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12-17 버가모에 세워진 교회 The Church
in Pergamum (11/13/19 Bethany)
예수께서 자기 교회를 믿음의 반석판 위에 세우신다고 하였는데 버가모에 세운다는 것은? 교회는 믿음의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들이 모이는 장소, 지역이 있다. 주를 믿는 사람들이 링컨우드에 모여 베다니교회를 이룩하듯이 버가모에서 모이고 있음이다. 본문은
버가모 교회에 주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계시록은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전하는 것으로 박해를 받아
밧모라는 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주께서 보고 듣는 것을 기록하여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신다. 그레데 바다에 있는 밧모섬, 그곳에서 대륙이 보이는 것이 소아시아
오늘의 터어키, 에베소는 그 대륙의 관문, 큰 도시 그곳에서 연결되는
지역들로 아시아와 동로마제국으로 통한다. 소아시아는 500-1000 마을 있는데 바울이 여기 중심 지역들에서 전도하고 교회를 설립하고 뻗어나가 수백개의 어린 교회가 있다. 누가 전도하여 믿는 자가 생기고 교회가 설립되었든지 그 교회들은 주님의 교회요 교인들은 주님의 양들이다. 그 교회가 주님의 소유이기에 주께서 그 교회를 알고 사랑하며 지키고 교회는 머리이신 주님과 서로 교통한다. 주께서 말씀 하시고 교인들은 응답한다. 많은 교회가 있는데 일곱 교회에 말씀하신다.
일곱은 전체를 대표하는 완전숫자, 일곱 교회는 당시 대표적인 교회요 또 어느 때나
있는 교회, 기독교 역사를 시기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일곱 교회
하나 하나를 살펴 보면 더욱 좋지만 오늘과 다음 수요일 두 차례에 두 교회를 보며 오늘은 세번 째 교회 버가모 교회를 살펴 본다.
1 교회가 위치한 장소가 중요하다. 우리는 환경과 관계하여 영향을 주고 받는다. 버가모는 소아시아 수도로 펄가메나라는 종이가 생산되어 풍요로운 지역이며 제우스 신전과 로마 황제 신전 등 로마인이 섬기는 많은 신상이
있다. 정치의 중심, 경제가 안정, 종교가 왕성한 이 도시에 어떻게 교회가 세워졌는지는 기록이 없으나 교회가 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로
교인들은 주님만 섬기고 충성한다.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 내가 알고 있다. 주가 알고 계신다는 것이 큰 위로와 힘이 된다. 버가모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라.
사탄의 세력, 음부의 세력이 사람들을 주장하고 있다. 경제는 안정되고 정치적으로 수도라 해도 사탄에게서 온 거짓과 속임, 불안과 두려움,
억압과 죽음이 가득하다.
왜 이런 곳에 주께서 교회를 세우실까? 예수의 복음만이 그들을 구하고
생명과 평안을 주신다. 돈이 정치가 어느 종교가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복음이 필요하기에 교회가 세워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바로 서서 교회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믿음을 언제 알 수 있고 언제 나타나나? 박해와
이단이 있을 때 나타난다.
1)교회를 향한 외적인 박해가 있다. 로마 황제를 숭상하는 시기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에베소교회 목회자 요한은 이미 밧모섬으로 귀양을 갔다.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한다. 버가모 교인들도 믿음으로 인하여 시련과 핍박을 당한다. 안디바가 죽임을 화형을 당하였다. 역사상 이런 박해는 언제나 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박해가 온다. 일본 중국 한국에도 박해가 있었다. 모슬렘 지역, 공산주의 나라에도 기독교 박해가 있다.
2) 교회 안에 잘못된 교훈이 들어온다. 냇적인 시련이다. 버가모 교회에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의 교훈이 있다.
발람은 민23-25에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모압왕 발락의 초청을 받았으나 하나님이
저주를 막았다. 발람은 다른 수단을 사용한다. 모압 여인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여 같이 먹고 마시라 한다. 많은 신상과 신전 예식에 함께 하라 한다.
니골라 교훈이 있다. 니골라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그는 당시 희랍철학을
따라 사람을 영과 육으로 이분하여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생각을 받아드린다. 영은 선하기에 육으로 하는
행동으로 인하여 더럽힘을 받지 않는다. 육체로 어떤 일을 하든지 상관 없다. 율법을 따라 엄격하게 행할 것이 없고 세상을 따라 동화하며 살아도 문제가 없다. 대단히 매력적인
가르침 같다.
2 이런 형편에 어떻게 대처하나?
1)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 안디바가 믿음을 지켰다.
황제를 숭배하지 않은 것으로 인하여 심문하며 재판관이 온 세상이 너를 반대한다 마음을 돌려라 하자
안디바가 말한다. 내가 온 세상을 대항하여 주님만을 섬긴다고 함으로 화형에 처하여졌다. 신앙의 선배들이 그렇게
하다. 폴리갑 84세에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다고 처형장으로 나가다.
처형자가 마지막으로 권한다. 늙은 나이에 왜 고통 속에 죽으려나 지금이라도 믿지
않겠다고 하면 놓아주겠다. 내 평생 84년 한번도 나를 모른다고 하지
않은 주님을 지금 배반하겠나? 얼른 나를 주 앞에 가도록 해 달라.
한국에서도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수 천명 교인이 반대하여 감옥에 가다. 주기철 목사 순교.
공산주의 북한에서 예수 믿는다고 박해를 당하고 잡혀 수용소에 보내고 짐승처럼 취급을 하였다.
(일본에서도 있었다. 1597년2월5일 나가사끼 니시자카 언덕에서 신부 6명 일본 그리스도인 20명이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풍신수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리스도인들이 천황이라는
왕을 숭배하지 않기에 나라의 위협이라 판단하고 천황 이외의 다른 신을 숭배하면 처형하라는 칙령을 내리면서 일어난 일이다. 로마에서 시작된 박해는 각곳에서 일어나다. 모슬렘 사회, 공산치하에는 어디나 볼 수 있는 일 지금 북한이나 중국에도 마찬가지의 박해가 있다. 그런 곳에
복음이 필요하기에 주께서 교회를 세우신다. 주께서 죄와 죽음에 처한 우리를 구하기 위하여 생명을 주셨기에
구원받은 자로 주를 믿는 믿음을 지키며 주의 복음을 전하고 생명을 구원하는데 고통과 어려움이 있다. 죽음
앞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는 것을 주께서 인정하고 칭찬하신다. )
2)그러나 박해와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믿음을 버리는 자들이 있다. 어디나 있을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인들의 초청을 받아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 그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다.
여인들의 신에게 절하여 하나님 향한 순수한 믿음을 버리다. 하나님도 섬기면서 다른
신도 섬기는 것이다. 남자가 여인과 가까이 하고 결혼관계에 들어가면 여인을 따르게 된다. 여인이 주는 음식을 먹고 여인이 섬기는 신을 섬기며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 솔로몬에게도
일어났다.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며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지혜와 영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그가 다른 나라 공주, 여인들과 결혼하며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 일어나다. 하나님과 이방신을 함께 섬기고 나중에는 심지어 성전 안에 이방신상이 세워지기도 하다. 혼합
절충주의다. 버가모라는 말은 결혼의 의미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교회와 주님의 관계는 결혼 관계다. 내가 너와 결혼하였다 한다. 신랑되는 주님만을 위하여 충절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신을 섬길 것인가? 남편만을 위하여 충절을
지킬 것이다. 남편 외의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는 것을 용납할 남편이 있나?
니골라당을 따라 육으로 하는 일은 영을 더럽힐 수 없으니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떠날 수 없으니 세상과
하나되어 살자고 한다. 세상과 결혼하듯이 하나가 된다. 이들은 교회에 가듯 이방 신전에 가고 세상의 풍습과 유행을
따른다. 세상과 타협, 혼합한다. 세상 문화가 교회 안에 들어온다. 교회인지 세상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교회는 방주다. 방주는 물이 있어야 뜨고 운행할 수 있지만 방주가 구원선이 되려면 물이 방주
안에 들어오지 않아야 한다. 물이 들어오면 방주도 사람도 모두 침몰하게 된다. 이런 일이 역사에 얼마든지 있다. 콘스탄틴이 기독교 공인한 이후 교회는 박해를 벗어나 인정
받으며 편하고 안정되게 신앙 생활하며 세상을 따라가기 시작하다. 오늘 미국이나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욋적인 박해는 참고 믿음을 지키나 속에서 오는 교훈에는 넘어지는 경우가 많다.
3 주께서 경고하신다.
1)회개하라. 믿음을 저버리는 자, 발람의 길을 따라가는
자,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라가는 자에게 회개하라 하신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신앙생활 하고 있는지를 알라고 하신다. 사탄의 통치가 있는 곳에 있다. 발람의 교훈,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혼합하고 타협하는 자가 있음을 주께서 아신다. 놀라운 것은 주께서 박해나 발람 당이나 니골라
당을 없애지 않고 두신다. 왜? 성도들이 주의 신부로서 믿음을 지키고
있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시험과 환난이 많아도 절개를 지키는 성도들이 참 신앙인이다. 회개는 내가 어떤 형편인지를 알고 그 형편에서 돌아서는 것이다. 고기를 잡던 사람들이 주를
만나고 부름 받자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면서 다시 돌아보지도 않은 것과 같다. 내가 따르고 좋아하던
것을 떠나서 주께로 향하여간다. 다시 돌아가지 않은 것이 회개다.
2)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으면 주께서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하신다. 당시 칼이
큰 무기다. 12절 주의 모습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라 한다. 칼 양쪽에 날이 있으니 그를 만나면 피할 수가 없다. 좌우에 날선 검은 원수 마귀와 싸우는 무기다. 엡6:12 우리 신앙인들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어둠의 영, 악의 영들과의 싸움이다.
이들과의 싸움에서 우리가 싸울 때 전신갑주가 필요하다. 전신갑주는 우리가 보호 받고
방어하는 무기도 있지만 공격하여 적을 퇴치하는 무기가 중요하다. 공격용은 엡6:17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주의 입에서 말씀이 나온다. 성경은 전체가 주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기다. 주께서 그것을 사용하시는 모범을 보여 주셨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 받을 때 사탄이 시험하고
공격하였을 때 주님은 오직 말씀만 사용하셨다. 말씀이 떨어지자 사탄은 물러갔다. 오늘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심령에 말씀이 충만히 들어 있어야 한다.
박해를 받고 시험과 잘못된 교훈으로 시련을 받을 때 말씀에 분명히 서서 대항하면 사탄의 세력을 이길
수 있다. 이렇게 승리하면 주께서 상을 주신다.
4 주의 약속: 이기는 자에게는 감추인 만나, 흰돌,
그리고 새이름을 주신다. 세가지 상이다. 만나는
광야 음식으로 매일 매일 주신다. 우리가 매일 필요한 양식이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염려할 것 없다. 주께서 공급하신다.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신다.
말씀으로 내가 살지만 동시에 이 말씀으로 악한 세상에서 이길 수 있다. 원수와의
투쟁이 없을 때는 말씀 칼의 능력을 알지 못하였으나 이제 말씀으로 악을 물리치자 그 능력을 알게 되다. 이전에
감추었던 것이 이제 나타나 알게 되다. 주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2)흰돌을 주겠다 하신다. 흰돌은 당시 법정에서 무죄자에게 주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저런 비판과 정죄를 많이 당한다. 세상 사람과 다르기에 소외시키고 잘못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께서 흰돌을 주시는 것은 주께서 우리 편에 계시며 우리를 죄 없다고 하신다.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이는 바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신
주 예수께서 죄 없다고 하시면 우리가 세상의 말에 좌우될 것이 아니다.
2)새 이름을 주시는데 그 이름은 흰 돌 위에 새겨 주신다. 지워지지 않을 이름이다.
이름은 신분과 권세다. 누구인지를 알게 하고 그의 이름을 쓰면 보증을 한다.
돈을 찾기도 하는 권위를 가진다. 새 이름이다. 주와 함께 연결된 새이름이다. 주의 사람, 주의 신부임을
바로 알 수 있는 새 이름이다. 시몬을 베드로라 이름하셨지만 그 보다 더 귀한 하나님 나라 상속과 소유권,
주와 함께 온 세상을 다스리는 영원한 권세를 가진 이름주신다.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나 주께서 주의 백성을 풍성하게 하고 악을 이겨내게 하고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는 약속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하신다. 주의 말씀을 들을 때
복이다.
이 교회가 말씀에 든든히 서고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대로 행하고 따라가는 교회, 주님과 결혼한 주님의
순결한 신부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