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24, 2017

산과 바다 Mountain and Sea

요한 6:15-21 산과 바다  

예수님 사역에서 52어로 5천명을 먹임으로 그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다. 5천명은 큰 군중, 어떤 일을 일으킬 정도의 세력, 군중의 생각이 모여지다. 예수는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 곧 왕이다. 그가 왕이 되면 로마 압제자를 몰아내고 백성은 편안하게 만족하게 살 수 있겠다. 그들이 와서 예수를 억지로 붙들어 왕으로 삼겠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다. 감격이요 열정이 있다. 그러나 현재 있는 왕은 어떻게 되나? 이들이 군중 운동을 일으키면 로마에서 어떻게 반응할까? 생각하지 않고 혁명을 일으킬 태세다.

예수께서는 왕으로 오시다. 동방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자를 찾아 예루살렘에 왔다.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하며 묻는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18:33) 내가 왕이다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나고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18:37, 36). 군중, 유대인, 빌라도가 생각하는 왕은 현실 정치 세계를 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왕은 왕이나 이 땅 정치 세계가 아니라 진리에 속한 영원한 통치를 말한다. 아직 이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세상의 인기와 권력에 추종하고 매달리는 형편이다. 주께서는 사명을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군중의 여론과는 다른 것이다.
주께서는 사람들을 위하여 오시다. 예수께서 군중의 소망을 아신다. 그러나 그들의 소망 중에 어떤 것을 듣고 거절할 것인가를 구분해야 한다. 주께서 왕으로 오신 것은 이 세상 왕이 아님을 확인하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제자들도 그 운동에 합류할 수 있는 것이다.
2  예수께서 제자들을 먼저 배로 가버나움으로 가게 하고 예수께서는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다. 그가 혼자 산에 가신 일이 많이 있다. 예수께서 사역 초기 산에서 산상설교를 하고 제자를 선택하시다.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가운데 그 용모가 변하였다. 마지막에는 그가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산에 오르다. 구약에서 산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관계가 깊다. 아브라함은 그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리고 가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려  하다. 사람들은 산에 제단을 만든다. 산은 높은 곳, 하늘이 가까워 일반 세상과 구분되고 하늘의 하나님을 만나기에 적당한 곳으로 생각된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말씀을 듣고 율법을 받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신 선지자와 대결하며 하나님의 불이 임하게 함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증명하였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지만 사람이 산에서 홀로 하나님과 대면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과 방향 능력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한국에도 산에 기도원이 많았다. 주를 경험하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주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 그의 사역 방향과 사역의 능력, 그리고 앞으로 나갈 길 등을 아버지 앞에서 확인하고 더욱 굳게 하는 시간이다.
3 그런데 바다를 건너가는 제자들에게 문제가 일어나다. 아침에 그 바다를 잘 건너 왔다. 다시 잘 건너갈 줄로 생각했다. 그런데 풍랑이 일어나다. 제자 중 많은 사람이 바다에서 뼈가 굵은 사람인데도 풍랑을 지나 항해하여 갈 수가 없다. 마태에 밤 사경까지 이들이 고생을 한다(14:25). 낮은 12시간, 밤은 4경으로 나눈다. 새벽 4-5시가 되도록 이들이 애를 쓰지만 어떻게 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다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잔잔하던 바다가 잠시 사이에 소용돌이 파도가 된다. 그러기에 계시록에서 세상정치를 바다로 표현한다. 세상에 물결이 많다. 예수께서 높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며 용모가 변형되어 함께 했던 세 제자가 감격하여 그곳에 있고 싶어 하지만 산 아래에는 큰 문제가 있다. 귀신 들린 아이를 그 아버지가 데리고 와서 고쳐달라고 하는데 제자들이 고치지 못한다. 이것이 세상의 형편이다. 민심이 바다와 같다. 오늘은 좋다가 내일은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다. 여론이 그렇다. 여론을 의지하면 항상 깊은 파도에 잠길 수가 있다.
4 주께서 따로 높은 산에서 혼자 하나님을 대하고 용모만 아니라 심정이 안정되고 힘이 솟아 나는 시간이지만 그의 관심은 제자들과 백성이다. 6:48 제자들이 힘겹게 노젖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에 바다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시다. 주님은 고생하는 제자들과는 멀리 계시는 것 같으나 그러나 그는 보고 계신다. 고생하도록 버려 두지 않고 찾아오신다. 물결 위로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두려워 하나 주님은 나다 두려워 말라 하신다. 나다,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는 나다. 곧 하나님 자신이다. 바다와 바람까지 창조하신 분이다. 기쁨으로 주님을 배로 영접하니 바다는 조용해지고 배는 그들이 가려던 땅에 도착하다. 주께서 오시니 모든 풍랑이 잠잠하고 안정되게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5  한 때 한국 불교에서 이름을 떨치던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말이 훼자되다. 그 말은 무슨 뜻? 산은 산대로 좋고 물은 물대로 좋다는 말, 산과 물은 서로 다르고 구분 된다 말이 되겠다. 이것이 세상의 수도요 종교일 수 있다. 그러나 주 예수 께서는 산과 바다, 산과 세상을 하나로 연결시킨다. 산이 없다면 바다를 건너기 어렵다. 산에서 얻은 하나님 지혜와 능력이 바다를 가르고 지나갈 수 있다. 아무리 파도가 흉용해도 산을 덮지는 못한다.  주 안에서 주와 함께 주의 길을 걸으면 이 세상 풍랑이 임할 때 오히려 주의 임재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라 감사할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그에게 경배하다(14:33).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주께서 보고 계신다. 구하러 오신다. 성탄은 우리를 구하러 하나님이 사람 몸을 입고 찾아오신 것이다.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께 일어난 일이다. 우리에게 일어난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주를 우리 배 안으로 모셔 드리고 경배하며 높이는 삶을 살자. 산에 올라 하나님 앞에 서듯이 주님 앞에서 힘을 얻고 자신을 확인한 후에 세상 물결을 이길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면 바다는 잠잠해진다. 주 안에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든든히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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