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October 22, 2016

Color blind / Core blind (10-22-16)
가을 중반이 되면서 온 산야가 불이 붙은 것처럼 단풍으로 아름답다. 교회 남선교회가 교우들을 안내하여 단풍 여행을 하루 다녀오기도 하였다. 나무 마다 자기 아름다움을 나 보란듯 나타내어 우리 마음을 즐겁게 한다. 모두가 한 가지 색갈 뿐이라면 이렇게 아름다울까? 저마다 자기 색갈이 있고 그것이 잘 나타날 때 더욱 아름다움을 본다. 아름다움은 마음을 기쁘게 한다. 여러 색갈이 있으나 컬러 블라인드가 되어 색갈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이런 아름다움을 어찌 누리겠나! 하나님은 자연 만물만 아니라 사람도 여러 색갈로 주셨다. 피부 색갈만 아니라 인종과 언어, 같은 공동체에서 하는 일도 각각 다르게 주셨다. 인간세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단풍 이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하나님의 눈을 가진 사람도 같이 보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피부 색갈, 일 하는 직종이 어떠하든지, 남여 노소 할 것 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게 보신다. 각 사람의 외모와 상관 없이 그 한 사람의 속사람과 생명(Core)이 천하보다도 더 귀함을 보시고 사랑하신다 (마가8:36). 한 사람이 빠지면 그만큼 전체적 아름다움이 감소되기 때문이다.
컬러 블라인드는 자기가 파악하는 일정한 색갈만 인식하고 받아드리게 되기에 색갈의 전체적 아름다움을 누리지 못한다. 피부색갈만 아니라 성별 다양한 직종 재능 취미 등의 아름다움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기호에 따라 좋아하고 배척하는 일이 일어난다. 동시에 속 사람 한 생명의 귀함도 인식하지 못하는 코어 블라인드로 인하여 많은 사회적 불상사가 일어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함께 하는 인생의 전체적 아름다움을 바로 인식하고 즐기며 내 색갈을 나타내듯이 다른 사람의 색갈과 생명을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드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Tuesday, October 18, 2016

제 눈에 안경



제 눈에 안경
제 눈에 안경   

수요일 저녁 교회에 나가면서 운전대를 잡았다. 비는 내리고 어두운 시간이 되어서인지 눈이 어른거리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안내 글과 길이 뚜렷하지 않다. 갑자기 내 눈에 어떤 이상이 왔나 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조심스레 운전하여 교회에 잘 도착하였다. 자리에 앉아 기도하며 안경을 벗어 옆에 두려는데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 눈을 뜨고 안경을 집으려는데 안경테가 검어 내 것이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떨어뜨린 것인가 생각하고 내 것을 찾으니 없다. 보니 아내의 안경이다. 내가 내 것이라고 쓴 것이 바로 옆에 있던 아내의 안경을 집어 쓴 것이다.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래도 안경이니 그것을 쓰고 예배를 인도하고자 찬송가 몇 장을 말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더욱 글짜는 보이지 않는다. 안경이 없이도 말씀 전하는 것은 이미 준비된 것이니 문제가 없지만 그러나 답답하다. 집이 멀지 않으니 아내에게 자동차 열쇠를 주며 내 안경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하다. 찬송 3장을 부르고 기도할 사람이 기도를 하는데 15분 정도가 걸렸다. 기도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아내가 내 안경을 들고 들어온다. 그것을 받아 쓰고 나니 이제 만물이 새롭게 보인다.

주께서 맹인에게 안수하신 후 무엇이 보이나 물으시니 사람들이 보인다 나무 같은 것이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고 하다. 재차 안수를 하니 그의 눈이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았다 (8:22-25)는 것이 내게 일어났다.  무엇이 보이기는 보이나 확실하지 않다가 내 안경을 쓰니 모두 제대로 보였다. 자기에게 맞는 안경이 따로 있는 것이지 남의 안경으로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안경은 관점이다. 사람마다 관점이 있다. 남의 관점이 내 눈에 맞지 않는다. 또 내 관점을 남에게 강요할 수도 없다. 맞지 않아 융화가 되지 않는다. 사람마다 자기 생각 자기 관점이 있기에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국가와 민족도 그러하다. 나라마다 서로 다르기에 한 나라가 자기 나라의 것을 다른 나라에 강요할 수가 없다. 강요하면 문제가 생긴다.


서로 융화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이다. 주께서 만져 주실 때 맹인은 만물을 밝히 볼 수 있었다. 이는 예수님처럼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나나 너나 이 나라나 저 나라나 누구나 주의 안경으로 볼 수 있다면 서로 분명하게 밝게 보고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그리고 세계가 하나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