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5:23-24 예배와 화해 Worship and Reconciliation (8/5/18 주일)
1979년 Kramer
vs Kramer 라는 영화, 테드와 조아나 크레이머 부부가 이혼하다.
조아나가 떠나며 엘리베이터를 타다. 테드가 제발 가지 말라고 하자 나는 더 이상
당신 사랑하지 않은다 하는데 문이 닫힌다. 법정 싸움이 있고 아들 빌리의 양육권 문제가 있다.
조아나가 테드에게 법정에서 변호사가 너무 심하게 하여 미안하다고 하나 테드는 말 없는 가운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조아나가 빌리의 양육권을 받았으나 테드가 기르는 것이 아이에게 더 좋을 것 같아 테드를 만나다. 조아나가 많이 울어 얼굴 화장이 모두 지어질 정도가 되다. 테드를 만나 내 얼굴이 어떤가?
물으니 굉장하다!고 대답하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둘이 같이 엘리베이터타지 않은다.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다. 화해와 회복이 참으로 어렵다.이것이 우리 삶의 현장이다. 어느 목사가 오늘 본문으로 예배하기 전에 형제와 화목을 먼저하라고 강하게 설교하며 화목하지 못하면 예배에 오지 않은 것이 낫고 하였다.
다음 주일 예배에 빠진 사람이 많았다. 목사가 전화를 하니 한 사람의 말이 그 인간과
화해하기 보다는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 화목이 어려운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 산상
설교에서 우리가 복음을 받고 주를 믿어 복 있는 사람이 되면 일반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 성도 삶의 표준이 있으나 우리가 가진 전통 규례 가치관을 넘어서야 한다. 유대인은 율법이 중요한
가치관이다. 예수께서 그 율법을 해석하신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 라가 바보라고 욕하는 자,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모두 살인과 같은 죄라 하신다. 유대인은 율법의 문자적인
해석을 따르나 예수께서는 마음의 태도가 어떠한가 보신다. 왜 미워하고 마음 상하는 일이 일어나나?
교만이다. 내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 하는데 자기가 기대하는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화가 난다. 이로서 마음이 상하고 관계가 깨어진다. 이것이 먼저 마음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불편이 있으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면 인간관계가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하나님과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 죄라 죄의 문제를 풀기 위하여
죄의 값을 지불하는 제사제도가 생기다. 죄의 댓가는 죽음이기에 나의 죄를 대신하여 깨끗한 양이나 염소를 가지고
와서 죄를 고백하고 그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 대신 죽게 하여 내 죄가 해결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게 된다.
제물에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자원제 감사제 등 여러가지가 있다. 하나님과
관계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손해 보인 것에 대한 배상 등이 있다. 구약은 이런 종교 의식을 지키면 나는 의롭고
청결한 것으로 생각한다. 구약의 이런 예물과 예배가 예수를 통하여 완성되었다. 예수께서 죄 없으신 분이나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를 구원하고 생명 주시기 위하여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리어 우리가 그를 믿고 죄를 고백할
때 용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 예수님 이후에는 짐승을 잡아 드릴 필요가 없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와 생명 희생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 동시에 주님은 유대인 이방인 사이에도
화목을 이루어 서로 연결 하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시라 중간에 막힌 담을 헐고 둘을 하나로 만들었다.
주님은 그가 이룩한 화평과 화목을 우리가 누리기를 원하신다.
너희가 예물을
드리다가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제물을 제단에 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신다. 우리는 예배에 올 때 예물을 가지고 온다. 예수의 피로 구원 받은 사람들로 하나님께 가지고 오는 예물은 더 이상 어떤 짐승이 아니라 최고의 찬양 경배 감사 기도의 제물,
좋은 악기와 건축물과 물질 봉헌, 또 우리 재능, 시간과 몸을 제물로 주께 드린다. 이를 드림으로 주의 은혜에 감사하고 주와의 관계를 확인하게
된다.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다가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하신다. 예배 하는 가운데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난다. 내가 생각하려고
하여 생각 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성령의 역사하심이 임하면 우리의 지난 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나게 한다. 나는 잘못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사람이
나를 원망하거나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생각나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 관계만
아니라 사람관계도 바로 잡아 주시어 우리가 자유롭고 편안한 삶을 살도록 도와 주시는 것이다.
예배 중에 그런
일이 생각나면 예물을 제단에 두고 먼저 가서 그 형제와 화목하라 그리고 돌아와서 예물을 드리고 예배하라 하신다. 생각나지 않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원망들을 만한 것이 생각 나는 것은 나를 도와 주시기 위한 성령님의 역사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그가 나를 대하는 것이 자유롭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이런 일이 생각 나면 예배 곧 종교 의식보다
더 먼저할 일은 가서 그 형제와 화목하라. 그를 찾아 가라는 말씀이다. 전화나 편지 보다는 얼굴과 얼굴을 보는 것이 좋은 일이다. 어떤 변명이나 정당화보다도 세 마디
말이 중요하다.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용서해요 한다.
어떻게 먼저
화목을 할 수 있나?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다.
그는 죄가 없는 분이나 그가 먼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기를 원하였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아들을 대신 희생함으로 우리를 받아주셨다(롬5:10).
그가 먼저 나섰다. 그는 겸손하셨다. 하나님
자리를 내어 놓고 땅에 인간 모습으로 오시어 종으로 섬기는 일을 하시었다. 자기를 비우신 겸손이시다.
그는 우리 죄에 대한 배상을 하시되 우리 대신 고통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시었다. 주께서 자신을 드려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시고(고후5:18)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다. 화목하라 명하신다.
누구와 화목하나? 형제와 화목하라. 형제란
같은 부모를 가진 사람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주의 피로 서로 형제 자매가 된다.
형제가 화목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말하게 된다.
왜 화목해야
하나? 우리 자신을 위하여서다.
화목하지 못하면 마음에 자유와 평화가 없다. 언제나 불안하고 두려움이 있다.
이를 벗어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남태평양 어느
교회에서 성찬식을 행하는데 사람들이 엎드려 성찬을 받고자 기도하며 기다린다. 그런데 한 사람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가 한 참 있다가 들어와 참석한다. 그의 말이 엎드려 기도하다가 옆으로 보니 저쪽 끝에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앉아 있는 것을 보자 마음에 분노와 복수심이 일어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 성찬에 참여할 수가 없는 것을 알고 뒤로 나가 그를 용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마음이 편안 해진 후에 들어왔다고
한다. 예배 중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에서와 야곱
형제 중에 야곱은 야망이 많아 형의 장자권을 속여 빼앗고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다. 형이 화가 나서 동생을 죽일 생각을 하자 도망하여 떠나다.
그가 외삼촌 집에 갔더니 그는 외삼촌에게 결혼부터 품삯에 이르기까지 많이 속았다. 그도 외삼촌을 속였다. 외사촌들이 들고 일어나니 그 집에 있을 수도 없다. 20년만에 고향에 돌아갈 생각을 하나 형이 군사 400명을 이끌고 그를 대항하러 온다는 소식이다.
화해 하지 못하고는 살 길이 없다. 화해하고 싶으나 어렵다. 그는 위기를 맞아 하나님 앞에 엎드리다. 밤 새껏 씨름하다. 형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여 미리 보내며 그는 동생이라는 말을 감히 하지 못하고 종이라 하다. 에서가 선물 행렬을 만나며 물었더니 주인의 종이 보낸 것이라 한다. 야곱이 에서를 보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자기는 종이라 한다. 처분을 바랄 뿐이라는 것이다. 에서가
그를 안아주고 야곱은 형의 은혜에 감사하며 형의 얼굴을 보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고 한다. 화해가 되었다. 그것이 축복받은 사람으로서 살 수 있는 길이다. 아무리 복을 받은 사람이라도 형제가 불화하면 그 복을 누릴 수가 없다.
1919년 한국에는 일본
식민지에서 독립선언을 하고 운동이 일어나다. 전국각지에서 독립만세를 부르자 일본은 탄압하고 제어한다.
특별히 교회가 탄압 대상이 되었다. 경기도 수원군 제암리 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일어나다. 1919년 4월 15일 독립 운동 진압에 너무 폭력을 사용한 것에 대하여 사과하겠다며 그 지역 15세 이상 남자는
모두 교회에 모이라고 하다. 사람들이 모이자 문을 잠그고 총을 사격하며 석유를 붓고 불을 질러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모두 죽였다. 그들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찬송을 부르며 죽어갔다. 끔직한 일이다. 간악한 일본인의 만행에 분노와 원한이 차다. 교회는 재건이 되고 나중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로 기념 간판을 쓰기도 하였다. 1965년 일본
목사들이 그곳을 방문하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본국에서 모금하여 1970년 새로운 교회당을 지었다.
헌당할 때 일본 교회 대표자들이 와서 참석하다. 한국인의 가슴에 있는 분노와 원한은
그대로 남아 있다. 마지막 찬송으로 내주를 가까이 찬송하는데 일본 대표자들의 가슴이 움직이며 눈에 눈물이
흐리기 시작한다. 자기들이 한 일이 아니나 스스로 책임을 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 교인들을 향하여 눈물로
용서를 구한다. 한국 인의 가슴이 열려 같이 눈물을 흘리고 서로 껴안고 용서와 화해를 하게 되었다.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용서해요 세 말을 받아드린 것이다.
왜 화목해야
하나? 주의 명령이다.
먼저 형제와 화목하고 그리고 와서 예물을 드리고 예배하라고 하신다. 예배를 받으시는
분의 명령이다. 주께서는 우리 입의 찬송이나 기도 보다 우리 마음을 원하신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시다.
화목하라는 말씀을 따라 먼저 화목하는 마음을 가지고 형제와 화목해야 한다. 주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시며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소서. 이는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 죄가 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영국과 독일은 서로 경쟁과
함께 전쟁이 많았다. 어떤 전쟁에서 영국 군목이 예배를 인도하며 주기도를 할 수가 없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는 기도를 할 수가 없어 그 부분을 빼고 기도하다.
주님이 가르친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남의 죄를 보면서 나의 부족과 죄도
인정하게 되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게 되고 그 때에야 우리 죄도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하다. 이 기도를 하자
점점 두 관계가 좋아지기 시작하고 휴전이 되고 평화가 오게 되었다고 한다.
Marietta Jaeger가 몬타나에서 캠프를 하는 동안 일곱살 딸을 누가 납치했다. 곧 그 딸이 무사하게 돌아온다
해도 그 납치범을 용서할 수 없는 원한이 차다. 아무리 화를 내어도 딸을 돌아오게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무엇이 딸에게 좋을가? 딸이 안전하도록 기도하면서 그 납치범을 용서하고 주의
은혜를 내려 달라고 하는 것이다. 일년 후에 전화를 받다. 납치범 대빗이다.
놀랐지만 마음을 가다듬다 대빗도 그러하다. 한 시간을 전화로 대화하다.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다. FBI가 그를 잡았는데 그의 짐에 딸의 뼈가 있었다.
딸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다. 정신 착난에 빠진 젊은이로서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다. 마리엣트가 진정하여 평생 징역에 정신치료를 받도록 하고 감옥을 찾아가 사랑을 표현하였는데도 결국 그는
자살하였다. 그를 용서하고 마음에 원한을 푼 것이 그를 자유케 하였다.
예배는 우리가
자유함을 얻는 길이다. 주의 용서와 화목을 확인하고
우리도 다른 사람과 화목하는 기회가 된다. 하나님과의 화목과 형제와의 화목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주의 사랑을 경험하였으면 그 사랑을 이웃과 나누고자 할 것이다. 에티오피아 아가타
교회서 찬양과 기도를 하고 내가 설교를 끝내자 교인 한 사람이 양을 몰고 들어온다. 주의 용서와 사랑을 받았으니
그 양을 잡아 그 사랑을 목사와 성도들과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예배를 통하여 일어난다.
하나님이 큰 은혜와 복을 내리시는 예배는 예배의 웅장함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사람과 사람의 열린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며 용납하는 자세다. 서로 화목하는 관계를 가질 때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이 용서하시고 우리를 더욱 자유로운 주의 사람으로 살게 하신다. 오늘 성찬식,
내가 원수되어 있을 때 나를 사랑하여 자기 몸을 주신 주의 사랑을 경험하며 그 사랑을 이웃에 나눌 수 있게 되리라.
예배하면서 예배한 후에 우리 가운데 있는 상처나 원망할만한 일들이 풀어지고 서로 화목하고 사랑 나누는 귀한 축복이 모두에게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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