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26, 2018

공의와 사랑 Justice and Love


미가 6:6-8 공의와 사랑 Justice and Love (2-18-18 사순절 1주일)

우리는 보통 다른 사람에게 잘 하고 싶어한다. 특히 가족일 경우 부모는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나 자녀는 그것을 부모의 사랑으로 고맙게 받아드리지 않은 경우가 많다. 부모가 자기 위주로 하는 것이지 자녀가 좋아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부도 서로를 위한다. 음식을 잘 해도 상대방이 그렇게 즐기지 못할 때가 있다. 요리하는 사람이 상대방 생각을 하면서도 자기 좋아하는 식으로 한 것이다. 이런 경우가 하나님 관계에도 일어난다.
오늘 미가서의 배경은 유다가 어려운 형편에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나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이웃 나라와 동맹을 하여 안전을 추구한다. 다른 나라의 공격을 받고 있고 백성들은 고통을 당한다.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도움을 얻을 수 있겠나?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겠나? 그들은 번제를 드린다. 일천 수양을 드린다. 심지어 자기 맏아들을 드릴 정도로 나간다. 그래서 하나님 호의를 받고 싶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한다. 너희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다. 누가 그것을 요구하더뇨 너희는 내 마당만 밟는다 (1:11,12)고 응답하신다.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기뻐하고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한다.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라 한다. 하나님은 많은 제물보다 그들의 마음과 생활을 더 기뻐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 마음에 드는 일은 하나님이 원하는 일,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 하신 것,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3:34)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원하신다.

1  공의를 행하라 하신다. 이는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라는 것이다. 5:16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신다. 9:8,9 여호와는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내리시리로다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시요 환난 때의 요새라. 성경 많은 곳에서 하나님을 공의로운 분이라 한다. 공의는 무엇인가?
1) 바른 관계를 위한 것이다. 생명과 평안 조화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바르게 함으로 생명과 안녕을 누리게 된다. 이를 위하여 법이 주어졌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이라 하고 그는 그들의 하나님이라 하시며 바른 관계를 위하여 그들이 살아갈 길을 보여 주시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고 하며 그와 바른 관계를 맺을 때 생명과 평안을 누리는 것을 말씀한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것이 생명과 축복의 길이다. 예수께서 이를 가장 큰 계명 모든 율법 중에 가장 핵심이라 하신다. 하나님이 이 법을 주신 것은 생명과 아름다운 관계를 위한 것이다. 그 관계를  깨뜨리면 그 결과로 생명을 잃고 평안을 잃는다. 법을 어긴 결과를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법을 어긴 아담을 하나님이 심판하였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다.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이것이 공의다. 사람관계도 마찬가지다. 지난 수요일 플로리다 파크랜드의 고등학교에 19살 니콜라스 크루즈라는 괴한이 자기 모교인 그 학교에 총을 가지고 가 17명 학생 교사를 무차별 죽였다. 생명과 평안을 파괴하였다. 가족과 공동체에 큰 고통을 더하다. 이런 경우 그 범인에게 그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공의다. 그를 용서하고 내 버려 두는 것이 사랑이 아니다.
2) 공의를 실행할 때는 공평함이 있다. 증인이 법정에서 증언할 때 부자라고 두둔할 것 아니고 가난한 자라고 박대할 것이 아니라 정직하고 공평하게 대하라 하신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꼭 같이 창조함을 입은 생명으로 존중을 받게 되어 있다. 이것이 공의다. 하나님 백성이 애굽에서 종으로서 고생하며 인격 대우를 받지 못하다. 하나님이 공의로 그들을 자유인으로 구하여 내었다. 너희들이 종으로 살다가 해방되었은즉 종을 부리지 말라. 공의요 공평이다. 미국의 흑인들이 공평한 대우를 받기 위하여 300년간 투쟁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된 그 때에 누구나 동등한 것이 증명되었다. 모두가 공평하게 대우 받는 것이 공의다. 성경에는 공의와 관련하여 9 종류의 사람 곧 과부 고아 아버지 없는 자, 가난한 자, 주린 자, 나그네, 없는 자, 약한 자, 눌린 자가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공의의 하나님은 이들을 모두 꼭 같이 대한다. 압제 당하는 자의 요새요 환난시의 요새시다. 예수께서 여기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신다. 야고보는 교회에서 차별 대우를 본다.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또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냐 (2:2,3). 오늘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교회 안에 공의가 없다는 것이다. 주께서 사랑하여 피흘리고 구한 사람을 너희가 멸시하나!
3) 공의는 빚진 것을 갚는 것이다.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한다. 집을 사기 위하여 돈을 빌린다. 그리고는 다달이 그 돈을 갚는다. 그것이 바른 길이다. 누가 나를 위하여 일을 하면 댓가를 바르게 치르는 것이 공의다. 그래야 관계가 유지되고 사회의 안녕이 지속된다. 세금 낼 것을 낸다. 우리가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않은 것이 있나(고전 4:7)? 우리 생명 재능 모두 우리가 받은 것이다. 빌린 것이다. 언젠가 돌려 드려야 한다. 모든 것을 빌리고 받아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다. 사용료를 얼마를 내고 있나? 빚을 갚지 못하면 문제다. 집 값을 내지 못하면 집이 차압된다. 그것이 공의의 실천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다. 하나님이 얼마를 요구하시나? 시간의 경우 7일에 하루 그 날을 하나님 예배에 드리라 한다. 물질의 경우 수입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께 드리라 한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공의로운 일이다. 예수께서는 우리 생명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주셨다. 나는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공의를 행하나?
공의를 행하면 사랑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의를 행하는 바탕에는 사랑이 있다. 생명 사랑하고 모든 사람의 평안과 안녕을 위한 것이다. 사랑이 기본이 되어 공의가 실천된다.  

2   인자를 사랑하라. 인자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다. 7:8 여호와 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 조상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되었던 집에서 애굽왕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었다. 요한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요일 4:8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1) 하나님은 삼위일체 간에 서로 사랑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가 만든 세상과 사람을 사랑한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돌보시고 사랑하신다. 버려두지 않으신다. 어디서나 항상 같이 한다. 지켜준다. 우리가 그의 것이기에 사랑하고 돌보신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 가운데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그와 그 자손을 자기 사람으로 삼고 복을 주신다고 언약을 맺고 사랑한다. 그의 후손이 어디 있든지 언제나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신실하시어 변치 않고 사랑하신다. 아브라함 후손만 아니라 교회를 향한 사랑도 그렇다. 아들 예수의 죽음으로 구원한 주의 백성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우리를 성령의 전이라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시니 참으로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변치 않고 사랑한다. 우리 삶이 많은 언약 약속으로 된다. 부부가 결혼할 때 평생을 사랑하겠다고 서약을 한다. 그 약속을 지켜 나가는 것이 신실한 사랑이다. 목사 장로 집사가 될 때 서약을 한다. 주께서 약속을 지키듯이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세례 받고 그리스도인이 될 때 또 한 교회의 교인이 될 때 교인 서약이 있고 그 서약을 지키는 것이 사랑이다.
2) 우리가 배반하고 잘못하여 죄를 범할 때에도 사랑하신다. 자식이 잘못하는 것을 버려두지 않고 채찍하고 징계한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주의 백성이 잘못하고 하나님을 아프게 한다. 그래도 그들을 용서하고 받아드린다.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먼 나라에 간 둘 째 아들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흉년을 만나 남의 돼지를 치다가 먹을 것이 없던 차에 부모 집을 생각하고 뉘우치며 돌이켜 찾아가다. 아버지가 멀리서 보고 있다가 뛰어나가 반갑게 맞는다. 옷을 갈아 입히고 잔치한다. 잃었던 아들을 찾았다고 기뻐한다. 큰 아들이 들에서 돌아와 되어지는 일을 보고 분개하여 들어가기를 싫어한다. 아버지가 나와 위로한다. 내 가진 모든 것이 너의 것이 아닌가? 네 동생은 잃었다가 다시 얻은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두 아들 모두를 사랑하고 받아준다.
유다의 왕들 가운데 가장 악한 왕이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다. 히스기야는 앗수르가 공격해 온 때 대항할 힘이 없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18 5천 아수르 침략군을 모두 송장이 되게 한 믿음의 왕이다. 죽을 병이 든 때 눈물로 기도하자 15년 생을 연장 받은 왕이다. 이런 왕의 아들이 므낫세다. 므낫세는 잊어버리게 하는 자라는 의미다. 55년 가장 오랜 기간 통치를 하면서 어떤 왕보다도 더 악한 일을 많이 하다. 하나님 성전에 우상을 세우고 심지어 아들을 우상에게 바치기도 할 정도다. 하나님께서 므낫세의 일로 나라를 심판하시다. 아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이 므낫세를 사로잡아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가다. 그 환난을 당하자 그때에 깨닫는다. 그가 겸손하게 조상의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시고 그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시 왕위에 앉게 하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인 줄 알고 (대하 33:11-13)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고 이스라엘 하나님만 섬기게 하였다. 겸손하게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용서하신다. 사랑이다. 하나님은 이방인도 사랑하신다. 악한 니느웨 사람들을 멸하려 하였지만 그들이 회개하자 하나님은 용서하였다. 요나는 그럴 줄 알고 도망하였다. 하나님은 사랑이라 노를 돌이켜 용서하실 것을 알았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예수의 제자들은 온 세상에 나가 생명의 복음을 전하다. 유대인은 이방인을 지옥의 뗄감이라 생각하고 멸시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여 구원하신다.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사랑으로 선택하여 영적인 이스라엘로 생명과 복을 받게 하셨다. 사랑이다.
3) 끝까지 희생할 정도로 사랑한다. 주님의 사랑이 그러하다. 13:1 제자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한다. 자기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한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이 죄를 묵과하는 것 아니다. 고치고 새롭게 하시는 일을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은즉 그런 사랑을 하라고 한다. 잘못하는 사람을 받아주고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사랑을 베풀기를 주님은 원하신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 기도한다.

공의와 사랑은 같이 가지 못할 것 같다. 공의는 사랑 없는 심판이요 사랑은 모든 잘못을 묵과하여 공의가 없는 것으로 보여 서로 반대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공의의 기초는 생명과 안녕을 사랑하기에 행해진다. 사랑도 온전한 생명과 안녕, 질서를 위해 징계하는 공의를 보인다. 이 둘이 조화를 이루어 주께서 바라는 생명 평안이 이루어진다. 사순절 기간은 이 둘이 예수님 안에서 서로 만나고 조화를 이루어 우리 모두가 참생명과 평강을 누리게 됨을 기억한다. 우리가 관계를 깨뜨리고 심판 받을 존재이지만 주의 사랑으로 우리를 택하고 인도하심을 생각하면 우리는 겸손해진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며 예배하게 된다. 우리 이웃에 대해서도 주께서 공의와 사랑으로 대하기에 나도 겸손히 그를 받아 드릴 때 참 생명과 안녕의 삶을 누릴 것이다. 공의와 사랑, 겸손으로 주의 생명과 평안을 최대한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동영상 www.kpcm.org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