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2:22-36 부활과 그리스도 Resurrection and Christ (4/30/17 주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 역사에 혁명적인 사건이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일이지만
동시에 인간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다. 사람들이 받아드리기 어렵다. 거짓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의 무덤은 비어 있고 누구도 죽은 그의 시체를 제시하는 자가 지금까지 없다.
부활한 그가 나타난다. 그의 제자들이 문을 닫고 숨어 있는데도 들어와 함께 한다.
우리 처럼 몸과 뼈가 있는데도 그는 장애물에 막히지 않는다. 놀라운 일이다.
무엇보다 그의 마지막을 보고 두려워하고 도망하던 사람들이 변하여 부활을 전하는 전도인이 되다. 그들을 잡아다 말을 하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감옥에 넣기까지 해도 그들은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당당하게 말한다. 놀라운 일이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첫 설교다. 그는 예수의 제자 중에 대표라 할 수 있으나 겁이 많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다. 부활한 주님을 만나고 성령이 임하자 변화를 받다. 그는 대중 앞에서 이 설교를 하다. 청중은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인 큰 군중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며 시작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예수의 행적, 기적과 죽음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본문 설교의 내용은 예수의 삶 전체는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능력으로 인도하신 것으로 그의 사역, 십자가에서 죽으심 그리고 부활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계획한 것을 이루어 나간 것이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무시하며 나사렛 사람이라 하였지만 그의 모든 권능과 기사와 표적 등 놀라운 일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그를 인정하도록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그가 유대인의 고발을 받고 법이 없는 이방인의 손에 넘겨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된 것도 하나님이 미리 정하고 아신대로 된 것이라 한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다른 두
죄수와 함께 처형되었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되었다. 각 가지 반응이
있다. 그를 고발한 유대인은 소란 피우는 반역자를 제거하고 자기들의 전통을 지키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로마의 법관은 죄가 없는 것을 알고도 백성의 소리에 못 이겨 사형 언도를 하였으나 정치란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주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 기대를 하던 사람들은
큰 실망을 하다. 큰 능력을 행하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기까지 한 그가 어찌 죽임을 당하나?
같이 십자가 처형을 받는 죄수는 그를 조롱하듯이 당신이 메시아라면 스스로 십자가에서 내려가고 우리도 구원하라 한다.
그의 능한 기적과 놀라운 일을 보면서 그는 정말 메시아 그리스도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압제하고 있는 로마를 물리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을 기대하던 사람들이 실망하다. 예수께서 죽자 그 기대와 인생의 꿈과 희망이 무너지는 것을
본다. 이제 끝이 났구나! 그도 한 때의 영웅이었구나.
다양한 반응이나 결론은 그에 대한 모든 기대는 끝이 난 것이다.
그런데 예수의 삶은 죽어 무덤에 장사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4절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없던 일이 일어 났다. 사람들이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그가 부활한 것이다. 하나님이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렸다.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어서다.
그를 부활시켜 하나님이 그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한다. 사망에서 그를
살려 온 세상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이다. 그가 죽음으로 끝이 났다면 그도 한 시대를 살던 영웅인가보다.
특별한 힘을 받아 능력을 행하였나보다. 그의 말은 사람을 현혹하던 거짓말이라 할
것이다. 그를 따르는 자에게 헛된 희망을 주었다고 할 것이다. 그도
다른 종교 창설자와 다를 것이 없다 할 것이다. 좋은 것을 가르치신 분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살렸다. 그를 부활시켰다. 죽음이
그를 붙들고 있지 못한다. 부활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세 가지로
본다.
1 그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밝힌다. 그의 부활은 죄가 없는 분임을 입증한다. 그가 사망에 매이지 않은 것은 그에게는 죄가 없다는 말이다.
죽음은 죄의 결과다. 죄를 지은 사람은 죽음에 사로 잡힌다. 아담이 죄를 범한 후 죄의 형벌로 죽음을 당한 후 모든 인간은 죄와 죽음의 종이 되다. 그런데
죽음이 잡지 못하는 사람은 죄가 없는 사람이다. 생명의 주인 하나님이 예수는 죄가 없음을 인정하시기에 죽음이
그를 얽매지 못한다. 그는 우리와 꼭 같은 몸을 가지고 있기에 그도 여러 시험을 받았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대해 광야 시험을 받았지만 넘어가지 않다. 그는 십자가로 끌려 갈 때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입에 불평이나 거짓이 없다.
그는 우리와 꼭 같은 몸을 가진 사람이나 죄는 없으신 분이다(히4:15).
그는 죄가 없는 분이기에 죽음이 그를 붙잡고 있지 못하다. 죽음에서 벗어나다.
그렇다면 죄가 없는 그가 왜 죽어야 하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계획이다.
죽을 일이 없는 그가 죽은 것은 같은 몸을 가지고 죄아래 있는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흠 없는 어린양으로 그가 세상 모든 사람의 죄의 형벌을 대신 받은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시다(사53:4). 죄를 알지도 못한
그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았다 (고후5:21) 그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였다 (벧전2:24).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죄 없으신 그분을 우리 대신 희생하고 우리를 받아 주시기 원하였던 것이다.
만일 그가 부활하지 않았으면 우리 모든 죄를 짊어진다고 하는 것이 말뿐이다. 그가 부활하지 않았으면
그는 자기 죄로 죽은 것이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하지 못한다. 그가 부활하지 않으면 세상 죄,
우리 죄는 그대로 있다. 부활하심으로 그는 죄가 없는 분임이 확인되고 그의 죽음이
우리 모든 죄를 대신한 것이고 그는 부활하였기에 우리 죄를 모두 용서할 수 있음을 안다. 하나님 앞에 흠
없는 어린양을 끌고 와 그 머리에 손을 얹어 자기 죄를 모두 고백하면 제사장이 그 양을 잡아 속죄제로 하나님께 드리고 그 양을 드린 사람의 죄가
사함 받았다고 선언한다. 예수께서 죄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 모든 죄를 처리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예수의 탄생 예고 때 그 이름이 예수라 그는 자기 백성을
모든 죄에서 구원할 자라 (마1:21) 한 것을 이루시다.
그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보여주신 것이다. 세례는 죄를 회개하고 받는
것인데 그가 물 속에 들어가 세례를 받는 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고 우리 죄를 씻어 용서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제 누구든지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의 용서와 의롭다 함을 받는다. 롬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다. 우리가 주의 십자가를 통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그의 부활로 인해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벧전2:24)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아들을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이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21)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는 부활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주가 되시다.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하신다. 우리의 어떤 죄가 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죄의 값이 치러졌기에 고백하기만 하면 용서와 새로운 생명을 가진다. 예수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신 하나님이 이제는 우리 죄를 용서하고 죽음에서 살리신다. 사망의 고통, 고통이란 말은 산모의 진통이다. 생명이 나오는 징조다. 예수의 십자가 고통 통하여 우리 죄가 용서되고 새 생명으로 나오게 됨을 말한다. 주께서 부활하심으로
그는 죄가 없는 분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한 그리스도요 그를 믿는 자에게 죄 용서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확인하게 되다.
2 부활은 그가 하나님이요 주가 되심을 확인한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하나님이 뜻하고 계획하신 대로 된 것이다. 다윗이 선지자로
앞 날 메시아에게 일어날 일을 예언한다.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않으시고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라 하더니 그 말씀대로 하나님이 그를 살리셨다 (31,32).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은 모두 성경대로 되었다. 고전15:3-4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다.
예수는 적어도 세 번이나 그가 죽임 당하고 장사될 것이나 제 3일에 부활하여 일어날
것을 말씀하다. 만일 성경에 말씀한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고 예수님 자신이 한 말씀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그는
우리와 다를 바가 없지만 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니 그는 참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인 것을 밝히신 것이 된다. 천지는 변하여도 그가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의 말씀은
모두 진리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한 말이 사실이다. 그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고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 하자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그를 고발하였다. 그러나 그가
부활함으로 그 말이 참될 뿐 아니라 그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인 것을 증명하다. 예수께서 부활한 것을 확인하자
도마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하고 고백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지다. 성령을 보내주시겠다 말씀 하시고 몇 날이 못되어 성령을 부어주셨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설교를 한다. 주님은 우리 믿는 자를 데리러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지만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그 말씀만 아니라 우리 평상 신앙 생활을
위하여 하신 모든 말씀이 진실이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내가 평안을 준다. 사람이 악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그러지 않겠나?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준다. 내가 항상
너희와 같이 한다. 너의 모든 필요를 채어줄 것이다. 우리를 향한 주의 약속의 말씀은 그대로 믿을 수가 있다. 성경 말씀을 믿으면 힘과 생명을 얻는다.
3 부활은 그의 계속적인 사역과 활동, 그가 주 되심을 의미한다. 부활하셨기에 그는 다시 죽지 않을 뿐 아니라 하늘에 올리어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의 자리에 함께 있다는 말씀이다. 온 세상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신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그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였다고 하는 주는 여호와와 같은 말이다. 모든 세상 만물을 있게 하고 다스리는
분이시다. 그는 모든 왕과 통치자의 왕으로 모든 것을 다스린다. 그는
교회를 힘 있게 일어나게 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시어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도록 하신다.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중보 간구하신다. 그가 피를 흘려 우리를 자기 소유로 삼아주셨기에 눈동자처럼
우리를 지키고 인도한다. 이미 사탄을 정복하였다. 다시 그 악한 자가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하도록 하신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는 나의 깃발
그는 우리 삶을 다스리는 주님으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다. 우리가 상처와 아픔으로 고난 당할 때 손을 내
밀어 치유하고 새롭게 하신다. 그는 우리의 치료, 여호와 라파가 된다.
우리의 허물과 죄로 시달릴 때 정죄하지 않으시고 내가 너를 용서하였다. 우리를 의롭다
하신다. 다시 죄를 지어 시달리지 말라 하신다. 그는 평화,
여호와 살롬으로 우리가 두려움에 시달릴 때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신다. 성난 풍랑을 잔잔하게 하신다. 그는 공급자, 여호와 이레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신다. 외로울 때 친구되시고 어려운 때 도와 주시고 공급하신다. 그는 부활하여 살아 계시기에 우리를 만나 친구되시고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다.
예수께서 죽음으로 끝이 나고 부활하지 못하였다면 그는 주와 그리스도가 되지 못한다. 우리가 부르짖어도 응답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고자 부활하셨다. 그의 모든 말씀은 진리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자신이다. 우리를 향한 그의 약속은 붙잡을 때 복이다.
그는 우리의 주가 되신다. 지금 내 삶을 다스리신다. 우리에게 생명과 평안을 주신다. 그 앞에 나아와 그를 주와 그리스도로 받아드리면 복과 생명을
얻는다. 그를 어떻게 할까? 나의 주 나의 그리스도로 고백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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