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24, 2021

아빠 아버지 Abba Father

아빠 아버지 Abba Father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하지만 그들은 이미 내 곁을 떠나 가셨다. 목회에 전념한다면서 제대로 살피지 못한 자녀들은 이미 성인이 되어 있지만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좀 더 잘 해주고 싶다. 그러면서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더욱 생각하게 된다. 구약에서는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말하고 있지만 실제 삶이나 기도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전통과 달리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다. 그가 12살에 부모와 함께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 성전에 갔다가 그 성전을 ‘내 아버지 집’이라며 (눅2:49) 요셉이 옆에 있는데도 예수는 자기 아버지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또 확인시킨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함은 그가 나를 낳으셨다는 것이다. 그는 창조주요 생명의 원천으로 우리 모두에게 아버지가 되신다. 
아버지는 권위가 있어 가정에서 무엇이나 자기 마음대로 하는 매우 엄격하고 두려운 존재로 인정되었다. 내가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한 외과의사는 10대에 아버지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학교 성적을 가지고 가면 아버지는 항상 꾸중과 채찍으로 대하는 두려운 존재였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배우자 그는 아버지같은 하나님은 싫다며 교회와 하나님을 떠났다고 한다. 
예수께서 일찍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지만 그가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임하고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듣자 그의 삶의 방향이 정해지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기뻐하는 아버지라’는 확신이다. 그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제자에게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기도하도록 가르쳤다. 그는 평생 아버지와 그의 나라를 전하고 사역하며 아빠 아버지라고 기도하였다. 
아빠 아버지는 중복된 표현 같다. 아빠는 우리 말 아빠나 영어 Daddy같이 어린아이의 말로 생각되나 사실 그 말은 아람말 Abba로 어린아이의 말이 아니라 책임 있는 성인이 아버지에게 또는 제자가 스승에게 정교회에서는 교회 총책임자에게 더하는 칭호다. 아버지는 헬라말 Pater로 생명을 낳은 창조자를 의미하는 하나님 칭호가 되나 접근이 어려운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한다. 
아버지에 아빠가 더하여지면 뜻이 더욱 명확하게 된다. 목회 초창기 성경공부에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아빠! 로 불러보자고 했더니 한 사람은 불경한 일이라며 자리를 떠나기도 하였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 겟세마네에서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막14:36) 기도하셨다. 여기 아빠 아버지는 무슨 의미인가?  
아빠는 관계의 친밀함과 신뢰를 의식이 아니라 일상 말로 표현함이다. 친밀함이 없는 관계가 많다. 예수께서는 “그가 나를 알고 내가 그를 안다”. 그가 하는 말은 아버지로부터 들은 것이요 그의 행함은 그의 행함을 본 것이다. 그는 말과 행동 생각, 몸의 구조 모든 것을 아시는 아버지로 사랑의 관계 속에서 친밀함을 느낀다. 예수께서는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끝내며 아빠 앞에 나아가고 피곤과 어려움, 반대와 고통을 직면해도 항상 그의 손을 붙잡으며 힘을 얻었다. 변화산에서는 ‘사랑하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확인을 다시 받았다. 
아빠는 존경과 순종을 표현함이다. 말과 행함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높이고 그의 영광을 나타내며 그를 기쁘시게 한다. 아버지는 전지 전능하기에 12령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하여 모든 원수와 십자가의 잔을 제거할 수도 있지만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는 아버지의 뜻을 알기에 그 잔을 받아드리고 순종하며 자신을 아빠 손에 온전히 맡겼다.  
나도 주를 따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할 수 있을까? 바울은 성령과 아들의 영으로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된다고 한다(롬8:15 갈4:6). 그는 자랑스런 교육 신분 전통을 의지하여 예수를 박해하였지만 “사울아 사울아” 다정하게 부르시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성령의 역사로 그를 영접함으로 중생을 확실히 경험하게 되니 이제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아니라 아들의 영으로 채워지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다. 신앙 년조가 아니라 성령으로 예수와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질 때 일어난 일이다. 
바울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그와 친밀하게 지나고 신뢰하며 그를 높이고 그의 뜻에 순종하여 인류를 사랑하여 구하는 생명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기까지 우리 구원의 길을 보여주고 믿게 하였다. 이제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상속 받고 주의 나라에서 주와 함께 다스린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우리가 걸어가며 기대하는 바가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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