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15, 2021

용서와 용납 Forgiveness and Forbearance

 

용서와 용납 Forgiveness and Forbearance 
살면서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 물질로 도움을 받거나 은혜를 입은 적이 있지만 또 상처와 아픔을 겪은 적도 있을 것이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말, 행동 또는 물질로 도움을 주거나 은혜를 베푼 적이 있을 것이고 또 고통이나 해를 끼친 적도 있으리라. 
서로 어떤 반응을 하는가? 은혜의 고마움을 인정하고 인사를 주고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무런 반응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말과 행동에서 불만 또는 배신을 느끼기도 한다. 이것이 인생이라 사람 관계는 기쁨과 감사, 아픔과 비난, 무관심 무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어떻게 하면 삶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 성경은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피차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라 (골3:13) 한다. 용납이란 나와 다름이나 불편, 손해를 참으며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고 용서는 남의 잘못을 대신 짊어지고 풀어주며 그 기록을 지우는 것이다. 
목동 다윗이 참전 중인 형들을 면회하러 갔더니 적장이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고 아군은 두려워 도망하고 있었다. 다윗이 물매로 적장의 이마를 명중하여 죽임으로 아군이 이겼다. 왕 사울은 기뻐하여 다윗을 그와 함께 머물게 하고 어디를 보내든지 승리를 하니 그를 군대 장관으로 삼았다.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 노래하자 사울은 다윗을 용납하지 못하고 죽이려 한다. 도망하는 다윗을 사울이 군사를 이끌고 추격할 때 다윗은 그를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으나 하나님이 택하여 세운 왕을 해칠 수 없다고 그의 옷자락을 베거나 그의 물병과 창을 취하며 그의 생명은 하나님께 맡겼다. “나는 너를 학대하지만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네가 더 의로우며 왕이 될 것이라”고 사울은 고백한다. 사울이 나중 전사하자 다윗이 그를 애곡하고 높여줌은 그를 용납한 것만 아니라 용서한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열두제자는 보통 사람들이다. 입이 빠른 베드로와 자기 중심의 성급한 야고보 요한은 비천한 어부, 로마 세무서원 마태, 보아야 믿겠다는 도마, 돈을 받고 스승을 배신하는 유다 등을 알면서도 주님은 그들을 원하여 택하였다. 주님은 그들을 용납하고 인내하며 성령이 임하면 그들이 능력 얻어 새롭게 될 것을 내다보셨다. 용납에는 소망이 있다. 후에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이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한 것은 십자가에서 처형자들을 용서하시는 주님을 닮은 모습이다. 
용납과 용서는 쉬운 것이 아니기에 주께서 용서하신 것처럼 하라 하신다. 1만 달란트 (1달란트는 6천데나리온) 빚진 자가 주인 앞에 불려오자 “다 갚을테니 참아달라” 한다. 주인은 그의 모든 빚을 용서해 주었다. 그가 용서받고 나가더니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1데나리온 하루 품삯) 빚진 자를 잡아 감옥에 넣으며 당장 빚을 갚으라 한다. 이를 들은 주인이 그를 불러 내가 너를 용서한 것같이 너도 친구를 용서해야 하지 않는가? 하며 그를 감옥에 넣었다. 
아이나 어른이나 누구든지 언제나 실수하고 잘못한다. 얼마나 용서가 필요할까? 일곱 번? 주님은 일곱번씩 일흔번도 용서하라 하신다. 주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시기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를 날마다 삶으로 기도하며 우리는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며 우리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들어 나갈 것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