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ne 18, 2017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 The Father Heart of God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 Father Heart of God (누가15:20-32,  6/18/17 아버지 주일)
아버지 주일에 모든 아버지에게 주의 위로와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아버지로서 역할이 어떠한가? 자녀들을 위하여 미국에 오고 자녀들을 위하여 열심히 일을 한다. 아버지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 권위를 가지면서 자녀와 함께 있고 공급하고 보호하며 따뜻하고 부드럽게 용납하는 아버지인가? 아버지에 대한 미국 문화는 우리가 바라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미국에서 자녀가 부모와 함께 사는 가정이 점점 적어진다. 1960년에 88%에서 2016 69%, 엄마와 사는 아이는 8%에서23% 늘어난다. 성인 남자 1600명 조사 50%이상이 자랄 때 아버지를 느끼지 못하고 34%가 아버지를 롤 모델로 삼다. 이런 현상이 왜? 미국의 문화 때문이라 한다. Ken Canfield, The Heart of a Father: How you become a dad of destiny, 아버지의 마음: 운명의 아버지가 되는 길이라는 책에서 1)개인주의로 내일 비전 보다 오늘의 자기 행복 추구, 2)우선순위가 가족보다 직장과 성취, 돈에 있고, 3)헌신, 희생, 책임감이 줄어드는 경향이 영향 미친 것이라 본다. 결과로 아버지 없는 가정의 경제는 가난이 5, 극심한 가난은 10, 십대 성관념에 이상, 자살의 70%, 정신과 입원환자 80%가 깨어진 가정 출신이라는 통계다. Canfield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하여는 먼저 자신을 살피라 다음은 자녀와 관계를 개선하라 셋째는 평생 아버지로 장기 계획 세우라고 한다. 아버지의 중요성을 알고 아버지의 위치를 회복 하고자 Promise Keepers 운동, 이와 비슷한 운동으로 한국에서 아버지 학교가 시작, 미국서도 한인 교회 중심으로 발전되고 있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데 아버지의 롤 모델이 없는 것이 또한 실정이다. 자기가 보고 배운 아버지처럼 살고 싶은데 그런 모델이 없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실수 없는 완전한 아버지 모습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시다.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고후 6:18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1:12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 가진다. 64:8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마9:6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바 아버지라 하고 성령께서 우리가 그를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다.

예수께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로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여러가지로 설명하시면서 오늘 읽은 본문은 두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아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준다. 15장의 시작은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자 모여든다.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수군거리며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비난한다. 종교와 사회에서 인정 받는 기득권 세대인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가까이 하면 좋을텐데 그들이 멀리하고 싫어하는 세리 죄인들과 예수께서 어울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 이에 반응하여 주님은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한다. 한 사람이 양 백마리가 있는데 한 마리를 잃은 경우 99마리를 두고 한 마리를 찾아나가 그 양을 찾고서는 잔치를 베풀었다. 한 여인이 은돈 열드라크마 중에 하나를 잃고는 그것을 찾아 기뻐하여 잔치를 한다. 그리고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 째가 아버지를 떠나갔다가 실패자로 돌아올 때 기쁨으로 환영하며 잔치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어떤 아버지의 모습을 보나?

1 아들에게 희망을 가지고 기다린다. 내게 돌아올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한다. 먼 나라에 가서 사업하겠다 한다. 살아 있는 아버지에게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 몫을 달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기 자식이라고 집에 가두어 자기 그늘 아래 있으라고 강요하지 않고 그가 원하는 그의 몫을 주고 자유를 준다. 집을 나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하나님은 사람을 로보트로 만들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로 만드시고 그가 하는 것을 막지 않으신다. 이것이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다. 자녀가 태어날 때 처음부터 아담 같은 어른이 아니라 힘 없는 어린아이로 태어난다. 아이는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나 부모의 보살핌과 공급함으로 자란다. 이들이 자라나면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남으로 가정을 알게 되고 또 그에게 주어진 재능을 발휘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자유를 행사하면 그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아버지로서 허락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기다린다. 하나님은 우리를 내 버려 두지 않고 보살피는 마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린다. 아들이 멀리 있지만 아버지 눈과 마음은 그에게 있다. 하나님은 멀리서도 내 생각, , 걸음, 길을 모두 아신다고 다윗은 고백한다. 아들이 잘 되기를 희망하고 기다린다.

2 용서하고 받아주며 아들로 회복시킨다. 먼 나라로 간 아들이 큰 사업을 하고 돈을 벌 생각을 하였겠지만 실패하다. 그 돈을 다 낭비하고 또 그 나라에 흉년이 와서 먹을 것이 없게 되자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하는데 돼지 치는 일을 한다. 먹을 것이 없어 돼지가 먹는 음식을 먹고 싶으나 그것도 주는 자가 없어 굶주리는 신세가 되다. 그 때에 정신이 난다. 내 아버지 집에는 품군도 배부르게 먹고 지나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내가 아버지께 가서 잘못의 용서를 구하고 품군으로 써 달라고 해야겠다 하고 아버지께 돌아간다. 아버지가 멀리서 거지가 되어 돌아오는 그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춘다. 환영하는 표시다. 내가 아버지와 하늘에 죄를 지었으니 이제는 아들이라 부를 수도 없다고 한다. 아버지는 책망하거나 벌할 생각 않고 용납하고 받아준다. 우리 잘못을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대신 형벌을 받게 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신다. 용서의 표시로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긴다. 아들로 다시 회복시키신다. 옷을 입히는 것은 우리의 죄와 허물된 모든 아픔, 부끄러운 수치와 상처를 덮어 주심이다. 허물과 죄로 얼룩진 우리를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덮어주신다. 죄 용서 받고 의롭다 함을 받은 존재로 만드신다. 반지를 끼운다. 반지는 신분과 권위의 표시다. 그가 종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하는 영광과 권위를 가짐을 말한다. 아들이면 아버지와 같은 권위를 가지고 아버지와 같은 자리에 앉는다. 우리를 아버지와 함께 앉게 하신다. 아버지의 권위와 영광을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여 주신다. 발에 신을 신기라. 긴 여행에 신이 없이 왔다. 신은 신분이요 보호다. 이제 험한 인생에 신을 신고 보호를 받고 당당히 살며 사명을 행하라. 이 신은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을 전하는 평화의 복음의 신이다. 아들은 그가 가장 필요로 하는 용서를 받은 것을 확인하다. 아버지가 아들이 한 대로 대하거나 우리 죄를 하나 하나 기억하면 우리가 어떻게 그 앞에 설 수 있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한다. 동이 서에서 멀듯이 우리의 모든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
헤밍웨이가 쓴 세계의 수도(The Capital of the World)라는 단편은 한 아버지와 10대 아들 이야기다. 아들이 집을 나가 마드리드 거리를 방황하다가 투우사가 되겠다고 생각하다. 투우사가 되는 것은 곧 죽음이라 그것으로 삶을 끝내겠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 나서나 찾지 못하여 신문에 광고를 내다. “사랑하는 파코야 화요일 정오 몬타나 호텔 앞에서 만나자. 모든 것 용서했다. 너를 사랑한다. 아빠가그 날 800명의 파코가 호텔 앞에 모였다. 파코는 스페인에서 흔한 이름이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용서와 사랑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 우리가 아버지를 향하여 이 교회로 올 때 하나님은 이미 멀리서 보시고 뛰어 나와 우리 목을 안고 입을 맞춘다. 의의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긴다. 내가 너를 용서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 아들이다 하신다. 상상할 수 있나?

3 잔치를 베풀고 기뻐한다. 15장은 잃은 것을 찾을 때의 기쁨을 잔치로 표현한다. 잃은 양을 찾은 때, 은전 드라크마를 찾은 때 멀리 갔던 아들이 돌아온 때 잔치를 베푼다. 아버지의 기쁨이다. 아버지가 그 자녀를 바라볼 때 가지는 마음은 기쁨이다. 62:4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내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되리라 시16: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라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에게 있다.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느8:10 여호와의 기쁨이 너희의 힘이다. 여기 너 자리에 내 이름을 넣어보라. 어떤 마음이 되나?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기뻐 잔치를 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힘이 나고 즐겁나. 오늘 우리가 주 앞에 올 때 주님이 기뻐하며 잔치를 베푸신다. 예배는 잔치다. 우리도 얼마나 큰 기쁨인가! 21:6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신다. 33:26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기뻐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한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를 기뻐하시나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렇게 기뻐하신다. 어떻게 하랴? 멀리 있던 우리가 주님 앞에 올 때 주께서 우리를 받아 기쁨으로 잔치를 베푸시고 내가 그 잔치의 중심에 있음을 알자.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은 기뻐하며 잔치를 베푼다. 동시에 계속하여 하나님이 기쁨으로 잔치할 수 있는 길은 잃어진 자를 주께로 인도해 오는 것이다. 떠나갔던 자가 돌아오는 것 세례 받고 주를 믿는 일은 주를 기쁘게 한다. 아버지가 신겨 주신 평화의 복음으로 예비한 신을 신고 전도하여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면 기쁜 잔치가 일어난다. 전도와 선교가 이를 위한 것이다.

4 불평하는 맏아들을 받아준다. 큰 아들이 들에서 일을 하다가 돌아와 잔치하는 것을 보고 종을 불러 사실을 알고는 화가 나서 집에 들어 가지 않은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서 그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고 따랐다. 그가 멸시하던 동생이 돌아오자 송아지를 잡고 큰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가 자기를 위해서는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지 않은다고 불평이요 분노다. 이런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나는 평생 주를 믿고 있는데 기도의 응답이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새로믿는 사람들이 은혜와 복을 받고 기뻐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 분노하는 마음이 생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태도다. 세리와 죄인을 받아주는 주님이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둘째는 몸은 멀리 가 있으나 마음은 아버지께 와 있지만 큰 아들은 몸은 집에 있으나 마음은 멀리 있다.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나가서 그 아들에게로 간다. 얘야 너는 항상 나와 같이 있다. 내게 있는 것이 모두 너의 것이 아니냐! 한다. 우리가 이를 모르고 산다. 우리가 이를 감사할 줄 아는 것이 복이다. 아버지와 함께 있고 아버지의 모든 것을 내가 가지는 것이 송아지 한 마리에 비교가 되겠나? 아버지는 큰 아들을 나무라지 않고 그에게 그의 위치를 확인시킨다. 우리가 큰 아들의 입장이나 작은 아들의 입장이든지 거절당할 것이라고 걱정할 것이 없다. 주님은 우리를 받아 주시고 사랑하신다.
오늘 아버지 주일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받아드린다. 그로부터 내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인정하고 그에게 찬양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아직 그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경우는 오늘 그의 자녀가 되어 그를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가 있다. 예수를 믿고 영접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고 아버지 마음을 닮아 내가 부모로서 아버지로서 아들과 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결심할 때 주의 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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