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ly 22, 2018

싸움과 다툼이 어디서 The Root of Quarrels and Fights


야고보 4:1-3 싸움과 다툼이 어디서 source of quarrels and fights (7/15/18 주일)
어떤 초등학생이 아빠께 묻는다. 일차 세계 대전이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 공격하여 시작하였지. 엄마가 옆에서 듣다가 말한다. 아니 바르게 가르쳐야지요? 왕위 계승자가 암살 당한데서 시작하였지. 아빠가 큰 소리로 말한다. 당신께 물은거야 내게 물은거야 왜 참견을 하나? 엄마가 속이 상하여 문을 쾅 닫고 가더니 부엌 그릇이 깨어지듯 소리가 난다. 아들이 아빠 알겠어요 됬어요. 일차대전은 1914 7월에 시작4년 이상34개국이 참전 양쪽 군인 사상자가 3천만, 민간으로 죽은 자가 770만이 되다. 성경에도 이런 일이 있다. 사사기 19장 벤냐민에 속한 기브아 사람들이 그 지역을 방문한 한 레위인의 첩을 성 희롱하여 죽게 하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여 벤냐민을 대하여 그 악행한 자들을 넘기라고 하자 오히려 대항하다. 이로서 전쟁이 일어나고 벤냐민 지파는 도망갔던 600명 이외 모두 죽임을 당하고 지파가 없어지는 위기에 처하였다.
인생이 이런 갈등과 투쟁으로 되어 있다. 7:1 세상에 사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우리 인사는 안녕, 중동 에티오피아의 인사는 샬롬, 항상 안녕과 평화를 원한다. 너무나 싸움에 시달려 평안을 원하는 마음이나 싸움과 전쟁이 줄곧 있다. 지난 3400년 역사에 1천명 이상의 생명을 잃은 전쟁이 없던 해수는 268년이라 한다. 인명 피해가 적은 전쟁은 더 많은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원하지만 지난 70년 이상 전쟁 상태다. 세계 많은 나라에 있는 일이다. 세상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도 일어난다. 본문 4:1 싸움과 다툼을 말한다. 싸움은 무기를 들고 서로 죽이는 것, 다툼은 무기 없이 말로 서로 죽이는 것이다. 말이나 무기나 결국 상대를 제압 정복하여 죽이고 내가 이기고 살겠다는 것이다. 5:15 너희가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 것이다. 상대만 아니라 나도 죽음을 겪는다.

1  이런 전쟁이 어떻게 시작하나?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서부터 나나?
부부간에는 아들 앞에서 엄머가 아빠의 위신과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계속되어 싸우게 되면 결국 같이 살지 못하고 해어지게 된다. 많은 이혼의 일차적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다. 일차대전은 오스트리아 왕위세습자 대공작 프랜시스 페라디난드가 사례예보에서 암살 당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거나 사과가 없이 그 문제가 풀리지 않음으로 역사상 그 때까지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난 전쟁이 되다. 성경의 기브아인의 문제는 내가 잘못했오 하고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해결될 수 있는 일인데 그럴 사람이 없은 것이다.
싸움과 다툼은 현실이나 그 뿌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 몸이 아프다. 대증치료로 나타난 증세를 제거하면 이유가 제거된다고 하여 많은 진통제를 사용하지만 근본 이유는 해결 되지 않는다. 병원에 가면 중요한 것은 근본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 피검사, 소변검사, 엑스 레이를 찍어 속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찾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이유를 알아 내면 치료의 길이 보인다. 우리는 문제의 외부 증상만 보는 경향이지만 외부 증세는 속에 있는 것이 나타나는 것, 속이 중요하다.
성경은 싸움과 다툼은 사람의 지체 곧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한다. 외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속에서 먼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주를 믿는 사람이 되어 예배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읽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 되어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그러면서 연결하여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되어도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육체를 따라 살아가고 있다. 육체를 가지고 육체를 따라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바울은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한다(7:19). 내 속에 나를 다스리고 인도하는 다른 법 곧 악이 있음을 알았다 한다. 그것이 나를 주장하여 자기를 내 세우게 하고 분노하고 질투 시기하고 미워하고 음난하게 한다. 이것들이 나를 넘어뜨리려고 나와 싸우는 원수다. 우리의 원수는 세상 어떤 것이 아니라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라고 한다.  이 마귀는 하나님과 사람을 대적하는 영적 존재다. 죄가 들어 오지 않은 에덴동산에서 활동하며 하와와 아담에게 하나님처럼 된다는 교만한 마음을 넣었다. 자기 중심 이기심이 들어오니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진짜 하나님처럼 될 것 같이 탐스러워 보인다. 원수는 친구처럼 접근하여 듣고 볼때는 그럴사 하고 나를 위하여 주는 것 같으나 그의 말을 듣고 보니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와 분리되고 두려움과 죽음의 길을 걷게 되었다. 부부도 대적하게 되고 아들 대에는 죽이는 일이 일어나다. 마귀가 첫 사람을 넘어뜨리다. 이 일을 계속한다. 1절 내 지체 중에 싸우는 정욕이라, 싸운다는 말은 싸움이 진행 중이라는 의미다. 지금도 마귀는 우리 속 심령에 교만 욕심과 시기를 일으키고 상처와 좌절을 준다. 자기 정욕을 따르게 한다. 자기를 주장하고 남을 받아 주지 못하게 한다. 결과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시기하고 살인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한다. 기도하여도 정욕으로 구하면 받지 못한다. 결국 허탈, 좌절, 죽음에로 가고 하나님과도 원수가 된다고 한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싸움과 다툼이 오게 한다. 우리 속에서 일어난다.
어떤 부자가 죽음의 병상에서 변호사를 불러 유언을 쓴다. 아내가 증인으로 옆에 있다. 먼저 차를 정리한다. 내 롤스로이스는 아들 바비에게 준다. 아내가 옆에서 그것은 조카 죤에게 주면 더 좋아요 그가 운전을 더 잘하고 관리를 잘 할거요. 그래. 캐딜락은 딸 수잔에게 주지. 아내가 그것은 아들 톰에게 주어요. 그가 막내로 아빠를 많이 사랑하지요. 그래. 볼보는 질녀에게 주지. 아내가 그것은 수잔에게 주어야 해요. 부자가 말한다. 여보 그만해요 내가 죽는거요 당신이 죽는거요. 남편이 죽는 자리에서도 아내는 남편에게 이래라 저래라 주장하는 자세를 가진다. 내 주장하는 자세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으면 원인을 알게 된다.
1800년대 말 카나다에 감리교 목사 Ralph Horner. 하루 저녁 설교를 하는데 그의 넥타이가 이상하게 손에 감긴다. 마귀가 설교 못하도록 방해한다고 생각, 타이를 풀어 찢어 바닥에 던지고 발로 짓밟으며 타이는 설교를 방해하는 마귀의 도구라 하다. 그리고 넥타이는 성도의 삶을 얽어매는 도구니 매지말라고 하다. 많은 논쟁을 하다가 결국 교단을 갈라 나가다. Hornerites 또는 no tie 교회라 불리다. 자기 생각의 이런 사소한 것으로 논쟁하고 갈라진다. 자기를 나타내고 주장하는 교만한 마음이다. 교회 분리의 배경에 얼마든지 보는 일이다. 중국의 장군 왕양명이 내가 산의 도적은 소탕하지만 내 속에 있는 도적은 누가 잡아주나? 사람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이런 글을 썼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고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기쁨은 더 줄어들었고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부족하고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소중한 가치는 더 줄어 들었다. 학력은 높아 졌지만 상식은 더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더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늘어 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지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돈을 버는 법은 배웠지만 나누는 법은 잊어버렸고 평균 수명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은 상실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고 우주를 향해 나아가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버렸다. 공기 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한다. 자유는 더 늘었지만 열정은 더 줄어들었고 세계 평화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마음의 평화는 더 줄어들었다.”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나 세계 지도자로서 인간의 문제를 인간 속 마음에서 본 것이다.

2  싸움과 다툼의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나? 싸움과 다툼을 해결하려면 먼저 그 뿌리인 우리 마음을 보고 자기 진단을 먼저 한다. 내 자신의 이기적 자기 중심 생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정욕 시기 미움 분노 음욕 등 내 속에 일어나는 마음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내 주인이 되어 내 중심으로 살며 하나님을 떠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물론 다른 사람도 꼭 같은 실수와 허물이 있지만 그의 허물을 보기 전 나의 이기심, 나의 죄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병이 들면 의사를 찾아간다. 찾아가면 내가 어디 무엇이 문제라는 것을 말한다. 내 심령의 문제를 보면 영의 의사인 주님을 찾아 그에게 나의 부족과 병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하는 것이다. 내 죄의 병을 해결하는 길은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고백하는 것이다.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가 나를 용서하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나를 받아주신다. 기도는 초점과 중심 전환이다.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옮겨 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추구한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든 목적이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친구가 되고 세상을 따라 가는 것을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라 한다(4:4). 마귀는 세상 것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하나님이 인정하고 세운 이스라엘의 초대왕은 사울이다. 그의 용모는 이스라엘에서 따라 갈 자가 없었다. 그가 아말렉과의 싸움에 나갈 때 하나님은 원수 아말렉의 모든 것을 진멸하라 하다. 전쟁 경험도 없는 그가 하나님의 도움으로 완전히 승리한다. 사울이 그곳의 소와 양을 보니 너무 기름지고 탐스럽다. 모든 사람을 다 죽이고 전리품이 없으면 그가 전쟁에 승리했다는 증거가 없을 것이라 왕을 생포하고 소와 양을 끌고 가다. 자기 중심의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초점을 두지 않고 세상 영예와 자기 욕심에 이끌리게 되었다. 그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이다. 사무엘을 통하여 네가 하나님을 버렸기에 하나님이 너를 버렸다는 통첩을 받다. 그는 돌아 서서 고칠 생각을 않고 자기를 정당화하며 하나님과 다투며 비극적 길을 걷다. 하나님과 갈등하고 싸우니 자기에게 충성하는 다윗을 원수로 생각하며 그는 자기를 스스로 무너뜨리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다. 성경은 겸손한 심정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에게 복종하라 한다. 마음의 병, 교만한 이기심을 인식하고 겸손한 심정으로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에게로 향하여 갈 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고 속 사람을 치유해 주신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과 친구가 되었으면 원수인 마귀를 대적할 것이다. 마귀를 대적하라 (4:7). 그를 대적하는 길은 칼과 창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굶고 있나 돌로 떡을 만들어 먹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응답하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떤 마귀의 시험을 대할 때 마귀를 이기신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면 떠나간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항하면 떠난다.
이웃과의 관계도 풀려나간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리라 (16:7)  어느 수도원에 두 수도사가 있었다. A가 오래 동안 수도원에 있으니 지루하고 단조롭다. B에게 우리 좀 다른 것을 해 보자. 세상이 하는 것 해보자. B도 세상을 떠난지 오래 되어 세상에서 무엇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세상이 무엇하지? A가 말한다. 한 가지는 세상은 서로 다툰다. B 어떻게 다투나? A 예를 들면 여기 이 돌을 둘 사이에 놓고 이것 내 것이다 하면 상대가 그것은 자기 것이라 하여 다투게 되지. 그러면서 A가 그 돌을 그들 사이에 놓고 이것은 내것이다 한다. 그러자 B는 생각을 하더니 그래 그것이 네것이면 네가 가져라 한다. 싸움이 되지 않은다. 남을 인정하고 그에게 베풀면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고장난명, 한 손바닥으로 소리 나지 않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싸움과 다툼을 벗어나 화목한 삶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갈등은 우리 삶의 현실이다. 내가 없으면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주님은 나를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내가 살아 있고 나를 내세우고 주장하기에 논쟁과 싸움에 가담하는 나 자신을 본다. 자기를 알고 원수를 알면 전쟁에 이길 수 있다. 내 약함 병든 것을 인식하고 마음과 삶을 고치는 하나님을 향한다. 그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원수 마귀를 대적하고 물리친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받아주고 연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을 나눈다면 싸움과 다툼이 사라지고 주의 평화가 올 것이다. 우리 가운데 싸움과 다툼이 있을 때 그것이 어디서 왔나? 남을 탓하기 전에 내 자신을 보면서 나를 살핌으로 참 평화를 가지게 된다.
동영상 www.kpc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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