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29, 2022

세금 보고 Income Tax Return

세금 보고 Income Tax Return 
어디에 살든지 누구나 세금을 내게 된다. 국민에게는 납세의 의무가 있다. 자기가 열심히 일하여 소득을 얻지만 그 나라, 그 지역에 산다는 것으로 세금을 낸다. 나는 평생 급여를 받으며 처음부터 세금을 공제한 액수를 받았기에 세금 걱정할 것이 없었는데 미국에서는 설령 그런 형편이라도 개개인이 별도로 해마다 세금보고를 하는데 그것을 Tax Return이라는 서식에 기록한다. 일년동안 내가 받은 은혜와 혜택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으로 세금을 국가나 지방에 돌려준다는 의미인 것 같다. 
목사의 재정 사항은 간단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기에 1975년 첫해는 교인 계리사의 도움을 받고 다음부터는 내가 직접 할 수 있었다. 일년 간의 수입과 지출 그리고 공제할 것 등의 자료를 모으고 그것에 따라 서류작성을 하면 때로는 세금을 더 내기도 하고 환불을 받기도 하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 은퇴를 하며 타 지역 전환기 교회에 임시 목회를 하며 복잡해졌다. 교회에서 받는 안식월 급여, 사회보장금, 연금, 임시 목회 사례가 있으니 수입이 더해지고 사는 지역도 추가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종합하여 이전처럼 보고서를 만들어 보냈더니 얼마 후 국세청에서 편지가 왔다. 세금이 부족하다고 두 달 급여에 해당하는 액수를 부과하고 같은 액수의 과태료와 벌금이 첨가된 고지서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몇 사람에게 문의하니 그것은 내어야 한다고 한다. 가까이 지나던 은퇴 목사에게서 계리사를 소개받아 찾아갔다. 그는 침착하게 내 서류와 고지서를 검토하더니 내가 세금을 더 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요구한 세금의 반을 환불 받겠다고 하더니 그 자리에서 국세청에 전화를 한다. 직원에게 설명을 하며 논쟁을 하듯 하더니 결국 계리사가 이기고 얼마 후 환불이 왔다. 그때부터 그 계리사에게 세금보고를 맡기니 그가 나를 대신하여 처리하고 있다. 
나라나 지역은 사실 세금으로 운영된다. 내가 매년 높은 주택재산세를 내고 있지만 그것으로 시의 고등학교와 초등학교, 시청사, 시센터란 이름으로 수영장을 포함한 각종 운동시설과 많은 건물들을 새롭게 건립하고 도시 미화를 잘한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내는 세금이 시민을 편리하게 해주기에 납부 기간이 되면 아까운 돈이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세금을 내게 된다.
나라나 지역은 시민을 위하여 환경을 향상시키지만 그들의 생명과 건강, 평안과 기쁨 등은 어떻게 할 수가 없고 내 스스로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이 관리하고 있기에 매일이 감사하고 주일이면 더욱 감사하며 예배하게 된다. 감사하기에 교회에서 섬기고 헌금하며 또한 세상에 주의 사랑을 나누고 기쁨으로 주님을 전하는 것은 주께 받은 것을 돌려드리는 (Return) 방편이다.
또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삶은 어떻게 계산이 될까를 생각한다. 국세청에 나의 재정 사항을 숨기지 않고 보고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보고하기 전에 나의 생각 말 행동 생활 모든 것을 아신다. 나는 잘 한다고 하지만 계산하면 부족함과 빚진 것뿐이라 벌금은 죽음의 선고다. 그때 나의 대리자 주께서 자기 죽음으로 나의 빚을 갚았다고 탄원하여 나의 빚을 면제하고 생명의 자유를 허락하신다. 계리사는 수수료를 받고 일을 하지만 주님은 오직 나의 믿음을 보시고 은혜로 일을 하시니 다시 감사할 것뿐이다.







Tuesday, March 22, 2022

고난의 아름다움 Beauty of Suffering

 고난의 아름다움 Beauty of Suffering

고난을 원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고난이 없는 사람은 없기에 누구나 고난을 피하고자 한다. 고생을 피하여 꿈을 가지고 미국에 왔지만 삶은 여전히 고난이다. 하나님께 죄가 없는 아들은 있어도 고난 없는 아들은 없다(어거스틴). 고난은 육체만 아니라 정신과 정서, 관계의 모든 면에 미치고 고난과 아픔을 없애고자 학문과 산업이 발달하였다. 예수 믿으면 고난이 없고 모든 것이 잘 되고 복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주께서는 고난 없는 삶을 약속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한다고 하시다. 사실 하나님을 믿고 주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겪었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 인정되던 욥이나 요셉, 다니엘, 사도 바울만 보아도 그렇다. 고난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당하는 고난을 어떻게 대하고 살 것인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선하신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시면 고난에는 그의 좋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고난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고난이나 고통은 어떤 문제가 있다는 신호가 된다. 고통을 버려두면 죽음을 맞을 수도 있기에 일찍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지혜다. 욥이 고난을 당할 때 찾아온 친구들은 그의 죄를 지적한다. 나면서부터 맹인인 자를 보던 예수의 제자들은 그것이 자기 죄인가 부모의 죄인가 묻는다. 죄로 인한 고난이라면 죄를 알아 회개하고 용서 받게 되니 고난은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고난이 아니면 죄를 모르고 죽음으로 나갈 것이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따라 살게 되기에 고난이 유익이라 고백한다.

고난은 도움을 구하는 기회가 된다.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사람이라도 스스로 어쩔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면 약이나 의사, 상담자, 또는 누구를 찾아 도움을 받는다. 나 혼자의 섬이 아니라 도움을 받고 주며 어울려 산다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다. 가장 귀한 것은 고난 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내가 처음 목회할 때 사순절에 금식하며 주를 기억하고 가까이 하는데 아내의 비판적인 말 한마디에 영혼이 깊은 실망과 어둠에 빠지게 되어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부활주일을 맞을 수 없어 토요일 아침 성전에 앉아 도움을 구하는데 부활하신 주께서 강단에 나타나셨다. 순간 모든 어둠 고난이 걷히고 마음에 기쁨과 소망이 솟아올라 넘쳐났다. 어둠이 아니면 얻지못할 경험이다.

고난은 훈련으로 인내와 믿음을 기른다. 성경에 고난 당하는 자는 모두 인내하며 주의 사람으로 더욱 확실하게 훈련된다. 욥은 그가 나를 죽이시더라도 나는 그를 바란다고 한다. 백세에 얻은 외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산으로 가는 아브라함의 고통이 어떠할까? 그러나 그는 시험에 합격하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상속자는 고난으로 훈련된 후에야 된다. 

남을 위한 고난이 있다. 강도 맞아 쓰러져 있는 사람을 돌보아준 사마리아 사람같이 코비드로 쓰러지는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하는 의료인,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전쟁에서 희생하는 군인이 있기에 생명과 평화가 주어진다. 아무런 죄가 없이도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고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니 성도는 그의 고난을 사순절만 아니라 항상 기억하고 자기도 그렇게 살고자 하지 않는가!  









Sunday, March 13, 2022

일광 절약 시간 Daylight Saving Time

일광 절약 시간 Daylight Saving Time
금년도 일광절약시간 소위 서머타임이 3월13일에 시작하여 시계의 한 시간을 앞당겼다가(1 hour Spring forward) 11월6일에 한 시간을 뒤로 돌려(1hour Fall back) 원래의 시간으로 회복한다. 시계 없이 일광을 따라 농사짓는 때가 있지만 오늘 산업사회는 매일 시계로 9-5시 일을 하는 구조에서 햇빛이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의도에서 100년 이상 실시하고 있다.
일광절약시간의 아이디어는 오래되었다. 미국 건국자의 하나요 과학 발명가, 철학자, 정치가로 펜실베니아 대학교를 설립한 벤자민 프랭클린이 1784년 파리 신문 편집자에게 촛불을 아끼기 위하여 일광에 맞추어 기상 시간을 정하도록 제안하였다. 남반부에 있는 뉴질랜드의 곤충학자 Vernon Hudson은 1895년 제출한 논문에서 곤충 채집과 조사를 위하여 10월에 2시간을 앞으로 3월에 두 시간을 뒤로 돌리자 하였고 1905년 영국 건축가 William Willett은 전기 절약을 위하여 4월 매주일 20분씩 앞으로 당기고 9월에 매주 원상으로 복귀하게 제안하였다.  
실시는 캐나다 온타리오 Fort Arthur에서 1908년 7월1일에 한 시간 앞으로 당겨 처음으로 서머타임을 시작하였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1차 대전이 진행 중 에너지 절약을 위하여 1916년 4월30일 한 시간 앞으로 당겼다. 영국은 1908년 의회에서 Willett안을 제안하고 다음 해 법령 초안을 하였으나 농부들의 반대로 좌절하였다가 1916년 독일을 뒤이어 영국 프랑스 등이 실시하다가 전쟁이 끝나며 중단하였다. 미국은 1918년에 시작하고 오늘 세계 10억 인구가 70여 나라에서 시작과 끝은 다르지만 실시하고 있으나 아시아, 아프리카와 적도 지방에서는 원래의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일광절약시간의 유익은 직장인이 퇴근 후 가족 또는 친구들과 함께 밝은 시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즐기고 운동이나 낚시를 하는 여유를 가지고 여행자는 저녁 시간 쇼핑이나 다른 활동을 한다. 밝으면 안전하다는 말대로 아침 저녁 사고가 13% 줄고 강도는 7% 감소하고 또 에너지를 절약한다. 그러나 문제도 있다. 전기절약은 0.3%나 자동차 가스는 더 사용한다. 시간 변경 때는 몸시계가 적응하지 못하여 잠의 부족으로 사고가 나고 우울증이나 심장마비도 일어나고 공장의 생산 감소, 농사의 수확과 우유 채취에 차질이 있지만 그러나 일광 시간 활용의 유익이 더 크다고 본다.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다 (엡5:16) 한다. 때가 악하기에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라고 영어는 말하나 원 의미는 매일의 시간 (크로노스)는 어둠의 악한 세력에 있기에 하나님의 계획된 시간 (카이로스)를 값을 내고 사듯이 회복하라는 것이다. 내 시간에 주어진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 활용하지 못하고 낭비하여 잃어버리는 때가 많다는 것이다.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내 생각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은 어둠이요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기에 때가 낮이라 육신의 정욕을 따르는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고 단정히 행하라고 권한다. 
예수께서는 밤에는 일을 할 수 없다며 “때가 낮이라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하여야 하리라. 내가 세상의 빛이라. 나를 믿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고 빛의 아들이 되리라” 하시며 맹인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려 생명을 회복하신다. 예수를 믿는 자는 밝은 빛 안에서 스스로 생명을 즐기고 생명을 일으키며 빛의 시간을 활용하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Sunday, March 6, 2022

전쟁과 하나님 War and God

전쟁과 하나님 War and God
지난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전쟁으로 수많은 사상자와 건물 파괴에 백만명 이상 피난민이 생기고 큰 손실과 아픔을 겪고 있다. 전쟁을 경험한 우리 세대는 우크라이나가 당하는 어려움을 알기에 전쟁이 속히 평화롭게 끝나기를 기도한다. 이 전쟁은 민주주의의 갈등과 분열이 있는 가운데 푸틴이 러시아 연방을 회복할 의욕으로 이웃 나라를 침공하였지만 또한 그가 나토와 미국을 향하여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캐나다 육군 저널은 기원전 3600년에서 지금까지 전쟁이 없던 시기는 단지 292년으로 14531 전쟁에 36억 4천만이 생명을 잃었다고 하니 고통의 전쟁이 역사를 형성한다고 본다. 왜 이렇게 많은 전쟁이 일어나나? 이념 또는 국경 경제 민족 종교 등이 이유가 되지만 사실은 사람의 내적 문제다. 
한 아이가 아버지께 일차 대전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물으니 독일이 벨기에를 침략하여 시작되었다고 대답하자 옆에 있던 아내가 바른 대답을 해야지 하면서 한 사람을 살인한 것이 이유라고 하니 남편은 화가 난 음성으로 “누가 대답해요? 당신이요, 나요?” 아내는 화를 내며 부엌으로 간다. 이를 본 아들은 “되었어요 이유를 알겠어요”한다. 부부나 개인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국가 간에도 전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성경은 싸움이 속에 있는 정욕에서 온다고 한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이나 두 살배기 어린아이들이 함께 놀다 싸우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한 이기적 욕심이다. 구약은 다툼과 전쟁으로 가득하다.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는 죄로 관계가 깨어지자 그후 개인, 단체, 국가 사이에 갈등과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이런 형편에 하나님은 어디 계시나? 하나님은 많은 희생과 고통이 따르는 갈등과 전쟁을 왜 허용하시나? 하나님은 사람에게 주신 자유를 존중하여 그들이 하는 일을 막지 않으신다. 오히려 거룩하고 의로운 전쟁을 주도하여 죄와 악을 물리치고 의를 세우고자 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아직 그곳에 죄가 차지 않았다며 4대를 기다리게 하다가 그들의 죄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을 때 여호수아의 전쟁으로 그들을 정복하였다. 하나님은 악을 형벌하고 일반인을 보호하여 안전하게 살게 하기 위하여 이 일을 국가 지도자에게 위임하고 수행하게 하신다.
전쟁은 심판의 도구가 된다. 사사기와 구약역사에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기 백성이 죄악에 빠지고 하나님과 원수가 된 때 선지자를 보내어 경고하여도 되지 않으면 침략 받는 전쟁의 고통을 주신다. 그들을 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의 백성으로 돌이키고 훈련하는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예수께서 오신 때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아래 있었다. 많은 사람은 정치적인 해방을 원하였지만 예수께서는 오히려 세금을 내는 충실한 시민이 되라 하신다. 그의 전쟁은 영적이었다. 제어할 수 없는 군대 귀신이 들린 사람을 풀어 해방시키고 중풍병자에게 죄의 용서를 선포하고 그를 건강하게 하신 것은 전쟁에서의 승리이지만 간단한 것이 아니다. 기도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기에 고통이요 마지막은 십자가로 죄를 대속함이다. 교회는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사순절을 지킨다. 죄를 회개하고 기도하되 특히 전쟁의 종식과 고통 당하는 자들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의 능력으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매일을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