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October 24, 2022

하나님의 거처 God’s Dwelling Place

하나님의 거처 God’s Dwelling Place (10/22/2022)
하나님은 어디에 사시나? 사람들은 신이 복과 저주를 주는 것으로 알기에 많은 신을 창조하여 모시고 복을 받고자 그를 위해 집도 만든다. 희랍은 파르테논, 로마는 판테온 (만신전)에서 섬기고 복 받기를 원하였다. 아테네 사람들은 행여 어느 신이 빠질까 하여 이름을 알지 못하는 신에게도 제단을 만들었다. 한국은 이전에 집의 각 곳에 다른 신이 있다고 믿고 연초에는 농악대가 집집을 방문하고 지신밟기로 그 신들을 위로하고 진정시키며 악귀를 몰아내는 풍습이 있었다. 인간은 스스로 약한 것을 인정하여 자기보다 강한 신의 도움을 청하는 본성으로 신을 가까이 모시고 섬기고자 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산으로 알려진 호렙에서 양을 치던 가운데 가시덤불 불꽃에서 자기에게 나타난 하나님을 만났다. 그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으로 스스로 있는 자 (여호와)라 하였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으로 신음하는 자기 백성을 구출하고자 모세를 보내고 그 백성이 이 산에서 예배하며 만나자 하신다. 그들이 여기 이른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백성이 살 길을 말씀하고 돌판에 새겨 주셨다. 그의 말씀 곧 언약은 하나님 자신으로 인정되기에 모세는 언약이 새겨진 돌판을 궤에 넣어 메고 행진하였다. 산에서 만난 하나님이 말씀으로 그들과 같이 하고 일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은 한곳에 국한되지 않고 어디에나 계신다. 모세는 호렙산, 야곱은 벧엘과 브니엘, 아브라함은 모리아산, 다윗은 아라우나 타작마당을 하나님을 만난 그의 처소로 알았듯이 하나님은 어디에서나 언제나 사람을 만나고 활동하신다.
이스라엘 건국 후 다윗 왕은 하나님의 처소로 인정되는 언약궤를 왕도에 옮기고 그 아들 솔로몬은 하나님의 집 성전을 건축하고 언약궤를 모셨다. 솔로몬은 성전 봉헌식에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는데 그가 지은 성전이 어떻게 그를 모실 수 있을까? 단지 그 이름을 두기 위한 성전이라 고백한다.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한 분이라 어느 한 곳에 제한될 수 없지만 성전은 그의 언약 말씀과 그의 이름을 위한 집으로 하나님의 이름과 말씀이 있는 그의 거처요 사람은 여기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고정된 집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살며 만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말씀하시고 그의 자손과 함께 한다는 약속을 지키셨다. 야곱이 부모를 떠나 외삼촌 집으로 갈 때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하셨다. 요셉이 팔려 가 애굽 바로왕의 친위대장의 종이 되었지만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형통하게 하고 그 집에 복을 내리시고 그가 감옥에 갇힌 때도 그와 함께 하였다. 여기 함께 한다는 말은 거처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국 임마누엘 예수로 오시어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 집은 집 자체보다 누가 사는가가 중요하다. 통나무 집이라도 링컨이 살던 곳이 유명하다. 우리가 약한 존재라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처하시면 우리는 그의 능력으로 모든 문제와 고통을 이기고 자유를 누리며 선포한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거처하시고자 우리의 문을 두드리신다. 그 앞에 내 마음을 열고 그를 모셔드리어 나를 그의 거처로 만들 수 있을까!







Monday, October 17, 2022

나의 사는 거처 My Dwelling Place

나의 사는 거처 My Dwelling Place
생명은 삶의 거처가 필요하다. 누구나 안전하고 편안한 곳을 찾는다. 우리 집 처마 밑 나무에는 비둘기와 라빈이 보금자리를 만들고 새끼를 기른다. 연어도 바다를 마음껏 다니다가 산란기에는 조용하고 안전한 강을 따라 올라온다. 우린 엄마 태와 품속에 살 때가 참으로 좋았지만 세상으로 나가 스스로 살아야 할 때가 온다. 전쟁과 기근, 태풍으로 삶의 바탕이 무너지고 살 곳을 찾아 떠나기에 도시마다 국경마다 붐비게 된다. 아니면 길거리 다리 밑이나 건물 곁을 거처로 삼기도 한다. 정부나 교회, 자선기관에서 거처를 제공하나 일시적이다. 어디가 참으로 살 곳인가?
스스로 일을 하고 월세나 전세를 내며 살 거처를 마련하다가 집을 마련하고 입주할 때 거처가 안정되었다고 얼마나 기뻐하나? 나는 지금 사는 거처에 근 30년 살고 있으면서 집에 들어올 때마다 주께서 주신 보금자리라 감사를 드린다. 학군이 좋고 편리한 곳으로 옮기고 은퇴를 하면 따뜻한 남쪽으로 옮기든지 스노우 버드로 추운 겨울을 남쪽에 가서 지나는 자가 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어 여기 안주하고 있다. 과거 다달이 세를 내고 살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 얼마나 안정되고 편안한지! 선교지나 외지에서 일년 이년 살다가 돌아와도 나의 거처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정을 준다. 
세 아이들이 어린 때 우린 가족 여행을 자주 하며 친구들을 방문하고 명소들을 찾았다. 호텔에 들어갈 형편도 아니지만 천막을 선호하였다. 저녁 도착하는 곳에서 천막을 치고 음식을 만들어 즐기고 천막에서 피곤을 풀며 가족이 단 잠을 자는 것이 기쁨이요 행복이었다. 때로는 밤에 폭풍으로 천막은 무너지고 물로 덮일 때도 있었지만 이웃에 트레일러를 가진 인심 좋은 밴 주인이 자리를 나누어 주는 사랑도 받았다. 천막의 삶에는 소망과 믿음, 기쁨과 사랑의 협력이 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노예지만 안정된 삶을 살다가 탈출하여 자유민으로 하나님 약속의 땅으로 가는 40년 동안 천막에 살았다. 천막을 걷고 치는 일이 계속되며 불평과 원망도 있었지만 그래도 앞을 향한 소망과 믿음이 그들을 붙들었다. 천막이든 돌집이든 어떠한 형태라도 일시적이다. 낡아지고 무너지는 날이 온다.
우리 삶이 그러하다. 생명이란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할 때 가능하다. 영혼이 우리 몸을 집으로 삼을 때 생명을 누리지만 몸이 쓰러지거나 영혼이 떠나면 죽음이다. 죽음 후에도 삶이 연속된다는 생각으로 이집트의 파라오는 자기를 위하여 피라밋을 수십년간 건설하고 삶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종들과 함께 부장한다. 무덤에 묻어도 다시 일어날 날을 기대하며 그때까지 편안히 쉬라 Rest in Peace 한다. 비바람이 불어도 안전한 거처일 수 있다.
천막이나 토굴, 월세나 궁궐에 살아도 기쁨과 행복, 자유와 평안을 가짐이 삶의 복이 아닐까? 그런 거처가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은 세상에서 얻는 것과는 다르다. 속에서 올라오는 하늘의 평안과 기쁨이다. 예수께서는 그를 믿는 자를 위하여 거처를 준비하러 가서 준비하면 그들을 영접하여 함께 살 것이라 하신다. 기쁨과 평안, 자유와 찬양의 거처다. 그 날을 기다리며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거처로 삼아 오늘 기쁨을 누리는 자가 참으로 복된 자가 아닐까!




Sunday, October 16, 2022

아침마다 새롭게 Fresh New Every Morning

애가 3:19-24 아침마다 새롭게 Fresh New Every Morning (은목교회 10/16/2022)
좋은 시절 매일 새로운 풍경과 색깔을 만난다. 어제와 다른 오늘 다양한 색채는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하고 그걸 따라서 걷고 싶다. 예쁜 나무는 항상 이런 것은 아니다. 고통의 겨울 차가운 바람과 눈비로 어려움을 당할 때가 많고 가뭄으로 마실 물이 없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이런 아름다운 때가 있기에 기다리며 이겨낸다. 
낙담 형편 
예레미아는 슬픔의 노래 애가에서 탄식하고 아파한다. 나라는 바벨론에 넘어가 성전은 파괴되고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 우리가 625로 경험하고 오늘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예레미야는 안정되고 평화의 삶을 위하여 바벨론을 받아드리라고 하였으나 반역자로 몰리어 매를 맞고 조소 당하고 감옥에 갇히어야 하였다. 개인과 나라가 당하는 일은 정말 쑥과 같이 담즘과 같이 쓴 고통이다. 그 고통을 겪으면서 그는 낙심이 되고 절망을 가슴에 안는다. 
우리는 어떠한가? 식민지의 눌림과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나라 전체가 가난에 허덕일 때가 얼마나 힘들었나? 주의 부르심을 받아 주의 종이 되고 잘 살겠다고 미국에 와서 목회하며 좋은 일도 많았지만 고통스런 일,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친구가 원수로 변하는 일을 얼마나 많이 보았나? 그러다 밀려나듯 은퇴를 하고 나니 친구도 많지 않고 경제도 넉넉하지 못하고 출석할 교회마저 적당하지 않더니 이제는 건강도 약화되어 많은 면에 제한이 되고 있으니 답답하고 외로운 삶을 살면서 부르짖을 때가 많아 산다는 것 자체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여기 생각의 전환을 한다. 낙심이 되는데서 돌아서기 위함이다. 우리 마음과 생각이 참 중요하다. 

생각의 전환: 이것을 내 마음에 담아
예레미야는 고통 얽매여 있을 수가 없었다. 이것을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다고 한다. 생각 마음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 생각의 전환이다. 어려움 중에 이것을 마음에 떠올린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다. 주의 강하고 크신 팔, 그가 자기 백성을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생각한다. 이집트에서 종생활하고 있을 때 강한 왕을 이기고 자기 백성을 해방시킨 일, 홍해를 건너고 광야 험한 길을 지나며 만나와 매추라기를 공급하고 아말렉 원수를 물리치고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을 본다. 그의 인자하심과 긍휼이 참으로 크기에 그 백성이 진멸되지 아니하였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지만 없어지지 않고 70년 후에는 고토로 돌아갈 것이다. 나라가 로마에 망하고 없어진 것 같으나 1900년이 지나면서 나라가 회복되다. 그간 고난은 많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않고 계신다.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지킨다. 유월절을 지킬 때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것을 믿기에 그들은 강한 민족으로 일어난다. 일년에 한번이 아니라 아침마다 새롭게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하시는 일을 마음에 생각하면 힘이 일어나지 않겠나!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롭다.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은 아침마다 새롭게 다가온다. 매일 새롭게 하나님이 일하신다. 자기 백성을 위하신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시련과 환난이 많고 제한이 많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가 크고 함께 하심을 마음에 두고 생각한다. 주의 인자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우리가 그것을 알고 마음을 열고 받아드리는 것이다. 아침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펴며 깊은 숨을 호흡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인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걸음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한 일인가 아미면 하나님의 은혜인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함을 기억하면 그의 성실하심을 인정하게 된다. 하나님은 한결 같으시다. 그러면 마음이 기쁘고 감사하지 않겠나?
주께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지시고 영생을 주셨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가 죄인인 때 죄 없으신 주께서 자기 생명을 대신 주신다며 만찬 중 떡을 들고는 축사하고 이는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잔을 주시며 이는 너희 죄를 사하려고 흘리는 나의 피다. 너희가 이를 행할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 하신다. 우리가 행하는 성찬식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아들의 몸과 피를 주시고 우리에게 참생명을 얻게 하신 것을 기억한다. 주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 일년에 몇번 행하는 성찬식이 아니라 매일 아침 기억한다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까? 감사하며 찬양하지 않겠나? 나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주시기 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아침마다 생각한다면 그날이 얼마나 복될까?
주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자기 말씀 성경으로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신다. 아침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받아드리며 주께서 오늘도 살아 활동하며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기억한다면 얼마나 힘이 있을까? 10월은 종교개혁주일이 있는 달이다
종교개혁의 모토가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다. 그러면서 개혁은 한 차례가 아니라 매일 새롭게 개혁이 되어야 한다 Reformata semper reformanda reformed and reforming 우리 스스로 새롭게 될 수가 없다. 말씀이 들어와 역사하여 우리 삶을 새롭게 변화시킨다. 오늘 아침도 주의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 나를 새롭게 하신다. 그것이 나의 힘이요 소망이 된다. 성경을 읽으면서 오늘 내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인자와 긍휼이라는 것이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가? 내게는 4P로 나타난다. His presence, provision, protection and prevail이다.
그는 항상 우리와 같이 하신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를 버리지 않고 항상 같이 한다. 오늘도 내 혼자가 아니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을 확인한다.
주의  Provision주께서 필요를 공급하여 주신다. 나의 삶을 위하여 공기와 햇빛을 주시고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을 주신다. 나의 건강과 생명을 오늘도 주시어 살게 하신다. 내게 필요한 것을 아침마다 새롭게 공급하여 주시는 여호와 이레를 믿는다.
주의 Protection보호하심이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갈 때 보호하셨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20년 일을 하다가 독립하여 떠날 때에도 지켜 주셨다. 악에서 건지시지만 위험과 환난에서 지키고 도우신다. 어제도 지켜 주시고 오늘도 지켜 주신다. 코비드가 성하여도 지켜주시고 코비드에 감염 되었다 하여도 주께서 또한 지키시는 것을 믿는다. 
주의 Prevail 곧 승리를 주신다. 고통을 겪고 환난을 당하지만 진멸되지 않았다. 결국 승리하여 주의 이름을 나타낸다. 아침마다 여호와 닛시로 오늘도 승리하는 하루라고 외칠 것이다.
주께서 신실하시어 아침마다 새롭게 인자와 긍휼을 베푸시는데 나는 어떻게 응할까?  
1) 나도 아침마다 주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며 주를 높여 드릴 것이다. 주의 하시는 일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라는 것을 생각하며 그를 찬양하며 감사한다. 
2)  기회 있는대로 사람들에게 주의 은혜와 사랑을 말한다. 주께서는 온 천하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 하셨다. 오늘 우리가 있는 곳에서 주의 이름과 그의 사랑을 나누고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되기를 바란다.
3)  예레미야는 주의 신실하신 인자와 긍휼을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주를 바라본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한다. 우리가 가진 것이 얼마나 되나?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갈 것이 얼마나 되나? 아무 것도 없다. 주께서 우리의 기업이시라 주의 나라를 상속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일이다. 내게는 큰 기업 하늘 나라 전체가 나의 기업인 것을 아침마다 새롭게 확인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하루를 시작한다면 우리 삶이 어떠할까?
몸이 아프고 어려운 일이 많다 하여도 그것에 눌리지 않고 우리 마음을 열어 하나님의 성품과 그가 하신 일을 생각하며 아침마다 감사와 찬양을 하고 주님을 자랑한다고 하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힘이 넘치겠나? 주의 은총 가운데 날마다 힘찬 삶이 되기를 바란다. 





Wednesday, October 12, 2022

시 험 Test/Temptation

시 험 Test/Temptation
어느 교단에서나 목사가 되려면 소정의 교육과 훈련을 받고 시험을 거치게 된다. 시험에 합격하면 안수 받고 목사가 될 수 있다. 시험은 목사가 되는 자격이 갖추어져 있는가를 확인하는 기회이기에 응시자는 모든 자료, 최선, 신경, 주의를 다하여 시험에 응한다. 나는 최근 목사고시 채점위원으로 위탁을 받고 열심히 준비하고 조심스럽게 임하였다. 시험은 어렵고 힘든 것이라 피하고 싶지만 그것은 인생 성장의 한 과정이다.
풍요의 동산에 살던 첫 사람에게 시험이 있다. 모든 나무의 열매는 먹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먹으면 죽는다는 한 가지 생명의 법이다. 뱀이 친근하게 접근하더니 하나님이 정말 모든 나무의 과일을 먹지 말라고 하던가 한다. 아니야 다 먹을 수 있지만 선악과는 먹거나 만지면 죽을 수 있어. 절대 안 죽어! 그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되는거야. 이제 선악과는 먹음직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 보인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 생명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뱀의 말을 따라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시험이다. 자기가 하나님이 된다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뱀의 말은 인간 내면의 소리로 하나님을 배제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고 싶은 육체적 욕망의 표현이다. 결국 그는 하나님과을 떠나 하나님 없이 살고자 하는 욕정을 따름으로 시험에 시험을 거듭하는 삶을 남겼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나면서 많은 시험을 만나다. 고향 친척 부모 집을 떠나 가라. 친숙한 곳을 뒤로 하고 낯선 땅 나그네가 되라는 말씀을 따라 떠나면서 연속적인 고난과 어려움의 시험에 합격과 실패를 반복하였다. 자손을 번성하게 한다고 했으나 25년이 되어도 아이가 나지 않는데도 하나님을 믿어야 할까? 하나님은 100세에 낳은 약속의 아들, 사랑하는 독자를 3일길 모리아산으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누가 그런 하나님을 믿고 따를 수 있을까? 아브라함은 순종하였다. 하나님이 그의 믿음, 충성심, 진실함을 확실히 인정하고 그를 친구라 부르며 약속한 모든 것을 이루고 그를 오늘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게 하였다.
시험에는 예외가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시험을 겪는다. 예수께서 세례 받은 때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렸지만 성령은 바로 그를 광야로 인도하여 사탄에게 시험 받게 하였다. 40일간 금식하자 사탄이 나타나더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왜 굶고 있나? 돌들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할 수 있는 일이다.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의 영광을 보이며 그에게 절하면 그 모든 것을 주겠다 한다. 눈으로 보는 영광을 누리고 싶지 않는 사람이 있겠나? 성전 꼭대기에 세우더니 뛰어내리라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붙잡으리라 한다. 사람들의 인정과 추앙을 받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탄의 말을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작정하고 기록되었으되 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응하며 기도와 성령의 도움으로 승리하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임을 확인하고 사역하였다. 
성도가 세상에 살면서 육신에 이끌리어 많은 시험을 받지만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붙잡고 성령과 기도로 믿음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인정 받는 주의 사람이 될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