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5, 2017

참 생명 영원한 생명 True Life Eternal Life

참 생명 영원한 생명 True Life Eternal Life ( 요한 3:14-18 11/4/17 토요)
니고데모와 주님이 만난데서 주님은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하셨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라면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 니고데모가 이해하지 못하기에 바람을 비유로 말해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 역사를 통해 설명한다. 오늘 말씀: 14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한다. 생명을 누리게 함의 하나님의 의도다.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라 그의 피조물이 풍성한 생명을 누리기 원하신다.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생명을 넣어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시다(창1:28)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시고 모든 것을 주셨다. 그런데 그들이 살고 있는 그곳에 두 가지 대조되는 나무가 있다. 하나는 생명 나무요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다. 생명 나무의 열매는 먹으면 생명을 누리고 살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으면 죽음을 가져오기에 죽음의 나무와 같다. 이제 선택은 아담에게 달렸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시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 하게 하신다. 기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보다는 그가 선택하여 하나님의 말씀 따르는 것이 참 사랑의 관계다.
왜 생명 나무와 죽음의 나무를 같이 두셨나? 대비법이다. 죽음이 없으면 생명의 진가를 모르고 생명이 없다면 죽음이 얼마나 어둡고 무서운 것임을 모른다. 하나님은 창조하면서 대조를 두신다. 온 땅이 어둠이 덮여 있을 때 하나님이 빛을 만드시다. 그러면 어둠은 없어져야 할텐데 여전히 어둠이 있기에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시어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다. 이것도 상관관계다. 어둠이 없으면 빛이 얼마나 좋은 것이며 생명을 주는 것인지 빛의 고마움을 모른다. 빛이 없다면 어두움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둘을 같이 두신다.
아담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생명의 길이 무엇임을 알고도 뱀의 거짓과 유혹에 넘어가다. 그가 하나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누리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살았는데 뱀이 그에게 하나님처럼 되는 길을 말한다. 어떻게 그가 하나님이 되는 것을 상상하나? 자기 자유가 뻗어간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기 위하여 죽음의 열매를 먹은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보다 뱀의 말을 따랐다. 그는 하나님이 되는 길을 택하였으나 실상은 죽음을 택한 것이다. 그는 죽었다. 생명이신 하나님과 분리 된 것이 바로 죽음이다. 더 이상 하나님과의 친근한 관계가 아니다. 두려움이 관계를 막다. 이것이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모습이다.
죽음을 택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대책이 있다. 버리지 않으시고 양을 잡아 피를 흘리고 그 가죽으로 아담 하와에게 입혀 동산을 떠나 스스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다. 이제는 하나님을 떠나 육신이 되어 살지만 사실 하나님의 생명을 떠나 죽은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한 아브라함은 타락한 인간이다. 죄성을 그대로 지니고 죽음을 안고 있는 인간을 택하여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생명의 축복을 주시고 온 세상이 생명의 복을 누리도록 하시다. 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애굽에 가서 종생활을 하다가 때가 되어 하나님이 그들을 해방하고 그들은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간다. 광야는 쉬운 곳이 아니다. 갈길을 모르고 물과 먹을 것이 없고 짐승과 전갈이 있고 외적이 침략한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고 채워주시며 생명을 누리게 한다. 하루 이틀이면 약속 땅에 이를 줄을 알았으나 40년이 되도록 그 땅은 보이지 않고 길은 멀고 험하다. 일세대는 거의 다 죽었다. 원망 불평 쏟아지는 것도 이해할만 하다. 계속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니 주의 심판이 임하다. 불뱀이 나타나 사람들을 물기 시작한다. 물린 사람은 누구나 독으로 인하여 죽는다. 이 어려운 시련 가운데 그들은 잘못을 깨닫고 모세 앞에 나와 잘못의 용서를 구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한다.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구리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세우고 누구든지 뱀에 물린 사람이 그 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살 것이라 한다 (민21장). 하나님은 죽음을 겪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생명의 길을 예비하신다. 구리로 된 불뱀을 처다보는 사람은 살게 된다. 진영 백성이 성인 60만 어린이 여자를 합치면 200 만이라고 하는데 이들 진영 크기가 얼마나 될까? 양 사방 길이가 10마일은 될 것이라 한다. 구리 뱀을 가운데 세우면 끝에 있는 사람은 적어도 5마일은 와야 할 것이다. 뱀을 처다보라. 처다보면 살고 처다보지 않으면 그대로 죽는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다리는 바리새인 니고데모에게 주님은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설명하여도 니고데모는 알지 못한다. 바람을 가지고 설명하여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땅의 일을 알지 못하면 하늘 일을 어떻게 알겠나? 주께서 역사적 사건 모세의 불뱀으로 말씀 하신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다. 모세가 만들어 세운 구리뱀을 처다보는 사람은 일단 죽음에서 생명으로 회복된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죽는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운명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죄의 값 형벌로 죽어야 하는 운명이다. 이런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고 생명을 누리기 원하였으나 그것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죽음에 처한 자를 위하여 준비하신 것이 있다 아담을 위하여는 양을, 광야의 백성을 위해선 구리 뱀을 준비하셨다. 죄의 독이 퍼져 죽음에 있는 인류를 위해서는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 어린양 예수를 준비하셨다.

주께서 자신이 들려야 한다는 것을 수 차례 말씀하다. 모세가 뱀에 물린 사람을 위하여 구리 뱀을 높이 달아올렸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다. 구리 뱀은 불뱀 모양으로 생겼으나 불뱀이 아니다. 그 안에 독이 들어 있지 않다. 구리가 불에 녹아 죄의 값을 모두 태우고 구리 뱀으로 만들어 지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이나 우리와는 다르다. 죄가 없으시다. 십자가에 달리심은 모든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시며 죄인의 고통을 겪으신 것이다. 그가 나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죽음으로 나의 살 길을 마련하셨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처다보는 자는 생명을 얻는다. 참 생명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이다. 죽지 않은 생명이라 참생명이다. 내가 곧 길이요 생명이라고 하신 그 생명이다. 예수께서 들리시다. 십자가에 달려 들리셨다.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들리셨다. 그가 죽고 장사되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여 승천하고 영광의 자리에 앉으신 것은 죄와 죽음을 정복한 승리자, 영원히 온 세상을 다스리는 영광의 왕으로 들리심이다. 그를 믿음으로 바라 보는 자는 누구나 하늘의 생명,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다. 더 이상 죽음의 고통을 겪지 않는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라.
요한3:16절은 복음의 핵심이요 성경 전체의 요약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시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다. 우리가 그만큼 귀하기에 아들을 희생하여 우리에게 아들의 생명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기 원한다. 세상에서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생명 참 생명을 주시기 원하신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생명을 택해야 할 것이다. 그 길은 바로 십자가에 들리신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처다보는 일이다. 믿고 바라보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새 생명을 얻는다. 이는 죽고 난 뒤만 아니라 오늘 현재 예수를 믿는 순간 내가 주님과 연결 되어 주님의 생명을 얻음으로 된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믿지 않기에 심판을 받는다. 이미 심판을 받았다. 내가 어떤 생명을 가지고 있나? 확인하며 주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자. 동시에 아직 생명을 얻지 못하고 사는 자를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축복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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