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ly 9, 2018

세상의 소금과 빛 The Salt and the Light of the World


마태 5:13-16 세상의 소금과 빛 The Salt and the Light of the World (7/8/18 주일)
찬양대의 매주일 은혜로운 찬양을 감사. 지휘자가 다음 주일 그 다음 찬양곡을 선정할 때 찬양의 주제 내용과 은혜를 많이 기도하며 생각한다. 반주자 또는 위원과 의논도 할 것이다. 목사가 설교할 때에도 같은 일이다. 어떤 성경본문 무슨 주제로 설교 하는가 많이 기도하고 생각한다. 성령께서 보여 주시는 것을 붙잡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구약 시대에는 모세 때부터 안식일마다 읽는 성경 구절을 정해 두었다고 하고 그것이 예수님 시대에도 내려 오다. 4:16예수께서 안식일에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시니 그에게 이사야 성경을 드렸다. 예수께서 사 61:1-2 읽으며 그의 사명을 선언하신 내용은 그 날에 주어진 말씀이라 본다. 이 전통이 기독교에 그대로 들어와 절기와 날에 따라 구약과 신약 시편을 주일마다 고루 고루 읽도록 정해둔 3년치 일과표를 만들어 두고 있어 그것을 이용하는 자들도 많다. 그러나 동시에 회중이 궁금하게 생각하거나 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야를 설교하기도 한다. 어떤 교회는 예배와 설교 위원회가 있어 일년 동안 듣기를 원하는 분야나 주제를 정하기도 한다. 내가 이번에 와서 처음으로 예배 담당자에게 물어보았다. 행여 어느 특별한 부분에 관하여 설교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하였으나 쉽지 않다. 설교는 전적으로 목사에게 달린 것이라 누가 간섭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다 7월 목장 모임을 위한 준비 공부를 하고 난 뒤에 오늘 본문으로 설교하여 달라는 부탁을 처음으로 받고 오늘 설교를 하게 되다.

1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한 사람인가? 우리 삶에 아주 기본적인 질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언제 어떻게 알게 되나? 제일 먼저 엄마 품에 안겨 너는 내 아들 내 딸 하는 말을 들으면서 내가 누구인지 눈을 뜨게 된다. 지어준 이름, 그 이름 부를 때마다 내가 어떤 사람, 내게 주어진 일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게 된다. 친구를 만나고 학교에 가서 스승을 만나면서 나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발전한다. 직장에 가면 직책과 일이 주어지며 나를 더욱 발견하게 된다. 결혼하여 부부가 되면 서로를 대하는 것에 따라 자기가 누군가를 알게 된다. 내가 어제 아내로부터 카드를 받다. (앞의 첫 줄은 생략하고,)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듯, 종형 그 이름 나는 다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 사랑을 그 사랑 말 할 수 없어서 비밀이 되었네. 내 영혼에 새겨진, 내 마음에 새겨진 그 이름 아름다운 보석 아름다운 노래 되었네 그대는 나의 영원한 애인. 그가 나를 대하며 부르는 것에서 내가 나를 본다. 가정과 세상에 살면서 여러 관계 속에서 나의 정체가 정해지고 그에 대한 기대가 있지만 다른 환경에 가면 또 다른 사람 되기도 한다. 우리 자녀들이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학교와 사회에 나가면서 자녀들은 혼동을 가질 때가 많다. 미국에서 났으니 미국 사람이라 하고 영어를 누구보다 잘 하고 지식과 기술 뛰어나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사회에 나가면 이들을 만나는 사람들이 너는 어디서 왔나 물으며 우리를 미국인으로 받아드리지 않은 일이 많이 있다. 그렇다고 부모를 따라 한국에 가면 모두 생김새는 같은데 내가 한국 사람 아닌 것을 실감한다. 내가 누구인가? 미국인인가 한국인인가? 혼동이 온다. 어떤 2세는 자기를 Korean-American 이라 하나 자기는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니고 그 중간에 있는 점에 불과하다고 한다. Korean 또는 American이라는 존재 가치를 모르고 점 하나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니 그 아픔이 얼마나 크겠나? 그렇다면 나에게 생명을 주시어 태어나게 하신 나의 창조자 하나님은 나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씀 하시나? 43:1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창조하고 지었고 구속하였고 지명하여 불렀기에 너는 내 것이라 하신다. 너는 내게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복 받은 자라 하신다. 매우 힘과 위로가 된다.

우리를 사랑하기에 우리를 죄와 고통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구주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라 하시나? 5:3첫 말씀에서 복 있는 자라 한다. 어떤 형편이라 복을 받았다고 하나? 주님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가난하고 슬픔이 많고 힘이 없다. 억울하게 억압과 고통을 당하고 눈물을 흘리며 부정하고 부패한 사회가 뒤집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힘이 없어 대항하지 못하여 참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향하여 복이 있다고 말씀한다. 주님이 그들과 함께 있으니 복이 있다. 주님이 그들을 사랑하기에 복이 있다. 주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니 복이 있다. 복 받은 사람이니 어떤 형편에서나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 하신다. 그러면서 주께서 우리가 내가 누구, 어떤 사람인가를 말씀한다. 복있는 자다 말씀하신 직후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하신다. 우리의 존재 자체를 정의하면서 우리가 할 일,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를 말씀한다. 소금이라 빛이라 하심은 무슨 말씀인가?
1)소금은 맛을 내는 것이다. 음식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맛이 나지 않는다. 연어든지 쇠고기라도 소금이 없으면 맛이 없다. 소금이 무슨 맛을 내나? 연어나 쇠고기 본래의 맛을 내게 한다. 소금은 각자의 제맛을 나게 하는 일을 한다. 소금은 또한 생명을 일으킨다. 차마고도라는 오래던 다큐를 본적이 있다. 히말라야 고도 지방에 야크 같은 짐승으로 물건을 운반하는데 그들에게 소금이 필수품이다. 사람만 아니라 짐승에게 소금을 먹인다. 소금은 생명과 에너지를 제공한다. 제 아버지께서 너무 약해져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병원으로 가서 조사하니 몸에 소금기가 없다고 하며 소금물 주사를 하였다. 그러자 끄져가는 불이 살아나듯이 생명과 힘이 회복되다. 소금은 사람 본래의 맛을 내고 생명과 힘을 더한다. 빛은 무슨 일? 비친다. 태초에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기 전 세상은 어둠에 덮여 있다. 어두우면 어디가 어디, 무엇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빛은 나타나게 한다. 산과 들, 물과 숲, 동물과 사람을 보고 알게 한다. 아름답고 보기에 좋다. 빛이 없으면 알려지지 않던 것이 나타나 알게 된다. 빛은 사물의 제모습을 보게 하고 알게 한다. 빛이 있으면 얼굴을 보고 누구인가 알게 된다. 동시에 빛은 생명을 일으킨다. 빛이 없으면 생명이 나지 않은다. 빛은 생명과 에너지를 준다. 소금과 빛은 사물이나 사람이나 제 모습을 보게 하고 본래 자기 맛이 무엇인지 그것을 발휘하게 하고 생명과 삶의 에너지를 준한.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한다. 세상은 사람이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고 제 맛을 내지 못하게 한다. 사람이 사탄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을 떠나 죄와 죽음에 처하여 어둠 속에서 자기 본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사람으로서의 본래의 가치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생명을 잃고 삶의 힘을 잃고 있다.
2)이런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소금과 빛으로 오셨다. 예수께서 소금으로 일을 하셨다. 세상 사람이 자기 맛을 잃고 있다. 가난에 시달리며 자기를 펴지 못하고 병들어 고통 가운데 누워 있고 눌리고 억압을 당하며 신음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어 있다. 자유와 평화를 가지게 되어 있다. 갈릴리 사람이라고 외면을 당하고 여자라고 무시를 당하고 어린이라고 소외되는 문화였다. 어떤 직종은 사회 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 죄인이요 죄를 지은 사람은 설 곳이 없다. 인간으로서 삶의 맛을 누리지 못한다. 이런 자를 주님은 만나 주시고 만나 주시면 풀어주시고 자유를 주신다. 기뻐 뛰어 일어나게 하신다.  중풍병이 걸려 한번도 일어나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던 사람, 남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어 신세만 지던 사람이  주님을 만나자 자유롭게 일어나 걷고 뛰게 된다. 생명을 찾고 삶의 맛을 자기가 누리며 살게 된다. 나병환자는 사회에서 격리 되어 이곳 저곳도 아닌 중간지대에 살고 있다.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니고 가운데 점하나에 불과한 위치다. 이런 사람이 주님을 만나더니 확실하게 새 사람이 되어 가정과 사회에 돌아가 자기 구실을 하게 된다. 생명을 회복시켜 주시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산다. 세무서의 일은 누군가가 해야 할이요 또 돈을 모을 수 있는 직장이라 누군가가 취직하고 진급하여 서장에까지 올라간다. 그런데 그는 유대인이다 세무서장이다가 아니라 죄인으로 분류되어 손가락질 하고 상대하지 않는다. 주께서 그를 만나시자 삭개오야 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주신다. 순결하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그를 더러운 죄인이라 하나 주님은 그를 순결한 사람이라 부르며 그를 아브라함 자손이라 하신다. 그집에 가서 하루 밤 같이 자야 하겠다 곧 그를 친구라 하신다. 주님은 세상에서 자기를 찾지 못해 진정한 맛을 내지 못하고 어둠에 가려 있던 그의 모습을 벗기고 빛으로 그의 참 모습을 보게해 주신다. 사람들은 이 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죄인으로만 보고 있었다. 삭개오가 자기가 누구인지 알게 되자 어떤 반응을 하나? 내 재산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겠다. 그것이 그가 자기 원래 모습을 발견한 때 가지는 자유다. 본래의 자기 맛을 내는 것이다. 당시 문화는 어린아이들은 항상 무시되고 소외를 당한다. 예수께로 모여 오니 심지어 제자들도 그들을 꾸짖으며 떠나가라고 한다. 그들은 존재 인정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품에 안아주시며 이 아이들이 바로 천국의 주인이라 하신다(18:19).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 여인이 귀신들려 18년 동안 전혀 몸을 펴지 못하고 꼬부라져 있다. 주께서 그를 풀어 주시자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고 회당장이 시비를 한다. 주께서 말씀한다. 아브라함의 딸이 18년동안 사탄에게 매여 있는 것을 안식일에 풀어 자유롭게 하고 생명을 주어야 하지 않나? 예수께서는 소금으로 빛으로 사셨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3)어떻게 소금과 빛이 기능을 하게 되나? 소금이 기능을 하려면 자기가 녹아 존재가 없어 저야 한다. 소금이 아무리 좋아도 나는 좋은 명품 그대로 유지하겠다며 녹지 않으면 맛을 내지 못한다. 자기를 녹이고 자기를 없애야 맛이 난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나 그 자리를 비우시다. 하나님이라 주장하지 않고 우리 같은 모습, 인간으로 오시되 섬기는 종으로 오시다. 자기를 부인하시다. 하나님 자리를 고집하면 죄인 속으로 들어오시지 못한다. 그는 죄인과 세리의 친구되시다. 천대 받는 갈릴리 시골에 가서 일을 하고 개같은 취급을 받는 사마리아와 이방 지역에도 가시다. 격리된 나환자 촌에도 가시다. 한 점에 해당하는 사람의 생명을 회복하고 삶의 맛을 주시기 위함이다. 소금으로서 자기를 녹이시다. 빛은 자기를 태움으로 빛을 낸다. 자기를 희생하다. 주님은 하나님이시나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을 경험하시다.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아픔을 담당하시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피흘려 죽으시고 자기를 희생하신 것은 우리를 죄인에서 본래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함이다. 주님을 만난 나는 어떻게 되었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 하신다. 그를 믿는 우리도 그와 같이 소금과 빛으로 살라고 하신다. 우리가 소금이요 빛이면 먼저 우리가 주 앞에서 우리 모습을 보아야 한다.

3  소금과 빛에 대한 반응은 다르게 나타난다. 1)거절하는 자가 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죄인은 눌림 받고 살아야 하는데 그들이 일어나 사람 구실하는 것을 마땅하지 않게 생각 하는 자가 있다. 평생 맹인이 보게 된 것을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안식일에 보게 하였다고 그를 박해하고 예수를 박해한다. 특히 기득권 바리새인들은 빛이신 예수 앞에 서면 자기 들의 허물과 죄가 보인다. 죄 없는 사람이 돌로 치라고 하자 모두 자기 죄가 생각 나서 하나 하나 돌을 놓고 떠나가다. 자기 죄가 보이니 감당할 수 없다. 어둠 속에서 죄를 짓고 살다가 빛 앞에서 죄를 지을 수 없으니 빛이신 예수를 끄려고 한 것이다. 공산주의가 들어가면 제일 먼저 숙청하는 것이 교회와 교인이다. 사람이 제 구실 제 가치 내는 것을 받아주지 못한다. 사람을 이용가치 있는 도구로만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외면 당하고 아픔을 당하고 떠난다. 교회를 반대하는 그룹에 속한다. 또 소금과 빛이 기능을 하지 못하여 맛을 내지 못하면 버려져 밟힌다. 박해와 외면을 당한다. 아픈 현실이다.
2)소금과 빛으로 기능을 다하면 자기 원래 모습 생명을 찾아 원래의 맛을 내기를 원하는 자는 모여 든다. 주께로 온다. 소금 빛으로 몰려 온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그의 참 모습을 보여주고 제 맛을 내게 하자 사마리아 사람들 전체가 다 주께로 몰려 오다.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이 주께 있다. 인도에 큰 변화가 올뻔 하였다. 간디가 인도의 아픔을 안다. 계급제도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불가접촉 5개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그가 예수의 복음서를 읽으며 산상 설교에 깊히 감동을 받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인도에 변화를 가지고 올 수 있겠다 하는 생각으로 사우스아프리카를 방문 중에 교회를 찾았다. 문앞에서 안내 하던 사람이 간디를 보더니 주보를 주며 안내하지 않고 당신이 잘못 왔으니 저 건너 저 교회로 가라고 하였다. 그가 찾아간 곳은 백인교회였기에 흑인 교회로 가라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기독교의 실상 이라면 나는 평생 힌두로 남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소금과 빛인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개인과 나라 문화에 변혁을 가져온 것이 역사다. 앵글로 색슨, 프랑크족, 게르만족 모두가 무서운 야만족들이나 그들이 소금과 빛의 복음을 받자 변화, 영국과 프랑스 독일을 이루어 새로운 생명을 일으키다. 바이킹스 스칸디나비아 해적 생활하던 그들에게 복음이 들어가자 그들 정체를 새롭게 발견하고 참 맛을 내면서 세계 각곳에 아름다운 일을 하며 미네소타를 세우는데 중심적인 일을 하다. 이것은 역사다.
미국을 개척한 청교도들, 상륙하기 전 그들의 꿈은 미국을 주의 빛을 받은 산 위의 동리로 세우는 것이었다. 이들의 참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고 숨김 없이 투명하게 살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정신으로 어려움이 덮여 있는 온 세계에 나가 소금과 빛으로 섬기며 생명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기에 미국은 하나님이 쓰시는 힘 있는 나라가 되고 있다. 레이건도 대통령 퇴임사에서 산 위의 동리로서 세계를 향한 사명을 기억시켰다.

나는 어떠한가? 나는 누구인가? Korean-American? 예수님을 만나고 내 참 모습, 하나님 형상을 발견하고 나의 본래 맛을 내고 있는가? 내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내가 만난 누구에게 그의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맛을 내게 하고 참 생명을 누리게 하였나? 그러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소금과 빛인 주님을 참으로 모시고 그 안에서 살고 있는가? 나를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 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는데 내가 나를 녹이고 나를 태우고 희생하며 섬기고 있는가? 내가 너무 나를 주장 하지는 않는가?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 안에서 참 모습을 보게 하고 원래의 맛을 내게 한다면 온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얻은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우리 자신에게 큰 기쁨과 감격이 될 것이다. 주의 은총이 우리 개인 개인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동영상은 kpc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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