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October 18, 2016

제 눈에 안경   

수요일 저녁 교회에 나가면서 운전대를 잡았다. 비는 내리고 어두운 시간이 되어서인지 눈이 어른거리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안내 글과 길이 뚜렷하지 않다. 갑자기 내 눈에 어떤 이상이 왔나 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조심스레 운전하여 교회에 잘 도착하였다. 자리에 앉아 기도하며 안경을 벗어 옆에 두려는데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 눈을 뜨고 안경을 집으려는데 안경테가 검어 내 것이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떨어뜨린 것인가 생각하고 내 것을 찾으니 없다. 보니 아내의 안경이다. 내가 내 것이라고 쓴 것이 바로 옆에 있던 아내의 안경을 집어 쓴 것이다.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래도 안경이니 그것을 쓰고 예배를 인도하고자 찬송가 몇 장을 말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더욱 글짜는 보이지 않는다. 안경이 없이도 말씀 전하는 것은 이미 준비된 것이니 문제가 없지만 그러나 답답하다. 집이 멀지 않으니 아내에게 자동차 열쇠를 주며 내 안경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하다. 찬송 3장을 부르고 기도할 사람이 기도를 하는데 15분 정도가 걸렸다. 기도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아내가 내 안경을 들고 들어온다. 그것을 받아 쓰고 나니 이제 만물이 새롭게 보인다.

주께서 맹인에게 안수하신 후 무엇이 보이나 물으시니 사람들이 보인다 나무 같은 것이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고 하다. 재차 안수를 하니 그의 눈이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았다 (8:22-25)는 것이 내게 일어났다.  무엇이 보이기는 보이나 확실하지 않다가 내 안경을 쓰니 모두 제대로 보였다. 자기에게 맞는 안경이 따로 있는 것이지 남의 안경으로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안경은 관점이다. 사람마다 관점이 있다. 남의 관점이 내 눈에 맞지 않는다. 또 내 관점을 남에게 강요할 수도 없다. 맞지 않아 융화가 되지 않는다. 사람마다 자기 생각 자기 관점이 있기에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국가와 민족도 그러하다. 나라마다 서로 다르기에 한 나라가 자기 나라의 것을 다른 나라에 강요할 수가 없다. 강요하면 문제가 생긴다.


서로 융화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이다. 주께서 만져 주실 때 맹인은 만물을 밝히 볼 수 있었다. 이는 예수님처럼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나나 너나 이 나라나 저 나라나 누구나 주의 안경으로 볼 수 있다면 서로 분명하게 밝게 보고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그리고 세계가 하나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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