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4:26-27 분을 내어도 (In your anger 7/29/18 주일)
열흘 전 7월 19일 Clearwater
FL 의 Circle A라는 편의점 앞에 Britany Jacobs라는 여인이 일을 끝내고 차에 아이와 남편을 태우고 와서 장애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남편 Markeis
McGlockton이6살 난 아들과 같이 음식을 사러 들어간 사이 Michael
Drejka 라는 사람이 와서 차를 둘러보더니 장애인이 아닌 사람이 그곳에 주차하였다고 운전석 에 앉아 있는 여인에게
화를 내며 시비를 걸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손님들이 나오고 남편도 나왔다. 남편 McGlockton이 부인과 그 남자 사이에 들어가 남자를 밀어내자 그가 땅에 쓰러졌다.
쓰러진 사람이 총을 꺼내어 자기를 밀어낸 그 남자를 향해 쏘다. 28세의 남자가
바로 숨을 거두었다. 장애인 주차장에 장애인 아닌 사람이 주차한 것에 대한 분노가 생겼다고 본다.
그것이 비화하여 결국 살인이 되었다. 이런 일이 우리 주변에 많이 일어난다.
기독교인 중에 상담을 하러 온 사람의 반 이상이 바로 분노 때문이라는 것이다. 분노는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데 그것을 터뜨리면 공격으로 나타나 관계가 깨어지고 그렇다고 그것을 누르면 우울이 된다. 사람관계에서 우리의 분노를 어떻게 할까?
1 오늘 성경은 분을 내라
화를 내어라 한다. 우리 말에 4단7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7정은 희노애락애오욕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정은 사람의
기본 정서라는 것이다. 노여움은 가벼운 짜증에서부터 강렬한 분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나 이는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분노, 노여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정상적인 정서다. 성경에 분노라는 말이 450 회 나오는데
375회는 바로 하나님의 분노다.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분이다. 분노라는 말은 원어에 두 의미가 있다. 열정 에너지, 끓어 오르다 라는 것이다. 그것을 잘 조절하면 문제를 푸는 힘이 된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 앞에서 이야기를 한다. 한 성읍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같이 살고 있는데
부자는 양과 소가 매우 많고 가난한 사람은 오직 새끼양 한 마리를 가족처럼 기르며 살고 있다. 어느 날 부자집에
손님이 찾아오자 주인은 자기 양과 소를 그대로 두고 가난한 사람의 새끼 양을 빼앗아 자기 손님을 위하여 잡았다고 한다. 다윗이 노를 발하여(삼하12:5) 이 일을 행한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사회의 공의와 질서를 잡는데 다윗의 분노가 힘으로 역사한다. 그 때 나단 선지자는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며 다윗이 아내가 많은 데도 전쟁에 나간 장군 우리아의 하나 밖에 없는 아내를 강간한
사실에 하나님이 분노한 것을 알리다. 다윗은 자기 잘못 시인하고 회개하다. 하나님의 분노는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 떠나 사람이 사람을 학대하는 것을 향하였다. 예수께서도 분노하시는 일이 많이 있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가시니 한 쪽 손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그가 안식일에 병을 고치면 고발하기 위해 주시하고 있다. 예수께서 병든 자를 가운데 서게 하고 묻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그들이 잠잠하다. 막3: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환자에게 네 손을 내 밀라 하자 그 손이 회복 되었다. 노여움에서 치료로
연결되었다. 노여움이 열정과 에너지로 문제를 풀기도 하지만 또한 그것이 끓어오르면 관계를 깨뜨리고 파괴를
가지고 오기도 한다. 그러기에 화를 내기는 하지만 조심하라고 하며 제한을 둔다.
2 화를 낼 때 어떤 제한을
두나?
1)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한다. 시4:4너희는 분내어 떨며 범죄하지 말라.
다윗을 모함하는 자들이 많다. 다윗 지지자들이 화가 나서 몸을 떨 정도다 그러나
범죄하지 말라 한다. 분노하여 원수를 갚거나 죽이면 죄를 짓게 된다. 하나님의 분노, 다윗의 분노가 공의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지만 화를 내며 죄를 짓는 것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 노가 죄가 되나? 자기에게 분노가 생길
때 그 분노가 어떻게 생기는지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요나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니느웨 성으로 가서
40일이면 망할 것이라고 전하였다. 요나는 성 밖에 박넝쿨 아래 움막을 치고 그
성이 망할 것을 보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 니느웨 왕과 모든 백성 심지어 짐승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악에서 떠나다. 하나님이 보시고 뜻을 돌이켜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다.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여 박넝쿨을 먹게 하자 박넝쿨이 바로 시들고 요나는 뜨거운 태양 아래 견디기 힘들어 화를 내며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하다. 하나님이 물으신다.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은 일이냐 (욘4:9)? 요나는 박넝쿨 하나를 애끼면서 니느웨의
12만명 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악한 사람들이라 망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선지자로서 40일이면 그 성이
망한다고 했는데 망하지 않게 되니 자기가 선지자로서 한 말이 실현되지 않으면 그는 거짓말을 한 것이 되었다는 자기 중심적인 교만한 생각이다.
내가 노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화를 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 중심적인 교만이 아닌가 깊이 생각하라 하신다.
왜 내가 분노하나? 가정 폭력 특히 부부간에 폭력이 있다. 남편의 폭력 뒤에 아내의 언어 폭력이 있다는 것이다. 나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했다.
내 영역,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노한
것이 미움으로 바뀌고 두고 보자는 복수심이 되고 가정 파괴, 결국 살인의 빌미가 되는 것을 본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나를 구하기 위하여 무시 당하고 하나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자신을 온전히 버려주신 주님을 믿고 그에게 나의 모든 것을 드렸다고
하면서 여전히 나의 자존심 나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 나의 분노 원인이요 죄된 행동 임을 깨닫게 되면 일이 풀려진다.
모세처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있겠나? 애굽에서 왕의 후보자가
받는 최고의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 애굽에서 종생활하는 60만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방 시켜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그들을 인도하였다. 모두가 부족한
것 뿐이라 백성들은 불평이 많다. 그때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해결을 얻고 채움을 받았다. 물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한다. 지팡이를 가지고 형 아론과 같이 백성을 모으고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시다. 모세가
지치고 노하게 되었다. 모세가 백성을 반석 앞에 모으고 말한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며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솟아나왔다. 백성과 짐승이 모두 마실 수가 있었다 (민20:10,11). 그러나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한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않고 백성 앞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기에 너희는 내가 주는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모세가 너무 지치니 힘들어 분노를 터뜨렸겠지만 자기를
나타 내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고 그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죄에 빠지게 되었다. 예수께서 노를
발하시나 한 번도 자기 중심의 이기적인 것이 없었다. 노를 발할 때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공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 중심인지를 보아야 한다.
존 스타인벡이
쓴 분노의 포도라는 소설이 있다. 공황이 지나며 1930년대 농업 혁명이 일어날 때다. 오클라호마에 탐 조우드의 가정이 소작농으로 있는데 어느 날 트랙터가 들어와 농장을 뒤집고 소작은 모두 쫓겨나다. 트랙터 운전자에게 분노를 터뜨리나 그는 은행이 시켜서 하고 은행은 또 윗 사람의 명령으로 하고 있다. 사회 제도 문제였다. 캘리포니아에 일자리가 많고 임금을 많이 준다는 광고를 보고 모두 그곳으로
몰려간다. 가 보니 땅도 넓고 과일 농장에 일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미 자리가 찼고 새로온 사람을 반기지도 않고 일하는 사람들은 착취를 당한다. 의로운 분노가 일어난다.
분노의 포도다. 노동자를 규합 조합을 만들어 반기를 들며 폭력이 발생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생기다. 도망을 해야 한다. 분노가 폭력과 살인 죄로 연결되다.
분노하되 죄를 짓지 말아라.
2) 분을 내어도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분을 내면 그 날로 끝을 내라는 것이다. 해가 지는 것은 하루가 지나고 새 날이 시작되는 것을
말한다. 새 날은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해가 지면 밤이 되고 잠을
자는 시간이다. 잠을 잘 때 편안하게 단 잠을 자야 한다. 다윗은 시4:4너희는 분내어 떨며 범죄 하지 말라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 어다. 잠자리에 들
때는 조용한 심령이 되어야 한다. 특히 밤 10시에서 새벽
3시는 우리 몸이 회복되는 시간이다. 피곤이 풀릴 뿐 아니라 몸의 자생력으로 약한
부분이 재생되고 면역이 강화되고 심지어 암세포도 죽인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고의 약으로 밤잠을 주셨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시간으로 밤을 주시다. 그런데 분노를 가지고 잠자리 들면 독소를
안고 자는 것이다. 독을 마시면 빨리 토해 내지 않겠나? 어찌 암덩어리보다
더 독성 강한 분노, 쓴 뿌리를 품고 자겠나? 분노를 터뜨린 이후
2시간 이내 일어난 일을 조사하다. 심장마비 2배, 스트로크는 3배, 애뉴리즘 경우는 스트로크 6배로 나타 나다. 그 외에
두통 위장병 불면 우울 고혈압 면역약화 대장염 등의 많은 질병을 유발 한다는 의학 연구다. 수학자 피타고라스
제자들은 서로 논쟁하다가 분노할 일이 많고 화가 나지만 해가 넘어갈 시간에 한 사람이 해가 넘어 간다고 하면 서로 포옹 하고 용서 했다.
서로 용서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잘 수가 있다. 다시는 화난 이유를 생각 하지 않고
맑은 마음으로 새 날을 시작하게 된다. 이런 맑은 마음으로 잠을 자면 건강하게 몸과 영이 회복되는 것을 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밤 잠자리에 들 때 내일 아침 해가 뜨고 일어날 것이라는 장담을 할 수 있나? 죽음은 밤 11-3시 사이에 많이 일어난다. 분노를 품고
죽을 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나? 큰 빚을 탕감 받은 종이 자기에게 조금의 빚을 진 친구를 감옥에 넣었다는
말을 듣고 주인이 그를 불러 말한다. 내가 너의 큰 빚을 용서하였는데 너는 너에게 빚 진 친구를 용서할 수
없더냐?
3) 분을 낼 때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마귀에게 발붙일 자리를 내어주지 말라.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다가 자리만 있으면 들어온다. 우리가 분을 낼 때 마음에 자기 중심적인 교만이 있고
하나님 말씀과 은혜가 막힌다. 마귀가 좋아하는 순간이다. 얼른 그가
들어온다. 더욱 분노를 터뜨리게 하고 미워하게 한다. 그리고는 우리가
잘못한 것을 고발하며 죄인이라 한다. 우리의 평화와 기쁨을 모두 빼앗아 간다. 하나님 앞에 우리를 죄인으로 고발하여 설 수 없게 한다. 나의 목회 초기에 사모에게 가끔 화를
내다. 그가 나의 목회와 설교를 판단하는데 대한 반응이지만 또한 내가 가진 스트레스를 그에게 풀기도 하다.
기도와 말씀이 막힌다. 마귀가 고발한다. 네가
목사냐? 그런데 토요일은 온다. 다음 날이 주일이다. 분노의 심정으로 강단에 서서 무슨 설교를 할 수 있겠나? 늦어도 토요일에는 풀어야 한다.
어떻게? 내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길이다. 그것이 나를 훈련하였다. 지금도 화를 내지만 마귀에데 틈을 주지 않아야 한다.
분을 낼 때 마귀가 틈을 갖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분을 내고도
인정하지 않은다. 나는 그런 사람이라 부득이 하였다 내 권리를 침해당했다 정당화한다. 마귀가 좋아하는 것이다. 내가 분을 낸 경우 그것을 인정하고 사람 앞에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한다. 미안하다, 나의 약함을 도와 달라고 한다. 주께서 도우시고 용서하신다. 주께서 용서하면 마귀가 들어와 대적할 틈이 없다.
우리는 계속 지난 날의 섭섭한 분노를
기억 하는 경향이 있다. 마음을 상하게 하고 관계를 상하게 한다.
마귀가 틈을 탄다. 그러나 용서하면 잊어버리고 다시 기억하지 않은다.
새롭게 시작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91년 장신 90주년 기념 강좌에서 강의하라는 부탁을 받고 준비를 하다. 컴퓨터에 작성 하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프린트 하면서 전체를 완성하다. 완성한 후 교회 광고할
내용 쓰다가 무엇을 잘못 눌러 내가 준비한 원고 내용이 없어졌다. 복구가 되지 않는다.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니 어떻게 해보라고 하여 했으나 되지 않은다. 그러면 영원히 없어진 것이라
한다. 그걸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 앞에 잘못하여 그의 진노를 일으킨다 해도 내가 잘못하였다고 회개하기만 하면 모두 용서하시고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 깨끗이 용서 받으면 마귀가 고발할 수 없다.
우리는 분노하고
산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분노를 다스리면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어떻게 다스리나? 왜 분노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분석한다. 많은 경우 내 자존심, 내 권리가 손상을 입은 것이다. 바로 분노로 반응하며 서로 부딛힌다. 부딛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나? 자동차 운전하며 앞 차와의 안전 거리가 2초 거리라 한다. 앞 차가 어떤 지점 지나가는 것을 보고 2초를 해아려 그 지점에 이르면 안전거리라는 것이다. 2초 시간을 가지라. 듣기는 속히하되 내가 말하고 응답하는 것을 조금 천천히 할 수 있으면 안전 거리 가진다. 장애인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었으니 단속반이 나오면 벌금을 부과할 것이다. 내가 분노하여 참견할 것이 있겠나!
형편을 달리 생각하면 분노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용사보다 낫다 하신다. 사실을 바로 보며 나의 부족을 또한
살피며 모든 것을 주께 맡겨 드리면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자유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분노는 어떤
사건 행동을 통해 오나 그것을 바로 사람과 동일시할 때 문제가 된다. 내가 인정받지 못하고 욕을 먹는 경우
나를 욕한 그 사람에게 바로 분노한다. 내가 망치를 들고 일을 하다가 망치로 왼손가락을 처서 몹시 아프고
부셔질 뻔 하다. 화가 난다. 어떻게 하나? 왼손에게 왜 네가 그곳에 있었나 하며 손을 잘라 버리겠나? 오른 손에게 왜 손을 쳤나며 그
손을 자르겠나? 망치에게 왜 네가 쳤느냐며 그 망치를 던져 버리겠나? 오히려 오른 손으로 왼손을 감싸고 빨리 회복되도록 돌보지 않겠나? 이것이 몸이다.
부부나 자녀나 교인이 모두 한 몸을 이룬다. 서로 부딛히고 상할 때가 있다.
왜 저런 말을 할까? 그의 말을 들어주며 그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품어줄 수 있다면
화를 낼 수 있겠나? 하나님이 영원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나를 인도 하시고 돌보심을
믿으면 우리 감정이 조절될 수가 있을 것이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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