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13, 2021

노예 정신 Spirit of the Bond Servant

 노예 (종) 정신  The Spirit of the Bond Servant

한국 선교 초기 선교사들이 정구를 치며 땀 흘리는 것을 보던 갓 쓰고 담뱃대를 문 한 양반이 “선교사 양반, 왜 그리 힘들게 땀을 흘려요? 우리 집 종을 데려다 시키시오” 하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선교사들은 한국인이 노동 천시와 게으름만 벗어나면 위대한 민족이 될 수 있으리라 관찰하였다. 한국만 아니라 미국에도 3D곧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 (Dirty Difficult Dangerous)은 기피하기에 이런 일은 살기 위해 온 외국인이 주로 한다. 옛날에는 전쟁포로가 노예로서 노동을 하였기에 그리스 로마의 건설이나 문명은 노예들이 이루었다고 본다. 

노예라면 주인이 있고 주인과 노예의 정신이 있다. 주인은 자기 것이 있는 소유주로 그것을 지키고 관리하며 책임감을 가진다. 종은 자기가 없고 생명 시간 모든 것이 주인에게 속하고 주인을 의지하며 주인이 시키는 것만을 하기에 눈치를 보고 책임감이 없다.  

한국은 전쟁포로가 없기에 동족을 노예로 삼은 드문 나라다. 빈부의 격차가 심하던 때 가난한 자는 빚을 지다가 가진 것이 다 넘어가고 나중에는 살기 위하여 자기를 종으로 넘기고 양반 세력가는 이들을 압제하였다. 

삼국시대 고려시대에는 종이 인구의 5%였으나 조선시대에는 40%였다. 조선 학자 성현은 백성 절반이 노비(남자는 노, 여자는 비)며 광대 장인 백정 기생 무당 상여꾼 천민을 합치면 70%가 되고 노비의 가격은 조랑말 한 마리의 절반 가량이었다 한다. 홍문관의 이명현은 노비 757명을. 퇴계 이황은 367명을 자녀에게 물려주었다. 이렇게 수가 급증한 것은 세종대왕 이후였다. 세종은 노비를 재산으로 보고 고려와는 달리 양반 노비의 결혼을 허락하고 그 자녀는 노비가 되었다. 세종은 안정을 위하여 나라를 중국에 예속시키고 자기는 천자 아래 제후라며 많은 공물과 환관, 여자들을 바치고 자주국방 의지가 없었다. 그가 과연 성군인가 하는 질문이 오늘 학계에 일고 있다.

개인이 노예신분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도망이기에 세조때에는 도망 노비가 100만명이 되고 이들을 잡기 위한 추노가 발전했으나 영조는 추노 제한, 병역 참가, 소작제를 확대함으로 노예의 수를 줄이다가 1801년 순조는 공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1894 갑오개혁은 신분제를 철폐하고 자유인의 길을 열었으나 “제발 우리를 내치지 마소서 주인님” 하며 종으로 굶을 걱정 없이 안전하게 살고자 하는 자가 많아 에브렛 존즈의 “노예는 자기 다리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자랑한다”는 말이 통하였다.  

한국은 해방 이후 이승만이 기독교 정신으로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고 1948년 자유 평등과 공화를 약속하는 헌법으로 대한민국이 설립되었다. 박정희는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성취동기를 일으켜 노예정신에서 자주정신, 자신감 책임감으로 정신과 인격에 변화를 가져오고 열심히 일하여 나라를 발전시키는 길을 만들었다. 잘 살게 되어도 빈부는 언제나 존재하기에 사회주의가 평등을 내세워 부자의 것으로 배급하여 일하지 않고도 먹게 하며 책임감을 말살하는 ‘노예의 길’로 돌아가게 한다.  

생명을 위하여 주인에게 종속하는 종의 정신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의 종으로 그를 섬기는 것은 사람의 종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 한국교회의 신앙과 성장은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보호와 축복을 받고 나아가 다른 사람을 섬기며 자랑스런 선교 교회로 발전한 것은 이 종의 정신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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