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감사합니다 Thank You, Mom!
어머니날을 맞아 평소보다 더욱 어머님을 그리워하며 감사한다. 나를 낳으시고 오늘 내가 있게 하신 그는 출생부터 세상을 떠나기까지 특별하였다. 경주 서부외곽 서당 훈장의 딸로 태어났으나 여자이기 때문에 글을 배우지 못하고 집안 일을 하다가 16세에 경주 남부외곽 홀어머니 모시는 총각과 가정을 이루었다. 남편은 비가 새는 낡은 집에 새댁과 어머니를 두고 돈을 벌겠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밤낮 없이 일을 해도 돈이 모이지 않아 일년만에 빈손으로 돌아온 남편은 조합돈을 빌려 버려진 땅을 사고 부부가 열심히 개간하기를 반복하여 집을 지어 옮기고 안정을 이루었다. 엄한 시모에게 글을 배우고 길쌈을 하며 삶의 지혜를 얻는 중에 딸 다음 장남인 내가 태어났으나 시모에게 아들을 빼앗기듯 안아볼 틈도 없이 일에 얽매였다. 내가 두 살 때인지 엄마 품에 안겨 마차를 타고 외가에 가던 것이 엄마와의 행복한 처음 기억이다.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산 넘어 멀리 교회에 다녔으나 겨울이나 비 오는 날이 어렵기에 아버지는 효성으로 동리에 예배당을 지으시고 어머니가 먼저 주님을 믿고 별을 보고 새벽종을 울리는 종지기가 되고 교역자를 정성으로 섬기고 주민들의 기념일을 기억하고 베푸는 사랑을 나에게 심어주셨다.
어머니는 나에게 일찍 독립심과 자유를 주시며 나를 한 인격으로 존중하고 초등학교 이후 집을 떠났으나 나를 건강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셨다. 대학을 졸업하며 내가 죽을 병에 걸린 때에 그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나를 고치겠다며 국립병원에 입원시켰다. 아버님은 어머님을 존중하고 찬동하였다.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6개월에 퇴원하고 취직 결혼하여 교수목사가 되겠다고 유학하며 멀리 떠났으나 그의 기도는 항상 나와 같이 하였다.
내가 수학 중 어머님은 척추암으로 심한 통증에 걸을 수도 없어 의사가 포기한 상태에서 내가 돌아가 전문의사를 소개받았더니 치료는 불가하나 통증은 줄일 것이라 하며 기도팀의 응원으로 수술을 하고 기적으로 2년 후에 걷기 시작하여 아픈 곳이 없다며 25년을 사셨으니 감사한 것 뿐이다. 척추를 위하여 무거운 일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지시였으나 몸에 벤 일을 멈추지 못하다가 결국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지만 남편과67년 해로하고 남편을 먼저 보냈다. 그후 어머님은 장남에게 오시어 6년간 며느리와 깊은 사랑을 나누며 가정은 행복하였다. 그의 삶은 성경 읽고 찬송하며 적게 잡수시고 잘 주무시며 의사를 볼 일이 없었다.
내가 장남으로 한국에서 부모님을 모시지 못한 불효라고 하자 어머님은 죽을병에서 살린 것보다 더 큰 효도가 있는가 하시며 나를 위로하고 감사하니 내가 감사하였다. 며느리가 장보러 가며 무엇 접수시고 싶은가 물으면 주는 대로 먹는다 하시니 지혜를 배우며 더욱 성의를 다하여 섬기게 된다. 그의 기도는 누구에게 짐이 되지 않고 죽을 때는 자는 듯이 주 앞에 가는 것이라 하시더니 손녀 박사학위 수여식에 참여하고 작은 손자 결혼을 보고자 뉴욕 큰 손자집에서 저녁식사 후 앉아 기도하는 것 같았는데 조용하게 숨을 멈춘 상태였다. 기도대로 되었다. 어머님은 삶의 지혜, 정직, 근면, 겸허한 사랑과 섬김, 기도의 본을 남기시고 지금 주의 나라에서 찬송하고 계실 것을 알기에 더욱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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