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17, 2017

막힌 담을 허시고 Breaking Down the Dividing Wall

에베소2:14-18 막힌 담을 허시고 breaking down the dividing wall
우리를 제일 어렵게 하는 것이 무엇? 재정, 학업, 직장, 건강 등 여러 문제가 있겠으나 가장 어려운 것은 잘 지나던 관계가 막히는 것이다. 피의 흐름이 막히면 병이 생긴다. 담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 삶에 보는 담을 생각해보자. 이전 한국에서 집에 높은 담이 있고 담 위에 철조망을 두었다. 도둑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교도소의 담이 높다. 죄수 도망가지 못하게 한다. 중국의 만리 장성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건설, 동독과 서독 중간에 막았던 담, 남과 북의 휴전선 철조망. 안과 밖, 이쪽 저쪽을 구분하고 자유롭게 내왕하지 못하고  서로 갈등 대립되고 있다. 인종과 종족간, 가진 자 못가진 자, 남과 여 등 많은 계층간의 갈등이 있다. 미국에도 50년전만 해도 흑백 사이에 높은 담이 있었다. 특히 오늘 성경에서 보는대로 유대인과 비유대인 사이에 높은 담이 있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 율법을 지키며 할례를 행하는 언약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비 유대인을 이방인이라 하며 멸시하다. 유대인이 자기 나라를 떠나 갔다가 돌아오면 자기 땅에 들어가기 전에 발의 먼지를 떨고 들어간다. 이방의 먼지로 자기 땅을 더럽히지 않기 위함이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전에도 담이 있다.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 그리고 마당으로 되어 있고 주위에 벽이 있다. 그 전체를 성전이라 한다. 성전에 들어가면 먼저 이방인의 뜰, 그리고 이스라엘 여인의 뜰, 이스라엘 남자의 뜰 제사장의 뜰이 있고 맨 가운데 지성소에는 오직 대제사장 일년에 일차 들어간다.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한다고 하여도 그들이 예배를 위하여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이방인의 뜰이다.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이방인의 뜰과 여인의 뜰 사이에 높이 넉자가 되는 담이 있는데 거기 문구를 써 붙여 두었다. 이방인이 이 벽을 넘어 서다가 죽임을 당하는 것은 자기 책임이다라는 것이다. 중간에 막힌 담을 넘어서는 것은 전쟁과 죽음을 의미한다.
1  왜 이런 담이 있나? 이기적인 욕심, 불신과 교만으로 생기다. 이것은 인간 시초로 돌아간다. 에덴동산은 평화의 동산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으로 사람을 만들고 서로 친밀한 관계로 사랑을 나눈다. 평화와 질서가 있다. 그러다가 그것이 깨어지다. 인간에게 금지된 선악과를 먹음으로 깨어지다. 왜 그것을 먹나? 그것 먹으면 그가 하나님처럼 된다 하는 사탄의 말을 믿은 것이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이 생기고 자신이 하나님이 되겠다 생각으로 먹은 것이다. 자기 욕심과 교만의 발로다. 그러자 하나님이 두려워 숨게 되었다. 스스로 하나님을 피하여 담을 만들었다. 하나님이 그를 찾아 연유를 묻다. 왜 내게 하와를 만들어 주었나? 그가 주어 먹었다고 핑계한다. 내 살중의 살이요 뼈중의 뼈라며 하나 되어 살던 그가 하와에게 책임을 돌리고 그를 비난한다. 하나님께서 이들이 생명나무에 접근 하지 못하게 불칼을 세우고 그들을 그 동산 에서 쫓아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넘어가지 못할 담이 생기다.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과 아벨 사이에는 더욱 갈등이 심화된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고 아벨의 제물은 받았다. 가인의 안색이 변하다. 왜 내 제물은 받지 않아? 그 이유를 생각하고 고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동생이 미워 그를 죽이게 되다. 이 인간 갈등이 연속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원수가 되니 사람간에도 원수가 되어 서로 갈등하고 싸움을 한다. 노르웨이 한림학회 전회장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주전 3600년 이래 오직 292년의 평화가 있었는가 하면 14351회의 전쟁으로 364천만 이 죽임을 당하고 재산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중 많은 전쟁이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 한다. 주전 1500에서 1865년까지 평화조약이 8천 이상 체결이 되었으나 각각 유효기간은 2년미만이라 한다. 사람은 평화를 추구하나 전쟁은 계속된다. CNN테레비 창설자 Ted Turner가 아틀란타에서 세계 뉴스 보도자들을 위한 회합에서 세계 평화와 환경 조화의 비전을 위한 글을 시상 모집하다. 그가 1만건 이상 아이디어를 받고 검토한 결과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적절한 내용을 만나지 못하였다. 적절한 안이 없으면 평화를 세우는 전망은 어둡다고 하였다. 그는 기독교를 조소하고 기독교 진리가 현대에 맞지 않은다고 비난하는 사람이다. 그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화를 알지 못하고 더욱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은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2  오늘 본문의 에베소 교회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하고 있다. 그들은 이전에 서로 경멸 비난하고 살던 형편이나 지금은 한 가족 공동체 교회를 이루고 있다. 어떻게? 예수가 우리의 평화라 한다. 9:6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하다. 이 아들 예수께서 평화의 왕으로 오시다. 그는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무너뜨리는 일을 하셨다. 1) 이제 본대로 하나님과 사람을 가로 막고 있는 담은 바로 불순종이요 죄다. 59:2 너희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제사 제도를 설정하여 주셨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죄를 지은 자가 죽어야 하기에 그를 대신하여 짐승을 죽여 희생하는 것이다. 짐승이 죽어 사람의 죄가 용서됨은 상징적인 의미는 되지만 짐승과 사람이 같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죄인의 완전한 용서와 회복을 위해서는 죄 없는 인간이 대신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보내신 것이다. 그는 인간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음으로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담을 흘어버리고 사람이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그는 중보자요 또 제사장이 되시다.
Don Richardson선교사가 파푸아 뉴기니에 가서 사역을 하는데 많은 부족이 서로 싸우고 불화하고 있어 복음을 전하기가 참 쉽지 않았다. 그러는 중 그들의 한 가지 관습을 보게 되었다. 부족끼리 계속 갈등하고 전쟁 하다가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를 원하면 한 부족의 추장이 자기 아들을 상대편 부족 추장에게 보내는 것이다. 상대편 추장이 그 아들을 받아주고 평안이 돌려 보내면 평화 협정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라 복음을 전하며 그들을 주께로 인도하였다. 아들을 희생할 각오로 원수 부족에게 보내는 것이다. 예수께서 오시되 율법을 따라 인간 죄의 형벌을 대신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을 완성하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담을 헐고 사람이 하나님께 나가는 길을 열어주셨다.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는 자리에 이르렀다. 그를 받아드리는 자는 평화를 가진다.
오래 전 영국 왕궁 앞에 어떤 소년이 나타나다. 왕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보초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하루 종일 있어도 왕을 볼 길이 없다. 다음 날 다시 온다. 안에서 한 젊은이 나오더니 보초를 제치고 그 소년을 데리고 들어간다. 왕궁을 여기 저기 구경시킨다. 그리고 왕 앞으로 가서 아버지 제 친구 빌입니다 하였다. 아들이 나와 친구를 데리고 가면 아버지 왕을 만날 수 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이다. 담을 헐어버린 것만 아니라 우리로 하나님을 만나고 친근한 관계를 맺도록 하신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던 휘장이 찢어지다. 곧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담이 무너지다. 우리가 우리 죄를 인정하고 예수께서 나를 대신하여 하신 일을 믿음으로 아버지께 돌아오면 하나님이 받아주시고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 받는 사람이 된 것이다. 한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받아 먼 나라로 가서 다 탕진해 버리다. 먹을 것이 없어 남의 집 돼지를 치는 일을 하지만 배가 고파 돼지가 먹는 것을 먹을 정도였다. 그때 생각이 난다. 내 아버지 집에는 품군들도 배부르게 먹는데! 내가 돌아가서 아들의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군으로 써 달라고 해야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아버지가 멀리서 보고 뛰어 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춘다. 좋은 옷을 입히고 살진 소를 잡아 이웃을 불러 모으고 잔치한다. 이 내 아들은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 하나님의 기쁨이 넘친다.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주께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뛰어나와 우리를 맞아주시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자.

2) 예수께서 하신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막힌 담을 허는 것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도 헐어주시는 일을 하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은 유대인만 아니라 이방인 누구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새 사람이 된다. 그도 하나님의 자녀요 나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의 가족 그리스도의 공동체 교회의 한 가족이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이 무너진 것이다. 예수께서 유대인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평화로 오셨다. 그는 유대인으로부터 멸시 받는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고 개처럼 취급하는 사마리아에 들어가 사람을 만나고 이방 지역 두로와 시돈으로 가서 사역을 한다. 죄인으로 멸시당하는 세리를 제자로 삼고 세리 집에 가서 함께 식사하고 잔치한다. 병들고 추한 나환자 중풍병자를 치료하신다. 여자와 어린아이를 세워주신다. 사회 계층간의 모든 담이 무너지는 것이다. 한 장 밖에 안되는 빌레몬서는 참으로 아름다운 내용이다. 빌레몬에게 종 오네시모가 있다. 오네시모가 주인의 물건을 훔치고 도망을 하여 로마에까지 가서 바울을 만나다. 그는 바울을 통하여 예수를 믿게 되고 바울의 심복이 되었다. 그가 빌레몬의 종인 것을 알고는 그를 돌려 보내며 그를 종으로 대하지 말고 주 안에서 형제로 대하라고 한다. 주 안에서는 종이나 주인이나 함께 형제가 된다. 이런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난다. 시카고 매코믹 신학교 출신 무어 선교사가 1892년 한국에 도착하여 주로 천민을 상대로 사역, 을지로의 곤당골 교회, 마포의 동막교회 설립 주로 천민들이 모이니 계급 철폐라는 소식을 들은 자들이 모이다. 그러다 계급을 넘어서는 교회라는 의미로 승동 교회를 설립하고 나중에는 백정 출신 박성춘이 장로가 되기까지 하였다. 물론 양반의 반발이 있기도 하였으나 무어 선교사의 사역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는 꼭 같이 존귀함을 일찍부터 알게 되었다. 우리이민 교회는 정말 다양한 계층이 모두 함께 모여 한 공동체를 이룬다. 사람과 계급 사이의 모든 담이 무너지고 하나가 되는 것을 경험한다. 독일이 1949년 분단되고 베르린이 동서로 나뉘었다 동쪽에서 자유진영 서쪽으로 사람들이 넘어가자 1952년 경계선을 봉쇄하고 넘어가지 못하게 하다. 그래도 넘어가니 1961년 벽을 쌓다. 1949-61년까지 250만이 동독을 탈출하다. 1987년 동독 정부가 여행 금지 조항 철폐하고 겱국 담을 헐었다. 사람들이 춤을 추고 즐거워하던 것을 기억한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에집트에 팔려가다. 하나님의 인도로 당시 세계 최강 나라의 총리가 되다. 풍년 흉년 관리를 잘 하였다.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온 것을 알다. 자기를 아리고 온 가족이 이거해 오게 하였다. 아버지가 죽자 형들은 동생이 복수할 것을 두려워 하다. 동생은 눈물을 흘리며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하나님이 자기들을 살리기 위해 하신 일이라며 받아주고 그 자녀들을 돌보겠다고 한다. 얼마나 큰 감격인가! 담이 무너지는 것을 확인함은 기쁨이요 감사다.


3 예수께서는 평화의 왕으로 오시어 평화를 이룩하시면서 또한 평화를 전하는 일을 하시다.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 천사들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라 하였다. 이 평화는 하나님과의 평화, 다른 사람과의 평화도 되지만 우리가 가지는 우리 자신의 냇적 평화도 된다.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다고 하시며 평화를 전하시다. 주를 모신 사람은 마음에 평화를 가진다. 이해를 초월하는 평화를 가진다.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과 하나 되니 마음에 평안이 일어난다. 마음이 평안하니 이웃을 받아주고 하나가 되는 길이 열린다. 주의 평화는 환경을 넘어선다. 환경이 변하여 마음에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이라도 주 안에서 평화를 가지니 환경에 변화가 오는 것을 본다. 어제 만난 박혜연에게 일어난 일이다. 불교 가정 출신으로 유학 와서 한국 음식을 먹고자 교회에 왔으나 집안과 개인의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기도했으나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기독교의 하나님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던 중 지난 사순절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면서 삶이 새로워지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다. 환경은 그대로인데 마음이 평안해지자 점점 환경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수 외에 참 평화의 길이 없음을 알게 된다. 성령이 주시는 평화다. 이 평화는 샬롬, 전쟁과 갈등이 없는 것도 되지만 그 보다 우리가 참 삶을 누릴 수 있는 안정과 온전함, 인간의 인간 됨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들고 에덴동산에서 누리던 그 온전한 평화다. 주 안에서 이것이 이루어진다. 세상 어디에서 무엇으로 참 평화를 얻을 수 없다. 어느 사람이 의사를 만나 당뇨병 진단을 받다. 인슈린 처방을 하면서 그것 사용하면 고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정상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환자는 그것 아니라 아스피린이나 항생제를 사용하겠다고 한다. 인슈린만 도움이 된다고 하면 왜 그리 마음이 좁은가 할 수 있나? 그 약 뿐이다. 예수 외에는 중간에 막힌 담을 헐 수가 없고 참 평화를 가질 수가 없다고 하면 왜 그렇게 좁은 생각인가 하는 자가 있다. 그러나 길은 그 하나 뿐이다. 그러기에 평화의 왕, 원수로 막힌 담을 헐고 하나로 화해하게 하신 주 예수를 받아드리고 그를 나누고 전하는 일을 하여야 할 것이다. 갈등과 반목이 많고 담과 간격이 많은 세상이다. 참 평화와 화해를 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 한다. 우리 속에 주를 모시고 그 주님을 나눌 때에 참 평화가 일어난다. 먼저 내 속에 평화가 일어나고 이로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그리고 나와 이웃 사이에 참된 평화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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