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ne 18, 2018

우리는 한 가족 We are One Family


로마서 8:12-17 우리는 한 가족(We are One Family 5/27/18주일)
5월 가정의 달 마지막 주일 가정의 날 교회 내에서의 야외예배 형태, 캐주얼 데이로서 모두 함께 모이게 되어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우리가 한국의 뿌리를 가지고 태어나 한국 문화를 함께 가지고 같은 말 같은 음식을 나누며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실감한다. 이민 초창기에는 한인이 함께 모일 필요가 있어 교회란 이름으로 모이기 시작한 곳이 많다. 여기도 그런 의미가 깊었다. 그러다가 점점 교회의 본 모습을 찾게 되었지만 교회는 한 가족임을 확인 한다. 오늘 본문에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형제들아 한다. 바울은 로마에 가보지 못하였다. 로마에 있는 교인들을 만나지도 못하였다. 로마 교회에는 유대인이 있었지만 대개 로마 사람들이다. 유대인과 로마 사람들이 섞여 있다. 이들을 가르켜 형제라고 한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형제라 부르다. 부활하신 후 무덤을 찾아간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28:10). 이에 대하여 히브리 2:11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시고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리라. 예수께서 우리를 형제라 부르신다. 형제라 함은 한 아버지를 가진 한 가족이라는 말이다.

  어떻게 우리 모든 사람, 배경이 다르고 종족이 다른 사람들이 한 형제, 한 가족이 될 수 있나?
1 우리가 한 근원에서 났다. 곧 창조주 하나님과 아담에게서 나왔다. 아덴의 시인은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17:28) 하였다. 하나님이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고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들어 온 땅에 살게 하시다 (17:26). 이것이 사실이나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이웃을 형제로 인정하지도 않고 살아간다. 하나님과 원수되고 서로 남남으로 살다. 종족 간에 갈등과 대립이 있다. 유대인의 경우 다른 종족은 모두 이방인이라 하여 상대하지를 않다. 유대인의 혈통을 다른 피와 섞은 것을 이유로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이방인과 같이 취급하였다. 예수께서 오신 것은 이런 갈라지고 대립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고 한 형제 한 가족을 만들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고 우리 모두가 형제라 하다.
2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나?
1)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자기 땅에 오시매 자기 백성이 영접 하지 않았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1:12). 예수를 믿음으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이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어떻게 아나? 성령께서 우리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한다. 주의 말씀을 믿지만 성령께서 확인시켜 주신다.
2)하나님 편에서 성령은 양자의 영이라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게 하신다. 예수께서 아들로 태어나다. 그를 믿으면 우리는 그로 인하여 아들로 입양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아들 되기 전에는 하나님이 두려웠다. 하나님을 떠난 죄로 인하여 접근하기 어렵고 형벌이 두려웠다. 사탄과 육신을 따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을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이 되었다. 입양자가 많이 있다. 많은 고아들이 입양된다. 부모가 필요한 고아들을 사랑하여 내 자녀로 입양한다. 건강하고 보기 좋은 아이만 아니라 병들고 아무도 데려가지 않은 아이라도 사랑하여 입양한다.
3)당시 로마에서는 일단 입양하면 그는 내가 나은 자녀와 다를 것이 없는 특권을 가진다. 그는 내 이름을 가지고 나의 것을 상속한다. 사람들에게 그는 내 아들임을 나타낸다. 때로 부모 중에 아이들이 두려워하는 자가 있다. 너무 엄하게 하거나 또는 아이들을 학대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부모라면 아이들을 사랑하고 양육하고 채워주고 보호하며 부모가 가진 모든 것을 누리게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와 다를 것이 없이 그가 누리는 모든 영광을 누린다. 이것이 우리가 받을 상속이요 특권이다. 동시에 부모와 자녀는 친근한 관계를 가진다. 이전에는 관계가 없었는데 입양이 된 후에는 친근한 가족 관계가 되다.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된다. 예수께서 아버지를 아빠 아버지 하고 불렀다 (14:36)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여기 아빠는 아람말이고 아버지는 헬라말이다. 우리말로 아빠라는 말 그대로다. 친근한 관계 말한다. 나이 들어도 친근한 관계의 아버지를 아빠라 부른다. 아버지는 멀리 있거나 우리 형편을 모르시는 분 아니라 항상 가까이 우리를 살피시는 사랑의 아빠가 되신다. 전혀 두려움이 없다. 오래 전 케네디 대통령 시절 그가 백악관 집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어린 아들 존존이 책상 아래로 왔다 갔다 하는 모습 사진이 나왔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사랑 받는 아들이니 아무런 부담이나 두려움 없이 그렇게 할 수가 있었다. 옛 로마 시대 한 황제가 전쟁에 나가 승리하고 개선한다. 환영 인파가 대단하다. 마차가 달려 들어오는데 한 아이가 뛰어 나간다. 경호하던 군인이 창으로 가로 막으며 감히 황제 앞에 무엄한 짓이다고 하자 그가 당신에게는 황제이지만 내게는 아빠요! 사랑하는 자녀는 아빠가 무엇을 하든지 그 앞에 어느 때나 나갈 수 있다. 두려워하는 종의 영이 아니라 자유케 하는 아들의 영을 받았다.
4)자녀는 아버지의 것을 상속한다. 이름과 집 재산을 상속한다. 아버지의 권위 명예 영광 등을 또한 물려 받는다. 하늘 나라의 영생과 평안 기쁨을 가진다. 주의 백성이 가지는 놀라운 축복이다. 성령 안에서 주시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은 주께서 허락하시는 것이다. 주의 나라에서 가지는 축복을 세상에서 미리 맛보는 것이 성령의 보증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나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한 가족이 되었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12절에 우리가 빚진 자라 한다. 빚이란 내가 갚아야 하는 의무다. 내가 줄 것을 주지 못하면 빚이요 내가 받을 이유가 없는데 받는 것도 빚이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원수 되어 살던 우리를 사랑하시어 아들 예수를 보내 주시고 그를 믿는 것으로 인하여 우리를 자녀 삼고 영원한 하늘 나라를 구주 예수님과 함께 상속하는 특권을 받았으니 이는 하나님의 은혜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빚이다. 이 빚은 갚아야 한다. 어떻게 빚을 갚는 삶을 살가?
1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할까?
1)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라 한다. 결혼하기 전과 결혼한 후의 삶이 어떻게 다른가? 결혼 전에는 내 좋은대로 마음대로 살 수가 있었다. 그러나 결혼하면 혼자가 아니다 항상 둘을 같이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며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곧 결혼 전의 자기를 죽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입양이 되었기에 이제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나도 아버지도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이 새로운 삶의 길로 이는 바로 내가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한 그대로다. 생각에까지 새로워지는 것을 발견한다. 바울은 나는 곤고하고 비참한 사람이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지랴? (7:24) 왜 그런 일이 일어나나? 나와 율법이 중심이 되어 있다. 그러나 8장에서 달라진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다. 성령이 다스리는 삶을 살고 있어 승리와 찬송이다. 나만 아니라 우리 가족이 또 교회 가족이 우리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나를 내리고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의 뜻을 따라 성령 안에서 나아갈 때 가족의 기쁨이 있다. 예수께서는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하다. 내가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바를 행함으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다 (8:29).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기도하며 내가 주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도구가 되도록 한다.
2)우리가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한다. 예수께서는 아무리 사역이 분주하여 식사할 겨를이 없을 정도였으나 이른 새벽에 아버지 앞에 앉고 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철야 기도하고 일을 하는 중간에도 때를 얻어 아버지 앞에 나아간다. 주께 기도할 때는 아빠 아버지, 친근한 표현으로 그 앞에 나아간다. 어린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부모가 듣기 좋은 말이 무엇일까? 입을 열어 엄마 아빠하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우리가 하나님 향하여 아빠하고 부른다면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린 자녀임을 인정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다. 아무나 못한다. 성령이 도우셔야 아빠라 할 수 있다.

2 가족 서로간에는 어떻게 할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고 기도할 때 내 혼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형제 자매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한 가족이다. 어떻게 살가?
1)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나를 본다. 함께 하고 함께 일하였다. 천지를 창조할 때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하였다. 우리가 우리 형상 따라 우리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1:26). 서로 의논하고 함께 한다. 누구 하나 소외되는 자가 없다.
2)서로 존중하고 서로 사랑한다. 평화와 사랑의 관계를 가진다. 하나님의 부름 받은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같이 길을 떠나다. 둘 다 번성하자 목자들이 서로 다툰다. 그곳에 가나안 사람 브리스 사람이 같이 살고 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말한다.우리는 한 형제니 목자들로 서로 다투게 말자. 서로 분가하자. 네가 먼저 땅을 택하여 떠나라 나머지를 내가 가지겠다 (13:8) 평화를 위해 이렇게 분가를 제안한 아브라함은 복을 받았다. 롯이 떠난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다. 형제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는 것이 가족으로서 할 일이다. 그러나 가족이 서로 다투면 어떻게 서겠나? 아브라함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이 지금까지 내려 온다.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 사이 갈등과 대립이 내려오다가 결국 에서의 후예가 없어지기까지 하다.

3 세상을 향하여 우리는 어떻게 할까? 세상은 믿지 않은 자들이 다수로 되어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알고 싶어 한다. 세상은 교회와 믿는 자들을 보고 있다. 어떻게 살고 있나? 서로 사랑하며 진실되게 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사람들이 알게되고 이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설령 주를 믿지 않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고 우리와 한 가족이 되어 있지 못한다 해도 그들은 잃은 양과 같다. 이들을 주의 사랑으로 섬긴다. 예수께서 기뻐하신다. 너희가 여기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신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나눌 때 그들이 주께로 오는 길을 열게 된다. 로마 시대 그리스도인 들은 일반 사람과 달리 순결한 삶을 살며 열심히 일을 하고 술과 도박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교회로 몰려 들었다. 전도의 길이 열린다. 평양 부흥도 같은 맥락이다. 1893 청일전쟁이 평양에서 접전하다. 많은 사람과 말이 죽임을 당하고 눈에 묻힌 채로 겨울을 지나다. 봄이 되어 눈이 녹으면서 시체들이 썩어 냄새가 나고 호열자 콜레라가 퍼지기 시작할 때 선교사와 몇 사람 안되는 교인들이 나서서 시체를 치우고 청소하는 일을 하다. 사람들이 감동을 받다.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한국정치에 영향을 미치며1895 1월부터 종교 자유가 주어지자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 들기 시작하다. 교회에 무엇이 있기에 박해를 당하며 믿음을 지키고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사람들을 봉사하나 하며 몰려온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세상은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으로 주의 일에 참여하며 사랑을 나누고 봉사하는 것을 기대한다. 주께서 하시는 일을 보기 원한다. 주께서는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하신다. 영광스런 일이다.

4 본문에 중요한 일이 또 한 가지 있다.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과 함께 공동으로 주의 나라의 영광을 상속하고자 하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한다. 세상이 나를 미워 하였으니 너희도 미워하리라 하신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고난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라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죄를 지어 매를 맞고 고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주를 믿기 때문에 오는 고난과 핍박이 있다. 주를 따르면서 당하는 고난을 우리가 기대하고 참으면 상이 있다.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신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리라 (22:28-30). 십자가 없는 영광이 없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고난 받는 것을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다. 주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면 주께서 영광을 얻게 하신다.
우리는 한 가족이다.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가족이 되어 있다. 성령께서 인정하고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한다. 우리가 이제 멀리 있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와 관계 맺고 우리 모두 가족으로서 함께 하며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주의 영광 나타내어야 한다. 믿음 때문에 오는 환난 고통이 있어도 감사함으로 인내하는 가운데 주의 영광의 나라를 상속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동영상은 www.kpcm.org

영생과 이웃 Eternal Life and Neighbor


누가복음 10:25-29 영생과 이웃 Eternal Life and Neighbor (6/10/18 주일)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면 어느 나라에서 나고 싶은가? 2013Economist 에서 태어나고 싶은 나라 80을 정하였다.  스위스 호주 노르웨이 스웨덴등이 앞서고 미국은 17번 한국은 19, 1988년 조사에는 미국 프랑스가 1,2번 한국은 10번이었다.정하는 기준은 주관적인 삶의 만족도와 객관적인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들 곧 경제, 환경, 건강, 사회 정치, 공공 기관 신뢰 등이었다. 100세 시대에 어떻게 하면 마지막까지 9988건강하게 활동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관심이다. 진시황이 아니라도 불사약을 구하고 영원을 추구한다.
기독교 복음은 바로 이 영생을 위한 것이다. 복음서에 영생을 구하는 자가 나온다. 마태 마가에는 젊은 부자 관원이 예수께 와서 영생 얻는 길을 묻다. 누가에는 율법교사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나이까? 묻는다. 그는 공부를 많이 한 율법 전문가로 공부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예수를 시험하여 그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주께서는 이를 아시고 그에게 반문한다. 율법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율법 전체의 요약이라 말씀하신 그 내용을 이 율법 교사가 대답한다. 제대로 율법을 알고 있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다. 율법이 말씀하는 바를 지키고 행하면 살게 된다.
하나님이 왜 율법을 주셨나? 우리 생명을 위함이다. 4: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다. 18:5 너희는 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29:9 20:11,13,21 9:29). 여기 살리라 하는 말은 원어에 영원히 산다는 말이다. 영원히 사는 것은 죽지 않고 산다는 의미가 있다. 끝 없는 생명의 길이를 말하며 이는 죽을 때 죽지 않고 가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 영원한 그의 생명을 오늘 누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영생은 혼자 가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함께 누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에서 누리는 것을 말한다. 이 생명을 잃고 죽음에 처한 인생이 영생을 추구한다.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왔다. 아담을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다. 곧 하나님의 생명을 불어넣으니 살아 움직이는 생령이 되다.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는 생명체가 된 것이다.  이 생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는 영원하기에 하나님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는 것이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살 때는 아담과 하와가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되었다. 아름다운 생명 풍성한 생명 하나님의 죽지 않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살다. 그러다가 아담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떠나니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이 끊어지게 되었다. 인터넷 와이파이가 주위에 가득하지만 그것이 끊어지면 아무런 혜택을 볼 수가 없는 것 같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니 하나님의 영이 육체와 함께 있을 수 없어 떠나다. 사람은 생명에서 떠나게 되고 죄의 대가인 죽음을 가지게 되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다. 그러자 사람 관계도 깨어지다.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 죄를 짓기 전에는 아담이 하와를 가리켜 내 뼈중의 뼈요 내 살중의 살이라 하더니 이젠 그로 인하여 자기가 죄를 짓게 되었다고 그를 원망하고 자기 책임을 전가한다. 아담 하와를 통하여 난 아들 가인과 아벨은 서로 갈등하다가 가인이 아벨을 죽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사람 관계가 깨어지니 죽고 죽이며 생명을 잃고 있다. 하나님의 생명, 영생에서 멀리 있다.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59:2)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다. 조화와 질서가 모두 깨어지다. 배반과 갈등과 살상이 만연하다. 이런 인간을 하나님께로 회복시켜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도록 하기 위한 길을 주셨다. 그것이 율법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의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 율법을 지키고 행하여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율법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율법 교사가 자신있게 말하다. 그는 이것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자기를 옳게 보이고자 다시 묻는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 입니까? 예수께서 성경을 통하여 이웃이 누구라는 것을 말씀하실 것으로 기대하다. 유대인은 자기들과 다른 사람을 구분하고 친구가 되지 않은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할 때 그 이웃은 한 가족 이웃에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10:18,19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고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 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19:34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 느니라. 그들이 이전에 나그네 생활을 하였기에 나그네를 돌보아 주라고 하신다. 이웃하여 함께 사는 자들을 돌보고 사랑하라. 이런 말씀 하실 것으로 기대하다. 
한 목동이 소를 먹이러 뒷동산에 가서 소를 놓아두고 놀다 보니 소가 인색하기 유명한 최영감 콩밭에 들어가 콩을 먹고 짓밟아 두었다. 큰 일이나 묘안이 떠 올랐다. 그 집으로 뛰어가 할아버지 소가 우리 콩밭에 들어와 콩을 먹고 짓밟았어요. 어이, 소가 콩 좀 뜯어 먹는다고 이웃간에 뭐 그리 대단한가? 서로 이해해야지. 뜯어먹으며 똥과 오줌을 쌋으면 거름으로 갚았겠구나. 정말 그래요 그런데 제가 말씀 잘못드렸어요 할아버지 소가 우리 밭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우리 소가 할아버지 밭에 들어갔어요 이해하시죠 이웃간인데.
이웃이니 서로 이해하고 받아주고 살라고 하실 것을 기대하다. 그러나 주님은 직접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한 이야기를 하신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다. 이 길은 17마일 3300 피트 내리막 길로 강도들이 출몰해 많은 사람을 해치기에 강도의 길이라 불린다. 피해를 입은 자는 옷을 빼앗기고 벗은 몸으로 있기에 그가 누구인지 종족 신분을 알 길이 없다. 가진 모든 것을 강탈 당하고 거의 죽게 된 것을 길가에 버리고 갔다. 그는 스스로 일어나 살 길이 없다. 누군가가 그를 도와야 한다. 그 길로 사람이 지나간다. 한 제사장이 내려 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간다.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지나간다. 이들에게 이유가 있을 것이다. 피를 흘리는 사람, 죽은 사람에게 접촉하면 부정해질 것이라 접촉을 피할 수 있다. 성전에서 섬기다가 피곤하게 가는데 그 사람에게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고 할 것이다. 죽어 가는 사람은 제사장 레위인, 종교 제도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얻지 못한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자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가서 돌보아 주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같은 이스라엘의 핏줄기를 가지고 있으나 아수르 사람이 정복하여 외국인을 이주시키자 그들과 결혼을 하게 되었기에 유대인은 그들을 부정한 혼혈민이라 하여 외면하고 상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강도만난 자를 보자 불쌍한 마음이 생기고 이로서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 후에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자비를 베푼 자다.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 예수께서 제사장 레위인을 정죄하거나 사마리아 사람을 칭찬하지 않고 율법 교사에게 판단을 맡기며 그렇게 하라 하신다. 그것이 생명의 길이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은 인생 여정이다. 누구나 그 길을 지나간다. 그곳에 강도가 출몰하여 생명과 가진 것을 탈취한다. 죽음이 있다. 두려움 불안이 있다. 율법교사는 예수를 시험하여 그의 잘못된 것을 들어내고 자기를 옳게 보이고 인정 받고 싶다. 자기가 하나님을 잘 믿으니 그와 좋은 관계가 있고 또 이웃을 사랑하기에 그는 영생 가진 것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라다. 그런데 그는 주님의 이야기에서 자기가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길가에 버림을 받은 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누가 도와 주면 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기를 기다린다. 도움은 세상에서 존중 받는 제사장이나 레위인, 종교 제도를 통하여 오지 않는다. 율법교사는 사마리아인이라는 말도 하고 싶지 않아 자비를 베푼 자라 한다. 멸시 받고 버림 받는 사마리아인이 죽어 가는 자를 도와 주었다. 강포와 죽음이 있는 곳에 사마리아인의 불쌍히 여기는 사랑과 섬김이 생명을 일으킨다. 여기 삶이 있다. 제도가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도에 시달리고 억압을 받는다. 율법은 생명을 주기 위해 주어진 것이지만 그것을 다 지키지 못하기에 죄인이라는 두려움과 불안에 빠진다. 강도 만난 자는 지나가는 사마리아 사람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한 것이 없다. 그가 도움을 받고 생명을 얻은 것은 순전히 은혜요 선물이다. 하나님의 생명과 영생이 그렇게 주어진다. 하나님이 예수를 통하여 주시는 선물이다.
여기 강도만난 자는 인생길을 걸어가는 모든 사람이다. 과부와 고아 나그네, 가난하고 병든 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어떤 면에 눌리고 뺏기고 죽임을 당한다.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국면에 있다. 지금까지 내가 다 한다고 하던 자가 얼마나 비참한 형편에 있는가를 알게 될 때 도움을 필요로 하고 그 때 이웃을 깨닫게 된다. 이런 비참한 형편에 있는 우리를 구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이웃으로 오시다. 예수께서는 죄악에 눌리고 세상에 시달리는 우리를 위하여 오시었다. 자기 피와 생명을 부어주시고 우리를 싸매고 구하여 주신다. 우리가 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직 우리가 상처 투성이 죽음에 직면해 있는 사실을 알고 오신 것이다.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는 99마리 양보다 길잃고 방황하는 한 마리 양을 찾아오시다. 주님께서 만나 사역하신 대상이 모두 잃은 양과 같은 자들이다 이들을 찾아 구원과 생명을 주시다. 그는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시고 그의 피를 흘려 우리를 살려주시다. 그의 피를 받는 자는 생명을 얻는다. 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그의 도움과 구원을 받아드리는 자는 영생을 가진다. 은혜요 사랑이다. 주께서 회복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새롭게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생명 영생을 가지게 하신다. 영생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어지지만 영생을 누림은 하나님 관계만 아니다. 사람 관계에도 일어난다. 서로 돕고 사랑하여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를 이루게 한다.
2005년에 창끝 End of the spear라는 영화가 나왔다. 실제 이야기에 근거하다. 1956년 미국 선교사 5명이 에콰돌 밀림 속에 사는 사나운 와우다니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다. Nate Saint가 비행기 조종을 하며 비행기에서 상자로 먹을 것과 물품을 내려 주다가 그들과 얼굴 얼굴을 대하며 주의 사랑을 나누고자 내리다. 그들이 내리자 창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 들어 이들을 모두 죽였다. 그들은 총을 가지고 있었으나 쏘지 않았다. 가족과 미국은 이를 알고 큰 충격에 빠졌다. Nate 의 누나 Rachel이 에콰돌 다른 곳에서 사역하고 있다가 그 소식을 듣고 와우다니 종족에게 들어가다. 죽임 당한 선교사 가족들이 또한 들어가 그들을 위하여 섬기는 일을 하다. 종족끼리도 서로 죽이는 잔인한 부족이나 이들이 필요한 것은 원수를 원수로 대하지 않고 그들을 품고 섬기는 사랑임을 안 것이다. 결국 그 종족이 사랑에 녹아 주께로 돌아 오다. 당시 5세인 Nate아들 Steve 9살 때부터 고모를 방문하러 매년 가다. 아버지 죽인 민카예를 만나 14살 때 아버지가 죽은 곳 가까이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고 그의 아들이 되다. 1994Rachel이 죽자 스티브가 그곳에 가서 살게 되다. 한 가족이 되고 그들은 창을 끝내고 주의 사람들이 되었다. 콜럼바인 학교 총기 사고가 생기자 영화 창끝을 만들어 세상 폭력을 물리쳐야하겠다고 하다. 5명의 선교사 중 하나인 Jim Elliot은 잃을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하여 간직할 수 없는 것을 주는 것은 바보가 아니다라고 그 일기장에 기록하고 그대로 생활하여 그 부족 전체를 주의 사랑에로 돌아오게 하고 영생을 얻는 놀라운 일을 하게 하다.
영생은 선물로 주어진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구약에서는 율법을 다 지킬 때 주어지는 것으로 알고 실망하였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시어 우리를 구하고자 자신을 내어 주시다. 5:24 누구든지 주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 에서 생명으로 옮겼다 하신다. 영생은 요17:3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친밀한 관계다.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 안에서 그가 주시는 생명, 영생을 얻게 된다. 이제 은혜로 구원 받은 자가 되어 그 생명의 복음을 사랑으로 나누게 된다.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으니 나그네를 대접하고 사랑하라 하신다. 내가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라 하신다.
영생은 삶의 길이보다는 하나님 안에서 가지는 삶의 질이다. 관계에서 일어나는 생명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생명에서 떠나 죽음에 시달린다. 병원에 있는 사람만 도움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인생길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나도 그런 형편에 있다. 누가 나를 도울 수 있을까? 주님만이 나의 도움이요 구주다. 내가 누구를 도울 수 있을까? 어디나 있다. 사랑과 섬김이 있는 곳에 생명과 기쁨이 있다. 주님 안에서 가지는 영생의 축복을 오늘 여기서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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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 Our Father


마태 6:9-13 우리 아버지 Our Father (6/17/18 주일)
아버지 주일, 일년에 특별히 아버지를 생각하고 존경을 표한다. 아버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를 낳아주고 길러준 아버지를 생각하며 감사를 드린다. 아버지를 본받고 아버지를 따라 성인이 되고 오늘을 살게 된 자들이 많다. 그러나 아버지라면 좋은 기억이 없고 오히려 상처와 아픔만 가진 자들도 있다. 아버지와 마주 앉아 대화할 시간도 없고 항상 멀리 있는 것 같고 오히려 아버지께 책망과 야단만 맞아 상처와 아픔을 갖고 있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없는 자도 있다. 니카라과에 갔을 때 한 여인이 6아이를 기르고 있다. 아이들 아빠는 모두 다르고 아이들은 아빠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예수님 당시 로마에서는 아버지 권리가 대단하여 자식을 학대하든지 팔든지 죽이든지 전적으로 아버지 손에 달렸다. 아버지는 무섭기만 하다. 유대인은 하나님을 아주 무섭고 진노하는 의로운 분으로 이해한다. 이런 형편에 예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소개하다. 유대인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않는데 예수께서 아버지로, 나의 아버지, 너의 아버지, 우리 아버지, 아빠 아버지로 소개하다. 놀라운 혁명이다. 땅에 있는 아버지와 함께 하늘 아버지를 대조하여 주기도문을 통하여 우리 아버지라는 제목으로 생각한다.

1 아버지는 누구인가? 관계를 말한다.
남자가 다 아버지가 아니다. 결혼한다고 모두 아버지가 아니다. 자식을 낳아야 아버지가 되고 자식을 낳아도 자식이 그를 아버지라 부를 때에 아버지임을 확인한다. 아버지는 관계를 말한다. 자식을 낳기는 낳았으나 버리고 돌보지 않으면 그는 아버지도 아니고 자식도 없는 것이다. 스페인이 남미를 점령한 때 남자들이 여자를 만나고 지나간 뒤에 아이가 나지만 아버지가 없다. 아버지가 아니다. 이것이 남미의 어떤 문화가 되어 있다. 아이를 낳고 그 아이와 관계를 맺을 때 아버지가 된다. 또 아버지가 되는 다른 길은 내가 낳지 않았지만 아이를 입양함으로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된다. 돌보고 사랑하며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이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일어난다.
사람 생명이 하나님께로 왔다. 세상 모든 사람은 한 하나님 곧 한 아버지로부터 낫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라 하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인정 않고 부르지 않으면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다. 더욱 하나님을 떠나 마음대로 살면서 죄의 종이 되어 있다. 이런 형편에 예수께서 오시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보여주시고 우리가 자녀로 회복되는 길을 알려 주시다. 우리가 육신으로 날 때는 육신의 자녀이지만 성령으로 다시 나면 그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니고데모에게 알려 주시다. 주의 영이 우리를 주의 자녀로 다시 나게 해 주신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자녀다. 또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받았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자녀로 삼으시어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형성된다. 나아가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한다. 양자의 영을 주시어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이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다. 인격적인 관계의 표시다. 나의 아버지, 너의 아버지, 우리 모든 자의 아버지가 되신다. 복음서에 예수께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53, 우리 아버지 21회 너희 아버지 21회 말씀한다. 이 아버지를 예수께서는 또 아바 아버지라 하신다. 아바는 아람말 당시 예수님과 유대인이 사용하던 말로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고 아버지는 헬라말로 유대인 아닌 사람들이 사용하는 아버지라는 말이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온 세계 누구든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의 소생이요 나아가 누구든지 예수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입양이 되어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된 것이다.

2  아버지는 어떤 위치인가?
주기도에서 보여주신 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 오며 나라이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는 아버지의 아버지됨이다.
1)이름이 거룩하다는 것은 다른 이와 구분이 되는 독특한 분이다. 아버지 같은 이름과 그런 분이 없다는 것이다. 나를 낳고 나를 기르고 사랑하는 그는 한 분 독특한 분이다. 세상에 남자가 많지만 아버지는 한 분 뿐임을 인정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가 유일한 내 아버지, 우리 아버지라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이는 우리 기독교 복음에 독특한 것이다. 우리를 자녀 삼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희생하여 우리 죄를 용서하고 주의 자녀 삼아 주시어 우리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다. 다른 어떤 종교에도 없다. 이름 거룩하신 분이다. 홀로 아버지임을 인정 받는다.
2)나라가 임하옵시며, 누구의 나라, 아버지의 나라 그의 다스림 그의 통치다. 아버지라면 자기 집을 자기가 돌보는 것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이 내 집을 관리하는 것을 용인하면 이미 아버지로서 자리를 포기한 것이다. 내 집, 내 자녀는 내가 책임지고 돌본다고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가 인정된다. 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왕이라 하는 마음이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그러하다. 내 삶에서 하나님이 주인이요 그가 나를 다스리는 분이다.
3)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으면 앞날을 향한 계획을 세운다. 가정을 어떻게, 자녀를 어떻게 하겠다는 마음과 뜻을 가진다.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가정과 자녀에게 복이다. 이런 것이 없으면 무책임한 아버지 될 것이다. 하늘 아버지가 그러하다. 그의 자녀를 향한 그의 뜻 계획을 이루어 나가신다. 하나님을 떠나 죄와 죽음에 처한 인류 전체를 구원하는 계획을 가진다. 자기아들 예수를 보내어 십자가를 지고 인류 대신 죽게 하여 온 인류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 되는 그것을 뜻하고 이루어 나가시는 것이다. 가정 일이 누구 생각대로 나가나? 세상 일이 누구 뜻대로 되어가나? 아버지의 뜻대로 되어짐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아버지는 자기 위치, 권위가 인정되고 자기가 그 가정을 책임지고 그 가정을 향한 계획을 이루어 나갈 자라는 것이 확실하면 아버지로서 일을 할 것이다.

3  아버지로서의 책임은
1)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아버지는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안다. 양식이 얼마나 필요하고 의복이 어떠하며 학비가 어떠한지를 알고 채운다. 배가 고파 잠을 자지 못하는 자식이 있다면 아버지가 그대로 잠을 자겠나? 밤에 나가 일을 하든 피를 팔든지 무엇을 해서라도 자녀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할 것이다. 예수님은 공중의 새, 들의 백합을 먹이고 입히시는 하늘 아버지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워 주심을 말씀 한다. 어떤 목사는 교회의 부름을 받을 때 한 번도 사례가 얼마냐 묻지 않았다. 주의 종이기에 주께서 책임질 것이라는 마음인가 하면 또 교인들이 먹고 살면 목사도 먹고 살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사실 굶은 적이 없고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었다고 한다.
2)허물과 죄를 용서한다. 잘못을 저지를 때 책망과 징계를 하지만 징계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바른 사람으로 세우기 위함이다. 징계하지 않으면 그는 내 자식이 아니다. 책망함은 그를 용서하고 받아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아버지의 마음은 넓어 포용하고 용서하고 받아준다. 그것이 집안을 아름답게 사람 살 곳으로 만든다. 자식은 내게서 나왔다. 내가 가르치고 그는 나를 배웠다. 자식의 잘 잘못을 내게 모든 책임이 있다. 어떤 아버지는 자식이 잘못한 때 그를 불러 앉히고 그의 잘못된 것을 설명하고 알아듣게 한다. 그러고 잘못에 징계가 있으니 매를 맞아야 한다. 그런데 아비인 내가 잘못하여 네가 그렇게 한 것이니 내가 벌을 받아야 한다며 자식이 보는데서 자기 종아리를 떼린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한 시간 정도 걸어서 학교에 다니다. 시골길 산을 넘어 간다. 어느 여름 장마 후에 홍수가 지다. 학교 가는 길 물놀이 하다가 물에 빠져 옷을 다 적시다. 학교에 갈 수 없다고 판단, 집으로 돌아가다. 돌아가는 길에 옷이 모두 말랐다 그렇다고 학교에 돌아갈 수도 없어 집 가까운 곳에서 물에 다시 들어가 옷을 물에 젖게 하다. 그리고 집에 가서 물에 빠져 학교에 가지 못하였다고 하다. 아버지께서 듣고 보시고는 그랬구나! 하루 쉬어라 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야단을 치고 매를 드신다. 겁이 나 도망하다 싶이 나와 학교로 돌아가다. 그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야단치고 징계한 마지막이었다. 더 그를 일이 없었다. 큰 교훈이 되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최선으로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고 남에게 베풀며 자녀를 위하여 무엇이나 하는 모습이다. 하늘 아버지가 그러 하시다. 자기 자녀가 잘못할 때 징계하시나 자녀가 돌아오기를 바란다. 돌아오기만 하면 항상 받고 용서하신다. 아버지 재산을 받아 멀리 갔던 아들이 모든 것을 다 잃고 거지 모습으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그 아들이 돌아오자 뛰어 나가 목을 껴안고 반긴다. 이미 그 아들은 고생하며 징계를 많이 받았다. 돌아오는 것이 그의 새로워진 모습이다. 야단칠 것이 없다. 받아주고 잔치를 하며 즐긴다. 아버지 마음이다.
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자녀를 보호하는 아버지 모습이다. 우리 앞에 닥치는 어려운 문제가 많다. 그러나 지금까지 함께 한 아버지의 손이 같이 함을 안다. 아버지는 가족과 자녀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주택을 정할 때 학군을 생각하고 자녀들이 공부할 학교, 만날 친구, 읽을 책등을 미리 살피고 자녀에게 좋은 영향이 미치도록 한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기를 날려 자녀를 보호한다. 아버지가 희생하여 자녀를 구한 실례는 매우 많지만 그 중 하나를 들면 2016 10 11일 새벽 중국 동부해안 도시 Wenzhou에서 6층 주택 건물이 내려 앉으며 세멘트 기둥이 무너지는데 아빠가 그의 세살 난 딸 우 닝시를 몸으로 덮으며 목숨을 잃었다. 그 아이는 살아서 구출되었다. 하나님 아버지가 그 자녀를 지키고 보호하심이 그렇다. 스스로 희생 하여 영원한 죄와 죽음에서 건져 주셨다. 생명의 길을 주시다. 그리고는 지키고 보호한다. 내가 너를 독수리 날개로 보호하고 인도하다.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너희를 그렇게 한다고 하신다. 주께서는 우리 안전을 위하여 악의 세력 마귀를 정복하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지키셨다. 주변에 크고 강한 나라들이 있어 항상 위협이 되다. 그러나 주께서 이스라엘을 지켜 주시는 동안 그들은 태평하였다. 강한 나라라도 감히 침범해 오지 못한다. 강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으면 어떤 악한 세력이 와도 두렵거나 염려할 것이 없다. 오히려 물러가라고 큰 소리 할 수 있다.

4  자녀인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1)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있다고 아버지를 인정하고 높여드리는 것이다. 아버지가 편하게 아버지 일을 할 수 있게 그를 높인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하여 그를 높여 경배하고 예배하는 것이다. 아버지 같은 분이 없다고 그에게 모든 것을 돌린다. 그러면서 그의 말을 듣고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생명과 안녕에 좋은 것을 알고 응하는 것이다.
2)아버지를 닮는 자녀가 된다. 우리가 아버지 사랑을 받은만큼 우리도 형제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나누고 베풀며 서로 용서하고 받아줄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는 삶을 산다. 형제가 용서하고 화목하게 사는 것이 아버지의 기쁨이다.
3)세상 아버지에 실망하고 상처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날 때가 있어도 사랑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면 삶이 치료되고 새로워진다. 에티오피아에 의사 한 분이 방문오다. 그는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것을 교회에서 배우며 하나님을 떠나다. 그 아버지는 아들을 격려 하거나 칭찬하지 않고 언제나 책망하기만 하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라면 싫었다. 하나님 떠나 의사가 되고 수술 클리닉을 7곳에 두고 미국 의사 상위 5%에 들어갈 정도로 많은 돈을 벌다. 그런 중 그의 아들이 집을 나가고 부인이 집을 나가다. 홀로 남다. 삶이 삶이 아니다. 날마다 술을 마신다. 집에 들어올 마음이 나지 않은다. 어느 날 밤중이 넘어 크고 빈 집에 들어오며 더 이상 그 아픔과 공허함을 견딜 수가 없다. 응접실 바닥에 쓰러지며 하나님 계신다면 나를 죽여 주시든지 아니면 바꾸어 달라고 부르짖다. 그런데 누군가 뒤에서 그를 안아 주는 포근한 품을 만나다. 하나님이 그를 만나 주신 것이다. 얼마나 울고 울고 그는 새로운 아버지를 만나다. 마음에 빛이 올라오다.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다. 삶이 달라지다. 환자를 수술하고 사업을 확장하고 돈을 버는 일에 집중 하던 것이 의미가 없어지다. 외국 특히 아프리카에 의사가 없이 죽어가는 수 많은 사람을 보며 의사 없는 곳에 가서 환자를 돌보고 생명 일으키는 일을 하다. 자기 클리닉을 정리하고 PAACS Pan African Academy of Christian Surgeons 일을 한다. 기쁨과 감격이 있다.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와 아버지의 생명과 사랑을 나누는 일을 한다. 부모로 인한 상처 특히 어린 시절 아버지로 인한 마음의 상처와 고통을 모두 씻어내다. 아버지로 인한 고통이 있는 자들은 살아계신 하늘 아버지로 인하여 새로운 삶의 지평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지금도 팔을 벌리고 기다린다. 그에게 내 삶을 맡길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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