사람들이 링컨우드에 모여 베다니교회를 이룩하듯이 버가모에서 모이고 있음이다. 본문은 버가모 교회에 주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계시록은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전하는 것으로 박해를 받아 밧모라는 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주께서 보고 듣는 것을 기록하여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신다. 그레데 바다에 있는 밧모섬, 그곳에서 대륙이 보이는 것이 소아시아 오늘의 터어키, 에베소는 그 대륙의 관문, 큰 도시 그곳에서 연결되는 지역들로 아시아와 동로마제국으로 통한다. 소아시아는 500-1000 마을 있는데 바울이 여기 중심 지역들에서 전도하고 교회를 설립하고 뻗어나가 수백개의 어린 교회가 있다. 누가 전도하여 믿는 자가 생기고 교회가 설립되었든지 그 교회들은 주님의 교회요 교인들은 주님의 양들이다. 그 교회가 주님의 소유이기에 주께서 그 교회를 알고 사랑하며 지키고 교회는 머리이신 주님과 서로 교통한다. 주께서 말씀 하시고 교인들은 응답한다. 많은 교회가 있는데 일곱 교회에 말씀하신다. 일곱은 전체를 대표하는 완전숫자, 일곱 교회는 당시 대표적인 교회요 또 어느 때나 있는 교회, 기독교 역사를 시기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일곱 교회 하나 하나를 살펴 보면 더욱 좋지만 오늘과 다음 수요일 두 차례에 두 교회를 보며 오늘은 세번 째 교회 버가모 교회를 살펴 본다.

1  교회가 위치한 장소가 중요하다. 우리는 환경과 관계하여 영향을 주고 받는다. 버가모는 소아시아 수도로 펄가메나라는 종이가 생산되어 풍요로운 지역이며 제우스 신전과 로마 황제 신전 등 로마인이 섬기는 많은 신상이 있다. 정치의 중심, 경제가 안정, 종교가 왕성한 이 도시에 어떻게 교회가 세워졌는지는 기록이 없으나 교회가 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로 교인들은 주님만 섬기고 충성한다.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 내가 알고 있다. 주가 알고 계신다는 것이 큰 위로와 힘이 된다. 버가모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라. 사탄의 세력, 음부의 세력이 사람들을 주장하고 있다. 경제는 안정되고 정치적으로 수도라 해도 사탄에게서 온 거짓과 속임, 불안과 두려움, 억압과 죽음이 가득하다.
왜 이런 곳에 주께서 교회를 세우실까? 예수의 복음만이 그들을 구하고 생명과 평안을 주신다. 돈이 정치가 어느 종교가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복음이 필요하기에 교회가 세워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바로 서서 교회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믿음을 언제 알 수 있고 언제 나타나나? 박해와 이단이 있을 때 나타난다.
1)교회를 향한 외적인 박해가 있다. 로마 황제를 숭상하는 시기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에베소교회 목회자 요한은 이미 밧모섬으로 귀양을 갔다.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한다. 버가모 교인들도 믿음으로 인하여 시련과 핍박을 당한다. 안디바가 죽임을 화형을 당하였다. 역사상 이런 박해는 언제나 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박해가 온다. 일본 중국 한국에도 박해가 있었다. 모슬렘 지역, 공산주의 나라에도 기독교 박해가 있다.
2) 교회 안에 잘못된 교훈이 들어온다. 냇적인 시련이다. 버가모 교회에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의 교훈이 있다.
발람은 민23-25에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모압왕 발락의 초청을 받았으나 하나님이 저주를 막았다. 발람은 다른 수단을 사용한다. 모압 여인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여 같이 먹고 마시라 한다. 많은 신상과 신전 예식에 함께 하라 한다.
니골라 교훈이 있다. 니골라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그는 당시 희랍철학을 따라 사람을 영과 육으로 이분하여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생각을 받아드린다. 영은 선하기에 육으로 하는 행동으로 인하여 더럽힘을 받지 않는다. 육체로 어떤 일을 하든지 상관 없다. 율법을 따라 엄격하게 행할 것이 없고 세상을 따라 동화하며 살아도 문제가 없다. 대단히 매력적인 가르침 같다.

2  이런 형편에 어떻게 대처하나?
1)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 안디바가 믿음을 지켰다.
황제를 숭배하지 않은 것으로 인하여 심문하며 재판관이 온 세상이 너를 반대한다 마음을 돌려라 하자 안디바가 말한다. 내가 온 세상을 대항하여 주님만을 섬긴다고 함으로 화형에 처하여졌다. 신앙의 선배들이 그렇게 하다. 폴리갑 84세에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다고 처형장으로 나가다. 처형자가 마지막으로 권한다. 늙은 나이에 왜 고통 속에 죽으려나 지금이라도 믿지 않겠다고 하면 놓아주겠다. 내 평생 84년 한번도 나를 모른다고 하지 않은 주님을 지금 배반하겠나? 얼른 나를 주 앞에 가도록 해 달라.
한국에서도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수 천명 교인이 반대하여 감옥에 가다. 주기철 목사 순교. 공산주의 북한에서 예수 믿는다고 박해를 당하고 잡혀 수용소에 보내고 짐승처럼 취급을 하였다.
(일본에서도 있었다. 159725일 나가사끼 니시자카 언덕에서 신부 6명 일본 그리스도인 20명이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풍신수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리스도인들이 천황이라는 왕을 숭배하지 않기에 나라의 위협이라 판단하고 천황 이외의 다른 신을 숭배하면 처형하라는 칙령을 내리면서 일어난 일이다. 로마에서 시작된 박해는 각곳에서 일어나다. 모슬렘 사회, 공산치하에는 어디나 볼 수 있는 일 지금 북한이나 중국에도 마찬가지의 박해가 있다. 그런 곳에 복음이 필요하기에 주께서 교회를 세우신다. 주께서 죄와 죽음에 처한 우리를 구하기 위하여 생명을 주셨기에 구원받은 자로 주를 믿는 믿음을 지키며 주의 복음을 전하고 생명을 구원하는데 고통과 어려움이 있다. 죽음 앞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는 것을 주께서 인정하고 칭찬하신다. )
2)그러나 박해와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믿음을 버리는 자들이 있다. 어디나 있을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인들의 초청을 받아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 그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다. 여인들의 신에게 절하여 하나님 향한 순수한 믿음을 버리다. 하나님도 섬기면서 다른 신도 섬기는 것이다. 남자가 여인과 가까이 하고 결혼관계에 들어가면 여인을 따르게 된다. 여인이 주는 음식을 먹고 여인이 섬기는 신을 섬기며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 솔로몬에게도 일어났다.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며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지혜와 영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그가 다른 나라 공주, 여인들과 결혼하며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 일어나다. 하나님과 이방신을 함께 섬기고 나중에는 심지어 성전 안에 이방신상이 세워지기도 하다. 혼합 절충주의다. 버가모라는 말은 결혼의 의미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교회와 주님의 관계는 결혼 관계다. 내가 너와 결혼하였다 한다. 신랑되는 주님만을 위하여 충절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신을 섬길 것인가? 남편만을 위하여 충절을 지킬 것이다. 남편 외의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는 것을 용납할 남편이 있나?
니골라당을 따라 육으로 하는 일은 영을 더럽힐 수 없으니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떠날 수 없으니 세상과 하나되어 살자고 한다. 세상과 결혼하듯이 하나가 된다. 이들은 교회에 가듯 이방 신전에 가고 세상의 풍습과 유행을 따른다. 세상과 타협, 혼합한다. 세상 문화가 교회 안에 들어온다. 교회인지 세상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교회는 방주다. 방주는 물이 있어야 뜨고 운행할 수 있지만 방주가 구원선이 되려면 물이 방주 안에 들어오지 않아야 한다. 물이 들어오면 방주도 사람도 모두 침몰하게 된다. 이런 일이 역사에 얼마든지 있다. 콘스탄틴이 기독교 공인한 이후 교회는 박해를 벗어나 인정 받으며 편하고 안정되게 신앙 생활하며 세상을 따라가기 시작하다. 오늘 미국이나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욋적인 박해는 참고 믿음을 지키나 속에서 오는 교훈에는 넘어지는 경우가 많다.

3  주께서 경고하신다.
1)회개하라. 믿음을 저버리는 자, 발람의 길을 따라가는 자,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라가는 자에게 회개하라 하신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신앙생활 하고 있는지를 알라고 하신다. 사탄의 통치가 있는 곳에 있다. 발람의 교훈,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혼합하고 타협하는 자가 있음을 주께서 아신다. 놀라운 것은 주께서 박해나 발람 당이나 니골라 당을 없애지 않고 두신다. ? 성도들이 주의 신부로서 믿음을 지키고 있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시험과 환난이 많아도 절개를 지키는 성도들이 참 신앙인이다. 회개는 내가 어떤 형편인지를 알고 그 형편에서 돌아서는 것이다. 고기를 잡던 사람들이 주를 만나고 부름 받자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면서 다시 돌아보지도 않은 것과 같다. 내가 따르고 좋아하던 것을 떠나서 주께로 향하여간다. 다시 돌아가지 않은 것이 회개다.
2)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으면 주께서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하신다. 당시 칼이 큰 무기다.  12절 주의 모습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라 한다. 칼 양쪽에 날이 있으니 그를 만나면 피할 수가 없다. 좌우에 날선 검은 원수 마귀와 싸우는 무기다. 6:12 우리 신앙인들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어둠의 영, 악의 영들과의 싸움이다. 이들과의 싸움에서 우리가 싸울 때 전신갑주가 필요하다. 전신갑주는 우리가 보호 받고 방어하는 무기도 있지만 공격하여 적을 퇴치하는 무기가 중요하다. 공격용은 엡6:17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주의 입에서 말씀이 나온다. 성경은 전체가 주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기다. 주께서 그것을 사용하시는 모범을 보여 주셨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 받을 때 사탄이 시험하고 공격하였을 때 주님은 오직 말씀만 사용하셨다. 말씀이 떨어지자 사탄은 물러갔다. 오늘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심령에 말씀이 충만히 들어 있어야 한다.
박해를 받고 시험과 잘못된 교훈으로 시련을 받을 때 말씀에 분명히 서서 대항하면 사탄의 세력을 이길 수 있다. 이렇게 승리하면 주께서 상을 주신다.

4  주의 약속: 이기는 자에게는 감추인 만나, 흰돌, 그리고 새이름을 주신다. 세가지 상이다. 만나는 광야 음식으로 매일 매일 주신다. 우리가 매일 필요한 양식이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염려할 것 없다. 주께서 공급하신다.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신다. 말씀으로 내가 살지만 동시에 이 말씀으로 악한 세상에서 이길 수 있다. 원수와의 투쟁이 없을 때는 말씀 칼의 능력을 알지 못하였으나 이제 말씀으로 악을 물리치자 그 능력을 알게 되다. 이전에 감추었던 것이 이제 나타나 알게 되다. 주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2)흰돌을 주겠다 하신다. 흰돌은 당시 법정에서 무죄자에게 주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저런 비판과 정죄를 많이 당한다. 세상 사람과 다르기에 소외시키고 잘못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께서 흰돌을 주시는 것은 주께서 우리 편에 계시며 우리를 죄 없다고 하신다.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이는 바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신 주 예수께서 죄 없다고 하시면 우리가 세상의 말에 좌우될 것이 아니다.
2)새 이름을 주시는데 그 이름은 흰 돌 위에 새겨 주신다. 지워지지 않을 이름이다. 이름은 신분과 권세다. 누구인지를 알게 하고 그의 이름을 쓰면 보증을 한다. 돈을 찾기도 하는 권위를 가진다. 새 이름이다. 주와 함께 연결된 새이름이다. 주의 사람, 주의 신부임을 바로 알 수 있는 새 이름이다. 시몬을 베드로라 이름하셨지만 그 보다 더 귀한 하나님 나라 상속과 소유권, 주와 함께 온 세상을 다스리는 영원한 권세를 가진 이름주신다.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나 주께서 주의 백성을 풍성하게 하고 악을 이겨내게 하고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는 약속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하신다. 주의 말씀을 들을 때 복이다.
이 교회가 말씀에 든든히 서고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대로 행하고 따라가는 교회, 주님과 결혼한 주님의 순결한 신부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